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하면서
저절로 명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80년초 일본 국제자연농법개발쎈타초청으로 해외여행을 처음 하면서.
40여년전 해외여행은 설레임과 호기심 그자체 였습니다.
그때만해도 자유롭게 외국에 나갈수가 없었습니다.
초청이나 유학. 업무상 나가면 반드시 정부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79년12월 1일 국가유학시험에 합격하여 80년 다 준비한 상태에서
깨어지면서 부터 다른 방향을 해외자유여행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가는곳은 채식요가명상 생태공동체 여행이 였습니다.
먹고자는곳은 채식과 요가명상 수행을 하는곳이라 에너지와 파장이 달랐습니다.
그때는 20~30대 꿈많고 호기심이 많은 나이라
유명관광명소.전통재래시장등을 많이 헤메고 찾아 다녔습니다.
이루지 못한 유학꿈 때문인지...
마침 내가머문곳이 가는곳마다 유명대학근처에 있었습니다.
대학캠퍼스를 내집마당 처럼 드나들며
서투른 영어로 궁금하고 호기심은 많아서 문법을 무시하고 당시 일제샤프전자사전으로 단어만으로도
대충 이야기를 나눈것 같습니다.
그인연으로 세계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가정과사회 학교에서 배우지못한 공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인생공부를 제대로 한것 같습니다.
우물안에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나와 ... .
그중에서도 킬탄은 내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큰 계기가 된것 같습니다
인간을 모든 굴레와 도그마로 부터 자유와 해방을 .........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고
나는 이우주를 움직이는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라는것을............
어릴때 부터 몸이 약해서 잔병을 달고살았지만
병원에서 못고친 많은 난치병을
채식과 킬탄밖에 한것이라고는 없는데 낫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모든것을 내가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제보니 내가 하는것은 하나도 없고
이우주를 움직이는 그분이 하시고
나는 그저 그분의 지성과 힘을 빌려 쓰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
내가 돈이 없어도 영어를 못해도 세계 여러곳을 내집처럼 드나들며
꼭 필요한 곳을 간것도 내안에서 이끄시는대로 그냥 나는 따라만 간것 같습니다.
스톡홀름에서 방콕까지 일반석으로 일등석을 앉아오고
여권과 지갑을 몇번이나 잃고도 다시찾게되고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군가 극적인 도움의 손길이
여러번 반복하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하는 명상단체에서 운영하는 세계여러곳에 채식 베이커리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스웨덴 과 타이완의 채식빵과 피자는
영적으로 맑은 수행자들이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맛과 에너지가 달랐습니다.
이테리 유럽 여행자.외국 수행자들과 함께 지내며 함께 요리하고 생
태공동체에서 먹은 비건채식 케잌과 피자맛은
영적으로 맑고 순수한 그들과 함께한 여행은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