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학교에 다녀 본적이 없는 분이 십니다.
외삼촌을 서울에 유학을 시키면서도 딸이라 ....
외아저씨가 일제때 사회주의운동을 하시다가 징역을 6년씩 사신것을 보면 외갓집은 일찍 세상에 눈을 뜨신것 같다.
정식 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어깨너머 보고듣고 한문 일본어 세상 물정과 이치를 아시는것을 보면
진보적 외갓집안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으신것 같습니다.
어릴때 낙동강 반변천에서 자라면서
홍수나 비가오면 큰물이 강을 넘치기도 했다.
그때가 되면
어릴때 헤엄을 못치지만 호기심에 보리짚을 얼기설기 묶어서 보트삼아 헤엄쳐 강을 헤엄쳐 건너 다녔다.
어린나이에도 누가 간담과 베짱이 쎈가 내기도 했다.
건너 가면 대장부
못가면 쫄장부 하며 놀리기도 했다.
이제 생각하니
아마 어린 사내아이들은 간담과 베포와 호연지기를 키우는 스스로 생존법같다
제도권에 길들이는 학교 교육과
아웃사이더 길선비로 험난하게 스스로 자유인으로 살아갈 첫교육인것 같다.
보릿집단이 뒤집어 지면 바로 가는길
비온뒤면 나를 찾으러 천방뚝에서 오르내리며 어머님이 보시면 기겁할일
한번도 야단은 치지 않으신것 같다.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
자신이 옳다고 하는일에 간섭과 방해 보다 스스로 하기를 바라는 믿음이...
중.고등학교때 공부는 안하고 수차레 무기정학 제적.휴학 복학 무전여행을 해도 탓하거나 한번도 야단치시지 않고 격려와 사랑으로 대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많은 친구가 찾아와도 싫다는 내색조차 않으시고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당시 교육공무원인 여동생 월급에 많은 부분이 들어 갔다고 ...
70년대말 그때는 유기농과 민주화운동을 하면 간첩으로 취급할정도로 이웃에서 불온시 했습니다.
유기농 한다고 리어카로 흙을 파와서
누룩처럼 함께 뛰우고 ....
정보형사들이 집에 몰래들어와 집을 뒤지다 어머니는 고무신으로 귓싸대기를 후리치신 어머니는 나의 든든한 동지이며 도반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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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한없는 믿음과사랑 으로 돈없고 영어를 못해도 80년초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부타
외국을 무전 여행 하듯이 다녔습니다.
영성과 지성이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새로운것을 눈뜨게 되었습니다.
하고싶고 보고싶고 가고싶은 것
사회운동과 공부도
지옥과 천국같은 결혼생활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면서
죽기전까지 가보고
내 마음껏 다 하고 나니 덧없고 허망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궁금하고 호기심 미련도 없습니다.
옛말에 자식은 부모에 말보다 행동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수있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식을 끝까지 믿고 사랑하며 격려하며
부모가 자기 인생을 똑바로 살면
자식은 잘못 가다가 다시 바로 돌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