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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가을 글쓰기

바람 빠지는 후기

작성자송하연|작성시간25.12.06|조회수107 목록 댓글 1

*동생의 연애담은 글쓰기 과제 번외로 올린 글입니다

 

바람 빠지는 후기

송하연

 

—1년 경과 성형 후기 작성해 주실 시기입니다.

 

침대에 모로 누워 성형외과가 보낸 카톡 알림을 지웠다. 수술비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경과 후기 네 번을 쓰기로 했었다. 이제 마지막 1년차 후기를 올릴 차례였다. 성형 경과 1년을 훌쩍 넘기고도 몇 달째 톡을 씹고 있건만 성형외과는 사채업자처럼 드문드문 찾아왔다. 사실 후기라고 해봤자 성형 커뮤니티에 병원 이름을 넣고 성형이 인생을 바꿨다는 주접을 떠는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하기 싫었다. 커뮤니티에 남은, 성형 날만 고대하던 과거의 내 흔적을 마주치기 두려웠다. 아직 충분히 예쁜 여자가 되지 못했다. 보란 듯이 금의환향하고 싶었다.

 

더욱이 후기에는 경과를 보여줄 여러 각도의 셀카가 필요했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거울 앞에 섰다. 역시나. 몇 달 전만 해도 갸름해서 이목구비가 돋보이던 얼굴에 또 살집이 붙어있었다. 얼굴이 이러니 몸은 볼 필요도 없었다. 추측하기로 이번 요요는 개인 PT 트레이너의 청천벽력 같은 진단 이후 스멀스멀 진행됐다.

 

“쉽게 말해서 네 몸은 풍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람 빠진 풍선.”

당시 나이에 비해 아주 동안인 중년 여자 트레이너가 내 팔을 주무르며 설명했다.

“바람이 한껏 들어갔다가 훅 빠진 풍선은 쭈글쭈글해지잖아. 그게 네 몸이야. 니도 니 팔 한번 만져봐라. 말랑하제? 40kg을 감량했으니, 거의 출산이지. 그래도 닌 젊고 예쁘니까.”

쭈글쭈글. 스물셋에 쭈그러든 젊음이라니. 노력의 보상치고는 지나치게 참담했다.

“……저, 선생님. 그럼 운동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요?”

수술의 가망을 묻는 환자처럼 나는 애절하게 물었었다. 거기에 트레이너가 대뜸 젊음이 좋다고 동문서답할 때 튀었어야 했는데. 거의 세 달 운동에 매진했지만, 트레이너 인생의 한이 순진할 때 헬스장 관장을 만나 애 낳은 일이라는 사실만 알게 됐다.

 

그간 열심히 운동하는 내 모습에 아빠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바쁘고 귀찮아도 헬스장에서 뱃살 운동 3세트씩은 꼭 하고 왔더니 얼마간 아랫배도 들어가기 시작했었다. 그즈음 아빠는 주에 한 번씩 내 아랫배를 두툼한 두 손으로 쥐며 확인해 보고는 했다.

“와, 이제 이거뻬(이거밖에) 안 남았네! 조금만 더 달리면 되겠다 그쟈(그치)?”
차마 함박웃음을 짓는 아빠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는 못했다. 이건 늘어진 살가죽이라 없애려면 거상해야 한다는 것을. 첫째 딸 얼굴 고친다고 부족한 살림에 빚도 진 부모님께 몸까지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쪽팔렸다.

 

아빠의 칭찬이 극에 달했을 때 돌연 PT를 그만뒀다. 효과도 없는데 트레이너가 자꾸 코 니 거냐 가슴 니 거냐 묻는 통에 꼬리가 잡힐까 봐 무서워서였다. 내 성형은 가족 외 극비 사실이었다. 다이어트로 긁은 복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다. 스물셋에 벌써 몸이 출산한 것처럼 쭈글거리는데, 남들이 감탄하는 얼굴마저 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예쁜 여자’가 되어 나를 돼지라고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 접지 못했다.

