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찬
(Lord’s Supper)
성찬은 세례와 더불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예식이다. 그러므로 세례와 성찬을 성례(Sacraments)라고 한다.
1. 성찬의 유래(Origin)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 언덕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아놓고 유월절을 지키면서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적적 역사로 구출한 것을 기념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큰 명절 중에 하나이다(출 12:14; 13:3, 9; 신 16:12).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36년 일제 압박과 쇠사슬에서 해방된 8·15 광복절과도 같은 날이다.
성찬은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시에 성찬 예식을 친히 제정하시고 거행한 신령한 제도이다. 그리고 이 성찬을 계속해서 지킴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분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여 피를 흘림으로써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언약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new covenant)이라고 말씀하셨다. 성찬은 우리의 죄를 사죄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례이다. 성찬은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였으므로 신적 권위에 근거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변경하거나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찬식을 거행한 바로 그날에(on that day)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셨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는 때로부터 하루가 시작되어 그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므로 주님께서 유월절 날 세상을 떠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다.
2. 용어(Terminology)
신약에서 성만찬은 몇 가지 명칭들로 언급되었다.
① 떡을 뗌(Breaking of the Bread, 행 2:42; 고전 10:16)
② 성찬(Holy Communion, 고전 10:16)
③ 주의 상(Table of the Lord, 고전 10:21)
④ 주의 만찬(the Lord Supper, 고전 11:20)
⑤ 성찬(Eucharist, 고전 11:24)
천주교에서는 미사(Missa)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 미시오(missio; to dismiss the people; 사람들을 해산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성경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3. 성찬의 진정한 의미(A Real Meaning)
(1)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A Remembrance of the Death of Jesus Christ).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기념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22:19-20,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1:24,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아남네시스, avn a,mnhsi.j; remember)고 명하였다.
고린도전서 11:24-26,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① 기념하라(아남네신, avna,mnhsi.n; remember)는 명령형이다. 주님의 명령은 지상명령이요,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요 특권이다.
② 성찬식을 거행함으로 기념하여야 한다. 생각이나 말로만 아니라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③ 반복적으로 계속 성찬식을 거행함으로 기념하여야 한다. “기념하라”는 단어에서 접두어 아나(ana; again; 다시)는 계속 반복을 강조한다.
④ 성찬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2)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외적 표(sign)이며, 믿음으로 수납하는 인(seal)이다.
환언하면 외적, 감각적 표를 가지고 그것이 의미하는 신령한 영적 진리를 믿음으로 인치는 것(확인)이다. 즉 우리는 성찬식에서 떡을 떼며 포도즙을 마실 때마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희생의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죽으심에 대한 의미를 계속 반복적으로 기념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0:45에서는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교훈해 주고 있다. 참으로 우리 주님의 죽으심은 대리적 속죄의 죽으심이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구원의 본질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요 3:14-15),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셨다(마 16:21; 막 8:31; 눅 9:22; 17:25; 24:7; 요 12:32-34). 그리고 말씀대로 죽으셨다 다시 부활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반드시 대신 죽으셔야만 했다. 그리스도께서 떡을 가리키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라”고 하시고 또 포도즙을 가리키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고전 11:24; 막 14:24)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침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진리를 교훈하신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구원사역의 절정(climax)이요, 객관적 구속사역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죽으심에 대한 복음을 영접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구원의 최종적 역사임을 기념해야 한다. 바로 이 이유로 사도 바울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를 기념하라고 권면하였다.
(3)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의 의미를 내포한다(A Fellowship with Christ).
고린도전서 10:16,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일이다. “동참”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wni,a)로서 사귐 ․ 친교 ․ 교제 ․ 교통(fellowship ․ communion ․ communication)을 가리킨다(행 2:42; 고전 1:9; 고후 8:4; 갈 2:9; 빌 1:5; 2:1; 3:10; 요일 1:3, 6, 7). 성만찬에서 먹고 마시는 것(eating and drinking)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수납하고 마음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참으로 신자들은 성찬식에서 떡을 떼고, 포도즙을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와의 교제 ․ 친교 ․ 사귐 ․ 교통이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참으로 귀중한 교제이다.
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보혈로) 이루어진 “수직적 교제”(vertical fellowship)이다.
