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리
이두희
유월의 셋째 날이다. 하루 만에 초봄과 한여름을 오가는 변덕스런 날씨에다 시끄럽고 혼란스럽던 오월의 날들이 가고 유월의 시작은 비교적 차분하다. 좌우로 갈라져 싸우던 말의 전쟁이 끝나고 이제 곧 누가 더 자극적인 말을 잘했는지 평가가 내려질 참이다. 하나둘 투표에 나선 사람들이 지나는 생활지원센터 앞길엔 보이지 않는 팽팽함이 흐르고 있다. 아침부터 밖으로 나가자는 손녀의 등쌀에 못 이겨 어린이 놀이터에 엉거주춤 서 있다. 그네를 타는 두 돌박이의 티 없는 웃음소리가 정중동의 분위기에 한 줄기 바람처럼 흘러든다.
그때였다. 문득 피아노의 뚱땅거리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321동 옆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는 장소에 눈길이 가 멈춘다. 그곳엔 거실 한편을 당당하게 차지했음 직한 소파와 거실 탁자, 아직 생생하게 보이는 운동기구 세트가 보인다. 집안 이곳저곳을 자리 잡고 있던 가구들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나 앉은 것 같다. 간단치 않은 사연이 있음 직하지만 굳이 그 커튼 속을 들추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게 버려진 물건들 틈에서 팔순이 가까워 보이는 할머니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전 그 옆을 지나올 때 버려진 피아노를 닦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다소 의아했지만 내 시선을 오래 불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아파트 숲 사이에 울려 퍼지는 맑은 소리를 듣고 보니 할머니의 손걸레와 피아노 소리가 퍼즐처럼 맞추어진다.
몇 차례 뚱땅거리며 조율을 끝낸 할머니가 연주한 첫 곡은 동요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원곡보다 좀 느린 템포지만 화음이 잘 잡힌 연주다. 다소 수더분하게 보이는 할머니에게서 금방 떠올린 전직은 학교 선생님이다. 한평생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국어, 산수, 사회, 그리고 음악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자상한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중간 두어 군데에서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한 소절 되돌아가서 다시 연주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손과 귀에 익숙하게 배어 있었는지 악보도 없이 유연하게 나아간다. 약간의 쉼도 없이 곧바로 이어진 두 번째 곡은 유관순 노리다.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어렸을 적 누나와 친구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 할 때 부르던 노래다. 양쪽에 기둥처럼 두 명이 서면 그 중간에 끝이 하나로 묵인 고무줄이 걸린다. 처음엔 고무줄을 발목에 걸었다가 1절을 잘 끝내면 고무줄은 무를 근처로 올라가고 그다음은 엉덩이와 허리춤, 나중에는 겨드랑이까지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팔짝팔짝 뛰며 고무줄을 발목에 걸었다가 넘어가야 하는데 박자에 맞추어 넘지 못하면 술래가 바친다. 피아노 할머니는 그 옛날의 고무줄놀이 추억을 더듬고 있나 보다. 어쩌면 비교적 단순한 곡이어서 쉽게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번엔 세 번째 곡이다. '쉽고 간단한 동요겠지'라는 예상과 달리 이어진 곡의 전주는 원줄기를 잡아내기 어렵다. 아마도 다음 곡을 정하지 못해서 손가락 가는 대로 두드리고 있거나 다음 곡을 향한 뜸을 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실마리를 찾아 제자리를 잡았다 싶은데 그 곡명을 떠올릴 수가 없다. 어찌 들으면 익숙한 곡 같기도 하지만 복잡한 화음이 뒤섞여 갈피를 잡기 어렵다. 마침내 전주가 끝나고 본론이 시작되어서야 알아차리게 된 그 곡은 애국가였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아, 이건 궤도를 한참 벗어난 곡이다. 동요를 들려주다가 갑자기 국민의례에 나오는 애국가라니... 할머니는 무슨 상상을 하면서 지금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걸까?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아니, 이제 막 투표소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레퍼토리가 다해서 마지막 곡으로 떠오른 곡일까? 아무리 레퍼토리가 다했다고 하더라도 이 곡이 연주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고 차렷 자세를 갖추게 되는데 왜 지금 이 곡일까? 아무래도 할머니의 깊은 속을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나라의 중대사가 진행되고 있는 투표소 앞에서 울려 펴지는 애국가여서 '나라를 생각하자'는 뜻으로 해석하는 건 나의 아전인수식 편견일 수도 있겠다.
할머니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든다. 투표를 마친 젊은 부부와 대어섯 살 여자아이 가족도 있고 아파트 관리실 하늘색 제복의 할아버지 두 사람도 발걸음을 멈추고 박수와 칭찬을 보낸다. 손녀를 데리고 가까이 다가갔다. 마르고 거친 노인의 손이 분명한데도 그 움직임은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전직 유명 피아니스트는 아니려니 해도 오랜 세월 피아노와 함께 한 노년의 원숙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주변에 흩어져 있는 거실 가구들과 피아노의 주인인 것 같다. 남았지만 자신의 분신 같은 피아노를 떠나보내려니 못내 아쉬움이 남아 이 아침에 이별 의식을 치르고 있는가 보다.
애국가가 마지막 곡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새로 이어진 곡은 <그리운 금강산>이다. 모여든 사람들의 격려와 고조된 분위기를 의식하였는지 대중가요도 선보인다. 가수 이선희가 부른 <J에게>다. 아파트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사람도 생기고 놀이터 벤치에서 넋 놓고 듣는 사람도 있다.
오늘 밤에 내려질 투표의 결론이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그리 중차대한 일일까란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큰 강물과 세월은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다가도 다시 제 갈 길을 찾아 묵묵히 흐른다. 아픈 상처가 있다면 스스로 치유하는 힘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손녀와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음이 한층 가볍다.
-수필미학 49호, 2025 겨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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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피아노 소리가 작품의 핵심 장치로 활용된 객관적 상관물이다. 팔순에 가까운 할머니가 재활용품 수거장에 버려진 피아노 앞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유관순’, ‘애국가’, ‘그리운 금강산’ 등을 연주한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날에 아파트 숲 사이로 울려 퍼지는 피아노곡들은 정치적 대립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오직 나라를 생각하자는 함의를 지닌다. 정치적 소음이 음악으로, 사회적 분열이 조화로운 화음으로 변주된다. 잠시나마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고 사회적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이 된다. 그래서 피아노 소리는 혼란한 정국 속에서 느끼고 바라는 정서를 응축하고 있는 상징이다.
-여세주, <객관적 상관물의 문학적 구조화 원리>(수필미학 50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