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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신해경. 204. 건곤일척. 乾坤一擲.

작성자원보|작성시간24.03.21|조회수45 목록 댓글 0

7. 건곤일척 乾坤一擲

 

북극해를 향해 흐르는 오브(OB)강 같은 큰 강들이 알타이산맥 산계 山系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이 강들은 광대한 중앙아시아의 내륙 분지를 적시며 북극해로 흘러 들어간다.

 

알타이산맥 남쪽으로 이동한 북 흉노군. 그러나 한번 승기를 잡은 한 군의 연합군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압박을 가하며 집요 執拗하게 따라붙는다.

 

알타이산맥 서쪽은 미지 未知의 세계다.

오래전 흉노족은 알타이를 거쳐 천산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발하슈 호수(Balkhash Lake)를 지나,

우랄산맥까지도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아 초원길을 왕래하였다지만 먼 옛날이야기다.

알타이산맥 중간 지점을 지나니 지형이 험준하고 통로가 좁아, 더 이상 이동하기가 곤란하다.

가을철에 접어드니 고도가 높아지자, 기온도 서서히 하강한다.

선우와 소왕들이 구수회의 鳩首會議를 한 결과,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이곳에서 대결전을 치르기로 하였다.

 

건곤일척의 대전 大戰이다.

2만 명과 8만 대군의 대결이다. 양측의 병력은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구나, 양측의 전투 물자는 10배 이상의 격차를 보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어디에 손 벌릴 데도 없다.

서역 주변의 선선국 鄯善國 등 수 개국에 지원요청 사신을 보냈으나, 부족의 규모가 작으니,

병력도 약하고 또 한나라의 눈치 보기에 바빠 모두 무산되었다.

 

호도 선우는 갑자기 대대로 가까이 지냈던 용맹스런 부여군이 그립다.

오랜 기간 대대로 흉노와 부여의 예, 맥족은 서로 손을 맞잡고, 중원대륙을 들락거리며 초원을 질주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부여국도 고구려군에 의해 차단되어 연락이 어렵다.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

고구려의 무위 武威에 의하여 송화강 松花江 북쪽으로 자리를 옮겨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다.

 

*부여와 여진족

 

부여의 동북쪽 잔족 세력 殘族勢力은 후일, 말갈과 여진족 餘眞族으로 이어진다.

역사의 흐름을 따져보면, 여진족 女眞族이 아니라 여진족 餘眞族으로 호칭하여야 할 것이다.

부여 扶餘의 진짜 적통자라 뜻이다.

여진족은 말갈, 선비, 거란족과 더불어 고구려 제국의 주요 구성원이 된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여진족 餘眞族은 발해를 거쳐 신라와 고려의 북동쪽에서 위세를 떨치다 후일,

나라와 후금 後金 , 나라를 세운다.

말갈족의 후예, 몽골의 원 나라와 여진족의 청 나라.

알고 보면, 동이족 최대의 전성기 全盛期.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도 않는 부여군이 갑자기 생각나다니,

고립무원 孤立無援의 현재 상황이 선우로서는 그만큼 다급한 처지라는 것이다.

 

심기일전 心機一轉하여 응전 태세로 진영을 새로이 갖추었다.

서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매복하기에 좋은 지점을 눈 여겨봐 둔 곳이 있었다.

김청인 소왕이 위지율 천부장에게 지시하여, 병목처럼 생긴 좁은 계곡의 가파른 양 兩

절벽 위쪽을 거점 據點하여 큰 돌과 통나무, 기름을 준비해 두었다.

그런데 닷세가 지나도록 적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산세가 험악하여 다른 통로나 길목은 없다.

기다리던 병사들은 적병들이 추격을 포기했나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긴장감이 풀어졌다.

그런 안이 安易한 생각을 하는 순간, 막사 이 십여 곳에 불이 붙더니 적병들이 급습하였다.

위지율이 매복하고 있던 통로는 역으로 연합군들이 뒤쪽의 더 높은 곳으로 기어 올라가 매복군을 쓸어버리고,

그 기세로 북 흉노의 본영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북 흉노 군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중부는 다급하게 근위병들을 이끌고, 먼저 적의 진입로를 차단하였다.

적의 선봉대와 중군 사이를 가른 것이다.

이는 아주 위험한 전술이다.

군사 수가 적보다 압도적으로 많거나, 무용이 매우 뛰어난 전사들이 선두에서 적의

도산검림 刀山劍林 속을 창과 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뚫고 지나갈 수 있어야만 가능한 전법이다.

그러나 노장 묵황야차는 그 별호답게 야차와 같은 모습으로 묵황도를 휘두르며 좌충우돌식으로

적병의 목을 치며 거칠게 적진을 돌파하여, 적 진영을 두 동강 내어 버렸다.

뒤따르는 근위병들의 창날도 날카롭게 번뜩이며 좌우를 휩쓸며 지나간다.

사나운 기세로 적군을 분리시킨 묵황야차는 말머리를 돌려 커다란 묵황도를 휘두르며,

또다시 남 흉노의 중군 中軍을 향해 거세게 돌진한다.

