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례
(Baptism)
세례와 성찬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예식이다. 그러므로 세례와 성찬을 성례(聖禮, Sscraments)라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 문답 제163문: “성례에는 둘이 있으니 세례와 성찬이다. 그 하나는 표면에 들어나고 감지 할 수 있는 표(sign)인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심을 따라 사용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내면적 영적 은혜이다.”125)
칼빈(Calvin)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성례는 세례와 성찬뿐이라고 못 박았다. “…초기 신약시대부터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기독교 교회에 전해져 내려오는 두 가지 성례…이 두 가지 성례 외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례가 없으므로 교회는 다른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126)
세례는 성찬과 더불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거룩한 예식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세례와 성찬을 성례(sacraments)라고 한다.
1. 어원적 고찰(Etymology)
“세례”(밥티스마, ba,ptisma; baptism; 세례)는 세례 요한의 세례, 그리스도인의 세례 등 일반적으로 세례를 가리킨다.
“세례”(밥티스모스, baptismovj; baptism, washing; 세례, 씻음)라는 단어는 의식적 정화(씻음)의 행위를 지적한다(막 7:4; 히 6:2; 9:10).127)
“세례자”(밥티스테스, baptisth,j; a baptizer or a baptist; 세례 베푸는 자)는 세례 요한에게만 사용되었으며, 공관복음서에만 14번 기록되어 있다(마 3:1; 11:11, 12; 14:2, 8; 16:14; 17:13; 막 6:24, 25; 8:28; 눅 7:20, 28, 33; 9:19).
“세례를 베풀다”(밥티조, baptizw; to baptize; 세례를 베풀다)는 밥토(ba,ptw; to dip; <물에> 찍다)에서 인출되었다. 이 단어는 세례를 베풀다(baptize), 씻는다(wash), 정화한다(purify) 등으로 번역하였으며 (막1:4, 요 1:25, 26,28, 3;22, 26,4:2, 10:40, 고전 1:17).결코 침례를 베풀다 또는 침수하다(immerse)로 번역하지 않았다.
여기서 세례를 준다는 말은 물로 무엇을 씻음을 의미한다. 물로 씻는 종교적 의식은 과거에 지은 죄들을 씻어 버리고 깨끗하게 정화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죄를 씻는 표, 상징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므로 죄사함을 받으라고 외쳤다.
2. 정의(Definition)
“세례가 무엇인가?”(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165문)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로 씻음을 정하신 신약의 한 성례이다…”
“세례가 무엇인가?”(소요리문답 94문)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성례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합됨(ingrafting)과 은혜 언약의 혜택들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속하는 것을 표시하며 인치는 것이다.”
이 정의를 요약하면
①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푼다(마 28:19).
② 세례는 분명히 씻는 정화를 상징한다.
③ 세례의 재료는 정결한 물이다. 물은 정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민 8:7; 19:13; 시 51:7; 겔 36:25; 히 9:10).
④ 세례의 의도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접합됨과, 은혜 언약의 모든 혜택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속(서약)함을 표시하며 인치는 것이다.
세례는 물로 씻어 정결케 하는 의식이니 그것의 내적 의미는 그리스도의 피를 뿌림으로 죄로부터의 정화 곧 죄 씻음으로 인한 죄사함이다(행 2:38; 22:16; 벧전 3:2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8장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죄 사함과 중생(remission of sins and regeneration)이라고 하였다.128)
하지(A. A. Hodge)는 말하기를 세례는 본질적으로 “물로 씻는 것이다. …물이 필요함은 첫째로 이것이 명령된 때문이며, 이것은 도덕적 정화의 자연적 상징(the natural symbol of moral purification)이기 때문이고(엡 5:26), 모세의 의식에도 그렇게 확정되어 있었다”라고 하였다.129)
댑니(Dabney)는 말하기를 “세례는 … 히브리인들의 정화에 의하여 상징된 것이었다. 정화의 개념은 정결케 함과 헌신(cleansing and consecra- tion)을 다 포함한다 … 세례의 주 관념은 정화이다. 범죄와 부패로부터의 정화와 또한 정화된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함을 상징한다. 그런즉 여기서 물은 중생과 사죄의 관념을 포함하였고, 또한 그리스도께 접합과 헌신적 봉사를 약속한다는 관념들도 포함한다”라고 하였다.130)
버즈웰(Buswell)은 말하기를 “… 세례는 십자가상에서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의미한다. 그러나 속죄로 말미암아 죄가 사해지며 정화되므로 세례가 깨끗함 또는 씻음(cleansing or washing)에 언급되는 것은 전적으로 적합하다.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속죄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우리의 죄사함 받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세례 받을 때 그에게 말한 아나니아의 말은 세례를 씻는 행위(the act of washing)로 비유하였으니 …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희 죄를 씻음 받으라<행 22:16>) 죄 씻음에 관한 말씀으로 로마서 6장에 주어진 의미와 다른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죄가 처치되므로 씻음의 비유는 전적으로 적합하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하였다(요일 1:7).131)
벌콥(Berkhof)은 정화→죄 씻음→죄 사함에 관하여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정화와 범죄로부터의 정화로 분류하여 죄 사함의 내용을 세분화하였다. 죄의 오염은 원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요, 범죄는 자신이 짓는 죄이다. 세례는 이 모든 죄를 정화(씻음)함으로써 죄 사함 받음을 뜻한다.
세례는 정화(purification)를 의미한다. 신약의 세례는 구약의 할례와 같다. 할례와 세례의 양식(mode)은 상이하나,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동일하다(골 2:11, 12).
신약에서는 “세례”라 일컫는 구약시대의 세정식(洗淨式)은 모두 깨끗하게 하는 정화를 상징하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에스겔 38장의 깨끗한 물을 뿌리는 의식의 세례는 “깨끗하게 함과… 그리하면… 너희가 깨끗하리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요컨대 구약의 세례는 주로 깨끗하게 하는 면과 관계가 있었다. 이와 같이 정화는 세례의 성격을 나타낸다.
세례는 물로 거행한다. 그 이유는 물은 씻는 것, 깨끗케 함을 나타내는 정화의 요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민 8:7; 19:13; 시 51:7; 겔 36:25; 히 9:10).
3. 세례의 진정한 의미(The True meanings)
(1) 세례는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정화를 의미한다(Purification from the pollution of sin).
우리 인간은 모두 아담의 후손들이므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부터의 오염을 피할 길이 전혀 없다. 실제상 우리 주변에 죄의 오염은 대기의 오염처럼 우리에게 감염된다. 죄의 오염으로부터 받는 피해는 우리의 온 영혼과 육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성령께서는 세례(성령)를 통하여 신자들을 죄의 오염으로부터 정화시키신다. 우리를 죄에서 정결케 씻어 주시는 역사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령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靈)을 살리실 뿐 아니라(엡 2:1; 요 3:3, 7), 우리의 중생한 영의 좌소에 내주하시면서(고전 3:16; 6:19-20) 우리를 또한 매일 죄에서 정결케 씻어 주신다(딛 3:5; 엡 5:26; 고전 6:11).
(2) 세례는 범죄로부터의 정화를 의미한다(Purification from the guilt of sin).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써 정죄에 이른다고 선언하였다(롬 3:23). 동서고금·남녀노소·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내면적·정신적으로 죄를 범하며, 외면적 행위로 죄를 범하는 죄인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 없다 하면 거짓말하는 자이다. 성경은 사람이 짓는 죄의 항목(조목)들까지도 구체적으로 열거하여 제시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들이 직접 지은 죄가 있다. 세례는 우리가 지은 범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씻음받는 영적 정화에 대한 외적 상징이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마 3:6).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6).
(3)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대사명)이다(Water baptism is the great commission of Jesus Christ).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가룟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 전원(11명)에게 말씀하신 지상명령이요, 우리에게 주신 대사명(great commission)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께서 임하신 후 주님의 명령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외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행 2:38)고 하였다. 베드로의 설교 말씀에 호응하여 초대교회 신자들은 즉시 세례를 받았다. 이 날 세례받은 자의 수가 3000명이나 되었다(행 2:41).
(4) 세례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일보이다(Water baptism is a step of obedience to Christ).
물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목사가 세례를 베풀고 신자가 세례를 받는 것은 주님께 순종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세례를 베풀거나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인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제 행동으로 순종하며 준행하기를 소원한다. 참 신자가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주(主)가 되심을 수납하는 신앙적 순종의 행위이다. 순종은 신앙의 표시이다.
사도행전 22:16, “… 세례를 받으라”에서 헬라어 “밥티사이”(ba,ptisai; be baptized)는 허용적 중간태이니 곧 세례를 받도록 네 자신을 허락하라(allow yourself to be baptized)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는 그 표로서 세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행전에서는 세례를 항상 개신자(改信者)들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원의 확신이 있는 신자이면 세례를 받았다.
(5) 세례는 참 신자들에게만 베풀어져야 한다(Water baptism is for genuine believers).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자는 그 표로서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세례 받는 자의 기본적 요건이다. 물세례는 성령세례의 상징인 의식적 세례(ritual baptism)이므로 중생하여 구원받고 회심한 신자들에게는 항상 물세례가 시행되어야 한다. 세례에 관한 신약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세례를 받았다고 교훈하였다(행 2:41; 8:12; 9:18; 10:47-48; 16:14-15, 33-34; 18:8; 19:3-5).
