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마음과 몸을 치료해 준 생식 체험
崔 下
“어떻게 돼서 그렇게 폭삭 늙었어.” 생식을 시작한 후 체중이 12㎏이나 빠진 나를 보고 어느 동료가 한 첫 인사말이었다. 그와는 2년여 만에 어느 집회에서 만났다. 그간의 지냈던 얘기를 하다가 일을 마치고 헤어질 때 그는 또 한 번 “폭삭 늙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데 그의 안색이 왠지 유쾌해 보였다. 한두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때는 평범하게 느꼈는데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 보니 사람의 시각이 물질을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는 견해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회의장 복도에서 5~6번 만에 옛 동료를 만났다. “그동안 참 많이 늙었어. 머리는 흰머리가 수두룩하고 말이야, 건강은 괜찮아?” 그이 얼굴은 전보다 더 윤기를 잘잘 흘리며 피둥피둥해졌고, 그의 표정은 재미있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기까지 했다. 또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요즘 건강은 어떠시오?”라는 안부를 듣는다. 내가 보기에도 마르고 핏기가 없다.
인도인이나 필리핀 사람처럼 마르기만 하면 병자이고, 살이 쪄서 산에도 못 오르고 단 30분도 걷지 못하는 사람은 건강하다고 보는 것이다. 마르기 전과 후의 내 사진을 봐도 한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그러나 생식을 한 후로는 20. 30대였을 때보다 더 건강하다.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무 질병이 없다. 하다못해 피부에 여드름이나 무좀도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지도 않던 천식, 변비, 치질, 피곤, 무좀 등이 싹 사라졌다.
정신이 가을하늘처럼 맑아 항상 무엇을 생각하고 탐구하기에 가장 알맞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머리의 사고력이 좋아진 것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생식을 시작하게 된 동기 중에는 불순한 흑심도 끼어 있었다. 욕망의 밑바닥이며, 가장 강한 본능인 식욕을 통제 조절할 수 있게 되면 나 자신의 감정을 어느 정도 장악하여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굶주려보지 않은 요즘 세대는 식욕의 본능을 이해하기 어렵고, 더구나 생식을 오랫동안 해보지 않고는 식욕의 정체를 알기 어렵다.
처음부터 생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유영모 선생, 함석헌 선생, 김동길 교수 등 몇 분이 하루 1식을 한다는 글을 몇 군데서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결심하게 됐다. 하루 1식을 하면 몸이 날 듯이 가볍고 정신이 맑다고 설명한 데 대해 더욱 호기심이 끌렸다. 평일에는 직장 일로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고, 일요일에는 하루 세 끼를 먹다 보니 위장에 음식물이 남아 있어서 일요일 하루 동안 머리를 흐리게 하여 독서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귀중한 삶을 먹는 즐거움 때문에 의미 없게 보낸다는 게 몹시 후회스럽게 느껴지던 참에 1983. 11. 1부터 1일 1식을 시작했다. 점심 때가 되면 처음엔 약 30분간 배가 고프다가 멎곤 했는데, 배고픈 공복감을 느끼는 시간이 차츰 줄어들었다.
1, 2년 뒤에는 약간 느껴지다가 2, 3년 후에는 아주 없어져 버렸다. 주의해야 할 것은 밥을 먹지 않는 대신 계속 물을 마셔야 한다. 식사 자체가 수분의 섭취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머리가 아주 맑아져서 즐거움마저 느껴졌다. 높고 맑은 가을 하늘 같은 머리에는 아지랑이가 흐르는 듯 기쁨도 있었다. 그런데 체중이 급전직하로 감소했다. 약 6개월 동안 67㎏에서 55㎏으로 줄었다.
