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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은행 셔터를 내리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작성자최승호|작성시간12.09.15|조회수21 목록 댓글 0

은행 고객에게 오후 4시는 마감이지만 은행원에게는 새로운 업무의 시작 시간이다. 서울 북창동 신한은행 소공중앙지점 직원들이 오후 4시 영업시간이 지난 뒤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오후 4시면 은행 셔터는 어김없이 내려간다. 문을 닫은 은행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객들은 “일찍도 문 닫네”라고 하소연하지만, 이때부터 은행원은 ‘진짜 일’을 시작한다.

■ 오후 4시는 또 다른 시작

지난 5일 오후 4시10분. 서울 북창동 신한은행 소공중앙지점. 고객이 다 빠져나갔지만 ‘관리 업무’를 시작한 직원들의 손길은 여전히 분주하다. “오후 4시 이전에는 영업, 4시 이후에는 관리”라는 게 소공중앙지점 ‘넘버 4’ 박종헌 차장(41)의 얘기다. 박 차장은 일반상담 및 입출금 전용 창구를 총괄하는 일을 맡고 있다.

창구에서는 이날 하루 고객과 주고받은 현금을 정리하는 ‘시재’ 마감이 한창이다. 전산망에 입력한 금액과 실제로 남아있는 현금을 맞춰보는 것이다. 입출금 전용 창구에서 일하는 황수지 주임(25)은 입사한 지 한 달 된 ‘새내기’ 은행원이다. 그는 “은행에 입사하기 전에는 은행원은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4시 이후가 더 바쁜 것 같다. 특히 시재 마감은 마지막 확인 절차이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마감이 끝나면 쉽게 피곤해진다”고 말했다.

시재를 마감한 김수진 주임(26)의 책상 위에 놓인 현금은 모두 65만7200원. 같은 권종별로 100장씩 묶은 것은 출납 담당에게 넘기고, 100장이 안되는 지폐와 동전은 따로 모아 각 창구 담당이 개인 박스에 담아 금고에 보관한다.

■ 돈 모자라는 게 맘 편해

시재는 남아도, 모자라도 골치다. 남는 금액은 주인을 찾아줘야 하고, 모자라면 자신이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현 대리(30)는 “시재 마감을 하는데 시재가 다르면 찾을 때까지 집에 못간다”며 고생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신 대리는 “몇 만원이 모자랐던 것 같은데 밤 11시30분까지 찾았지만 끝까지 못 찾아서 결국 내 통장에서 인출했다. 마음이 아팠다”며 웃었다.

창구 직원들은 자기 돈을 채워 넣더라도 시재가 모자라는 게 남는 것보다 속이 편하다고 전한다. 시재가 남았다는 건 고객에게 줘야 할 돈을 덜 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시재 마감을 끝내면 수표와 공과금 마감이 기다리고 있다. 신한은행에서 발행했다가 되돌아온 수표는 현금을 지급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재하면 끝이다. 다른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와 공과금 납부 영수증은 스캐너로 이미지를 복사해 컴퓨터에 저장한다. 이미지 처리를 끝낸 수표와 수납 영수증을 장바구니 크기의 검은색 행낭에 넣어 본점 업무지원센터로 보낸다.

행낭에는 마감이 끝난 다른 은행 수표와 시·구청으로 보낼 공과금 수납 영수증, 다른 지점으로 보낼 서류 등을 넣는다. 행낭의 운반은 금융안전요원이 담당한다. 금융안전요원은 영업이 끝난 후 각 지점에서 행낭을 넘겨받아 본점 업무지원센터로 운반하고 다음날 오전 다시 각 지점에 돌려준다.

■ 4시 이후에도 고객은 왕

정문 앞 셔터는 굳게 닫혀 있지만 ‘뒷문’은 열려있다. “대한민국에 안되는 게 어딨어!”라고 외쳤던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영업시간 이후에도 얼마든지 은행 일을 볼 수 있다. 대만계 여행사를 운영하는 조정호씨(58)는 영업시간 이후 은행 출입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여유 있게 뒷문을 통해 들어온 조씨는 “법인통장을 새로 만들고 인터넷 뱅킹도 신청하러 왔다”고 말했다. 조씨가 은행 일을 마치고 다시 뒷문으로 나간 시각은 오후 4시30분. 청원경찰 이상용 반장(54)은 “영업시간이 끝나도 은행 안에 들어와 있던 손님이 일을 다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고 전했다. 대부분 은행 지점은 단골고객을 위해 오후 5시까지 뒷문을 열어놓는다.

