OB란 out of bound의 약자로 타구가 코스상의 정의된 경계를 넘어가서 벌타를 받게 되는 규칙의 이름입니다. 자신이 친 공이 OB가 났다면 1벌타를 먹고 쳤던 자리에서 다시 치던가, OB인지 불확실할땐
잠정구를 치고 나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OB는 스코어에 영향을 주는 상당히 강력한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정구란? 친 공이 러프나 OB지역 근처에 떨어져서 확실치는 않지만 나중에 공을 찾지 못하거나 OB로 판정될 경우에 대비해 미리 쳐놓고 가는 공으로, 가봐서 공이 살아있으면 잠정구로 친 타수는 없던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벌타를 먹고 미리 쳐 놓은 잠정구가 플레이볼이 됩니다.
코스에서 벗어나는 경우에 해당하는 다른 예는 해저드(hazard)가 있습니다. 해저드도 코스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1벌타를 먹는 것은 같지만 OB와는 달리 원래의 위치에서 다시 샷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저드에 빠진 지점을 기준으로 플레이를 계속하게 됩니다. 원칙적으로 OB는 골프장 자체를 벗어나는, 즉 코스의 경계를 넘어가는 경우에 대한 제재이며, 해저드는 코스의 주변이나 내부에 있는 장애물에 의한 벌칙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대로 설계/운영되는 골프코스라면 OB구역이 굳이 그렇게 많을 이유가 없습니다. 골프장 외곽, 즉 아예 주변도로나 건물과 인접한 경계라면 모를까, 코스 내부에 OB구역을 두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다수의 골프장은 웬만하면 코스의 좌 혹은 우측면은 지형과 상관없이 OB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요하면 해저드로 설정해도 되는 곳을 OB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냥 바로 옆이 다른 홀의 페어웨이인 경우에도 그 사이에 OB말뚝을 박아 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PGA경기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옆 홀에서 다시 자기 코스로 공을 돌려 보내는 샷을 할 수가 없죠.
그렇다면 한국의 골프장의 룰이 외국보다 강력하고 어렵게 되어 있다는 뜻일까요?
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OB티(tee)라는 희안한 제도가 있습니다. 이미 설명한대로 OB가 발생하면 그자리에서 벌타를 먹고 다시 쳐야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다시 쳐도 제대로 보낸다는 보장이 없고 (샷 자체에 문제가 많은 아마츄어의 경우에는 OB내고 다시 친 티샷이 다시 OB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OB구역이 좌우에 잔뜩 버티고 있다는 것은 원칙대로라면 엄청나게 불리한 코스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의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골프장은 OB티라는 지점을 페어웨이 한가운데 정해놓고 티샷이 OB가 나면 OB티로 이동해서 다음샷을 하도록 하는 로컬룰(local rule)을 사용합니다.
로컬룰이란? 골프는 기본적으로 PGA룰을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골프장의 특성에 따라서 현지에서 추가로 정의한 규칙을 로컬룰이라고 부릅니다. 웹사이트나 스코어카드를 보면 그 골프장의 로컬룰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OB티의 위치란게 참 재미있습니다. 대개 중상급의 플레이어가 드라이버를 제대로 맞춰서 보낼 수 있는 최상의 지점에 존재하거든요. 따라서 OB티가 없었다면 그 지점까지 몇타를 더 쳐야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초보자에게는 (비록 벌타를 먹고 오기는 하지만)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OB티에서 티를 꼽고 쳐도 되는 로컬룰을 갖고 있는 곳도 있어서 캐디가 티를 꼽고 드라이버로 치라고 권유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OB를 낸 초보플레이어가 파5홀에서 2온을 시키는 것도 꽤 가능합니다. 볼을 홀컵 가까이 붙이는 행운만 따라 준다면 벌타를 감안해도 OB를 냈는데도 파를 따낼 수도 있다는 뜻이죠.
따라서 OB티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한 OB구역이 많다는 것은 절대 불리한 조건이라고 볼 수 없게 됩니다. 이 점이 제가 지적하고 싶은 한국 골프장의 문제점입니다. 굳이 OB로 잡지 않아도 되는 구역을 무리해서 OB로 잡고, 이번에는 OB낸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형적인 제도인 OB티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플레이의 속도때문입니다.
