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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은사는 중단되었다는 근거 / 퍼온 글

작성자장깔뱅|작성시간13.09.15|조회수322 목록 댓글 0
방언의 은사는 중단되었다.


우리는 결론부터 말하고자 한다. “방언의 은사는 중단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두 가지이다.

첫째, 방언의 기능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비밀”을 말씀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비밀”은,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며, 천국(복음)의 비밀이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비밀이다. 이것은 “계시”의 내용이며, “예언”의 내용이다. 그런데,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밀”이 계시된 때가 끝이 났다. 예언의 은사가 폐지되었다. 사도와 선지자들은 교회의 터를 다 닦았다(엡2:20). 이제 그 터 위에 다른 터를 닦을 사람이 없다(고전3:1이하).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의 폐지와 함께 자동적으로 방언의 은사도 중단되는 것이다. 그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였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여진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함으로써 구약과 함께 신약의 성경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13:8에서 “...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온전한 것이 왔다. 예언이 온전히 주어졌고, 그래서 지식도 완전해졌다.

둘째, 방언의 기능은 믿지 않는 자들, 불순종한 옛 언약 백성들을 위한 표적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후70년에 완전히 멸망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을 따라 완전히 무너졌다(마24:2, 막13:2, 눅21:6). 셀 수 없이 많은 백성들이 로마의 군대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고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 옛 언약의 백성들은 주님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었다(눅21:21).

만약 방언이 모든 시대의 불신자들을 위한 표적이라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방언은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방언은 예언의 은사와 함께 중단되었기 때문에, 모든 시대의 불신자들을 위한, 오늘 우리 시대의 불신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할 수 없다. 옛 언약의 백성들 중 믿지 아니하는 자들,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내리실 것인데, 그것에 대한 표적이 바로 방언의 은사였다.


오늘날 현상적인 방언은 무엇인가?

이 모든 연구와 토론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다. “오늘날 실제로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에 대해 더 이상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경험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아니며, 신자의 체험이 성경을 검증하는 잣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자의 경험은 오직 약속의 말씀을 확인하는 것일 뿐,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는 것이 될 수 없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경험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현상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몇 가지 설명을 하고자 한다.

첫째, 오늘날 방언의 현상은 마귀의 역사이다.

마귀는 하나님과 그 언약의 백성들의 대적자로서 거짓된 진리를 가장하는 자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 사실을 주지시켰다. 거짓 사도와 궤휼의 역군들이 자기들을 그리스도의 사도,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은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다(고후11:13-15). 여기서 사용된 “가장”이라는 단어는 실제 내용이 아니라 모양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μετασχηματιζω"). 거짓 사도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사도와 일군이 아니라 단지 겉모양만 그렇게 나타내 보일 뿐이다. 또 사탄도 실제로 광명의 천사가 아니라 단지 겉모양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와 같이 사탄은 방언의 은사도 그렇게 겉모양이 비슷하게 변형시킬 수 있다. 실제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로써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비밀”의 내용은 없으면서, 단지 사람들에게 이상한 소리만을 말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은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은사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사탄이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살후2:9). 이것들은 모두 ‘불의의 속임’이다(살후2:10). 사탄은 이렇게 이미 종결된 방언의 은사를 참된 것으로 가장하여 신자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전서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교회 역사 속에서 언약의 백성들이 바른 믿음에서 떠났다. 그들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랐다. 분명히 예언의 은사와 함께 종결된 방언의 은사를 가르치는 것은 악한 영이 신자들을 미혹케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성령의 가르침이 아니다.

오늘날 ‘가장된 방언’이 거짓된 종교들 가운데서 발견된다. 이방종교의 의식행위에서 귀신들린 사람들이 스와힐리어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도 하고, 아프리카 통가(Thonga) 사람들은 귀신이 쫓겨나가게 될 경우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줄루(Zulu)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사탄이 역사하는 가장된 방언은 모슬렘이나 에스키모, 티벳의 승려들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방종교에서 사용하는 황홀경의 언어(가장된 방언)은 모두 사탄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들로서, 오늘날 오순절파 교회와 은사주의들이 한다는 그 방언도 사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존 맥아더, 은사(II), 성령의 역사인가? 사탄의 장난인가? 154. 생명의 샘.


둘째로, 방언은 심리적으로 야기될 수도 있다.

사탄의 역사로 가장된 방언을 받는 경우가 아닌 두 번째 경우는 무의식적인 신경작용으로 빠져 들어갈 때,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무의식적 신경작용이란 모든 수의근(voluntary muscles)이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록 콘서트에 참여한 십대들이 열광의 함성 속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것을 종종 본다. 그들은 그야말로 의식의 통제를 상실한다. 그것이 극에 달할 경우 실신하기까지 한다.

방언도 이와 같은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전에 부흥회에 참석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알 것이다. 특별히, 소위 은사 집회를 하는 경우, 사람들은 방언의 은사를 받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다 못해 미친 듯이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눈을 감고, 손을 흔들고, 몸을 앞 뒤로, 혹은 옆으로 흔들면서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 그들이 외치는 기도는 거의 주문에 가깝다. 흔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주여, 주여, 주여 주시옵소서, 방언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주여, 방언, 은사, 주여, 주여, 주여, 주주주주주주....’ 그리고는 넘어간다. 이것은 거의 최면상태와 같다. 어떤 연구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최면 상태는 방언 경험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의 것으로 만약 누군가가 최면 상태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은 방언을 할 수 있는 적합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위의 책, 158-159.


셋째로, 오늘날 방언은 학습된 경우가 많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학습으로 말미암아 방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소위 방언을 한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방언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몇 가지 좋은 예가 되는 음운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반복해서 말하게 한다. 주문과도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하게 될 때, 그 말이 그 사람의 입에 익숙해지면, 그와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마치 성령으로부터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사인가? 배워서 하게 되는 방언이 무슨 성령의 은사인가? 허기사 방언 세미나를 통하여 방언을 배운다고 하니 더 무엇을 말하리요? 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의 은사는 전혀 학습하지 않는 상태에서 초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밀을 말하고,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이 바로 방언의 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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