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론
1.연구목적
1)연구목적과 방법들
2)본 연구의 관점과 방법
2.연구범위 및 연구개요
1)범위 및 기간에 대한 문제
2)연구개요
Ⅱ.종교개혁자 칼빈
1. 칼빈의 생애
1)프로테스탄트로 회심
2.칼빈의 신학사상
1)보편 섭리와 특별 섭리
2)예정론
3)교회론
3.칼빈주의에 대한 이해
1)칼빈주의의 정의
2)칼빈주의의 특징
Ⅲ.목회자 칼빈에 대한 연구
1.칼빈의 목회철학 배경
1)오직 말씀
2)오직 믿음
3)칼빈의 주권사상
2.칼빈 목회의 특징
1)형이상학적 목회
2)칼빈의 목회신학
3.칼빈목회철학 구조
1)성경중심적 목회
2)목회와 교회직분
Ⅳ.칼빈의 말씀 중심의 목회
1.설교와 목회
1)순수한 목회자
2)목회자는 설교자여야
2.교육과 목회
1)목회자 자신의 준비
2)인격과 목회
3.영성과 목회
1)목회자의 소명
2)목회자의 기도
Ⅴ.칼빈과 교회 목회
1.칼빈과 바울의, 교회관 비교
1)몸인 교회
2)머리인 교회
2.칼빈의 교회관
1)신자의 어머니인 교회
2)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3)가시적 불가시적 교회
3.칼빈과 교회정치
1)칼빈의 교회정치 원리
2)교회의 분리와 통일
3)교회의 자율성
4)칼빈의 교회행정원리
5)칼빈주의와 교회형태
4.칼빈의 목회와 세속정치
1)시대의 길잡이로서의 칼빈
2)칼빈주의와 세속정치
3)교회의 개혁 의무
5.예배에 대한 칼빈의 태도
1)성만찬 문제
2)종교개혁자들의 견해
Ⅵ.결론
1.연구목적
1)연구목적과 방법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이란 최대의 선물을 주셨다. 이 한권의 책이야 말로 기독교의 반석이다. 따라서 이 세상이 없어지기전에는 오직 이 책에 근거하여 기독교가 전파되어야한다. 성경 이외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책이 없으며 영생의 길을 제시해주는 책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 성경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여 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성경적인 성경관을 가져야하는데 우리는 종교개혁이래로 개혁주의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목회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인 성경관과 개혁주의 복음주의 성경관을 가지기 위하여 중세의 그 두터운 어두운 그림자를 깨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올렸던 두 거장 루터와 칼빈의 성경관을 비교 분석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 목회자 였던 칼빈의 성경관을 살펴서 그것을 어떻게,목회에 적용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2)본 연구의 관점과 방법
칼빈주의는 근대세계를 특징지워 주는 여러 요소들,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근대과학,복잡한 서구 사회의 규율과 합리화 혁멍적 정신과 민주주의, 세속화와 사회적 행동주의,개인주의, 공리주의, 그리고 경험주의에 기여 했다고 널리 인정되어져 왔거나 혹은 그렇다고 비난받아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자타가 인정을 받을 만한 그의 업적과 공헌은 거의 최근까지도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거의 근래에 들어와서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나 세계의 많은 이들의 막연히 진정 아닌 존경을 받고있으면서도 진정한 그의 사상과 업적에 대해 가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W.J.부스마는 몇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칼빈은 신학자들과 칼빈전문가들의 손에 내맡겨 놓았는데, 역사적 칼빈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란 기껏해야 주변적인 것이다.또 하나는 칼빈의 추종자들에 의해 세워지고 제네바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장 알려진 대학 뒷편의 개혁지들의 벽에 서 있는 거대한 칼빈의 조상에 암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 단순히 칼빈의 명성만 듣고 대충 흘려버리는, 또 그들의 말에 비판과 수용 없이 맹종하는 독자들과 오늘날 수 많은 그의 사상을 접한 바로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까지 다루어져왔던 칼빈에 대한 사상연구는 비역사적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고 혼란이나 논리적 비정합성, 모순 그리고 인간의 부족함을 나타내 주는 여타의 다른 요소들을 갖지 않는 것으로 가정되어 왔다.
칼빈에 대해 이해하기란 어렵다, 루터나 그 밖의 인물들보다 그는 더 복잡하고 난해해 보인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칼빈의 생애와 인을 전반적 이해를 그 연구 범위로 두되, 특히 칼빈 사상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에 걸친 그의 사상을 수렴하고자 한다.
본 연구자는 교회론을 중심으로 개혁주의의 위대한 사상가요 16세기 위대한 목회자의 한 사람인 칼빈의 사상에 대해서 연구하여 보려고 한다.
칼빈은 교회를 무엇보다도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으로 보면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강조하고, 하나님은 인간의 무지와 나태, 연약함을 고려하여 교회를 주셨는데 때로는 세상에서 교회가 사라진 듯하게 보이기도 했으나, 하나님은 항상 지켜 보호해 주셨고, 죽음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역사가 끝날 때까지 교회는 인간의 연약함을 돕는 외적 도움으로 남을 것이다. 라고 신자의 어머니로서의 교회를 말하고, 그의 교회관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하고 있는데, 이 개념은 교회의 단일성과 보편성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몸안에서 지체가 된 성도들의 교회에 관심을 두고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현실의 제약을 벗어버린 이상적인 교회, 즉 불가시적 교회를 말하고, 교회는 외부적인 형체가 없이도 자존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지상형(地上形)이라고 말하는데 강력히 반대했으며, 현실적인 제약을 받는 가시적 교회에 대하여도 말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2)연구개요
성경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자는 무엇보다도 율법과 복음의 상관 관계를 정확히 이해해야한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무시하고 오히려 율법과 전통에 지우쳐 있었다. 이로인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저 위대한 이신득의 교리를 새롭게 한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종교개혁을 보다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사람이 칼빈이었다 그러나 칼빈의 보다 더 큰 업적은 그가 목회사역에 있어 말씀중심의 사상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교회론은 이러한 사역을 하게하는 기초석이 되었다. 후일 많은 신학자들이 그의 목회와 예배가 너무 말씀중심이 되고 간소화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그의 업적은 새롭게 우리시대에 조명되어질 만 한 것이 사실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주장하면서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하여 강조점을 두고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간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와 연합을 지칭하기 위한 즉 교회를 공동체적인 개념으로도 말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교회 개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목회적 관점안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교회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칼빈의 말씀중심의 사역을 살펴보는데에 중점을 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말씀중심의 목회가 당시의 중세유럽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교회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중세가 마감되면서 시민계급을 주축으로 하는 문예부흥운동이 새롭게 일어나게 되었다. 사실상 이러한 운동은 성경을 보는 안목을 새롭게 했고 인간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때, 즉 15세기 후반에 걸쳐서 전 인류와 교회에 위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그들 가운데는 우리가 잘 아는 종교갸혁자 루터라든가. 멜랑히톤, 에라스무스 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을 따라 한 위대한 인물이 세상에 햇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칼빈이었다.
칼빈은 본래 프랑스 북쪽 피카르디 지방에 있는 노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제랄코반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아버지의 영향력에 의해 노용 대성당에서 성직을 얻었다.
1523년에 드양제 집안의 소년들과 함께 파리에 가서 라 마르쉬대학과 몽테귀대학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했다. 칼빈이 여기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은 후 그의 아버지는 그를 오를래앙대학교에 보내어 저명한 법학자인 피에르 드 레스토알 아래서 법학을 공부하도록 했으며, 칼빈은 잠시 부르지 대학교에 가서 유명한 이탈리아인 법학자인 알차티의 강의를 들었다. 그후 1531년에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칼빈은 파리로 돌아갔다.
칼빈이 이 두번째로 파리에 체재하고 있는 동안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학구적인 주석을 썼는데 이것은 그의 최초의 저서로서 의미깊은 저작이었다.칼빈의 이 저작은 1532년에 나타났다. 이 저작은 칼빈이 에라스무스와 뷔데의 모범을 따른 조예가 깊은 유머니스트임을 드러냈으며 그가 희랍어를 잆고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고대 문헌과 역사를 폭넓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후에 종교개혁자로서 활동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그것들은 다른 프오테스탄트 휴머니스트 활동가들과 우정을 나누는 데 있어서 확고한 근거가 된다.
칼빈은 18세 때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 칼빈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파문에 이르게 되었고 그것은 아들의 장래를 재고하게 했다.그리하여 칼빈은 올레앙대학으로 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 공부는 1532년 1월 14일 전에 끝이 났다.
칼빈이 언제 프로테스탄트로 회심했는지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1534년이었다고 생각학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회심에 대하여 "갑작스런 회심"이었다고 한다. 그는 라틴,헬라,히브리 문학을 배웠기에 이러한 말로써 성경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문학 연구가 인연이 되어서 "문예부흥"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운 교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는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사람도 있었다. 1534년 5월 4일 칼빈은 노욘에서 성직록을 포기하였다. 어떤 언어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이 행동의 선언이 그의 "전향"을 이룩한 것이라 본다. 교황청의 루터에 관한 문서들의 비타협적인 폐기처분, 성서적인 신앙으로 순교를 당하는 용감한 고난, 반 개화사상, 성인숭배, 행렬기도, 유골,면죄부 판매, 의식주의 등을 봄으로써 칼빈은 오히려 성서로 진입하였으며 교부들에 대하여 열렬한 연구로 들어갔다. 이후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여 대호평을 받았고 1537년 8월는 그는 여행을 계속하는 도중에서 쥬네브에서 머물렀는데 여기서 그의 종교개혁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1). 보편섭리와 특별섭리
칼빈은 철학자들처럼 보편섭리를 인정하나 그의 주 관심은 하나님의 특별섭리에 대한 칼빈의 기본적 통찰력은 그의 섭리론과 예정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 섭리에 에 대하여"라는 주제하에 쓰기를, "섭리란 땅위에서 진행되는 것을 하늘에서 하나님이 게으른 무습으로 관찰하는 그런 것이 아나라, 창조된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섭리에 관한 칼빈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1)일반은총 (2)특별섭리(particular),일반은총 (3)특별섭리(special) 혹은 구원하는 은총으로 되어 있다.
그의 목적은 하나님을 하늘에 가만히 있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과 보편적 섭리의 교리를 이해하는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특별섭리에 관한 토의에서 칼빈은 또한 일반은총과 보편적 섭리는 다르다. 칼빈이 생각하길, 어떤 것도 우연에 의하여 생기지 않고 모든 것이 그의 계확으로부터 나와서 모든 것을 그의 목적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야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섭리의 교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을 위한 여지를 남겨놓을 수 없다.
또한 칼빈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은 주실 뿐만 아니라 각 개인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주실 때만이 온전히 설명되어 진다고 주장한다. 이신앙의 확실성은 인간 정신의 주도 면만성에서 예덩은 인간의 능력으로 시혐받을 수 없다. 성령의 은총으로만이 확실하고 분명한 지식을 얻어지는 것이다.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섭리와 예정교리에 기초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칼빈의 신학에서 섭리론과 예정론의 관계성이다. 예정은 개신교 신학의 특징이다.
2). 예정론
종교개혁 이후 예정론은 주로 칼빈과 그의 사상적 전통에 서 있는 교회와 신학자들에 의해서 특징적으로 지지되고 주장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예정론'하면 주로 칼빈이나 또는 칼빈주의를 연상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같다. 칼빈에게 있어서 예정론은 전능하신 섭리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관심에 대한 그의 기본적 확신이 섭리론과 예정론 모두에서 표현된다. 그러나 칼빈이 보편적 섭리와 특별섭리, 그리고 총체적 선택과 개인적 선택을 다루지만, 그의 입장은 철학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돌보심과 특수성에 있다. 칼빈의 예정이란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개인에게 이루어지도록 결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이 두 종착점 가운데 어느 쪽으로 창조되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은 살도록 예정되었다든가 아니면 죽기로 예정되었다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제 1편에서는. 예정 혹은 선택이 교회론과 연관되어 다루어졌다.
기독교 강요의 예정론, 성경주석의 예정론, 신조에 나타난 예정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공통된 결론에 이를 줄 안다. 첫째,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구원할 자롸 유기할 자를 자위에 의하여 예정하셨다. 둘째,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예정한 것도 아니며, 타락전 즉 창세전에 예정하셨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으며, 에정한 자는 끝까지 보전하셔서 확실히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칼빈은 구원하시는 하나미의 뜻은 성경 안에 계시되었다고 주장하며 그느 그 가르침은 마땅한 겸손을 가지고 설명한다. 어떤 사상을 다루듯 예정은 연구할 수 없다. 인간은 예정에 관한 호기심에 가득찬 질문을 만죽시킬 수 없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선택에 관하여 사색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 주며, 인간들이 가져애 할 마땅한 겸손을 가지게 한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를 결심한 자들을 선택하신, 멸망시키기로 결심한 자들도 거절하신다고 성경을 가르친다.
3)교회론
그는 교회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기독교 강요]의 마지작 제 4권은 교회론보다는 교회조직적 면을 주로 다룬다. "교회의 참된 위엄은 내적이다." 교회란 기존의 카돌릭 교회가 하나의 보편적 교회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 받은 자들, 즉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한 교회들이 바로 하나의 보편적 교회라는 시각이다. 그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만 형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분리주의적 모형을 암시한 것이다. 칼빈에게는 그 자신이 생가한 것 이상으로 재세레파에 가까운 면도 있었다. 그는 성찰이 공동체의 의식인 동시에 그것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미리 알려 주어야 헀기 때문에 성찬을 높이 평가했다. 또 그는 교회를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그가 생각해 낸 최종적인 방안은 파문이었으며, 파문의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를 성찬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목사의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을 인정하고 목사의 성도들에게 대한 권위와 위엄을 인정하나 칼빈이 세속정치 형태를 논할 때 그의 권위주의가 그의 종(從)화 주의에 의해 수정되었던 것과 마찬 가지로 평신도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그의 성직자주의와 긴장관계에 있었다. 이것이 목사들은 적어도 원리상 교회의 전체교인에 의해 선출되어애 하는 이유였다.
칼빈에게 있어 교회는 "하나님의 학교"로서 신학교보다는 인문주의적 할원에 더 가까 왔으며, 그리고 그는 이제 하나님을 그의 학생들의 어깨위에 살펴보고 "그들의 제스쳐와 걸음걸이 말, 그리고 그의 "모든것"을 지켜보는 분으로 생각했다.
그는 또 때때로 하나님만이 궁극적으로 판단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켰다. 이런 생각들이 그의 정신을 지배헀을 때 교회에 대한 그의 이해는 더 이상 배타적이 아니라 포괄적이 되었다.
3.칼빈주의에 대한 이해
1)칼빈주의의 정의
칼빈주의란 루터파와는 구별되는 [개혁파]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파의 신앙고백들과 교리문답들에 본질적으로 나타나 있는 신학적 신념의 체계를 가리킨다. 또한 칼빈주의라는 말은 칼빈이 개략적으로 제시한 교회정치 체제(장로제)를 내포하는 말일 수도 있으며, 그리고 매우 일반적으로 이체제를 채택한 교회들 안에 있는 칼빈적인 교리 유형을 가리키느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교리와 정치의 이연결은 결코 보편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치가 교리적 원칙들에서 자연적으로 파생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한해서만 정치를 고려해도 족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는 여려가지 형태의 교회정치 및 제도와 관련되어 왔음이 드러날 것이다. 칼빈의 교리들은 청교도 신학을 형성했으며, 그 교리들은 대체로 회중주의에 흡수되어 근래에까지 회중교회를 지배해 왔다. 칼빈주으의 독특성은 정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교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칼빈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인간의 전적타락( Total Pepravity)
(2)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4)거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able Grace)
(5)궁극 구원(Perpetual Salvation)
Ⅲ.목회자 칼빈에 대한 연구
1. 칼빈의 목회철학 배경
한국교회는 장로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장로교회는 칼빈의 신학과
목회이념을 전수한 교회이다. 스코틀랜드의 언약자들(covenanters)과 영
국의 청교도들(puri-tnas)은 칼빈의 영향을 받아서 장로교회를 건립했다.
청교도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을 가장 잘 요약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그들의 신앙과 신학의표본으로 삼았다. 그 이후의 장로교회들은 이 모습
을 따랐고, 한국장로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한국장로교회는 선교사들을 통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청도교
들의 신앙 색채를 받아들였다. 한국교회는 칼빈신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좋은 영향도 많이 받았겠지만 왜곡되고 편협하게 칼빈신학을 이
해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일반적 평가는 항상 위험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입장이
얼마든지 있고, 예외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개혁과 개신교의 태동이라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역사적 발달과정에서 볼 때는 지, 정,의가 균형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학적으로는 성경을 근거로 중세의 그릇된 교리들을 바로잡았으며, 신앙
적으로도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윤리적인 면에서도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시정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많은 어
려움과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종교개혁은 많은 열매를 맺었
다.
16세기 초반에서 중, 후반을 걸친 약 반세기의 종교개혁 시기가 지난 뒤
이른바 정통주의 시기가 도래했고, 이러한 개혁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16세기 후반과 17세기에 걸쳐서 이성주의가 성행하면서 신학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지적이고 논리적인 면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많은 경우 루
터교회와 개혁교회 않에서 신앙의 열정과 헌신은 식어갔고 교리논쟁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1) 오직 말씀
칼빈은 성경을 "하나님의 영원하고 침범할 수 없는 진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성경의 귄위를 지지 하기 위해서 성경이 신적으로 영간된 것을 선언한다. 칼빈은 부언하고 있다. "성경의 조명을 받게 될때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게 되나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초월하여서만 성경이 하나님 자신의 입으로 부터 직접받아 인간의 봉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었음을 완전히 확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성화와 율법과의 관계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롭게 된다는 걱이 성화의 열매인 선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제시하고자 했다. 여기서 울법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요없다는 '무율법주의'적 사고를 배격하고, 울법으로 의를 획득한다는 '율법주의'도 배격한다고 했다. 다만 중생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율법은 '생활릐 규범'으로서 제시했다. 칼빈에 있어서의 구원과 성화에서는 복음의 핵심이 회개와 죄사함으로서 이들이 신앙으로부터 나오고, 칭의와 성화의 근거와 이유라고 했다.
2) 오직 믿음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사랑에서부터 그의 대속 교리를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진노밖에는 받을 것이 없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셨다. 칼빈의 사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묶여 있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최고의 계시이다. 죄인들을 위한 그의 죽음 속에서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한 구원을 성취하셨다.
3) 칼빈의 주권 사상
그에 의하면 "주권사상"은 두가지로 표현된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칼빈은 하나님을 "영원, 영원부터 그 자신의 지혜로 그가 하시고자 하는 바로 실향하시는 만물의 중재자이시요 통치자이시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건들을 포함한다. 그래서 선한 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악한자들에게도 적용되며, 인간과 천사들의 거룩한 향동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죄악된 행동들에게까지도 적용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교훈적으로 명한 것을 작정적으로 결의 하시고 그가 교훈적으로 명한것을 작정적으로 금하시는 것을 우리는 반박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주권교리는 윌의 신앙과 경외를 요구하면서 가장예리하게 바로 문제에 초점을 모은다.
1)형이상학적 목회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자의 1세로서 개신교의 근거를 뿌리내린 사람이다,
존 칼빈은 그 근거위에 성경의 내용으로 더욱 명확히 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그는 지, 정 의가 균형잡힌 신학과 신앙을 보급한 사
람이다. 그의 역작인 [기독교 강요]가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의 그릇된 교리를 바로잡고 개신교의 신학을 성경적
으로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성직자, 신학도 그리고 성도들에게 경건을
촉구하고 성경을 잘 이해할수 있도록해주는 체계적인 작품을 기술한 것
이다. 교리적으로 변증적이고 체계적이면서도 성도들의 실직적 삶 가운데
유익을 주고, 목회에도 도움을 주자고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원종천박사는 칼빈신학에 나타낸 그의 특징을 몇가지로 정리
해 준다.
위필드 (B. B. Werfield)는 칼빈에 대하여 말하길 "칼빈은 삼위일체의
교리사에서 제2위이신 성자의 존재가 스스로 계신 분이라고 주장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 즉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형이상학론은 하나님이 중심이라
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의 인식론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중심이었다.
그래서 그를 말씀의 신학자라고 부른다." )
특히 그는 성령의 신학자라고 할 만큼 성령의 역사에 깊은 교리를 교회
에 주었다.
