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타 사건.
- “그래, 솔직히 이제 니 불러주는 곳도 없잖아. 맞제? 그럼 공부나 해야지 뭐 어쩌겠노.”
- 인간관계에 심드렁해져서 자발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은 내 쪽이었다. 그것을 ‘불러주는 곳도 없다’고 표현하는 것은 연애로 치면 찬 쪽과 차인 쪽을 착각한 무례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런 말이 곧장 튀어나왔다는 건 아빠가 평소 딸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드러내는 반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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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나 연인이 나의 증상이듯, 부모나 자식도 주체의 증상일 때가 많습니다. (부부관계에서든 부모 자식 관계에서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불러주는 곳도 없는 존재’로 무시하듯 규정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에게 끊임없이 회귀하는 -‘불러주는 곳이 없던 나’라는- 고통스런 기억 때문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부모들이 ‘나는 그렇게 살았어도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이런 말을 수만 번 반복하곤 합니다. 자신이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자식이 대리로 해결해 주기를, 곧 자식에게 자신의 상처를 떠맡겨 위임하듯, 만회 혹은 복수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일일 거예요.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저기’서 불러주기만을 고대하느라 ‘여기’서 간절하게 부르는 소리까지 듣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요. 결국 아무 데서도 부름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상황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럴 때 자식의 위치라면 그런 부모의 말에 억압적으로 규정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보편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부모의 결여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신도 나 못지 않게 취약하거나, 구멍 나 있거나, 둘 중 하나로군. 하지만 당신의 구멍을 내가 대신 메워주길 바라는 건 부당한 일이지.’ 이런 대응이 중요한 이유는 상대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죄책감이나 분노, 미움에 갇히지 않으면서 상대의 문제를 상대 자신이 해결하도록 기다리는 여유까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거리두기가 단번에 이루어지는 건 아닐 거예요. 말하는 사람의 (위계적) 위치가 갖는 힘 때문이겠죠. 이럴 때 중요한 건 반복입니다. 나를 주눅들게 하거나 화나게 했던 말이 반복된 만큼 비례해서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말, 혹은 글을 반복하는 일입니다. 꼭 독자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일기처럼 혼자 쓰고 혼자 읽더라도 내가 수없이 들었던 말을 ‘글로’ 반복해서 쓰는 일은 중차대합니다. ‘언표된 주체와 언표하는 주체’의 거리두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었던 ‘나에 대해 쓰는 나’는, 이미 ‘들으면서 규정되던 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독자를 전제로 한 글이 더 효과적이긴 합니다. 독자의 눈을 경유하는 과정을 통해 한 번 더 거리를 둘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런 반복을 통해 이미 주어졌던 목표를 넘어서는, 다른 방향의 목표를 향한 새로운 말과 글이 생산되기도 하겠지요.
2. 위성사건.
이후 ‘굴욕’이라 표현된 사건들은 모두 위의 메타사건에 종속되어 있는 듯합니다. 상징계에서 누락되는 경험, 무시(無視)당하는 일, 곧 없는 존재로 취급되는 일이기 때문이겠죠. 역설적이게도 이런 경험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현실이 요구하는 눈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건, 그 획일적인 잣대로 다 잴 수 없는 잉여가 내 안에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당신(들)이 나를 무엇으로 규정하든 나는 그것보다 남는 존재다, 이런 의식은 내게 고착된 질서의 경계를 넘나들 자유를 선사합니다. 자신이 정상적인 눈금 안에 안착해 있다고 안심하는 이들이 두려워하는 귀신/괴물/불편한/낯선/신비로운/매혹하는 자들은 다른 세계의 침입자가 아니라 하나의 잣대를 가진 빈곤한 공동체가 끝내 처리하지 못한 잉여가 되돌아온 형상입니다. 여기서 바로 그 빈약한 질서를 위협하면서 정상성에 균열을 내는 존재가 되는 일은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향유의 길일 거예요. 어떤 정체성의 환상에 포획되지도 않고, 그 환상을 배척하지도 않으면서, 기꺼이 상대화된 환상을 다룰 수 있게 되니까요.
3. 진정한 사건.
- ‘이 쓸모없는 놈. 넌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다. 영웅이 아니다. 예쁜 여자가 아니다. 인생의 위기 하나 없이 혼자 몸져누운 놈이다. 정신과 의사들도 한심해할 놈이다.’
