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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봄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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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훈|작성시간26.06.17|조회수5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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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외할머니는 수화기를 들고 허공에 지도를 그려가며 답답한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이~ 글로 쭉 들어오면 된다니께 그러네에!”

어머니는 전화를 대신 건네받더니 평소보다 상냥한 목소리를 냈다.

“아~ 예예, 이 길이 맞나아~ 싶은 데서 쭈욱 들어오시면 돼요오~ 호호.”

 

새천년이니 뭐니 하며 온 세상이 번쩍이는 소리로 들썩이던 해의 유독 춥던 겨울날, 광덕 큰 호두나무 옆 ‘파란 지붕’이라 불리던 우리 집은 새로운 식구 맞이로 분주했다. 외할머니와 부모님, 형 그리고 내가 살고 있던 시골집에 딸린 작은 방에 젊은 부부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화물차를 몰던 큰외삼촌이 영영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며 비워 둔, 세를 놓기도 민망할 만큼 작고 시린 방이었다.

외할머니는 저기 어디 사촌의 친구 아들내미의 옆집에 사는, 아무튼 건너건너 아는 사람의 간곡한 부탁으로 방을 내주게 되었다고 했다. 그 부부는 이 집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이삿짐을 싣고 온 날 처음 집을 마주했던 것이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부부는 얼른 돈을 벌어 더 좋은 집으로 갈 때까지만 잘 부탁한다며 매사에 싹싹하고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부부가 대문에서 마주칠 때마다 허리를 굽신거리자, 평생 '주인집 어르신' 소리를 들어본 적 없던 외할머니의 목소리 톤이 나날이 높아졌다. 할머니는 인심 쓰듯 된장이며 호박이며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덕분에 마당엔 다른 종류의 웃음들이 얹어져 온기를 더했다. 이따금씩 마당 구석에서 비명이 들릴 때마다 온기가 숭숭 새 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비명의 출처는 마당 가장 깊숙한 구석에 있는, 우리 집의 유일한 화장실이었다. 우리 가족과 그들, 총 일곱 명의 인간이 공유해야 하는 재래식 화장실. 전구가 나가 암흑천지일 때나, 세찬 겨울바람에 나무 판자문이 덜컹거릴 때의 공포는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밤마다 들리는 그녀의 “꺄악!” 소리에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어느 날은 마당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아무 데나 시원하게 볼일을 보던 똥개 덕구를 보며, 그녀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부럽다”라고 중얼거렸다. 너무 추워서 나오려던 것조차 쏙 들어간다는 부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차마 말해주지 못했다. 이 화장실의 진짜 공포는 날이 따뜻해질 때 시작된다는 것을. 덕구도 그 무시무시한 비밀은 최대한 숨겨 주자는 듯, 타이밍 좋게 긴 똥을 뽑아내며 부부의 시선을 빼앗았다.

눈이 녹아 사라지고 나비가 날 때쯤, 그들도 눈치챘다. 봄바람에 똥내음이 실려 나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진짜는 마당 타일 바닥 틈새에 가득히 꿈틀대는 존재들이었다. 냄새는 둘째치고, 조금만 방심하면 양말과 신발을 타고 꾸물꾸물 기어오르는 구더기들은 기어코 ‘우당탕, 꺄악, 엉엉’ 소리를 내게 만들며 내 첫 이웃을 쫓아내고야 말았다.

볼일을 보려다 신발 안쪽으로 쏙 기어들어 간 구더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화장실 바닥에서 넘어진 것이다. 허술한 나무 발판이 부서지며 그녀의 맨발이 그 깊고 어두운 구덩이 속으로 쑥 내려앉았다. 그날 마당을 가득 채운 서러운 통곡 소리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났다.