기독교 전통 속에 표현되어 있었던 형이상학론은 칼빈에게 있어서도
문제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개념으로 궁극
적인 요소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그것은 천상적 현상과 지상적
현상으로 설명하였다. 칼빈은 형이상학론은 중세 교회인 카톨릭 교회에서
주장된 사상과 대립적인 입장이다. 카톨릭 교회는 천상적인 것으로 지상적
인 국가가 천상적인 교회에 종속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칼빈은 세
속적 국가의 정치의 권한은 종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하에 신성화 될
수 있음을 고조하고 있다. 그에 의해 주장된 이러한 사상은 특별 은혜와
이에 대비할 일반 은혜와의 관계성의 문제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칼빈
은 두 개념을 비교하여 하나님의 주권인 예정론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
의 주권을 약화 시키거나 인간의 주권을 극대화 시키는 것을 부정하는 입
장인 것이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인간 자체에는 영적 지배와
시민적 정치적 지배의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영적 지배의 요소는
신령한 영적 생활이고 시민적 정치적 지배의 요소는 현세적 육적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양자에 대하여 칼빈은 항상 별개의 것으로 구별 시키고
양자를 혼동 시키지 아니하였다. 또한 그는 양 개념의 공존과 양 개념은
신주권하에 종속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즉 그는 양 개념을 무엇보다도
대비상항으로 보았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
간 이성에게도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을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형이상학론을 확실히 밝히고 있는 단면이다.
(1)성경의 절대적 권위 인정
루터와 칼빈을 포함한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개혁은동의
핵심으로 보았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의 교황과 교회조직 중심의 권위 체
제를 무너뜨리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성경이 근거가 되어 교회가 그 위에
서는 것이지, 교회가 근거가 되어 성경이 그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말
이다. 권위의 우선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이 계신 성경이 바
로 그 권위의 표시라는 것이다.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교회 중심적이고 교회직분의 권위 체제 아
래 있는 로마 가톨릭의 권위체제를 거부했다. 또 한편으로는 재세례파의
입장인 성령을 통한 직접계시를 반대하여, 성경의 권위와 성경을 통한 하
나님 계시의 객관성을 중시하였다.
말씀의 절대적 권위는 예배의 설교 중심성을 자연스럽게 초래한다.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도 성경 중심으로 해석, 이해 그리고 전달된다.
칼빈의 설교는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추세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각 책을
1장부터 순서적으로 강해하는 강해설교였다. 본문을 설명하며 그것을 당
시의 상황에 적용하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는 설교를 인위적으로 흥미있게, 또는 자극적으로 전달하려고 하지 않
았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의 심령을 꿰뚫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단순
하고 직접적인 설교를 했던 것이다.
교리적으로 칼빈은 구원론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로
마 가톨릭의 구원론이 잘못되었고, 일부 개신교의 구원론의 가르침 가운
데도 문제가 있었다.
성경을 근거로 구원론의 신학을 정리하는 칼빈에게 일관성있는 신학은
매우 중요했다. [기독교강요]는 교회를 위하여 이 구원론을 정립하기 위
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역,구속
주 하나님의 사역, 성령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교회의 사역에 대하여 설명
하고 있다.
이것은 구원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역을 정리한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이외의 여러 분야에 대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작업을
했다. 오늘날 조직 신화의 거의 모든 주제들이 [기독교강요]에 총망라 되
어있다.
회개와 중생을 강조하고 성화를 중시하는 한국교회의 영성은 칼빈의 신
학과 유사하다. 그런데 회심의 체험을 강조하는 것은 칼빈 보다는 청교도
적인 신앙에 더욱 가깝다 회심체험의 강조는 청교도에서 발전된 것이다.
칼빈은 회심에 있어서 성령님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으로 강조했다면15
청교도들은 그 사역이 인간체험 가운데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가시적인
차원으로 표현했다.
칼빈에게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과 '하나님의 영광 사상'이 강하게 나
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지배와 통치를 의미하며, 인간에게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
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는 것이다.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통치. 운 행자 이시고 구속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
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루어지며, 궁극
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고 발생한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예정하시고 부르셔서 구원하시며 거룩
케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도 인간이 스스로 이루
는 것이 없다. 물론 인간의 책임이요, 그 결과를 달게 받아야 한다.
(5)규격과 틀에 잡힌 예정론 이해
하나님 주권 사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예정론이다. 칼빈은 예정과 유기를 포함하는 이중예정을 고수한다.
그러나 이예정론을 기계적이고 무자비한 하나님의 작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칼빈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생기는 질
문에 대한 대답을 주기 위하여 성경적인 답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복음이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구원은 오
로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에 달려있는 신비스러운 영역이라는 것을 말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해서도 아니고, 충분히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비밀에 경이할 뿐이고, 누가 하
나님과 논쟁하겠는가 라고반대자들에게 반문할 뿐이다.
(6) 성만찬의 신비 체험 결핍
[기독교 강요]를 보면 교리 정리가 경건을 유발하도록 되있다. 사색적이
거나 철학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집필 되었으며, 성경의 보조 역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리스도
와의 연합과 교제가 구원론의 중심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그
리스도와 믿는 자들과의 신비적 연합과 지속적인 교제가 성도들의 영성을
도모한다.
믿음을 통한 구원이란 자체가 신비로서 우리에게 신비스로운 체험이 일 어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되게 함으로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죄와 의의 교환이 있고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이
하나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칼빈 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성화'에 대한 강조이다. 루터는 이신칭 의 가 그의 신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성화가 중요한 부분 을 차지하고 있으나, 성화의 강조는 칼빈에게 와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칼빈은 칭의와 성화를 순서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둘 다 성령 사역의 직
접적인 결과로 보았다.
그의 제네바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에 대한 대단한 관심과 추구
를 보여준다. 그의 목회는 감독들의 통해 성도들이 철저하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관리했고, 교회는 치리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29 의로워진 자는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로워진 자는 거룩한 삶을 통하여 그의
의로움을 입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3. 칼빈 목회 철학의 구조
1)성경중심적 목회
칼빈은 목회 철학에 있어 근간이 되는 것은 인식론적 측면에 있어서의
성경의 절대권위 사상이다 하겠다. 칼빈은 절대적 권위성 있는 말씀의 이
해는 인간 이성의 판단을 중심할 때 진척이 있는 실제적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칼빈은 성경의 권위에 있어서 루터보다 더 명확했다. 루터는 성경 66권
가운데 야고보서와 요한계시록 등 성경의 일부에 대하여는 신학적 비평을
하면서 정경성을 의심하였으나, 칼빈은 성경66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경으로서의 절대 권위를 부여했다. 즉 성경은 선지자와 사도들이
영감, 곧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생각하며 칼빈은 하나님 말씀
으로서의 권위를 성경에 부여한 것이다.
칼빈은 또한 기자들을 영감하여 성경을 키록케 하신 바로 그 성령께서 성
경 독자의 심령에 역사하여 내적 증거로 확신을 주며, 성경의 권위가 인식
됨을 주장했다.
한국교회가 성경을 중시하고 성경66권의 절대적 권위를 강조하는 것은 칼빈신학의 맥을 같이하고 있다. 청도교들도 이점에 있어서는 이의가 전혀
없다. 칼빈의 성경관이 축자영감이냐 아니냐에 대하여 학자들 사이에 논
란이 있다. 물론 이것은 근본주의, 자유주의, 신통주의의 성경관의 갈등 가
운데서 제기된 문제이다. 칼빈시대에 이런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칼빈은 성경의 영감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이성도 이미 타락으로 인해 부패 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깨 닫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오직 성경말씀 안에서만 이해 되는데 부패한 이
성이라도 그 성경을 읽는 중에 깨달음과 함께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조화성이 있어서, 오랜 세기를 걸쳐서 많은 저자들 에 의해 씌어 졌지만 이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 이해는 그의 목회 사역에서 폭넓은 성경 해석과 성경강해
를 가능케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깊은 성경 연구를 통해 나온 그의 그의
식견은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제네버사의 정저 문화의 까지 영향을 미
쳤고, 나아가 유럽의 전 개혁교회로 퍼져 나가게 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
다.
칼빈의 목회철학의 구조 두 번째는 칼빈의 교회론에 있어서는 직분을 중심한 교회이다. 칼빈은 말씀과 성례와 권징은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기본적인 요소가 말씀과 성례이기 때문에 즉 말씀을 올바로 듣고 성례를 올바로 행하며 그리고 권징에도 올바르게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면 올바르게 권징이 시행할 때 직분은 이 세상에서 교회의 존재를 위하여 그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직분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할 정도이다. 교회의 직분
자들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을 대변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칼빈은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직분은 고결하며 동시에 필요한 기능이라고도 하였다.
1541년과 1561년의 교회헌법에 보면 칼빈은 네가지 형태의 직분을 말하고
있다. 즉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이다. 이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은 기독교 강
요 1543년 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직분의 제일 첫 형태는 목사이다. 칼빈
은 목사직을 에배소서 4장 11절의 주석에서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다. 칼빈
은 이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목사란 양무리를
돌보는 일이 맡겨진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또 그는 "나는 목사들이 교사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반대할 의사가 없다." 고 하였다.
칼빈은 근대 서양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맥그래스 (Alister E. McGrath)가 근래에 쓴 칼빈전인 [존 칼빈의 생애
: 서양문화 형성에 관한 연구]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칼빈의 생애를 연구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맥그래스는 이렇게 말했다. "칼빈은 서양문명
이 그 특징적 형태를 가지기 시작한 근대의 여명기에 개인과 제도의 전망
을 변화시킨 유럽사의 배자적(胚子的)인물임이 입증되었다. 말하자면 근대
서양문화는 칼빈이라는 씨에서 싹이 트고 성장한 것이다.
칼빈은 이러한 영향력은 그의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적 신학, 교회 중심적활동, 천상에 대한 경건한 명상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관심들이 시대와 환경에 매이지 않는 구원(久遠)의 사상을 형성하는 동인이 되었다.
1) 순수한 목회자
칼빈의 영향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뻗쳐졌
지만, 그는 제네바교회의 목회자였을 뿐이다. 장 다니엘 브노와(Jean-Dani
el Benoit)의 다음과 같은 칼빈평은 매우 적절하다고 하겠다. "우리는 그를
제네바의 개혁자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마 그를 제네바의 목회자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칼빈은 그의 영혼 속에서 목
회자였으며, 그의 개혁활동은 많은 면에서 그의 목회활동의 결과와 연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칼빈이 제네바교회의 순수한 목회자였기 때문에 그는 그만큼 큰 영향력을
서양 문화에 끼칠 수가 있었다고 할수 있다. 요컨대 칼빈은 하나님 중심적
인 순수한 목회자로서 그 시대의 정치논리, 그 시대의 경제논리 등 그 시
대의 논리를 뛰어 넘는 사상을 피력했으며, 이것이 그의 영구적 영향력이
되었다.
첫째로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이 생각한 목회자상은 무엇보다 먼
저는설교자였다. 칼빈은 교회의 두 표지로 말씀과 성례를 드렸다. 말씀이 순
수하게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는 곳에 교회가 있다. 그러나 칼빈에
게 있어서 성례는 '보이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자
들에게 있어서 목회자는 하나님 말씀의 사역자(minister verbidivini)였다.
칼빈은 카톨릭교회의 성직자들이 성례를 집행할 때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큰 소리로 선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선포의 말씀이 성례를
성례되게 하는 것이다. 칼빈은 성례를 집례할 때 성례에 관한 설교를 할
것을 권고했다.
칼빈은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말씀 속에 빛나므
로 그의 종들을 통해 말씀할 때마다 마치 그가 우리와 대면해 가까이 있
는 것처럼 그것에 의해 감동되는 것이 마땅하다." 고 말했다. 또한 그리스
도는 "그들의 입이 자기의 입으로 간주되고 그들의 입술이 자기의 입으로
간주되기를 원한다." 고 말했다. 그래서 목회자의 직임이야 말로 하나님
이 일류에게 주신 최고의 직임이다. "하나님이 일류에게 준 많은 중요한 은
사들 가운데 독특한 특권은 그가 사람들의 입과 혀를 자신을 위해 성별하
고 그것을 않에서 자신의 음성이 울리게 한 것이다." 하고 칼빈은 말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왜 목회자들을 사용하시는 것인
가? 칼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열거했다. 우선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사
신으로 사용한 것은 우리 인간에 대한 존중을 선포한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직접 말씀한다면 지체 없이 받아 드릴
것이다.
2. 교육과 목회
1)목회자 자신의 준비
칼빈에게 있어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서
를 부지런히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야 했다. 칼빈은 "만약 무엇보다도 먼저
학자가 되지 않는 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좋은 사역자가결
코 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예언이란 성서에 대한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
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선하고 신실한 목자의 직임은 단순히
성서를 설명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과 능력을
더하기 위해 진지함과 예리함을 가져야 한다."
하고 말했다. 칼빈은 병석에 누워서도 제자들에게 구술하여 저작활동을 계속했다. 병문안을 왔던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좀 쉬라고 권면하면,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하나님
의 일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성직자들이 입던 제사장 예복 대신에 샤우배
(Schaube)라고 하는 세속 학자의 가운을 입기 시작했다. 쯔빙글리는 1523
년 가을에 이 가운을 입기 시작했으며, 루터는 1924년 10월 9일 오전에는 수도사의 옷을 입고 설교했으나 그날 오후부터 샤우배를 입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샤우배, 즉 학자의 가운이 프로테스탄트 목회자의 예복 이되었다.
셋째로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학교 였으며, 이
학교의 교과서는 성경이었고 이 학교의 선생들은 목회자들 이었다. 칼빈은 "가르치는 직임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의 참된 목회자가 아니다."
하고 말했다. 제네바 교회의 교리문답 서문에서는 교회는 항상 아동들
을 기독교 교리 않에서 바르게 교육하는 일을 힘써 행해 왔으나 로마 가톨
릭교회는 이것을 전복 시켰다고 비판하고 교회교육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 교리 문답 308항에서 목사가 "그리스도인은 자기 목사로부터 한번 교
육을 받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평생 동안 이 과정을 받아야 하는가?"
하고 묻고 아동은 "계속하지 않는다면 시작한 것으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혹은 더 낮게 말해 끝없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
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여기서는 평생교육이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칼빈은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것을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의 의무로 생
각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의 평가에 있어서 바보들' 이 되
며 '그리고 아동들처럼' ,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게' 되기를 요구하신다고
말했다. 어떤 목회자가 회중에게 가르칠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 다하더라도 회중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들일' 자세를 가짐으
로써 '하나님을 위한 경건한 순종'을 나타내야 한다고 칼빈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회중이 목사의 잘못된 가르침까지 받아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2)인격과 목회
칼빈은 목회자를 영혼의 인도자로 보았으며, 그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상담을 해주었다. 그 상담 대상자들은 왕이나 제후로부터 평민에 이르
기까지 실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칼빈은 내담자들에게
용기와 애정을 가지고 상담해 주었다. 목회자는 "왕들과 왕후들은 자유롭
게,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책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민중
들이나 낮은 사람들에게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까지 모든 사람을 복종 시키기 때문이다." 하고 칼빈은 말했다.
또한 칼빈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설교를
하고 나면 우리의 직무가 다 끝나서 쉬기만 하면 될 정도로 우리의 직무
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피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최대한 직접적이고 쉬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수 적이
다. 왜냐하면 그 피를 잃게 된다면 그것응 우리의 태만 때문일 것이기 때문
이다." 하고 말했다.
칼빈은 목회자로서 교인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느 생존
한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교인들을 자녀처럼 생각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작은 아들을 주셨다가 데리고 가셨다. 그러나 내게는 전(全)기독교 세계에
무수한 자녀들이 있다." 칼빈은 아들을 역병으로 잃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클로드 선생과 귀하의 아들 루이가 죽었다는 소식
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나는 너무 정신이 산란하고 당황해서 며칠동안 우
는일 외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칼빈은 교인들에게 목회자를 부모처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씀의 사역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다스릴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들을 부모처럼 대해야 하며, 그리고 그
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아 여러분 가운데서 행하는 봉사를 존중하고 존경해
야 한다."
칼빈은 목회자의 삶은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삶이며, 그래서 가난한
삶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칼빈은 "감독은 가난한 자들이 가지지 않은 것
은 아무 것도가지지 않는" 것을 바람직 하게 보았다. "교회법은 교회의
수입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교직자를 위해, 하나는 교회 및 다
른 건물들의 보수를 위해, 하나는 가난한 나그네나 가난한 본토민을 위해
서였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 수입에서 '적어도 절반'은 가난한 자의 몫
이 된다고 주장했다.
칼빈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교회의 성직자 독신주의를 비판하고,
목회자는 모범된 가정을 이끌어가야한다고 보았다. 칼빈은 서른 두 살에
결혼하여 9년동안 모범된 가정생활을 했다. 칼빈은 자녀가 하나였는가 아니
면 둘 이상이었는가 하는 것은 칼빈 연구가들 사이에서 큰 논쟁거리이다.
3.영성과 목회
1)목회자의 소명
칼빈은 중세교회의 사효성(事效性)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목회자
의 내적 소명을 강조했다. 내적 소명은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식
하는 것으로 본인 이외의 아무도 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는지 확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내적 소명없이 목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칼빈은
주장했다.
칼빈은 이렇게 한탄했다. "목회자의 직임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얼마
나 어렵고도 힘드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날 백 명중에 거의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사의 직임을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것
으로 여기면서 그 직임을 시작한다. 그리고 후에 경험에 의해서 그들이 얼
마나 어리석게 알지 못하는 것을 열망했는 지를 알게 되지만 너무 늦다... 한 목사들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보수를 목적으로 하는 용병들이
있다."
외적 소명은 교회가 목사로 부르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가지 조건이 다
고 칼빈은 말한다. 즉, 건전한 교리와 거룩한 삶을 구비했는가 하는 것이다.
여섯째로 칼빈은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다. 칼빈 연구의 대가였던
워필드(Benjamin B. Warfield)는 칼빈신학을 연구하고 난 다음 칼빈을 성
령의 신학자라고 규정했다.
"그의 손에서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령론이 제자리에 왔다. 어느 누구의
마음 속에서 보다 그의 마음 속에서보다 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의 비젼이 빛났으며,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다. 어느 누가 그보다 자기를 피로 산 구주에게 헌신했는
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칼빈의 모든 사상을 특징짓는 것은
성령의 전능한 능력에 의한 구원의 주권적 역사의 대한 의식이다. 그러므
로 그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신학자'라는 위대한 이름을 받을 만하다."
칼빈은 말씀을 강조했지만, 말씀 그 자체로는 외적 말씀, 문자에 불과하고
그 말씀의 설령이 역사해야만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성령
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결합된다. 그러나 구별된다. 이는 외적 말씀이
성령의 힘에 의해 생명이 불어 넣어지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무용하다는
사실을 우리로 알게 하기 위함이다." 27 하고 칼빈은 말했다. 그러므로 칼빈
은 "하나님이 그의 사역자로부터 자신을 분리 시키면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고 말했다.
칼빈의 예정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칼빈의 예정론이
기도를 불필요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칼빈은 누구보
다 기도생활을 강조했다. 칼빈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어려운
처지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는 불필요 하다고 말
한다고 비판했다.
2)목회자의 기도
칼빈은, 우리의 기도에 의해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보화에 이른다고 했으며, 또한 "우리의 기도에 의해 보물을 파낸다." 고
했다. 우리는 필요할 때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우고, 필요한 것
을 받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계속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사랑
을 더욱 명상하게 된다고 칼빈은 말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죽음 후에 영원에 대한 희망이 우리에게 남
아있지 않다면... 우리는 부끄럽게도 야수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육체에 눈멀고 우둔한 욕망이 저항하지만 주님의 오심을 모든
것 중 가장 행복한 것으로 여겨... 고대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그는 구속주
로서 우리에게 오실 것이며, 모든 악과 고통의 밑없는 심연으로부터 우리
를 구출하시고 그의 생명과 영광의 복된 유산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죽
음의 날과 마지막 부활을 기쁘게 기다리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진급하지 못한다."
칼빈은 이처럼 그 마음이 하늘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소신 것 목회를 할수
있었다. 하늘나라에 마음을 둔 사람이 현세에서 훌륭한 목회를 할 수 있다
는 것은 역설같지만 진리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주일에 두 번, 그리고 매주월, 수, 금요일에 한번씩 설
교 했던 것 같다. 제네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상담에
응해야 했고, 시의 각종 회의에 참석하여 조언을 해야 했다. 또한 유럽 각
지에서 제네바대학으로 유학 온 학생들에 의해 칼빈의 사상과 정신은 유
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오로지 하늘나라에 마음을 둔 그가 국제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적 인물이 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위대한 사상가인 바울은 교회를 단순히 인간 조직이나 혹은 단체로 간주하지 않는다. 바울은 교회라는 말을,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고 삶을 바친 사람들'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말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는 교회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16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인 칼빈 역시 말하기를,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소는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주신 유일한 기관인 교회뿐이라고 했으며, 그리고 그의 「기독교 강요」 최종판에서 교회론에 할애한 분량이 전체의 약 1/3가량이나 될 정도다.
