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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김용의 무협 2003 천룡팔부 (mea1000님, 저도 낍시다^^;)

작성자원화랑|작성시간04.08.30|조회수1,535 목록 댓글 3
(각 그림에 화살표를 갖다 대시면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제일 위에 있는 등장 인물 소개 그림은 아래 출처에서 옮겨 온 것이고 글 중간 중간 삽입된 그림들(천룡팔부를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 2003 대만드라마 <천룡팔부>에서 영상 캡쳐)은 제가 편집한 것입니다. 다만, 글만은 이 글을 쓰신 분의 내용이 훌륭하여 그대로 옮겼음을 밝혀 놓습니다.)

* 그림 출처 1 : http://ent.sina.com.cn/download/photo/tlbb/1.html
* 그림 출처 2 : http://muhupin.com.ne.kr/chunyoung-1.htm

* 글 출처 : http://www.newmurim.com/newmurim/main1-1/main400-20.htm

소봉 - 개방방주, 요나라의 남원대왕, 허죽과 단예의 의형제 허죽 - 소림제자, 영취궁의 주인, 소요파의 장문인, 현자방장과 섭이랑의 아들 단예 - 대리국 진남왕의 세자, 소봉과 허죽의 의형제 단정순 - 대리국 황태제 진남왕 보국대장군, 곳곳에 정을 남겨 사건의 불씨를 제공한다. 도백봉 - 진남왕비, 단예의 어머니, 연달아 새로운 정인을 만드는 단정순을 원망하여 홧김에 보리수 밑 거지를 상대로 하룻밤 외도를 한 후 단예를 낳는다. 감보보 - 단정순의 애인 종만구 - 감보보의 남편, 대리단씨를 혐오한다.
종영 - 종만구와 감보보의 딸, 실은 단정순의 사생아 즉 단예의 누이, 단예를 좋아한다. 진홍면 - 단정순의 애인 목완청 - 진홍면과 단정순의 딸, 단예의 누이, 단예를 깊이 사모하나 친남매간임을 알고 절망한다. 원성죽 - 단정순의 애인 아주 - 아자의 언니, 단정순과 원성죽의 딸, 소봉과 결혼을 약속하나 아버지를 대신하여 소봉에게 죽임 당하는 비극적인 여인 아자 - 아주의 동생, 단정순과 원성죽의 딸, 성질이 못됐지만 소봉을 깊이 사랑한다. 왕부인 - 단정순의 애인
왕어언 - 왕부인과 단정순의 딸, 단예의 누이, 모용복이 자기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자 단예의 깊은 사랑에 마음을 돌린다. 모용복 - 망한 연나라의 후손으로 오로지 연의 부흥만을 생각한다. 아벽 - 청향수사의 시녀 포부동 - 모용복의 가신, 모용복의 그릇된 행동을 지적하다가 급기야 죽임 당한다. 소원산 - 거란인, 소봉의 아버지, 절벽에서 살아남아 원수들을 하나씩 죽인다. 소봉의 어머니와 어린 소봉 현자대사 - 소림사의 방장
단연경 - 대리국의 연경태자, 사대악인 중 첫째, 단예의 친아버지, 황위를 되찾고자 온갖 못된 짓을 한다. 남해악신 - 사대악인 중 셋째, 단예를 제자로 삼으려 했으나 잘못하여 단예의 제자가 된다. 야율홍기 - 요나라의 황제, 소봉의 의형제, 소봉에게 송나라 침략을 명령한다. 백세경 - 개방의 장로, 마부인과 밀월관계에 있었으나 끝내 죽임 당한다. 구마지 - 서역 승려, 대리국 천룡사에서 싸움을 벌여 단예가 중원 무림에 들어가게 하는 장본인 유탄지 - 취현장 장주의 아들,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소봉을 죽이려 하나 아자를 깊이 사랑한다. 여진족장 - 아자가 깊은 상처를 입고 소봉을 갈 곳이 없을 때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서하공주 몽고 - 허죽의 부인, 허죽을 찾기 위해 무림 고수들을 서하 황궁으로 초대하여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정춘추 - 성숙노괴

<<천룡팔부>>라고 제목을 붙인 이 소설은 북송 때 운남 대리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대리국은 불교 국가로 황제가 모두 불교를 숭상하여 종종 왕위를 내버리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중국 역사상 자못 기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대리국의 황제 중에서 성덕제, 효덕제, 보정제, 선인제, 정렴제, 신종 등은 모두 왕위를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남제 단황야도 바로 대리국의 황제였다.

<<천룡팔부>>의 연대는 <<사조영웅전>>보다 앞선다. 본서의 이야기는 북송 철종 년간 원우, 소성이라는 연호가 쓰일 무렵, 즉 1094년을 전후하여 발생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천룡팔부"란, 모두 "비인(非人)"으로 사람과 같은 형상을 하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사람이 아닌 중생으로, 여덟 종류의 귀신들을 말하고 있으니, 즉 천, 용, 야차, 건달파,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호라가인데 그 중 "천"과 "용"이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천룡팔부"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천룡팔부"는 대체 어떤 인물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저 막연히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천"은 천신이니, 단정순의 부인이자 단예의 어머니인 도백봉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녀는 본좌를 좋아하지 않았다. "용"은 천산동모일 것이다. 그녀는 영취산에 살고, 또 어린애의 몸을 지닌 늙은이였으니까. 또 "야차"는 "수라도" 진홍면을 가리키는 것 같고, "건달파"는 왕부인(꽃 기르기를 좋아하므로)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아수라"는 "소약차" 감보보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며(남자는 아주 추하고 여자는 아주 아름다우니까), "가루라"는 "악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섭이랑일 것이요(매일 어린애 한 명씩을 잡아 먹었으므로), "긴나라"는 원성죽을 가리키는 것 같고(가무에 능하므로), "마호가라"는 강민을 가리키는(사람 몸에 뱀 머리를 하고 있으므로) 것 같다.

처음 보면, 이 <<천룡팔부>>는 정말 인물이 많고, 두서가 얽혀 있으며 스케일이 웅대하고 배경이 복잡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한다. 게다가 명쾌하게 설명할 방법도 없다. 소설의 주인공조차 불명확한데 어떻게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사실, 이 소설에 명확한 주인공이 있기는 있는데, 그저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뿐이다. 주인공은 결의 형제를 맺은 단예, 소봉, 허죽 세 사람이다.

우선 이 소설의 구조와 그 내용을 살펴 보자. 소설의 제 1권에서부터 제2권 상반부에서는 대리국의 단예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靑衫磊落險峰行.
2. 玉璧月華明.
3. 馬疾香幽.
4. 崖高人遠.
5. 微步穀紋生.
6. 誰家弟子誰家院.
7. 無計悔多情.
8. 虎嘯龍吟.
9. 換巢鸞鳳.
10. 劍氣碧烟橫.
11. 向來癡.
12. 從此醉.
13. 水謝聽香,指點群豪戱.
14. 劇飮千杯男兒事.

술집에서의 첫 만남 술집에서의 대좌

술집에서 천 잔의 술을 겨루다 결의 제의 제14회 <<천잔의 술을 통음하는 남자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더이상 단예 한 사람이 아니며, 개방의 방주인 교봉(소봉)이 등장한다. 그들 둘은 강남의 술집에서 만나는데, 재미있는 점은 서로 상대방을 모용복으로 생각했었다는 점이다. 당시 "북쪽에는 교봉이 있고, 남쪽에는 모용이 있다(북교봉, 남모용)"는 말이 널리 유포될 만큼 교봉과 모용복은 그 이름을 무림계에 날리고 있었다.

술집에서 나와 한바탕 겨룬 후 거닐며 다정히 얘기하는 교봉과 단예 의형제 맺은 후의 담소...흐음...맺기 전인 것 같기도 하고...^^;

맹세의 절 의형제 맺는 교봉과 단예

단예와 교봉은 결의 형제를 맺게 되고 이후의 목차에서는 교봉의 일을 주로 쓰게 된다.

15. 杏子林中, 商略平生義.
16. 昔時因.
17. 今日意.
18. 胡漢恩仇,須傾英雄淚.
19. 雖萬千人吾往矣.
20. 消立雁門,絶壁無餘字.
21. 千里茫茫若夢.
22. 雙眸燦燦如星.
23. 塞上牛羊空許約.
24. 燭畔髮雲有舊盟.
25. 莽蒼踏雪行.
26. 赤手屠熊博虎.
27. 金戈蕩寇獒兵.
28. 草木殘生鎬鑄鐵.

결의 후 기뻐하는 두 사람위의 목차는 모두 주로 교봉에 대해 쓰고 있다. 제28회에서는 유탄지(철두인)와 성숙노괴 정춘추, 그리고 그 사형인 총변선생(농아노인) 소성하를 삽입시켰고, 제29회와 30회 등에서는 소설의 세번째 주인공인 허죽(허죽자)를 이끌어 내고 있다.

소설의 제4권은 전부 허죽에 대한 이야기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31. 輸瀛成敗,又爭由人算.
32. 且自逍遙沒誰管.
33. 奈天昏地暗, 斗轉星移.
34. 風驟緊,漂渺峰頭雲亂.
35. 紅顔强指老,刹那芳華.
36. 夢裏眞眞語眞幻.
37. 同一笑,到頭萬事俱空.
38. 胡舒醉,情長計短.
39. 解不了,名疆系嗔貪.
40. 却試問,幾時把癡心斷.

이처럼 제4권은 오로지 허죽에 대한 이야기만을 쓰고 있다. 그 가운데 삽입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제5권은 소봉과 허죽, 단예 세 주인공이 처음으로 만나 소림사에서 일대 격전을 벌이고, 또 전대의 인연을 밝혀, 은원 관계를 청산하는 내용이다. 그 이후부터 세 사람은 함께 북쪽의 서하국으로 가는데 그 결과 뜻밖에도 허죽은 부마가 된다. 또 단예는 남하하여 아버지를 구하려고 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그의 애인들(단예의 어머니까지 포함하여)의 죽음을 막을 수가 없었고, 또 자신의 친아버지가 원래 사대악인의 두목인 단연경임을 알게 된다.