따라서 사람은 자신이 구원을 받은 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때까지는 세례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자(중생하지 않은 자=구원받지 못한 자)가 물세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말씀에 위배되며, 세례를 통하여 받은 은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이 구원받은 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하여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 신자이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보다 더 깊은 구속의 진리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획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세례는 구원과는 관계가 없다.
(6) 물세례는 성령세례의 외적 상징과 표이다(Water baptism is a symbol and sign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만이 물세례를 받는 것이 원리이다(행 10:47).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 물세례를 받은 자들도 있다. 반면에 성령세례는 받았으나 물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도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세례를 받은 자는 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라고 할 수 없음과 같이 물세례를 받지 못하였다고 모두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라고는 단정지을 수 없다. 실제상 물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 중에도 성령세례와 구원을 받은 자들이 많이 있다. 성령세례는 구원과 공존하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8장 5절에 따르면 “비록 이 규례를 멸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일이 중한 죄가 된다고 하지만 은혜와 구원은 세례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서 구원을 받은 자가 반드시 세례를 받았다거나 세례를 받은 사람 모두가 의심할 여지없이 중생을 받는 것이 아니다.”
(7) 세례는 교회의 입교 의식이다(Water Baptism is a ritual ceremony to be a member of the Church).
세례 받은 자는 교회의 공적 회원(official member)됨을 뜻한다. 신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실제로 현실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교회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초대받은 손님이나 지식인이나 권력층이 아니라, 중생한 참 신자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세례를 받지 않은 자는 교회의 일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결여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교훈을 알면서도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참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며, 참 신자들은 세례를 받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구라파의 다수 전통적 교회들은 교회 헌법상 또는 행정상 세례 받은 자들만을 교회의 회원으로 간주하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한다. 한국 교계에서도 세례 받은 자만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다.
(8) 세례는 은혜의 한 기구(방편)이다(Water baptism is an instrument of grace).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제1의 방편이라면 성례는 제2의 은혜의 방편이라고 하겠다. 성례는 말씀을 통하여 받은 은혜에 추가하여 은혜를 받거나, 또는 은혜의 분량을 중보, 강화시킨다.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나 성례는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없다. 성례는 말씀을 근거로 시행할 때 은혜의 방편이 된다. 성례에서 하나님은 영(Spirit)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은혜를 베푸신다. 그런데 성례가 은혜의 방편으로서 사용되려면 온전하고 합당한 성례, 곧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는 성례가 되어야 한다.
바른 성례가 되기 위해서는 성례의 재료, 예식의 식사(式辭), 의도와 목적 등이 성경의 교훈과 일치해야 한다. 바른 재료는 세례에서는 청결한 물, 성찬에서는 알코올 성분이 전혀 없는 포도즙, 바른 식사(式辭)는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 바른 의도와 목적은 세례 받는 자가 세례를 받음으로 받은바 구원을 확신케 하고, 신앙을 강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음을 공적으로(publically) 시인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7:3, “올바르게 사용되는 성례들 안에서 혹은 성례들(세례와 성찬)에 의하여 전시(展示)되는 은혜는 그것들 안에 있는 어떤 능력에 의하여 수여되는 것이 아니요, 성례의 효능이 그것을 집례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意圖)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요, 오로지 성령의 사역과 그것을 사용할 권위를 주는 교훈과 함께 자격 있는 수납자(receiver)가 받을 혜택의 약속을 포함하는 예수의 말씀들에 의존한다”라고 하였다.132)
성례들에 의하여 전시되는 은혜는 그것들 안에 있는 어떤 능력에 의하여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조문(條文)은 성례의 재료인 청결한 물(pure water)이나 알코올 성분이 없는 포도즙(unfermented wine) 자체가 은혜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성례의 효능이 그것을 집례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 의하지 않는다는 조문은 성례 집행자의 신앙적 준비의 가치를 과소 또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효성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9) 세례는 공적 신앙고백이다(Water baptism is a public testimony to others).
세례 받는 자는 세례를 주는 자와 그 세례식에 참여한 자들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세례를 사적(私的)인 석상에서 베풀어야 하는지 또는 공적인 석상에서 베풀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규정하거나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반면에 비밀리에 베풀거나 받는다는 시도는 전혀 없다. 실제상 사도행전 2:41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대조적으로 사도행전 8:38에서는 매우 소수에게 세례를 베푼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세례식에는 소수의 사람들일지라도 증인들(witnesses)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그 증인들은 신자들이었다.
세례는 이 죄악 세상의 옛 생활로부터 이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기독교 교리의 신봉자가 되기로, 그리고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인(Christian)이 되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신앙고백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이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았으니 어떤 이들의 경우에는 세례를 육신의 생명과 바꾸기까지도 하였다. 실로 세례는 이 세상으로부터의 이별이며,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의 일에 충성하겠다는 약속과, 자신의 안일보다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마음과 확실한 증거가 된다. 금일의 신자들도 그와 같은 신앙적 자세를 가지고 세례식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4. 세례의 중요성(Importance)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셨다(Jesus Christ was baptized).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마 3:16).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셨을 때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은 그에게 비둘기 형태로 임하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가로되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마 3:17)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에서 3위1체 교리를 발견한다. 성부는 성자께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시고, 성자는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은 성자 위에 비둘기처럼 임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 말씀이다(요 1:32-34). 이 말씀은 또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기도 하다(사 11:2).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세례와는 그 의미가 전연 상이(相異)하지만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우리에게 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가게 하셨다(벧전 2:21).
(2)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이 세례 베푸는 것을 승인(허락)하셨다(Jesus Christ approved of His disciples baptizing).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요 4:1-2).
예수님 자신은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이 세례 베푸는 것을 허락했다. 예수님 자신이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으신 것은 아마도 세례 요한과 자신과의 분열을 막기 위함일 것이며, 또한 더 큰 일을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133) 더 큰 일은 곧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었다.134)
(3)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 받으라고 명령하셨다(Jesus Christ commanded that Christians be baptized).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이 말씀은 제자를 삼는 것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그 명령을 직접 받은 사도들뿐만 아니라 참 교역자들 그리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동일한 명령이시다.
(4) 초대교회는 세례를 중요시했다(The early church gave an impor- tant place to baptism).
초대교회 사도들과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명심하여 신자들을 세례 받지 않은 상태에 남겨두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기독 신자들은 외적 증거로 세례를 받았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하였고,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행 2:38, 41). 빌립은 사마리아 전도에서 많은 남녀들과 시몬에게 세례를 베풀었고(8:12-13),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도 세례를 베풀었다(8:36, 38). 베드로는 가이사랴에서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행 10:47, 48), 바울은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 루디아와 그 집안 모두에게(16:15), 빌립보 감옥 간수에게(16:33), 고린도에서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집안에게(18:8), 에베소 사람들에게(19:5) 세례를 베풀었다.
(5) 신약은 성례를 중요한 신학적 진리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교훈하였다(The New Testament uses the sacrament to symbolize important theological truths).
세례는 정화 곧 범죄로부터의 정화와 죄의 오염으로부터의 정화를 의미하는 외적 상징으로서 중요한 신학적 진리들을 교훈한다(마 28:19; 행 2:37, 38; 16:14, 15, 34; 롬 6:1-10; 갈 3:27; 벧전 3:21).
(6) 히브리서 기자는 세례를 근본적인 진리로 신봉하였다(The writer to the Hebrews terms baptism a fundamental truth).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히브리서 기자는 기독교 세례를 범죄로 타락한 자들의 회개, 하나님께 대한 신앙, 죽은 자들의 부활, 최후 심판 등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교리들 중의 하나로 신봉하였다.135)
5. 방식(Mode)
일반적으로 세례의 방식 또는 양식은 세례(sprinkling)와 침례(immer- sion)로 이분(二分)한다.
(1) 세례(Baptism=Sprinkling)
1) 구약에서(in the O. T.)
구약시대 결례 즉 정화 의식은 물 뿌림(sprinkling)이었다. 구약시대부터 세례의 상징인 정화(purification)는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세례의 신령한 의미는 정결케 하는 것이다(출 24:6, 7; 레 14:7; 민 19:4, 8). 이것이 히브리서 9:10에서는 “씻는 것” 곧 세례로 되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 봉사하려고 할 때 손과 발을 씻었으며(출 30:18-21), 또한 그들의 개인적인 씻음이 물두멍(laver=제사장이 사용한 대야)에서 시행되었는데(대하 4:6), 거기에서부터 물이 꼭지를 통하여 부어졌다. 한편 정결은 피(blood) 또는 재(ashes) 그리고 물(water)을 뿌림으로써 시행되도록 자유스럽게 명령되었다(레 8:30; 14:7, 51; 출 24:5-8; 민 8:6-7; 히 9:12-22).
•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 나아만이 목욕하였다는 말이지 몸을 완전히 물에 잠궜다고 증명할 수 없다. 씻는다는 정화의 개념은 물을 위에서 뿌리는 것을 의미한다.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우슬초로 물을 뿌려 정결케 씻는다는 뜻이다. 우슬초를 물에 잠근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 “느부갓네살 왕이 하늘의 이슬에 젖었다”(단 4:33). 여기에 “젖었다”(wet)는 동사도 밥토(ba,ptw)이다. 젖었다는 말이 침수(浸水)를 가리킨다면 이슬이 얼마나 많아서 그 이슬에 침례(浸禮)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불가능한 일이다.
