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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 이야기

시골 촌놈의 이야기

작성자정수화|작성시간26.06.19|조회수93 목록 댓글 2

나는 1955년 음력 3월 27일
충남 서천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두 분 형의 도움으로 중학교
교복을 입을 수 있었던 난
무척이나 행복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등굣길에서 같이 했던
친구들 중 몇몇은 중학교로
가는 등굣길에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면목동
에서 고철장사로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점으로
꽤 많은 재산을 모았다는
친구들...

난 열심히 농사일도 도왔고
큰 형은 서울에서 학비
등으로 보태주시어
중간에 교복을 벗지 않고
3년을 다닐 수 있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과 후 꼴망테 둘러메고
소 먹이러 둑으로 산으로
지금도 생생한 기억

풀 베다가 낫에 검지손가락이
크게 베여 피 흘리는
손가락을 쑥으로 감싸서
움켜잡고 산비탈에 누워
하늘을 보며, 울먹인다

그 풀망테기 속엔 낫만
들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의 오기와 자존심 그리그
나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는 한 끄나풀의 희망도
항상 같이 담고 있었다.

망태기 속엔 늘 책과 공책을
담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도
하고 독서도 했다.
그래~ 좋다~!!.

수학은 40점 만점에
친구들 중 서너 명은 거의
만점을 받았고 난 잘해야
30 점 남짓이었다

그들에 뒤지지 않으려면
다른 과목에서 난 거의
만점을 받아야 했었고
친구들이 2~3개 틀려줘야
했다

국어. 국사. 세계사 등에서
유일하게 거의 만점을
받은 것은 나뿐이었다.
그러기에 전교에서 5위
밖으로 밀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서울 큰 형님이
틈틈이 보내주신 수많은
책들을 소 먹이러 가서
풀 한망테기 베어놓고는
한국 문학 세계문학 대하
역사소설...

하루에도 수없이
재미나게 읽었었다.
그때 마구잡이로 수 없이
읽었던 책들이 내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는 없다.

이런 오기와 자존심이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고등학교에까지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진학한 고등학교는 인천의
송림동에 위치한 고등학교
에 진학했다
아마 공부는 좀 해던 모양이다
인천으로 유학까지 온 서천
촌놈 70년도 겨울에 상경
이듬해 71년도 3월에 입학

고등학를 졸업하던 해 74년
6월 1일 해병대 271기로 입대 31개월 간 복무를 마치고 76년 12월 말 영광스러운 빨강명찰 오른쪽 가슴에 달고 왼쪽에는
금빛 정사각형 병장계급장을 가슴에 달고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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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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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영복 | 작성시간 26.06.19 쑤화야
    내도 막내다(4남2녀)
    글구
    55.03.21. 이틀빠른 응아다
    앞으로 행님이라고 햐
    서천은 내게 좋은 추억속 지명이다
    형님이 춘장대해수욕장 앞 팬션을 20년간 운영해서
    자주갔던곳 지금은 다 정리하고
    세종시에서 살고있지
  • 답댓글 작성자정수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9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일대가 춘장대 해수욕장 초딩 때 춘장대 동백정으로 소풍다니던 곳 비인면에서 약 4000 미터 우리 아들내미도 세종시 나성동에서 아픈 사람들 주사 놔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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