이것은 곧 위대한 두 사상가인 바울과, 칼빈이 '교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먼저 바울의 교회론을 살펴보고, 이어서 칼빈의 교회에 대한 관심을 고찰, 두 사상가의 교회론을 살펴보고, 그리고 두 사상가의 교회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연구해보고자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서술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간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와 연합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몸안에서 육신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미친 죄악과 죽음의 압제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며, 따라서 교회는 그 안에서 그를 통하여 연합한 사람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안에서 한 몸이 되었으며 이 하나됨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었다. 이에 바울의 여러 서신들은 이런 교회에 관한 바울의 사상과 신념들이 어떻게 분명한 사상을 형성하고 있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즉 로마서나 고린도전서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을 썼고,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교회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해 주로 말하고 있다.
로마서는 교회를 몸이라고 하는 묘사를 사용할 때 교회의 본질적인 통일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으나, 그 지체들이 다같은 기능을 맡은 것이 아님과 같이 우리도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각각 서로의 지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 너그럽게 주는 은사,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권면의 은사, 다스리는 은사, 구제의 은사를 충분히 활용하여야 한다.
그런데 로마서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시켜 그것을 교회의 본질적인 정의로 논리를 펴 나가고자 할 때는 바울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바울은 자만의 위험을 초래하는 개인주의적 사고의 위험을 불식시키기 위해 인간의 몸에 대해 언급한다. 이런 상황속에서 교회라는 개념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든 사람들을 지체로서 표현하면서 이 사람들 즉 지체들은 전체라는 의미에서 교회 속에서 각자의 고유의 위치를 가짐을 말하였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몸'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몸은 많은 지체가 있어서 각기 다른 기능을 나타내지만 그것은 전체적으로 보아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몸'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아무도 신자 각자가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의 생각을 자신에 대해서 해서는 안되며, 다만 그는 자신을 하나님이 그 공동체(교회)를 위한 봉사를 위해서 주신 은사들과 은혜들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교회안에서 신자들은 각각 자기의 고유한 은사를 발견해야 되며, 또 자기의 은사에 만족하여서 그것을 올바르게 또 충분히 활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몸'개념에 나타나는 그 지체를 교회와 연결시켜 교회의 귀중한 의미인 전체로서의 하나 즉 통일성과 하나로서의 다양함의 다양성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계속해서 이 개념을 교회에 적용시킴도 발견할 수 있다.(고전 12:15-17)
아무튼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을 교회에 적용시키면서 교회 자체 내의 유기적 통일성을 매우 강조했고, 이 유기적인 통일성은 교회내에서 실제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로마서를 통하여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한 것의 우선적 의미는 신자 상호간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앞서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공동으로 속해 있고, 또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개개인은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불려지고,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불려진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각각 지체들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끌어낼 수 있고, 또한 이를 근거로 지체는 몸을 위하여 몸은 지체를 위하여 살아야 함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 귀절들은 성령의 은사와 관련하여 고전 12:12-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몸으로서 고전 6:15-20, 성례전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고전 10:16-17, 11:29,에 더 확대되어 나타난다.
바울은 이 말씀들을 근거로 하여 얻어지는 표현 즉 몸을 왜 교회라고 부르는가에 대하여 몇 가지 결론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먼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속에서 발견되어지는 우선적 의미는 그것이 신자 상호간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아니고, 우선적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연합되고, 또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는 사실속에 발견되어지는 통일성과 다양성이라는 것이다(롬 12:5, 고전 12:12-27).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그리스도의 연합, 그리스도안에서 연합을 배제하고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내에 거주한다거나 성령이 그리스도와 교회간에 연합을 형성시켜 준다고 하는 것을 근거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회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며, 또 '많은 사람' '지체'들이 하나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그리스도께 공동으로 속해 있고 또 그리스도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 개개인은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불리워지고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불리워진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에 근거한 영적인 존재 양식으로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성령으로서 교회 안에 거하시고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힘을 채우시는 교제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회가 속해 있고 그리스도안에 포함되었다고 하는 것은 단지 구속사적인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례전적으로 성령과도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는 것과 그리스도에게 소속된다는 것은 성령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갖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롬 8:9). 성령안에 있다는 것은 제일 먼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론적인 범주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가 성령안에 거하면 또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시면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제로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시게 된다. 결과적으로 세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는 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연합되어졌고 심지어 성령을 마시게 되어 한 몸을 구성하게 된다. 또한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완성되어지며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병합되고 또 그에게 속하는 것은 세례와 성찬의 표상이기도 하며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의 몸인 교회에 주어진 성령의 은사의 힘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때문에 신자는 성령의 전인 것을 음행을 피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전 6:15-20). 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삶이 회복되어 그리스도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몸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으며, 그 결론적 표현으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였다.
두 서신은 모두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을 말한다(엡 1:22, 골 1:18). 그리스도가 머리되심은 그리스도 자신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즉 머리는 그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하듯, 그리스도도 교회와 함께 완전하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로마서나 고린도전서에서는 영적 은사를 사용하는 교회의 통일성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고 있는 반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입장을 문제로 삼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또 만물의 머리로서 그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주어졌다. "...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2-23).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신 것은 교회는 그의 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그리스도는 교회와 밀접하게 -머리와 몸과의 관계로- 연결되어서 넓으신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심을 의미한다. 또한 그리스도가 몸된 교회의 머리되심은 고전 11:3에서 "모든 사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전제 아래 그리스도께서 교회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머리가 되신다면 역시 그가 교회의 머리되심도 같은 이치이다. 이렇듯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라는 결론 속에서 그의 몸인 교회는 만물의 머리로서 특히 교회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고 있다(골 1:18, 엡 4:15이하, 골 2:10, 19). 몸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교회를 살아가게도 하시며, 자라 가게도 하신다(골 2:19, 엡 4:15-16).
또한 '머리됨'이란 통치권과 권위의 위치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머리라는 표현이 몸과 같다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는 몸의 지체이며 또한 몸이 머리로부터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자란다(골 2:19)는 의미에서 유기체적인 관계이다. 이런 유기체적인 관계에서 몸과 머리와의 관계는 통치권과 권위의 위치로서의 머리를 통하여 몸의 성장이 있게 되며 보살핌과 사랑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머리'라는 개념은 인간 공동체의 구조와 관계로부터 이해되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머리'는 처음(First)이라는 지위에 있어서 혹은 그의 독특하고 결정적인 활동에 의해져서 현저하고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이런 대표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머리이시며 또 교회의 머리시라는 표현을 이해하여야 되며, 그래서 그는 교회와 만물을 계속 통치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영적인 의미의 계속적인 교제도 이런 머리됨과 연결이 되어 있다.
지금까지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바울의 교회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러면 이제까지 위에서 설명한 것들과 관련해서 몇 가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첫째로, 몸을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안에서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던 것처럼 교회 역시 그리스도안에서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회가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다는 것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 속에 포함된 까닭에 한 몸이 되고 이를 주님의 교회라 부르는 것이다(엡 2:16, 3:6).
셋째로, 몸을 그리스도의 교회와 연결시켜서 부를 수 있는 것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통하여 되어지는데 이는 고전 12:13의 말씀과 같이 인간의 몸 속에 영이 들어옴으로써 하나가 되어 하나로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도 성령이 내주하시고 역사하심을 통하여 하나의 유기체적인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넷째로, 에베소서에서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강조하면서 그의 몸된 교회의 주관자로 부각이 되고 거기에 따른 권위와 사랑이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만물의 머리로서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어서 그의 우주적 주권으로 그의 교회를 다스리시며 자기 교회를 살아가게도 하시며 자라 가게도 하신다(골 2:19, 엡 4:15-16).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바울은 '몸'을 교회와 관련하여서 표현하였고, 또 그리스도는 몸된 교회의 머리가 되어서 그의 교회를 살아가게 또 자라 가게 하시는 것이다.
2.칼빈의 교회관
칼빈은 교회를 무엇보다도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으로 보았다. 교회는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며 우리의 신앙이 출생하고 성장하는 곳이므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했으며, 또한 칼빈에게는 교회를 성도들의 공동체로 보는 개념도 있었다. 그러나 성도들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개념보다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교회 개념이 그에게는 두드러진다. 이렇게 볼 때 유일한 구원의 기관인 교회와 그 안에서 작용하는 말씀의 관계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구원의 선포가 말씀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고 칼빈의 교회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은 교회를 인간의 약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무지와 나태, 연약함을 고려하여 교회를 주셨다. 칼빈은 세계가 창조된 이래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가지지 않으신 때는 없었다는 것과 역사가 끝날 때까지 그가 교회를 가지시지 않는 때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분은 이렇게 부패된 세상에서 영광을 위한 그릇을 성별하시므로 그의 긍휼을 경험하지 않는 시대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세상에서 교회가 사라진 듯하게 보이기도 했으나 하나님은 항상 지켜 보호해 주셨고 죽음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역사가 끝날 때까지 교회는 인간의 연약함을 돕는 외적 도움으로 남을 것이다. 칼빈은 이러한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아버지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또한 어머니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약함을 돕는 어머니로서의 교회에 대해 칼빈은 말하기를
왜냐하면 이 어머니가 우리를 잉태하고 낳고 젖으로 양육하고 우리가 육신에서 벗어나 천사처럼 될 때까지 보살피고 인도하지 않는다면 달리 생명으로 들어갈 길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평생 이 학교에서 떠날 수 없다. 더욱이 이 품을 떠난 자는 이사야나 요엘이 증거했듯이 어떠한 죄용서나 구원도 바랄 수 없다. 그는 어머니로서의 교회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수단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일한 구원의 기관인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가시적 교회는 성도들의 사귐이라는 면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이라는 면이 강조되므로 하향적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칼빈의 가시적 교회는 성도들의 유기적 모임으로서의 특성보다는 제도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결국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약함을 돕기 위해 주신 가시적 교회이며, 말씀의 선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신앙의 출생과 양육을 가능케 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기관이다.
칼빈의 교회관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그리스도의 몸'의 개념이다. 다음의 인용에서 보듯이 이것은 교회의 단일성과 보편성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몸 안에서 지체가 된 성도들의 교회에 관심을 두고 있는 개념이다.
- 그것은 일어날 수 없다! - 둘 혹은 세 교회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
님이 선택한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안에 연합되어 있어서 한 머리에 의존하게 되어 있으며
그들은 또한 몸의 지체들처럼 연합되고 결합되어 한 몸을 형성한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같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함께 살아가
기 때문이다.
칼빈은 자신의 교회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로 이 공동체는 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가지고 서로 굳게 연결되어 있는 모든 세대에 있어서 구원받은 자의 총수이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전적으로 교회를 통하여 오는 것이며 이 구원의 단체인 교회의 회원의 자격의 근거는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신앙에 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조립되어지며 교회가 영원 불변하시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어서 그리스도는 그 신자들을 영원히 붙드신다. 또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여 계셔서 신자들과의 사귐이 항상 이루어지는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보이지 않는 교회는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론은 교회는 외부적인 형체가 없이도 자존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지상형(地上形)이라고 말하는데 대하여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불가시적 교회와 함께 칼빈은 가시적 교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칼빈이 '교회 내에 이름과 겉모양으로만 그리스도인인 많은 위선자가 섞여 있다'고 할 때의 교회는 바로 가시적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 오히려 칼빈에게 중요한 것은 가시적 교회였다. 그러면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전술한 바와 같이 불가시적 교회는 현실의 제약을 벗어버린 이상적 교회이다. 그러나 칼빈이 목회중에 상대한 교회는 가시적 교회였다. 그리고 이 가운에는 위선자들도 섞인 현실적인 제약을 받는 교회였다. 칼빈은 현실의 제한성을 지닌 교회를 적극 수용하고 적응하면서도 마땅히 되어져야 할 본래적인 교회상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시적 교회를 불가시적 교회에 수렴시켜 간다는 것은 현실적인 제약을 지는 교회가 이상적 모습을 향해 끊임없이 성화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구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보았다.
칼빈은, 목회자는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칼
빈은 당시 재세례파 지도자들의 분파적 경향을 비판했다. "하나님의 양때로
부터 제외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우리가 신자들과의 일치를
이룩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단절된 것으로 본다."
칼빈은 당시 분열되어 있던 개신교회의 연합을 위해 노력했으며, 영국교
회 대주교인 크랜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회의 일치를 논하는 자리라면 "
그것은 내게 대단히 중요하므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 일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열 개의 바다라도 건너가기를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
하고 말했다. 칼빈은 시로 근대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창시자였다.
정치적으로 제네바의 자유독립을 위한 투쟁을 관찰해 보면 정치적 입장
이 매우 복잡했으나 결국 종교적 논쟁으로 해결함으로서 정화되었다.사실
1520년까지 제네바시에 소수의 개혁파주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있었다. 1
530년 초기까지 종교개혁자들이 제네바교회를 지배할만큼 그들의 영향력은
없었다. 그 당시 제네바시에 거주하고 있었던 소수의 종교개혁자들은 후로
맨드, 화렐, 윈그레, 비레트, 그리고 로보드 등이었다. 그 당시 제네바교회를
지배할만큼 그들의 영향력은 없었다. 1528년 1월에 종교개혁을 선언한 이들
은 배른시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1536년 5월 26일 드디어 제네바 시의회
는 복음대로 사는 개혁운동을 결정함에 따라 그 시는 복음주의적인 종교개
혁의 규정대로 운영되는 시정국가가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제네
바는 신앙에는 말할것도 없이 도덕적으로도 형편이 없었다. 너무나 음탕해
서 시의회에서 한 남자에게 첩 한사람만 두자는 결의까지 할 정도였다. 로
마교회 성직자 중에도 첩을 몇씩 두어서 사생아가 많고 민간재산을 강요해
서 음탕한 생활에 소비한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칼빈은 교회분리와 통일에 관한 문제점을 논함에 있어서 그 기준을 교회
의 본질과 순결에 직결시켜 생각한다.
교회의 본질에 관한 교리는 반드시 모든 역사에 대한 신앙의 주관성의 교
리와 동시에 취급함으로써 교회의 혁명으로서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밝혀 분석할 수 있고 여기에 교회의 통일과 분리위
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밝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칼빈에 있어서
"신의 주권"의 문제는 그의 모든 해석원리의 열쇠와 같이 되고 있다. 그는
그의 기독교강요 제1권 제17장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그의 집으로 선택하
였기 때문에 교회를 다스림에 있어서 아버지로서의 관섭과 배려를 특별한
증거를 통하여 나타내신다."고 증거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의 개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칼빈에 의하
면 교회의 기본요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으로 설립 되었다는 사실"
에 기초한다.
칼빈은 속사도 시대의 교회에 대하여 신약교회와 동등지위를 인정하지 않
는다. 고대교회의 신약적 형태는 무지한 인간들의 무감각한 성격으로 말미
암아 점차 오염되고 마침내는 결과적으로 중세기의 부패 교황권과 같은데
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칼빈은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때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도 이들과 분리되면서라도 복음에 충실한 사도들로 말미암아 활기를 띄게 되었고 이와 같은 신앙의 대중화와 신도들의 교회로부터의 이탈은 충 성스러운 목회자에 대치하여때로는 그들을 투옥하는 외식자와 이단자들이 교회안에 들어옴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교회의 개혁으로의 종교 개혁에 대해 로마교회로부터의 분리의 정당성을 부여한 칼빈의 사상적 근거 를 우리는 발견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의 본질적 의미에서
멀리 떨어진 역사적인 거대한 교회가 그 본래 사명에서 이탈되어 변절자로
그 복음의 지위를 포기하여 버렸을 때에 일어나는 운동으로 하나님의 영원
한 선택의 기관으로서의 교회의 대한 신의 주권적 간섭에 의하여서만 이루
어져야 적당하다는 것을 칼빈은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않된다.
칼빈은 교회의 통일을 강조함에 있어서도 또한 특출한 인물이었음을 우리
는 그의 저서를 통하여 인정하게 된다. 그의 기독교강요 제4권에 나타나
있는 교회통일의 개념은 그가 얼마나 그 시대의 교회의 통일을 갈망하였다
는 것을 짐작케 한다.
(1)칼빈의 정치관(교회정치)
루터는 교회의 정치를 정부의 손에 위임하였지만, 칼빈은 정치적 세력으로
부터의 교회의 독립을 위하여 교육에 노력하였다. 그가 교회정책의 근본착
안점으로부터 생각한 것은 첫째 모든 선택이 하나님에 말씀에 표현된 대로
되어야 하며 둘째 사도적 초대교회의 본을 따르려는 것으로 돌아가지 않으 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2)칼빈의 교회자율권
제네바 실정에 대해서 칼빈이 무엇보다도 강조한 것은 교회의 자율성이었
다. 교회는 그 위탁된 일을 성례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지와 그것에
필요한 교회훈련의 실시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율성을 가질 뿐이라
는 것이 칼빈의 불변의 신념이다. 신앙의 사항에 관하여는 교회가 최후 결
정권을 가진다. 이것이 칼빈의 근본적인 주장이며 오직 그 때문에 그는 책
벌권, 교역직 선출권, 교리의 결정권 등을 둘러싸고 시의회와 격렬한 대립
을 계속한 것이다. 1541년 이래로 교회법규도 결국 칼빈이 의도한 바대로
중세로마교회와 같이 국가에 대한 교회의 계층적인 상위우월을 부정하는
것으로 작성되었다. 교회는 신법화의 구상화로서 자연법을 기본으로 하는
국가에 대해 교회의 신성불가침권을 구별한다고 말한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국가는 교히를 보호하며 지지하는 것이 마련되어 있다. 이 범위내에
서는 칼빈이라 할지라도 아직도 정교의 완전한 분리라는 사상에 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칼빈이 기도한 것은 실은 국교회의 범위 내에서의 교
회의 자율성이었다. 57)
(1) 신앙고백서
권징조례는 시민의 신앙적 일치를 꾀하여 전시민이 공적인 선서를 하게끔
마련했으나 이 요구는 1941년 4월 14일 21조의 신앙고백이 의회에 재출되
어 승인되었다. 3개월의 예고를 둔 후 시정부의 감시하에서 전 시민의 선
서가 마련되는 것에 의해서 실현됬다. 이와같은 방법은 칼빈에 대해서 친구
가 적을 구별하기 위하여 부득이한 방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시민
의 당연한 반발을 사는데 충분하였다. 최후까지 선서를 거절한 시민도 시
정부의 압력하에 결국 굴복하였으나 이 선서문제는 책벌문제와 함께 칼빈
의 실각의 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2)성찬참여
기독자의 공중이 회집할 때마다 이를 배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
든 신자가 수양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규정이었으나 이 규정 대신에 한 사
람이 대표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중세교회가 도입한 성찬의 규정이었다.
성찬의 근본 뜻이 경시되는 일이 없게 자주 베풀던 것을 매월 한번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성찬에 대해서도 지체인 신자의 머리되신 그리스
도와 성령에 의해 하나로 되는고로 만약 악하고 불미한 생활에 의해서 전
혀 예수그리스도와 만나고 싶지 않은 자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 있을 경우 이것은 성찬의 모독이므로 여기서 수찬정지라는 징계와 훈
련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이야기 되었던 것이다.
시편의 찬송을 공식예배에 준비하여 제창토록 하였으며 모든 사람의 마음
에 감동이 되도록 마음을 합하여 드리는 기도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을
제창케 하는 것은 교회의 건덕을 위하여 매우 적절한 것이다 라는 교회 규 정이다.
칼빈이 친이 집필한 "제네바 신앙교육 문답서"는 개혁파 교회에 대한 최
고의 정신적 소산이며 어린 아동을 기독교의 교리로 교육하는 것은 항상
교회가 특별히 유의하여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561년 11월 13일 승인 공포되는 50개 항목으로된 이 규정은 보호자 없이
결혼의 가능과 불가능에 광한 것, 혼인 취소의 이유, 약혼과 그 공포, 근친
혼인의 금지, 이혼할 시 아내의 권리는 결코 남편의 권리와 평등하지 않다
는 것 등이다. 그러나 사도의 증언에 의하면 의무는 상호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네바 시에서는 부인이 남편에게 대하여, 남편이 부인에게 대하여
사도의 증언과 상이한 처지에 있었다. 만일 남편에게서 간음의 죄상이 들
어나 부인이 남편과 이혼할 것은 인정하지 않으면 그 이혼이 성립되지 않
았다. 만일 부인이 언쟁이 있을 경우 제소하는 규정이 있는점 등은 매우
흥미를 끌고 있다 라고 하였다. 60)
(6)장로회의 직제
4종류의 직제인데 즉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직제이다. 가장 성경적이요
이상적 직제라고 볼 수 있다.