안문관에 진격한 야율홍기 간절하게 야율홍기에게 만나 주기를 청하는 소봉

마지막 몇 회에서는 또 절세 영웅인 소봉이 요나라 왕이 송나라를 침략 못하도록 막고 목숨을 버리게 되어 온 천하가 그를 애도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쓰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제5권은 "대단원"이라 말할 수 있는데 세 주인공이 각각 똑같은 분량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이 제5권 중에서는 모든 은원 관계와, 얽히고 섥혔던 정이 모두 하나 하나 끝맺음 된다. 그리고 그 최후의 결과로 사람들은 극도로 놀라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소설 <<천룡팔부>>는 단예, 소봉, 허죽이라는 세 주인공과 그들의 이야기를 서술한 것 외에 다른 인사(人事)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이러한 "다른 인사(人事)"가 각자 독립적이고, 서로 조금의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이 세 명의 주인공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최소한 그 중의 한 사람과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단예, 소봉, 허죽 세 사람은 소설 <<천룡팔부>>의 주인공이자 서사의 중심 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소설 속의 다른 인사(人事)의 구조의 중심 축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하나 하나 살펴보자.

단예, 소봉, 허죽 세 사람 외에 <<천룡팔부>>에 나오는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모용복과 "고소모용가"의 영웅 호걸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으나, 단예와 소봉과 지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모용복의 고모는 바로 단예의 아버지인 단정순의 애인이고, 모용복을 끊임없이 연모하는 왕부인의 딸 왕어언은 바로 단예가 넋을 빼놓고 사랑하는 여인이다.

단예는 왕어언을 한번 본 후에 기회만 있으면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그리하여 모용복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왕어언이 있게 되고, 왕어언이 있는 곳이면 대체로 단예가 있게 되어, 모용복, 왕어언, 단예 이 세 사람이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고정적인 애정의 삼각 관계"를 이루게 된다. 또한 왕어언의 어머니인 왕부인은 허죽의 사숙 이추수의 딸이자 소요자의 딸이기도 하다.

모용복과 소봉 사이는 더더욱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우선 강호에서 "남모용 북교봉(북쪽에는 교봉이 있고 남쪽에는 모용이 있음)"이라고 전해지는 이 두 사람이 아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점이 그러하며, 둘째로는 모용복의 아버지인 모용박이 바로 소봉의 어머니를 죽이고 집안을 멸망시킨 불구대천의 원흉이라는 점이다.

모용복 외에, 소설 중의 주요 인물로는 유탄지가 있다. 이 불행한 소년은 후에 심한 고난의 길을 겪고 심지어는 무림의 화를 입는다. 그 원인은 소봉이 취현장에서 싸움을 벌이다가 장주인 유기와 유구 형제를 죽이게 되는데 이 두 사람이 바로 유탄지의 아버지와 숙부였던 것이다. 따라서 유탄지는 소봉과 저절로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가 된다.

기묘한 것은 유탄지가 깊이 사랑하는 아가씨가 단예의 배다른 동생인 아자이고, 이 아자는 또 교봉을 깊이 사랑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봉과 아자, 유탄지는 또다른 "삼각 관계"를 형성하니, 애정 문제가 얽히고 섥혀 사람들로 하여금 비참하고 처량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사대악인"에 대해서 말해 보자. 이 역시 책 중에 활약하는 인물로 그 두목격인 단연경은 단정명과 단정순 형제의 철천지 원수이다. 단연경은 정종(正宗)의 연경태자인데, 반란에 의해 밖으로 도망다니면서 왕위을 잃게 되어 오로지 왕위를 회복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이다. 동시에 뜻밖에도 단연경은 단예의 친 아버지이다!

그 중 "악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는 섭이랑은 소림사 장문인 현자 방장의 애인일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허죽의 친 어머니이다!

남해악신(南海鄂神) 악노삼(岳老三)은 본래 단예를 제자로 거두고 싶어 안달했었으나 우연히 잘못되어 단예의 제자가 되고 만다.

"함곡팔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총변선생, 성숙노괴 정춘추 및 그 "성숙파"는 영취산 표묘봉의 천산동모와 그 "영취궁" 일파의 사람들과 조금도 연관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한 문파인 "소요파"이며, 바로 허죽의 "두번째 사문"이다.

또한 허죽은 뜻밖에도 얼렁뚱땅 그 파의 장문인이 되고, 소요자의 관문제자가 되고, 천산동모와 이추수의 사질이 되고, 소성하와 정춘추의 사제가 되며, "함곡팔우"의 사숙이 된다. 또한 천산동모의 뒤를 이어 영취궁의 주인이 된다. 말하자면, 단예 역시 이 파의 "반쯤의 제자"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능파미보"는 바로 소요파의 소요자와 이추수의 무공의 정수인 것이다.

이제 서장 불교의 승려인 구마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 역시 책 중에서 크게 활약하는 인물로 그와 모용박은 교분이 두텁지만, 대리국 천룡사의 대적이 되어 "육맥신검"의 검보를 위해서 단예를 중원으로 잡아 끌고 오기까지 한다. 단예와 왕어언의 사귐은 바로 이 승려가 주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승려는 스스로 소림사 칠십이절기를 펼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완전하지 못하며 교묘하게 자신도 속고 남도 속는 허풍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진실한 내공 속에는 "소요파"의 "소무상공"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 "소무상공"은 바로 허죽의 문파의 절기이다. 구마지가 어떻게 이 절기를 배울 수 있었을까? 책 속에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와 허죽 일파가 분명치는 않아도 어떤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원무림, 삼산오악의 호걸들과 대요의 왕실, 서하의 궁궐, 대리국의 황제들, 대송의 운명, 금나라의 시조 등등의 인물과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 단예, 소봉, 허죽 이 세 사람과 관련이 없는 것이 없다. 그에 대해서는 상론하지 않겠다.

다시 단예와 소봉, 허죽이라는 이 세 주인공에 대해서 말해 보자.

먼저 이 세 사람의 "국적"을 알아 보자.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니고 있으니, 단예는 대리국의 왕자요, 소봉은 요나라의 남원대왕이요, 허죽은 순수한 송나라의 백성이자, 서하국의 부마이면서 또한 "영취궁"의 주인이다.

소설에서는 국적이 서로 다른 이 세 사람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아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첫째로, 이 세 사람은 비록 무림의 삼형제에 불과했지만 당시 천하의 대세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 대리국과 요나라, 서하 3개국의 병력을 움직여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으니, 이것 역시 김용이 늘상 좋아하는 넓은 시각, 웅대한 장면, 큰 기세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나의 무협 소설이 당시의 천하 대세에 대해 써냈다는 의의를 지닌다. 사실 서장(西藏)까지 포함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두번째로 이 <<천룡팔부>>는 "한민족"의 비교적 정통적이면서도 협애(좁고 협소함)하다고 비판받는 "민족주의"를 초월하여 일종의 "국제주의"적인 커다란 포부와 대 주제를 지니고 있어, <<사조영웅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더 이른 시기의 <<서검은구록>> 이나 <<비호외전>> 등등의 작품에 비교해 보면 훨씬 더 뛰어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리국과 요나라, 서하, 서장 및 송나라는 사실 모두 중국의 일부분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각 민족의 고난의 근원과 그에 대한 복수의 대상은 사실 공통적인 것으로, 바로 패권주의가 만들어낸 환난이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천룡팔부>>는 또한 "국제주의"와 "평화주의"를 "주제"로 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세 사람의 신분에 대해 다시 말해보자.

이 소설을 무슨 "국제주의"니 "평화주의"니 하고 운운하는 것은 당연히 약간의 유머스러움을 유발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역사 소설이 아니라 무협 소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 사람의 신분을 고찰하는 것은 의의를 지닌다. 대리국 왕자, 요나라의 남원 대왕, 서하의 부마 외에 이 세 사람은 또한 다른 신분을 지니고 있다.

단예는 강호를 떠돌아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일개 서생의 신분을 지녔었고, 후에 기이한 인연으로 능파미보와 "북명신공"과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화공대법"으로 안다) "육맥신검"을 배우게 된다.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불경을 정독했고, 무공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진정으로 노력한 것은 그저 재빠르며 변화가 많고, 생명을 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능파미보"밖에 없었다. "북명신공"은 반 쯤은 이해하고, 반 쯤은 이해 못한 채로 사람들이 대부분을 이끌어 주어야 할 수 있었고, 내공을 모아 두어도 목숨을 잃을 정도의 큰 재앙을 만났을 때에는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의 "육맥신검"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때로는 민첩하고 때로는 민첩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진정한 신분은 무림인이라기 보다는 그저 왕자이자 서생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취궁에서의 소란이 가라앉은 후 서로 마음 속의 여인에 대해 얘기하다가 단예가 교봉과 의형제 맺은 일을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는 허죽...둘은 지금 술에 취해 있다.

갑자기 진지해 지며 자기도 의형제가 될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허죽 대취 상태에서 그 자리에 없었던 교봉까지 넣어 얼렁뚱땅 결의를 맺는 두 사람

그와 비교해 볼 때, 허죽의 신분은 좀 더 복잡하다. 그는 우선 소림사의 평범한 소화상이었다. 교묘한 인연으로 소요자의 관문 제자가 되고, 그의 평생의 공력(소림내공은 이로부터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됨)을 얻게 되어 소요파의 장문인이 되고, 겸하여 강호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영취궁"의 주인도 되고, 소요자 필생의 내공을 얻은 후 또 천산동모의 모든 무공 비급을 얻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영취궁의 고귀한 주인 노릇보다는 소림사의 소화상 노릇을 하기를 더 원했다. 따라서 그 역시 진정한 무림인이라기 보다는 그저 한 명의 "승려가 되기를 원하나 그러지 못한" 소요파의 장문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사람 중에서 소봉만이 진정한 "무림인" 혹은 "강호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신분 역시 가장 기이하니, 우선 소림사 근처에서 농사를 짓던 교삼괴의 아들이었고, 소림사의 고승 현고의 제자요, 개방의 방주이며, 일신의 무공이 가히 온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로 최고로 뛰어난 사람으로서 "북쪽에는 교봉이 있고, 남쪽에는 모용이 있다"는 명성을 무림에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이 멸시해 마지 않는 "번구(이민족의 개)"로 무림인들의 공적(公敵)이면서, 또 요나라의 남원대왕이었다.

이처럼 왕자이자 서생, 화상이자 장문인, 최고로 뛰어난 무림의 공적(公敵)인 이 세 사람은 신분이 완전히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하여 한편으로는 소설을 더욱 곡절 많고 층차가 다양하게 만들어 다각도에서 인생과 인간 세상을 관찰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신분과 인생 역정을 통해 각기 다른 성격과 운명을 지닌 세 사람을 써 낸 것이다.