② 지금 우리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우리 주님과 “영적 교제”(spiritual fellowship)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교제 전부는 아니다.
③ 우리의 최종 최대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직접적 교제”(direct fellowship)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우리는 신령한 부활체로 변화될 때, 우리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영혼과 육신을 모두 구속하여 주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직접적 교제를 갖게 될 것이다.
(4) 성찬은 신자들 상호간의 교제의 의미를 내포한다
(A Fellowship with Other Believers).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도신경, “…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을 믿사오며 …”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뿐만 아니라, 신자들 상호간의 교제도 포함한다. 신자들 상호간의 교제는 그리스도와의 수직적 교제의 결과로 인하여 이루어진 교제, 즉 “수평적 교제”(a horizontal fellowship)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과의 사이에 신령한 영적 교제를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신자들 상호간의 참된 교제는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영적 교제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교제, 즉 수직적 교제가 결여된 또는 배제된 사람들만의 수평적 교제는 참된 성경적 교제가 아니라 사람들만의 교제일 뿐이다.
참된 신령한 영적 교제, 참 신자들 사이의 아름다운 교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동일한 신앙을 고백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주님은 한 분이시요, 한 주님과 연합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동일한 떡을 뗌으로써 참된 신앙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 이점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 사이의 당파와 분쟁을 책망하였다(고전 3:3-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 곧 속죄함 받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이다. 우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들로서 그리스도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 4:3). 성도의 교제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성찬에 참여한 증거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아름다운 신령한 교제로 나타나야 한다. 교회는 형제가 서로 화목하며 아름다운 교제가 항상 이루어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현대 자유주의 교회들의 소위 말하는 에큐메니칼 운동(Ecume- nical Movement)은 비성경적 연합운동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연합운동은 신비적, 영적, 신령한 그리고 동일한 신앙고백 위에서의 연합이 아니라, 오로지 세속적ㆍ조직적ㆍ유형적인 연합뿐이기 때문이다.
(5)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부활·재림의 선포를 내포한다
(A Proclamation of Christ’s Death, Resurrection and Second Coming)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전하는 것이니라”(katagge,llete; ye declare, proclaim, preach)는 선언하다, 선포하다, 설교하다 이다. 따라서 성찬식에서의 말씀은 성찬의 영적 의미들을 선언 ․ 선포 ․ 설교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고전 15:3, 4)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전하는 것, 선포하는 것이 곧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많은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참혹히 죽으신 것과, 죽은 지 3일만에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의 역사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깨치시고 무덤에서 육체로 부활하신 것과,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과의 신령한 영적 교제와,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과, 앞으로 영광 중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 등을 선포하는 것이다.
(6) 성찬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시행된다(Till He Comes).
사도 바울은 성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지킬 것을 분부하였다.
고린도전서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오실 때까지”라는 말씀을 강조한다.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영구한 본분이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영구한 제도이므로 세상 끝날까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모든 하나님의 교회에서 시행해야 한다.
사도들은 성찬식을 성실히 거행하였다. 성찬이 시행된 것은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마 26:26-29; 막 14:22-25; 눅 22:15-20). 사도들은 이 성례를 성실히 수행하여 만대 교회에 본을 보였다(행 2:42, 46, 20:7). 사도바울은 그가 개척한 교회마다 성만찬에 관하여 교훈하시고 엄수하도록 명하였다. 그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이 과거에 교훈하신 것을 회상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미 전한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고전 11:23)이라고 하였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을 자주 거행하였으며 영구적 제도로 제정하였다. 이 규례는 초대교회 시대부터 금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영구적 제도로서 시행되어 올 뿐 아니라,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거행될 것이다.
(7) 성찬은 은혜의 방편(A Means of Grace)이다.
성찬은 신자들이 영적 신앙생활에 혜택을 주는 은혜의 방편이다. 성찬은 신자가 성찬에 합당한 참여자인 경우 말씀을 통하여 받은 은혜위에 은혜를 추가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제96문, 성찬은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체와 정욕으로 참여함이 아니요, 믿음으로 그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 영적 양육과 은혜 가운데 장성하므로 그의 모든 혜택을 받는다.”