첫째,목사직, 말씀 선포와 교화, 훈계, 권고, 성례의 집행 및 형제애적 교정의 실시에 있음을 말하였다.
둘째, 교사직, 신학을 가르치는 직은 목사직에 아주 가깝다. 또한 교회의 통치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교사의 교회적 지위는 아무것도 지위해 있지 않았다.
셋째, 장로직, 장로는 1561년의 교회 헌법 규정에 의해서 시정 당국으로부터 노회(장로회)에 파송된 위원(총대)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같은 교권과 국권이 접촉하는데 해결될수 있는 직제이었다. 그러나 장로직은 이 직으로 인하여 정,교, 양권의 대립은 매우 격렬하였다. ① 장로의 직무: 교인의 생활을 감독하며 정로에서 벗어나 탈선한 자들을 친절하게 훈계하며, 필요에 따라서
형제애가 결핍되었을 때 징계를 하는데 있다. ② 장로의 선출: 장로의 선출
수는 소의회(시의회) 2명, 60인회에서 4명, 2백인의회에서 6명 모두 12명을
선출 하였다. ③ 장로직의 임기: 1년이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유
임하는 것이었다. 목사와 장로는 당회를 구성하였다.
넷째, 집사직, 교회헌법 규정에도 초대교회에서 빈자를 구제하며 재산을 관리와 직무와병자를 돌보는 직무가 있었다. 집사의 선출은 평신도들 중에서 선출하였다.
5}칼빈주의와 교회형태
칼빈주의와 장로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칼빈을 장로회주의나 장로교회의 창설자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나 장로교회의 창설자나 장로회주의의 창시자는 칼빈이전 모세부터 그 기원을 둔다고 할 수 잇다. 그리고 "장로교회라는 이름 또한 칼빈이 지은 것이 아니다. 장로교회는 칼빈이 죽은지 반 세기가 지난 1620년경에 영국에서 처음 사용 되었다. 그러나 16세기의 종교개혁자 칼빈 만큼장로교회 적인 교회 체제나 직제를 말한 개혁자가 없음으로 그를 장로회주의나 장로교회의 설립자로 보는 경향이 많다.보다 구체적인 원리는 칼빈에게 영향을 받은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 교회가 더 장로회 주의적이었다. 스코틀랜드교회는 1천년이상을 유지한 교황교회와 감독교회에서 장로회체제를 회복하여 사도당시의 사도교회를 재구축하였다.사도교회가 회당체제오의 장로회주의를 도입하여 당회와 노회와 대회와 총회제도의 연속치리회와 의회제도의 장로회주의를 적용한 것을 영국장로교회가 다시 확정을 하고 영어권과 더불어 세계성을 띠게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칼빈주의가 곧 장로회주의라는 주장은 옳지 않으며 칼빈은 오히려 우리에게 성경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다 자유로운 교회형태를 가질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1)시대의 길잡이로서의 칼빈
다른 르네상스 인문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자신의 시대가 영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위기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매우 치열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시대의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칼빈의 계획은 우주의 "입법자요 왕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그의 관념에 기초하고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그의 통치 아래 살도록 전 세상을 거룩하에 만드셨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종교 개혁을 또 세속적 영역의 개혁을 지시하는 것을 의미했다.칼빈은 가끔 세상의 무질서를 비난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는 질서의 회복을 하나님의 통치와 동일시 했다. 이러한 동일한 원리는 또한 칼빈의 사회윤리에 항상 칼빈주의와 연게되지만은 않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부여해 주었다. 칼빈은 비록 세상의 지혜를 불신한다고 자주 고백하긴 했지만, 기독인의 어리석음을 결코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융통성이, 자신의 생각에 의하면 성서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일종의 부르조아적 현실주의로 그를 기울러지게 만들었다. 그는 악한 세상에서 살아 남기 위한 갖가지의 신중한 전략들을 권면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은 그에게는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다. 또 한 칼빈은 기독인들이 정상적으로는 금지된 수단들을 취해야 할 이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러한 수단들을 취하는 것을 주저없이 장려했다.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있어서의 칼빈의 이중적이고 모순된 태도는 부분적으로는, 그가 자주 다른 경우에도 그러한 것처럼,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그의 노력이 결과였다. 그는 중간의 부와 지위의 양 극단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언하기를 "적당한 재산이란 얼마나 더 유용하고 바람직한 것인가! 이것은 최소한 평화로운 것이고. 맹렬한 시기 속에 노출되거나 음혐한 혐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중산층적 태도가 또한 그로 하여금 노동을 존종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소명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들을 일차적으로 우리들의 일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러나 노동도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칼빈은 중용의 입지를 얻으려고 조력하였다. 그의 소명론은 노동의 효율성에 기여했다. 특별히 소명론은 노동의 분업화를 촉진시켰다. 또 노동에 대한 칼빈의 존종은 검약에 대한 권면을 수반하고 있다. 그는 가끔 되풀이 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검약과 절제를 권장하시고 풍부함 속에서 무절제와 사치하는 것을 금하셨다.검약에 대한 그의 존중은 그리스도를 산소하고 검약한 생활의 유일한 본보기로 본 그의 입장을 형성했다.그러나 칼빈의 사회사상에 잇어서 항상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공동체에 대한 그의 관심이었다. 그는 노동과, 부나 시간의 유용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주된 이유는 그가 이러한 것들을 공동체의 필요에 부합하는 드문 자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영국의 청교도, 스코틀란드의 장로교도, 프랑스의 위그노, 네델란드의 베거, 그리고 미국의 필그림 파더, 이들 모두는 자기들의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이들 모두가 칼빈의 정신적 후예들인 칼빈주의자들이었다. 따라서 칼빈이 근대 민주주의의 주창자라는 가정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법치적 신정정치'를 실현시킴으로써 서구 사회에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계기를 형성 하였다. 그는 특히 그의 기독교 사상을 체계화한 기독교 강교를 통해 자유,평등, 인권의 존중, 법에 의한 지배와 같은 근대적인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뒷받침할만한 정치신학을 전개하였다.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정치신학의 민주적요소들은 두 왕국사상에 입각한 이중의 정부론 및 자연법사상을 포함하는 시민정부론에 잘 나타나 있다.그는 고전적인 서구 민주주늬 형태과 거의 동일한 귀족정치와 민주주의 형태와 거의 동일한 귀족정치와 민주주의 정치의 혼합체제를 이미 제창했었고 독재와 악을 저지르는 통치자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공직자를 통해 저핳할 수 있다는 입헌적 저항권을 이미 세창함으로써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성립기초가 되는 주권재민의 사상도 제시한 셈이 됐다.
칼빈이 시민 정부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을음 살펴보았다. 그리고 정부형태에 대해서는 차선책으로 폭군정이 아닌 군주정도 인정했지만 최선의 정부형태는 민주정과 귀족정의 혼합 정부임을 주장했으며, 선거에 의해 통치자를 뽑아 통치자가 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최선의 길로 인정했다.
칼빈에게서 자연법은 하나님의 인간창조시에 내려준 것이었으나 인간의 타락의 영행으로 그자체로서는 알 수 없고 타락으로인하여 휘미해진 것을 하나님이 성문법인 십게명을 통하여 명백하게 하여주신 것으로 십계명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연법과 십계명을 동일한 것으로 보아 하나의 법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세와 같이 은혜가 자연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은 은헤를 통혜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칼빈의 자연법사상은 중세의 전통에서 벗어나 자연법 사상을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과 동일시한 점에서 변화되었고, 그러면서도 인간성과 인간사회에 대한 공동적인 이해의 근거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칼빈은 목사로서 한 교회에 임하였거나 장로교회를 위한 체계적이거나 직제적인 개혁을 주장한 개혁자가 아니었다.오히려 그는 제네바시 개혁에 임한 개혁자로서 그는 의회 민주주의를 고수하면서 장로회주의에 입각한 의회주의를 적용하였다.그러나 칼빈은 각종의회에서 자기는 그속에서 선출되지않고 그 위에서 보내심을 받는 사도와 목사와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성경의 원리대로 사도를 부르시고 그 아래 장로들을 세워 사도들로부터 지도와 편달을 받아 전체를 다스렸던 것처럼 제네바시의 개혁을 위해서도 12장로들을 세웠다. 물론 교회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2인은 16인 의회에서 4인은 60인 의회에서 6인은 200인의회에거 임명이 되었고 비준이 되엇으며 이들의 업무와 권한은 1년직으로 정하여졌다.그리고 시정아래에 종속이되어 지도를 받게 하였다. 이들 12명의 장로들은 목사들의 연맹 과 치리회를 함께 열었으나 칼빈이 의장이 되거나 목사가 사회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시정 가운데 한 사람이 사회를 보게 하였다.
칼빈 당시 제네바에는 불과 1만여명의 시민들밖에 살지 않았다. 그곳은 로마 교황청의 손길이 잘 닫지않았다. 그곳이 산간 오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발달한 상공업 덕분에 시민들은 경제적 안정과 함께 자유를 구가하넌 도시였다. 그러다 보니 종교적 자유를 찾아 피난오는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은 장소가 되엇다. 그러다 보니 제네바시는 유럽의 별 사람들이 다 모인 난잡한 도시이기도 했다. 1536년 5월21일 칼빈이 제네바에 온지 두 달이 채 되지않았을 때 그곳에서는 우상종교를 모두 버리고 경건하게 살기로 작정하는 총회가 열렸다. 그 결솨 칼빈은 제네바 개혁의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그동안 교황과 교회법만 믿으면 되는 명목상의 교인들이 모두 개신교인으로 거듭나는 일 이 일어난 것이다.이는 세상의 개혁에 대한 책임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한 칼빈의 의지의 결과이며 이러한 개혁의 의지를 그는 죽을 때까지 굽히지 아니하였다.
1)성만찬 문제
(1). 가톨릭의 견해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5세기에 이르기까지는 세례받은 교인들이 매
주마다 집례 되어지는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9세기에 이르러
서는 평균 1년에 한번정도밖에는 성만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 이
유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sacrifice)을 지
나치게 강조하였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초대 사도시대로부터 시작된 성만찬의
본질이 로마 가톨릭교회로 가면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초대교회 성
만찬은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가 공존하였지만 가톨릭교회의 성만찬은 말씀의 예배가 퇴보하고 지나친 의식만이 강조된 성찬 예배만이 집례되어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배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가톨릭은 수백년동안 말씀보다 성찬의 전통을 지켜왔다. 그러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 깊게 자리잡은 것은 사제가 집례하는 성만찬의 떡
과 포도주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의 교리이다.
성찬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은 9세기 초에 정식으로 제안
되고, 12세기에 정의를 받아 화체의 교리로 지명되고, 13세기의 제 4
차 라테란 회의(Laterian Council)에서 정식으로 채용되었으며, 16세
기 트랜트 회의에서 최종범식(最終範式)의 작성을 보았던 것이다.
성찬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는 중세기 로마교회의 성례전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에 잘 나타난다. 로마교회의 7가지 성례전 중
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례와 성찬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물질 속
에 그리스도께서 현재 임하신다는 화체설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성찬
이 반복될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매번 반복되는 것이다.
성찬을 성례전적 의(義)의 개념보다는 희생의 반복의 개념과 사상으로
보았다.
화체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독창적 교리가 아니라, 9세기 수도사
라베르투스의 주의 몸과 피에 관하여 란 논문에 제시되었다. 그 논
문에서 그는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사제의 축사를 통하여 기적을 일어나게 하신다. 성별된 성찬의 물질
이 진정으로 역사적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찬의 물질
의 색과 모양과 맛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그대로 있지만,
기적적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화체의
기적은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내면적으로 화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물의 색과 모양, 맛은 그대로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내면적 신비가 된다. 육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성찬의 성물은
영적으로 받지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이 성찬의 성물을 받을 때 그리
스도를 영적으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실재의 몸과
피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찬의 물질적 요소인 떡과 포도주는 제정어의
암송에 의하여 물질 그대로 있지만 성찬의 물질의 실체는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떡과 포도주 안에 임재하신다고 가르쳤다. 이로써
성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다. 사제가 이것은 내 몸이
니...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니... 라는 제정어를 외
울 때 성물은 내적으로 변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며, 이 변화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객관적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이론은 초대교회에 없었던 것으로써 중세기 스콜라 철학의
이론에 그 사상적 근거를 둔다. 즉 사물의 외부적 우유성(偶有性,
accidents)과 내적 본질(substance)을 구별하는 사상을 빌린 것이
다. 성찬에 관한 이와같은 가톨릭의 견해는 중세기의 예배를 신비종교
와 이방종교의 어떤 풍습을 첨가하여 구약의 제사제도로 되돌려 놓았
다. 또 감각에 호소하므로 많은 미신이 생기게 되었고, 그리하여 성만찬은 미신적인 관념의 성례전으로 퇴색하고 그 본래적인 의미를
상실케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예배는 성례전 중심이었고 성직자 중심이었
다. 예배에서 사제는 성물에 대하여 이것은 내 몸이라, 이것은 내
피라 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하고 그 성물을 높이 들어 회중에게 보였
다. 이 때가 예배의 절정이었고 종을 울려서 회중이 그것을 바라보게
했다. 만약 예배에서 그것을 보지 못하였으면 예배를 못드린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회중은 잘 보이지 않으면 그것을 더 높이 들라고 소
리쳤다. 그래서 높이 들렸던 성물을 쳐다보았던 신자는 안심하고 집
으로 돌아갔으며, 그 성물을 보지 못하였던 신자는 다음 예배에 다시
참석해야만 했다. 이처럼 회중들은 성만찬을 집례하는 사제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
야 했고, 그들의 참여는 부활절 예배에서만 허락되었다.
그것도 포도주는 허락이 안 되었고 떡만 허락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상 중세교회 예배에서 회중은 참여자가 아닌 방관자였다.
예배는 신부와 소수의 성가대에 의하여 라틴어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회중은 그것을 알 수 없었고, 이와같은 라틴어 사용은 회중들 사이에
미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회중은 다만 예배의 클라이막스에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성물을 봄
으로써 예배를 드린 것으로 생각하였다. 집례자는 작은 소리로 회중
이 모르는 말을 중얼거리듯 말하였고 회중들은 자신들이 함께 예배에
참여한다는 생각이 없이 사제의 행동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또한 성서는 라틴어로 쓰여져 있어서 회중들이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그나마 라틴어로 쓰여졌던 성서도 개방되지 않고 사제들만 볼 수 있었
기 때문에 교회의 예배는 회중들과의 삶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또한 중세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교리화했고, 그와같은 희생을
성만찬을 통해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성만찬이 희생제사가 되어
버렸다. 이와같은 희생제사도 성직자가 신자 전체를 대신해서 드리게
됨으로써, 성직자가 진정한 대사제이셨던 그리스도를 대신하게 되어
그리스도는 예배로 부터 아주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세 가톨릭교회의 성만찬은 화체설과
더불어 예배에 있어 극적인 신비의 현상으로 집례되었기 때문에 많은
폐단을 가져왔다. 그리고 매주일 예배에서 빠짐없이 집례되어 졌으나
불행하게도 사제의 행위에 머물렀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지나치게 강
조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설교가 경시되어졌다.
의 말씀과 성만찬의 불균형을 회복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운동이
었다. 그들은 말씀이 신앙과 예배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식과 형식주의 예배에서 말씀 중심의 예배로 복귀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결코 성만찬을 경시
한 것은 아니었다.
개혁자들에게 성만찬은 초기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기독교의 개혁이 아무리 거세게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성
만찬에 대한 신학적 내용은 초대교회의 그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개혁의 주역들은 성만찬론을 자신들의 특유한 입장과 신학에
따라 재조명하면서 최우선적인 신학적 과제로 삼게 되었다. 그 이유
는 예전을 통하여 구속의 그리스도를 언제나 새롭게 만날 수 있으며,
한 인간과 주님과의 생동력있는 역사적 연접(historical link)을 이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성만찬의 견해를 다음에 살펴보기로 한다.
루터(Martin Luther)는 말씀은 주님이 제정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전달해 주는 방편이 되는 성례전을 절충해 주는 것이므로 말씀이 없는
성례전은 있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루터는 1530년에 저술한 그의 논문 교회의 바벨론 포로
(The 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에서 로마교회의 성례전 제
도와 신학적 과오를 지적하면서 로마교회가 범한 세가지 잘못을 논박
하였다. 첫째는 평신도에게 떡만을 허락하고 포도주는 주지 않은 것
이고, 둘째는 마술적인 화체설의 과오이며, 세째는 성례전을 희생의
반복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과거 가톨
릭의 전통을 모두 개혁하고자 한 것은 아니고, 다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개정하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성찬을 받기 전에 시행
한 부분 중 불을 켜 놓는 것, 제복의 사용, 향을 피우는 것은 그대로 존속
시켰으며 이에 반해 성찬 예배에서 성별의 기도는 변화시켰으며, 화체론을
수정하여 공재론을 수립하였다. 루터는 초대교회에서 사용한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었고, 처음에는 매일 성찬식을 거행하라고 권했지만 매주일 시행하
라고 권장하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몸이 성찬 물질이 있는 곳에 현실로 임재한다
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주장한다. 즉 주님의 몸이 성찬 물
질의 안에, 밑에, 함께 (in, under, along with) 계신다고 했는데, 이
는 14세기에 있었던 오캄의 유명론에서 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루터는 믿는 성도들이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그
리스도를 접할 수 있도록 되는 것이며,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영화된
몸의 임재를 믿었고, 공간 속에 연장된 몸 (body extended in apace)
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루터는 이것이 내 몸이다 라는 주님의 제정어에서 ...이다 를
윤리적,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의 반복과 화체교리를
거절했다. 루터의 성찬에 대한 견해는 여러번 변화가 있었다. 첫째
는 1519년 성찬에 관한 교설 을 쓴 때이고, 둘째는 1520-1529년 교
회의 바벨론 포로 를 쓴 때(쯔빙글리와 말부룩 회담을 하기까지)이고,
세째는 말부룩 회담 이후이다.
첫째, 성찬에 관한 교설 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떡과 포도주
아래 두고, 성물인 떡과 포도주는 도장(siggel)으로 그 아래 참된 그
리스도의 몸과 피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성례는 본체의 표징이라고
했다.
둘째, 교회의 바벨론 포로 에서는 로마교회의 화체설을 반대하고
성찬의 결정적 요소는 신앙이라고 했다. 성찬은 약속이며, 성찬의 은
혜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와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에 의
해서라고 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둘째가 우리의 신앙이며, 세째가 사랑이라고 했다.
세째, 말부룩 회담이후에 성찬에 관한 루터의 견해는 공재설로 형
성되었다. 또한 그는 쯔빙글리의 견해에 반박했는데, ① 떡과 포도주
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표상한다는 것과 ② 이것은 내 몸이다 를
이것은 내 영적 몸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박했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평신도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서도 피를 흘리셨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루터는 성만찬에서 평신도를 제외시키는 행
위는 사악한 행위라고 하였으며, 그러한 권한은 천사에게도 없고 교황
이나 공의회의 권한에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루터는 평신도들의 성만찬 참여를 강력히 주장하였고, 성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권리는 교황이나 공의회의 사제가
빼앗을 수 없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쯔빙글리(Zwingli)의 성만찬에 대한 견해는 성만찬에 사용되는 빵
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순한 기념을 위한 표시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행동을 회상케 할 뿐이라는 것이다. 쯔빙글리는 루
터와는 달리 에라무스의 인문주의에 크게 영향을 받아 신학적인 접근
방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특별히 쯔빙글리는 어떠한 교리도 이성에
모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으나 루터는 신학에서 이성의 역할을 거
의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차이는 특별히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
도의 현존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 역력히 나타났다.
쯔빙글리는 화란의 코넬리우스 호엔의 영향을 받아 1524년에 루터
의 공재설을 거부하고 떡과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런 두 주장의 견해 차이는 사실상 교회
역사상 여러번 대두되었던 실재론적 개념과 순리주의(Spiritualism)적
개념 사이의 대립을 재생시킨 것이었다.