 

그래도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마냥 나쁘지는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보름만 바짝 노력하면 전성기 시절을 금방 따라잡을 것 같았다. 내내 미뤄온 성형 후기도 살만 좀 빼고 바로 적어 내자 싶었다. 대학교 방학 기간이라 꾸밀 일도 없어 살이 더 붙은 참이었다. 집 근처 헬스장과 절연했으니 관리를 위한 다른 구실이 필요했다. 문득 사범대 졸업 요건인 교육봉사 시간을 아직 덜 채웠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봉사 시간도 채우고 자기관리 의지도 다진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다행히 지금 내 모습은 아슬아슬하게 바깥에 내놓을 정도는 되어 보였다.

 

걸어서 15분 거리의 지역아동센터를 새로운 런웨이로 삼았다. 마스카라까지 꼼꼼히 하고서 나는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러 나섰다. 작아져서 몸에 붙기 시작한 옛날 옷들 때문에 조금이라도 허리가 얇아 보이려 4cm 뽕브라까지 찼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몸이지만 이렇게 꾸미니 탱탱하고 육감적으로 보였다. 그러면 뭐 하나, 자조하는 한편 남들 눈에라도 섹시해 보인다면 그걸로 족했다. 비록 장소가 지역아동센터이긴 했지만 말이다.

 

얼마 안 가 나는 지역아동센터에 훌륭한 스파이로 녹아들었다. 사범대 출신임을 밝히자마자 원장은 내게 호의를 보였다. 복지사 선생님도 내 능력에 관한 의심을 거두고 ‘봉사’로 온 나를 딱하게 봤다. 아마 일견 순진해 보이는 내 외모가 빛을 발한 것 같았다.

 

“아이고, 안타깝네요. 교육봉사다 보니까 일해도 돈을 받지는 못하시잖아요. 여기서 일하시는 다른 선생님들은 전부 근로장학금으로 돈 받고 일하시거든요.”

 

복지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물욕 따위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교육봉사라는 명목으로 30시간 동안 예뻐지려는 의지를 다지고자 하는 것뿐이었다. 적당히 복지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좁은 방에 모여 있는 다른 선생님들을 곁눈질로 훑었다. 근로장학금을 받고 일한다는 대학생 선생님들이 네 명 정도 있었다. 남자 하나. 여자 셋. 전부 사글사글하니 열심히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잠깐 계산해 본 결과 이들 외모의 전체값은 대구 기준으로 평균에서 약간 상향 정도, 서울까지 포함하면 평균 이하였다. 이쯤이면 괜찮았다. 비록 내 몸이 바람 빠진 풍선 상태 같다고 해도 얼굴이 압도적이니 주눅들 필요 없어 보였다. 내가 있을 만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다.

 

그곳에서 나는 ‘장원영 쌤’으로 불렸다. 비주얼로 유명한 아이돌을 닮았다며 초등학교 중‧고학년 여자애들 무리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초등학생들의 순수함이 이런 건가 싶어 마음이 훈훈해졌다. 내가 아는 초등학생들은 무게와 부피 개념을 배우고 엉큼한 표정으로 남의 몸무게나 캐내는 악마들뿐이었는데 말이다. 예뻐지고 나니 아이들마저도 내게 친절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선망 어린 눈빛이 좋아서 나도 자연스레 다정한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의 공부를 봐줄 때마다 칭찬도 많이 해줬다. 일한 지 첫 주만에 내 인기는 수직 상승했다.

 

“애들이 쌤 엄청 좋아하네요. 안 피곤하세요? 저는 기 빨려서 애들한테 그렇게 칭찬 못할 것 같은데. 쌤은 돈도 안 받으시면서 진짜 대단하시네요.”

원형 테이블에서 다른 학생의 공부를 봐주던 선영 쌤이 웃으며 말했다. 전직 롯데리아 알바생이었다는 선영 쌤은 생글생글 웃는 상이지만 언제나 눈빛에 영혼이 없었다. 나를 칭찬하는 듯한 지금도.

 

“그래요? 에이, 제가 아무리 애들 칭찬해도 쌤들 인기는 못 따라잡죠.”