거친 묵황도에 가로막혀 적의 중군 中軍은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묵직한 묵황도가 허공을 가르며 기세 사납게 세찬 칼바람을 일으키자,

피비린내가 주위에 진동을 한다.

그 위맹함에 놀란 적병들은 감히 대적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진다.

진격하던 연합군은 선봉대와 중군이 분리되자, 선봉대도 더는 힘을 쓰지 못하고 몸통 잘린

뱀의 대가리 형세로 기세가 위축되어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사이 김청인 소왕과 휘하 麾下의 천 부장들이 합세하여 적을 진영 바깥으로 완전히 몰아내었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북 흉노측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이천여 명에 달했으나, 다행히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다음날 묵황야차는 선봉대를 맡아, 선두에서 적의 진영을 향해 돌진하였다.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만 없다.

군의 사기 진작 振作을 위해서도 한 번쯤은 적극적으로 먼저 적군을 공격하여야 할 시점이었다.

좁은 통로를 많은 병력이 한꺼번에 움직이지 못하는 지형적인 이점을 살려 정예부대를 별도로 편성하였다.

길목이 협소하니 아무리 병사수가 많은 대군이라도 병력진입에 한계가 있다.

병사수가 적어도 버틸 수 있는 병목 모양의 요충지이다.

근위대와 휘하의 천부장들이 쇄기형 정 자 형태로 진형을 갖추어 적군의 선두 先頭를 공격하니,

첨예 尖銳한 북 흉노의 선봉대와 연합군 선봉대와의 백병전 白兵戰이 벌어진다.

묵황야차 휘하 麾下의 사로국 출신 천부장들의 무용이 맹위를 떨치며, 남 흉노의 선봉대를 거세게 몰아갔다.

오전 내 접전이 지속되었고 그렇게 북 흉노의 공세가 드세어지자, 연합군의 선봉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세 불리를 느낀 남 흉노측도 어쩔 수 없이 퇴각하였다.

북 흉노측은 30여 리를 추격하여 진영을 새로이 구축하였다.

실로 오랜만에 승리한 북 흉노측이다.

 

그런데 접전을 벌인지 한 달이 넘었는데, 남 흉노측에서는 최고의 무용을 자랑하는

막북무쌍 소왕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 승리도 어찌 보면 막북무쌍 소왕이 전선 戰線에 없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또 공격을 개시하여 적을 50리 밖으로 물리쳤다.

전투에서 이긴 성과도 제법 솔솔 하였다.

말과 수레를 끄는 소와 낙타까지 700여 두를 포획 捕獲하였으므로 오랜만에 거창하게 승리의 축제가 벌어졌다.

 

을지근오가 떠난, 청랑단 靑狼團의 백 부장 자리에는 우문청아가 사로국에 다녀올 때,

격렬비열도에서 합류하였던, 고구려 출신 장태수와 신순시 두 젊은 장수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두 장수를 따르는 무리 중 일부는 고구려의 맥궁 貊弓 만드는 비법이 탁월하였다.

고구려 출신 두 장수가 이끌고 있던 청랑단은 전장에 나서기보다는 후군에서 무기 정비나 물자 운송 등

뒷정리를 담당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었다.

젊은 용사들은 선봉에서 무용을 뽐내고 전공을 세우고 싶은데, 아직 어림없다.

구상유취 口尙乳臭.

패기 覇氣는 좋으나, 어른들 눈에는 아직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에 불과하다.

 

박인후도 13세로 14세 이상만 입대할 수 있는 연령 기준에 미달이지만, 키가 커 나이를 속이고,

다물 봉술과 격투기 선명조원의 일부분을 접합 接合한 뛰어난 무술 실력을 보여주자 어린 나이답지 않은

고수급의 무예 실력을 본, 심의관 3명 모두가 合格합격 패 를 들어 올려 입대가 허락되었으며,

청랑단 신순시 백 부장의 소속 수하로 병영 복무 服務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틀 후,

묵황야차 소왕은 청랑단靑狼團의 명단을 한번 훑어보고는 선우와 의논한 후,

근위대장 박지형에게 청랑단을 인솔하여 우랄산맥(URAL Mt)으로 가도록 군령 軍令을 내렸다.

박지형에게 별도로 탁발규가 저술한 著述묵황병서 墨荒兵書를 건네주었다.

탁발규가 군사 운용에 필요한 병법의 기본 전술과 그동안 초원에서 혁혁한 전공 戰功을 거둔

묵황 소왕의 전력 戰歷을 간략히 기술 記述한 병서다.

 

아랄해(ARAL SEA) 북쪽을 지난 후, 우랄산맥의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의 카스피해((CASPIAN SEA)

흐르는 우랄(URAL)강 근처의 목초지로 한 달 전, 먼저 피신해 있던 노약자와 부녀자들을 보호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 지역은 흉노인들이 전용 專用으로 이동하는 초원길이다.

장건이 실크로드를 개척하기 오래전부터 흉노인 들이 즐겨 이용하던 주 통로인 스텝 (Steppe) 지역이다.

 

-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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