단예가 소봉에게 허죽을 소개하는 장면

적진 한 가운데에서의 세 사람의 결의 결의 전 대형에게 예를 올리는 허죽세번째로, 이 세 사람의 국적과 신분과 인생 역정이 비록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우연히 만나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마음이 끌려 금란지교를 맺게 되어 돈독한 정을 나누게 된다.

이 장면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뜻밖의 감동을 주고, 또 한편으로는 비록 표면적인 성격은 서로 다르고 그 차이가 매우 심하기는 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 사람이 확실히 깊게 공통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느끼게끔 한다.

이 세 사람의 성격을 보면, 단예는 "멍청하고" 허죽은 "어수룩한" 반면, 소봉은 "호방하고 용감"하여 영웅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단예의 "멍청함"은 귀신 세계에서나 인간 세계에서 드물게 보이는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엔 이치에 "빠져들었으나" 후에는 애정에 "빠져들게" 된다. 이치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무공을 배우지 않고 불경의 가르침과 주역에만 열중하고, 또 강호의 도처를 돌아 다니며 사람들에게 "이치를 설명하고자" 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의 "이치를 설명하는" 행동은 이치도 법도도 없는 강호에서 가는 곳마다 벽을 만날 수밖에 없었고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정에 빠져들게" 된 것이란 바로 왕어언에 대한 치정을 말하는 것으로 정말 천지를 놀래키고, 귀신을 울게 만드는 일인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20퍼센트 정도는 비열하게, 30퍼센트 정도는 존경스럽게, 그리고 50퍼센트 정도는 웃기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단예를 사랑스럽고 멍청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허죽은 사랑스럽고 어수룩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소림사로 출가하여 화상이 되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자신은 어찌 되었든 누가 뭐래도 분명한 "출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돌발적인 사태로 소림의 기예를 모두 잃어 버리고 소요파의 일신 내공을 얻게 되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이 파의 장문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천산동모라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여마두와 함께 있었을 때도 그녀에게 날짐승과 들짐승을 살생하지 말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그 자신이 죽음에 처해서도 닭이나 생선이나 육류를 먹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살계, 주계, 훈계, 심지어 음계까지 하나 하나 범한 후, 그래도 영취궁의 주인 노릇 대신 소림사의 소화상 노릇을 하고 싶어하면서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고집했던 것이다. 사실 그는 이미 무슨 소화상이나 "출가인"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그가 이렇게 얘기 한 것은 "광계(거짓말)"마저도 무의식적으로 범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허죽의 어수룩함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라 하겠다.

소봉의 호매함과 호방함, 뛰어난 용감함과 무예, 다른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대 영웅 대 호걸의 면모는 이 <<천룡팔부>> 중에서 가장 빛나는 형상이며, 또한 소봉은 김용의 모든 무협 소설과 김용의 무협 소설 세계의 모든 주인공 중에서 가장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자아내는, 빛을 발하는 대 영웅이다.

싸우다 말고 갑자기 술을 마시는 소봉 두 팔을 활짝 벌려 부하들 사이를 누비며 그들에게 술을 권하는 소봉
말안장에서 낚아 챈 술을 던지는 소봉 술을 받아 드는 부하를 보며 활짝 웃는 소봉...결전을 앞에 둔 비감한 사람의 모습이 어쩌면 저렇게 천진난만할 수 있을까...소봉은 진정한 영웅이다.
당당하고 굴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는 의형의 모습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진심으로 응원하는 단예 단예를 보며 미소짓는 소봉
의형이 던진 술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단예 소봉이 던진 술을 받고 모여 드는 사람들 - 아직 소봉, 허죽, 단예 세 사람의 결의 전이다.
(결의 후의 모습)적들에 둘러 싸인 채 호쾌하게 술을 권하는 소봉...죽기 직전의 의식과 같다...더할 수 없이 호방하지만 안타까운 장면이다. 술을 높이 쳐드는 형제들과 소봉과 함께 하는 사람들
결전의 술을 마신 후 제일 먼저 성숙노괴 정춘추에게 달려 들기 직전의 허죽...그의 온화한 성격에 비추어 놀라운 변화이다...아우의 무공이 정춘수에게 미치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소봉이 말리고 있다...이 후 허죽의 무공에 놀란다.소봉의 영웅적인 면모는 "이민족에 항거"한다든가 혹은 "협의를 행한다"는 등등의 표면적인 공적과 행위의 장식 없이도, 천성적인 호탕함과 용감 무쌍함, 영웅의 기상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그의 무공은 비록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었지만 스승보다 뛰어난 솜씨를 지녔으며, 마치 천성적으로 용감무쌍하고 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신공을 지녔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적어도 필자 본인은 김용이 그려낸 형상 중 소봉이 가장 뛰어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수천 수만 사람이 있다 해도 나는 가겠다"는 모습이라든가, 혹은 "연운십팔기"를 이끌고 용호처럼 소림사로 달려오던 모습, 또는 화살을 가슴에 꽂으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는 장면을 읽을 때면 정말 혈관의 피가 끓어 오르고 그에게 심취해 정신이 아득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 주인공은 하나는 멍청하고(癡), 하나는 어수룩하고, 하나는 호방하고 용감 무쌍하며, 하나는 서생이고 하나는 화상이며 하나는 강호의 호걸인데, 이 세 주인공이 만나자마자 서로 의기 투합해 결의 형제를 맺게 된 이유는 그저 "지성지정(至性至情)"이라는 네 글자에 있을 뿐이었다.

멍청함은 지정(至情)이요, 어수룩함은 지성(至性)이요, 호쾌한 남아의 면모는 또한 지정(至情)과 지성(至性)을 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결의 형제는 옛날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더욱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 잃으키고 부러움을 산다 하겠다. 다만 이 세 사람이 모두 옛날 사람들이요, 또한 "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네번째로, 이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말해 보자.

지정(至情), 지성(至性)한 남자의 면모로 인해 서로 의기 투합하여 금란지교를 맺은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또한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바로 <<천룡팔부>>에서 특히 슬프고 안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허죽의 친 아버지인 현자 방장은 바로 소봉의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상처 입힌 원수였다. 허죽의 친 어머니 섭이랑은 또 단예의 원수인 단연경의 의남매였고, 사대악인의 일인이기도 했다. 또 단연경은 바로 단예의 원수인 동시에 그의 친 아버지이기도 했다. 소봉은 강민에게 속아 단정순을 자기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고 생각하게 되어 그를 찾아 원수를 갚으려 하다가 단정순의 딸(단예의 동생)인 아주를 죽이게 되는데, 아주는 바로 소봉이 결혼을 약속했던, 또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이었다. 현자 방장이 소원산을 습격했던 것은 모용박의 사기와 도발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봉이 단정순을 찾아 보복한 것 역시 강민의 사기와 책임 전가 때문이었다. 소봉이 아주를 죽이게 된 것은, 아주가 자기의 아버지인 단정순으로 분장하여 아버지 대신 죽어 모든 은원 관계를 청산하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경악하는 교봉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소원산에게 탁본을 확인하는 교봉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르면 소봉의 아버지인 소원산이 허죽의 부모인 현자 방장과 섭이랑 두 사람을 죽이게 되고, 이 때 허죽은 처음으로 자기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으나, 아주 찰나의 순간을 함께 있을 수 있었을 뿐, 다시 생사를 가르는 이별을 해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얼마나 슬프고 안스러운가!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의 관계는 은원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전생의 원한과 죄과에 연루되어 있어서,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할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며, 그저 "운명"과 "하늘"이 눈이 멀어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세 사람은 신분이 다르고 지내온 경험이 다르지만, 운명이 똑같았다.

그들은 똑같이 비참한 인간 세상 속에서 살았으며, 똑같이 심원한 전대의 원한에 연루된 속에서 살았으며, 아버지 대의 원한의 영향으로 인해, 그 은원 관계를 말로 정리해 내기도 어렵고, 복잡하여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해결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저 비참함과 고통 속에서 망연함과 한을 영원히 가슴에 품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똑같이 비인간적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으며, 똑같이 "삶의 그물" 속에서, "비인간적"이고 "비자아적"인 고통과 원한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세계 속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 없고, 정이 있으면 화근이 되는" 까닭은 바로 아래와 같은 몇가지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선, 역사적 원한과 영향, 그리고 그 유전에 기인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천룡팔부>>의 줄거리 구조가 이처럼 웅대하고 복잡하면서도 곡절이 많은 까닭은, 바로 그것이 그저 한 개인 혹은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많은 사람들과 많은 시대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한 시대 사람이나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전대 혹은 그 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특별히 복잡하면서도 곡절이 많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 소설의 주요 인물과 기타 중요한 인물들은 거의가 다 하나같이 역사의 영향과 부친들의 원한 및 복수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겠다.

단예가 처음 강호에 나왔을 때, 그는 종영이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또 목완청이라는 소녀도 만나게 되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모든 것을 사로잡은 소녀 왕어언을 만나게 된다. 이 몇가지 이야기는 모두 단예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종영은 비록 어려서 경험이 풍부함에도 꽃다운 처녀의 사랑이 가득하여 단예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고, 목완청은 더욱 더 "처음 내 얼굴을 본 사람은 죽이지 않으면 시집가서 부인이 되겠다"는 맹세를 굳게 지키던 차에 단예를 만나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단예가 낯선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와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가 다른 오빠일 줄 누가 알았을 것인가! 애정 어린 호칭이었던 "낭군"이 "친오빠"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변화는 목완청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단예의 아버지 단정순의 업보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단정순은 풍류에 빠져 가는 곳마다 정을 남겨 놓아, 정인들로 하여금 서로 철저한 원수지간이 되게 했으며, 친남매 간에도 서로 친남매라는 사실을 몰라 사랑에 빠지게 했으며 근친 상간의 위험마저 조성했던 것이다. 이 비밀이 밝혀진 후, 어쩔 수 없이 종영과 목완청 두 아가씨의 사랑과 일생의 행복은 산산히 부서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왕어언 역시 단예가 사랑한 아가씨이자, 바로 단예와 아버지가 같은 누이동생이었는데, 이것은 단예에게는 더욱 청천벽력 같은 사실로, 사느니 죽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막다른 골목에서 길이 생긴다고, 단예의 어머니인 도백봉이 단예에게 그의 친 아버지가 단정순이 아니라 "사대악인"의 우두머리인 단연경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서, 한편으로는 더이상 남매 간의 근친 상간이라는 이유로 단예가 괴로워할 필요가 없게 되긴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원래 강호의 사람들이 모두 멸시하고, 자신이 줄곧 원수라고 생각했으며, 여러 차례나 자신의 집안을 위험에 몰아 넣었던 "악관만영(악으로 뭉친)" 단연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단예는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 중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일생은 이렇듯 그의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살도록 운명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살구나무숲에서 개방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교봉살구나무숲 장면소봉의 운명 역시 전부 아버지 대의 업보로 인해 결정되어 있었으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막대한 고통 속에서 살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는 원래 개방의 모든 사람들이 떠받들어 모시고, 중원 무림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는 "북교봉" 교방주였다. 하지만, 살구숲 속에서 뜻밖에 그가 중원의 백성이 아니라 원래 "요나라의 개새끼"이면서 중원 무림의 민족적 원수라는 사실이 밝혀질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 놀라는 교봉이 점으로 인해 그는 개방의 방주에서, 개방과 중원 무림의 적이라는 위치로 자리바꿈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친부모가 무고하게 살해당한 것은 그가 경애해 마지 않던 개방의 전대 방주와 관련이 있었으며, 자신의 양부인 교삼괴와 그의 은사인 현자 대사 역시 이 사건으로 인해 참살 당하고 만다.