각 지점 금고에는 항상 일정액의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 소공중앙지점은 들어오는 현금보다 나가는 현금이 많아 지점에서 필요한 만큼 본점 업무지원센터에 신청해서 받는다. 요즘처럼 추석을 앞두고는 현금, 특히 신권에 대한 수요가 많아 본점에 신권을 많이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지점과 본점 간 현금 이동 역시 금융안전요원이 행낭과 비슷한 가방에 담아 운반한다. 현금 행낭은 보안을 위해 일반 행낭보다 여러 장치를 추가했다.

■ 금고 털릴 가능성 0.1% 미만

영화에서처럼 은행 금고가 털릴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박종헌 차장은 “0.1% 미만”이라고 잘라 말한다. 일단 금고 앞까지 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점 내 금고까지는 이중 삼중 잠금장치가 돼 있고, 보안업체와도 연결돼있다. 운 좋게 금고 바로 앞까지 갔더라도 금고 문을 열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박 차장은 “금고 내부에는 진동 감지기, 적외선 감지기 등 보안장치가 돼 있다”며 “금고 외부의 쇠 강판을 뚫기 위해 진동이 생기거나 화재로 인해 열이 발생하면 바로 경보가 울려 보안업체와 경찰이 출동한다”고 말했다.

“지점 금고 안에는 어느 정도의 현금이 있는지” “현금 행낭에 5만원권을 가득 채우면 얼마인지” 등을 묻자 “보안상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0.1% 미만이지만 애초부터 그 가능성의 싹마저 트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일반상담 창구 막내 박지환 주임(26)은 고객과 대출 관련 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출은 신청 후 승인이 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영업시간이 끝난 뒤 알려주는 일이 많다. 그는 “오늘 영업시간에 대출 상담을 받은 고객이 있어서 그 고객에게 앞으로 얼마 더 나갈 수 있는지 설명해주려고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일반상담 창구를 총괄하는 박종헌 차장이 박 주임을 호출했다. 그는 해외송금 건 중 청구서 번호가 잘못된 게 있다며 박 주임에게 고치라고 지시했다. 박 차장은 “영업시간 중 처리한 서류를 확인하는 지금이 하루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며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라 긴장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셔터를 내리고 난 후라 자유롭다. 고객들이 있으면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드는데 지금은 빨리보다 정확히 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쁜 영업시간에 하지 못한 문서작업도 오후 5시 이후의 주요 업무다. 기업상담 창구의 외환담당 이태진 대리(36)는 대출 연기를 신청한 기업의 전망, 연기 신청에 대한 의견 등을 문서로 작성하고 있었다. 이 대리는 본부 기업여신심사부에 신청 기업에 대한 정보, 자신의 의견을 종합한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 마감 이후, 은행원은 전화를 건다

기업 고객은 오후 4시 이후 은행과 연락하는 일이 잦다. 이 대리는 “사정이 있어 결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조금 기다려달라고 미리 전화를 해오면 마감 이후에 오시라고 해서 일을 처리한다. 업체와의 관계도 있으니 안된다고 딱 자를 수도 없다”며 웃었다.

투자형상품, 파생상품 등 다소 복잡한 신상품이 나오는 요즘은 전화를 이용한 홍보도 영업시간 후 해야 할 업무 중 하나다. 김수진 주임은 컴퓨터로 고객에게 ‘만기일이 다 됐다’는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김 주임은 “주로 오후 5시30분부터 고객에게 전화해 새 상품 가입을 권한다. 고객이 은행에서 업무를 보다가 불쾌한 부분이 있었는지 사후 관리를 하기도 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품 안내나 만기일 알림 이외에도 한 달에 한 번 안부 인사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 주임이 고객에게 보낸 문구는 ‘가을 하늘처럼 청명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소공중앙 김세미 주임’이었다.

각 지점은 현금을 보관하는 금고와 함께 소공중앙지점처럼 고객의 개인금고인 대여금고를 갖춘 곳도 있다. 영업시간을 마친 뒤 금고를 확인하고 마감하는 절차 또한 중요하다. VIP 창구의 김선미 주임(29)은 대여금고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대여금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대여금고가 자동으로 닫히자 문 밖에 설치된 잠금장치를 또 채웠다. 대여금고 열쇠와 VIP 창구 직인은 또 다른 금고에 넣어 보관한다.

오후 7시25분. 직원들이 모두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이날은 매주 수요일 ‘가족과 함께하는 날’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었다. 박 차장은 “은행원이 일찍 퇴근하는 줄 아는데 마무리하다 보면 오후 8~9시 넘어서 퇴근하는 게 보통이다. 일이 많을 땐 오후 11시까지 있기도 한다”면서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일찍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태진 대리가 뒷문 보안장치를 잠그고 일지에 자신의 이름과 잠근 시각, 보안업체 담당자의 이름을 적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한 후 은행 앞에서 헤어졌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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