감기에 걸려도 누워서 앓아본 적은 없었는데 1식을 시작하던 겨울에 감기에 걸려 고열로 눕기까지 하면서도 1일 1식을 강행했다. 모과즙으로 감기는 극복했으나 손과 발바닥이 시린 증세로 괴로움을 겪기도 했다. 후에야 화식으로 인한 영양실조 현상임을 알았다. 이듬해 5월경 무염식으로 채식을 권장하던 정사영 박사의 강의 겸 설교를 아내가 교회에서 듣고 와 얘기를 해주었다. “아! 그렇다!” 전광석화와 같은 영감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원래 채식을 경시했다. 왜냐하면 산골 오지에서 쌀, 옥수수, 감자, 콩, 팥, 메밀, 호밀 같은 잡곡과 산나물, 채소로만 채식하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라리아, 눈병, 이질, 감기, 복통 등의 질병을, 나 자신이 많이 앓았고, 조부모님도 천식으로 평생을 고생하셨다. 그리고 많은 유아가 천연두, 홍역으로 사망했기에 그렇다. 모두 육식을 안 해 허약하고 병이 생기는 것으로 인식했고 학자들도 수십 년간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렇구나, 채소를 익혀 먹었기에 병에 시달린 것이다, 바로 그거다. 산짐승처럼 수천만 년 전의 고생인류처럼 채소를 날 걸로 먹는 거다. 신비의 극치인 자연이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지.”
나는 다음날(6월 말경)부터 무염식으로 하루 1식을 하기로 하고 아내도 날채소에 현미밥을 먹는 무염 자연식을 함께 하기로 작정하고 실천했다. 현미밥은 몇 년 전부터 먹어왔던 터라 날채소만 먹으면 되었다. 정사영 박사의 채식 방법에 관한 책도 사서 탐독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왕 생식할 바에는 밥까지 날 걸로 먹어야겠다는 착상이 떠올랐다. 새에게도 좁쌀을 익혀서 주면 병들어 죽지 않는가? 농가에서 성장한 나는 자연의 신비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또 어렸을 때는 소나 산짐승이 풀만 먹고도 살이 찌고 큰 힘을 내는 데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 석기시대 이전의 인류는 수천만 년 동안 식물은 거의 생식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원시인류들의 지능이 낮아 생긴 잘못된 식생활로 여겼다. 또한 깨닫지 못했던 또 하나의 원인은 현대의 문명에 나의 의식이 찌들도록 오염돼 있어 판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식을 하기로 작정하였으나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 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큰 서점에 가면 생식에 관한 책이 있을 것이라 믿고 가서 찾아보았다. 마침 일본의 고오다 미쓰오 의사가 쓴 “생채식 건강법”이 번역되어 막 나온 직후였다. 그 책에는 현미 가루를 먹게 되어 있는데, 마른 가루를 먹으므로 수분이 없어 먹기가 힘들어서 쌀을 불려서 씹어 먹었더니 시간이 걸리고 또 이가 아팠다. 생각다 못해 불린 쌀을 물이 빠진 후 믹서에 갈아서 먹어 보았다. 떡가루처럼 수분이 있어서 먹기에 훨씬 좋았다. 그런데 불리는 것도 날씨의 온도와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또 쉬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생 가루 떡도 해 먹었는데 맛은 좋으나 불편했다. 풋-옥수수도 날것으로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아내가 20년 가까이 심한 편두통, 만성 소화불량, 비세균성 설사, 신경통, 다발성 관절염으로 시달려오던 터라 내가 자연식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시작했고, 생식의 방법도 아내가 개발해 나갔다.
나의 경우에는 화식으로 하루 1식 할 때보다 생식으로 하루 1식 하는 편이 힘이 훨씬 덜 들고 배도 덜 고팠다. 생식으로 섭취한 섬유질이 영양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가 6.5m나 되는 소장에서 하루 종일 영양을 서서히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이 빠져 얼굴과 팔다리가 말라서 가끔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이 어떠냐, 그동안 얼굴이 많이 빠졌다는 등의 인사말을 듣는다.
생식 초기에는 아침에 생채즙을 한 컵씩 먹다가 끊었다. 또 오후에 배가 좀 고프기도 하지만 얼굴이 환자 같고 맥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좀 완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오후에 좀 먹었더니 졸림이 오기도 하고, 정신이 흐려져서 먹는 시간을 4시경으로 늦게 하다가 그것도 기분이 흐려져서 몇 개월 만에 끊어버렸다. 저녁밥 이외는 청량음료조차 먹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두 컵 마시고, 직장에서는 물컵을 책상 위에 놓고 계속 물을 마신다. 여름에는 하루 1.5ℓ 정도 마신다. 그런데 왜 하루 한 끼를 저녁에 먹어야 하는가? 체질이 오후형이라서 아침이나 점심을 먹으면 머리가 흐리고 회전이 잘되지 않는 데 비해, 저녁에는 아무리 많이 먹고 자도 소화가 잘된다. 오전형 체질은 아침 겸 점심을 아침이나 점심때 먹는 것이 좋으며, 저녁을 늦게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위가 거북하여 기분이 나쁘기 마련이다.