2) 신약에서(in the N. T.)
신약의 세례도 물 뿌림의 세례이다. 세례에 관한 신약성경 구절들은 침수가 아닌 “물 뿌림 또는 물 부음”(sprinkling or pouring)의 세례라는 사실을 교훈한다.
① 헬라어 원문: 밥티조(bapti,zw; baptize; 세례를 주다)는 “세례주다”(baptize), “씻는다”(wash), “정화한다”(purify) 등으로 번역하였으며, 결코 침례 또는 침수(immerse)로 번역하지 않았다. 세례에 사용된 단어들은 물 뿌림이나 또는 물 부음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는 세례의 방식으로 침례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② 유대인들의 결례(潔禮; 정결의식)도 세례를 상징한다: 기독교 세례가 정결이고, 그것이 또한 유대교의 정결의식(ritual cleaning)과 밀접한 유대인들 가운데서 제정되었으므로 자연히 뒤따라오는 것은 이러한 형식들에 대한 지식이 기독교 의식의 본질과 방식에 많은 빛을 던져 주었다는 사실이다.
•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며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market)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아니하면 먹지 아니하며...”(막 7:3-4).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눅 11:38).
•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전래적 풍속이다. 즉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과거에 랍비들에게로부터 이어받은 여러 가지 관습이 있는데(장로들의 유전) 예를 들면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시장(market)에서 돌아와서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 일반 보통 사람들이 시장(market)에서 돌아올 때마다 손이나 발을 침수(浸水)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 당시 습관이나 상황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손을 씻는 것은 몸 전체의 침수가 아님을 가리키며, 이것은 “세례준다 또는 받는다”(baptize)는 말로 표시되었다.
• 히브리서 9:10의 “여러 가지 씻는 것”은 “여러 가지 뿌림”(various sprinkling)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세례”라고 하였으니 세례의 양식이 꼭 동일하지는 않음을 가르친다. 그러면 구약의 여러 가지 세례의 양식들은 무엇이었는가?
히브리서 9:13, 19, 21에 의하면,
• 물만 뿌리는 것(sprinkling of water)
• 물과 재를 뿌리는 것(sprinkling of water and ashes)
• 기름을 뿌리는 것(sprinkling of oil)
• 피를 뿌리는 것(sprinkling of blood) 등이다.
이들 뿌리는 의식은 사용된 물질 성분에 따라 여러 가지 뿌림(various sprinkling)이었다. 그러므로 침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약성경이 침례를 가르친다거나 또는 여러 침례들을 보여준다는 등의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도리가 없다.
③ 세례 요한도 물 뿌리는 세례를 베풀었다(요 1:31): 구약시대부터 정화(淨化)의 의식인 세례는 머리 위에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본문에서도 세례는 물 뿌리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이 요한에게 와서 “당신은 누구냐?”고 질문했을 때, 요한은 “나는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바리새인들이 계속하여 “만일 당신이 메시야가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는가?”(요 1:25)라고 질문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사야 52:15; 에스겔 36:25에 근거하여 그들의 해석대로 메시야가 사람들에게 물 뿌리는 세례를 베풀 것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그들은 혹시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확인하기 위하여 질문한 것이다.
④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마 3:11-12; 막 1:7-8; 눅 3:15-18; 요일 1:19-27): 민수기 8:6-7에 의하면 구약시대의 정결케 하는 의식은 물 뿌림이었다. 물로 정결케 하는 의식이 세례였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는데 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제사장이며 동시에 선지자로서 구약의 세례인 정화 의식을 물 뿌림으로써 수행하였다(레 14:2, 7; 민 8:7; 19:4, 13). 그러므로 예수님이 받은 세례는 침례가 아니라 물 뿌림의 세례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아네베 아포 투 후다토스, avne,bh avpo. tou/ u`da,toj; “…went up straight way out of water, NIV<마 3:16>).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coming up out of the water, NKJV, NIV<막 1:9-10>).
위의 구절들에 근거하여 침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rose up from under water)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침수를 가리킴이 아니고, 물에서 강변(쪽)으로 나오셨다고 해야 올바른 해석이다.
⑤ 사도 베드로가 베푼 세례(행 2:40-41; 4:4):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3,000명이나 더하더라”(행 2:40-41).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해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신 우리 주님의 기도에 응답하여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는 3,000명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어떻게 하루에 3,000명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겠는가? “우슬초로 나를 정결(精潔)케 하소서”라는 시편 기자의 말을 기억한다면 하루에 삼천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씀은 능히 이해가 간다. 만일 사도들이 우슬초 가지나 또는 종려나무 가지와 같은 것으로 사람들 머리 위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면 하루에 삼천 명에게 세례 베풀었다는 말씀에 아무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되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실제상 예루살렘 일대는 물이 흐르는 곳이 없고, 물이 귀한 상황 하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기 위한 물 공급(供給)이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오순절의 세례는 물을 뿌리거나 붓는 세례의 방식 이외에 다른 어떠한 세례방식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침례파에서는 주장하기를 “예루살렘에는 오순절 날 3,000명이 침례를 받을 충분한 연못, 저수지들이 있었다”고 고집한다.136)
⑥ 빌립이 사막에서 구스 내시에게 베푼 세례(행 8:26-39): 빌립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구스 내시(內侍)에게 사막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구스 내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사막에서 물을 발견하고 병거에서 내려 빌립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구스 내시는 유대 지방의 남쪽에 위치한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지대의 변방(邊方)인 네게브(Negeb)를 지나는 길이었다. 설령 침례로 세례를 주고 싶은 뜻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곳에는 침례를 베풀 만한 물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만일 그곳에 침례를 베풀기에 충족한 작은 못(저수지; pool)이나 강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침례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나 강은 볼 수가 없다. 현재 그 지역에는 강(river)도 시내(stream)도 찾아 볼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 강이나 시내가 있었다고 하는 역사적 문서도 없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 간혹 찾아볼 수 있는 작은 샘물뿐인데 그것도 절벽이나 언덕배기에서 똑똑 떨어져 조그마한 물웅덩이를 이루다가 모래 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내시가 물을 보고 “보라! 여기에 물이 있다”라고 말한 것은 약간의 작은 물(후돌, u`dwr uJdwr; some water)이면서도 세례 받기에는 충분한 물을 보고 놀란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빌립이 내시에게 준 세례도 물을 뿌리는 세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⑦ 바울이 받은 세례(행 9:18): 누가는 바울이 받은 세례에 관하여 진술하기를 바울은 일어서서(stand up) 기립한 상태에서 아나니아로부터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바울이 “… 일어나 세례를 받고”(…arise and baptized<행 9:18>). 일어난다는 말은 선다(stand up)라는 말로 종종 번역되었다(행 10:26). 바울은 기립(起立)한 상태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뜻이다. 즉 세례를 받을 때 서 있었다는 뜻이다.
본문은 신약성경에 옥내(indoors)에서 세례 받은 3가지 기록들 중에 하나이다. 옥내에서 세례 받은 세 가지 사건은 바울이 받은 세례, 고넬료가 받은 세례,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받은 세례 등이다. 그 당시는 침례를 베풀 만한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으며, 침례를 위한 물도 충분하지 못했다. 당시 상황도 침례를 부정한다. 옥내에서 세례를 받은 것은 침례의 개념 자체를 부인한다.
⑧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베푼 세례(행 10:47-48): 사도 베드로는 군대의 백부장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기도하며, 구제를 많이 하는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옥내(집)에서 세례를 베풀었다.
⑨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 간수에게 베푼 세례(행 16:33): 바울과 실라가 옥(prison) 중에서 밤에 간수와 그 가족들에게 베푼 세례였다.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깊은 밤에 간수와 그 가족에게 베푼 세례는 세례 외에 다른 어떠한 방법(침례)을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바울과 실라가 바로 몇 시간 전에 얼마나 많은 매를 맞았던가를 상기해 보라! 바로 이런 상태에서 그 시각에 침례란 두 사람에게 더 없는 고역(苦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간수(看守)가 바울과 실라의 매 맞은 자리(행 16:22, 23)를 씻어준 물이 담겨 있는 바로 그 그릇의 물로 세례를 받을 때 물을 뿌리는 방식을 사용하였으리라는 것은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⑩ 성령세례가 위에서부터 임하는 것과 같이, 성령세례의 외적 상징인 물세례도 위에서부터 시행되는 세례이어야 한다: 성경은 성령세례와 물세례를 항상 밀접하게 관련시켰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영(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그 위에 임하심을 보았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그리스도께서 승천(昇天)하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고 하였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렸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셨을 때 베드로는 이것이 곧 요엘 선지서의 예언(욜 2:28-32)의 성취라고 하였다(행 2:14-18). 그런데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성령의 임하심도 “위로부터”(from above)이다. 이와 같이 세례도 세례를 받는 사람 머리 위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것(pouring or sprinkling)으로 생각해야 마땅하다.