그 이후부터의 그의 모든 행동은 전부 "운명에 의해 정해진" 것이었다. 최후에 이르러 자기의 친 아버지인 소원산이 죽지 않았었음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양부인 교삼괴와 은사인 현자 대사가 뜻밖에 자기의 친 아버지인 소원산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소원산이 의형제인 허죽의 부모인 현자와 섭이랑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망연함과 고통을 안겨다 주어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안 후 망연자실하여 단을 오르는 교봉...이 때 이미 교봉의 마음 속의 혼란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 하다. 개방 방주직을 사임하고 타구봉을 건네는 교봉

세 주인공 중에서 가장 고통을 겪은 것은 아무래도 허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옮긴이 주 : 이 부분에서 난(연용) 의견을 달리한다). 단예는 적어도 부모 두 사람이 다 살아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양친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교봉은 비록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양부모와 은사에게서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허죽은 어렸을 때부터 소림사에서 자라면서 친부모인 현자 방장과 아주 지척의 거리에서 생활했으면서도 알지 못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현자와 섭이랑의 결합이 불가에서는 허락받을 수 없는 일이었고, 무림계에서는 경멸해 마지 않는 천생의 업보 때문이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소원산이 현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허죽을 그 어머니의 손에서부터 빼앗아 소림사에 버려, 그 어머니를 미친 살인마인 "악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 그런 섭이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허죽이 자기의 부모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던 날, 그는 부모와 영원한 이별을 겪어야 했다. 그의 고통은 어느 누구보다 심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들 역시 운명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이 밖에 단연경은 잃어버린 왕위를 되찾는 일에 몰두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사대악인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 원인을 살펴 보면 바로 그가 단연경 태자로 태어나 반란을 겪으면서 성품이 비뚤어진 데 있었다! 그의 악행은 가히 저주받을 만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가 겪은 비참함은 동정받을 만한 일이라 하겠다.

마찬가지로, 책 속의 "남모용" 모용복은 그가 창조해낸 무공으로 무림에 명성을 드날렸고, 소탈한 풍류도 겸비하고 있어서 가히 인간 세상의 용봉(龍鳳)이라 할 수 있었으나, 선조의 가르침을 받아 일생 동안 "대연나라를 회복하는 일"에 몰두하고 그것만을 위해 싸우다가 마침내 사촌 누이의 정성어린 깊은 애정에 보답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살할 힘마저 가질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책 속에 다채로운 장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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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가 말했다.
"소인은 먼저 모용 공자께 질문을 하겠사오니, 소대협께서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달아 죄송하다는 말을 몇번이나 더 하고는 그제서야 모용복에게 질문을 던졌다.
"실례지만, 공자께서는 한평생 어떤 곳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했었습니까?"
이 문제를 모용복은 그녀가 사오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자 그는 그만 입을 벌리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한평생 그저 대연나라를 세우고자 분주히 돌아다녔으며, 한번도 즐겁고 행복했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한번도 진정으로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그는 일순 어리둥절해졌다가 대답했다.
"내가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낄 것은 장래에 있지 과거가 아니오이다."
궁녀는 모용복이 종찬 왕자 등과 같은 소리를 하는 줄 알았다. 공주와 혼례를 올려야 만이 진정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노라는 그런 대답과 똑같은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용복이 말하는 즐거움이란 장래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연나라를 중흥시킨 군주가 되었을 때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녀는 빙그레 웃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공자께서 한평생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하는지요?"
모용복은 어리둥절해졌으나 잠시 생각해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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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모용복은 집안에 전해오는 선조의 유훈을 받들어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에만 전념하다가 정말로 불행한 종말을 맞게 된다. 가장 불행한 것은, 그가 불행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취현장 장주의 아들인 유탄지 역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강호에 뛰어들어, 일생 동안 여러 차례 기이한 인연을 겪지만, 그의 고통스런 인생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저 쓸데없이 천하 무림인들의 경멸만 받게 된다. 그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은 그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소봉만을 사랑했을 뿐, 자신에게는 냉담한 반응만을 보였다.

아주는 부친을 대신해 죽었지만 사실은 헛된 죽음이었다. 그녀는 강민에게 속아 아버지로 변장하고 아버지 대신 죽음을 맞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원인을 살펴 보면, 아버지인 단정순이 가는 곳마다 정을 남겨 놓아 무수한 업보를 쌓은 탓이었다. 이로 인해 아주와 소봉이라는 사랑하는 애인들이 생사를 달리하는 이별을 맞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아주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맞아 죽게 되었다는 점이다!

<<천룡팔부>>의 비극은 전대의 원한이 현세의 업보가 되어, 또 서로 원한을 쌓고 복수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조금도 끝이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화를 입힐 뿐 아니라, 자신도 역시 그 "그물"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 비인간적인 세계는 바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삶과 인생이 "마(魔)의 그물"에 걸리게 된 까닭은, 반은 전대의 은원 관계의 업보로 인한 것이요, 나머지 반은 현세에 계속되는 복수 탓이다.

이 "마의 그물"은 바로 전대에서 유전된 은원 관계의 업보가 "씨실"이 되고, 현세에 계속되는 복수가 "날실"이 되어 가로 세로로 짜여지고 복잡하게 엉켜, 마침내 누가 죄인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원수이고 누가 책임자인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 누가 옳바르고 누가 사악한지를 분별해 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사대악인"은 마땅히 원수요, "업보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연경과 섭이랑이 물론 수많은 악행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저질러 확실히 마귀이자 비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단연경이 왜 이토록 "악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 보아야 한다. 그 역시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으며, 신체가 망가져 인간 세상의 고통을 심하게 겪었던 것이다.

섭이랑이 매일 한 어린애를 죽인 것은 다른 사람의 자신의 아들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 "사대악인"과 같은 비인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악마가 존재하면, 당연히 이 세상도 음험한 마귀의 세상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근본을 따져 생각해 보면, 그들을 원수요, 업보의 책임자라고 몰아 붙일 수만은 없게 된다.

섭이랑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미친 것은 소원산이 그녀의 아들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고, 소원산이 그녀의 아들을 빼앗아 간 것은 바로 부인의 목숨을 빼앗아간 원수인 현자 방장, 즉 그녀의 애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원산의 아들 소봉과 현자, 섭이랑의 아들인 허죽은 뜻밖에 금란지교의 결의를 맺은 의형제가 된다! 이 사이의 은혜와 원한을 누가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은 이 아득하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삶의 그물 속에서, 그리고 이 원한과 보복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다른 사람에게 복수하고 상처 입히면서 또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게 복수하고 상처 입히는 "비인간적인 세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피해자이다! 또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도 모르는 새에 비뚤어지지만, 그렇게 비뚤어지게 된 데에는 최소한 자신에게 일부분의 책임이 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구멍이 서로 채워져 마침내 근본적으로 실마리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근원을 따져 생각해 보면, 교봉과 허죽이 겪는 고통의 책임자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오로지 대연나라의 부흥만을 생각하는 모용박이다. 모든 것이 모용박의 음모와 치밀한 계략에서 비롯되었다.

모용박은 현자에게 소원산이 사람들을 이끌고 소림사의 무공 비급을 빼앗으러 갔다고 속였으나, 사실 소원산은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아리따운 부인을 데리고 산천 구경을 하며 고향으로 되돌아가던 길이었을 뿐이었다. 현자는 진상을 모르는 채 중원의 호걸들을 이끌고 안문관 밖에 매복해 있다가 소원산의 무공을 할 줄 모르는 부인과 시종들을 죽이고, 소원산으로 하여금 원통함과 슬픔을 못이겨 벼랑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게 만드니, 이로부터 깊고 깊은 원한의 업보가 쌓이게 된 것이다.

소원산의 부인의 죽음과 현자의 애인이 미치게 된 사건,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아들이 실종되는 등의 화근과 원인이 전부 모용박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첫째로, 현자와 섭이랑의 관계가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고, 세상에서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자와 섭이랑의 죽음은 적어도 반은 무림 세계에 볼 낯이 없어 참회를 하는 의미였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소원산이 교삼괴를 죽이고 현고를 죽이고 교봉이 조전손과 담공 부부를 죽게 하고, 일가를 몰살시키고, 더우기 취현장에서는 살계까지 범하게 되는 것 등등은 모두 그들 자신이 이미 새로운 원수, 새로운 업보의 주역이 된 탓이었다. 유탄지같은 무고한 소년을 생각하면, 소봉은 죄책감을 면할 방도가 없다고 하겠다. 그리고 소봉이 이처럼 한 이유는 바로 유기, 유구 등의 중원 호걸의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천룡팔부>>의 세계는 복수와 원한의 세계이며, 이 복수와 원한의 세계가 비록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원수를 갚도록 하고는 있지만, 서로 증오하고 서로 보복하고 서로 얽히는 가운데 또다시 새롭고 끝이 보이지 않는 "비인간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는 원한 관계로 인한 보복이 가득차 있으며 보복으로 인해 새로운 원한을 낳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그저 소설 내용의 반에 불과할 뿐이다. 교봉과 허죽 두 사람의 운명적 비극은,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옛날 모용박의 음모와 간계에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단예와 소요파, 단연경 등등의 원한의 내용은 모용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단예의 고통은 완전히 정으로 인한 업보에 있다. 하나는 아버지 단정순의 업보요, 하나는 어머니 도백봉의 업보요,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친아버지인 단연경의 업보이다.