하루 한 끼를 먹으니 오후쯤 되면 나른하고 맥이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생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다가 옛날 생식하던 선인들이 콩을 필수적으로 먹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콩가루를 쌈을 싸서 먹기 시작했더니 쌀가루도 덜 먹히고 나른한 기운이 싹 없어졌다. 하루 한 70g 정도 먹으면 좋은데, 한 20g 정도밖에 못 먹는다. 영양학자는 하루 단백질을 70g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콩 20g이면 단백질은 10g도 안 된다. 그래도 건강하다. 쌀가루도 덜 먹힌다. 그런데 익은 콩은 효력이 그리 없다. 생콩가루의 효력을 알게 된 것은 생식을 시작한 지 4년 후쯤이다. 생식도 깨닫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나의 경우는 생식을 하자면 하루 한 끼를 먹지 않고는 유지하기 힘들다. 1일 1식을 시작하고 한 2년여 동안은 하루 종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서 허기 기운이 돈다. 그래야 맛없는 생식이 맛이 있고, 과식하고 자도 소화가 잘된다. 또 직장에서 생식을 먹을 수도 없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세포핵 속에 있는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독자적으로 혈액을 통해 영양을 흡수하여 화학에너지 공장을 가동하고, 또 노폐물을 배설하기 때문에 위만 고픈 것이 아니라 모든 세포가 배가 고파야 온전한 배고픔이고 소화와 흡수가 완전히 된다. 생식은 음식이 깨끗하다. 김치와 양념이 배설물 냄새의 주범이고, 염분을 먹으면 소변에서도 냄새가 난다. 고양이를 기르는데 맛있는 반찬과 음식을 주면 냄새가 지독하고, 소변도 냄새가 심한 데 현미밥에 야채를 섞어서 염분 없이 먹이면 냄새가 순하고 소변 냄새는 거의 나지 않는다.
맛이 있는 음식은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성욕과 본능을 자극하여 죄악을 이루는 하나의 인자가 되고 배설물까지 냄새를 낸다. 육식을 하면 기운이 나고, 남과 만나고 싶고, 떠들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낀다. 몇 년을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생식 중에 혹시 권유에 못 이겨 커피라도 마시게 되면, 기분이 즐거워지고 흥분이 돼 떠들다가 실없는 사람이 되기도 해서 조심을 한다. 몇 개월 지나서 잊어버리고 또 커피나 박카스 같은 음료수를 먹게 되면 또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체질이 순수해졌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1일 1식이나 생식은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가치관의 변화가 선행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중병에 걸려야 대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종교적 신념에 따라 하는 때도 있다. 인간은 상대적 존재이다. 남을 모방하고 흉내 내고 비교하면서 산다. 그리고 인간은 문화양식이나 풍습에 함께 동화하여 일체감(一體感)과 공동운명체의 연대감(連帶感)을 형성하는 동질화(同質化)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어긋날 때, 배척(排斥)당하고 소외(疏外)당하며, 고독(孤獨)해지고 좌절(挫折)한다.
풀어서 말하면 술과 육식을 하는 사람은 친구도 술과 육식을 하기 바라고, 부도덕을 자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법 비리에 대해서도 관대하기 마련이고, 동성연애자가 남도 동성연애자가 되기를 바라듯, 그것은 수만 가지 본능 중의 하나인 동질화 본능이다. 따라서 생식을 하면 의식과 행동에서 남과 함께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남들의 동조(同調)나 지지(支持)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더욱이 부수입도 없어지니 자녀나 친척들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제약(制約)과 갈등(葛藤)을 뛰어넘자면 인생관, 세계관 등의 가치관이 변화되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속(持續)하기 어렵다.