(8) 성찬은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Hope for Lord’s Coming)
주님의 성찬을 기념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받으신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죽은 지 3일 만에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깨치시고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의 역사로 다시 부활하신 육체적 부활 등 과거를 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앞으로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망하는 것이다. 성찬식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도들의 최대의 대망으로 열망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권능으로 천군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떠난 사람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며, 생존 성도들도 홀연히 부활체로 변화하여 주님을 영접할 것이다. 그때에는 죄악도 불의도 없는 하나님의 공의의 나라,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나라,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모든 것의 전환점(turning point)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일한 소망이다.
4. 성찬의 참예자(Eligible Participants)
(1) 무흠한 세례교인
성찬에 적합한 참여자는 성령으로 거듭(중생)난 후 세례받은 자이다. 참으로 성령에 의하여 중생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 신앙고백과 일치하게 생활하는 자들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 성찬은 영적으로 자격 있는 자들을 위해서만 의도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합당한 자는 세례를 받은 자로서 지식적으로 주님의 몸을 분별하고(recognize the Lord’s body, 고전 11:29), 신앙적으로 그와 더불어 복음의 언약을 약정하고, 또한 성령을 통하여 그와 더불어 교제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영적인 조건에 부합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2) 입교(入敎) 문답한 자
성찬에 적합한 참여자는 유아세례를 받고 성년(成年)이 되어 입교 문답한 자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는 입교 예식을 거친 후에 성찬에 참여할 것이다. 연령의 제한은 당회의 재량에 맡길 것이다.
예배모범 9장 “가견적 교회(visible church)의 울타리 안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봉헌된 자녀들은 그들이 분별할 수 있는 연령에 이르게 될 때 만일 그들이 넘어짐에서 자유하게 되고 건전하고 견고하게 된다면 그리고 주님의 몸을 분별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면 그들은 마땅히 성찬에 오는 것이 그들의 의무요, 특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야만 한다.”158)
소년의 성년 되는 시기는 확정할 수 없으나 일반 입교인의 자격을 살펴 작정하는 책임은 그 당회에 있은즉 이 일도 당회가 결정한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가 당회 문답에 합격하여 성찬에 처음 참여할 때에 정식으로 교회 앞에서 자기의 믿음을 선언함이 옳다. 그는 출생시부터 교회와 특별히 관계 있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게 할 것이다.
(3) 자기를 살핀 자
성찬에 적합한 참여자는 세례를 받은 자나 입교문답을 한 자로서 성찬 참여 전에 자기를 살핀 자이다(고전 11:28-29 대요리문답 177문).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에 자기를 살피는 일은 그리스도의 명령이요, 성찬 참여자의 필수적 임무이다. 자신을 “살피다”(도키마조, dokima,zw; to prove, test, approve, examine; 입증하다, 시험하다, 인정하다, 조사하다)는 뜻이다.159)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자신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시험해 보는 것이요,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깊은 반성을 의미한다. 자신을 살피는 자라고 하였으니 타인들, 즉 목사·장로·집사·다른 교인들·집안 식구들 등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피는 것을 뜻한다.
성경은 성찬에 참여할 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나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라”(고전 11:28).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하였다.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 26:2),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0-23)라고 하였다.
대요리 문답 제171문: 성찬의 성례를 받고자하는 사람들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합니까?
답: “성찬의 성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신들의 죄와 부족을 자신들의 지식·믿음·회개·하나님과 형제들에게 대한 사랑, 모든 사람에게 대한 자선, 그들에게 해를 준 사람에게 대한 용서와, 그들이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욕망과, 그들의 새로운 순종을 검토함으로써 그리고 심각한 명상과 간절한 기도로 이 은혜들의 실행을 새롭게 함으로써 성찬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소요리 문답 제97문: 주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답: “주의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반드시 주님의 몸을 분별할 줄 아는 지각과(고전 11:28), 주님의 양심으로 믿는 믿음과(고후 13:5), 회개와(고전 11:31), 사랑과(고전 14:11), 복종할 새로운 각오가 자기에게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살펴야 됩니다(고전 5:8, 11:27). 혹 부당하게 참여하여 자기들에게 돌아올 정죄를 먹고 마실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요리 문답 제172문: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혹은 성찬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의심하는 자도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답: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혹은 성찬의 성례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의심하는 사람이 아직 확실하지 못할지라도 그리스도께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그런 관심의 결핍을 알고 염려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악을 떠나고 싶어하는 거짓 없는 소원이 있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69문: 성찬의 성례를 거행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를 어떻게 주고받으라고 명하셨습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성례를 거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말씀의 사역자들을 임명하여 성찬 제정의 말씀과 감사와 기도로 떡과 포도주를 일반적 사용에서 구별하고 떡을 들어 떼어 떡과 포도주를 성찬 참여하는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그들은 같은 명령에 의해서 그들을 위하여 찢어서 주어진 그리스도의 몸과 흘려진 피를 감사히 기억하면서 떡을 받아먹고 포도주를 마시게 하신 것입니다”(고전 11;23-24; 마 26:26-28; 마 14:22-24; 눅 22:19-20).