한국의 골프장 운영의 원칙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플레이 속도입니다. 따라서 옆 홀에서 리커버리샷을 한다든지 해저드에 빠져서 뒤쳐져서 플레이하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여 원활한 플레이를 하도록 하기 위해 이런 구조와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에서 캐디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경기 진행 속도를 맞추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 팀이 속도가 느려서 다음 홀이 비어 버렸는데 우리는 아직 이번 홀 그린에도 못올라가 있다면 십중팔구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겁니다. 심지어 진행속도에 문제가 생기면 대개 플레이어는 별 상관없지만 캐디가 골프장측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경기 배정에서 불이익을 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이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경기 자체가 왜곡되고, 즐거워야 할 라운드가 짜증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비싼 라운드비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골프장이 적자운영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는 이런 왜곡된 운영을 하는 사정을 이해하는 편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쪽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골프는 (원론적으로는)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자신이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하는 신사도와 매너의 스포츠라고 합니다. 그래서 규칙이나 매너를 잘 알지 못하고 플레이를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폐가 되고, 자신도 진정한 골프의 참 맛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초보 골퍼들은 누가 따로 가르쳐 주거나 자신이 공부할 기회도 없이 한국의 골프장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들여서 잘못된 관행을 원칙이고 규정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현실입니다. 경기진행을 원활히 하도록 협조하는 것은 지구상 어느 골프장을 가더라도 지켜야 하는 매너이지만 그걸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하는 건 문제가 있지요.
제 주위의 많은 초보 골퍼들은 OB티라는게 원래 어디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OB가 나면 OB티부터 찾습니다. 혹시라도 OB티가 없으면 어색하게 생각하구요. 이밖에도 PGA규정에도 없는 많은 한국식 규정들이 주변에는 난무합니다. 예를 들어 워터해저드에 빠지면 그린으로부터 먼쪽으로 물러나서 다음 샷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경기진행 목적상) 워터해저드(연못) 앞쪽 젤 좋은 자리로 가서 샷을 합니다. 당근 캐디가 그렇게 하라고 하죠. 이해는 합니다. 많은 경우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거든요. 하지만 그게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미안하고 조심스럽게 그렇게 하는 것과 원래 그렇게 하는 것으로 믿고 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만약 어딘가에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혹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경우가 반드시 있게 될거거든요.
초보자도 어느 정도는 룰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복잡한 룰을 다 외우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위의 다른 분의 잘못된 설명을 믿고, 관행으로 되어 있는 편법을 룰로 잘못알고 골프를 계속 치다가는 비유하자면 언젠간 어려서 술을 잘못 배워서 생긴 주사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의 모습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술버릇에 대한 비유가 잘 와닿네요. 술주정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했던 걸 잘 모르죠. 비슷하게 매너없는 골퍼는 대개 주위에서 지적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술버릇 나쁜건 예의바른 자리에서나 문제가 되지 술먹으면 개가 되는 비슷한 친구끼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들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골프장에 가시면 아마 어떤 황당한 룰을 만들어가며 쳐도 문제가 안되겠죠.
말나온 김에 한국 골퍼들의 내기/도박에 대한 집착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필드를 다녀보면 초보/상급자를 막론하고 진짜 열심히 내기를 합니다. 명분도 가지가지죠. "그래야 한타 한타에 성의가 들어가서 실력이 향상된다"든지, "그냥 치면 밋밋해서 재미가 없다" 등등....
물론 내기해서 돈따가겠다고 하는 분들은 못봤습니다만 스킨스, 라스베가스, 스트로크, 후세인, 딩동댕 등등 아무리 배워도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많은 내기방식을 훤히 꿰고, 게다가 그 하나 하나가 세부 룰이 얼마나 복잡한지 도무지 잃고 나서도 누구한테 얼마를 줘야 하는지 매번 헷갈리는 그 내기의 복잡한 룰은 칼같이 알고 있으면서, 정작 상식적인 골프의 정규룰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년차 구력의 골퍼들은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동반자와 함께 자연과 약간의 긴장감을 즐기는 골프 라운드가 되기 위해서는 도박룰보다는 경기규칙을 알고 지켜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골프룰을 외우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럴까 저럴까 싶을 때는 이것만 기억하세요.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한다. 어떤 규정이든 해당 골퍼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판단하십시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친 미스샷 한타를 스코어카드에 빼먹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골프입니다. 이럴까 저절까 싶을 때 어느 쪽이 자신에게 불리한가를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규정을 지키는 것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혹시라도 애매한 경우에는 다른 플레이어의 동의를 받는 것이 예의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마지막 퍼팅을 오케이(컨시드)주는 것은 동반자이지 자신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규칙만 생각하는 인색한 플레이어 보다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무지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골퍼라는 점을 잊지 마시구요. 투어프로가 아니라면 골프는 스포츠가 아니라 레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