쯔빙글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의 예배에 임재하시며 그의 몸
과 피, 곧 그의 인성은 하늘 아버지 우편에 제한 되어 계시고 성만찬
은 십자가상의 구속적 사역을 회고하는 감사의 기념 일 뿐이라고 하
여 기념설(Memorialism)을 주장 하였는데, 이와같은 쯔빙글리의 성만찬론은 성만찬의 물질이 예수 그
리스도의 인성, 곧 가시적인 육으로 화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는 승천
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인성의 몸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루터와 쯔빙글리의 차이점은 그들의 정신적 태도의 표현으로써,
이것은 나의 몸이다 라는 예수의 말을 휴머니스트들은 이것은 나의
몸을 의미한다 는 것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루터는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이해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은
실제로 빵속에 현존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영은 신체적인 것에 의해
서가 아니라, 오직 영에 의해서만이 만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쯔빙글리는 성만찬을 단지 기념적 행위로써 그리스도
의 희생의 기념과 신앙 공동체 의식의 근거로써 단순화시켜 버리는 결
과를 낳게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성만찬을 예배의 중요한 부분
으로 보지 않고 기념적 행사로 간주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지금껏 예배 가운데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배가 언
제나 공존했던 것을 분리시키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는 성만찬
을 연 2회로 함이 좋다는 견해를 펴 성만찬 예배의 경시 현상을 개신
교에 유산으로 물려주고 말았던 것이다.
칼빈(J. Calivn)은 루터의 공재설이나 쯔빙글리의 단순 기념설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 빵과 포
도주와 성례전적 연합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성령과 말씀 안에서만이 성물은 그것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결된다는
루터와 쯔빙글리의 중간적 견해를 취한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실
지로 임재하신다고 믿었으나 이것을 믿는 사람들의 감수성
(receptivity)과 관련시켰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와 그
경험을 바르게 갖기 위해서는 바로 참여자의 신앙이 요구되며 거기에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오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과 떡과 포도주는 말씀안에서 약속되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요, 영상이요, 상징이며, 이와같은 징표와 영상과 상징의 약속이 받는 자의 신앙에 의하여 경험되어
진다는 주장이다. 물질적 요소인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표상과 상징에 불과하며,
그리스도는 떡의 물질에 부가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쯔빙
글리의 기념설과 동일한 견해를 가지지만 성령의 힘에 의해 성례는 일
어남으로 신앙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라고 한 주장은 쯔빙글리의 기념설과 다른 것이다.
칼빈은 성만찬은 외형적인 표시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의 증거이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입증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성물(the elements)의 신비성과 거기에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사건을 단순히 집례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여기서 성물이라는 눈에 보이는 표시만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므로 그 약속을 선포하고 , 해석하고, 적
용시켜 주는 말씀의 증거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
고 있다. 그때 이 성물과 거기에 대한 말씀을 경청한 무리들이 성
령의 사역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동시적으로 이룩하는 감격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례전을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 이란 어거스틴의 사상을 받
아들여 세례나 성찬이 성령으로 우리의 사죄와 은총의 수락을 입증하
는 표징이요 인장이라고 했다. 그는 성령을 성례전의 지배인이라고
했다. 성례전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오직 성례전을 통하
여, 성례전과 함께 은혜가 온다고 했다. 그것은 성령이 성례전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며, 성령이 같이하지 않는 한 성례전은 바르게 집행
되는 것이 아니므로, 성령은 성례전 안에 있는 교사라고 했다. 또 성
례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 신앙을 봉헌하는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고백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제네바교회 신앙 문답서 에 자세하게 나타나
고 있는 바, 성례전은 눈에 보이는 징표로서 우리에게 영적인 모든
일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외부적인 증명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여러 약속을 우리 마음에 한층 더 강하게 각인하여 우리가 그 약속을
보다 더 확실하게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빵과 포도주라는 성물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먼저
주님이 세우신 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라는 당연성을 표하고, 둘째로
우리는 육체로 덮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적이고 천상적인 모든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상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와 그 경험을
바르게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언약에 대한 선
이해가 요구된다고 했다. 이러한 선 이해는 바로 참여자의 신앙을 재
확인 시키는 것이며 거기에 말씀의 수용이 가능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
속에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칼빈의 개혁교회의 기초를 놓았으며 우리에게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귀중한 신앙의 눈을 열어 주었다. 칼빈의 이러한 이신득의의 사상의 저변에 깔려있는 그의 신앙철학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말씀중심의 목회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 본연구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먼저 본 연구자는 프랑스 신학자이자 교회정치가이고 또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교한 지도자들 가운데 한사람이었으며 서양의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형성에 공현얬던 사상가였던 칼빈의 생애, 그리고 사상, 신학, 정치, 사회면에 걸쳐 고찰해 보았다.
칼빈의 사상의 복합적이고 정치적인 특성을 인식하는 것이 결국 그 자신의 시대에 그의 이름을 붙이게 되는 그 운동이 성공한 것과 전혀 다른 상황에 있던 후의 세기들에 그 운동이 지속된 것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후의 칼빈주의자들은 그에게서 이 불안정한 혼합을 상속했다. 대립적이고 변화하는 충돌들 사이의 불확실한 균형인 칼빈주의는 중세 후기 교회와 동일한 방식으로 철저하게 와해되게 되었다.
그러나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이 흔들림 없고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생활 규범으로 제시하여 귄면하고 교훈한다. 또 신학적 측면에 있어서 칼빈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역사의식을 보여 주었다. 그는 교부들의 기독론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니케아 회의와 칼케톤 회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오늘날의 신학도들은 역사적 계류가 결핍되어있다. 칼빈은 기독교 교리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얻을 것을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3장에 이르러서는 목회자로서의 칼빈을 살펴 보았다. 그는 형이상학적인 목회철학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하였다. 이러한 그의 신앙 때문에 그가 성경 중심 말씀 중심의 목회로 일편단심 나아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4장에서 살펴볼 때 목회자는 순수해야 하는데 이는 오로지 설교자로 설 때에 가능 하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단순히 성경지식을 전달하는자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인격으로서 그들 회중에게 설교하고 교육해야한다고 강조하게 된다.
5장에서는 칼빈의 교회관을 바울의 교회관과 비교하여 살펴 보았는데 지상에 있는 가시적 교회의 불완전성과 한시성 때문에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로서 말씀으로 보양해야 할 것을 강조했음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한 그의 말씀사역은 교회사역에 국한 되지 않고 세속정치와 경제 문화등의 전반에 까지 나아가도록 한 것이 그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그리고 마지막으로 5장의 후반부에서 그의 성만찬에 대한 의식과 공예배에, 대한 태도를 살펴 봄으로써 오늘날 한국교회의 샤머니즘적 기복적 신비주의적 경향에서 탈피할 수 있는 출구를 찾아 보고자 하였다.한마디로 칼빈은 위대한 종교개혁자였으면서도 실제 목회사역에 종사였던 자로서 그의 신학사상이 이론에서 끝나지 않고 오늘 목회 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실제적인 안내와 길을 인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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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독립교회에 대한 일반적 이해
1. 성경신학적 교회론
한국교회는 날이 갈수록 중세로 돌아가 Roman Cathoric 교회를 닮아 가는 듯한 인상을 점점 강하게 풍긴다. 한 교회나 한 교역자가 특정한 교단에 소속되는 것이 중시되거나, 한 신자(信者)가 어떤 특정한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조짐이라 할 수 있다. 성경위주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특수한 신학사상 중심의 신앙생활로 변모한다. 장소로서의 교회 건물로서의 교회가 강조되고 있다. 직무중심의 교역자상이 퇴조하고 한 인간이 신성시 되고 그의 권한이 거룩한 위력을 발휘하는 듯이 행동하는 예를 자주 보게 된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고유의 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공동체, 그 구조, 조직에 의해 유지되는 것 같다. 특히 조직으로서의 교회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며 스스로 군림하기도 하고 세속적인 세력과 자주 야합하기도 하며 어마어마한 힘을 마구 이곳 저곳에 뿌리고 돌아 다닌다. 이 구조는 또 스스로 굴러가며 개인의 특성과 자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통제, 억압하기도 한다. 정치력이, 금력과 권력이 어느 틈엔가 교회에 밀려와 떠나지 않고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공리주의적 사고 방식이 교회에 팽배해 있다. 역사의 흐름은 어차피 이렇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 없고, 또 무엇으로도 방해할 수 없을찌라도, 억지로 시발점으로 돌아가 보는 것은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용기만 있다면 물길을 잡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상의 과제와 병행하여 적절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신학적 연구의 출발점은 항상 언어, 문법적 고찰임은 자명하다. 우리에게 이것은 신약성경에 사용된 란 단어를 찾고 그것이 사용된 문맥과 그 배경을 따져 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칠십인경(LXX)에서 이 단어가 주로 ㄹ하카이나 ㅎ더 의 번역어 임을 확인하고 이 두 단어의 문맥과 배경을 살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정으로 말해진다. 교회론은 또 통상적으로 신.구약성경 모두를 통하여 동일한 방법으로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 단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개념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요소를 내포할 수도 있다. 'E 가 비록 LXX에서 ㄹ하카의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와 ㄹ하카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는 개념은 일단 교회의 존재를 예상하고 그것이 과연 어떤 성질을 가졌고 어떤 역활을 하는가를 보여준다.
다음의 의문점들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1. 어디를 교회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가? 2. 이 출발점에 이르는 필수적인 경과 과정이 있는가? 3. 이 교회는 구약성경과 (혹은 구약 공동체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1번의 대답으로 구약시대의 어느 한 시점이 제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교회란 용어가 여러 가지 의미로 일정한 지역의 지 교회나 교파 교회나 기독교 전체 혹은 신자들이 예배를 위해 회집하는 건물 등에 사용되는 바 교회론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교회의 단체적 종교 생활을 지도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사한다. 이로 인해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구원에 축복들에 참여하는 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에 의해 사람들을 그 자신에게 연합시키며 성도에게 참된 신앙을 주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不可見的 敎會(불가견적 교회)를 두고 말하는 것이지만 캐톨릭 神學
(신학)에서는 可見的 敎會(가견적 교회)를 지칭하고 있다.
그 주장은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교회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신다. 더욱이 교회는 모든 초자연적인 은혜의 분배자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저들의 강조점은 성도의 교통으로서의 무형교회가 아니라 성도의 어머니로서의 유형교회에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이 로마 교회의 교회관을 깨뜨려 버리고 다시 한번 영적인 유기체로서의 교회에 주의를 집중하였다. 그리고 이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역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활동을 떠나서는 교회가 존재할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교회의 본질은 언제나 역사적 형태안에서 보아야 하고 역사적 형태는 항상 본질을 출발점과 목표로 해서 이해해야한다.특히 교회의 설립은 예수께서 친히 예언하셨고 (마16;18} 그에언은 오순절에서 실현되었으나 교회의 감추어진 비밀은 바울을 통해 게시되었다. 교회라는 낱말만도 바울서신에 60회 이상 나타낫으며 바울서신 중에도 고린도 전서는 실제적이고 기능적이며, 은사적인 몸인 교회의 입장에서 취급하고 잇다.
당연히 교회의 뿌리는 구약에서 찾아야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의 선택받은 교회 ,출애굽의 광야교회{행7;38},아브람후손의 민족교회,등 그러나 이는 다 옛언약에 의한 성전제도하에 제사를 드렷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히8;5}
그러나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에수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의 머리로 도성인신 하셔서 당위에 오셨고 또 그주님으로 인해 물과 피로 거듭난 주의 백성들이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지체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관,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의 교회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1}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는 에수님의 선포요 사역의 핵심이며
아울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요 또한 기도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가르지신 기도에서 이것을 강조하셧다.
에수님께서 공생애에 들어 가시면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후 세레 요한에게 세레를 받으셧다. 그리고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슴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왓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실로 에수님의 메시지, 그리고 그분의 삶 전체는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놓는 것이엇다.
즉 교회의 지상에서의 선교적 사명은 하나님나라 실현이란 말이다.
이럴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그리고 교회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잇다.그런의미에서
우리는 이당위에 태어나고 부름받아 하나님 라를 실현하기위해 살아야하고 도한 이를위해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 할 것이다.
{1}하나님 나라의건설
이 최고의 목적 즉 이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해 주님은 이땅에 성육신 하셨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교회를 탄생시켜 그 나라의 큰석을 놓으셨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성숙을 위해 세우신 역사적 교회이며 하나님의 경륜속에 일어서고 부흥한 하나님의 도구인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원인에는 교회 내적인 요인보다도 교회 오;적 환경적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한국을 이러한 상황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중 "천국은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러 나가는 것과 같은 것" 인데 모든 교회성장에는 복음의 씨앗 뿌리는 일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기에 합당한 좋을 토양이 되도록 하는 일은 하나님께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씨를 뿌리기에 앞서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의 특성을 먼저 이해하고 파학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회란 일정한 지역이라는 토양위에 한 그루의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젠킨스(D. T. Jenkins)의 말대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그 속에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삶의 상황에서 종교적 도덕적 및 지적 배경의 전체로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2)하나님 나라의 이해
사복음서중 요한복음을 제외한 공간복음서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나라' 였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외침과 삶이 '하나님 나라' 였던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그것을 '천국'이라고 했고(The Kingdom of Heaven)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다.(The Kingdom of god) 예수께서 일관되게 가르쳤던 마태의"천국"이던 누가의 "하나님의 나라"이던 그것이 예수님의 주된 관심사 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면 제자들이 주장하던 "그 나라"는 무엇인가?
첫째, 이 나라는 이미 구약에 예언된 나라였다.
다니엘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 한 나라가 설 것이라고 예언했다.(단2: 44)
그것은 인자의 한 나라이다.(단7: 13. 14) 성도가 장차 갓게될 나라이며(단7: 18. 22), 종말적인 전쟁을 수행할 것이며(단7: 23. 25), 궁극적으로 승리가 보장된 나라이다.(단7: 26. 28)
이 나라는 이미 다윗에게 계시되었고 솔로몬에게 확증된 것이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나단에게 말했을 때 (삼상7: 13) 우리가 흔히 "나탁의 신탁" 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 했으나 솔로몬이 지었다. 그러나 성전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으로 무너졌다. 이로서 나단의 신탁은 솔로몬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지칭한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다. 이 약속에 따라 예수가 오셨으니 곧 예수님이 성전이요 교회의 시초이신 것이다.
2) 교회의 본질과 사명
하나님 나라의 개념 이해와 교회의 사명, 교회의 성장을 이해하려면 성전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유대교에 있어 '우주'라는 추상명사는 없다. 단지 하늘과 땅이라는 하나님 창조의 두 부분은 하늘과 땅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거처이고 땅은 사랍의 거처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땅에 거처를 둔다면 그곳이 성전인 것이다. 그래서 성전은 하늘과 땅, 즉 우주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기능, 다시 말해 땅에서 하늘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성전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이 보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복사(COPY)이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거처의 모조품이 지상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표현을 제일 많이 사용하신 것이다.
들어간다 라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의 장소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대문(마7:13; 눅13:24)" '문(눅13:24)' '열쇠(마16:19 23:139 눅11:52)' 등의 그림언어들을 쓴 것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집'으로 상징하는 것과 연관하며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흔히 쓴 '잔치'의 그림언어를 생각하여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적어도 일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이 '아버지'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백성, 자녀들이 '대문'의 '문'을 열고 그의 '집'의 '방(요14:2)' 으로 '들어가' 그 '잔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부수고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주장 했다는 이유로, 그 죄목(막 14:58)과 메시아 곧-다윗의 아들/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로마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성전으로 인식핶을 뿐 아니라 그 성전을 구체적으로 자신이 세울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 보았다. 예수는 실제로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한 것이다. 마 16:13∼19에 있는 예수의 교회건설에 대한 말씀도 이런 맥작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대로라면 성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인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집은 이제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안에서 또는 예수를 통해서 실제화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종말의 하나님 나라와 구원을 역사속으로 들여온 분 이라고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곧 바로 예수의 성전되심을 완성시키는 것으로서 예수의 죽음이 새 언약을 세우는 제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면 부활은 이러한 예수의 제사가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했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의 구원의 사업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대권자로 높임을 받는 '주'라는 신앙고백과 케뤼그마가 발생한 것이다. 예수 안에 이렇게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이 온 인류를 위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곧 "복음"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듣고 모여진 사람들, 즉 세상에서 불려나온 사람들이 교회(에클라시아)인 것이다. 이 교회란 말을 주님께서 쓰신 말이다.(마 16:16이하) 곧 이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싹이요, 눈인 것이다. 이때 교회는 복음전도와 성장이라는 사명을 가지게 된다.
3) 교회의 향태와 정치.
오늘의 한국장로교회는 양적으로는 단연 세계적이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가 과연 성서적이며 역사적인 장로교회인가 하는 데 의문이간다. 오늘의 장로교회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있는 교회가 되었다.
한국 장로교회는 칼빈주의나 장로회주의나 웨스터 민스터 헌장아나 미국장로교회의 헌법과는 거리가 먼 한국적인 장로교회론이다. 이는 주체성이나 정체성이있는 한국 장로교회론이 아니라 변질된 상태이다. 그중에 중요한 몇가지만 언급 하여 보고자
한다
한세기 동안의 한국 장로교회는 매우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한국장로교회는 교황겨회나 감독교회에서 개혁된장로교회가 아니라 유교적 관료주의와 불교적 극락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수난을 받앗으며 이어서 공산주의와 군정지하와 사회주의와 각종 이데올로기에서 장로교회의 본분을 지키기 보다는 성장일변도에 있는 교회였다. 그런와중에서 한국장로교회는 민주적인 교육과 훈련없이 장로회 주의가 오용되어진 것이다.
당회와 제직회와 공동의회는 물론 노회와 총회에서도 장로회체제의 원리와 원칙보다는 서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대결하는 때가 많았다. 특히 교회가 성장하면 장로부터 세워야 하는 것 이었고 그러므로 장로는 교회마다 많이 늘어났다. 한국장로교회는 고위성직제를 방불케하는 "장로들의 교회"을 이루엇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는 장로들이 해야할 교회의 정치적, 사법적,행적적,입법적,대의적,의회적인 본분과 사명에 대해서는 교육과 훈련을 공식적으로 전무하다 시피 하엿다. 왜냐하면 그런 한국적 장로교회론을 비판하거나 근본적인 원리의 교제를 스거나 세미나를 하거나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지 못하고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하지를 못햇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회의 대부분의 장로들 대부분의 장로들은 교회를 자기들의 전문업처럼 여기며 주주적(主侏的)인 사고방식으로 교회와 목사를 대하고, 그들이 교회의 주권자처럼 교회와 목사를 대하였다.
그러므로 칼빈주의가 곧 장로회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다. 오히려 칼빈은 로마교황정치의 폐단을 피하기위해 당시의 시민 민주주의 체제를 교회에 도입하려 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칼빈주의에 공감 한 자들은 스위스의 시민들이었으며 프랑스의 휴그노 스코틀랜드의 프레비테리안 화란의 씨 베거스 잉글랜드의 퓨리탄 미국의 뱁티스트 그리고 폴란드, 항거리, 독일 일부의 리폼드 처치였다. 엄하고 율법적이며 경견을 겸비한 칼빈주의는 19세기까지 확장되어 갔다.
특히 하람의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와 프랑스의 아우그스트 르셀프, 미국에서는A.A 핫지와 챨스 핫지와 워필드 등으로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리고 칼빈주의가 영국 웨일즈에서도 칼빈주의적인 메도디즘으로 번창한 경우도 있었다. 한편 세계 장로교회는 '세계장로교회연맹'을 창설하였다.