빈말은 아니었다. 중‧고학년 아이들이 새로운 선생님에게 쉽게 관심을 갖는 반면, 저학년들은 낯가림이 심했다. 선영 쌤 옆에 앉은 1학년 여자아이 보윤이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보윤이는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동그란 단발을 매일 사과머리로 묶고 다녔다. 거기에 연분홍색 네모난 안경을 끼고 다니는 것까지 영락없는 초등학교 저학년생 같아서 나는 볼 때마다 그 애를 귀여워했다. 호시탐탐 선영 쌤에게서 보윤이를 뺏어오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는지 몰랐다.

 

칭찬도 못하고 영혼도 없는 선영 쌤에 비해 내가 떨어지는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이왕 장원영 쌤이 된 거 지역아동센터 부동의 1위 인기 선생이 되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다른 선생님들의 애제자를 하나둘씩 뺏어왔는데, 유독 보윤이만은 어려웠다. 저번에 부득불 달려들어 보윤이의 공부를 봐줄 기회를 얻기는 했었다.

 

“보윤이 또 정답! 그런데 보윤이는 왜 맨날 마스크 쓰고 다니는 거야? 감기 걸렸어?”

그때 나는 보윤이의 마음속 벽을 빨리 허물고 싶었기에 스몰토크도 여러 번 시전했다.

“…….”

내 질문에 보윤이는 잠자코 있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그 외에도 나한테 하는 답변은 언제나 ‘네’ ‘아뇨’를 벗어나지 못했다. 보윤이가 원래 말수가 좀 적나 싶어 선영 쌤한테 물었더니, 그 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윤이요? 그 애, 말…… 꽤 많은데요? 아마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오래 보면 쌤한테도 마음 열걸요.”

 

나한테만 돌부처 같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는 보윤이를 멀리서만 바라봤다. 선영 쌤은 돈도 안 받는 내가 굳이 애들의 환심까지 사려는 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끔 보윤이와의 일화를 얘기해주었다.

 

“쌤, 오늘 보윤이가 저한테 고민 상담했었어요.”

“헐, 1학년이 대체 무슨 고민이래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몰라요. 2학년 올라가면 뚱뚱하다고 왕따당하냐고 묻던데요?”

선영 쌤이 대수롭지 않게 던진 답을 듣자마자, 탁자 밑으로 다리가 벌벌벌벌 떨렸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그, 그래서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뭐라고 했더라? 음, 아! 맞다. 뚱뚱하다고 따돌리는 애들 잘못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요.”

코스트코 동결 건조 과일보다 더 물기 없는 선영 쌤 눈빛에 할 말을 잃었다. 보윤이 걔는 다 괜찮은데 애가 아직 어려서 보는 눈이 없었다. 그런 건 진짜 뚱녀 출신한테 물었어야 했다. 심지어 나는 소아비만이니 이 분야에서는 순수 혈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애가 나한테 물어봤으면 온 마음을 담아 공감하고 고민해 줬을 것이다. 선영 쌤의 말은 정신 승리일 뿐이지 않은가. 나라면, 나였다면…….

 

보윤아, 쌤도 니 나이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단다. 그리고 스물세 살 되도록 뚱뚱하거나 못생기면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거라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할 초등학생한테 어떻게 이런 말을 꺼낸단 말인가. 모르겠다. 머리에 쥐 날 만큼 생각해 봐도 해줄 말이 없다.

 

초등학생의 고민도 들어주지 못할 만큼 쓸모없는 어른이 되었다니. 부끄러웠다. 이 굴욕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서 교육봉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 상담만은 피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항상 나한테 먼저 다가와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원장의 목을 쉬게 만든 주범인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애들 둘의 비밀스러운 고민도 의도치 않게 알게 되었다.

 

“선생님, 근데요. 니 애미라는 말 있잖아요.”

평소처럼 그 애들의 학교생활 얘기를 들어주고 있을 때였다. 늘 장난스러워 새끼 원숭이를 연상시키는 재준이가 불쑥 금기어를 꺼냈다.

“……니애미? 그거 나쁜 말이잖아.”

남자애들이 어린 나이부터 쓰는 경박한 말을 나는 극도로 혐오했다. 걱정이 많아서 내가 낳은 아들이 니 애미라는 단어를 쓰면 호적에서 파야 하는지 지금부터 고민할 정도였다.

“알아요. 저는 니 애미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은데, 친구들이 자꾸 니애미라고 하니까 저도 써야 할 것 같아서 써요. 그러면 마음이 안 좋아요.”