대요리 문답 제174문: 성찬의 성례를 거행함에 있어서 그것을 받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답: “성찬의 성례를 받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것을 거행하는 동안에 모든 거룩한 경외심과 주의를 가지고 그 규례에서 하나님을 앙망할 것이며, 성례의 요소들과 동작을 잘 지켜보고 주의 몸을 주의 깊게 분별하고, 그의 죽음과 고난을 정성스럽게 묵상함으로써 자신들을 분기시켜 저희 받은 은혜들을 힘 있게 실행함이며, 자신을 판단하여 죄를 슬퍼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름같이 열심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그의 양육을 받고, 그의 사랑을 기뻐하며, 그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게 되는 것과 하나님과의 언약과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제175문: 성찬의 성례를 받은 후에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무엇입니까?
답: “성찬의 성례를 받은 후에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성찬의 성례에서 어떻게 행동했으며 어떠한 성과를 가져 왔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만일 그들의 소생함과 위로를 받았으면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 은혜의 계속을 빌며,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맹세한 것을 실행하며, 그 규례에 자주 참여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아무런 혜택이 없으면 이 성례를 위한 준비와 이것에서 가진 자세를 더 정확히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 두 가지에서 다 하나님 앞과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자신들을 용납할 수 있으면 때가 열매가 나타날 것을 믿고 기다릴 것이나, 만일 그들이 어느 편으로 보나 실패했음을 깨달으면 그들은 스스로 낮아져서 후에 더 많은 주의와 부지런함으로 성찬의 성례에 임해야 합니다.”
5. 성찬의 불참자(Ineligible Participants)
성경은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들을 살피라고 권면한다. 성찬에 부당하게 참여하면 약속하신 축복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살과 피에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1) 범죄자들
중생함을 받고 세례를 받은 자라도 최근에 지은 죄에 대한 가책이 있어서 양심에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 무지하고 완악한 사람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외부적 조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 이유는 주님의 피를 범하는 죄는 다른 모든 죄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다. 합당치 않는 자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를 모독하는 행위이다(고전 11:27; 고후 6:14-16; 고전 10:21). 경건치 않은 자의 성찬 참여는 성경말씀이 금하므로 실제로 불가능하다(고전 5:6-7; 고후 3:6).
찰스 하지(Charles Hodge)는 진술하기를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님의 살과 피에 부당하게 참여하는 것의 의미는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고자 하는 의도나 열망이 없는, 또한 우리가 확인하는 서약들을 쫓을 목적도 없이 부주의하거나 의아해 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주의하고 불경건한 것을 향한 것이다”라고 하였다.16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9:8, “이 성례에서 무지하여 악한 자들이 외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였다고 할지라도 저희들은 이 성례가 의미하는 본질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 성례에 부당하게 참여함으로써 주의 몸과 피를 범하게 되어 스스로 정죄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무지한 자와 경건치 아니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를 하는 몸에 합당치 못할 뿐만 아니라, 주의 식탁에 참석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저희가 그곳에 참석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에게 중한 죄를 범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거룩하고 신비한 일에 참석을 한다거나(고전 11:27-29; 고후 6:14-16) 앞에 나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고전 5:6-7, 13; 살후 3:6, 14, 15; 마 7:6).
(2) 양심에 가책 받는 자들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 범죄하여 양심에 가책을 받는 자는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까지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
대요리 문답 제173문: “신앙을 고백하고 성찬을 받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더라도 무식하거나 꺼리낌이 있음을 알게 되면 그들이 가르침을 받고 변화가 나타나기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 맡기신 권세로 그들이 성찬을 못 받게 할 수도 있고 못하게 해야 한다.”
