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의 문제로 인해서 사림파들을 대거 죽인 사화가 있다. 세조의 직계 후손인
연산군으로서 세조(세조의 등극이 성리학적인 명분론으로 보면 반역이 될수 있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글을 보면 어찌보면 그런 행동을 할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조작되는지 안 되는지 간에 그냥 넘어간다면, 소문에 소문이 이어져 자기의 임금 정통성에도 훼손이 가니 어쩔수 없이 할 수도 있다고 본다.중종이나 세조, 선조, 인조같은 임금들도 사람들을 대거 죽인 경우가 있으니 연산군을 옹호할 수있다.그리고 민초들이 피해를 입나, 양반네들이 피해를 입지..어찌보면, 어떤 민초들은 통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연산군때 두번째 사화도 마찬가지다. 자기 어머니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는데,
가만히 지켜볼 아들이 어디있는가! 거기에 왕권에 도전하는 신하들이 있으니 일석삼조로 그들을 처단할 수있다. 숙종은 여러차례 정치세력들을 바꾸어 가면서, 거기에
반역의 이유로 많은 양반네들이 처단되었다. 연산군의 사화도 어찌 보면 변명이
될 수 있다. 피해를 보는 것이야 양반네 소수고, 민초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겠나
오히려 자기네들을 괴롭힌던 양반들이 죽는다고 환호를 할 수있다. 민초들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그 이야기로 하거나 한 많은 이 세상 술안주 이야기로 때우는 수준일 것이다.
자기 큰 어머니 월산대군 부인 박씨와의 썸씽도 그렇다. 남들이 보면 불륜이라고 하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로맨스로 통할 수도 있다. 신라시대는 사촌간의 결혼등 근친상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배다른 여동생과 결혼한 고려황제도 있지 않는가! 이것도 변명이 되겠다.
그리고 궁궐 근처 가까이에 사는 민간인 집을 마구잡이로 헐어다고 해서 그렇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그 당시 궁궐가까이에 민간집이 위치했다는 것 자체가 법으로 위법이다.법대로 철거하겠다는 것인데, 그게 뭐가 잘못이 있는가... 그리고,
궁궐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이야 뻔하지 않는가 양반네들의 집이다. 그런 집들을 헐면 오히려 민초들은 통쾌하게 생각하지 않는가!너무 하다는 생각은 해도, 그냥 그렇구나 넘어갈 수도 있다. 하층민의 생각으로는...그래서 이것도 옹호할 수있다.
북한산 너머 백성들이 궁궐을 쳐다본다고 그것을 가지고도 입산금지 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백성들이 궁궐을 쳐다봐야 뭐가 되겠냐 하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차단할 수 있다.
한글 벽서사건을 가지고 한글을 금지시켰다고 해서 연산군을 나쁘게 보지만,궁궐에
한글을 연구하는 관서는 그대로 존속시켰다. 오히려 그 관청을 없애것 중종시기였다.
그리고 그가 주색에 빠진 것을 가지고 뭐라고 비판을 한다면, 조선 시대 국왕치고
주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한국 최고의 임금인 세종대왕도 색를
좋아하여 많은 후궁 상궁들에게 승은을 입히게 한 장본인이면서 자식도 많았다.
중국 최고의 황제 청나라 강희제도 아들만 해도 35명이 되지 않는가...
기타 여러가지로 연산군은 옹호할 수있다.
자신의 어머니뻘 되는 선왕의 후궁들을 범할뻔 했던 사건도 젊은이의 한순간의 혈기로 했다고 우격다짐식으로 옹호할수도있다. 국왕이 죽으면 승은을 입은 여인네들은
사가나 절간에 가서 일생을 마쳐야 하는데, 이런 후궁들이 아직도 궁궐에 남아있다는 것은 그 후궁들도 어딘가야 한 두가지 식의 죄목이 있지 않겠는가...