가치관이 변화하기 전에는 목욕탕에서도 물을 많이 써야 마음이 편하고, 비싼 음식을 먹어야, 옷도 멋져야, 사무 볼 때 좋은 종이를 아끼지 않고 막 써야, 큰 집에서 자가용을 굴려야 마음이 흡족했는데, 가치관이 달라진 후로는 그 반대이다. 종이컵을 사용한 후 내다 버리기가 아깝고, 나무젓가락을 한 번 쓰고 내다 버리기가 아까워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다시 쓰기도 하고, 한쪽을 쓰지 않고 버린 종이를 모아서 다시 쓰기도 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다고 내 삶의 방법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양식은 인류와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다양할수록 발전을 가져다주는 좋은 면이 있다. 또한 그것은 개인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인류사적인 시대 상황과 자연 환경적 요소, 사회적 여건, 신체적 유전자와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다.
나는 1일 1식이라든지 무염식, 생식을 꿈에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엇이 생식을 하도록 한 정신적 배경을 만들었는가? 나는 어렸을 때 한학을 배운 경험이 있다. 그때 선생님 말씀이 공부를 하자면 유(儒)・불(佛)・선(仙)을 다 통달해야 가히 학자라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공부를 해보라는 권고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취직 시험 또는 직장에서의 승진시험 등으로 교양서적을 읽을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독서에 방해가 되는 TV 같은 방해물을 두지 않았으므로 책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
40세를 넘으면서 노장사상, 불교, 유학 등의 동양 학문과 기독교 등의 서구 사상과 심리, 자연과학, 인류학, 우주물리학, 미래학 등을 탐독하여 갔다. 특히 동양사상과 동양적인 서구 사상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마음에 와닿았다. 내 몸속에 동양적인 풍토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노장, 불교사상은 인생의 고락을 어느 정도 체험한 인생 후반기라야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식이 아니라 체험적인 철학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통하여 동서양 사상을 비교해 보면, 노장사상이나 불교철학 등의 동양사상이 소극적이며 자연 회귀적이라면, 기독교적 서구 사상은 개척적이며 하나님 지향적이다. 동양철학이 자연과 생명 중심적이며 만물 평등주의적이라면, 기독교 철학은 인간 중심적이며 자연 지배적이다. 불교사상이 욕망 회피적(回避的), 욕망 억제적(抑制的)이라면, 특히 구약은 욕망 갈애적(渴愛的), 욕망 획득적(獲得的) 특징을 느낄 수 있었다.
서구 사상이 인간끼리의 갈등과 투쟁적인 환경에서 이룩된 사상이라면, 동양사상은 자연과의 조화에서 성장한 사상이다. 그러나 동서양 사상을 막론하고 기본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도덕 윤리의 강조와 사랑과 자비의 실천 사상 등에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자연관의 변화가 없었더라면 생식을 못했을 것이다. 또 그것만으로는 실천 사상의 건물이 축조될 수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요인이 있어야 실행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이익은 가장 강한 식욕을 자유자재(自由自在) 조절하게 되면 다른 욕망도 조정할 수 있게 되어 나 자신을 임기응변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며 출세에 접근할 수 있다는 흑심이 있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욕심대로 움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의 가치관으로 변화시켜 주었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는 머리가 좋아지고 건강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진리를 탐구하여 실천함으로써 나와 인류와 자연에 해를 덜 끼칠 것이다. 네 번째는 수천만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자연의 원리대로 살아왔던 방식 중의 하나인 생식을 통해서 선조들의 생활을 이해 해보고 싶은 충동이다. 인구가 희소하던 그 옛날에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슴, 노루, 원숭이처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어질게 살던 그들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구가 많아지면서 씨족 촌이 형성되고 죄악이 생겨났을 것이다. 다섯 번째는 노후에 가정과 사회에 부담을 덜 끼치는 생활이 가능하다. 여섯 번째는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고, 따라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하고 오묘함이 끝없는 대자연이 나 같은 돌머리가 짜낸 꾀에 넘어갈 것 같은가?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오늘의 명예가 후세에서는 오욕으로 유전되며, 부귀, 권력, 명예를 성취했다 해도, 그것은 한낱 환상에 그치도록 공정하게 섭리할 뿐이다. 생식을 하면서 다소의 괴로움과 회사에서의 식사와 회식을 함께 하지 못하는 갈등을 처리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식사를 매개로 한 모임에 빠지게 되어 처음에는 소외감도 느낄 때가 있었다.