 

형이 새 신발을 사는 날, 형의 헌 신발은 나의 새 신발이 되었다. 내 발에는 조금 크긴 했지만, 뒤꿈치가 짓무르도록 꽉 끼던 원래 신발보다야 훨씬 나았다. 게다가 나에게는 이 헌 신발을 물려줘야 할 동생도 없었으니, 작아진 옛 신발을 대충 구겨 신으면 무려 신발을 두 켤레나 가진 셈이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더없이 넉넉해졌다.

그 넉넉함을 누린 시간은 찰나였다. 화장실 발판 위에서 꼼지락거리다, 헐겁던 나의 새 신발이 발에서 휙 벗겨져 버린 것이다. 신발은 이내 시커먼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풍덩, 하고 아래서 둔탁하고 축축한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구덩이가 집어삼킨 내 이웃이 떠올랐다. 아차차, 남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머릿속이 아주 빠르게 돌아갔다. 신발을 빠뜨린 걸 들키면, 아버지가 긴 막대기로 그것을 건져내 대충 씻은 뒤 다시 내 발에 신길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예감이 스쳤다. 그 눅눅하고 더러운 냄새를 평생 발바닥에 묻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가만히 남은 한 짝마저 벗어 마당의 덕구에게 던져주었다. 덕구는 씹어댈 좋은 장난감이 생겨 좋고, 나는 신발을 통째로 잃어버렸다고 둘러댈 핑계가 생겨 좋았다. 덕구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었다.

덕구가 신발 한 짝을 완전히 너덜너덜하게 물어뜯어 놓았을 무렵, 우리 네 식구는 내 신발 한 짝을 영영 삼켜버린 파란 지붕 집을 떠나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시내의 월세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혼자 떠났던 큰외삼촌이 제 가족들을 주렁주렁 이끌고 돌아와 우리 네 식구를 밀어낸 탓이었다.

 

“너희는 몇 살이야?”

“나는 2학년, 형은 4학년!”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좁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형제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 넷이 우르르 달려와 물었다. 돌멩이 천지 시골길을 뛰어다니던 우리에게, 앞옆뒤로 집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 이곳은 영락없는 시내였다. 집집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 또래 친구들이 살고 있었고, 저 멀리에는 아파트들도 보였다. 파란 지붕 집과 할머니를 떠나온 서러움도 동네 아이들과 이름과 나이를 묻고 답하는 사이 조금씩 옅어져 갔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화장실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구더기도 없고, 여름이면 아래에서부터 구린내가 역류하던 재래식 화장실도 아니었다. 번쩍이는 타일 바닥에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화변기가 무려 두 칸이나 있었다. 서울로 올라온 시골 쥐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형은 락스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인상을 썼지만, 나는 이 정도면 향기라 불러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겼다.

 

물론 그 두 칸의 화장실을 세 가구, 그러니까 열두 명이 함께 쓰다 보니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몰려 곤혹스러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티를 내려고 일부러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이웃집 아저씨들은 크흠 하며 무거운 헛기침 소리를 내뱉는 노력을 했지만, 사람이란 무릇 방심하기 마련이다. 급한 마음에 문을 열어젖혔다가 전혀 보고 싶지 않았던 친구 궁둥이를 마주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세 가구 모두 남자아이들뿐이었던 탓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뒤쪽 산길에 모여 소변을 해결하며 동네 평화에 기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뒷집이 이사를 나갔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화장실 사용이 조금 편해진 것에 꽤 큰 만족을 느꼈다. 소변도 화장실에서 보는 호사를 누리기를 몇 개월, 마당에 낯선 차가 들어섰다.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여자아이 둘이 있었다. 한 명은 내 동갑이었고, 다른 한 명은 형과 동갑이었다.