연산군이 궁궐에서 엽기적인 일을 많이 한 것에서 어찌 보면 반정세력들의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민초들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고, 그저 세상사 사는데 심심풀이 땅콩처럼 이야기감으로 돌리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도 조선팔도 전역으로 소문이 퍼져 간다는 것도 과장되겠다. 그래봐자, 서울과 그 근방의
민초들만 알지, 전국적으로 알겠는가...
그래서 앞서 말한것 처럼 연산군이 선군으로 옹호는 안된더래도 쫓겨가야 할 이유는
빈약하다. 반정 성공후 연산군이 총애하는 몇 몇 신하만 처단되지, 그 지배층은 그대로이지 않는가..박원종이 주도하는 반정공신 소수만 부각될 뿐이었다.
반정공신들은 연산군의 여인네들은 서로 나눠가지지 않았는가..한때 군주로 모신
연산군한테 그들은 그의 여인네들을 탐하지 않았는가..연산군이 신하들의 토지를
빼앗겠다고 하자, 지네 밥줄만 거들지 않으면 연산군이 뭐하나 그냥 그대로 있던 그들이 벌떼처럼 일어서지 않았는가...연산군이 쫓겨가야 한다면, 그 밑에 있는 놈들도 마땅히 쫓겨나야 한다. 연산군 혼자 북징고 장구 쳤는가...!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나는 연산군을 싫어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만 가지고 쫓겨나면, 연산군은 어찌보면 불쌍한 사람이겠지만...어찌 그것만 있겠는가!
오직 하나의 이유만으로 연산군은 용서가 안된다.
다른 조선의 국왕들 일부도 마찬가지로...
지배층의 양반들한테 어쩌니 궁궐이 어쩌니 해도, 그런것은 용서할 수있다. 조선태종과 세조도 궁궐과 지배계층한테 엄격하게 했었도, 역사적인 평가는 폭군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산군은 아니다. 그는 엄연히 폭군이다.
오직 단 하나...이 조선 팔도의 백성들을 어루 만져주지 않고 괴롭혔다는 이유.
수많은 예가 있지만,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다. 연산군이 진짜 옹호 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조선 팔도의 백성들을 어루 만져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국왕 통틀어 가장 최고의 왕권을 가진 그에게 옹호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이유다.
연산군으로서 세조(세조의 등극이 성리학적인 명분론으로 보면 반역이 될수 있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글을 보면 어찌보면 그런 행동을 할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조작되는지 안 되는지 간에 그냥 넘어간다면, 소문에 소문이 이어져 자기의 임금 정통성에도 훼손이 가니 어쩔수 없이 할 수도 있다고 본다.중종이나 세조, 선조, 인조같은 임금들도 사람들을 대거 죽인 경우가 있으니 연산군을 옹호할 수있다.그리고 민초들이 피해를 입나, 양반네들이 피해를 입지..어찌보면, 어떤 민초들은 통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연산군때 두번째 사화도 마찬가지다. 자기 어머니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는데,
가만히 지켜볼 아들이 어디있는가! 거기에 왕권에 도전하는 신하들이 있으니 일석삼조로 그들을 처단할 수있다. 숙종은 여러차례 정치세력들을 바꾸어 가면서, 거기에
반역의 이유로 많은 양반네들이 처단되었다. 연산군의 사화도 어찌 보면 변명이
될 수 있다. 피해를 보는 것이야 양반네 소수고, 민초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겠나
오히려 자기네들을 괴롭힌던 양반들이 죽는다고 환호를 할 수있다. 민초들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그 이야기로 하거나 한 많은 이 세상 술안주 이야기로 때우는 수준일 것이다.
자기 큰 어머니 월산대군 부인 박씨와의 썸씽도 그렇다. 남들이 보면 불륜이라고 하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로맨스로 통할 수도 있다. 신라시대는 사촌간의 결혼등 근친상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배다른 여동생과 결혼한 고려황제도 있지 않는가! 이것도 변명이 되겠다.