거대조직에서는 지연, 학연, 취미, 기호 또는 물질적인 인간관계를 유지 못하면 출세하기 어렵다. 출세는커녕 비-동질적인 행동을 한다고 욕을 얻어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생식을 하면서 인간의 사고와 감각이 얼마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깨달았다. 부정과 비행도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두 번 점심을 얻어먹거나 술이라도 먹다 보면 마음이 기울어진다. 음식을 매개로 모이고 인정을 표현하고 무슨 권모술수를 할 때도 음식을 통해서 한다. 나는 등산을 좋아했지만, 생식을 한 후로는 가고 싶은 욕구가 차차 없어졌다. 정상에 올라 불고기에다 소주 한 잔 먹는 재미도 없이 쌀가루나 가지고 가서 먹는 것을 생각해 본다. 여행도 그 지방의 별미 음식을 먹는 재미와 동료, 이성 관계 등이 매개가 된다. 날채소나 먹으며 혼자 여행한다고 생각해 보라.
생식을 하자면 성생활을 절제해야 한다. 더구나 금욕이 몸에 배면 남녀 간에 얘기하고 농담하는 취미도 줄어든다. 그러니 외형적,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여행, 맛, 이성, 색깔 등의 취미가 줄어든다. 농담도 개성에 따라 다르지만, 남녀의 성적 감각도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우주는 공평하다. 그런 말초적 취미를 버리면 대신 다른 취미나, 내면적이고 사색적인 취미를 준다. 가까운 산에 올라가도 모든 자연현상이 경이롭게 보인다. 나무와 그 잎의 보이지 않는 현상이 눈에 들어온다. 일요일 혼자 종일 집에 있어도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맑은 즐거움을 느낀다. 좋아하지 않던 자연과학 계통의 책이 재미있어진다.
그래서 공짜 여행도 사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삼남 지방에는 산업시찰이란 명목으로 출장이 있어서 그때 가본 적밖에 없다. 물론 제주도 같은 곳은 생각도 안 했다. 내 엉덩이 밑에 지구란 별이 깔려 있는데 구태여 특별한 목적도 없이 갈 필요가 있는가? 돌과 물과 나무가 만들어낸 껍질의 변화일 뿐이다. 먹는 재미로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먹는 맛이란 게 터무니없는 환각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생식할 때 원시인류처럼 염분을 먹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염분이 조미료의 원조이다. 염분 없는 밥도 먹기 힘든 데 하물며 생식은 더욱 어렵다. 물론 염분을 좀 먹어도 된다. 염분 없이 먹다가 식탁의 김치나 고추장을 먹어 보면 입이 마비되는 것 같은 자극의 맛을 본다. 그래도 꾸준히 무염식을 했는데 약 3년이 지나니, 염분 맛을 잃어버려 전혀 반찬을 먹고 싶은 욕구가 나지 않는다. 채소가 바로 반찬이란 걸 알게 됐다. 채소가 없이는 현미 떡가루를 반도 먹지 못한다. 채소와 산나물이 종류에 따라 단맛, 신맛, 쓴맛, 떫은맛이 있는데 골고루 먹어야 하며 무농약, 무-비료로 키운 채소일수록 제맛이 난다.
욕망 중에서 식욕이 자장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면서 절실히 느끼지 못했다. 1일 1식의 생식을 하고부터는 식욕이 제일 강하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됐다. 색욕을 조절하자면 식욕을 먼저 절제해야 한다. 나는 금욕을 하려고 몇 번 시도해 보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1일 1식을 시작하였더니 저절로 금욕이 되지 않는가. 승려들이 채식하는 이유도 식욕, 색욕과 관련성이 깊다. 성욕의 본능은 뿌리가 깊어서 금욕에 익숙해진 후에도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깊숙이 잠재해 있다가 물질적인 즐거움이 있거나, 육식, 음주를 하게 되면 충동적인 자극을 받아 나타나기도 한다.
