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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작성자손국정|작성시간26.06.21|조회수22 목록 댓글 0

느티나무

 

어떤 이는 꽃에 빠지고, 어떤 이는 나무에 꽂혀 산다. 꽃과 나무를 다 좋아하면 욕심부리는 것 같아, 난 나무와 조금 가깝게 지내는 편이다. 이래 보면,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들은 수도 없이 많다. 담장 넘어 장미와, 가로수가 된 이팝나무와, 한여름을 노랗게 물들이는 7월의 모감주나무와, 추운 겨울을 붉게 장식하는 공원의 동백나무처럼, 색깔 이쁘고 향기 좋은 꽃나무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이런 나무를 보면 그 속에서 놀고 싶다. 어딜 가든 처음 보는 나무가 있으면, 무슨 나무인지 이름이 궁금해서, 옆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동네 분들에게도 물어본다. 무슨 나무라고 알려주면, ‘맞아, 책에서 본 나무였어’, 하면서 첫눈에 알아보지 못한 나를 탓한다.

 

나는 느티나무와 인연이 있다. 그 나무는 상산 국민학교(당시 명칭) 운동장 한쪽에 서 있던 노거수였다. 6년 동안 늘 보던 나무라서 보면 반갑다. 그래서 어딜 가든 느티나무만 보면 동심으로 돌아가고,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모교의 느티나무는 우람한 몸통에 터널 같은 구멍이 생겨, 밑에서 쳐다보면 하늘이 보였다. 아이들은 구경을 했지만, 난 그 구멍을 통해 올라가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놀았다. 그때 마침 교무실 창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 일직하시는 선생님이 뭐라 하실까 봐 허둥지둥 내려오다가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때는 느티나무에 왜 그런 터널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오래되면 그렇게 되나 보다 했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뿌리도 아나콘다 뱀처럼 구불구불 땅 위로 솟아나 얽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된 느티나무마다 속이 비어있는 걸 알았다. 느티나무는 제 스스로 속을 비우고 있는 것이다. 청렴결백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몸속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거의 모든 노거수 느티나무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렇다. 간혹가다 보면 속이 파인 다른 나무들도 있지만, 느티나무 경우하고는 양상이 달랐다.

 

느티나무는 넓은 공간을 선호한다. 동네 어귀, 고개 중턱, 교정의 구석 등, 외롭게 서 있다. 그래서 그런지, 느티나무는 넓은 공간에 우뚝 선 대궐 같은 존재로 보였다. 그 스스로 화려한 곳을 찾지 않으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를 영광스럽게 해준다. 나무 자체는 소박하다. 그는 결코 도시를 그리워하지 않고, 외진 곳에서 단아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왜 노거수 느티나무는 굵은 몸통에 터널을 낼까? 어느 책에는 느티나무 내부의 수분을 증발시키기 위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 설이 맞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척척박사 AI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검색을 해봤다. 요약하면, “오래된 느티나무 속의 목질부가 일반 균이나 부후균에 노출되면, 썩거나 부패하여 空洞처럼 비게 된다.”고 했다. 맞는 말씀 같다. 모교의 느티나무 속을 지나갈 때, 썩는 냄새와 썩은 가루가 거미줄에 얽혀 있는 걸 봤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 중 귀신하고 관계되는 설이 있다. 주로 성황당 앞이나 동네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가 대상이다. 이래 보면, 울긋불긋한 긴 천으로 느티나무에 치장을 해놓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무당들은 기도하고 굿을 하기도 한다. 다른 나무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느티나무가 나무 중에 가장 오래 사는 나무라서 그럴까, 나무의 수명을 보면, 1 느, 2 팽, 3 은, 4 소, 회, 향 순이다. -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향나무 순으로 오래 산다고 한다. 오래 사는 나무는 대체로 몸집이 크다. 느티나무는 보통 오백 년에서 길게는 천년을 산다. 물론 주목도 오래 살지만, 덩치가 왜소하니까 여기선 제외된다. 오래 사니까 보통 나무와 다르고, 뭔가 영험한 것이 있지 않나 한 것 같고, 큰 바위에 빌듯이 오래되어 우람찬 느티나무한테 비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무당이나 길손들이 기도를 하는 것은 느티나무 자체를 숭배해서라기보다, 느티나무를 매개로 신비로운 신령님이나 귀신과 통하려는 일종의 연결고리로 인식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귀신 이야기하면 생각나는 건 도덕 시간이다. 윤리 선생님이신데, 이야길 잘하셨다. 자로라는 사람이 공자께 귀신 섬기는 일을 물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귀신의 정체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유명한 공자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하고 귀를 세웠다. 기대한 대답과 크게 달랐다.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느냐.” 하셨다. 난 귀신 이야기가 재미있겠다 했는데, 기대는 어김없이 허탈하게 끝난다. 엉뚱하시다. 이번엔 그가 죽음에 관해 묻자, “삶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리오!” 했다고 한다. 동문서답 같기도 했다. 공자님 또한 귀신과 죽음에 관해 생각을 좀 하셨을 텐데, 철학적인 말씀으로 대신했다. 물론 이 답에는 깊은 뜻이 있겠지만, 우리 인간 모두 절실히 알고 싶은 질문인데, 성자이자 철학자인 공자의 답은 약간 허망하게 들렸다.

 

느티나무는 자랑할 거리가 많은 나무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나뭇결이 너무 아름답다는 거다. 예전에는 목조 불상을 느티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격이 높은 나무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이야 테이블 밥상을 사용하지만, 내 어릴 때는 둥글게 된 두리반 밥상 앞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그 두리반 밥상 또한 느티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니까, 그 옛날부터 알아주는 나무였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잘 썩지 않고, 습기에도 강해서 고급 가구재로 썼지 싶다. 느티나무의 겉껍질은 매우 투박하다. 겉은 꺼칠꺼칠한데, 나뭇결은 곱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목수 하시는 분들은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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