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 제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5.25 예언이 가르침의 은사처럼 단지 은사이기에 사도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서로 서로 예언을 점검하는 사역적 안전장치를 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우리 개혁주의자들은 가르침의 은사가 실행되는 강해설교에 있어서는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예언의 은사 실행되는데 있어서는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지 못할까요? 이에 대해서는 두 번째 성경적 근거를 다룬 후에 살펴보도록하죠. 2.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1Co 14:37 KOR)": 여기서 우리는 신약의 선지자가 사도의 권위에 귀속이 된다는
-
작성자 제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5.25 것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가 있는 자들이 틀릴 수 있고 이를 오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도인 자신이 작성한 글만이 "주의 명령" 즉 정경성을 갖는 계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바울의 글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의 쏟아져나오는 예언들을 분별하라고 사도는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에서의 선지자 혹은 예언자의 계시를 전달하는 권위가 신약에서는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사도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지요. 그러므로 이 사도성, 즉 사도가 기록한 신약 성경(계시)에 가르침과 목양을 하는 목사와 교사와 복음을 전하는 자와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마음에 주시는 것을 말"
-
작성자 제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5.25 하는 예언하는 자들은 권위적 귀속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직분과 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비교 검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혈님이 언급한 100% 적중해야하는 예언의 기준은 구약의 "선지자"에게 주어진 것이고 신약의 "사도"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역사에 유일무이한 정경을 완성하는 계시를 담당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다른 직분인 목사와 교사 복음을 전하는 자 그리고 선지자 (예언하는 자)는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와 같은 권위가 없기 때문에 바울도 목사인 디모데에게 진리를 올바르게 분별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
작성자 제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5.25 이는 사도성이 없는 디모데가 가르침의 은사에 있어서 틀릴 수 있다는 바울의 염려이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구약과 신약의 계시의 절대성과 탁월성을 서신 내내 강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맥락으로 (불연속성의 관점으로) 보신다면 신약의 예언의 은사도 정경을 완성하는 계시가 아니라 교회에 덕을 세우는 주의 메세지가 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우리 장로교의 선조들인 존 낙스와 사무엘 러더포드 예언의 은사를 통해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겪었던 스코틀랜드 초기 장로교회를 위로하고 극복할 힘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혈님. 신약과 구약의 직분과 은사에 대한 불연속성과 연속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 없이
-
답댓글 작성자 제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5.25 보혈 님이 말씀하신 일반적 은총보다는 저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17세기 청교도들은 특히, 매튜 미드는 <유사 그리스도인>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역사를 "성령의 특별적 사역"이라고 표현을 했고 은사를 베푸시는 역사를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님의 언급한 일반 은총을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라는 맥락으로 이해를 해도 되겠는지요? 그렇다면 님도 예언의 은사가 "정경의 완성을 위한 계시"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반적으로 주시며 오늘날에도 유효한 영적 은사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