(3) 교회의 권징과 치리하에 있는 자들
성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함이니(기독교 강요 4장 15, 20) 말씀의 지시(의도)에 부합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참 신자라도 범죄하였을 경우 그리스도와 기쁨으로 교제(교통)함이 부당하다. 그들은 거룩한 성찬식에 참여하여 주님의 식탁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전 5:6, 11-13; 7:13; 살후 3:6, 14-15; 민 17:6). 권징 하에 있는 신자들은 그 징계가 해제될 때까지는 그 교회는 물론 다른 교회에서도 성찬에 참여할 수 없고 참여하여서도 안된다. 교회와 성례의 성결은 반드시 안보(安保)되어야 한다.
(4) 성찬의 뜻을 모르는 자(무분별한 자들과 어린아이들)
신앙적 지식이 빈약하여 성례의 정당한 의의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 영적으로 우매하여 분별력이 없는 자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 이단의 거짓 교훈을 추종하는 자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성찬 참여를 허락하지 않는다. 무분별한 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성찬에 참여할 요건들, 즉 자기를 살피는 일과 주의 몸을 분별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전 11:29).
(5) 불신자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으므로 성례에 참석할 수 없다.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은 물론 교회에 출석은 할지라도 중생하지 않은 자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 성찬은 교회의 거룩한 성례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자들은 주의 상에 참여할 수 없다. 따라서 성찬에 적법자들을 가려내기 위하여 교회는 모든 신자들에게 일정한 신앙고백을 요구해야 하며, 그 신앙고백에 의하여 성찬의 자격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상기와 같이 경건치 않은 범죄자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자들, 무분별한 자들, 교회의 치리와 권징하에 놓여 있는 자들, 어린아이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불신자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
6. 성찬의 횟수(numbers)
성경은 성찬식은 얼마나 자주 거행하여야 한다는 언급은 없다. 사도 바울은 단순히 “네가 이것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전 11:25)고 했다.
칼빈(J. Calvin)은 성찬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거행할 것을 권장하였고, 교회정치문답조례 159문에 의하면 “성찬 예식은 자주 베푸는 것이 좋으나, 형편에 따라 목사나 장로들이 결정할 것이다”(예배모범 8:1)라고 하였다.
천주교, 루터교, 그리스도교 등은 성찬 예식을 매주 거행하며 그 타 개신교회들은 성찬의 횟수가 일정하지 않다.
쭈윙글리(Zwingli)는 성찬 예식을 1년에 4회(부활절, 오순절, 가을 , 구주성탄절) 거행할 것을 권장하였다.
7. 성찬의 여러 가지 설들
(1) 화체설(Transubstantiation)-천주교 교리
천주교에서는 성찬예식(성체성사)에서 화체설을 주장한다. 화체설이란 성찬예식 시 사제(Priest)인 신부(Father)의 축성 기도를 통해서 떡(알토스, a,rtoj, bread; 빵)을 먹고 포도즙을 마시는 순간 떡과 포도즙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다.
성 크리소스톰(St. Chrysostom)은 선언하기를, “… 이는 내 몸이니라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헌물들(빵과 포도주-저자 해설)을 변화시킨다.”
“It is by the conversion of the bread and wine into Christ’s body and blood that Christ becomes present in this sacrament. … St. John Chrysostom declares: …This is my body, he says. This word transforms the things offered.
▶ 가톨릭교회 교리서 1,333조,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청원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become) … 빵과 포도주의 표징(signs)은 신비롭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면서도 창조계의 확실한 산물이라는 의미도 잃지 않는다. …”
“At the heart of the Eucharistic celebration are the bread and wine that, by the words of Christ and the invocation of the Holy Spirit, become Christ’s Body and Blood. … The signs of bread and wine become, in a way surpassing understanding, the Body and Blood of Christ; they continue also to signify the goodness of creation. …”
▶ 1,350조,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의 몸과 피가 된다.”
“… Eucharistic sacrifice in which they will become his body and blood …”
▶ 1,375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성체성사)에 현존하시게 된다 …”
▶ 1,376조, “트렌트 공의회는 … 빵과 포도주의 특성(논리적 관건) 으로서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한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변화라고 불러 왔다.”