그리고 소요파의 소요자, 이추수, 천산동모 세 사람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애정의 업보는 이 세상에 수 많은 해악을 끼쳤는데, 그 원인을 따져 보면 그저 "정"의 "업보"에 불과할 뿐이다.

이추수는 소요자의 애정을 독차지 하기 위해 천산동모를 해쳤고, 이로 인해 천산동모는 세상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했으며, 이추수와 소요자가 비록 사랑하여 딸을 하나 낳아 소주의 왕씨 집안으로 시집까지 보내기는 했으나, 소요자가 마음속으로 진정 사랑했던 여인은 이추수가 아니라 바로 이추수의 누이동생이었다!

전대의 은원 관계와 역사적 영향은 현세의 보복과 서로 연결되어 비인간적이고 공포스러우며, 인성을 비뚤어지게 하는 음험한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세계의 존재는 사람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비뚤어지게 하여 마귀와 짐승처럼 만드는 "외적 요인"에 불과하다. "외적 요인은 변화의 조건이요, 내적 요인은 변화의 근거가 된다"느니, "외적 요인은 내적 요인을 통과해야지만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음험한 세계를 만든 진정한 "내적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인성을 비뚤어지게 만든 내적 요인은 바로 인성 자체, 즉 인성 중에 있는 삼독(三毒), 즉 "탐(貪:탐욕)"과 "진(嗔:분노)"과 "치(癡:정.몰두)"에 있다.

모용박이 현자를 속여 그로 하여금 사람들을 이끌고 소원산 부부를 공격하게 하여, 이후 수십 년 동안 중원 무림에 커다란 참화를 빚어낸 까닭은 그저 요나라를 도발시켜 송나라와 분쟁을 일으켜, 어부지리의 기회를 타서 대연나라를 부흥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을 뿐이었다.

모용박, 모용복 부자가 이처럼 한 까닭은 근본 원인이 "욕"과 "치"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극도의 부귀영화를 탐했고, 오로지 대연나라의 부흥에만 몰입하여, 천하의 백성들의 생사는 생각지도 않은 채 오히려 끊임없이 무림에 재앙만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춘추가 무림에서 경멸 당하는 이유를 살펴 보면, 그 원인 역시 "욕"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탐한 것은 제왕의 자리나 권력과 권세 같은 것이 아니라, 소요파의 장문인의 자리였다. 하지만 그 원인(탐욕)과 그 결과(다른 사람에게 재앙을 가한 것)는 모용씨 부자와 조금의 차이도 없다.

단연경은 오로지 왕위를 되찾을 생각만 했으나, 이것은 차라리 대단할 것이 없었다. 그저 희미하게 자기가 잃어버린 왕위를 만회할 생각을 품었을 뿐이며, 아마도 어느 정도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탐욕으로 인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분노(嗔)"로 가득 차 인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결국 극악무도한 "사대악인"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공적(公敵)이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섭이랑의 애정 비극 역시 원래는 사람들의 동정을 받을 만한 사건이었다. 현자는 소림사 방장의 신분으로 음계를 범했으니 불문과 무림에서 경멸을 받아 마땅하지만, 섭이랑은 확실히 무고하게 고통을 받았으며, 동정받을 만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아들을 잃은 고통은 더더욱 이 세상 부모들이 공감할 만한 일이며, 심지어 소원산의 복수가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무고한 그녀에게 너무 심했다는 비난을 가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섭이랑의 "몰두(아들에 대한 사랑)"는 "분노"로 변하여, 그것도 "엄청난 분노"로 변하여,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이며, 매일 무고한 어린애를 하나씩 빼앗아 와 죽이는 "극악무도"한 "사대 악인"의 한 사람이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동정을 받기는 커녕 "통한"의 대상이 된다.

소요파의 천산동모와 이추수는 동문의 사매로, 동시에 동문 사형인 소요자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추수는 천산동모가 무공을 연마할 때 그녀를 영원히 어린애의 몸에 머물러 더이상 자랄 수 없게 손을 썼고, 이로 인해 이 동문 사매는 원수 관계로 변하여 서로 복수하고 또 복수하여, 마침내 함께 죽음을 맞게 된다.

이추수와 천산동모 역시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이끌던 "영취궁"은 무림에서 큰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할 수 없으나, 36동의 동주, 72도의 도주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형벌을 내리는 등 잔인한 일이 많았었는데, 그 원인을 따져 보면 모두 "진(嗔)"에 있다고 하겠다.

이추수가 죽을 때의 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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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이추수는 다시 나지막하게 혼잣말처럼 지껄였다.
"사형, 그대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고 또한 순진하기 이를 데 없어요. 어째서 그대가 손으로 조각해 낸 옥상을 사랑하게 되었으면서도 말을 할 줄 알고 웃을 줄 알고 움직일 줄 아는 그대의 사매를 사랑하지 않았나요? 그대는 마음 속으로 그 옥상을 저의 누이동생처럼 여겼겠죠? 그래서 저는 그 옥상에게 질투를 느꼈고, 그대와 싸운 후 나가서 많은 준수한 젊은 사람들을 끌어와 그대가 보는 앞에서 그들과 음란한 짓을 일삼았죠. 그러자 그대는 화를 내면서 제 곁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죠. 사형, 그대는 사실 화를 낼 필요가 없었어요. 그들 미소년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목숨을 빼앗겨 호숫물 속에 깊히 파묻히고 말았으니까요.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 그림을 들고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사형! 이 한 폭의 그림은 그대가 언제 그린 것인가요? 그대는 저를 그린 줄 알고 그대의 제자에게 이 그림을 갖고서 무량산으로 나를 찾아오도록 했겠지요? 그러나 그대는 부지불식간에 저의 누이동생을 그리고 말았어요. 그러한 사실은 사형 자신도 몰랐겠지요? 그대는 줄곧 이 그림 속의 인물이 나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사형, 그대가 마음속으로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나의 누이동생이 아니었던가요? 그대가 그토록 정신을 빠뜨리면서 그 옥상을 바라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요? 무엇 때문인가요?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어요."
허죽은 속으로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살아 생전 정에 빠지고(癡), 화를 내고(嗔), 욕심을 내는(貪) 이 세가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백과 사부, 그리고 사숙은 모두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그와 같은 세 가지 정에 얽매어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아무리 무공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마음 속의 번뇌와 고통은 이 세상의 속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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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 세상의 속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없구나"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들의 무공의 견식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뛰어났고, 또 정에 몰두하고 분노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했기 때문에, 고통 역시 다른 사람들보다 심했으며 이성을 잃고 악하게 되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했던 것이다.

<<천룡팔부>> 중의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이 "삼독(三毒)"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욕심과 정에, 어떤 사람은 정과 분노에, 어떤 사람은 분노와 욕심에 빠져 있었다. 유탄지, 전관청, 백세경, 조전손 등은 비록 인품과 무공, 성격과 경험에 있어 조금도 공통점이 없었지만, 이 분노와 정과 욕심이라는 "삼독"에 빠졌기 때문에, 똑같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거지를 보이고,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행동을 하여 혹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한스럽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일들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다.

소설 속에 단정순과 관계가 있던 도백봉, 진홍면, 감보보, 왕부인, 원성죽, 강민 같은 여인들에서부터, 그들의 딸인 종영, 목완청, 아자 등등은 모두 "정"에 빠진 정도가 심각하였고, 그 정도가 심각했기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게 되어, 반쯤은 미치고 이성을 상실한 불쌍한 영혼이 된 것이다.

그 중 강민이 가장 분명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단정순을 사랑했고, 단정순 역시 그의 다른 애인들을 대하듯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정순의 "유일한" 사랑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순을 죽일 계획을 세우게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봉을 해치기 위해 남편 마대원, 백세경, 전관청을 이용하고 죽이게 되는데, 이 모든 이유는 소봉이 "그녀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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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인은 악에 받쳐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눈알도 없느냐? 그같은 영웅 호걸도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날 자세히 살펴 보는데 말이야. 어떤 도덕 군자라도, 설사 날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못한다 해도, 다른 사람 모르게 결국 내게 몰래 눈짓을 한다고. 오직 너만이, 너만이... 흥, 백화회의 천여 명에 가까운 남자들 중에서 오직 너만이 날 시종일관 한번도 쳐다보지를 않았다. 너는 개방의 두목이고, 천하에 이름난 영웅 호한이다. 낙양의 백화회에서 남자들 중에서는 네가 최고고, 여자들 중에서는 당연히 내가 제일이었다. 하지만 넌 내게 눈짓 한번 보내지 않았으니, 내가 나의 미모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천여 명의 남자들이 내게 빠져 정신을 잃는다 해도, 내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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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보면, 가히 두려운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진(嗔)"이 이 정도에 이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김용은 책 속에서 이것을 써 냈으며, <<천룡팔부>>의 서술의 기본은 바로 이러한 기이한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에 있었던 것이다.

<<천룡팔부>>가 사람들에게 특별히 "기이하게" 생각되고, 또 특별히 진실하면서도 심각하게 생각되는 까닭은 바로 인성에 깃들여 있는 "욕심"과 "분노"와 "정(몰두)"이라는 삼독 및 그로 인해 파생되는 비이성적인 심리와 행동이 미묘한 부분까지 전부 들추어지고 한 곳에 모아져서, 확대되고 축소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 아니 바로 인간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끔찍하고 음험한 세계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이성을 잃고 전부 미쳐 있다. <<천룡팔부>>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친 세계"이다.