성령세례에 있어서 세례가 위(머리 위로)로 임하는 것같이 물세례도 위로부터 베풀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물세례는 성령이 위로부터 임하시는 외적표시(外的表示)이며 상징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세례와 물세례를 항상 밀접하게 관련시켰다.
⑪ 많은 물들(many water)은 많은 샘들(many springs)을 뜻한다: “요한도 살렘 가까운 에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요 3:23).
본문은 세례의 방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구절들 중 하나이다. 만일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기 위하여 많은 물이 필요했다면 그것은 침례를 베풀 수 있었고, 또 침례였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절에 “물들이 많음이라”는 말씀은 “후다타 폴라”(u[data polla.)라는 단어로서 “많은 물들”(many waters)을 가리킨다. “후다타”(u[data)는 복수로서 물들이다. 이것은 샘들(springs or fountains)을 의미한다. 그리고 폴라(polla)는 많은 수를 가리키는 형용사이다. 결코 양적(量的)인 면을 가리키지 않는다. 즉 많은 양의 물을 가리킴이 아니다.
하지(William Hodges)는 이렇게 말한다. “애논(Aenon)은 한 수역(水域)에 많은 물이 아니라, 많은 샘들이다. 분수(fountain) 또는 샘(spring)의 복수형이 되는 애논(Ae,nw.n)은 아마도 그곳에 있는 많은 샘들 또는 분수들에서 그 이름을 취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후다타 폴라”(u[data polla.; 많은 물들)와 일치하게 된다. 즉 한 수역의 많은 물(much water)이 아니라, 많은 물들(many waters), 많은 샘들(many springs or fountains)이 되는 것이다.”137) 이 물들은 침례를 거행할 만한 넘치는 물이 아니다.
크리스티(Christy)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침례의 증거를 찾는 데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됐지만 이 샘들(springs)은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이지만 초원지대(草原地帶)를 거쳐 요단강으로 졸졸 흘러드는 물이어서 침례를 베풀 정도는 못된다”고 하였다.138)
⑫ 세례는 정화를 상징하므로 맑은 물(clean water)이 중요하다: 물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맑은 물이 중요하다. 요한이 보다 많은 물을 찾기 위해 요단 강(팔레스틴에서는 최대의 물 근원임)을 떠나 다른 지방으로 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요한은 그때에 요단강을 떠났던가?
크리스티(Christy)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요한은 세례의 의미와 같이 정결한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장소 변경의 원인으로 요한의 마음속에 틀림없이 있었던 생각은 이들 ‘많은 샘들’의 시원하고 깨끗한 물과 연중(年中) 이때쯤이면 으레 그러하듯 ‘언덕에 넘치는’(수 3:15) 요단강의 더러운 흙탕물과 비교해 본 것이다. 세례 베푸는 물은 깨끗해야 한다는 율법의 강력한 요구를 생각하며 요한은 율법대로 좇아 행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는 ‘정결한 물로 그들에게 뿌릴지니라’라는 율법의 규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139)
구약시대의 정화 방식은 물 뿌리는 것이었으며, 신약성경에 이 정화 방식이 변경되었다고 하는 여하한 기록이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례의 방식을 변경하기를 원하셨다면 그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교훈하셨을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세례의 방식을 변경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은 그 방법(물 뿌리는 것)을 변경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방법을 계속 사용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 사고(思考)가 아니겠는가? 구약에서 의식적인 정화의 방식으로서 침례가 한 번도 사용된 바 없으며, 신약에서도 침례가 한 곳에서도 사용된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만일 사도들이 침례(몸을 물속에 완전히 잠금)와 세례(물 뿌림) 이 둘을 다 사용하지 않았다면 둘 중에 어느 하나가 본래의 방법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세례 방식이 물 뿌림이었다면 물을 뿌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침수(浸水)였다면 침례를 베푸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엡 4:5)라는 말씀은 기독교의 믿음도 하나뿐이며 주님도 한 분만 존재할 수 있음같이, 세례의 양식(樣式)도 하나뿐임을 분명히 지시해 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례의 의미도 무관할 수 없다. 세례와 성찬을 거행하는 성례식은 외적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나타내려 하신 것이 죽음과 부활(침례로 상징화 된)이냐, 아니면 죄를 깨끗이 씻는 정화를 상징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정확한 의미는 오직 정확한 세례 방식에 의하여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8:3에서도 세례의 방식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세례의 올바른 방식은 사람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신앙고백서는 “당사자를 물에 잠그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례는 당사자에게 물을 붓거나 뿌리는 것(pouring or sprinkling)으로서 합당하게 되어진다”고 하였다.
(2) 세례와 관련된 전치사들
세례와 관련된 전치사들을 고찰함으로써 전치사가 들어 있는 구절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다 더 밝히 이해할 수 있다.
① 아포(a,po.; from; …에서부터, …으로부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쌔…”(아네베 아포 투 후다토스, avne,bh avpo. tou/ u[datoj; coming up from the water<NKJV>, coming up out of the water<NIV>; 물에서 올라오실쌔<마 3:16>).
전치사 “아포”(avpo.; away from)는 “… 에서부터 떠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문자적 의미는 예수님께서 요단강으로 내려가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강뚝(bank)으로 올라오셨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3:16의 아포(apo)는 마가복음 1:9, 10의 에크(evk)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아포와 에크는 어느 경우도 예수님이 물속으로 들어갔다가(into the water) 물속에서부터(from under the water) 나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무릎까지 또는 가슴까지 오는 물에 서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강 언덕으로 올라오셨다는 뜻이다. 아포와 에크는 모두 침수를 가리키지 않는다.140)
동사 “아네베”(avne,bh; went up, to climb) “기어 올라갔다”는 단어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왔다”는 단어와 동일하다. 또 마태복음 5:1에서 예수님이 산으로 “올라가셨다”는 단어도 “아네베”(avne,bh)이다. 예수님께서 보훈(寶訓)을 하시기 위하여 산에 오르실 때에 어떤 곳은 경사가 져서 기어올라(climb)가셨을 것이다. 누가복음 19:4에 삭개오가 뽕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는 단어도 아네베(avne,bh)로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올라왔다는 단어와 동일하다.
② 에크(evk; out of; …으로부터, …에서부터)
“… 예수께서 …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막 1:10).
“물에서 올라 오실쌔”(에크 투 후다토스, evk tou/ u[datoj; out of the water(NIV), from the water(NKJV); … 물에서부터) 본 절의 에크(ek)는 마태복음 3:16의 아포(apo)와 같이 해석해야 한다. 즉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물이 무릎에 이른 데 서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evk) 강 언덕으로 올라왔다”는 뜻이다.141) 이 말씀은 “예수님이 물 밑에서(물속에서; under the water) 올라 오셨다거나 또는 세례 받는 행동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 받은 후에 따르는 사건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즉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에 물에서 나와서(evk) 강 언덕으로 걸어가셨다는 뜻이다.142)
③ 에이스(evj; into; …안으로)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뇨?”(에이스 티 운 에밥티스데테, evij ti, ou-n evbapti,sqhte; into what then were you baptized?<행 19:3>).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롬 6:3).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고전 12:13).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갈 3:27).
상기 구절들은 전치사 “에이스”(evij; into; …안으로)가 사용되었다. 로마서 6:3; 고린도전서 12:13; 갈라디아서 3:27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분명히 물세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교제(union or communion with Christ)를 가리킨다.143)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교제를 가짐을 뜻한다.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께 그의 제자로, 그의 교리의 신봉자로, 그의 약속의 후사로, 그의 영적 생명의 참여자로 연합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의 생각, 사상, 언행심사 모두가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함을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으니 이제는 실제상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제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eivj; into)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와 밀접히 결합되며 그리스도의 소유가 됨을 뜻한다.144)
④ 에이스(evij)를 엔(evn)으로 해석한 경우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본 절에서는 전치사 에이스(eivj; into; …안으로)를 엔(evn; in; …안에)으로 해석하였다. 다나와 맨티(Dana and Mantey)는 에이스에 관하여 말하기를 “에이스는 엔(en; in; …안에)에서 유래되어 점차적으로 엔의 기능을 이어받아 현대 헬라어에서는 엔이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본 절에서 에이스를 엔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당하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은 “성부를 창조주와 섭리자로 인정하고 의지하는 것이며, 성자를 그의 유일의 중보자와 구속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성령을 그의 성결자와 위로자로 고백하는 것이다.”145)
⑤ 엔(evn; in; …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영어 성경(NASB, NIV)에는 전치사 엔(en; in; 안에)을 with(…함께)로 번역했다. 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은 서로 병행한다. 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은 물과 관련하여 물세례를 준다는 말씀이요,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은 성령과 관련하여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침수에 대한 여하한 개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⑥ 에피(evpi.; on, upon, near; …위에, 가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행 2:38). 그러나 NJKV, NASB와 NIV에서는 에피(evpi.; on; 위에)를 in으로 번역하였다. 즉 “in the name of Jesus Christ”,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번역되었다. 반면에 “on the name of”로 해석한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의 기초 위에 세례를 받으라는 말씀이다.146)
⑦ 휘페르(u`pe.r; for, on behalf of; … 위하여, 대신하여)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아니하면 왜 그들이<사람들> 그들을<죽은 자들>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 저자역 <고전 15:29>). 이 구절은 난해 구절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해석이 다양하다. 그중에 수용할 만한 해석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는 세례(Chrysostom), 부활을 바라보고 먼저 자신을 죽은 자같이 보고 세례받은 자들(Calvin)이라고 하였다. 헬라어 주석가들은 죽은 자(the dead)를 죽은 자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the dead)과 동일시한다.