“The Council of Trent … by the consecration of the bread and wine there takes place a change of the whole substance of the bread into the substance of the body of Christ our Lord and of the whole substance of the wine into the substance of his blood. This change the holy Catholic Church has fittingly and properly called transubstantiation.”
▶ 가톨릭 백과사전 제4권, “거룩한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 이것을 화체(transubstantiation)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대로 남아 있지 않고 빵의 전(全) 실체(entire substance)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전(全)실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빵과 포도주의 외형(outward semblance)만 남게 된다.161)
비평(A Critique)
화체설은 9세기 라드벌투스(Radbertus)가 성찬 거행시 비록 외적 모양과 형태 ․ 맛 ․ 감각 ․ 냄새는 그대로 남이 있으면서도 떡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實體)로,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된다는 소위 화체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화체설은 1059년 교회의 신앙으로 선포되었고 소위 제177대 교황 인노센트 3세(Innocent Ⅲ, 1198. 2. 2.-1216. 7. 16 서거) 재위 시 제4차 라테란회의(Lateran Ⅳ, A. D. 1215)에서 결의하였으며, A. D. 1551년 트렌트공의회(The Council of Trent, A. D. 1551)에서 선포하였다(DS. 1642).
마태복음 26:26-28,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14:22-24; 눅 22:19-20).
고린도전서 11:23-26, “… 주 예수께서 …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가지 전하는 것이니라”
화체설은 주님은 손에 빵과 포도즙을 가지시고 “이것은 나의 몸이라 … 이것은 나의 피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천주교에서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취하므로 화체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비평(A Critique)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는 이것 (This)은 지시대명사로 자신이 붙잡고 있는 빵과 포도즙을 가리키는 것이요, 결코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자신의 몸과 피를 자기의 손안에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나, 그러나 성찬식의 빵과 포도즙을 예수님의 실제적 살과 피가 되는 이적을 행하시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최후 성만찬시에 빵과 포도즙을 가지시고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 … 이것은 나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빵이 주님의 몸이 되고 포도즙이 주님의 피가 된다(has become)는 뜻이 아니고, 앞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예기하신 말씀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것은 내 피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잔을 마셨다면 자신의 피를 마셨다는 말이 아닌가?
하나님은 피를 마시는 것을 엄히 금하셨고,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레 17:10, 14; 창 9:4; 신 12:23-25; 행 15:19; 히 9:22; 계 16:6). 불변하신 하나님은 이미 금하셨던 것을 자신의 자녀들이 행하도록 번복하시지 않으신다. 화체설은 성례의 진정한 의미를 파괴한다.
종교 개혁자들은 천주교의 화체설을 부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식의 빵과 포도즙에 관한 교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루터파에서는 공재설을, 쥬윙글리파에서는 상징설, 칼빈파에서는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버즈웰은 말하기를 “… 루터파 입장과 다른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자들의 입장 사이의 차이점들은 좀처럼 파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하였다.162)
(2) 공재설(Consubstantiation)-루터파의 교리
공재설은 성찬에 대한 루터파의 교리이다. 공재설에 의하면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실제로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아래”(<속에> in, with and under) 공존한다는 것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그 요소들(빵과 포도즙) 안에 참으로 임재한다. 어떻게, 어디에? 그에게 맡긴다”(are truly present how and where, we leave to Him)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빵과 포도즙 안 어딘가에 임재(공존)한다는 것이다.163)
루터(Luther, Martin)는 “… 실제 빵(떡)과 실제 포도즙, 그 안에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실제 피가 임재한다(present)”(Works, XXXVI. 29)
“사제(Priest)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실제 피를(매 미사 때마다 - 저자 주) 반복적으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가장 악한 일이다.”(Works, XXXVI. 47)
“그리스도는 성찬에 몸으로 임재한다. 이것은 내 몸이라는 말씀이 이곳에서 문자적으로 받아드려질 수 없다면 성령은 아무 곳에서도 믿어질 수 없다”(Works, XXXⅦ. 29. 53)고 주장하면서 성찬의 공재설을 주장하였다.
