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아주 아주 오래전에 서울에 사는 큰고모 집에 갔었다. 처음 가보는 서울이고, 고모 댁이었다. 며칠 머물지 않았지만,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청소였다. 고모는 성품이 조용하고, 부지런한 분 같았다. 할 일도 많을 텐데, 아침을 청소로 시작한다. 넓은 2층 집을 혼자서 쓸고 닦고 하신다. 내가 보기엔 방과 가구들이 손댈 수 없이 깨끗했다. 여기에 더해 광을 내려는지, 구석구석을 닦았다.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속으로, 결벽증이 있으신가 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이래 깨끗한데도 또 닦아요?” 그랬더니, “자고 나면 먼지가 나와, 그냥 두면 차곡차곡 쌓여서 그래!” 내 눈엔 안 보이는 것이 고모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다.
청소가 유행인지, 우리 집도 그렇게 한다. 내 눈엔, 안 해도 될 청소를 습관적으로 하는 것같이 보였다. 깨끗이 해놓으니까, 내가 괜히 조심스럽다. 마누라가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정리 정돈을 하면 신경이 쓰인다. 청소기도 내 등산화만큼이나 식겁을 먹는 모양이다. 그동안 청소기를 몇 대나 교체했다. 전선을 달고 다니다가, 줄 없는 청소기로 하니 편한지 청소기가 쉴 날이 없다. 취미 생활치고는 힘들어 보였다. 활동에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청소할 폼을 잡으면 TV를 보다 말고, 나갔다가 들어온다.
알고 보면 나도 청소깨나 하는 편인데, 청결 마누라가 알아주지를 않는다. 어떤 때는 좀 미안스러워, “마누라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했다. 말을 해놓고 보니 청소를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체면치레 인사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오면 “어디 한번 해보시오!” 하고 기계를 넘겨줄 만도 한데, 소음에 못 들었는지, 대답이 없다. 나중에 하는 말씀이, “내가 하면 청소를 두 번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어릴 때부터 청소 당번을 해 온 사람인데, 섭섭했다. 국민학교(당시 명칭) 땐 숙제와 일기를 안 해왔다고 화장실 청소까지 한 사람이었고, 마루 결 따라 하는 밀대 청소가 재미있어, 강당 같은 넓은 곳을 혼자 다 닦은 역전 용사였었다. 이런 경력자를 무시한다고? 잘 됐다. 이참에 청소는 졸업이다. 이때 문득 든 생각은 톰 소여가 담장 벽에 페인트칠하는 게 떠올랐다. 폴리 이모의 명에 따라 억지로 하는 따분한 일이었다. 그때 마침, 사과를 먹으며 다가온 벤에게, “아이들에게 담장에 회칠할 기회가 어디 매일 있을 것 같냐?” 하며 호기심을 일으킨 작전이 성공해, 줄줄이 모여든 친구들한테 뇌물을 받아 가며 일을 시킨, 톰 소여가 떠올라 입이 벌어졌다.
요즘 와서, 그렇게 잘하던 청소 마누라가 무릎관절이 아파, 굴신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좋아하던 취미 생활에 종을 친 거다. 어쩌다가, 정말로 재고 재다가 한 번 하는 정도였다. 청소를 못 해서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러나 마나 구경만 하던 내가 난감하게 됐다. 마누라야 취미였지만, 내 취향은 TV였다. 총 질을 해대는 서부영화에, 거구의 레슬러들이 벌이는 난투에, 초원을 지배하는 맹수들의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 하며, 이렇게 끼고 살던 TV하고 이별하면, 난 어쩌나! “이별은 싫어 추억의 그림자가 너무 많아!” 홍수철의 ‘철없던 사랑’이 입에서 맴돈다.
신형 청소기는 바닥 청소엔 문제가 없다. 바닥 위의 가구들이 문제다. 일일이 닦아야 했다. 생각만 해도 내키지 않은 일이다. 말년에 취미까지 바꿔가며 살아야 하나, 이제 와서 손을 뗄 수가 없다. 밥이나 얻어먹고 살려면 흉내는 내야 했다. 지인들은 속도 모르고, 저 집 양반은 가정적이라고 한다. 청소에서 설거지까지 다 하는 줄 안다. 이러다가 나도 관절에 이상이 생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나 하고 무릎관절에 차도가 있는지 물었다. 맹 아프고, 보행에 불편하다고 호소 한다. 전문 병원에, 한방병원에 그렇게 다녀도 맹 그렇다고 했다. 이런 일이 다 있나! 이참에 인공 관절을 해 넣어야 하나, 마나,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은 그럴 단계는 아닌 모양이다. 참 안 됐다. 이제부터 청소는 로봇한테 시켜야 한다. 구석구석 먼지를 제거하는 것은 로봇밖에 없다. 기계를 앞세우면 땀 흘릴 필요도 없고, 무릎관절을 다칠 일도 없다.
나야 평생 청소를 해온 마누라님에 비하면 해놓은 것이 없지만, 직접 내가 청소한다면 마누라처럼 되는 건 시간 문제 같았다. 오늘도 샤워하기 전에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만 들고 조금만 설쳐대도 땀이 뚝뚝 흐른다.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 닦기가 바쁘다. 땀 닦으랴, 기계 돌리랴, 정신이 없다. 뭐든 스스로 해봐야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먼지란 게 구석을 좋아하는 걸 알았다. 청소기가 들어가지 않는 구석진 곳이 저거들 본부였다. 점잖은 먼지는 보통 바닥에서, 자는 듯 누워있다. 기계만 들이대면 그냥 빨려온다. 하지만, 침대 밑은 먼지들의 휴게실이다. 걱정 없이 소복하게 모여있다. 눈에 안 띄는 줄 알고 있다가 기계로 휘저으면 순식간에 흡입되고 만다. 청소기의 밥이다.
하지만, 먼지들 중에도 까부는 놈이 더러 있다. 이들의 속성은 끼리끼리 똘똘 뭉쳐 나돌아 다니는 걸 좋아한다. 특히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 타고 민들레꽃처럼 둥글게 뭉쳐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맨 처음엔 뭔지 몰랐다. 가만히 보니 먼지 뭉치였다! 겨우 청소가 끝나, “청소 끝!” 하면, 변신한 로봇처럼 산들거리며 나타난다. 이 먼지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다. 이불을 들썩일 때나, 바지를 입고 벗을 때나, 창문을 열 때나, 춤을 추며 뭉쳐 다닌다. 정말 힘들게 청소를 해놨는데, 다 해놓은 밥에 모래를 뿌리는 녀석들이다. 먼지도 사람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