그러나 1875년 '세계개혁교히연맹'으로 발전시켰다. 꼭 장로교회가 아니어도 장로회체제나 대의제도나 의회제도를 실시하는 개혁교회라면 교파에 상관없이 세계의 민주화를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연맹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장로교회연맹과 세계개혁교회연맹은 교회뿐 아니라 온 교회가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대의제도와 의회제도를 실시하는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것이 또한 세계교회협의회의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이로 보건데 칼빈은 교회정치론은 보다 민주적이었고, 민주적이라 함은 대의제도와 의회제도를 지향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하겠다. 앞선 많은 사람들의 지적처럼 한국교회의 장로회주의는 성경적인 것도 신학적인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칼빈주의적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옛언약에서나 새언약하에서나 항상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 성별된 가시적인 사람들이 존재해왔다. 구약시대에는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으나 신약에 와서는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 된다. 엣언약 하에서는 할레와 유월절이 외형적 표시인반면에 신약에 와서는 에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베푸는 세레와 성찬에 참여하는 교회의 지체된 외형적 표시가 된다. 에수게서 선택한 새공동 사회의 첫 구성원들은 제자들 이었다 그들은 새 이스라엘의 핵심이었다 주게서는 그의 윤리적 교훈을 그들에게 가르치셨고 그 자신의 메시야 되심이 어떤의미를 지니는지 그들에게 제시하엿다. 여기에서 오순절 사건으로 신자된 자들이 이 새 공동사회의 일원으로 불어났던 것이다. "신약시대에는 세례가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반적인 표시였다." 한 사람을 기독교 공동체의 一元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며 세례때에 그가 고백함으로 분명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자일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과 산 교제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개혁자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부름받은 선택된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비 가시적교회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公因하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가시적교회 사이에 분명한 분명한 구별을 두었다. 주님의 교훈과 신약성경 전반을 통해 알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 백성들의 가치적 공동체는 그 구성원 전체가 온전히 순수한 것이 아니고 불순한 것과 섞였다는 것이다. 복음의 초청에도 모든 사람이 다 순응하여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마 13:47∼49, 22:9∼14) 주님은 단순히 자기를 인정한다거나 자기 사역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하고 근본적인 수납이 된다는 보증을 하시지 않았다. (마 7:21∼23, 눅 13:23∼30) 최후의 심판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백성이 누구인가를 아신다. 가시적 교회는 가능한 한도까지 그 회원들 전체가 진실한 신자가 되도록 불가시적 교회의 안정성을 깨달아 알고 있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1)칼빈주의적 교회론 이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에서 교회론을 다루고 있다. 칼빈은 당시 종교개혁을 비방하는 무리들을 엄두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또 한편으로는 열광주의자들의 잘못도 염두에 두고 그의 교회론을 전개해 나갔다.
또한 복음의 설교가 넘쳐나기 위해 하나님은 교회안에 이 보물을 위탁하셨다. 하나님은 "목사와 교사"(엡 4:11)를 제정하시고, 그들의 입술을 통하여 자기 백성 을 가르치시고, 그들의 권위로 옷입히시고, 마침내 신앙의 거룩한 일치와 바른 질서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으셨다.
그러나 본주제에 관련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하자. 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도 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기위하여,"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전하는 자로,혹은목사와 교사로 주셧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하며,봉사의 일을하게하며,그리스도의 몸을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것과 아는것에 하나가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덱가지 이르리니 "{엡4;10ㅡ13} 라고 하였다. 한순간 에라도 자기백성을 온전케 하실 수 잇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들이 오직 교회의 교육을 받고 성인으로 자라나기를 바라고 계신지 우리는 알게된다. 이를위해 방편을 세우셧으니, 곧 천상교리의 설교가 목사들에게 부과되어 졌다.
칼빈은 먼저 교회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임을 강조하고, 이 땅위에서 성도의 교통으로 신자들의 어머니로서의 막중한 역할을 강조했다.
칼빈은 먼저 교회의 본질을 성도의 교통에서 찾는다. 그는 기독교 강요 제4권에서 교회의 본질을 다루고 잇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들이 형제로 하나가 되며 또한 교회의 정당한 권위를 승인 해야한다는 간단히 말해서 우리각자가 양무리에 속한 한 마리의 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견적 교회에도 어느정도 적용된다. 교회의 일치와 순결을 위한 칼빈의 열심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교회의 제도에 대항하여기존교회의 하나됨을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않고 참 교회를 재정립 하자햇다. 그는 참교회의 표지로서, 설교된 맔슴과 귀로듣는 맔슴외에 그리스도 께서 제정하는 성레의 바른 시행을 말했다.그리고 이러한 표지가 보이지 아니하고 성레가 올바르게 시행되지 않는 곳에는 반드시 교회의 파괴가 뒤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칼빈이 교회를 성도위 교통으로 말한 것은, 그가 불가시적 교회만을 염두해 둔 것이 아니고, 사실 불가시적 교회를 교회의 두 표지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교회는 존재해 왔으며……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우편에서 다스리시는 한 그의 교회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나타나 보이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교회의 형태가 늘 나타나 보인다는 점은 이율배반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외젓인 회사함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미 말한바와 같이 말씀과 성례의 두 표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다시 가견 교회를 보편적인 교회와 개별적 교회로 구분하고, 이 경우 보편적 교회는 공강적에도 나뉘어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된 교회에 동의하고 같은 신앙의 매는 줄로 뭉쳐있는 교회"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보편적인 교회는 개교회들이 상호관계 속에서 철저하게 교회의 교회의 표지를 지향하는 데서 도모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칼빈은 교회들사이에 비본질적인 요소 때문에 분리하고 반목하는 일을 금지하고 교회의 평화와 일치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르벳이 "우리의 모든 종교적 원리를 근원부터 전복 시키는 자"라고 말했다.
또한 삼위일체를 반대했던 마태오 그리발디에 대해서도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파괴하는 자"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성도의 교통이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교통이요 교제였다. 그리고 기독교의 가르침에는 비본질적인 요소가 있으나, 본질적인 또한 근본적인 조례도 있었음을 말하고, 그가 신앙의 "근본적인 조례"를 제쳐놓고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로 말하였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 4권 1장에서 가견교회를 신자들의 어머니로 칭하고 있다.
교회를 어머니라고 한 표현은 칼빈 자신의 창작이 아니고 이거스틴 이후 로마교회에서 교회의 절대권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해오던 용어였다. 그러나 칼빈은 로마교회에서 사용하던 그런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신자들의 신앙의 훈련소로서 교회의 교육적 사명을 강조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교회와는 달리 어머니로서 자식을 보호하고 훈련하듯 신자들의 신앙을 훈련하는 곳으로 교회를 어머니라고 표현하였다.
이처럼 교육훈련을 강조한 칼빈의 교회관은 제네바 교회뿐 만 아니라 그 후 개혁파 교회의 특징을 이루는 동가가 되었다.
4) 칼빈은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렀다.
칼빈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곧 교회라고 하였다. 교회는 성도들의 단체 곧 피택자 전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나 참으로 적은 수 의 사람이 수 많은 군중속에, 그리고 밀알이 쭉정이 속에 묻혀 있다고 말하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은밀하신 선택과 내적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밀하신 선택과 내적인 부르심은 매우 신중히 생각하여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만 자기백성을 아시며(딤후 2:19) 그들을 인치심으로 둘러지키시기 때문이다(엡 1:13)"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은밀한 선택에 기초한 교회를 아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칼빈은 택함을 받은 자들만이 속한 불가견교회와, 참신자와 위선자를 다 포용하는 가견 교회를 구분했다. 그러나 누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속에거 선택함을 받았는지 또는 버림을 받았는지 또는 버림을 받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칼빈은 신자가 이 땅에 사는동안 실제로 가견교회와 불가견교회를 구분한다는 것을 불가는한 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가 다루고 있는 교회가 주로 가견교회였으나, 그는 가견교회만이 실제적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가견교회와 불가견교회는 두 교회가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누 수 없는 두 면인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칼빈에게 가견교회와 불가견교회는 두 교회의 대칭이 아니라, 오히려 가견교회는 불가견교회의 필수적이며 유용한 표현이요, 우리가 금생에서 머무는 한 가견교회가 우리의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 땅위의 삶속에 우리가 알도록 주어진 유일한 교회는 바로 이 유형교회이며, 이 땅위에서 택자들의 불가견적 교통의 표지가 되는 관계이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불가견적 몸의 회원이 되기위한 핑계로 가견교회를 버리면 안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신자의 성화를 위해 가견교회를 세상에 외적방편으로 두신 것이라고 하는 칼빈의 주장은 설득력이있다. 1537년 파렐과 더불어 "제일 제네바 신앙 고백서"에 대한 서약을 제네바 전 주민들에게 요구한 일이나, 또한 바젤에서 "제일 헬베틱 신앙고백서"에 대한 서약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할 것이다.
계속해서 칼빈은 교회의 표지에 대해서 말하면서 칼빈은 교회의 표지로서의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의 올바른 시행을 들고 있다.
(1)말씀의 선포: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진지하게 전해지고 그리고 그것이 들려지는 곳과 또한 성례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그대로 시행되는곳이라면 어디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이와같이 칼빈은 말씀의 사역과 성례의 사역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식별하는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는 말하기를 "말씀에 대한 순수한 봉사와 성례전 시행의 바른 의식은 충분히 보증이 되며, 이 두가지 표적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를 우리는 확실하게 교회로서 받아 들일 수 있다." 말했다.
이리하여 교회를 식별하는 표지인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의 준수 는 반드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번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말씀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열매가 생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받아 들여지고 말씀이 화고하게 자리를 차지하게 된곳에서 말씀이 그 열매를 맺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를 일컬어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불리워 지는 것은 작은 의의를 갖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무튼 참된 교회의 인식을 위해서는 말씀과 성례를 본질로 보았다는 것이 칼빈주의 교회론의 핵심이라 하겠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작업은 기독론중심의 조직신학을 발전 시켰고 우리에게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가견적교회와 불가견적인 교회를 식별할 수 있는 깊은 안목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 종교개혁자들의 교회이해는 "교회란 무었인가?"라는 질문에만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인가?"하는 선교론적인 교회론과 "진정한 교회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는 깊은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어떤 교회론을 견지 해 옸을까? 한국신학의 뿌리요 조직신학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박형룡은 이에 대하여 무었이라고 했는가? 박형룡의 교회관은 루이스 뻘콥의 조직신학과 대동소이한데, 그것 역시 칼비의 기독교강요에 영향 받은바 큰것이다.
박형룡의 교의학은 교회론을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최종판(1559)의 순서를 따라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다음에 놓고 있다. 그는 투레티니의 화란 개혁교회, 스콧틀랜드 장로교회의 저명한 신학자들도 칼빈의 사상을 따른 다고 덧 붙였다.
박형룡은 칼빈의 교회론의 신학적 위치에 따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개개인들에게 적용시키는 데, 교회만이 이러한 은혜를 교회를 통하여 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신학적 특징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도의 교제"에 역점을 두어 교회론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특색이다.
이러한 조직신학의에 있어서의 교회론은 교회의 표식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귀결된다. 즉 그것은 박형룡, 화란개혁교회의 신도개요서 등에서 강력하게 이야기 되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교회의 표시로서 '말씀설교, 성례전, 그리고 권징'이라고 보았다. 종교개혁이 로마카톨릭 교회의 제도중심적인 교회론에서 탈피하고자 했던것이라면 개혁자들의 교회론은 교회의 유기체적인 국면의 의미를 재삼 강조하려 했다고 결론 지을 수있겠다.
역사적 기독교회는 항상 두 국면을 지닌다. 그것은 유기체적인 국면과 제도적인 국면으로서 전자는 성령으로 연합된 "신자들의 모임"이요, 후자는 신자들을 양육시키기 위한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신자들의 어머니"이다. 전자는 각종은사와 재능을 통한 봉사가 그 목적이요 후자는 제도적 형식으로서 존재하며 하나님의 정하신 직임과 수단들을 통하여 질서유지와 양육을 그 목적으로 한다. 양국면은 모두 다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속에서 나타난 현상중 상호배타적 관계로 양자의 관계가 오해된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 개혁자들과 박형룡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거/ 한국교회의 교회론은 유기체적인 국면 보다는 제도적 국면을 강조하여 왔던 관계로 교권화가 심하였다. 그 결과 교단주의 교단 경쟁주의 그 어느나라보다 심하게 되었다.이는 교회론이 조직신학적인 측면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관계로 목사라는 직분이 은사적 측면에서 보다는 제도적 측면에서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이에 대하여 옥한흠은 "교회에서의 전도, 양육, 심방, 예배인도등의 봉사들이 오로지 목사들의 것이되고 평신도는 단지 구경꾼으로서 자신들의 맡은 직분을 헌금과 교회출석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평신도들은 훈련 되지 못하고 교회의 여러 가지 봉사직에서 제외되며 교권주의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의 땀흘리고 피흘린 수고의 결과를 다시금 중세로 되돌려 놓고 있는 무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론을 신학교에서 배운대로 조직신학적인 입장에서 다루는 데에는 익숙해 있다 따라서 교회론을 대부분 존재론적인 입장에서 다루게 된다. 뿐만아니라, 신론 , 기독론 , 창조론등의 위대한 다른 교리에 가리우ㅓ 빛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기가 싶다. 우리는 교회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론적인 교회론에 묶여 보다 다양한 형태의 교회에 대하여 논의 조차 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본연구자는 이태웅의 주장처럼 "예배에의 목적"과 "선교에의 목적"에만 적합하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의 교회론을 개진할 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다음 페이지에서는 칼빈주의에 준하는 교회형태의 가능성과 교회정치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다.
3) 칼빈주의적 교회형태와 정치
칼빈은 말씀과 성례와 권징은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맡겨진 일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기본적인 요소가 말씀과 성례이기 때문에 즉 말씀을 올바로 듣고 성례를 올바르게 행하며, 그리고 권징에도 올바르게라는 개념을 적용 할 수 있다면, 올바르게 권징이 시행 될 때 직분은 이 세상에서 교회의 존재를 위하여 그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주님께서는 직분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시기 원하시는데, 그 직분은 ……"하고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강요 4권 3장 1절의 서두에 나오는 말로서 1539년 판에서부터 1559년 판 까지의 사이에 나온 가장 중요한 1543년 판에서부터 칼빈은 말하고 있다.
칼빈이 "교회의 공동체라는 의미에서의 교회"에 관하여서 따로 한 장(章)을 할해하지 않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교인의 공동체를 간과한 것은 아니고 다만 교인의 공동체는 직분자들의 봉사를 통하여 존속하기 때문에 교회를 주로 직분자의 조직을 중심해서 보고 있다. 따라서 칼빈의 교회는 "직분을 중심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만인 제사장론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대한 주석에서도 칼빈은 교회를 주관적으로 보는 루터의 견해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있음을 본다. 교인의 공동체는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의 실재이다. 그러나 이 실재는 그 자채를 통하여서는 이해 될 수 없고 직분이 그 공동체의 보존을 위하여 하는 일을 통해 이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칼빈은 직분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할 정도이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을 대변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1541년의 교회헌법에 이미 네 직분을 말하고 있지만 그 경우 그는 다만 목사와 교수의 한하여 이와 같이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직분을 사용하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적으로 임재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인간을 사용하여 교회를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설교를 매우 중요시 했다.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총이 교회에 전달되게 했고, 그 말씀이 성령 안에서 결실을 맺게 했다. 그 결실이란 회개, 죄의 용서, 성화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칼빈은 아직도 로마교회를 참된 교회로 인정하려는 사람들에 반대하여 로마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참된 교회의 표지를 구성하는 것은 어떤 제도가 아니며, 상당한 종교 단체의 존재 그 자채가 아니라 문제는 그 단체가 누구에게 예배하느냐 하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모든 부패한 종들과 구별되는 것은 주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주의 명령에 의해서만 지도 받기를 원할 때 그렇게 된다."고 강조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제 4권 14장에서 19장에 이르기까지 로마교회의 잘못된 성례관을 비판하고 개혁파 성례관을 확립했다. 칼빈은 성례를 정의 하기를, "성례란 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한 신앙을 북돋우어 주시고자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자녀의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인치심 일의 외면적 표지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의 경건을 간증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어거스틴도 성례를 일컬어 "거룩한 것의 가견적 표현이요, 불가견적 은혜의 가견적 표현"이라고 하였는데, 칼빈의 성례관은 이 점에 있어서 어거스틴의 성례관과 동일 하였다. 칼빈은 로마교회의 7성례 가운데 세레와 성찬, 두 가지만 성례로 인정하고 특히 로마교회의 성찬에 대해 많이 비판했다.
또 칼빈은 권징을 강조하였는데, 이를 참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하는 표지로 보는 말씀선포와 성례외에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칼빈은 이 권징을 제3의 표지로는 여기지 아니하였지만 교회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칼빈 이후에 개혁파 신학자들은 이 권징을 교회의 제3의 표지로 생각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 12장에서 권징을 다루고 있다.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권징의 목적을 세가지로들고 있다.
이 권징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그것이 교회의 본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기거나 무시될 것 이 아니라 교회의 교리의 순결과 질서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긴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물론 칼빈은 지상에는 완벽한 순정교회가 없다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 칼빈의 이러한 생각은 1세기후 웨스터 민스터 신도게요서와 대소요리문답(1643-1647)에 잘 반영되고 있다. "하늘아래 가장 순결한 교회들이라도 혼잡과 오류에 빠지기 쉬우며 또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사단의 회가 될만큼 타락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가지상에 항상 있게 될 것이다."
칼빈은 이 지상교회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로마교회의 거대조직에 반하여 최소한으로서의 교회 조직과 최소한의 교회정치를 이야기 한 것이다.
1)어원적 고찰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라 할 때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생소하고 아직 이 개념이 교회사적 측면에서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명칭에 따른 모호함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독립교회라할 때 그 개념은 기존 교단에 속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개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 즉 교회의 자치권과 행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해가는 교회들이라고 넓게 지칭할 수있을 것이다. 즉 기존의, 교단이나 교파에 지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 나가고 있는 교회들로서 과거에는 회중교회로 혹은 자유독립교회등으로 불리워 오다가 작금에 와서 독립교회라고 한국교회에서는 불리워지고 있다. 이들 교회들은 대개가 기존의 교단들이 지나친 교파주의로 개교회를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교권주의오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파행적으로 운영되는것에 반대하여 교단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홀로서가 한 경우가 많다. 개력교회의 신앙지표인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와 권징을 무시 혹은 왜곡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자신들이 속하여 있던 교단을 탈퇴하여 독자적 행정체계를 잦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독립된 행정과 신앙관을 가지고 창립한 교회등이다. 이를 독립교회의 독자노선 추구 및 설립동기를 원인별로 분석해 본다면,
첫째, 교단적 잘못된 결정사항 (신사참배 결의 혹은 불신법정 고소문제)등의 자체의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죄를 범치 않기위하여 결별 혹은 독립한 것으로 신앙적 차이로 인항 이유,
둘째, 기존교회의 이기주의, 대형화, 물질주의로 흐르는 부패된 현상을 개혁하여 교회 본래의 사명인 사회속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자는 교회 윤리적인 견해차이의 이유.
셋째, 인위적 압력의 수단화가 되고있는 거대교단조직의 경직성을 탈피하여 독자적 소신 행정을 펴기위한 교회행정상의 이유.
넷째, 기타 양보할 수 없는 신학적 견해차이의 이유.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들이 흔히 이단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기존의 고정된 교회개념을 갖고 관찰하는데서 오는 오류일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우리나라 독립교회 설립당시의 출발은 적어도 절대적 하나님 중심의 신앙 목표하에 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교회행정 신학적으로 정로를 걷고바 시작된 용기있는 개혁운동 이었음을 부인할 사ㅎ람이 없다고 알고 있다. 물론 독립교회가 상기와 같은 긍정적인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교단교회의 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다. 교단을 무시하여 개교회주의가 더욱 심화되거나 교회의, 통일성을 해치고 중구난방으로 흩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절대주의의 일면으로만 흐르다가 정통신학을 간과하여 이단적 요소를 배태시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한데 예를 들면 설립자 혹은 목회자 개인의 신앙이 성도들의 신앙을 극단적으로 폐쇄시켜 사교화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독립교회의 실제적인 출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세화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독립교회들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성경적 근거
L. Berkhof와 박형룡은 "교회"를 세가지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다. 1. 선택의 관점에서: 교회는 피택자들의 집단(coetus electorum)이다; 2. 유효적 소명 (혹 신앙)의 관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영으로 부름을 받은 피택자들의 단체(coetus electorum vocatorum), 효과적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의 단체(coetus vocatorum), 혹은 신자들의 공동체(coetus fidelium)이다; 3. 세례와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교회는 세례받고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의 공동체 혹은 그 자녀들과 함께 참 종교를 고백하는 자들의 단체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의 정의인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교회의 시발점은 멀리 구약시대, 적어도 아브라함에게까지는 올라가야 한다. 그에게서부터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말해지기 때문이다. A.Noordegraaf는 같은 동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란 한 층 더 구약적인 개념으로 신구약을 하나로 묶고 있다.
' 도 헬라세계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 전체나 그 일부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공적으로 소집되는 경우에 있어서 그 모임 자체나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였다. 그것은 정당성을 동반하지 않는 모임일 수도 있다. 그 한 예가 행 19,32.39.41에서 발견된다. 바울의 전도활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데미 여신의 이름하에 소동을 벌리던 소요집단이(40절 참조) 로 불리운다. 그들은 이 모임에 참가한 격노한 군중들이기 이전에 에베소에 거주하고 있었던 시민들이었다.
