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를 이용한 탄소격리 건축 공법이 오리건 주를 시작으로 미국의 도시 환경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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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재 합판으로 만든 고층건물은 콘크리트보다 건설비가 적게 들고 재난시 더 안전하다.

자그마한 수공예품의 중심지였던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가 1세기 전 건축자재를 사용한 건축 혁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는 최대 12층 고층건물에도 목재, 구체적으로 말해서 오리건숲 더글라스 전나무로 만든 CLT(cross laminated timer, 직교적층목재) 등의 집성재가 사용된다. 오리건주 여기저기서 고층 목조건물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목재 건설붐이 미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온다.

철근과 콘크리트의 영역이었던 고층건물을 대형 목재패널로 건축하는 공법은 호주와 유럽에서는 이미 사용하지만, 미국에서는 거의 없었다. 목재를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철근과 콘크리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자연재해에도 안전한 건물을 세울 수 있다. 비록 죽은 나무를 재료로 쓰지만 환경에도 훨씬 더 좋다. 콘크리트는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반면, 목조건물은 탄소를 목재 속에 저장해 대기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이다.

과거 목재를 전 세계 곳곳에 수출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포틀랜드에서 지금은 미국 최고층의 목조건물 건설이 진행 중이다. “진정한 미래의 물결”이라고 포틀랜드에 8층짜리 고층 목조건물을 계획 중인 건축가 벤자민 카이저는 말했다. 그는 콘크리트를 대신하는 CLT가 더 가볍고 강하며, 친환경적이라고 말했다.

콘크리트 주요 성분 중 하나가 시멘트다.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석회암이나 유사 물질에 열을 가해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시멘트 가열 온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시멘트 1t을 생산하려면 약 1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고 유엔은 추산한다. 콘크리트는 지구상에서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물질로 시멘트 생산은 인간 활동을 통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최대 8%를 차지한다.

목재를 건축자재로 선택해 시멘트 의존도를 줄인다면 또 다른 혜택이 있다.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춰준다. 살아있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나무는 베어진 다음에도 부식되기 전까지 흡수했던 이산화탄소의 일부를 계속 저장한다. 다시 말해, 목재로 건물을 지으면 격리된 탄소를 저장할 곳을 마련하는 셈이다. 물론, 나무는 죽어서 목재로 만들어졌을 때보다 살아있을 때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다. 그러나 CLT 등의 목재 패널은 수령이 20~25년밖에 안 된 상대적으로 어린 나무 조각을 모아서 만든다고 카이저는 말했다. 오래된 나무로 이뤄진 숲만큼 많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딱정벌레가 좀먹거나 다른 이유로 이미 죽어버린 나무로 CLT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카이저의 사무실은 그가 설계한 또 다른 건물에 있다. 사방이 목재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원목 바닥은 은촉붙임으로 연결됐고, 그 위를 지지하는 천장은 나무 대들보가 가로지르며 떠받친다. ‘라디에이터’로 불리는 5층 건물의 물 흐르는 듯한 구조는 나무 기둥이 지탱하고, 기둥 안쪽의 뜰에는 나무로 틀을 만든 염색체 모양의 흰색 벤치가 죽 늘어섰다. 그의 회사 카이저 디자인은 100년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100% 목조건물이 탄소를 격리·저장하는 친환경적 특징을 확실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들은 ‘라디에이터’를 통해 수백 년 전부터 건축자재로 사용해온 목재를 상업용 고층건물에서도 사용할 수 있길 희망한다.

펄 디스트릭트 윌래밋 강 건너편에 위치한 레버 아키텍처는 다른 형태의 목조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100년 전 창고를 개조해 만든 건물이다. 수령이 높은 더글라스 전나무로 만든 흰색의 거대 나무 기둥은 2×6 구조목을 모로 세워서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바닥을 지탱한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고층건물이 들어서기 전, 과거의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레버 아키텍처는 과거와는 다른 차세대 목조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12층 주상복합 건물 프로젝트 ‘프레임워크’는 올해 말 시작된다. 목재는 포틀랜드의 5번 주간 고속도로에서 3시간 떨어진 오리건주 리들에서 공급받는다. 미국 유일의 구조등급 CLT 생산공장이다. 레버 아키텍처의 건축사 토마스 로빈슨은 현지 농산물을 가정에서 직접 조달해 먹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오리건 주는 미국 최대 목재 생산지 중 하나다. 그러니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목재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포틀랜드 북동부의 흐린 2월, 농산물 트럭이 줄지어 선 주차장과 커피숍 건너편에서 인부들이 사무실과 매장이 들어설 상업용 건물의 3층을 조립하고 있었다. 콘크리트는 타설하고 경량목재는 현장에서 절단해 대들보나 조임쇠로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조립’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CLT의 경우 정확한 설계에 따라 생산돼 이케아 제품처럼 배달된 부품을 조립만 하면 되는 상태로 현장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캐비닛을 조립하는 것과 같다”며 “배달된 금속 연결부분과 나무판을 조립하면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톱을 꺼내야 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진행 중인 알비나 야드 프로젝트는 오리건주 더글라스 전나무로 만든 CLT를 사용한다. 현장에서 남쪽으로 3시간 떨어진 닥터 존슨 생산공장(미국 최초로 구조등급 CLT 생산)에서는 목재를 약 3.5㎝ 두께로 편평하게 깎아 바닥에 놓는다. 그 위에 수직으로 또 다른 패널을 올려 단단히 접착시키면서 여러 겹의 목재로 이뤄진 합판을 만든다. 벽면은 3겹 패널로 만들고 바닥에는 5겹 패널을 쓴다고 오리건주립대학 목재학 교수 레흐 무진스키는 말했다. 차곡차곡 쌓은 목재 패널은 이후 접착제가 붙을 때까지 2시간 동안 대형 압축기로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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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최초의 5층 목조건물. 대들보까지 100% 목재로 건물을 지은 건 100년 만이다.