“저도요. 근데 니애미라고 말해야 세보이거든요. 약해 보이기는 싫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통통한데 뺨이 빨개서 독일 아이 같은 겸이도 맞장구를 쳐댔다.

 

깜짝 놀랐다. 경박한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날리는 초등학교 남아들이 이런 고민을 품고 있었을 줄은. 동시에 쭈글쭈글한 내가 이 아이들 눈에는 내가 믿음직한 어른처럼 비친 건가 싶어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봐도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시선에 가장 집착하는 것은 니애미라는 욕을 쓰는 초등학생들이 아니었다. 나였다. 도망치듯 어물어물 통속적인 말 몇 마디를 꺼내고 말았던 것 같다.

 

그 무렵, 선생님이라는 일이 결코 가벼운 역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서슴없이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그 애들에게 더 많은 말을 해줄 수 있었을 터였다.

 

그중에서도 나를 유난히 신경 쓰이게 했던 건 4학년 쌍둥이 자매였다. 그 애들을 보면 나와 내 여동생이 떠올랐다. 종종 호리호리한 쌍둥이 동생이 사람들을 붙잡고 애교를 부리면, 통통한 언니 쪽은 반보 뒤에 우두커니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연미인 집안에서 홀로 성형 수술한 돌연변이인 나도 그 애의 마음을 잘 알았다. 살면서 자신의 유년을 닮은 아이들을 만난다는 건 운명 같은 일이 아닐까. 그 아이들은 나처럼 괴롭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살면서 느낀 모든 것을 전수해 주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어느날이었다. 쌍둥이 자매는 명부를 작성하는 내 옆에 앉아 떠들고 있었다. 심심한지 명부를 보며 자기 이름을 찾는가 싶더니, 별안간 동생이 언니 쪽을 보며 씩 웃었다.

“내 이름이 더 예쁘다.”

“아니거든. 내가 더 예쁘거든.”

이름으로 시작한 논쟁은 얼굴로까지 이어졌다. 어느새 방긋방긋 웃는 동생과 얼굴이 벌게진 언니가 투닥거리며 다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나지막이 끼어들었다.

“……언니는 배우상이고 동생은 아이돌상이네.”

 

가까스로 짜낸 한마디가 고작 이런 거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속에서 오만 생각들이 토론을 펼쳐댔다. 혹시 너희들이 예뻐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줬어야 했나. 아니지. 본인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해야 외모에 대한 집착도 없어지는 것 아니야? 거의 20년 가까이 뚱뚱한 추녀의 길을 걸었지만, 아직도 외모로 고민하는 여자아이들에게 그럴싸한 답변 하나 내놓지 못하겠다. 쌍둥이가 서로를 마주 보며 쑥스럽게 웃고 있는데도, 내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생으로서의 자질 미달은 언제나 한 순간의 부끄러움만 남길 뿐이었다. 이곳의 유일한 남자 쌤이 나한테 말할 때만 뜬금없이 목소리를 착 까는 걸 느끼면 마음이 부풀었다. 예뻐져서 얻은 이점이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복지사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을 때에도 사진이 잘 나왔다며 방긋 웃기만 했다. 옛날 같았으면 내 얼굴에 충격받고 며칠간 곡기를 끊었을 것이다.

 

예쁘다는 걸 인정받을 때마다 눈앞에 아른아른한 빛무리가 펼쳐져서 온 세상이 화사하게 보인다. 지역아동센터에 출근한 지 2주차 됐을 무렵, 근로 선생 4인방과 잡담하던 중에 내 외모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근데 쌤 되게 예쁘게 생겼어요.”

선영 쌤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빈말이든 뭐든 나만 콕 집어 말한 것이 기뻤다.

“네? 에이, 아니에요. 선영 쌤이야말로 피부 엄청 좋으셔서 부러운데요.”

겸양은 미인의 미덕. 부끄러워하는 척 손사래를 쳤다. 두 달 전 외모의 황금기를 누리던 나였다면 여기서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살이 좀 붙은 관계로 기어코 몇 마디를 덧붙였다.