(3) 세례 식사
세례는 기름부음 받은 성직자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푼다.
“이름으로”(eivj to. a;noma; in the name; 이름으로)는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en), 즉 그리스도를 믿는 중 세례를 받았다는 뜻이요,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evij; into), 즉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을 가리킨다(행 8:16; 19:3, 5; 고전 1:13, 15; 갈3:27).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evpi. tw/ ovno,mati; on the name; 이름 위에)의 형도 있다(행 2:38). 여기서 이름으로(evpi.; upon; 위에)는 “이름을 근거로 즉 신앙고백의 내용을 근거로” 세례를 받는다는 뜻이다.147)
(4) 평신도들도 세례를 베풀 수 있다는 주장들
개혁파 계통의 교회들은 말씀 선포와 성례를 거행하는 일은 모두 구약의 선지자와 제사장이 수행한 성직자의 임무이니 만큼 목사가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당한 주장이다.
개신교 교회들에서는 교역자를 선발할 때
• 교회를 다스리기 위하여,
• 말씀 전파를 위하여,
• 성례를 시행하기 위하여 임명한다. 그러므로 임명받은 자 외에 성례를 거행하면 그리스도의 세운 질서를 어기는 것이라고 칼빈은 말하였다.148)
전도는 일반 평신도들을 포함한 우리 전체의 임무요, 성례 거행은 기름부음 받은 종의 임무이다. 구약시대에 정화의 의식인 결례는 제사장들이,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이, 그 이후에는 안수 받은 성직자들이 거행하여 온 것처럼 성례는 목사가 거행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 특히 천주교와 금일의 독립교회들 중 일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근거로 일반 평신도들도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주장한다.
① 마태복음 28:19-20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은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임무이므로 신자들이 세례를 베풀어도 정당하다고 한다.
교회는 평신도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용납하면서 왜 평신도가 성례를 거행하는 것은 금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본문을 상세히 고찰하면 주님은 제자들 곧 사도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너희”는 사도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세례 베푸는 일은 사도들과 사도직을 이어 맡은 목사들이 수행해야 마땅하다. 성례와 전도는 구별해야 한다. 성례는 안수 받은 교역자들의 임무이며, 전도는 그리스도인들 모두의 사명이다.
② 영적인 부모가 영적인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전도는 제자를 삼는 일이요, 제자를 삼는 일은 세례를 베푸는 일이니 전도한 사람이 전도 받은 사람에게 직접 세례를 베푸는 것도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전도한 사람이 전도 받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경우 은혜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사역자와 평신도의 각기 상이한 직분들을 동일시하거나 또는 혼돈한 것이다.
③ 사도행전에 기록된 많은 세례들은 세례 베푸는 자에 관하여 강조한 일이 없다고 한다.
사도행전 2:41에 3,000명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사도(使徒)나 사도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베푸는 일에 동참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기 본문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 2:38),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3,000명이나 더하더라”(2:41)고 하였다. 이 날에 세례를 베푼 사람들은 사도 베드로를 위시하여 같이 있었던 사도들이었음이 분명하다(2:37)
④ 빌립집사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다(행 8:38). 이와 같이 모든 신자들은 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요, 종들이니 신자들에게 세례를 거행하는 일을 실제로 허락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일보이다. 고로 진실한 신자이면 누구나 세례를 베풀어도 좋다는 견해이다.149) 상기와 같은 견해들의 영향을 받아서 “어떤 초기의 침례 교인들은 신자들이 자신들에게 스스로 세례 줄 것이라는 이상한 관념을 품게 되었다.”150)
6. 수세자(Appropriate Candidate)
세례받기에 적합한 수령자(受領者)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참 신자들이다. 그러므로 세례의 적합한 수령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자라야 한다. 전도 초청의 일반적 순서도 먼저 믿고 후에 세례를 받는 것이다(막 16:16; 행 2:41; 8:12; 10:47-48; 16:33-34; 18:8).
장년(長年)의 경우 세례받기 전에 예수님을 구주(Saviour)로 믿는 신앙고백이 반드시 선행(先行)할 것이다. 이것이 요구됨은 첫째로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공적 선언(公的宣言)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진일보이기 때문이요(마 28:19-20), 둘째로 사도들과 전도인들이 세례를 베풀기 전에 세례 받을 자의 신앙에 관한 고찰을 행한 선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행 2:41; 8:37). 세례 받을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공적 신앙고백이다. 세례는 죄로부터의 정화(purification)를 상징하는 표(Sign)이니 만큼 그리스도께 순종·복종하는 자들만이 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찰스 핫지(C. Hodge)는 “성경의 교훈들과 모든 기독 교회들의 공언(公言)된 윈리들에 의하여 분명한 것은 세례받을 후보자들에게
• 적당한 복음의 지식
• 믿을 만한 신앙적 고백
• 죄가 없는 행실을 요구할 의무 아래 있다”는 것이라고 하였다.151)
공적 신앙고백이란 복음의 중요한 교리들을 바로 인식하는 신앙이다. 진리들을 바로 인식함 없이 어찌 바른 신앙을 소유할 수 있으며, 바른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회는 세례를 베풀기 전에 세례받을 후보자에게 복음의 중요한 교리들을 교훈하고, 공적인 신앙고백 그리고 성도의 경건 생활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사람이 세례받기 위하여 신앙을 고백할 때 그 고백의 증거를 요구할 뿐이다. 그리고 그 고백의 진실성을 의문시할 이유나 근거가 없는 한 그대로 수납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법에 위반되는 외적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물론 교회가 최상의 경계를 한다 할지라도 위선자들과 악인들을 식별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의 비밀을 면밀히 조사하여 고백의 진실성 여부를 가리는 것은 교회가 할 수 없으므로 교회의 영역(領域)에 속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받을 적합자 여부를 가리는 최후의 책임은 세례받을 사람 자신에게 있다. 메이슨(John M. Mason)은 말하기를 “교회는…진실을 의심하거나 특권을 거절하거나 책벌(責罰)을 가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과 순종의 공언이 성경의 다른 특징들로 인하여 불신임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 장년에게 교회의 특권들을 받을 자격을 부여한다”고 하였다.152)
7.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례(The Baptism of Jesus)
세례 요한이 일반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또 베푼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마 3:6; 막 1:4). 회개의 세례는 예수님이 받으실 하등의 이유도 없으실 뿐 아니라 받지도 않으셨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항상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다 행하셨다(요 8:29).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명을 다 지키셨다(요 15:10).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자로되 죄를 범하신 일은 없으시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시기 전이나 또는 고난 받으시는 동안에도 죄를 범하신 일이 없으시다. 예수님은 언행심사 모든 면에 있어서 죄를 범한 일이 전연, 단 한 번도 없으시다 (히 4:15; 요일 3:5; 고후 5:21).
그러면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무슨 세례인가? 세례 요한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치는 회개의 세례, 죄 사함 받기 위한 세례,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기 위한 세례, 세례의 일반적 의미인 죄로부터의 정화(죄 씻음)를 위한 세례는 분명코 받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죄 사함 받기 위하여 받는 세례와는 전연 무관한 세례를 받으셨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 자신도 예수님이 세례받기를 요청하였을 때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일을 주저하며 만류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받으러 나온 수많은 죄인들과 같이 인식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로 이 이유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하시면서 세례 베풀기를 요청할 때까지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일을 주저하고 거절하였던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아야 할 이유를 설명한 후에 비로소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1) 예수님은 무슨 이유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는가?
①모든 공의를 이루시기 위하여(To fulfill all righteousness)
예수님은 율법의 성취를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다. 신명기 6:25에 의하면 “공의는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마 5:17).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마 7:12; 11:13; 눅 16:16; 행 13:15; 24:14; 28:23; 롬 3:21). 예수님 시대의 율법은 구약의 율법(계명) 외에는 없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의식적 율법들(ceremonial laws)과 도덕적 율법들(moral laws)을 다 지키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에 순종하고 그 율법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 율법 아래 났으며(갈 4:4)
• 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으셨으며(레 12:3; 눅 2:21)
• 처음 난 것(firstborn)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말씀대로(출 13:2, 12) 자신을 성전에 드린바 되었으며(눅 2:22-23)
•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유월절을 지켰으며(출 34:23; 눅 2:42)
• 유대인의 여러 절기(명절)들을 지켰으며(막 14:12)
• 물로 뿌리는 세례(민 8:6-7; 마 3:13-17)를 받으셨으며
• 십자가상에서 율법(의식적 율법과 도덕적 율법)을 다 이루셨다(요 19:30).
