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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신해경. 209. 동귀어진 同歸於盡.

작성자원보|작성시간24.03.31|조회수53 목록 댓글 0

12. 동귀어진 同歸於盡

 

건곤일척의 대결이다.

세기의 결투가 초원을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다.

한 시진 가량 지나자, 묵황야차의 묵황도가 막북무쌍의 양날 창보다 좀 더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부는 오늘따라 묵황도가 평소보다 더 가벼운 느낌이다.

큰 제비나비가 허공에서 묵황도를 받쳐주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 도법의 초식이 더 날카로워지고 위력이 배가 되는 듯하다.

그 반면에 한준은 시간이 갈수록 힘겨워 보인다.

, 두어 달 동안 창술 수련을 게을리하고, 선우의 친한 親漢 정책에 불만을 품고,

나이를 망각하고 술만 퍼마신 탓이 크다.

오늘따라 양날 창도 더 무겁게 느껴진다.

따라서 창날도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 허우적대고 있었다.

머릿속은 상대의 공격 초식을 막아내고 벌써, 다음의 반격 反擊 초식을 생각하고 있는데,

몸과 팔은 펼치고 있는 현재의 방어 초식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었다.

몸 따로 마음 따로다.

 

한준은 지난밤 꿈에서 십이지살 선우휘 사부를 뵈었다.

사부님은 깨끗한 흰옷을 입은 무골선풍 無骨仙風의 모습으로 나타나, 양팔을 크게 벌리더니 잠시 후,

애제자 한준을 꼭 껴안아 주셨다.

한준은 사부님을 오랜만에 뵙는데, 정식으로 절을 올리지 못해 사제지간 師弟之間의 예의를

제대로 차리지 못하였다는 죄송한 마음이 들어, 사부님에게서 떨어지려고 몸을 뒤쪽으로 비트니까,

사부님은 오히려 더 힘껏 껴안는 것이었다.

그때, 옆에서 혈창루 모용척 사부님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성난 표정으로 달려왔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이마에 땀이 배어 있다.

상대와의 대결에서 차츰 이리저리 밀리고 있으니,

악몽 惡夢을 꾸어 힘이 없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까지 겹치니, 힘겹게 펼치던 느린 초식 招式 마저 흐트러져 큰 위기가 닥쳐왔다.

반면, 절호의 기회를 잡은 중부는 조선세법의 마지막 초식, 그 위력이 어마어마한

천봉일절 天峯一切 초식을 위맹하게 시전하였다.

뫼 산 자 형상을 그리며 하늘로 높이 치켜세운 묵황도가 아래로 사선을 그으며 사납게 내려친다.

그런데, 중부의 눈동자는 순간적으로 사나운 기세가 사라지면서,

득도 得道한 노승 老僧의 잔잔한 고요한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상대하는 막북무쌍의 창술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방어술마저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허둥지둥거리는 하얀 머리를 보았다.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는 나이 든 나약한 노인네를 바라본 것이다.

순간적으로 젊은 청춘을 앗아간 세월의 무상 無常함을 느끼며,

입가에는 득의의 미소가 아닌, 허탈한 쓴웃음이 지어진다.

이제 조선세법의 마지막 초식.

천봉일절. 天峯一切.

구름 위 하늘 높이 솟은 봉우리를 단칼에 베어버린다는 전설적인 도법 刀法.

[ * 사진 천봉도]

 

이제 이 한 수로 모든 것이 끝난다.

일 갑자 一 甲子를 이어온 인연 因緣.

철없이 자라날 때는 동내의 유일한 경쟁자 競爭者이자 가장 친한 동무였었고,

어느 시기부터는 청춘의 갈등을 느끼며 서로 등을 돌리더니, 그 후 전장 터의 상대적

호적수로 서로가 맞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인물. 한준이었다.

절체절명 絶體絶命의 위기에 몰린 막북무쌍 한준.

묵황야차의 위맹스러운 묵황도의 마지막 초식을 보고는 이미 심신이 지친 상태라,

세상의 모든 일을 포기하려는 그 찰나, 어젯밤 꿈속에서 뵈었던 십이지살 선우휘

사부님이 팔을 크게 벌린 후, 자신을 껴안는 행동이 뇌리를 스친다.

순간적으로 그 행동이 무엇을 나타내는 암시 暗示의 행동이라고 느꼈었다.

그렇다.

치우 창술 13식의 마지막 초식. 동귀어진 초식이었다.

죽간이 낡아 사라져 버린, 마지막 동귀어진 초식.

꿈에서나마 잊지 못하고 40여 년을 애타게 찾아 헤매다, 언제부터인가 포기하고 말았던

그 마지막 초식을 홀연히, 꿈속에서 나타난 사부님이 행동으로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런데, 동귀어진이란 초식 명은 치우 13식 창술의 마지막 초식 명이 아니라,

그 상황의 결과를 표현한 용어였으며, 실제 초식 명칭은 파 천봉도 破 天峯刀였다.

맹렬한 조선세법 朝鮮勢法의 마지막 초식.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솟아오른 높은 봉우리를 단칼에 베어버린다는

천봉일절天峯一切 초식을 파해 破解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술.

치우 13식 창법의 마지막 초식, 파 천봉도 破 天峯刀 초식이었다.

 

절체절명 絶體絶命의 순간에 찰나적으로 파 천봉도 초식을 깨닫고 터득한 한준.

한준은 꿈속에서 십이지살 선우휘 사부님이 자신을 안아주기 직전에 보여준 모습을

자신이 그대로 재연 再演하였다.

두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리며, 허공에서 날아오는 묵황도를 피하지 아니하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창날을 곧추세워 묵황도를 내리치는 묵황야차 이중부 소왕의 가슴을 겨냥하여 깊숙이 꽂아버렸다.

 

전장 戰場의 모든 병사가 움직이질 못한다.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의 경천동지 驚天動地할 무용 武勇을 지닌, 시대 최고수들의 무예가

알타이초원에서 현란하게 난무 亂舞하더니,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 慘酷하였다.

 

막북무쌍은 커다란 묵황도에 의해 오른 어깨부터 허리까지 상체 上體가 나뉘어져 있었고,

묵황야차의 모습은 양날 창의 자루 부분까지 심장을 꿰뚫고, 등 뒤로 하늘을 향해 튀어나와 있었다.

양패구상 兩敗毆傷이다

두 영웅은 동시에 절명 絶命한 것이다.

 

-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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