“음, 사실 방학이라 살이 엄청 찐 거예요. 연예인들 입금 전후 차이 아시죠? 제가 좀 그렇거든요. 관리할 때 안 할 때 차이가 커요. 지금은 엄청 못생긴 시기예요. 학교 다닐 때는 더 괜찮은데.”

 

내 말에 멀찍이 서 있던 남자 쌤의 눈이 커졌다. 앞머리가 눈꺼풀을 덮을 만큼 긴데다 그 쌤 눈이 작은 편이라 사실 커진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 쌤의 얼굴은 배우 김우빈을 억울하게 닮은 편이라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러나 키가 180 정도로 큰 편이었다. 옛날이었다면 감히 그런 남자에게 흠모의 시선을 받는다는 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잠시 의기양양해졌다가도 곧 밀려오는 슬픔에 잠기고 말았다. 그 쌤보다 잘생긴 남자들의 구애도 꽤 받아봤지만, 그럼 뭐하겠는가. 몸이 쭈글쭈글거리는데.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다이어트 때문에 미치고 팔짝 뛰겠다. 다른 생각에 푹 젖어서 그날 무슨 정신으로 아이들의 공부를 봐줬는지 모르겠다. 정신 차리니 퇴근길이었다.

 

“쌤? 오늘 저희 둘끼리만 가면 될 것 같아요. 선영 쌤네는 남아서 할 거 있으시대요.”

지민 쌤의 말에 간신히 대답한 후 센터를 나섰다. 지민 쌤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나는 부러 걸음을 늦추어 그녀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녀의 몸은 옛날의 내 몸과 비슷했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뚱뚱한 여자를 남몰래 훔쳐보는 일은 스무 살 때 생긴 습관이었다.

 

스무 살. 대대적인 감량을 막 이뤘던 시기였다. 내 다이어트를 가장 응원했던 아빠는 나를 못내 자랑스러워했다. 부모라면 응당 자식 인생의 걸림돌을 제거해 주고 옳은 길로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믿는 아빠는 이참에 충동 조절이 안 돼서 살찐 딸을 끝까지 도와주고 싶어 했다. 둘이서 차를 타고 가다가도, 창밖으로 뚱뚱한 여자가 보이면 내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저 여자랑 니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아나?”

“……뭔데?”

“바로 콤플렉스의 유무지. 니는 다이어트를 함으로써 극복을 했고, 저 여자는 아니라는 거. 콤플렉스라는 게 사람 인생에 되게 큰 영향을 끼치거든.”

내가 뚱뚱했을 때 아빠는 텔레비전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채널에서 비만인들만 보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었다. 그리 끔찍하면 채널을 돌릴 법도 한데, 리모콘을 쥔 손을 떨어가면서도 눈싸움 하듯이 절대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사람들을 보며 아빠가 누구를 떠올렸는지는 자명했다. 그런 아빠가 마침내 뚱뚱한 사람들을 보고도 웃을 수 있게 되자, 나도 아빠를 안심시키듯 따라서 미소지었다. 그 뒤로는 뚱뚱한 여자가 눈에 띄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게 됐다. 그 여자들이 불행할지 아닐지, 나는 그 여자들 부류일지 아닐지 생각하면서.

 

“……지민 쌤이랑 단둘이 가는 건 처음이네요.”

상념에서 깨려고 지민 쌤에게 말을 붙였다.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며, 최대한 그 쌤의 양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 애썼다. 뚱뚱한데 귀여운 머리 모양을 하다니. 용기 하나는 장군감이라고 생각했다. 남들 보기 무섭지도 않나 싶어 괜히 내가 다 초조했다. 어째서인지 공모자가 된 느낌이었다. 뚱뚱한 몸으로 예뻐 보이려 했던 내 흑역사가 발굴된 것 같아서일까. 예뻐 보일 생각 전에 살이나 빼라고 비웃던 사람들에게 합류한 것 같아서일까.

 

불현듯 연원 모를 불안감이 뒷덜미를 휘감았다. 이제 나는 뚱뚱한 여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슬쩍 곁눈질로 지민 쌤을 쳐다보던 내가 갑자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저도 다이어트 좀 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요즘 살이 너무 쪄서.”