그리하여 객관적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다. 그 율법은 그의 영혼이 나무에 달려 상하고 찢긴 몸에서 떠나고, 성전 휘장이 둘로 갈라지며, 그가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폐기되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 지키셨으므로 의식적 율법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도덕적 율법은 폐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의 세례의 세세한 부분에서도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전히 응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카이퍼(Kuyper)는 진술하기를 “그리스도의 세례는 형식뿐 아니라, 모든 의(공의)를 성취하였다”고 하였다.153)
예수님은 본인 자신을 위해서는 낮고 천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일생 고난과 핍박을 받을 필요도, 율법의 의무를 이행할 이유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주인으로 율법을 제정하시고 주관하시는 성자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러나 사람이 범죄, 타락하여 죄의 오염과 육신의 부패성 그리고 전적·영적 무능으로 인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죄로 인하여 멸망 받게 되었다. 이런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피택된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대리적 속죄의 원리를 제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대신에 죄인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허물과 죄를 인하여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살게 된 것이다(엡 2:1).
분명코 예수 그리스도는 피택된 죄인들을 위하여 그리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율법을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의 순종을 위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다.
②제사장에 임명되시기 위하여(To become a high priest)
구약시대 레위인들은 제사장직 임명시에 세례를 받았다. 그와 같이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제사장직 임명에 대한 의식적 예식이었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구사항들이 필요했는데 예수님은 그 모든 요구들에 대한 이행을 만족하게 수행하셨으며 그 결과로 인하여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다(히 3:1; 5:5; 7:14; 9:11).
제사장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구사항들
① 레위자손 중 남자로서 30세 이상인 자(민 4:3): 구약에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는 시기는 종종 30세였다(창 41:46; 삼하 5:4; 겔 1:1). 이 이유로 예수님은 30세에 그의 공생애를 위한 세례를 받으셨다(눅 3:23).
②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첫 대제사장 아론처럼(출 28:1 이하): 유대인의 제사장직에 들어갈 권리는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도 레위지파,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에게만 엄격히 제한되었다(출 28:1; 민 3:10, 38; 18:1). 그런데 예수님은 그 혈통을 이은 레위지파의 자손이 아니라, 유대지파의 자손이었다(미 5:2; 히 7:14; 계 5:5). 유대지파는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면 레위지파의 자손이 아니라 유다지파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는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고 분명히 대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레위지파 아론의 제사장 반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영원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에 들어 있었다(히 5: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지파 아론 계통의 육신의 혈통을 따라서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모든 규례를 초월하여 영원한 대제사장, 의의 왕, 평강의 왕이신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서 더 큰 우리의 대제사장, 완전한 대제사장이 되셨다.
예수님은 희생의 속죄제물을 항상 드려도 죄 없이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아니요, 모든 택자들의 죄를 사하시는 대제사장이시요, 동시에 자신을 단번에 드린바 된 속죄의 제물이시다.
히브리서 7:17-21,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이전 계명은 연약하며 무익함으로 폐하고(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변경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③ 제사장에 의하여 물로 세례를 받은 자(민 8:6-7): 예수님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러면 세례 요한도 제사장이었는가? 물론 그렇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는 제사장이었다. 물론 그는 아론의 자손이었다. 요한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제사장직을 이어받은 제사장이었다(눅 1:5, 13). 세례 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이시며 또한 제사장이었다.
세례 요한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이었으므로 제사장직 임명에 마지막으로 적합한 자이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선지자, 제사장, 백성의 장로들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심히 타락하였으나 세례 요한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구약시대 마지막 참된 제사장이요, 선지자였다. 하나님은 그를 보전하여 두셨다가 예수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풀게 하셨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심오하다.
(2)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 제사장이 되셨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셨다는 증거는 많이 있다.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 제사장의 권위를 행사하신 것을 들 수 있다(마 21:12; 막 11:15).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고 질문하였다(마 21:23; 막 11:28). 예수님은 자신이 받은 바 있는 요한의 세례를 인용하고 나서 “그것이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고 반문하셨다. 그것은 곧 세례 속에 자신의 제사장적인 권세와 그가 요한에게서 받은 세례간에 명확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 온 것이라고 확실히 믿었으므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으며, 제사장으로서 성전을 깨끗이 할 권세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대제사장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셨다.
예수님께서 받은 세례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본보기로서 받으신 것도 아니다. 만일 예수님의 세례가 우리에게 본보기였다면 우리도 할례도 받고 구약시대의 명절들을 비롯하여 모든 의식적 규례들을 지켜야 할 것이 아닌가?
결론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 죄를 면제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며
• 죄의 오염과 범죄로부터의 정화를 위한 세례를 받으신 것도 아니며
• 성도들에게 본보기로서의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니라,
• 제사장 임명을 위하여 율법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았다.
• 세례의 양식(mode)은 구약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의식을 따라서 침례가 아닌 세례(sprinkling)였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받는 세례는 예수님이 받은 세례와는 본질상 차이가 있다. 우리가 받는 세례는 죄 씻음(정화)받은 외적 표로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하여 받는 세례이다(마 28:19).
8. 침례 교리(The Doctrine on Immersion)
침례교 계통에서는 침례만이 침례의 본질적 요소를 나타내므로 침례만이 세례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세례의 근본적 개념은 그리스도와의 동사동생(同死同生)(롬 6:3-6; 골 2:12)이니 그것을 상징하는 것은 침례뿐이다”라고 한다.
칼손(Carson) 박사는 주장하기를 “전신의 침수가 세례의 본질임은 침수 외에 아무것도 정화의 상징이 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침수만이 명령된 때문이며, 단 침수 없이는 죽음·장사·부활의 상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154)
롸이리(Ryrie)는 주장하기를
(1) 침례는 의문의 여지없이 밥티조(baptizw)의 주된 의미이다. 헬라어에 뿌리는 것과 붓는 것을 뜻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 단어들은 결코 세례와 관련하여 사용된 바가 없다.
(2) 침례의 최상의 의미는 옛 생활의 죽음과 새 생활의 부활이다(롬 6:1-4).
(3) 침례는 어느 경우에도 베풀어졌다. 예루살렘에는 오순절 날 3,000명이 침례를 받기에 충분한 연못, 저수지들(pools)이 있었다. 가자(Gaza)로 가는 길은 사막이었으나 물이 없는 곳은 아니었다. 집들은 가끔 옥외 못들(pools)이 있어서 그곳에서 빌립보 감옥 간수의 가족이 침례를 받을 수 있었다.
(4) 물 뿌림이 아닌 물 부음은 침례에 대한 예외로 병자의 경우에 허용되었다. 그것을 가리켜 병상의 세례(clinical baptism)라고 하였다.155)
에릭슨(Erickson)은 “침례는 성경적인 방법이다”라고 주장하는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요 3:23)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물 밖으로 나오셨다(came out of the water, 막 1:10).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복음을 받은 후 빌립에게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행 8:36)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물로 내려가 빌립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고 함께 물 밖으로 나왔다(came up out of the water, 38-39). 신약 시대에 시행된 세례의 절차는 의심할 여지없이 침례였다. … 침례가 … 하나의 상징이라면 우리가 마음대로 그 방식(양식)을 변경할 수는 없다.…로마서 6:3-5에서 “바울은 세례의 방식(물 속에 잠겼다가 밖으로 나오는 방식)과 그것이 상징하는 것(죄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고 보았다”라고 하였다.156)
디이센(Thiessen)은 주장하기를 “… 세례를 베푼다는 단어(밥티조, bap tizw; to dip)는 담그다, 적시다, 잠그다를 뜻하며, 침례는 이 단어의 뜻(의미)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또한 “물 부음과 물 뿌림의 세례는 물의 부족 때문에 그리고 노년층과 어린이층에 편리하므로 나온 것이다. 세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장사 그리고 부활을 뜻하므로 침례가 가장 적절하다. 또한 회심자가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침례로 여겨진다”라고 하였다.157)
상기와 같이 침례교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침례의 근거와 이유들을 종합, 분석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세례를 준다는 원문 밥티조(baptizw)는 침례를 준다(immerse)를 뜻한다. 그것은 물 뿌림(sprinkling)이나 또는 물 부음(pouring)의 세례로서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빌립으로부터 침례를 받고 물속에 잠겼다가 밖으로 나왔다.
(2) 침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니 만큼 그것을 나타내는 세례의 방식도 물속에 완전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침례이어야 한다. 로마서 6:1-12; 골로새서 2:6-15에 기초하여 침례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로 말미암아 죽고 의로 말미암아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예루살렘 성 내에는 침례를 베풀기 위한 연못들이 충분히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3,000명에게 침례를 충분히 베풀 수 있었다.
(4) 가자(Gaza)로 가는 길은 사막이었으나 물이 없는 곳은 아니었다. 물 있는 곳에서 침례를 베풀었다.
(5) 어떤 집들은 옥외(屋外) 풀장(outdoor pool)이 있었다. 그러므로 빌립보 감옥 간수 가족이 침례를 받을 수 있었다.
(6) 개종된 세례(proselyte baptism)는 물탱크 안에서 세례받는 자 자신의 침례로 베풀어졌다. 이와 같이 세례의 양식(침례)이 교회로 넘어왔다.
(7) 물 뿌림과 물 부음의 세례는 물 부족 때문이며, 병자의 경우는 편의상 침례 대신 물 부음(pouring)의 세례가 허용되었다. 이것을 병상 세례(clinical baptism)라고 한다.
(8) 침례 주장자들이 아닌 사람들이라도 침례가 사도적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시행한 세례의 양식이었다고 인정한다.