우리들은 <<천룡팔부>>라는 이 소설 속에는 진정한 악인도, 진정한 선인(善人)도 없음을 앞에서 살펴 보았다. 소림사의 현자 방장은 의협심이 강하고 정직하여 사람들을 숙연케 하고 존경케 만드는 힘이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림의 제일인자"의 칭송을 받았던가? 또 "사대악인" 중의 한 사람인 섭이랑은 얼마나 사람들의 원한을 산 악덕무도한 여자였던가? 하지만 이 현자와 섭이랑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이것은 "선" 속에 "악"이 숨겨져 있고, "악" 속에 "선"이 숨겨져 있음을 드러내 줄 뿐만 아니라, 또한 "선과 악의 구분이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선택과 비교를 가해, 모든 사람들의 "병의 상태"와 "병의 원인"을 드러내게 한다. 인성은 원래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며, 각자 선택하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천룡팔부>>에 인간과 인성에 대한 이러한 견식과 경계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협 소설보다 훨씬 뛰어날 수 있었으며, 일반적인 문학 작품보다도 훨씬 뛰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 대로, 이 소설은 "억울하지 않은 사람 없고, 정이 있으면 화근이 되는" 고통스러운 비인간적인 세계를 폭로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까닭과 "정이 있으면 화근이 되는" 까닭을 폭로하고 있다. 그것은 온갖 역사적인(문화와 유전 등등) 현실 관계 속의 원인 외에, 더욱 중요한 원인은 사람 자체, 그리고 인성 자체에 있다. 인성에 내재한 "욕심", "분노", "정"이 넘쳐서 재앙이 되고, 팽창하여 독이 되어 없에 버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쯤 미치고, 반쯤은 사람이고 반쯤은 마귀 상태인 "비인간"이 되는 것이다. 정이 있으면서도 "빠지지 않고" "분노"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화근"이 생길 수 있겠는가? 무언가 얻고자 하고 추구하고자 해도 "욕심"에 빠지지 않고, "정"에 빠지지도 않으며 "화"도 내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아주 심각한 비극임을, 그리고 인간 세상의 비애와 인생의 만남에 대해 특히 인성의 선택에 대해 책 속에서 아주 심각하고 기이하면서도 뚜렷하고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더욱 귀한 점은, 작자가 세밀한 것까지 눈여겨 보는 뛰어난 "혜안(慧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자대비한 "자애로운 마음(慈心)"까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명하면서 자비로운 것, 이것은 아주 높은 예술적 경지인 동시에 아주 높은 철학과 인생의 경지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김용의 작품을 모방할 수 없고 뒤따를 수 없는 까닭은, 그들에게 혜안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자비로운 마음을 갖추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소설의 제43회에서는 복수와 원한에 일생을 바쳤던 소원산이 불구대천의 원수인 모용박과 함께 마침내 "두 손을 마주 잡아 음기와 양기를 서로 통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연나라를 부흥하기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저지르고 죽음까지 불사하던 모용박도 마침내 "살육의 칼을 내려 놓고 성불하여" 소원산과 함께 불문에 귀의하게 된다. 이 단락은 아주 다채롭게 씌여 있다. 소원산의 심리를 묘사한 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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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산은 처와 어릴 적부터 소꼽 친구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혼례를 올린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아들까지 두게 되어 더욱 사람됨이 시원시원해지게 되었고, 의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안문관 밖에서 참사를 당하였고 골짜기 아래로 떨어졌으나 죽지 않게 되자 사람됨이 완전히 변하고 말았다. 공명이나 지위, 그리고 재물은 그의 눈에는 티끌과 같이 보였을 뿐이고,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원수를 직접 갚아 쌓이고 쌓인 원한을 푸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본래 호탕하고 성실하면서도 소박했으며, 아무것도 거리낄 바가 없는 새외의 호걸이었다. 그러나 가슴 속에 원한이 충만하게 되자 성격은 더욱 더 포악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소림사에서 잠복한 지 수십 년이나 되고, 낮으로는 웅크린 채 숨어 살며, 밤에 나와 무공을 열심히 연마하게 되었는데, 일 년 동안에 다른 사람과 한 두 마디 말도 나누지 않는 터라 그의 성격은 더욱 더 크게 변하게 되었다.
별안간, 수십 년 동안 이를 갈아온 원수들이 하나 하나 자기 앞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해야 하겠으나,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처량함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곁눈질로 기둥에 기대어 세워져 있는 모용박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평화스러웠으며, 입가에는 미소마저 띄우고 있어 마치 죽은 것이 살아 있는 것보다 더욱 즐거운 듯했다. 소원산은 마음 속으로 오히려 그가 더 복을 받고 태어났다고 부러워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떠났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죽은 이후 무엇을 따지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원수들은 모조리 죽었다. 나의 원한도 완전히 갚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대요나라로 돌아가야 하는가? 돌아가서 무엇을 한다는 것인가? 안문관 밖으로 가서 은거해야 하는가? 가서 무엇한다는 것인가? 봉아를 데리고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떠돌이 신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또 무엇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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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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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소원산과 모용박 두 사람의 숨소리가 커져 갔고, 점점 갈수록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소원산의 얼굴빛이 더욱 붉어지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금방이라도 빨간 핏방울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런 반면 모용박의 얼굴은 더욱 더 시퍼렇게 변해 파란 빛을 띄우게 되어 무척 무섭게 보였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양기가 지나쳐 허열이 치솟아 오르기 때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음기가 너무 성해서 풍한이 체내에 가득 쌓여 있기 때문이다.
별안간 그 노승이 호통을 내질렀다.
"들으시오! 손을 서로 잡고 내식을 통하게 하여 음으로 양을 도우고 양기로써 음기를 해소하도록 하시오. 천하를 주름잡겠다는 야심과 피맺힌 원한은 모두 다 흙으로 돌아갈 것이며 형체 없이 해소될 것이오."
소원산과 모용박의 네 손은 본래 서로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노승의 호통 소리를 듣게 되자 불현듯 손에 힘을 주게 되었다. 각기 체내의 내식이 상대방 쪽으로 몰려 가게 되었고, 서로 이를 알고 상대방의 양기와 음기를 서로 이끌어 자기의 부족함을 메우게 되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점차 붉은 빛이 가셔졌고, 푸른 빛이 엷어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뜨고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소봉과 모용복은 각기 부친이 눈을 뜨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았다. 이 때 소원산과 모용박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더니 일제히 그 노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노승이 말했다.
"그대들 두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또 죽음에서 태어나기까지 한 번씩 오락가락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마음 속에 무슨 미련이 남아 있소? 만약 이대로 죽게 된다면 대연나라를 또 다시 세우고, 처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소?"
소원산이 말했다.
"제자는 헛되이 소림사에서 삼십 년간 화상 노릇을 했으나 그것은 전부 가짜로써 불문 제자의 자비로운 마음을 조금도 갖지 못했습니다. 아무쪼록 사부님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노승은 물었다.
"그대는 처를 죽인 원한을 갚지 않으려고 하오?"
소원산이 말했다.
"제자는 평생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만약 나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가족이 모조리 원한을 갚겠다고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제자는 백 번 죽어도 모자랄 형편입니다."
노승은 모용박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대는?"
모용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서민이 흙과 같다면 제왕 역시 흙과 같습니다. 대연나라를 되세우지 못해도 헛것이요, 나라를 세운다 해도 헛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노승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 대철대오(大徹大悟) 했으니, 선재로다! 선재로다!"
모용박이 말했다.
"대사님께서 제자로 거둬 주시고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노승이 말했다.
"그대들이 출가하여 중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소림사 대사들이 직접 머리를 깍아 주어야 하오. 하지만 내가 당신들에게 몇 마디 들려주는 것은 무방할테지."
그리고는 단정히 앉아 설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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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의표를 찌르면서도 또 모두가 정리에 부합하는 동시에, 하나같이 선기(禪機)를 드러내고 있다. 그 노승은 소림사에서 잡일을 보는 노승이었는데, 마치 "진짜 부처"와 같은 형상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무공의 높음, 법문의 오묘함, 기이한 사람됨 등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의 호통 역시 불가에서 말하는 "당두봉갈(좌선할 때 잡념을 없애고 깨달음을 주기 위해 경책으로 정수리에 일침을 가하며 경고하여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불교의 용어)"이었다!

소설의 중요 인물들이 대부분 모두 그 현장에 있었다가, 함께 그런 과정을 보고, 그 호통을 들었으나, 어떤 사람은 대철대오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문득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깨달은 듯 아닌 듯 명확하지 않은 사람도 있엇고, 물론 미망에 빠져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각기 다른 현상은 당연한 것이며, 어떻게 할 방도가 없는 일이다.