한 6년이 지났는데 성욕이 잠자고 있는 상태로 완전히 뿌리가 뽑히지 않는 것 같다. 식색의 본능에도 자유로워지니 마음의 물결이 잔잔하여 사물들이 그 본질을 수줍게 조금씩 보여준다. 1일 1식과 더불어 금욕을 한 후, 언제쯤인가 가끔 자다가 밤중이 되면 온몸이 괴롭고 근질거리고 화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긁어도 피부에서 긁는다는 감각이 없고, 여전히 온몸은 가렵고 화끈거려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곧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으나, 그 증세가 한 달에 한두 번씩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밤중에 일어나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글에서 금욕생활을 하면서 나와 같은 증상을 썼던 글을 읽었던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아! 정력이 온몸으로 발산하는 작용이로구나!” 그 후에는 부득이한 장소인 회식 같은 데서도 육식을 삼가고 줄였더니 강도가 차츰 줄면서 언제부터인가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금욕 초기에는 성호르몬이 소변으로 가끔 배설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도 차차 없어져 버렸다.
금욕하게 된 동기를 회고해 본다.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는 일정한 한계와 양이 있다. 짧은 일생 할 일은 많은데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너무 성에 집착하여 몸의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환각(幻覺)에 불과한 성(性)을 향락하기 위해 부정과 사회부패를 조성하고, 성폭행, 인신매매 등의 사회악을 부산물로 양산하는 하나의 인자(因子)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승려, 신부, 수녀, 비구니 같은 성직자는 평생 금욕을 하는데 젊어서 결혼생활을 했으면 만족해야지 늙어서까지 집착한다는 것은 중도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이다. 물론 성을 향락하는 삶도 좋은 삶이다. 네 번째는 성의 집착은 도덕성과 이성을 마비시켜 능력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노후에 추해질 가능성이 짙다. 다섯 번째는 인간 자체의 감각이 불완전하고 편견투성이지만, 그래도 시야를 막고 있는 성욕인, 검은 구름을 걷어냄으로써 편견에서 좀 벗어나 보자는 욕심이 있었다.
인구가 과밀하여 가는 데다가 그러한 성욕 등, 본능의 노출과 물질의 유혹선전, 그리고 욕망의 충족 과시(誇示)는 본능을 연쇄적으로 자극하여 질병과 사회악과 범죄를 증폭시켜 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류사적인 시점에서 대자연이 절실히 요청하고 있는 소명은 욕망의 자제를 통하여 자기 에너지를 자연의 탐구와 우주 쪽으로 전환함으로써 종말을 향하여 달리는 지구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부부관계도 심오하다. 성욕에 매여 있을 때는 육체적 미와 건강에 누구나 관심갖는다. 그러나 금욕이 몸에 익숙해지면 육체미 같은 데 관심이 없어진다. 순수하고 도덕적이면 미인으로 보인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사랑이 된다. 나는 금욕 후로 아내와 정신적으로 더욱 두터워졌고, 대화가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서로 바쁜 일로 밖에서 숙박을 해도 서로 의심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 부부관계는 마치 공기와 같다고나 할까. 공기는 아무 부담이 없이 나를 도와주지만 없으면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생식으로 인해 직장 조직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업무와 관련하여 업자나 고객 또는 시민과 업무 관계가 이루어진다. 조직에는 직원, 계장, 과장, 부장 등의 계층이 있어 귀찮은 업무는 피하려고 하고, 이익이 있는 업무나 사람은 서로 가까이하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귀찮은 사람이나 이익이 되는 사람을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일을 공정히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환영받을 자세는 못 된다. 인정이 오가던 관습을 변화시켜 주변인에 이롭지 못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어느 방법이 꼭 옳다는 것보다 다양한 현상이 균형을 유지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또 조직에는 낭비적인 업무가 있고, 절약적인 업무가 있다. 낭비적인 업무보다 자원 보호적이고 절약적인 업무가 더 가치관에 적응되는 것 같다. 