침례 주장자들은 상기와 같은 이유들을 들어 침례를 세례의 정당한 방식으로 간주하며 물 뿌리는 세례나 물 부음의 세례는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타교단에서 세례를 받은 후 침례파로 개종한 신도들에게는 침례를 받도록 요구한다.
세례가 성경적인가, 침례가 성경적인가?
세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례가 성경적이라 하고, 침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침례가 성경적이라고 한다. 그러면 세례가 성경적인가, 아니면 침례가 성경적인가?
세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세례가 성경적일 것이다. 세례는 정한 물로 씻어 정결케 하는 영적 정화(죄 씻음)의 외적 상징이요, 표(symbol or sign)이며, 정결케 하는 의식은 구약시대로부터 머리 위에 물을 붓거나 또는 뿌리는 것(pouring or sprinkling)이니 이것이 세례의 성경적 방식이라고 한다.
침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침례가 성경적일 것이다. 침례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로 말미암아 죽고 의로 말미암아 사는 그리스도와의 동사동생의 연합을 뜻하며, 이것을 나타내는 외적 상징은 침례(침수)가 가장 적합하므로 침례가 세례의 성경적 방식이라고 한다.
세례와 침례는 그 뜻하는 바 의미와 정의 자체가 상이하므로 그것을 나타내는 외적 상징과 표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례와 침례가 뜻하는 바 의미와 정의가 무엇인가, 그리고 어느 학설을 취할 것인가에 따라서 입장을 달리할 것이다. 저자는 세례의 정당한 방식은 물 부음이나 또는 물 뿌림의 세례라는 입장을 취한다.
9. 천주교의 세례관(Baptism)
세례(영세)는 천주교의 7성사(聖事:중요한 의식)들 중 첫 번째 성사이다.
“세례성사”는 원칙적으로는 이마에 물을 3번 붓는 형식으로 세례를 베풀도록 규정되어 있다(사목지침서 제63조 4항)
(1) 세례를 받으면 원죄와 본죄(자범죄),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사함(용서) 받는다고 주장한다.
원죄와 본죄 그리고 죄로 인한 형벌을 면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가톨릭교회 교리서 1,263조, “세례를 받음으로 원죄와 본죄(자범죄)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용서 받는다 …”
“By Baptism all sins are forgiven, original sin and all personal sins, as well as all punishment for sin …”
▶ 1,279조, “세례의 열매 또는 세례의 은총은 원죄와 모든 본죄들(자범죄들)의 용서와 새 생명의 탄생, 그로 인한 성부의 양자,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고 성령의 전(temple)이 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며, 그리스도의 사제직(priesthood; 제사직)에 참여케 된다”
“The fruit of Baptism, grace, is a rich reality that includes forgi- veness of original sin and all personal sins, birth into the new life by which man becomes an adoptive son of the Father, a member of Christ and a temple of the Holy Spirit. By this very fact the person baptized is incorporated into the Church, the Body of Christ, and made a sharer in the priesthood of Christ.”
비평(A Critique)
세례를 받아야 원죄와 본죄,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사함(용서)을 받는다는 아주 잘못된 교리이다.
“원죄”(Original sin)는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가 범한 죄, 범죄로 인한 죄의 성질, 유전죄 등을 포함한다.
“본죄”(Actual sin)는 각자 자신 안에 내재하여 있는 죄의 성질로 인한 죄 된 생각, 죄 된 언행심사 등이다.
원죄와 본죄, 죄로 인한 형벌로부터의 죄 사함 받는 유일한 비결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보혈)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
(2)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한다는 주장이다.
▶ 가톨릭교회 교리서 1,129조, “교회는 성사(성례)들이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확인한다 ···”(트렌트종교회의, 1547: DS. 1604)
“The Church affirms that for believers the sacraments of the new covenant are necessary for salvation ···”
▶ 1,256조, “··· 교회는 ···구원을 위한 세례의 필요성에서 찾는다”(···the necessity of baptism for salvation”)
▶ 1,257조, “…세례는 …구원을 위하여 필요하다 …세례 이외에 어떠한 방법도 알지 못한다.”
“…Baptism is necessary for salvation …The Church does not know of any means other than Baptism …”
▶ 1,277조, “…교회가 구원이 필요하듯이, 세례는 구원에 필요하다”
“… Baptism is necessary for salvation, as is the Church itself …”
비평(A Critique)
① 성경은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 구주로 (as our personal Saviour)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계시하였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그리스도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에베소서 2:8, “너희가 …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디모데후서 3:15,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출(deliverance)을 의미한다.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구출, 죄의 형벌인 사망으로부터의 구출(deliverance from sin and death)을 의미하며, 적극적으로는 영생복락을 의미한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치신다. 믿음이 구원 자체는 아니지만, 구원을 받는 유일한 방편이요,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구원의 방편이라는 사실은 헬라어 전치사구(디아 피스테오스, diva pistew; by or through faith)에도 잘 나타나있다. “말미암아” 라는 단어는 “디아”(di,a)로서 …말미암아(by), 또는 …통하여(through)라는 뜻이다. 즉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을 통하여, 믿음을 수단으로 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이다(엡 2:8). 이는 마치 물을 저수지에서 송수관을 통하여 공급 받듯이 구원은 믿음이라는 방편을 통하여 받는다.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믿음을 “기본적 신앙”(basic faith)이라고 한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죽은 영을 그의 초자연적 능력의 역사로 다시 살리시고(중생 엡 2:1), 그 중생한 영속에 믿음을 심어 주시고(엡 2:8), 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personal Saviour)로 믿도록 하신다(요 3:16). 그러므로 이 기본적 신앙을 “구원적 신앙”(saving faith)이라고도 한다. 기본적 신앙 즉 구원적 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소유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신앙의 정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② 믿음은 구원의 방편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하면 인간의 행위·공로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벨직 신앙고백서 제 24조에 의하면, “비록 우리가 선한 일들을 행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그것들에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정결케 하거나 형벌의 상당한 것을 제거할 어떠한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벌콥(Berkhof)은 성례가 구원에 절대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① 하나님은 그의 은혜를 어떤 외형적 형식에 매이지 않으며
② 성경은 믿음만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언급하며
③ 성례는 믿음을 가져오지 않고 오직 신앙이 예상되는 곳에서 거행되며,
④ 실제상 많은 사람들은 성례 거행 없이 구원을 받는다. 아브라함 이전의 신자들과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강도의 경우를 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시나 사람이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한다. 구원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되 선택권은 사람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범죄타락으로 인하여 전적으로 부패 무능해졌기 때문이다.
(3)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 가톨릭교회 교리서 1,215조, “이를(세례)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 without whic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비평(A Critique)
이것도 아주 잘못된 교리이다.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계시하였다(요 3:3). 다시 말하면 중생하여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중생은 성령 하나님의 단독적 ․ 직접적 ․ 초자연적 능력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례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도외시하는 죄이다.
만일 세례가 원죄와 본죄(자범 죄) 그리고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사함(용서) 받기 위함이라면? 구원을 얻기 위함이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함이라면? 세례는 가장 중요한 성례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① 왜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아니 하셨을까?(요 4:2)
②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한편 강도에게 세례 받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눅 23:43)
③ 왜 예수님은 많은 고난과 고초를 당하시고 최후에는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셨는가?
④ 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는가?(요 3:16; 롬 3:28, 10:9-10; 엡 2:8)
세례는 누가 줄 수 있는가?
천주교에서는 세례가 그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주교와 사제 이외에 부제(집사) 심지어는 세례 받지 않은 사람, 특별한 경우에는 불신자까지도 세례집전에 요구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세례를 줄 수 있다고 한다.
▶ 가톨릭교회 교리서 1,256조, “세례의 일반적인 집전자는 주교(bishop)와 사제(priest)이며, 라틴교회에서는 부제(Deacon; 집사 봉사직)도 세례를 줄 수 있다. 긴급한 경우에는 누구나 심지어는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까지도 세례 집전에 요구되는 의향(의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세례를 줄 수 있다. ··· 교회는 그 이유를 보편적(우주적)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의지와 구원을 위한 세례의 필요성에서 찾는다”
▶ 1,284조, “긴급한 경우에는 누구나 세례를 줄 수 있다. 다만 교회가 행하는 것은 자신이 행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너에게 세례를 주노라” 말하면서 세례후보자(대상자)의 머리에 물(자연수)을 붓는다”
비평(A Critique)
세례와 성찬을 거행하는 침례자는 안수 받은 말씀의 사역자의 임무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7장 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성례가 두 가지 밖에 없으니 곧 세례와 성찬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합법적으로 안수 받은 말씀의 사역자 외에 다른 사람에 의해서는 베풀어질 수 없다.”
칼빈(Calvin, John)은 “사사로운 개인들이 세례를 주는 것은 잘못이란 것을 여기서 말해준다. 왜냐하면 세례와 성찬을 거행하는 것은 말씀의 사역자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자들이나 남자들 누구에게나 이 일을 명령하시지 않으시고, 그가 임명하신 사도들에게만 명령하셨다. 그는 친히 합법적인 청지기 직책을 행하시면서(눅 22:19), 그것을 본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행하라고 명령하셨을 때에 분명히 그들이 자기의 본(example)을 따르기를 원하셨다.”