소설 <<천룡팔부>>에서 "당두봉갈"과 같은 이러한 장면은 곳곳에서 보인다. 특히 제5권에서 많이 보인다. 소설의 제45회에서부터 제46회까지는 서장의 성승 구마지(이 사람은 책 속에서는 고승이라 자처하고 있는데, 비록 대악무도하지는 않지만, 역시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인물)가 소림사의 72절기를 잘못 연마하고 공명과 승부욕에 빠져, 결국 주화입마의 위기에 빠져 아주 위험한 상태에 처했을 때, 다행히 "북명신공"을 연마한 단예에 의해 자신의 모든 내력을 흡수당하고 무공을 잃게 되나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책 속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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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노납은 불문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승부욕은 다른 사람보다도 더욱 강했소. 오늘의 열매는 실로 삼십 년 전에 심은 것이라 할 수 있소이다. 아, 실로 탐(貪), 진(嗔), 치(癡), 삼독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고승이랍시고 자부했으며, 오만 무례한 행동을 했으니 그야말로 부끄럽기 짝이 없소, 아, 명이 다한 후에 지옥으로 떨어져 다시 환생할 수 없게 될 것이오."
단예는 속으로 정히 당황하고 있었다. 왕어언이 화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구마지가 좌절감에 빠져서 하는 말을 듣고 동정심이 불쑥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사께서는 조금 전 몸이 편찮으셨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지셨습니까?"
구마지는 원래 슬기롭고 밝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불학의 조예도 매우 깊은 편이었다. 다만 무공을 연마하다가 승부욕이 강해져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이 엷어져서 오늘의 결과를 맺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는 진흙 바닥에 앉아 별안간 깨닫는 바가 있었다.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욕심, 사랑, 소유하고 싶은 마음, 매달리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야만이 해탈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떨쳐 버릴 수 없었으며 명예와 이득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오늘 무공을 깡그리 상실하게 된 것은, 부처님께서 올바른 길로 되돌아 와 해탈을 할 수 있도록 깨우쳐 준 일인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저질러 온 일을 생각하자 이마에서 땀이 송글 송글 맺어 떨어졌다. 참괴함과 상심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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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마지는 화를 당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을 얻은 셈이었다. 무공을 잃었으나 동시에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혔던 탐(貪)과 치(癡)의 마음 역시 떨쳐 버리고, 문득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지난 날의 잘못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상심하고 참괴함을 느꼈으니, 정말 축하할 만하고 기뻐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소설의 단예의 아버지인 단정순은 풍류를 좋아하고, 어느 하나에만 마음을 쓰지 않아, 일생 동안 풍류로 인한 정의 업보를 무수하게 남기고 다녔고, 여자들에게 혹은 "빠지고" 혹은 "성내고" 했다. 강민 외에는 이 여자들이 모두 그의 앞에서 죽어갔다. 모용복에 의해 살해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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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순은 훌쩍 몸을 날리더니 대들보에 꽂혀 있는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 검날에는 원성죽, 진홍면, 감보보, 왕부인 네 여인의 피가 묻어 있었다. 단정순은 네 여자가 시체가 되어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왕부인의 머리에는 진홍면의 다리가 얹혀져 있고, 감보보의 몸은 원성죽의 아랫배에 걸쳐져 있었다.
네 여인은 살아 생전에 자기를 위해 온갖 상사의 고통을 당했으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애통함을 맛보았다. 즉 즐거울 때는 적었고 근심할 때가 많았었다. 그런데 결국에는 자기 때문에 다 죽고 만 셈이 아닌가?
원성죽이 모용복에게 살해 당할 때, 단정순은 이미 그녀를 따라 죽으리라고 작정하고 있었다. 단예도 이미 자라 성인이 되었고, 문무를 겸비한 몸이 되어 대리국에서는 영명한 군주가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자기로서는 마음을 놓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돌리고 단부인에게 말하였다.
"부인, 정말 죄송하게 되었소.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이 여자들은 그대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소. 나는 그녀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며, 그대 역시 똑같이 진정으로 사랑했소."
단부인이 부르짖으며 말했다.
"여보......안 돼요!"
그녀는 몸을 날려 단정순에게 덮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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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순과 부인인 도백봉은 순사하고 말았다. 단정순이라는 사람은 정 때문에 살고, 또 정 때문에 죽었으니 미망에 빠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풍류를 즐기는 성격이었는데 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의 사랑에 대해 시종일관 성실했기 때문에 이처럼 순사할 수 있었던 것이니 그에게 가장 어울리면서도 가장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생사를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정순은 애정의 세계적 명수이자 대장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리하여 수많은 원한과 업보는 그의 죽음으로 일단락 되게 된다.

정말로 미망에 빠져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의 말로를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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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예와 왕어언은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고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소리가 들려 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모용복이 무덤 위에 앉아 있었고, 머리에는 높다란 종이로 만든 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아주 엄숙했다.
일곱, 여덟 명의 시골 어린애들이 무덤 앞에 꿇어 앉아서 고개를 조아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그리고는 마구잡이로 부르짖으며 엎드려 절을 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어린애는 손을 내밀고 부르짖었다.
"빨리 사탕과 떡을 주세요!"
모용복은 엄숙히 말했다.
"경들은 몸을 똑바로 하시오, 짐이 대연나라를 세우고 대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게 될 것이오."
무덤가에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바로 아벽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엷은 녹색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아름답고 풍성하던 얼굴은 퍽이나 초췌해진 빛을 띄고 있었다. 그녀는 대바구니에서 사탕과 과자, 떡 같은 것을 꺼내더니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모두들 착하지, 내일 다시 와서 놀아라. 내일 또 사탕과 과자를 주마."
그 음성은 흐느끼는 듯했고,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 대바구니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이들이 떠나가며 말했다.
"내일 다시 와서 놀자!"
왕어언은 고종 오라버니가 이미 착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귀 영화의 꿈에 더욱 더 깊이 빠진 것이라 생각하자 몹시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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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쳤다. 그렇다. 모용복은 미치고 만 것이다. 우리들이 본 그의 모습, 무덤가에서 황제의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은 분명 미친 것이었으나, 이 소설에서 그가 한 모든 행동이 언제 미치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소설 속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대부분의 사건들이 언제 미치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이 곳은 미친 세계이며, 이 소설은 미친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겠다. 아주 슬프고, 아주 악하고, 아주 무섭고, 아주 불쌍한 그런 이야기들을. 아마도 <<천룡팔부>>라는 이 소설 속에 오직 세 명의 주요 인물만이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그들도 미치고, 정에 빠지고, 어리석었던 적이 있었긴 하지만 말이다. 그것은 바로 단예, 허죽, 그리고 소봉이다.

우리들은 앞에서 단예와 허죽과 소봉, 이 삼형제가 모두 인간 세상의 희망이요, 등불이라는 점을 말한 바 있다. 그들의 지성지정(至性至情), 박애정신은 그들의 본성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들의 무예의 고강함과 영웅의 면모는 대항할 자가 없다. 확실히 단예는 "치(癡)"가 있었으나 "진(嗔)"과 "탐(貪)"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가장 지극한 애정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의 그러한 애정 어린 마음은 이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것이었으며, 그 높은 경지 역시 사람들이 미치기 힘든 수준이었다. 동시에,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비록 "정에 빠져 있었다"고는 해도, 반쯤은 불문의 제자로, 어려서부터 불경을 탐독한 바 있으며, 또 반쯤은 도가의 제자로 능파미보를 배웠기 때문에, 정에 빠졌어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점에 있다. 단예는 불가의 자비심과 도가의 소요(유유자적함)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정한 행복을 얻고 사계절이 봄과 같은 인생의 쾌락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허죽은 비록 "어수룩한" 면이 있었지만, 단예와 마찬가지로 지성지정(至性至情)한 사람이었다. "몽고(꿈속의 아가씨)"라고 이름 붙힌 여인으로 인해 파계한 뒤, 이 정을 잊지 못하는 동시에, 어려서부터 소림사에서 자랐고, 또 중간에는 도가 소요파의 웅혼한 내력을 얻어 소요파의 장문인이 되었으니, 저절로 "유유자적하는 즐거움"의 비결을 체득하게 된 동시에 불가의 자비심도 잊지 않아, 역시 그의 "영취궁"을 "서방 극락"의 정토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군영에서 단 둘이 나와 얘기하는 장면으로 소봉이 그간 있었던 일과 아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야율홍기가 벼슬을 올려 준다고 하자 사양하였으나 황제가 재차 근엄하게 명령하자 말에서 내려 예를 취하는 소봉
송왕의 직위와 평남대장군의 직책을 거듭 사양하는 소봉 소봉에게 송왕의 직책을 받을 것을 강요하는 야율홍기
야율홍기에게 군사를 일으키지 말 것을 간언하는 소봉 소봉이 계속 송 정벌의 명을 거역하자 순간 칼로 위협하는 야율홍기...소봉은 자신이 수행할 수 없는 명령이 두려울 뿐이다.
올 때엔 같이 왔으나 송을 침략하라는 명을 소봉이 거절하자 꼭 명을 받들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가 버리는 야율홍기 혼자 남겨져 심각히 생각하고 있는 소봉 - 한인을 해치지 않겠다는 자신의 맹세와 모국의 황제가 내린 명령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아니, 갈등하고 있다기 보다는 맹세를 지키기 위해 이 어찌할 수 없는 명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
도망치다 잡힌 소봉 감옥에 갇힌 소봉을 구하는 단예와 그의 부인이 된 왕어언
탈출하다 영취궁의 수하들과 함께 자신을 구하러 온 허죽을 만나 반가워 하는 소봉 - 세 형제의 재회 다시 방주가 되어 달라며 소봉에게 타구봉을 건네는 오장로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드는 요나라 군사에게 맞서는 소봉...그러나 차마 살수를 쓸 수가 없다. 야율홍기를 막으러 안문관으로 달려 가는 소봉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

죽은 소봉을 안고 슬퍼하는 아자이 세 사람 중에서 오직 호방한 기상을 지닌 교봉(소봉)만이 성현들의 말씀을 기록한 불가나 도가의 책을 읽지 않았고, 불가에도 도가에도 입문하지 않았으나, 영웅 협객의 면모를 지니고 있어 천하 영웅들의 숭배를 받았다. 최후에, 그는 대요나라의 왕이 되어, 송나라 강호 인사들의 원수가 되었고, 대요나라의 황제 야율홍기의 명령을 받아 병사들을 이끌고 송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남침했으니, 반드시 송나라가 망하게 된다고는 할 수 없어도, 원한 관계가 얽히고 섥히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하는 대신, 도리어 자기의 목숨과 무용을 걸고 대요나라 황제를 협박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돌아가 송나라와 요나라 국경을 평안하게 하겠다는 멩세를 받아낸다.