우리가 "교회론"을 거론할 때는 이런 종류의 모임을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신약의 교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들의 신분, 결속력, 소속감, 특수 상황 등을 전제할 필요가 없다. 이런 무엇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사람들이 란 단어에 의해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구별되고 있다. ㄹ하카이나 ㅎ더 는 이스라엘이란 울타리 안에 또 하나의 울타리를 만드는 개념인데 반해, 는 이 단어가 적용되는 사회에 최초의 울타리를 쳐서 그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를 갈라 놓는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물론 이 말은 ㄹ하카과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나 어떤 계속성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또 " "가 "ㄹ하카"이나 "ㅎ더 "의 특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질 때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회중일 수는 없다. 이점을 다음과 같이 보다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 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운데 반해 신약시대에는 교회라 불리운다. 전자는 육적이요 혈연관계에 바탕을 둔 반면에 후자는 이러한 구심점이 없이 의 원리 자체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교회를 넓게 "믿는자들의 교통" 이라고 부를 때는 ㄹ하카이나 ㅎ더 와 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을 특징지우는 믿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믿음인가에 주목한다면 ㄹ하카과 를 더 이상 동일개념으로 취급하지 못하게 된다. ' 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것인데 반해, -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배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 구약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약의 교회의 의미를 더 자세히 한정하려는 사람들은 교회를 복음이나 예수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교회란 복음에 접촉했고 그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의 집단이다"; "신약성경의 용어로 교회란 예수와의 새로운 관계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에 돌입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예수와의 관련성이 무시되거나 최전면에 내세워지지 않을 때 아무도 신약성경의 교회를 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에 따르면 란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이도 예수이시다 (마 16,18; 18,17). 보다 명백하게 교회를 "예수를 주로 받아 들인 사람들의 공동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공동체"라고 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Harrison의 말을 빌리면, 교회는 개혁된 유대교가 아니라 예수의 사역에 의해 나타난 어떤 새로운 것이다.
' 의 시발점을 우리는 당연히 예수와의 관련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디를 지적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일치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통상적인 견해는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강림을 출발점으로 꼽는다. 그것은 이 때 예수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이 교대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수의 생애시와 유월절 이후의 예수상에 큰 차이를 인정하는 학자들도 교회는 부활의 신앙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앞 서 인용한 Loisy의 글 "예수는 천국을 전파했으나 온 것은 교회였다"도 이것을 함축하고 있다. 좀 다른 입장에서 Hans K ng은 "사람들이 모두 십자가에 못박힌 나사렛 예수의 부활 신앙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다가올 종말에 대한 기대로, 영광 속에서 부활 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기대로 모이자 마자, 교회는 존재한다." A. Schlatter는 또 다른 동기에 의해 - 고전 15,5-8에 근거하여 -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교회의 시작을 느꼈다.
교회란 단어는 예수와 관련된 것이면서도 막상 그 촛점은 예수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맞추어진 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위에 제시된 오순절이나 예수의 죽음, 부활이 과연 그의 제자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기에 이것을 교회의 시작으로 삼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건물 개념의 교회나 교단 교권을 상징하는 교회간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있다. 그렇다면 독립교회는 초대신약교회의 모습에 가까운가 ? 그것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리름으로 모이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진 사람들이 성경의 원리와 자신들의 의견에 따라 모임을 구성하고 있다면 어느시대 어느장소에 있는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보아야 한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하 ㄴ보다 성경적인 근거를 찾기위해 서신서를 살펴 보아야 한다.
신약성경의 각 문서들이 기록된 연대순을 따를 때 "교회"란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바울 사도이다. 그는 약 50년경에 아마 고린도에서 한 편지를 쓰면서 이 편지를 "데살로니가人들의 교회에"( o , 살전 1,1; 살후 1,1) 보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편지 이곳 저곳에 이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 만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교회들"(고후 8,1), "갈라디아의 교회들"(고전 16,19)이 존재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살후 1,4은 데살로니가서를 쓰는 당시에 아가야 지방에도 여러 교회가 세워졌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말해본다면, 늧어도 50년 경에는 " "란 단어가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무리 없이 기독교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데살로니가人들의 교회가 최초의 교회라는 말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살전 2,14에서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았던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 o )을 언급했다(갈 1,22 참고). 그는 유대에 적지 않은 교회들이 있었음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 "교회"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바울 사도는 또 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에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었다"고 회상한다 (고전 15,9; 갈 2,13). 그가 이 말로 예루살렘교회를 회상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울 사도는 의 존재가 서기 50년 이전에 예루살렘에도 있었다고 증언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용어도 데살로니가전서를 쓰던 당시보다 더 이전으로 소급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62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도행전에 자주 "교회"란 단어가 사용되고, 또 여러 교회가 등장한다고 해서, 사도행전은 그 내용이 보여주는 실제시대보다 훨씬 후기의 (아마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결론지을 필요는 없다. 18세기 이후 신학자들이 자주 제시해 온 이 시간적 간격은 그렇게 엄청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울서신을 고려할 때 확인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울 사도가 그의 서신에서 예루살렘공동체를 "교회"로 부르는 시기와 사도행전이 보도하는 예루살렘공동체의 탄생시기 사이의 간격은 가장 멀리 잡아도 17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50년경에 "교회"란 단어가 바울이 전도하는 전지역에서 어려움 없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예루살렘공동체가 바울사도에 의해 "교회"로 불리우는 것과 사도행전에서 "교회"로 불리우는 것 사이에는 거의 시간적 간격이 없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교회란 명칭에 관해서도 사도행전은 비교적 정확한 발전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예루살렘공동체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교회로 불리우는지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오순절에 있었던 변화를 우리는 다음의 두 갈래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원래 예수를 믿고 따르던, 그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충만이 있었다. 그들은 방언으로 하나님의 크신 일을 말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 사도들의 특수한 사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2,14.42). 2. 이 공동체에 들어 있지 않던 사람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다가 마음에 찔림을 느끼고,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는 베드로 사도의 권고를 (그리고 다른 말들을, cf. 40절) 받아 들여 세례를 받았다(41절).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들이 베드로의 권고대로 회개했다는 것일까? 삼천명 가량의 영혼이 증가했다는 기록은 이 새 구성원들이 원래 구성원과 똑 같이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누가가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회개했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삼천명의 증가는 신자의 증가가 아니라 (현대적 의미로) 교인의 증가라고 보아야 하는데, 이렇게 제한할 근거가 사도행전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죄용서"와 성령의 선물은 여기서는 명령된 것이 아니라 약속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긍정적으로 명령에 순응했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취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에 관해 더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들도 이제 다른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동일한 구성원으로서 공동체의 삶에 끼여 들었다는 점이다(2,42-47).
이 공동체의 삶을 누가는 단적으로 "믿는 사람들 모두가( ) 한 곳에 있었고 모든 것을 함께 사용했으며 ..."(44-45절)라고 묘사하고 있다. "함께 있었다", "함께 사용했다", 소유를 팔아서 "필요에 따라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설명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즉 이 공동체의 삶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려 준다. 반면에 "믿는 자들"이란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말이다. 즉, "믿는다"는 개념이 이 공동체의 구성조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위에서 우리는 삼 천 여명의 새 구성원들이 회개를 했다고 결론을 내렸었는데, 여기서는 그들도 "믿는 자들"이었다고 확정할 수 있다. 삼천 명이 첨가되어 삼천 백 이십 여명으로 불어난 이 집단은 믿는 자들의 집단이었다. 혹은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란 표현에서 이 믿음이 예수와 관련된 것임을 알게 된다. 47절에는 살아 계신 주님께서 이 믿는 자들의 집단에 매일 "구원얻는 자들을"( ) 더해 주셨다는 새로운 개념이 첨가된다. "믿는 자들" 혹은 "구원얻는 자들"이 전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베드로사도가 앉은뱅이를 걷게 한 것이 동기가 되어, 그는 또 한 번의 설교를 하게 된다. 이 설교에서 그는 예수에 관하여 주로 말했지만, 그의 명령 (회개하라, 3,19)과 사람들의 긍정적 반응(믿었다, 4,4)은 앞의 사건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오천 여명의 새로운 "믿는 자들"이 생겼다. 이들이 별도로 있었는지 아니면 먼저 번 처럼 즉시 공동체에 흡수되었는지에 관하여는 아무 기록이 없다. 하지만 이들도 곧 공동생활에 가담했다고 보는 것이, 즉 4,23의 로 표현되는 사도들에 의해 이끌리는 집단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사건 진행 기록상 자연스럽다. 모두가 강력한 결속력을 지닌 한 집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성령 충만과 그 결과 담대한 증거생활이 있었다는 누가의 보도는(31절) 분명히 이 점도 강조한다. 이들은 "믿는 사람들의 무리"( , 32절)라고 불리우며, 삼 천 명이 갑자기 늘었을 때 처럼 긴급한 필요에 의해 소유를 나누는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 그들이 공동생활에 가담했는가에 관한 32-36절의 기록은 이 집단의 한 역사적 실제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일 뿐 공동체 자체를 설명하는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다. 반면에 "믿는다"는 개념은 이 공동체의 정체를 규정하는 아주 중대한 역할을 한다. 열 한 사도들이나, 120명 되는 최초의 집단이나, 후에 늘어난 삼 천 명 혹은 오 천 명을, 즉 전 공동체를 누가는 어려움 없이 "믿는 자들" 혹은 "믿는 자들의 무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때의 믿음이란 무엇보다 예수와 관계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cf. 4,8-12). 그렇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배제된다는 것은 아니다(cf. 24-30절).
이 믿는 자들의 집단을 누가는 자연스럽게 "교회"라고 부르며 - 내용적으로는 여기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교회가 탄생했다고 보아야 한다 - 서서히 독립된 한 집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5,11의 "온 교회"와 "듣는 자들"의 대조를 주의하라). 12절의 "모든 사람들"( )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 즉 믿는 사람들을, 13절의 "다른 사람들"( )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시한다고 할 수 있다. 백성들은 이 "그들을" 칭찬했다고 한다. "주님을 믿는 자들"이 점점 증가했다는 14절의 표현은 이 교회가 크졌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며 6,1의 제자들이 증가했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다. 예루살렘교회가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시작된 박해로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언급하기 전에, 누가는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그 발전적인 모습을 일단 마무리 짓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큰 무리도 믿음에 복종했다"(6,7). 여기서도 우리는 교회란 개념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요소로 여전히 복음전파(객관적 요소)와 믿음(주관적 요소)을 보게 된다. 예루살렘교회에는 비록 사도들이 있었고,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었고, 후대의 교회들에서 볼 수 없는 많은 독특한 요소들이 섞여 있었지만, - 이러한 것들은 "교회"란 개념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 예루살렘교회를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주님을 믿는 자들, 그들의 모임이었다. 이 때 동시에 분명해 지는 것은 - 믿음을 교회의 구성원리로 찾았기 때문에 - 교회의 진정한 출발점은 사도행전에서, 즉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의 사건들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에 와서야 비로소 (사도들의 복음전파에 자극되어) 믿는자로 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많은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최소한도 우리는 120명이, 혹은 12 사도들이 벌써부터 믿는 자들로 (따라서 교회로) 역사현장에 나타났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상의 역사적 정황들을 볼 때 교회의 구성요소는 보다 분명 해진다. 진정한 교회냐 아니냐 하는 객관적인 평가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내리겠지만 우리의 경험과 주관에 비추어 볼 때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관하여 그의 복음의 말씀을 드고 거듭난 신자들이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정당항 성례를 행한다면 그것을 교회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교회가 단순히 교단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거나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행정체계와 규약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백안시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독립교회라 하더라도 초대교회와 서신서에 나타나는 교회들이 보여 주는 온당한 복음적인 모습이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몸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다.
3)신학적 근거
4)역사적 근거
특히 재침례교의 성장은 괄목할만 한 것이었다. 재침례교도들은 제16세기 개신교 개혁의 좌파에서 일어난 신자들의 작은 무리였다. 그 명칭은 "다시 세례받은 자들" 이라는 의미로서 그들의 대적들이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 당시 다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였다 그들의 지도원리는 신약성경의 초대교회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양측 모두의 많은 특징을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배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작은 비밀 집회소에서 회합을 가졌다.
그들의 유일한 권위는 신자들의 회중에 의해 이해된 바의 복음에 있었다. 신자들의 회중은 이론만으로가 아니라 행암으로 그 회중에 전적으로 가담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종교에 대한 정자로서의 권력의 정당성을 배격했으며, 지방관리는 신앙의 문제에 대해 권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그러한 주장은 정말로 혁명적인 교훈이었다. 그 당시 권력에 대해 그렇게 반항적 태도를 가르치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박해, 유형, 사형 등이 달랐다. 오늘날에도 이런 예는 있다.
진정한 재침례교에 대한 그의 정의는 여기에서 인정되었다. 그 명칭은 구라파의 급진적 종교단체들에게 광범위하게 붙여졌다. 거기에는 격렬한 혁명론자들이 포함되었고 프랑크(Franck)와 슈벤크펠드(Schwenkfeld)와 같은 도덕률 폐기론의 "개인주의적 영적 해석자들"이 포함되었다. 리텔(Littell)은 그 용어를 이 극단들 사이의 훈련된 단체들에 국한시켰다; 즉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 후터파 교도들(Hutterites), 남부독일형제단, 네덜란드 메노파 교도들에 국한시켰다. 재침례교도드리 신앙과 연관되지 않는 사항에 관해서는 지방관리에게 순복했지만, 그들은 종를 그들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충돌하는 교회가 적지 않았다. 지방관리가 종교 문제에 관해 강제 행사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재침례교도들은 그런 행정관이 될 수 없었고, 그런 행정관의 신하(군인들)도 될 수 없었으며, 봉신이 되는데 필요한 선서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자세는 평화주의의 자세라기보다 무저항의 자세였다; 불법적인 악에 대해, 그리고 합법적이면서도 강제적인 행정관의 권력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폭력적 박해를 반대한 것처럼 폭력적 혁명도 반대했다. 그들은 그들의 최종적 해답으로서 오직 순교를 제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순교를 당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들은 콘스탄틴 치하에 있었던 것과 같은 교회와 국가 사이에 밀접한 결합을 전적으로 배격했다. 그들은 그러한 결합이 교회로 하여금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의지하도록 하는 타락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들은 온갖 허영, 겉치레, 형식주의, 그리고 교직 계급제도의 관료를 배격했다. 그 대신 그들은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생활 양식을 따랐으며, 그들이 소유한 것을 서로 나누었다. 그들은 후터교 공동체의 "공동 사용"에 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유아세례를 배격했다; 왜냐하면 유아세례는 복음에서 명령된 훈련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기쁨으로 받아드리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드리기 위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책으로 인해 교회는 진정한 세례를 받지 않는 이도교들로 채워졌고, 따라서 교회는 신약성경적 의미에서의 교회가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한 진실한 교회는 신자의 세례가 유일한 출입구이고, 형제들의 상호 권면이 유일한 벽이며, 파문이 유일한 회초리인 그런 교회이다.
파문은 재침례교 활동의 "영적 질서"에 해당하는 것이다. 교회의 규칙을 위반하는 교인은 동료 교우들과의 모든 개인적 접촉이 끊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접촉도 포함된다. 그는 따돌림을 당한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거나 그의 참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음식과 의복과 거처는 주어지지만(궁핍한 비그리스도인에게도 이것들은 주어진다.) 그 단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거부된다. 그 단체의 존경이 그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갖고 있는데 말이다. 오직 죄를 깊이 뉘우치는 복종에 의해서만이 그는 용서를 받을 수 있으며, 정회원권으로 다시 복권될 수 있다.
이러한 제재는 너무 심하게 들리기도하고, 또는 충격이 심히 괴로운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제재 없이는 진정한 교회의 규율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그 제재는 결코 독단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 표준은 교인이 원하는 마음을 가진 성인으로서 철저한 준비를 한 후에 세례를 받았을 때 그 교인에게 알려진다. 새 표준이나 옛 표준들의 수정은 전체 회중에 의해 정해지며 교인이면 누구든 모든 발언권을 동등하게 갖는다.
민주주의 국가나 교회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재침례교 안에서 진정한 참여의 민주주의 형태가 구체화되었다. 비교적 합리성을 갖는 가운데 교인들은 인도함을 받기 위해 토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다. 의견의 일치가 달성되었을 때만(다수투표가 아니라 전체적 합의를 말한다.) 성령님께서 그 회중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신 것이로 생각한다.
의견의 일치가 달성된 후에는, 그회중이 새로운 의견의 일치에 이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파문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그 의견이 일치된 사항에서 이탈하지 못한다. 이러한 제재는 회중에 의해 분노나 보복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슬픔으로 시행된다. 그 제재는 그 단체가 위반한 교인에게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반한 사람이 그의 위반으로 인해 스스로 그 단체를 떠나는 의미의 제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위반한 교인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 단체가 그들 가운데 그 교인이 여전히 있는 것으로 가장할 수 없다. 그 단체에 소속하고 있든지 소속하고 있지 않든지 둘중의 하나이다. 소속하고 있다면 그는 표준들을 지켜야 한다. 만일 그 표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그때부터 그 단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재침례교도들은 훌륭한 신분을 갖고 있는 교인들이 서로서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즉 그들은 길을 잃기 시작하는 ㄱ인을 보면 그를 충고하여 올바른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만일 어떤 교인이 병석에 있거나 궁핍에 처해 있다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그를 돌봐주고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오늘날까지도 Amish(엄격한 초대 재침례교의 형태를 갖고 있음) 가운데는 복지혜택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없고, 흉악한 범죄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는 삶이 없으며,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헤결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펴 준다.
더욱이 그 회중의 모든 교인이 의견 일치를 찾는데 참여하기 때문에 모든 교인은 그 회중의 생활이 기초를 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교인은 그 회중의 복지를 위해 충분한 몫의 헌금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후터교도들만은 모든 물품을 공동으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렇게하고 있다. 만일 어떤 교인이 자신의 몫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 교인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재침례교도들은 주의 만찬에 대해 아주 철저하다. 어떤 사람이 자격이 없는데 그 만찬에 참여 한다면 그 사람에게 해가 올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 사람이 벌을 받게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회중 전체가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들은 불신자와 신자가 함께 참여하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분리되지 않고 "영적 질서"가 시행되지 않은 가운데 모두 성만찬식에 참여하는 그런 기성 교회의 성만찬식에 거부했다. 그들은 가능한한 불신자들(재침례교도가 아닌 사람들)ㅘ의 밀접한 관계를 피하려고 힘썼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더불어 일을함께 하며 선한 이웃이 되기를 힘쓰기는 했지만 친교나 공동체나 결혼관계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모든 거주자가 출생 후 곧 받은 세례에 의해 교회에 받아들여지게되는 당시의 지역교회들과는 달리 재침례교도들은 끈기있는 선교사들이었다. 개혁자들은 오직 사도들만이 온 세계에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재침례교도들은 "선교의 사명을 모든 교인들에게 결부시킨 첫 번째 교도들에 속하는 교도들 이었다." 그들은 친구들이 많은 고향에서, 그리고 지역을 잘 아는 그 고향에서 때를 기다리며 있을 수 있는데도, 마치 생명의 위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새 영토에 들어가기를 주장했으며,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영의를 가졌다. 그들은 믿음을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 그렇게 했고, 그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스위스의 몇몇 주 에서는 그들의 재산이 몰수당했고, 그들을 추적하여 붙잡거나 혹은 영토 밖으로 쫓아 내기 위해 수많은 특수경찰이 임명되었다. 다시 세례를 준다는 죄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재판이나 심문을 받지 않고 물에 빠트려 죽임을 당하는 극형에 처해졌다. 그 밖에도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으며, 혹은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사람들은 누구나 자주 폭력에 의한 죽음을 당했다.
재침례교는 어디에서나 박해를 받았지만 구라파로 건너가 남부 독일의 거의 전지역에 퍼졌고 그 운동은 계속해서 성장하며 전파되었다. 유형받은 사람들에 의해, 또는 여행자들이나 선교사들에 의해, 재침례교는 가장 맹렬한 위협을 무시했고, 가장 악의에 찬 박해에서 살아 남았다. 그 박해는 교회나 국가가 힘을 결합해 가해오는 박해였다.
재침례교는 많은 후손들 중에서 각각 충성의 도를 따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침례교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서양 문명 속에서 현재 널리 받아들여진 많은 중요한 요소들은 재침례교도들에게 그 공헌을 돌릴 수 있다. 그 가운데는 종교적 사항에 대한 세상의 탄압 베제, 교회와 국가의 분리, 일반적 공동교육, 한 공동체 내부의자치 등이 있다. 우리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을 받아드리는데 성공할 것이다. 그런 요소들 가운데는 비폭력, 검소함, 상호보조, 세상으로부터 자유케 된 삶 등이 있다.