평화를 지키던 수비대는 합의 없이 해체됐다. 낯설게도 타일 바닥을 때리는 오줌발 소리, 지독한 가스 소리, 그리고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은 배설의 모든 파열음이 얇은 나무 문을 넘어 마당 전체로 번지는 것만 같았다. 아랫배가 묵직해져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가다가도, 마당 평상에 앉아 공기놀이를 하던 동갑내기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방금 전까지 배를 짓누르던 신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애들 역시 화장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문밖을 서성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마당에서 마주칠 때면 괜히 다른 곳을 보곤 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숨소리를 죽여가며 버티던 그 아침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모른 척하는 재주만 늘어갔다. 결국 아침마다 눈치를 보느니 차라리 학교에 일찍 가는 쪽을 택했다. 그 루틴이 몸에 익을 즈음, 우리 가족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방이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기묘한 인연이었다. 새로 이사할 집은 세 가구가 붙어 살던 바로 그 집에서 우리보다 먼저 살다가 나간 이들이 새로 구했던 집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가족이 남긴 발자국을 한 발짝 늦게 따라가는 셈이었다. 월세는 조금 더 올랐고 난방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지만, 형과 내가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방을 물려준 그 가족이 마침내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 갔다는 소식은, 언젠가 우리도 저 높은 아파트로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맞이한, 온전히 우리 가족만의 화장실이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세탁기와 변기가 바짝 붙어 있어 볼일을 볼 때면 세탁기 통과 민망하게 마주 앉아야 하는 수준이었지만, 겨울이면 살얼음이 얼던 보일러실 수도꼭지 밑에서 대야에 물을 받아 덜덜 떨며 씻던 시절에 비하면 그것조차 호사였다. 양변기라는 의자에 앉아 볼일을 보는 일이 이토록 편안할 줄은 몰랐다. 더 이상 타인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좁고 눅눅한 욕실이 딸린 집. 더 바랄 게 없는 집이라고 생각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어느 저녁. 문틈 너머로 낮게 가라앉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주인집에서 갑자기 방을 빼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안타깝게도 앞선 세입자의 발자국과는 겨우 두 걸음만 겹치고 끝나게 됐다.

그날 밤, 괜히 화장실 문을 한 번 더 열어 보았다. 곰팡이 냄새, 비좁은 공간, 금이 간 타일……. 자세히 보니 영 별로인 것투성이였다. 때마침 벽면을 타고 돈벌레 한 마리가 징그럽게 기어갔다. ‘거 봐, 역시 별로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안도하려던 찰나, 화장실에서 살 거냐며 빨리 나오라는 형의 성화가 들려왔다. 나는 그제야 가까스로 변기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부동산을 돌았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은 놀라울 만큼 비좁고 기이했다. 나는 집을 보러 갈 때마다 가장 먼저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어떤 집은 화장실이 세모꼴이라 변기에 똑바로 앉을 수도 없었고, 어떤 집은 문을 닫으면 무릎이 문짝에 닿을 만큼 좁았다. 촌스러운 연두색 타일로 뒤덮인 화장실도 있었고, 기분 나쁜 장미색 변기가 놓인 집도 있었다. 저마다의 취향과 형편이 찐득하게 배어 있는 방들을 전전하다가, 우리는 결국 ‘구멍 난 화장실’이 있는 집의 대문을 열게 되었다.

 