- ‘소란을 더 큰 자기혐오로 덮어버리거나, 게임과 유튜브를 마취제 삼아 머릿속을 둔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 ‘너는 죄인이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놈이다. 어디가 새는지 모를 여름철 방충망 같은 놈이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네 자신을 구해줄 능력도 없는 놈이다.’
- ‘그 모든 게 다른 누군가의 사주 없이 나 스스로 뿜어내는 악의라는 점에서 더더욱. 무언가 억울했다. 당최 무엇이 억울한지 설명할 길이 없어 억울했다.’
- ‘모르겠다. 무언가 아주 커다란 것을, 울화통이 치밀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중요한 것을 잃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종일 가슴을 난도질하는 듯한 상실감이 치민다. 더는 되고 싶은 것도 기대되는 것도 없는데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뜨악스럽기만 하다. 생활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긍심도 없다. 이 모든 하루하루가 사전 동의 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저 위의 보이지 않는 배심원들에게 호소하듯이 살고 있다.’
- ‘아니다. 내가 인생에 걸고 있는 집착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사실은 자존심이 상해서 복수하고 싶은 것이다. 나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으로 취급하는 세상에 단 1인분의 몫도 해주지 않음으로써 빈자리를 느끼게 하고 싶다. 정말로 하등 쓸모없는 짐짝이 되어서 모두를 짓눌러버리고 싶다.’
- ‘원래는 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까?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예쁜 여자가 되고, 대단한 위인이 되고 싶었다. 거의 매번 제대로 닿지 못하고 헐떡거려야 했지만, 이 목표라는 것들은 언제나 망망대해의 희미한 등불이 되어주었다.’
- ‘이상하게도, 눈물겨운 노력 뒤에는 항상 설명하기 힘든 기행이 따라붙었다. 이를테면 간신히 쌓아 올린 것들을 어느날 난데없이 부숴버리는 버릇 같은 것. 다이어트로 40kg을 뺐다가도 사람들의 칭찬이 최고조에 달할 때 닥치는 대로 먹어서 살을 찌웠고, 고3 때는 죄책감을 온몸으로 견디며 아예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혔다.’
- ‘공든 탑을 또 쌓고 또 쌓고 또 쌓아도 처절하게 실패했다. 어떻게든 세상에 어울려보려고 분투할 때마다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굴욕을 줬다. 대입도, 인간관계도, 다이어트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일도 전부.’
- ‘풋풋한 고백 앞에서 이상하게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벌거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많은 것이 그대로다. 사실 살이 덜 빠졌다. 아니, 늘어지고 말았다. 하필 성형만 대박 나서 꼭 사기꾼이 된 느낌이었다.’
- ‘나는 당신이 아는 그 여자가 아니라고. 단 한 번도 그 여자가 될 수 없었다고.’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빛나는 눈동자를 하고 미래를 고대하던 어린 시절의 나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 기대를 처참히 밟아버리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 ‘본능적인 자기연민이 올라왔다. 볼품없이 주저앉은 나를 달래고 일으켜 세우기 위해 허황된 미래를 약속해 왔었다. 언젠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 이런 인간도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란 듯이 증명하고 싶었다. 쭈그러든 만큼 부풀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던 나날이었다.’
- ‘그 많은 다짐 끝에 된 것이 겨우 지잡대 출신의 요요가 온 평범한 여자라니. 허물어지는 신화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 ‘방금 전 꺼낸 생각이 되돌아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변호인도 검사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안쪽 어딘가에서 꺼진 줄 알았던 무언가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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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사건을 가뿐하게 들어 올려 메다꽂을 수 있는 진짜 사건은 하연님이 자신의 힘으로(언어로) 이런 문장들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에 드러난 문제의 심각성에도 독자로서 별로 걱정이 안 됩니다. 안팎에서 벌어졌던 굴욕, 모멸, 분열과 싸움, 기대와 회의, 가상한 노력과 그 노력이 보상받을 즈음 저지르곤 했던 이해받을 수 없는 기행, 이 모든 것에 대해 이렇게 진솔하게 묘사했다는 건, 집착이 아닌 욕망을 스스로 발명하는 시간을 누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내가 얻고 싶은 자유, 내가 받고 싶은 보상은 내가 발명한다, 이런 긍지와 자부심으로 –텀이 좀 길더라도- 계속 써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선 탁월한 픽션이 창조될 것 같아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반갑게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