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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가 쓰지?

여섯번째 관문 죽음!

작성자브로컬리|작성시간21.10.27|조회수326 목록 댓글 7

정신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내며 수많은 우여곡절, 기쁨과 슬픔,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을 경험하고, 잊을 수 없는 세월들과 무수히 많은 계절을 보내면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삶의 중요한 관문들을 지나온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 인생이 저물어 가는 시점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세월은 온몸에 낙인과 같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허리는 굽고, 검던 머리는 하얗게 세었으며, 초롱초롱 빛나던 눈은 흐릿해졌고, 부드럽고 탄력 있던 피부는 주름과 반점들로 가득하다. 청력이 떨어지고, 치아는 흔들리고 빠지기 시작하며, 반응 속도와 움직임이 느려진다…. 이 시점에서 사람은 열정적이었던 젊은 시절과 작별하고 인생의 황혼기, 즉, 노년기에 들어선다. 앞으로 남은 것은 한 가지, 삶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이다.

 

1. 오직 창조주만이 사람의 삶과 죽음을 주관할 수 있다

사람의 출생이 전생의 인연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죽음은 그 인연의 끝인 것이다. 사람의 출생이 현생에서 이행해야 할 사명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그 사명의 끝이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출생 배경을 정해 놓은 창조주는 죽음에도 당연히 각자의 배경을 계획해 놓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출생은 우연이 아니고, 죽음 역시 돌연한 것이 아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모두 그 사람의 전생 및 금생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출생과 죽음의 배경 모두 창조주의 예정과 관련이 있다. 이는 한 사람의 타고난 숙명이자 운명이다. 모두가 다른 배경에서 태어나듯, 죽음에도 각자 고유한 배경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 죽음의 방식과 시점이 모두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튼튼하고 건강하지만 일찍 죽는다. 어떤 이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프지만 장수하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비명횡사하는 사람도 있고, 천수를 다 누리는 사람도 있다. 타지에서 마지막을 맞는 이도 있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 이도 있다. 하늘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지하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익사하고 누구는 재난을 만나 죽는다. 누구는 아침에, 누구는 밤에 죽는다…. 누구나 빛나고 당당하게 태어나 멋진 삶을 살다 명예롭게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숙명을 뛰어넘고, 창조주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사람은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이든 세울 수 있어도 어떻게 태어날지, 언제 어떻게 죽을지 계획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죽음이 닥치는 것을 피하고 막으려 애쓰지만 죽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다가온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더 나아가 어디서 죽을지 알지 못한다. 인류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존재는 인류 자신도, 자연계의 그 어떤 생명체도 아닌 유일무이한 권병을 지닌 창조주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인류의 삶과 죽음은 자연계 내 모종의 법칙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의 권병과 주재로 인한 결과이다.

 

2. 창조주의 주재를 모르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노년기에 접어든 이가 맞이하는 것은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하거나 인생의 원대한 꿈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삶과 작별할지, 어떻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지, 어떻게 삶에 마침표를 찍을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죽음에 대한 탐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의 저편에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또 다른 미지의 세상이 존재하는지 사람은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직시하길 두려워하고, 죽음을 똑바로 마주하길 겁내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엔 신비의 베일이 드리워지며, 모든 이의 마음에는 걷히지 않는 그늘이 생긴다.

 

자신의 몸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며 죽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옴을 감지할 때, 사람은 어렴풋한 공포와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한층 더 외로움과 막막함이 느껴질 때, 사람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삶이란 이렇게 빨리 끝나 버리는 것일까? 이렇게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일까? 삶의 의미는 대체 무엇일까? 삶은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을까? 명성과 부를 얻기 위한 것인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인가?’ 사람이 이런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봤든 그렇지 않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크든, 마음 깊은 곳에는 이 비밀을 탐구해 보고 싶다는 욕망과 인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엔 세상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도 섞여 있다. 과연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쉬워하고 미련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이런저런 걱정을 한다. 마치 걱정거리가 있으면 죽음이 가져다주는 고통과 두려움을 지울 수 있기라도 한 듯, 산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 가면 죽음이 가져오는 막막함과 외로움을 피할 수 있기라도 한 듯, 자식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재산을 걱정한다. 사람은 마음속 깊이 어렴풋한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 파란 하늘과 이 물질세계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에 익숙해진 외로운 영혼은 낯선 미지의 세계로 홀로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3. 명성과 부를 좇던 삶은 죽음 앞에서 방황한다

본디 가진 것 하나 없던 외로운 영혼이 창조주의 주재와 예정으로 부모와 가족을 얻고 인류의 일원이 되고, 삶을 경험하고 세상을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하고, 창조주의 만물 창조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알며, 창조주의 권병을 알고 그 권병 아래에 복종할 기회 역시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이 드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 사람은 평생의 에너지를 운명과 맞서 싸우는 데에 쓰고, 자기가 가진 모든 시간을 가족을 부양하고 명성과 재물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데 다 써 버린다.