생식을 해도 공적인 회식 같은 데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또 음식을 안 먹으면 분위기가 이상스러워지고, 안 먹으면 못쓴다고 충고도 해서 초기에는 생식을 하면서도 어떤 모임에서는 고기를 먹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생식한다는 사람이 고기를 먹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생식을 하자면 고기 종류는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늘 하지만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자기 억제력이라든가 의지력. 투지력은 상대적으로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봤을 때, 그 상황과 정도에 따라 반응하고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에 암을 진단받고 나서 남들은 즐기며 잘들 사는데 하필 나에게 그런 억울한 손해가 닥쳐왔는가 하고는 분노한다. 그 억울함이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생식 같은 식이요법을 할 수 있는 자제력의 원인이 되며, 병이 나으면 이웃과 자연을 위해 봉사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창조적 변화까지 일으키게 한다. 많은 사람이 손해나, 억울한 일이나, 고통을 오랜 기간 수용하여 올바르게 생성시킨, 그 에너지원을 잘 활용하여 큰일을 이룩한 예는 수없이 많다. 이런 차원에서 남에게 양보하고, 다투기보다 손해를 보는 쪽을 택하는 자세로 생활할 때 의지력이 자라고, 그 에너지를 내부로 전환할 때 인내력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버리기 어려웠던 육식의 욕망을 끊기 위해서 더 큰 희생이 필요할 것 같아 한 달 봉급을 올바른 일에 거의 사용해 버릴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때에는 TV, 냉장고도 없이 지내는 생활이었는데 경제적 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냉장고는 그 후 아들이 군에서 제대하여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음).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혼자만 마음의 불편을 간직했다.
이윤이 남아서 하는 희생과 순수한 희생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이런 종류의 희생이 육식의 욕망을 끊을 수 있는 자제력에 보탬이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같은 육체적 동물이 동물을 먹는다는 죄의식과, 육식이 성욕과 정신에 미치는 영향, 모든 동물은 원래 초식동물이었다는 사상, 또는 미식, 육식을 먹기 위해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는 양상에 대한 비판의식이 뒷받침하지 않았나 본다. 이젠 육식하고 싶은 욕망이 거의 사라졌다.
회식 같은 모임에 될 수 있으면 참석하지 않지만, 참석해도 곡-채식만 좀 먹는다. 양식에는 야채가 있어서 좀 먹어보면 비료와 촉진제로 길러서 물맛이 난다. 값만 비싸지 저질(低質) 식품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점심시간에는 사무실을 맡아놓고 지킨다. 직원 전원이 식사하러 나갈 때도 내가 방을 지키게 되니 서로 편한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빌딩에서 식사하러 몰려나와서 음식점 골목이 꽉 차도록 밀려가는 것을 보노라면 인간이 얼마나 본능에 매여서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나 하는 측은한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에 함께 참석하는 일이 고역임을 느끼면서 그런 상념이 더욱 떠올려진다.
자연히 술도 안 먹고 모임 때 빠지고 하다 보니 대인관계가 점점 좁아진다. 친했던 사람도 멀어진다. 자기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대인관계를 빈번히 해봐야 도리어 상대방의 감각 작용과 시간만 빼앗고 일을 방해하는 등 손해만 주는 때도 있다. 인기와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인심을 얻으려고 경쟁하며 사회에 해독을 끼치고 있는가? 자기편을 위해 청탁을 하고, 모이고, 먹고, 놀이를 하고, 조직을 만드는 등 폐해가 막심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인간관계를 유지해야만 할 것은 당연하다. 퇴직하고 또 늙어 보기 흉해지고 냄새가 나면 친우는 물론, 친척, 가족까지도 곁에서 떠날 것이다. 나와 한 몸인 자연을 사랑하고, 대화하며, 여생을 생산적으로 보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말초적 감각에 편향적으로 집착하여 있는 것 같다. 점심 식사하러 가보면 열이면 열 사람 다 음식의 맛 타령을 한다. 음식의 영양이나 본질에 대해선 거의 말이 없다. 그 음식의 생산과 제조 과정이 인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음식의 맛이 있냐 없냐에 따라 음식점과 음식을 결정한다. 그러니 대형 음식점은 사활을 걸고 음식의 맛을 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썩히기까지 한다.