쿵 쿵 쿵 쿵. 쿵쿵쿵. 심장이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옛날에 88킬로그램이었던 내 앞에서 굳이 다이어트 얘기를 꺼내던 미친년들이 많았으니,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잘 알았다. 무언가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네? 아, 아니에요. 제 눈에는 날씬해 보이시는데요. 오히려… 오히려 제가…….”

역시나 지민 쌤은 화들짝 놀라 나를 보며 당황한 어조로 답했다. 죄의식이 마음을 감아드는 한편으로 거부할 수 없는 기쁨이 피어올랐다. 너무 황홀해서 손끝이 다 저릿저릿했다. 저열하게도. 쪼그라든 빈 풍선에 고양감을 한껏 채워 넣는 느낌이었다.

 

“하하, 보기에만 그래요. 저도 뺄 살 많아요. 아직.”

기분이 좋아져 처음으로 내 몸매에 대한 진실을 말했다. 아무런 사실도 눈치채지 못할 딱 한 마디지만, 상관없었다. 한 번이라도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었다. 내가 남들 눈에 비치는 그런 예쁜 여자가 아니라는 것. 지민 쌤이 아는 모태 미인도 아니고, 친구들이 생각하는 인생 역전의 주인공도 아니라는 것. 남들 눈에 대단하게 비치려고 노력했다가 그 이미지를 따라잡지 못해 벌써 3번은 은둔 중이라는 것.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늘의 행동이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그때 느낀 황홀감이 도무지 잊히질 않았다. 내가 진짜 예쁜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뒤늦게 쭈글쭈글한 몸을 떠올리고 비참해질 일도 없었을 텐데. 역시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는 전신 지방흡입이 정답인 듯했다. 몸을 싹 갈아버리기 위해서라도 임용고시에 빨리 합격해야겠다. 아주 오랜만에 성형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밤새 지흡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후기글들에 가격을 묻고 다녔다.

 

후기 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조급하게 성형하고 싶어졌다. 임용고시는 평균 3년을 공부해야 붙는다는데, 시간이 그만큼 흘러가고 나면 내 이십대 청춘은 누가 보상해주는가. 스물세 살 동안 인생을 허비한 일만 해도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다. 나보다 더 뚱뚱했던 여자들 배가 순식간에 납작해진 것을 보자 열받아 죽겠다. 나는 성형해서 예뻐지고도 바람 빠진 풍선이 된 몸 때문에 연애도 못하는데, 저 여자들은 지흡 이후 삶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잠 못 이루고 지흡 후기를 찾아 읽는 날들이 길어졌다. 그 후로 지역아동센터에서도 틈만 나면 몰래 휴대폰으로 성형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다들 성형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냐는 내용만 게시판에 두세 번 정도 썼던 것 같다. 용돈을 모아서 한다는 재수 없는 부르주아들 댓글은 싹 다 씹었다. 몇 달간 공장 다녔다는 댓글은, 차마 따라 할 자신이 없어서 대단하다고만 해줬다. 그러다 모던 바 알바를 추천하는 댓글에서 잠시 멈칫했다. 손님으로 오는 아저씨들 말 상대만 하면 되는 건전한 일이라며, 돈도 꽤 된다고 했다. 지조를 지킨 뚱땡이와 헤픈 전신 성형자 중 어떤 삶이 더 나은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거기서는 야시시한 원피스 같은 걸 입어야 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몸이 들켜버리기 때문이었다.

 

시급 높은 다른 알바들을 알아보며 사는 동안, 교육봉사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때맞춰 잘 끝났다 싶었다. 센터에 오후 여섯 시까지 있다 보니 여유 시간이 부족했다. 더구나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애들이 예뻐 보이고 싶을 때 습관적으로 짓는 요상하고 수치스러운 표정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그 표정을 보면 애써 잘 쌓아온 내 내면 어딘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유년을 닮은 여자아이들로부터 도망쳐서, 이제는 마음 놓고 예쁜 여자가 될 생각이었다.

 

마지막 학생의 공부까지 봐준 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복지사 선생님이 신호를 보내시면 단체로 퇴근할 수 있었다. 이제 센터에는 아이들이 분주하게 식기를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방을 나오니 쌤들이 단체로 현관에 서서 여자아이들 방 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다들 왜 웃고 계세요?”