아우그스붉그 신앙고백서(1530년)
제10조, “주님의 성만찬에 관하여! 우리 교회는 … 곧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참으로 임재하여 성만찬을 받는 사람들에게 분배된다고 가르칩니다.
아우그스붉그 신앙고백서 변증서(1531년)
▶ 제 10조, “주님의 성만찬에 관하여! 그들은 주님의 성만찬 안에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참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임재하여, 그 살과 피는 눈에 보이는 떡과 포도주와 함께 성만찬을 받는 자들에게 참으로 주어진다고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고백 제10조를 받아들인다 …”
비평(A Critique)
루터파의 공재설도 천주교의 화체설과 같이 “…이니라”(에스틴, evstin; is)라는 말씀에 치중한다. 루터교의 공재설은 천주교의 화체설과 개혁파의 기념설의 중간 입장이다. 따라서 공재설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빵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속에 공존한다면 주님의 몸의 편재라는 범신론(Pantheism) 사상에 빠지게 된다.
아우그스붉그 신앙고백서(The Augusburg Confession, 1530)
이 신앙고백서는 마틴 루터의 동역자 멜랑톤(Melanchthon)이 작성하였는데 이 고백서는 루터교의 기본적 신조가 되었다.
성공회(Anglican Church=Episcopal Church)에서는 화체설, 공재설, 기념설을 모두 수납한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나의 몸이라… 나의 피라” 하였으니 화체설이요, 떡과 포도즙을 가리켜 “이것은 내 몸이요 내 피라” 하였으니 공재설이요, “기념하라” 하였으니 기념설이다. 그러므로 성찬에는 화체설 ․ 공재설 ․ 기념설이 다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3) 상징설(象徵說, Symbolic Representation)쥬윙글리파 교리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쥬윙글리(Huldreich Zwingli, 1484-1531)는 성찬에서 떡과 포도즙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성찬을 단순히 기념적 의식, 신자가 서약하는 바의 표호 또는 상징(sign or symbol)으로 보았다. 쥬윙글리는 중세기의 이성(reason)을 중요시하는 인본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쥬윙글리는 천주교의 화체설과 루터교의 공재설을 반대한 반면에 성찬의 영적 은혜도 강조하지 않았다. 쥬윙글리는 천주교의 화체설과 루터의 공재설은 모두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상식에도 어긋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식에 모순되고 반대되는 것을 믿도록 요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셨다.
(4) 영적 임재설(靈的臨在說, Real Spiritual Presence)개혁파교리
칼빈(Calvin, John)은 성찬시에 그리스도의 역동적 또는 영향적 임재(dynamic or influential presence of Christ)를 강조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첫째 표(signs)는 빵과 포도주로 이것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부터 받는 보이지 않는 양식을 상징한다. …더욱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의 유일한 양식이다.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에게(그리스도)로 초청하셔서 우리가 그와 더불어 교제함으로 다시 원기를 회복하며… 육신의 생명은 빵과 포도즙에 의하여 유지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양식을 받는다”164)
“빵이 우리의 육체적 생명에 영양을 주며, (신체를) 유지하며, 보호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영혼의 힘과 생명을 주는 유일한 양식이다”라고 하였다.165)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영향력 있게 임재한다고 하면서 태양을 예로 들었다. “태양은 하늘에 있으나 그 빛과 열은 지구에 임한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은 천국에 있으나 영광스러운 몸으로부터 영향이 반사된다”고 하였다.166)
칼빈은 성찬예식은 단순한 하나의 상징(symbol)이라는 쥬윙글리의 견해도 반대하고, 성찬식 때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라는 루터의 견해도 반대하였다.167) 칼빈은 쥬윙글리와 루터의 중간 입장을 취하였다. 즉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즙은 하나의 상징인 동시에 그 요소들 안에 내포되어 있는 영적 의미들을 믿음으로 수납할 때 은혜를 받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올바른 성례관이다.
칼빈은 “성례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외형적인 표징에 의하여 확인되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서로(상호) 증거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성례는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형태(a visible form of an invisible grace)라고 하였다.”
우리는 천주교의 화체설, 루터교의 임재설, 쥬윙글리의 상징설을 받아들일 수 없고, 칼빈주의적 영적 임재설을 수납한다.
출처 : 조영엽 박사/교회론/언약출판사/201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