남미의 아마존강 유역의 오지에서 사는 인디오들이 먹는 음식이나 아프리카 숲속에 사는 원주민들이 먹는 음식이 호텔에서 먹는 고급 음식보다 질에 있어서는 더 좋다는 어느 영양학자의 말은 맞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조직과 건물 안에서도 일천 원 이하짜리 음식을 먹는 계층이 있고, 일만 원 이상의 고급 음식을 먹는 계층이 섞여 있다. 값싼 음식을 먹는 계층은 값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계층이나 자리로 올라가려고 혼신(渾身)의 노력을 한다. 그리하여 값비싼 음식과 집과 승용차 등을 소유한 계층과 교류하기를 원하고, 보다 높은 계층과 혼인하고 아들, 딸을 그러한 계층으로 시집, 장가보내는 것을 선망한다.
더 높은 계층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또한 높은 지위에 올라가야 하기에 사회는 더욱 경쟁과 대결의 장으로 되어 버렸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과학도, 종교도, 보이지 않는 헛된 경쟁과 싸움으로 연쇄적인 자극을 받은 본능이 폭력과 죄악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낮이 있어야 밤이 있듯이 그러한 삶의 양식도 귀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농부나 직장인이나, 노동자. 기업가. 경제인. 정치인, 자본주의. 공산주의 할 것 없이 전 인류가 한쪽으로만, 한 색깔로만 매진하여야 하는가? 그러한 편향적인 오늘날의 세계적인 현상은 인류의 장래를 위해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쟁점, 외교, 경제, 폭력, 노사분쟁, 집단시위 등의 사회 현안들은 거의 표면적인 문제들이다. 이러한 현상을 노출하는 본질적 근원은 식욕, 색욕, 항락욕, 투쟁욕 같은 유전인자 속에 설계되어 있는 본능이다. 자신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거론하기를 꺼리고 지엽적인 껍질의 문제만 가지고 끝없이 싸우고 있다. 그런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하다. 승리 제일주의, 반-자연적 문명주의, 쾌락 추구적 학교 교육부터 잘못되어 있다.
인간은 감각적인 진공(眞空)상태에서는 견디기 어렵다. 즐거움, 괴로움, 기쁨, 슬픔, 고독, 사랑, 미움 같은 감각에 자극받으며, 어느 것에라도 매여져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점차 절실히 인식하게 되면서 생식과 금욕을 평생 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져 간다.
생식을 한 후에 달라진 게 또 있다면 직업관이다. 농가에서 성장한 나는 20대에는 농촌 부흥 운동을 통하여 농업 입국을 주장하기도, 실천하기도 했지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한갓 구호에 지나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직업으로 여겨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빌딩이 하나 생겨도, 또 한강에 다리가 하나 건설돼도 내 일처럼 자랑했다. 도시 중심가 또는 서울의 명동을 지나다 보면, 화려한 옷차림으로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마모된 먼지와 매연이 자욱한 속을 헤집고 가면서 무엇이 그리 걱정도 없는지. 그리고 화려한 건물과 고급 차와 유행의 옷차림이 인간의 감각과 본능을 어떻게 자극하고 있는지, 사회악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도시에서 앞으로 보람을 느끼며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활필수품이 넘쳐 흘려서 멀쩡한 옷이 쓰레기장에 가서 산더미같이 버려져 쌓여 있고, 음식도 사치 용품도 넘치는 판에 내가 퇴직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다 못해 농사가 가장 보람 있는 직업이라 결단을 내렸다. 수십억 년에 걸쳐 대자연이 이룩한 흙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 줌의 흙이라도 유실되지 않도록 계단식으로 땅을 가꾸며 노년을 보내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개성에서 나온 선택일 뿐, 보편성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처음 생식을 시작하면서, 한 6개월 동안 생식을 하면 습관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1년이 지난 뒤에도 생식의 맛과 방법에 대해 새로운 점을 느끼게 되었고, 2년 3년, 5년이 지나도 새로운 진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으니 약 10년은 지나야 몸에 배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평면의 껍질 여행이 아니라, 본질의 입체적인 내면의 세계를 여행하는 자에게도 신과 자연은 기쁨과 새로움을 공평하게 줄 것으로 믿는다.
출처 : 펌글. 최 하 지음. 생식, 자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