목재로 다층 건물을 건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여름에는 매끈하게 잘 열리고 닫히는 나무문이 습기가 많은 겨울이 오면 갑자기 뻑뻑해진다는 사실을 잘 안다. 문짝도 그런데 액체를 흡수하고 공기를 투과하는 목재로 건물 전체를 세우면 어떻겠냐는 비판이 있다. 수분을 머금는 문제는 아직 해결 과정에 있다고 오리건 삼림자원 연구소의 팀 로크는 말했다. 그러나 목재를 CLT나 구조용 집성재(목재 조각을 여러 겹으로 붙이고 압축해 강도를 강화)로 만들면 팽창 및 축소를 통한 부피 변화를 좀 더 잘 관리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들보 아래 숨겨진 바닥 CLT 슬래브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공간을 둬 자연적 팽창이 있어도 기존 목재 바닥에서 종종 있었던 압력이나 좌굴(압력으로 비틀림)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고층 목조건물에 살면 화재 발생시 나무가 땔감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목조건물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큰 나무의 경우 자연 내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나무는 불에 닿으면 먼저 까맣게 그을리는데 그것 때문에 완전히 불이 붙지는 않는다. 바닥과 기둥에 사용된 집성재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통나무와 같아서 시간당 3.8㎝의 속도로 타 들어간다고 무진스키 교수는 말했다. 로빈슨은 이것이 성냥으로 통나무에 불을 붙이려는 시도와 같다며 화재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I자형 철재는 불에 녹아서 무너졌는데 그 밑으로 그을리긴 했지만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나무 기둥이 보였다.

지진 발생시 안전 또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태평양 연안 북서 지역의 경우 유럽보다 지진 위험이 훨씬 높아서 더 그렇다. 강철봉으로 보강한 콘크리트는 응력을 받으면 무너지지 않고 구부러지거나 갈라지면서 압력을 해소하지만, 콘크리트 자체가 무거워 “무게가 많이 나가면 힘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로빈슨은 말했다. 따라서 지진으로 지반이 흔들리면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CLT를 비롯한 집성재의 경우 강도를 비중으로 나눈 비강도가 높아서 이런 문제가 완화된다. 그러나 “건물이 약 46m 이상으로 올라가면 핵심 골격은 콘크리트로 한 혼합형 건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유럽에서는 고층 목조건물과 관련된 안전 문제가 대부분 해결됐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문제 하나하나를 다시 꼼꼼히 살펴봐야만 한다. 고층 목조건물에 대한 건축법과 규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12층짜리 목조건물을 세우기 위한 프레임워크 프로젝트나 4층짜리 알비나 야드 건물, 카이저에서 진행하는 8층짜리 카본 트웰브와 유사한 목조 건축 프로젝트가 미국 주요 도시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 프로젝트는 앞으로 시도될 차세대 고층 목조건물 프로젝트의 베타 테스트 정도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 ‘진짜’ 목조건물은 다음 단계에서나 시작된다는 뜻이다. ‘진짜’ 목조건물이라 하면 콘크리트 슬래브나 강철 I자형 기둥까지 100% 목재로 하는 건축 설계를 뜻한다. 그러나 100% 목재 설계를 보편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CLT 등의 장점을 제대로 어필해야 한다고 무진스키 교수는 말했다. 그렇다면 CLT의 장점은 무엇일까? 일단, 무게가 아주 가볍다. 콘크리트와 비교하면 무게가 아예 안 나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저층으로 가면 재난 시에도 건물 전체 하중을 잘 지탱할 수 있다. 이를 감안했을 때 목조건물을 짓는다면 단순한 상자 모양으로 설계해서 모든 내·외부의 벽이 하중을 지탱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아주 높고 튼튼한 통나무집을 생각하면 된다. 원주나 기둥으로 하중을 떠받치는 기존 고층건물 구조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종이 접기 모양으로 만든 거대한 나무상자를 생각하면 된다”고 무진스키 교수는 말했다.

나무상자 모양으로 설계하고 최대 약 18m로 제조되는 CLT 경량 패널을 조립해 건물을 짓다 보니 필요 인력과 시간, 비용 또한 크게 줄어든다. 2013년 호주 멜버른에서는 같은 모양의 아파트를 각각 콘크리트와 나무로 짓는 실험을 했다. 목조건물은 콘크리트 바로 옆에 나란히 지었는데 현장 영상을 보면 콘크리트 건물이 고작 몇 층밖에 올라가지 않았을 때 목조건물은 이미 공사가 끝나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걸 볼 수 있다.

– 매튜 버거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