말 그대로 구멍이 나 있었다. 화장실 합판 문 한가운데에, 누군가 잔뜩 분노를 머금고 주먹으로 내리친 듯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기괴한 흔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방 문에도 거친 주먹 자국이 깊게 패어 있었고, 작은방 문짝은 발로 찬 듯 아랫부분이 부서지듯 조각나 있었다. 집 전체가 누군가의 폭력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윗집에는 이 집주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원래는 1층과 2층을 통째로 다 쓰던 집인데, 무슨 사정이 생겼는지 이제는 2층만 쓸 거라고 했다. 집을 보여주던 주인집 남자는 우리에게 “서로 편히 지내자”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지만, 계단을 올라가는 그의 등 뒤로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은 이사 온 첫날 밤부터 현실이 되었다. 밤마다 얇은 시멘트 천장을 뚫고 둔탁한 소음이 우리 가족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쿵, 쿵, 무언가 바닥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와 함께 찢어지는 듯한 고함과 악에 받친 비명이 뒤엉켜 내려왔다. 윗집 주인의 “편히 지내자”라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소음에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면 우리 가족은 모두 개운치 못한 퀭한 얼굴로 휑한 마당을 가로질렀다. 문득문득 천장을 올려다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며 가며 마당에서 마주치는 주인 부부의 사람 좋은 웃음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그들의 말은 좋은 밤은 되지 못할 것처럼 들렸고, 상추 같은 걸 나눠줘도 이상하게 고맙지가 않았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퇴근길에 꼭 초록색 소주병을 검은 봉지에 담아 들어왔다. 쩔그렁거리는 소리와 젓가락이 식탁에 닿는 소리는 나를 한껏 움츠리게 만들었다. 술기운이 오르면 아버지의 목소리도 천장의 소음처럼 낮고 둔탁하게 으르렁거렸다. 돈 문제로 시작된 어머니와의 대화는 금세 거친 다툼으로 번졌고, 문 너머로 식기가 부딪치거나 벽을 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고요하게 잠든 척을 해보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조용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윗집의 고함 소리와 안방의 고함소리가 겹쳐 들리던 밤이면, 집 안의 모든 문짝이 언젠가 주먹에 맞아 구멍이 날 준비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살짝 열려 있던 방문을 몰래 꼬옥 닫고, 밤 동안 저 문이 열리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화장실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버지는 주먹으로 뚫린 그 기괴한 문구멍 안으로 자신의 거친 손을 슬그머니 밀어 넣어 보았다. 마치 제 손에 딱 맞는 장갑을 찾았다는 듯이, 아버지는 구멍 속에 손을 넣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문짝 너머 화장실 안쪽의 짙은 어둠이 아버지의 손목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내, 오래전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던 신발 한 짝의 감각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결국 인기척도 내지 못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 뒤에서, 아버지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윗집의 비명과 우리 안방의 날 선 다툼이 유독 지독하게 엉겨 붙어 온 집안을 흔들던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던 아버지는 전날 밤의 술 냄새를 풍기며 붉어진 눈으로 우리 형제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갈라진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이사 가자.”

 

돈이 어디서 났는지, 어떤 무리를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화장실이 두 개였다. 세 가구가 변기 두 칸을 나눠 쓰며 눈치를 보던 게 엊그제 같았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문짝마다 주먹 구멍이 뚫린 집에서 천장을 울리는 고함에 귀를 막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온전히 우리 가족만을 위한 변기가 두 개나 생긴 것이다.

사방이 눅눅했고, 타일 틈새마다 거뭇거뭇한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밤이면 어딘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 집은 깨끗해 보였다.

아버지는 이사 온 날부터 퇴근하기가 무섭게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붙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락스 한 통을 바닥에 통째로 들이붓고 솔질을 시작했다.

치익-

슥삭-

슥삭-

거친 솔이 시멘트와 타일 틈새를 긁어내는 소리가 밤마다 화장실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새하얗게 드러나는 타일을 보며 아이처럼 웃었다.

“화장실이 두 개다, 두 개. 아무 때나 맘 편히 싸라.”

그 말이 끝나고 다시 솔질 소리가 이어졌다.

“아부지, 대충 하고 나와요. 눈 매워.”

문틈으로 말을 건넸지만, 아버지는 대답 대신 더 세게 팔을 움직였다.

치익-

슥삭-

슥삭-

독한 락스 냄새가 집 안 가득 번졌다. 나는 화장실 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그 굽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미 새하얗게 변한 타일 위로, 솔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본 제품은 99.9%의 유해 세균을 제거하고 얼룩과 냄새를 세척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 깊이 스며든 오염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수 있으니 사용 시 주의하십시오.

― ○○락스 제품 사용 설명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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