그리고 궁궐 근처 가까이에 사는 민간인 집을 마구잡이로 헐어다고 해서 그렇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그 당시 궁궐가까이에 민간집이 위치했다는 것 자체가 법으로 위법이다.법대로 철거하겠다는 것인데, 그게 뭐가 잘못이 있는가... 그리고,
궁궐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이야 뻔하지 않는가 양반네들의 집이다. 그런 집들을 헐면 오히려 민초들은 통쾌하게 생각하지 않는가!너무 하다는 생각은 해도, 그냥 그렇구나 넘어갈 수도 있다. 하층민의 생각으로는...그래서 이것도 옹호할 수있다.
북한산 너머 백성들이 궁궐을 쳐다본다고 그것을 가지고도 입산금지 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백성들이 궁궐을 쳐다봐야 뭐가 되겠냐 하겠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차단할 수 있다.
한글 벽서사건을 가지고 한글을 금지시켰다고 해서 연산군을 나쁘게 보지만,궁궐에
한글을 연구하는 관서는 그대로 존속시켰다. 오히려 그 관청을 없애것 중종시기였다.
그리고 그가 주색에 빠진 것을 가지고 뭐라고 비판을 한다면, 조선 시대 국왕치고
주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한국 최고의 임금인 세종대왕도 색를
좋아하여 많은 후궁 상궁들에게 승은을 입히게 한 장본인이면서 자식도 많았다.
중국 최고의 황제 청나라 강희제도 아들만 해도 35명이 되지 않는가...
기타 여러가지로 연산군은 옹호할 수있다.
자신의 어머니뻘 되는 선왕의 후궁들을 범할뻔 했던 사건도 젊은이의 한순간의 혈기로 했다고 우격다짐식으로 옹호할수도있다. 국왕이 죽으면 승은을 입은 여인네들은
사가나 절간에 가서 일생을 마쳐야 하는데, 이런 후궁들이 아직도 궁궐에 남아있다는 것은 그 후궁들도 어딘가야 한 두가지 식의 죄목이 있지 않겠는가...
연산군이 궁궐에서 엽기적인 일을 많이 한 것에서 어찌 보면 반정세력들의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민초들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고, 그저 세상사 사는데 심심풀이 땅콩처럼 이야기감으로 돌리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도 조선팔도 전역으로 소문이 퍼져 간다는 것도 과장되겠다. 그래봐자, 서울과 그 근방의
민초들만 알지, 전국적으로 알겠는가...
그래서 앞서 말한것 처럼 연산군이 선군으로 옹호는 안된더래도 쫓겨가야 할 이유는
빈약하다. 반정 성공후 연산군이 총애하는 몇 몇 신하만 처단되지, 그 지배층은 그대로이지 않는가..박원종이 주도하는 반정공신 소수만 부각될 뿐이었다.
반정공신들은 연산군의 여인네들은 서로 나눠가지지 않았는가..한때 군주로 모신
연산군한테 그들은 그의 여인네들을 탐하지 않았는가..연산군이 신하들의 토지를
빼앗겠다고 하자, 지네 밥줄만 거들지 않으면 연산군이 뭐하나 그냥 그대로 있던 그들이 벌떼처럼 일어서지 않았는가...연산군이 쫓겨가야 한다면, 그 밑에 있는 놈들도 마땅히 쫓겨나야 한다. 연산군 혼자 북징고 장구 쳤는가...!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나는 연산군을 싫어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만 가지고 쫓겨나면, 연산군은 어찌보면 불쌍한 사람이겠지만...어찌 그것만 있겠는가!
오직 하나의 이유만으로 연산군은 용서가 안된다.
다른 조선의 국왕들 일부도 마찬가지로...
지배층의 양반들한테 어쩌니 궁궐이 어쩌니 해도, 그런것은 용서할 수있다. 조선태종과 세조도 궁궐과 지배계층한테 엄격하게 했었도, 역사적인 평가는 폭군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산군은 아니다. 그는 엄연히 폭군이다.
오직 단 하나...이 조선 팔도의 백성들을 어루 만져주지 않고 괴롭혔다는 이유.
수많은 예가 있지만,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다. 연산군이 진짜 옹호 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조선 팔도의 백성들을 어루 만져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국왕 통틀어 가장 최고의 왕권을 가진 그에게 옹호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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