궁금해진 내가 힐끔거리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선영 쌤이 웃으며 바로 손짓했다.

“보윤이가 매일 마스크 쓰고 다니잖아요. 남들한테 얼굴을 보여주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한순간도 안 벗는대요. 맨날 밥 먹을 때도 저렇게 마스크 안으로 넣어서 먹어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순간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온몸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더듬거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네? ……그게 대체, 대, 대체 어디가 귀여운 건데요?”

“어린애가 벌써부터 부끄러움을 알잖아요. 보윤이 정말 너무 귀엽죠.”

 

선생님들의 웃음이 아스라이 귓가를 맴돌았다. 불고기를 집어 잽싸게 마스크 안으로 넣는 보윤이를 보며, 나 혼자만 멍하니 서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2학년이 되면 뚱뚱하다고 왕따 당하냐는 질문을 했던 보윤이였다. 속에서 불길이 일었다.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정처 없이 뒤섞였다. 귀엽다고 말해서는 안 되죠. 쟤는 지금 무서워하고 있잖아요. 어른은 거기에 그렇게 답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쟤는……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요.

 

“쌤, 혼자 멍때리고 서서 뭐 해요? 안 갈 거예요?”

다시 방안을 보니 여자아이들은 식사를 끝내고 가방을 싸는 중이다. 보윤이도 다 먹은 식판을 들고 나온다.

끝내 그 애를 잡지 못했다. 붙들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나도 보윤이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장원영 쌤이라는 별명의 무게를 지느라 교육봉사 내내 풀메이크업을 해야만 했다. 대학교에서도 화장하지 않은 날은 남들이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마스크를 단단히 썼다. 심지어 과에서 제일 예쁘다는 이미지 때문에 쌩얼을 사수하느라 대학교 MT 한번 안 갔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얼빠진 채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센터를 나왔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한동안 그 장면을 잊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외모 고민만큼 우스운 게 없겠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 그 애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을까. 그동안은 세상이 내게 예쁜 여자 배역을 한 번쯤 맡겨주지 않을까 싶어 비굴하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 결과가 나와 닮은 여자애들을 하염없이 같은 자리로 데려오는 일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건 내가 바랐던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미뤄왔던 마지막 성형 후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꺼내기 싫어 부러 모르는 척하곤 했던 일까지 낱낱이 떠올리기 시작했다.

 

 

성형 수술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성형 커뮤에서 온갖 팁들을 공부했기에 예쁘다 싶은 여자들 얼굴 부위 사진들을 바리바리 챙겨갔었다. 의사는 그 많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다 걸러냈다. “이게 예쁘다고요? 이거 필러 다 녹은 코예요”, “이건 쌍액이네, 세상에 이 사람 눈꺼풀 다 늘어졌구만.” 인스타 추천 피드에 매일 보이는 인플루언서나 아이돌들의 사진도 이런 평가를 받았다. 하긴. 자를 가지고 와서 밀리미터 단위로 미의 황금비율을 말하는 압구정이었다.

 

그러나 더 기함할 만한 일은 성형 후기에도 가공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셀카와 후기에 쓸 내용까지 병원 카톡방에 보내면 늦어도 한 시간 이내에는 첨삭이 왔다. 어떤 문장은 부적절하니 지워달라는 말과 함께, 병원에서는 자체적으로 포토샵 가공한 경과 사진을 다시 보내주었다. 첨삭 받은 글과 사진 그대로 후기방에 붙여넣어야 했다. 후기만으로는 그 사람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는지 360도 바뀌었는지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성형 커뮤 후기방이야말로 거물 성형외과들의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그럼에도 예뻐지기만 하면 외모로 인한 문제가 싹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성형으로 바뀐 것은 ‘얼굴’뿐이었다. 예뻐질수록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커졌고, 공허함이 커질수록 예뻐지고 싶었다. 아직 충분히 예뻐지지 못해서 그렇다는 신호 같았다.