전도는 일반 평신도들을 포함한 우리 전체의 임무요, 성례 거행은 기름 부음 받은 종의 임무이다. 구약 시대 정화의 의식인 결례는 제사장들이,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이, 그 후에는 안수 받은 성직자들이 거행하여 온 것처럼 성례는 목사가 거행하여야 한다.
임종 세례는 무엇인가?
① 임종세례는 죽을 위험 중에 있는 사람이 간단한 세례를 받는 것이다.
② 임종자가 의식이 있을 경우에는 세례를 받을 의사를 확인하고, 천주교의 기본 교리들(하나님, 구원, 선악상벌, 성체 …)을 설명하여 그 믿음을 확신하고 죄를 뉘우치도록 인도하고 세례를 준다.
③ 임종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평소에 세례 받을 의사가 있고 죄를 뉘우치는 마음이 추정되면 조건부로 세례를 준다.
④ 임종자가 세례를 받은 후 건강이 회복되는 경우에는 교리교육을 실시한다(사목지침서 제 55조 참조).
비평(A Critique)
천주교 에서는 세례를 받으면, 원죄와 본죄(자범죄) 그리고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사함을 받는다.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세례가 그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임종시에도 세례를 준다.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으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고 한다.
▶ 가톨릭교회 교리서 1,261조,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아이들에 관하여는 … 구원의 길이 열려있다고 우리에게 희망을 허락한다.”
“As regards children who have died without Baptism, … allow us to hope that there is a way of salvation for children who have died without Baptism.”
▶ 1,283조,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아이들에 대하여는 교회의 전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의지)하도록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초청한다.”
“With respect to children who have died without Baptism, the liturgy of the Church invites us to trust in God’s mercy and to pray for their salvation.”
10. 세례의 참된 의미(True Meaning)
(1)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대사명)이다(Water baptism is the great mission of Jesus Christ).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가룟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 전원(11명)에게 말씀하신 지상명령이요, 우리에게 주신 대사명(great commission)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께서 임하신 후 주님의 명령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외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 2:38)고 하였다. 베드로의 설교 말씀에 호응하여 초대교회 신자들은 즉시 세례를 받았다. 이 날 세례 받은 자의 수가 3000명이나 되었다(행 2:41).
(2) 세례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일보이다(Water baptism is a step of obedience to Christ).
물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목사가 세례를 베풀고 신자가 세례를 받는 것은 주님께 순종하는 일이다. 그 이유는 세례를 베풀거나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인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제 행동으로 순종하며 준행하기를 소원한다. 참 신자가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주(主)가 되심을 수납하는 신앙적 순종의 행위이다. 순종은 신앙의 표시이다.
사도행전 22:16의 “… 세례를 받으라”에서 헬라어 “밥티사이”(bavqti sai; be baptized)는 허용적 중간태이니 곧 세례를 받도록 네 자신을 허락하라(allow yourself to be baptized)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는 그 표로서 세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행전에서는 세례를 항상 개신자(改信者)들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의 구원의 확신이 있는 신자이면 세례를 받았다.
(3) 세례는 참 신자들에게만 베풀어져야 한다(Water baptism is for genuine believers).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자는 그 표로서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세례 받는 자의 기본적 요건이다. 물세례는 성령세례의 상징인 의식적 세례(ritual baptism)이므로 중생하여 구원받고 회심한 신자들에게는 항상 물세례가 시행되어야 한다. 세례에 관한 신약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세례를 받았다고 교훈하였다(행 2:41; 8:12; 9:18; 10:47-48; 16:14-15, 33-34; 18:8; 19:3-5).
따라서 사람은 자신이 구원을 받은 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때까지는 세례를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않은 자(중생하지 않은 자=구원받지 못한 자)가 물세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말씀에 위배되며, 세례를 통하여 받은 은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이 구원받은 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하여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 신자이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보다 더 깊은 구속의 진리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획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세례는 구원과는 관계가 없다.
(4) 물세례는 성령세례의 외적 상징과 표이다(Water baptism is a symbol and sign of the baptism of the Holy Spirit).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만이 물세례를 받는 것이 원리이다(행 10:47).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 물세례를 받은 자들도 있다. 반면에 성령세례는 받았으나 물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도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물세례를 받은 자는 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라고 할 수 없음과 같이 물세례를 받지 못하였다고 모두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라고는 단정지을 수 없다. 실제상 물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 중에도 성령세례와 구원을 받은 자들이 많이 있다. 성령세례는 구원과 공존하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8장 5절에 따르면 “비록 이 규례를 멸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일이 중한 죄가 된다고 하지만 은혜와 구원은 세례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서 구원을 받은 자가 반드시 세례를 받았다거나 세례를 받은 사람 모두가 의심할 여지없이 중생을 받는 것이 아니다?
(5) 세례는 교회의 입교 의식이다(Water Baptism is a ritual ceremony to be a member of the Church).
세례 받은 자는 교회의 공적 회원(official member)됨을 뜻한다. 신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실제로 현실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교회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초대받은 손님이나 지식인이나 권력층이 아니라, 중생한 참 신자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다. 세례를 받지 않은 자는 교회의 일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결여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주님의 교훈을 알면서도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참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며, 참 신자들은 세례를 받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구라파의 다수 전통적 교회들은 교회 헌법상 또는 행정상 세례 받은 자들만을 교회의 회원으로 간주하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한다. 한국 교계에서도 세례 받은 자만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다.
(6) 세례는 은혜의 한 기구(방편)이다(Water baptism is an instrument of grace).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제1의 방편이라면 성례는 제2의 은혜의 방편이라고 하겠다. 성례는 말씀을 통하여 받은 은혜에 추가하여 은혜를 받거나, 또는 은혜의 분량을 중보, 강화시킨다.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나 성례는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 될 수 없다. 성례는 말씀을 근거로 시행할 때 은혜의 방편이 된다. 성례에서 하나님은 영(Spirit)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은혜를 베푸신다. 그런데 성례가 은혜의 방편으로서 사용되려면 온전하고 합당한 성례, 곧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는 성례가 되어야 한다.
바른 성례가 되기 위해서는 성례의 재료, 예식의 식사(式辭), 의도와 목적 등이 성경의 교훈과 일치해야 한다. 바른 재료는 세례에서는 청결한 물, 성찬에서는 알코올 성분이 전혀 없는 포도즙, 바른 식사(式辭)는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 바른 의도와 목적은 세례 받는 자가 세례를 받음으로 받은바 구원을 확신케 하고, 신앙을 강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음을 공적으로(publically) 시인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7:3에서는 상기 뜻을 명시하였다. “올바르게 사용되는 성례들 안에서 혹은 성례들(세례와 성찬)에 의하여 전시(展示)되는 은혜는 그것들 안에 있는 어떤 능력에 의하여 수여되는 것이 아니요, 성례의 효능이 그것을 집례 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意圖)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요, 오로지 성령의 사역과 그것을 사용할 권위를 주는 교훈과 함께 자격 있는 수납자(receiver)가 받을 혜택의 약속을 포함하는 예수의 말씀들에 의존한다”라고 하였다.
성례들에 의하여 전시되는 은혜는 그것들 안에 있는 어떤 능력에 의하여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조문(條文)은 성례의 재료인 청결한 물(pure water)이나 알코올 성분이 없는 포도즙(unfermented wine) 자체가 은혜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성례의 효능이 그것을 집례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 의하지 않는다는 조문은 성례 집행자의 신앙적 준비의 가치를 과소 또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효성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7) 세례는 공적 신앙고백이다(Water baptism is a public testimony to others).
세례 받는 자는 세례를 주는 자와 그 세례식에 참여한 자들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세례를 사적(私的)인 석상에서 베풀어야 하는지 또는 공적인 석상에서 베풀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규정하거나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반면에 비밀리에 베풀거나 받는다는 시도는 전혀 없다. 실제상 사도행전 2:41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대조적으로 사도행전 8:38에서는 매우 소수에게 세례를 베푼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세례식에는 소수의 사람들일지라도 증인들(witnesses)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그 증인들은 신자들이었다.
세례는 이 죄악 세상의 옛 생활로부터 이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기독교 교리의 신봉자가 되기로, 그리고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인(Christian)이 되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신앙고백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이 가혹함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았으니 어떤 이들의 경우에는 세례를 육신의 생명과 바꾸기까지도 하였다. 실로 세례는 이 세상으로부터의 이별이며,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의 일에 충성하겠다는 약속과, 자신의 안일보다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마음과 확실한 증거가 된다. 금일의 신자들도 그와 같은 신앙적 자세를 가지고 세례식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천주교의 칠성사(7 Sacraments)
천주교에서는 세례(세례성사), 성찬(견진 성사) 이외에도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 등을 첨가하여 칠성사를 주장한다.
천주교에 의하면 12세기 이후로 7수를 신적 권위에 의한 계시의 진리라고 주장하여 왔다. 리온(Lyon, A. D. 1245, 1274)과 훌로런스(Florence, A. D. 1431, 45) 공의회들은 7성례를 찬성하여 선언하였고, 트렌트공의회(Council of Trent, A. D. 1545, 63)에서는 칠성사 전수(全數)가 모두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례들이라고 결의 하였다. 이것은 매우 불행한 역사적 발전의 결과였다.
출처 : 조영엽 박사/교회론/언약출판사/201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