소설의 이 장면이 바로 전체 내용 중 가장 다채롭고 감동적인 단락이라고 하겠다. 소설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군사를 거두어 줄 것을 요청하는 소봉 요나라 군대와 대적한 후 소봉이 황제에게 송 정벌 중지를 요청하고 있을 때 허죽과 단예를 눈짓을 통해 야율홍기에게 달려든다.
허죽과 단예에게 잡혀 온 야울홍기를 만나는 소봉 송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결의의 맹세대로 같이 죽겠다고 위협하는 소봉
군사들을 향해 철군을 명하고 다시는 침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칼을 부러 뜨리는 야율홍기 철군하여 하며 소봉을 비웃는 야율홍기
민족에 반역한 자신의 죄를 사죄하며 자결하는 소봉 피흘리는 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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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봉이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소봉은 거란 사람입니다! 오늘 폐하를 협박하였으니 그야말로 거란의 대 죄인이 되었습니다. 차후에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겠소이까?"
그리고 그는 땅바닥에 떨어진 두 토막의 화살을 집어 들더니 내공을 돋구고 두 팔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을 푹 찔렀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부러진 화산은 그의 심장에 깊숙히 박히고 말았다.
야율홍기는 아, 하고 놀라 부르짖으며, 말을 짓쳐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서다가는 또 멈칫 서버렸다. 허죽과 단예는 그만 혼비백산해서 일제히 달려 들며 부르짖었다.
"형님, 형님!"
그러나 두 토막의 부러진 화살은 바로 심장에 박혀 있었고, 소봉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이미 숨져 있었다.
허죽은 재빨리 그의 가습팍의 옷자락을 찢고 구원하려 했으나, 화살이 심장에 박혀 있는지라 도저히 살려 볼 길이 없었다. 그런데 그 가슴팍의 살갗에는 푸르죽죽한 이리의 머리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 수놓아진 이리는 입을 벌려 치아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매우 흉칙했다. 허죽과 단예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땅바닥에 엎드렸다.
개방의 뭇 제자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큰 절을 했다. 오장풍은 가슴을 치며 부르짖었다.
"교방주, 그대는 거란 사람이나, 우리 못난 한나라 사람보다 만 배나 더 영웅이셨습니다!"
중원의 군호들이 하나같이 그를 에워쌌다. 많은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했다.
"교방주가 정말 거란 사람이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오히려 우리 대송나라를 도우려 하는 거지? 아마도 거란 사람들 가운데도 역시 영웅 호걸이 적지 않았나 보군." "그는 어릴 때부터 우리 한나라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나라 사람들의 인자함과 의리를 배운 것이오."
"두 나라에서 군사를 철수시킨다면, 그는 분규를 해결한 큰 공신이지 않소, 그러니 스스로 자결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가 비록 대송나라에 공이 있기는 하지만, 요나라에서 보면 반역자요, 매국노이니, 그게 두려워서 자살한 게지."
"뭐가 두렵다는 것이오? 교방주와 같은 대 영웅이 천하에서 두려워할 일이 뭐가 있겠소?"
야율홍기는 소봉이 자결하는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해서 생각했다.
"도대체 그는 우리 대요나라에 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잘못이 있는 것일까? 그는 나에게 송나라를 치지 말도록 극구 간하였다. 도대체 그는 송나라 사람을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일까, 아니면 거란 사람을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일까? 그는 나와 결의형제가 되어 시종 나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런데 오늘 안문관 앞에서 자결한 것을 보면 결코 남쪽 나라의 부귀 공명을 탐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그렇다면 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그는 고개를 흔들며 미미하게 쓰디쓴 웃음을 짓고는 말머리를 돌려 요나라 진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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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소봉을 부축하는 두 형제 소봉의 자결에 놀라는 야율홍기
철군하는 요의 군대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어린 자신을 던져 올렸던 절벽 밑을 바라 보며 숨을 거두는 소봉

소봉이 왜 죽었는지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누가 또 대 영웅을 알아 볼 수 있겠는가? 누가 소봉을 알아 볼 수 있겠는가? 누가 이 세상의 대협과 영웅의 면모를, 그리고 지성지정(至性至情)함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영웅의 희생과 인생의 승화를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며, 또 누가 인간 세상의 희망이요, 평화의 등불인지 알아 볼 수 있겠는가? 야율홍기는 알지 못했다. 오장풍도 알지 못했다. 아자도 알지 못했다. 중원의 영웅들과 개방의 제자들과 대리국의 신하들과 대요나라의 병사들도 알지 못했다.

영웅이란 것이 그의 성이 "교"씨인지 아니면 "소"씨인지에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대요나라"인지 "대송나라"인지에 있겠는가? 요나라와 송나라 두 나라의 군민과 백성들의 복을 위한 행동이었지, 어찌 요나라 혹은 송나라에서 부귀 공명을 얻기 위해서였겠는가? 인의롭게 천하의 수많은 "형제"들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 자기의 결의 형제인 야율홍기에게 죄를 지은 것이야말로, 대 영웅 호걸이 이 세상에 우뚝 서서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의를 행한 호쾌하고 고매한 행동인 동시에 진정한 인성의 승화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소봉은 죽었지만 영원히 살아 있다. 소봉은 죽었지만 그 죽음은 삶보다도 떠 뛰어나며, 영원히 천하 제일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잃지 않을 것이다. 소봉의 가슴에는 비록 푸르죽죽한 이리의 머리가 수놓아져 있었지만, 그는 진정한 사람이었고 인성과 인성의 희망이 깃들여진 화신이요, 상징이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가슴에 이리의 머리가 수놓아져 있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마음 속에 "이리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욕심과 분노와 정 때문에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이로 인해 이 밝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리가 횡행하고 마귀가 난리 치는, 인간 세상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혼돈의 세계로 바꿔 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이 <<천룡팔부>>가 나오게 된 진정한 이유일 것이며, 소봉의 죽음이야말로 이 <<천룡팔부>>의 "파얼화치(破孼化癡)"라는 진정한 주제요, 진정한 관계요, 진정한 연민이요, 희망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북쪽에는 교봉이 있고, 남쪽에는 모용이 있다"는 말이, 중원 무림에는 아직도 이러한 말이 전해지고 있는가? 소봉은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 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천여 년 후의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모용복은 비록 살았으나, 무덤에 앉아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으며, 영원히 혼을, 인성을, 진정코 빛나야 할 생명을 잃어버린 채 살아 있는 것이다.

<<천룡팔부>>라는 이 소설은 사람들의 마음과, 인성과, 인생과, 인간 세상에 관련된 깊은 우언(寓言:교훈)이다. 이 "대비대민, 파얼화치(大悲大憫,破孼化癡)"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에, 우리들은 이 소설 혹은 우언이 불교 사상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인 "천룡팔부" 역시 불경에서 따온 것이며, 그 뜻은 "모습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는 뜻이다.

이 <<천룡팔부>>는 불교의 철학 사상과 미학 사상을 흡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인성, 혹은 인성에 대한 인식 속에 내재한 욕심과 분노, 정 등등의 각종 병폐를 심각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그 의의는 이러한 욕심과 분노, 정과 같은 "인성 중의 독성"에 대해서, 그리고 또한 이로부터 생겨나는 "인생의 고통"과 "인간 세상의 죄과"에 대해서 명확히 폭로하고 분석하는 데 있다. 그 경계는 인생, 인간 세상, 인간의 마음, 인성과 같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대자대비한 연민과 초월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몇가지 점들이 있다.

첫째로는 이 <<천룡팔부>>가 그저 인성과 인생, 그리고 인간 세상에 대한 우언에 불과하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우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 소설은 특수한 각도에서 인성과 인생, 그리고 인간 세상에 대해서 조명한 것이므로, 인류 사회나 그 역사에 대해 완전하고 심도 깊은 개괄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소설 속에서 난세의 분쟁과 같은 "시대적 배경"에 대해, 그리고 "인간 관계의 서로 다른 층차"와 같은 "문화적 배경"에 대해, 그리고 서로 다른 정치, 경제, 심리적 배경에 대해서 언급하고는 있지만, 소설 속에서 이러한 배경은 그저 소설의 "우언(교훈)"의 배경일 뿐, 현실적인 심각한 의의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 세상의 고통의 원인과 인류 사회 역사 발전 및 그 원인, 그리고 인생 비극과 인성 비극에 대해 <<천룡팔부>>에서 전부 언급하고 있지는 못하므로, 독자들은 서로 다른 견해와 사상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두번째로, <<천룡팔부>>는 그저 일종의 "우언"일 뿐으로,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은 작가의 이상적인 개념의 산물일 뿐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관념의 연역(演繹)을 위해서는 인위적인 조작을 면할 수가 없다. 비록 이 <<천룡팔부>>가 아주 치밀하고 다채롭고 아름다우면서도 심도 깊게 구성되었다고는 해도 결국 인위적인 흔적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소원산이나 모용박 등등과 같은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애매모호하고 무미 건조한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뿐이 아니라, 장삼 입은 스님의 출현이나 그 설법이 약간 비약한 듯한 감을 주고 있으며, 그 결말 역시 약간 생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 또한 지적하는 것이다.

가장 중점을 두고 싶은 것은 바로 <파얼화치(破孼化癡)>가 전부일 필요는 없으며, <대자대민(大悲大憫)> 역시 진정한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까놓고 말해서, 이것은 그저 일종의 우언이자, 철학적인 이상이요, 예술적인 경계에 불과하다. 당연히 <大悲大憫, 破孼化癡>이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는 것"도 아니다.

세번째는 "삼독"에 대한 이야기에서 소위 "욕심, 분노, 정"이라는 이 세가지가 "인성(人性)의 독"을 말하는 것인지 "인심(人心)의 독"을 말하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또한 어느 정도일 때 "독"이고, 어느 정도 일 때 "독"이 아닌지, 그 "독"의 구별이 "어디"에 있는지도 불명확하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문제이다.

이것은 불교(종교)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과 인생에 있어서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것은 인성과 인심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 관련되어 있으며, 동시에 인간 세상과 인생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도 관련되어 있다. 아주 중요한 문제이므로, 신중하게 고려하고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천룡팔부>>는 인생과 인간 세상과 인심과 인성에 대한 "큰 우언(교훈)"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옛 사람들의 옛 사건에 대해서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허구적인 인물과 허구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고, 그 세계 속에 내재된 밝은 세상과 음험한 그림자를 아주 기이한 필치로 곡절하고 유한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번에 그 뜻을 다 깨닫기는 힘드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것도 당연히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우리들이 인정할 수 있는 점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 한가지 뿐이라고 생각된다.

이 <<천룡팔부>>은 보물을 숨긴 이름난 산으로, 와서 구경하고 유람하며 기이한 것을 찾고 신기한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라면 결국 무언가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실제로 각자의 수양과 견해, 사상에 따라 가능성의 여부에 의해 판가름날 일이다.

배우 이름 : 유도(飾 아주), 진호(飾 아자), 장흔(飾 목완청), 양예(飾 종령), 탕진종(飾 단정순), 종려제(飾 마부인), 왕해진(飾 몽고), 하새비(飾 섭이랑), 팽단(飾 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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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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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로토 | 작성시간 04.09.01 중국무협에 나오는 여자들은 왜 그렇게 이쁜지... ㅡ.ㅡ;; 모르겠네요.
  • 작성자moko | 작성시간 04.09.02 한국에 관해서 단 하나 나오죠. 그것은 서하공주가 정인을 찾기 위해서 비무대회를 개최했는데, 그 곳에 왕씨 성을 가진 고려왕자가 아닌 이씨 성을 가진 고려왕자가 참가해서 첫 판에서 패배하는 것이 유일하게 나오죠.
  • 작성자원화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9.06 중국쪽에서는 고려의 국성을 왕씨가 아닌 이씨로 알고 있나 봅니다. "청년판관 포청천"에서 고려의 태자와 왕자가 나오는데 이들도 이씨거든요. 이와는 별개로 "당태종 이세민"이 생각나네요. 고구려 원정길이 묘사되죠. 한 쪽 눈을 정말 찔리나 했더니 그냥 고이 돌아 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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