 

무엇보다 남의 시선을 통하지 않으면 내가 예쁜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이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다. 대학교 강의가 시작되기 15분 전에는 사범대 건물의 각층 화장실들을 모조리 돌아다녔다. 거울을 보기 위해서였다.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잘살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남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넘어서지 못할 만큼 거대해 보여서 질겁했다. 달려도 달려도 결국 그 기준을 따라잡지 못해서 괴로웠다. 사람들이 내게 예쁘다고 칭찬해 줄 때마다, 나는 그들을 붙들고서 기겁할 만한 얘기를 늘어놓는 상상을 했다. 저기요. 전 배가 고픈데 뭐가 먹고 싶은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 주저앉고 싶을 만큼 무서워지더라고요. 그런데 혹시 제가 먹토한다는 거 아세요?

 

먹고 토하는 일은 성형 이전부터 해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 두 시에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했다. 거의 중독이었다. 음식을 받기도 전에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 아빠한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나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은 음식 메뉴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욕망이었다. 성형까지 시켜줬는데도 딸이 변기통을 부여잡고 있자 아빠는 화가 나서 미치려고 했다.

 

“아니, 성형까지 시키줬드만 대체 왜 그카는데. 엄마아빠도 좀 이유를 알아야 할 거 아이가.”

내 방황의 종지부를 찍은 성형이 자신의 생각이었다는 것은 언제나 아빠의 무용담이었다. 아빠가 입버릇처럼 말해온 “정답은 성형이었다니까”라는 말도 결국 오답이 되고 말았다. 아무 말도 못하는 한편으로 억울했다. 말하자면 나도 사기당한 쪽이었다. 분명 남들이 그랬었다. 예뻐지면 인생은 저절로 편해진다고. 외모 문제는 노오력부터 하라고.

 

사는 것과 달리 먹고 토하는 일은 편안했다. 즐겁기까지 했다. 먹고 먹고 먹다가 윗배가 알처럼 부풀고 죄책감이 치밀어도 다시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아직 모든 건 돌이킬 수 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토가 더럽다고는 하지만, 내 안에 어떤 끔찍한 내용물들이 들어있는지 보고 느끼는 감각이 좋았다. 드디어 내 불행에 형체가 생긴 것 같았다. 그동안 예뻐지고 싶다는 내 고민은 모든 이들에게 사춘기 성장 과업을 덜 끝낸 사람 취급만 받아왔었다. 먹은 음식을 게워내게 된 후로는 내 문제에도 모두가 주목할 만한 심각성이 생겼다. 사람들은 한심함을 넘어 두려워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희열을 느꼈다.

 

실은 줄곧 내가 독립적인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몸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남들에 맞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 자꾸만 살을 찌우거나 먹고 토하는 식이었다. 언어가 없으니 남들의 말을 답습하고자 했다. 어떻게든 사람들 속에 편입되어 보려고, 남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나를 빚어온 것이다. 비로소 남들이 추앙하고 선망할 만한 사람이 되었다고 기뻐했을 때마저 괴리감을 느꼈다. 내가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 결정했던 것은 언제나 남들의 바람이었다.

 

나는 텅 빈 풍선이다. 누구든 손쉽게 여러 바람을 불어넣고 갈 수 있었다.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냐. 한창 좋을 나이에 뚱뚱하고 못생기게 사는 여자들 보면 안타깝더라. 평생 이 말들에 짓눌려 살았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전부 그들의 두려움이었고, 그들의 감옥이었다. 그 사람들의 공포심까지 등에 지고 살아가지 않아도 됐었다. 다들 아등바등 서로 가두고 갇히며 살고 있었다. 끊임없이 나를 불안하게 했던 창살이 사실은 딱 한 발짝만 움직이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금이었다.

 

우습게도 다 허상이다. 내 몸을 버겁게 채웠던 남들의 바람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바람 빠진 풍선이 되기 위해 나는 그 먼 길을 빙빙 돌아왔던 것 같다. 바람이 빠지며, 오히려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정교한 철창을 넘고 남들에게 거부당하는 걸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를 지나, 나를 닮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건너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먹고 책상 앞에 앉는다. 어쩐지 더 이상 수치스럽지도, 두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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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송하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2.07 늦어서 죄송합니다. 처음 써보는 방식이라 좀 헤맸습니다. ㅠㅠ
    동생 연애담은 그냥 심심해서 쓴 일기 같은 글인데, 카페에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 김에 같이 올려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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