 

사람들은 가족, 돈, 명예, 이익 등을 소중히 아끼고,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운명이 기구하다고 불평하면서도 ‘사람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처럼 사람이 꼭 알아야 하고 탐구해야 할 문제들은 뒷전으로 미룬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나날이 얼마나 되든 명성과 부만 좇다가 젊음을 보낸다. 머리가 세고 얼굴에 주름이 질 때까지, 명성이나 재물이 나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돈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그 누구도 생로병사의 법칙과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삶의 마지막 관문을 마주한 뒤에야 백만장자도, 귀한 신분과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며,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의 원래 자리, 즉 가진 것 없는 외로운 영혼으로 되돌아가야 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부모가 있을 때는 부모가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재산이 있을 때는 돈이 의지할 수 있는 삶의 밑천이라 생각한다. 지위가 있을 때는 그것에 집착하여 목숨이라도 걸려고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평생을 바쳐 좇은 것들이 찰나에 지나가는 구름에 불과하여 소유할 수도, 가져갈 수도 없고, 죽음을 피하게 해 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외로운 영혼이 돌아가는 길의 동반자나 위로가 되어 주거나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세상에서 쌓은 명성과 재물은 일시적인 만족감, 잠깐의 기쁨과 위로를 주고 마음이 편안한 듯한 착각을 주어 방향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안식과 위안과 마음의 평온을 갈망하던 사람들이 아득한 인생의 바닷속에서 허우적대다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등,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한 채 사람들은 명성과 재물의 유혹과 꼬임에 넘어가 그것들의 조종을 받는다. 그렇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고 세월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려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 버린다.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조금씩 멀어지고, 가졌던 모든 것을 쥐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그제서야 사람은 갓 세상에 태어난 아기처럼 자신은 여전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 사람은 자기가 사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인생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이고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온 건지 생각하게 된다. 또한 바로 이때에 내세가 있는지, 하느님(원문: 上天)이나 보응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 등의 사실들을 점점 더 알고 싶어 한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삶이 진정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고, 죽음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지며, 의지할 곳 하나 없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죽음의 공포는 날로 커져만 간다. 사람들이 죽음에 임박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결국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삶의 기반이 되었던 명성이나 재물을 곧 잃게 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작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낯선 미지의 세상, 두렵고 알 수 없어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도 의지할 데도 없는 세상과 곧 혼자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처음 느끼는 공포와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사람은 깨닫게 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내용들은 ‘사람은 어디서 왔으며, 삶의 이유는 무엇이고, 누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며, 누가 인류를 생존하도록 공급하고 인류의 생존을 주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란 걸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삶의 자산이며, 생존의 근본이다. 어떻게 가족을 부양할지, 어떻게 명성과 부를 좇을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성공할지, 어떻게 더 부자가 될지, 어떻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경쟁해서 남들을 이길지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들여 익힌 다양한 생존의 기술들은 충분한 물질적 안락함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자꾸만 방향과 통제력을 잃게 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끊임없이 놓치게 만들며, 죽음을 똑바로 대면하지 못하도록 근심을 가져다준다.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망가진다. 창조주는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고, 모두에게 일생 동안 그의 주재를 체험하고 알도록 기회를 준다. 하지만 사람은 죽음을 마주했을 때, 곧 죽게 되었을 때에야 이를 깨닫기 시작한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사람들은 재물과 명성이 자신을 구해 주는 생명 줄이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인 양 평생을 이것들을 좇는 데 쓴다. 이것들만 있으면 죽음도 피하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재물과 명성이란 게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 죽음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부서지는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롭고 무력한지를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은 재물이나 명성과 바꿀 수 없고,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똑같이 가난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없고, 명성이나 재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사람의 수명을 1분 1초라도 연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런 느낌이 들수록 살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한층 증폭된다. 그제서야 사람은 자신의 목숨과 생명은 자신의 것도,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생과 사는 자기에게 결정권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주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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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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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정성스럽게 | 작성시간 21.10.28 브로컬리 님 글 땜에 그래요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브로컬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28 아이고오~ 죄송합니다
    안에 내용은 보시면 참 유익합니다
    인생에서 꼭 거쳐하고 알아두면 죽음에 직면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 작성자바람난나비 | 작성시간 21.10.28 장문 고생 많아습니다
    마지막 관문 다시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브로컬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10.28 감사합니다.
    장문을 보셨군요^^
    앞으로도 지켜 봐주시고 유익한 말씀
    공유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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