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4년 된 감나무

작성자손국정|작성시간26.06.07|조회수40 목록 댓글 0

4년 된 감나무

 

알다시피, 상주는 감나무로 이름이 나 있다. 물론 누에고치 양잠과, 흰 쌀밥 백미와 감나무의 곶감, 이렇게 삼백의 고장이기도 하다. 인근 점촌에 살면서 감나무를 볼 때마다 늘 상주 감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세종대왕께서 주무시고 계시는 여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사과나무도 좋지만, 마당 가에 감나무를 심고 싶었다. 곶감도 만들고, 홍시도 따먹을 생각에서 그랬다. 감은 꼭 여름밤에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벽에 동네를 돌면, 떨어진 감들을 많이 주울 수 있다. 반쯤 쪼개면 매끄러운 속살이 나온다. 마치 젤리 같이 말랑말랑한 것을 입에 넣으면, 그 달콤한 맛이란 과자와 비교할 수가 없다.

 

생각날 때 해야지 하고 장날 감나무를 보러 갔다. 나온 묘목들이 하나 같이 작았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키가 고만고만한 것밖에 없다. 이래 작은 감나무에 감이 열릴까, 하며 망설이고 있었는데, 감나무 장사는, “금세 큽니다. 굵고 맛 좋은 감이 4년만 있으면 주렁주렁 달릴 겁니다!” 하고 걱정을 놓으라고 했다. 그래도 속으로는 저래 작은 걸 사서 언제 감을 따 먹겠나 했다.

 

맘에 별로 들지는 않았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사도 될 것 같았다. 해마다 무럭무럭 자라겠지, 하면서 만 원을 주고 한 그루 샀다. 사놓고 와서 보니, 여주에는 기온이 낮아서 감나무가 잘 안된다고, 했다. 걱정이 좀 됐다. 감나무는 날씨에 민감한 모양이다. 누가 그래는데, 감나무는 동양적인 나무라고 했다. 일본이나 중국 등 동양에만 있고, 유럽이나 미국에는 없다고 한다. 이 말이 정말인지 모르겠다.

 

이제 만 4년이 됐다.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어야 할 감나무였다. 묘목을 사 와서 심은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가늘고 호리호리한 줄기도 그렇고, 작달막한 키도 그대로다. 연약한 마른 꼬챙이 하나 꽂아 놓은 듯이 보였다. 아예 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어린아이로 지내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크면 클수록 비바람에 시달리고, 감을 생산하기 위해 고생은 하겠지. ‘난 지금이 좋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빈약한 체질에서 감이고 뭐고 열릴 수가 없어 보였다. 만일에 열린다고 하면, 감 무게에 견디지 못해 줄기가 두 동강 날 게 뻔했다.

 

뭐든 자기가 한 것에 애착이 간다. 내 손으로 처음 심어 보는 감나무라서 관심과 기대가 컸다. 그리고 4년을 믿었다. 4년 정도야 못 기다리겠나 하며,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어 4년을 모셨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꽃을 피워야 감을 딸 텐데, 꽃을 내지 않는다.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감꽃을 생각하니, 앙증맞은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준 누나들이 떠오른다.

 

정말이지 나무한테 그렇게 지극정성을 다 해본 건 처음이다. 초겨울부터 감나무 줄기를 헌 담요와 비닐로 꽁꽁 묶어 방풍을 해주었고, 겨울마다 얼어 죽을까 봐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올렸다. 처음 1년은 죽은 나무였다. 야가 여기서 와서 얼어 죽었구나, 했다. 여주에선 감나무가 안 되는 가보다, 했는데, 어느 날 좁쌀 만한 눈이 나오더니 당나귀 귀만큼이나 큰 잎 되었다. ‘이런, 나를 놀리나!’ 예상도 못한 일이 벌어진 거다. 너무 신기해서 장하다, 감나무야! 죽지도 않고 잎을 냈구나!” 하면서 기뻐했다. 그다음 해도 겉보기엔 꼭 죽었었다. 이번엔 정말로 죽었구나! 했더니, 일본 목련잎처럼 넓적한 잎을 내주었다. 그다음 해도, 그다음 해도, 똑같이 그랬다. 잎은 허용해도 감은 안 되는 모양이다. 감 한번 얻어먹기 힘들다. 잎을 내며 나를 애타게 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덩치는 사 온 그대로였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넓은 잎뿐이다. 그 작은 나무에서 코끼리 귀 만한 잎을 내다니! 놀라웠다. 잎은 이렇게 큰데, 줄기는 왜 그대로일까,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다. 나무가 하도 안 커서 거름도 주고, 그 주위에 김도 매주고 했다. 남들이 안 하는 대단한 걸 해주었다. 하지만, 키는 그대로 멈춰서서, 전혀 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거름을 주어도 쓰다 달다 말이 없다. 표가 나지 않는다. 내친김에 나무에 좋다는 영양제 비료도 사서 주고, 엄마 아부지한테 말해보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었지만, 달갑지 않은지, 묵언수행에 열중이다.

 

올해로 5년이 시작되는 이즈음에도, 맹 그대로, 맹 그 모습이다. 무려 4년이나 지났으면, 줄기가 좀 굵어진다든가, 키가 콩나물처럼 멀쑥하게 커진다든가 무슨 변화가 있어도 있어야 했다. 도무지 변화가 없다. 뭐 때문에 고집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안녕, 저녁에도 안녕하며 들여다봐 주는데도 그렇다. 가느다란 줄기가 안쓰러워, 만져주면서 덕담도 했다. “감나무야, 살도 좀 찌고, 꽃도 좀 내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잎만 내고 들은 체도 않는다. 잎이 영양분을 독식하고 있어서 그럴까? 두고 볼 일이다.

 

이젠 일과가 됐다. 아침에도 보고, 점심때도 보고, 나갔다가 돌아와서도 본다. 감나무하고 늦바람이 난 사람은 나밖에 없지 싶다. 이 이상 어째 더 잘해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래 빈약한 나무에게 감을 바라는 내가 잘못이기도 했다. 1, 2년을 더 기다린다고 감이 열릴까? 아닌 것 같다. 지금 상태로는 몇 년 더 가도 열리지 않을 것만 같다. 가는 줄기에,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찰 텐데, 감을 내놓을까. 감나무를 볼 때마다, 안 됐다는 생각만 든다. 하기는 감나무 칠 절 중에서 다섯째인 霜葉可玩이 있다. 단풍 들어 아름다운 잎을 보여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