2. 웨슬레의 부흥운동
18세기에 영국은 도덕적 빈혈증을 앓고 있었다. 가난, 사악, 술취함, 불의, 부패는 어디에나 있었다. 교회는 텅텅 비었고 감옥은 가득찼다. 1750년에 영국에서 소비된 술은 1천 1백만 갤론이 넘었다. 이러한 상황은 윌리암 호가드가 진 골목과 그밖에 다른 그림에서 그린 것들과 흡사했다.
영국국교는 그 나라 안에 1만 1천이 넘는 성직론을 갖고 있었는데 ( 국가 세입에서 성직자의 봉급을 지급하는 그런 성직 자리) 그 가운데 6천은 그 교구 근처에도 가지 않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구를 박봉을 받는 목사보들에게 빌려주고 자신들은 런던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거나 혹은 대륙에서 살았다.
빵 한덩어리 훔쳤다고 교수형에 처하고 소매치기의 손을 자르는 그런 비인간적 처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늘어났다. 고아와 기아로 허덕이는 극빈자들은 교구 위원들의 책임이었지만 그 위원들에 책인에 대한 성의가 어떠했는지 1750∼1755년 사이의 런던의 교구 기록부에 의하면 많은 "구빈원"에서 입원한지 1년 이내에 모든 어린이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렇게 침울한 환경 속에서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사역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영국 국교의 성직자였지만, 이들의 "감동적" 이고도 "열렬한" 설교 때문에 이들에게는 대부분의 교회의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거리모퉁이나 야외에서, 또는 감옥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여하간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없었다.)
옥외에서의 이들의 집회는 종종 난폭한 삶들에 의해 해산되었다. 난폭한 사람들은 설교자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고, 군중 속으로 소를 몰기도 했다. 두 형제의 생명이 종종 폭도들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때로는 기성교회의 성난 성직자들이 폭도들을 선동했다. 그들 성직자들은 그들 자신의 교구에 웨슬레 형제가 나타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웨슬레 형제는 그 시대의 출판물에 의해 비난을 받았고, 만화를 통해 조롱을 받았으며, 다른 성직자들에게는 불신암을 받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두 형제의 설교를 듣기 위해 떼를 지어 모여 들었고 두 형제가 설립한 감리회의 회원이 되었다.
요한 웨슬레는 작은 키에 몸도 약했지만 탄갱에서 나온 수천명의 광부들에게 자주 설교했다. 광산에서 12시간, 혹은 그 이상의 작업을 한 광부들은 지쳐있었지만 요한 웨슬레는 그들이 비록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설교했다. 마침내 석탄먼지가 묻은 그들의 양 볼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기성교회의 배척을 받은 감리교도들은 기성교회를 떠나려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속회"로 개인 가정에서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문맹이었다.) 그 모임에서 그들은 함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에겍 의로운 권면을 했다. 회원 중의 한 사람이 속회 지도자로 지명되었는데 그의 임무는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발전을 보살피며 매주 그들 각자를 개인적으로 권면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절망에 처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열성적이고 의미있는 조직체 속에서 뭉쳐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조직체는 그들의 삶의 행동을 보살펴 주었고 그들이 시험이나 고통을 당할 때 길을 인도해 주었다.
요한 웨슬레는 그의 추종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전국 어디나 다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비상한 노력을 했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여행을 했으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설교를 했고, 말을 타고, 혹은 마차 안에서 글을 쓰기도하고 읽기도 했으며, 속회 지도자들의 책임하에 있는 영혼들의 상태에 대한 속회 지도자들의 기록을 검사했다. 웨슬레에게는 수많은 그의 추종자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을 돕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속회로 된 하나의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들을 위해서 평신도 설교자들을 세웠다.
처음에는 그들 평신도들이 그들의 인도를 받을 사람들에 비해 별로 낫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그 땅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진실한 도덕적 영적 인도자가 되었다. 그들은 많은 분야에 있어서 웨슬레의 친밀한 감독에 힙입었으며 온갖 제목(진단적인 충고를 포함하여)관한 교육 서적에 힘입었다. 웨슬레는 영국 전체를 여행하는 동안 그들을 위해 그 서적들을 저술했는데 옛 주물 공장에 세워진 인쇄소에서 그 서적들을 인쇄했다. 이러한 열성적 지도아래 웨슬레 형제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정직과 검약과 근면과 열심으로 인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술꾼과 좀도둑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건실하게 되었고 그들의 속회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일꾼이 되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의 불신자 이웃들은 저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그들에게 종종 맡겼다. 이웃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보다 감리교도들을 더 신임했다. 조만간네 그들은 자존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절망의 압박이 사라지자 그들은 삶의 새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름이 주는 의미가 생소하고 아직 이 개념이 교회사적 측면에서 정립되어 있지 않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라 할 때 일단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거부감은 그기 때문에 그 명칭에 따른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독립교회라할 때 그 개념은 기존 교단에 속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개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 즉 교회의 자치권과 행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해가는 교회들이라고 넓게 지칭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이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이단이라는 거부감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교단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한국교회의 특성상의 문제 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이단들이 출현 해 한국교회에 피해를 입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교회는 앞으로 무엇보다 이러한 이미지 개선 작업에 더욱 노력을 경주 하여야 할 것이다.
독립교회의 장점이며 자랑이기도 한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문제가 향후 독립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것이 틀림없다. 즉 기존의, 교단이나 교파에 지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 나가고 있는 교회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교단 중심 노회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국교계의 풍토상 독립교회의 홀로 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정영엽은말하길
"우주적 교회는 모든 세대에 구속함을 받은 모든 참된 성도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개교회들은 우주적, 무형적, 신령한 교회들을 반영하는 참된 유형적인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증거되며, 성례가 바로 시행되며, 권징이 바로 시행되어야 한다. 신자들이 개교회에 가입하지 않아도 우주적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가? 오늘날 교회들의 큰 문제들 중 하나는 개교회 중심, 교파 중심이 강하여 전 세계에 편만에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우주적 교회의 성질에 관하여 망각하고 개교회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개교회 중심은 교회를 물량주의로 하락시키며, 세속화시키며, 심지어는 동일한 신앙을 교백하는 교회들, 신자들과의 신령한 연합도 저해시키며, 개교회로서 수행할 수 없도록 하는 중요 요인들이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수의 교회들이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타락되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 방파제로서의 교회가 아니다. 상당수의 신자들은 무지중의 신조와 신앙고백이 변질되고 신앙적 관계를 끊어야 한다. (계 18:4)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 힘쓰는 보수 근본주의 교회로 옮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독립교회는 이러한 경향이 너무 강하여 오리려 교회의 연합을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몇 몇 교회들은 이러한 경향이 강하여 독자노선을 강하게 추구하여 오히려 그리스도의 교회의 연합을 해칠 수도 있음을 우리는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교회가 타락할 때 진실된 많은 신도들 중에는 그 여파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도 등한시 또는 경시, 심지어 부인하는 경향이 발생된다. 따라서 개교회의 일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우주적 교회의 회원이 아닌 사람들, 즉 불신자들은 개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은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지상의 유형적 교회는 실제상 가라지와 쭉정이도 들어있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 대하여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교회 내에 위선자들을 포함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위선자들, 불신앙자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상관이 없는 자들이요, 교회의 회원들이 아닌 이상 개교회 회원들인 신자들에게 신앙상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교회를 보호해야 하며, 위선자들, 불신앙자들이 교회에 침입해 오면 추방해야 할 것이다.(마 18:15-18; 고전 5:1-13) 그러므로 독립교회들은 개교회의 독립성을 강조는 하되 신앙상 교리상 별 차이가 없는 다른 교단 또는 형제교회들에 대한 연합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섬세하게 모색해야 한다.
독립교회는 앞으로 한국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많은 우려와 경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그것중의 하나는 목회자의 과도한 카리스마로 인한 폐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독립교회의 탄생 이면에는 목회자의 강력한 리더쉽과 독선에 가까운 홀로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생전에만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교회들은 대개가 기존의 교단들이 지나친 교파주의로 개교회를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교권주의와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파행적으로 운영되는것에 반대하여 교단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홀로서가 한 경우가 많다. 개력교회의 신앙지표인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와 권징을 무시 혹은 왜곡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자신들이 속하여 있던 교단을 탈퇴하여 독자적 행정체계를 잦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독립된 행정과 신앙관을 가지고 창립한 교회등이다. 이러한 독립교회의 발생이유는 그 당시로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지만 시대가 지나고 그러한 요인들이 상당히 제거된 뒤에도 과거의 전통에만 묶여 있게 되는데 이는 목회자의 영향력이 너무 많이 교회에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설립자 혹은 목회자 개인의 신앙이 성도들의 신앙을 극단적으로 폐쇄시켜 사교화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독립교회의 실제적인 출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세화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독립교회들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서 지적한 목회자의 지나친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의 보완이 필요하다. 이에 대하여 엄두섭은 "김현봉목사의정신이 특별했기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목사들도 많았고 김목사는 젊은 목사들이나 청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온갖 정력을 다 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 중 다수가 자기 고집대로 하고, 김목사 정신을 바로 안 배우고, 바로 안 따르니 김목사는 실망속에 그런 기도를 한 것이라 본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기우는 김목사의 사후에 사실로 나타났다. 아현교회도 그의 사후에 분열 되었고,결국 네조각으로 갈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정적인 결과는 엄두섭의 말처럼 김현봉 목사를 지나치게 흉내내는 목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설교할 때마다 목이 깔깔하여 가래 배앝듯 '캑캑'하여 밥알 하나 정도의 가래를 곁에 준비해 둔 신문지 자른 종이에 닦는 습관이 있었다. 그를 따르던 젊은 이중 어떤 분은 신통하게도 설교하다간 꼭 김현봉 목사식으로 '캑캑하여 종이에 닦는 습관이 있는 이도 있었다. 또 어떤 목사는 말하는 것, 동작, 손가락 놀리는 것, 밥숟갈 놀리는 것까지 신통하게도 김현봉 목사를 닮은 이들이 있었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독립교회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단점들이다. 또 김현봉 목사의 제자라기 보다는 동지의 한 사람이었던 부산의 백목사도 생전에는 독립교회로서 부산 경남지방에서 크게 성공한 목회를 하였으나 그의 사후에는 역시 네 개의 교회로 갈라지는 아픔으 ㄹ겪었는데, 그 일차적인 원인은 백목사의 카리스마를 벗지못한 일부 교회의 수구 세력들이 새로운 목사를 모시기 보다는 생전의 비디오 녹화 테입으로 예배를 대치 하였기 때문이다.
3)지나친 구별의식
앞서도 잠시 언급 하였지만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구별의식이 문제가 있다. 독립교회의 독자노선 추구 및 설립동기를 원인별로 분석해 보 때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러한 의식으로 형제교회에 대하여 배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면 고쳐야 할 것이다. 독립교회의 발생 이면에는 교단적 잘못된 결정사항 (신사참배 결의 혹은 불신법정 고소문제)등의 자체의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죄를 범치 않기위하여 결별 혹은 독립한 것으로 신앙적 차이로 인한 이유와 기존교회의 이기주의, 대형화, 물질주의로 흐르는 부패된 현상을 개혁하여 교회 본래의 사명인 사회속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자는 교회 윤리적인 견해차이의 이유 그리고 인위적 압력의 수단화가 되고있는 거대교단조직의 경직성을 탈피하여 독자적 소신 행정을 펴기위한 교회행정상의 이유. 기타 양보할 수 없는 신학적 견해차이의 이유.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들이 흔히 이단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기존의 고정된 교회개념을 갖고 관찰하는데서 오는 오류일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우리나라 독립교회 설립당시의 출발은 적어도 절대적 하나님 중심의 신앙 목표하에 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교회행정 신학적으로 정로를 걷고바 시작된 용기있는 개혁운동 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바리새 주의가 될 수있고 교회주의가 더욱 심화되거나 교회의, 통일성을 해치고 중구난방으로 흩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절대주의의 일면으로만 흐르다가 정통신학을 간과하여 이단적 요소를 배태시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독립교회의 지나친 우월의식을 타파하지 않는한 지난 시대에는 긍정적이었던 장점이 오늘날 에는 오히려 단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여 새롭게 일신할 수 있는 과감한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그 변화는 우리들의 삶의 전 영역에 미치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자는 아니나 세상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We a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밖에서 따로 떨어져 살 수 없다. 세상의 변화는 교회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변화는 신앙의 방법과 세계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목회자는 변치 않는 성경의 복음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 증거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가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바로 읽지 못한다면 시대의 낙오자가 되거나, 그 시대에 풍속에 빠져서 무력한 종교 지도자로 전략하기 쉽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시대의 징조를 바로 알아 깨어 있어서 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자위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시대적 변화에 대안없이 자폭할지도 모른다.
이 연구는 다가오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복음을 붙들고 고뇌하는 목회자를 위한 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러한 연구들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1세기를 몇 년 앞으로 내다보면서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 대비한 목회전략이 시급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회전략 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있는데 새시대에 필요한 새부대를 준비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독립교회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김현봉목사는 일찍이 시대를 예견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자기가 된 것이 하나님 은혜로 된 것이지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된 것이 아니다. 교회의 성직을 가지고 명예, 영광을 취하여 자라하는 것은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해서 독립교회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 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는 신앙양심을 똑바로 쓸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양심 깨어지면 마음 깨어 진다"라고ㅠ 하면서 신앙양심대로 중생한 영혼의 인도대로 살 것을 늘 강조하였다.그러기 위해서 "참고 견디고, 인내심을 길러라"고 하였다. 중생한 개인의 신앙양심이 교단이나 교파의 정치보다 위에 있다는 원리가 이로써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성경보다 유전을 주님의 가르침보다 전통을 더 따르는 것은 신앙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로서 이는 우리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립교회가 걸어간 신앙양심을 길을 인정하고 우리들 자신들을 돌아보는 거울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미래의 세계와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는 워낙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많기에 역사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는지 단적으로 결론 짓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대안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에 이바지 하므로 미래의 연구는 불완전하다고 해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처럼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과학기술적인 변화가 가속화되고,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고 있는 시대의 변화에 추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국가나 민족은 세계사의 흐름에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립교회는 보다 다양하고 다변화될 다음 세기에 교회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또한 교권주의 교파의 틀 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신자들 개개인의 신앙양심과 개교회의 독립적 자치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립교회의 장점중의 하나인 절대적인 말씀중심의 신앙과 양심중심의 신앙을 보다 더 발전 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경이적인 성장으로 많은 구미교회들의 부러움을 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따른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교회의 성장에 비해서 사회적인 신인도 너무나 낮은 것이다. 빛이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들이 그 반대로 지방색과 교파주의 교단주의 또한 세속정치와의 야합으로 얼룩져 왔기 때문이다. 100여개가 넘는 장로교단이 그렇고 난립되어진 신학교가 그렇다. 교회론의 성경적 정립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프로그램 중심의 목회관도 그렇다. '꿩 잡는게 매' 라는 식으로 극단적 실용주의가 교회에 가득하여져서 비성경적인 교회성장의 신학이 교회를 흐려 놓고 있다.
교회는 항상 특수한 시대적 상황속에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작업은 신학의 봉사적 성격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신학의 존재목적이 신학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가운데 처해있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말씀은 제쳐두고 한국인의 심성속에 있는 샤머니즘적 기복주의를 발동시켜 신비주의를 양산했다는 것이요, 둘째는 지성우월주의와 신인협동적 알미니만적 양태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독립교회가 태동하게되는 역사적인 배경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교회들이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나 엇길로 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유전이나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독립교회의 신학정신은 보다 철저한 말씀중심의 사상이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립교회는 다시한 번 조명을 받아야한다고 생각된 것이다.
이성적이고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목회적 경향들이 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는데 서울 여의도의 S교회가 이런 유형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 "믿음"이라는 용어가 잘못 이해 되어진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오직 믿음"을 "오직 신념"으로 잘못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적극적 사고방식"이지 믿음은 아닌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믿되 기록되어진 말씀안에서 해야한다. 그러나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 호소하여 양심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이는 자칫 율법적인 열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유형에 속한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작적 OO일 새벽기도회" "총동원전도주일"등등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에 호소하기 보다는 인간의 가능성과 의지에 호소하는 경향이 짙은 신학이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며, 주변의 것보다는 내부의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측면에서 오래전부터 칼빈주의와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더욱 본질을 추구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이를 더욱 계승 하여야 한다.
한국교회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취약점은 신학이 너무 개인 구원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대사회 프로그램이 전무하다는데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실천신학의 부재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교회는 항상 상화에 대답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또 교회는 말씀과 성령, 그리고 신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신을 갱신한 다음 역사속에서 세상을 갱신해야 할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장되어온 "세상을 교회로 이끌려는 운동이 아니라, 교회를 세상속에서 이끌려는 세속화운동의 양극단에서 모이는 교회(come strycture)가 전제되고 나서, 흩어지는 교회(go strycture)를 말할 수 있고,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후 그리고 세상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는 사회단체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봉사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에 말없이 빛으로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행위의 실천없는 말만 풍성하게 했던 것이 우리교회의 현실이다. 교회성장신학은 교회자체내의 프로그램 뿐 아니라 이처럼 세상을 섬기는 운동과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의 개인양심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독립교회의 신앙운동은 주목받아 마땅 할 것이다. 그리고 김현봉 목사의 가르침처럼 일심정력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더욱 필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3)개인구령의 관심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중의 하나는 개인구령 중심의 실천 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아들을 통하여서 온 세계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활동(Missio Dei)에서 현교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하는가를 다루는 데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관심을 깊이 가진다는 것이다. R. Bohren 같은이는 실천신학 방법론은 교회 우선적인 선교활동에서 탈피하여 보다 넓은 컨텍스트인 하나님나라 혹은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지에 헌신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실천신학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기존의 실천신학 연구에 또 다른 차원을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Johann Gerhard는 신학의 목표와 목적은 단순히 '그노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라고 말했다. 복음의 능력은 개인구원에만 머물고 마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속한 교회와 사회속에서 실천신학은 세상안에 있는 교회의 생활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천신학이 수세기동안 조직신학과 최근에는 성경신학의 그늘에 가려서 신학계에서 그리 각광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에 말씀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점에서 다른 신학 분야보다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본다면 독립교회들은 이러한 실천신학이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복음에 빚진자의 심정이 되어 이웃에게 그리고 또다른 사람과 나아가 바다 건너에 까지라도 죄에 빠진 사람 구하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을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복음전도 위임과 개인영혼과 구원의 중심사상이 전도신학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개인 영혼구원사상은 경건주의가 물려준 보수교회의 정신적 유산이다. 경견주의 지도자 스페너(Pillip Jacob Spenner)는 어거스트 헬만 프랭크(August Herman Franke)는 스페너의 저서「경건의 욕망」(Pia Desideria)에서 주장하기를 참 경건의 실천, 즉 신자들의 작은모임, 성경연구 그리고 기도와 힘쓰는 일 등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개인영혼의 회심만이 선교의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개인영혼 구원주의 오늘날도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상인데 거기에 전혀 옳은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부다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교실천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심령에 대한 위로의 사역, 죄, 마귀, 죽음의 위협 아래 있는 자에 대한 접촉과 관심등은 결코 우리가 등하시 할수 없는 사역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사람의 실천을 도외시 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건주의 영향을 받은 독립교회들은 교회의 정치나 교권주의 몰입하기 보다도 더욱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진전한 복음전도는 개교회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회심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한 교회심기 사역은 개신교나 카톨릭이나 매한가지이다. 카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Summa Theolngica」에서 선교의 목적은 다양한 문화나 사회에서 구원과 선을 위한 기구로서 봉사할 중앙 집권적, 군주적, 그리고 성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교회를 심는 것이라 하였다. 선교에서는 기스벨투스(Gisbeatus)가 그의 책인데,이는 이방인의 회심, 교회의 심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과 영광을 보임이라 하였다. 물론 때로는 로마교회나 대교단이 지향하는 교구주의도 선교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보다 성경적인 복음전파와 선교는 지역교회 즉 독립적인 교회들을 심어 자치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일이다.
맥가브란 박사를 중심으로 교회성장신학은 수용성이 강하게 보이는 지역에 교회를 심음으로 더 많은 전도효과를 거둘수 있는 것으로 결론지어지는데, 수용성의 원칙과 숫자를 통한 정확한 통계만이 교회성장의 정도를 측정할수 있다고 했다. 이때 교육사업이나 사회사업, 교회의 현실 참여나 역사 참여는 2차적인 것으로, 아니면 교회성장을 위한 봉사정도에 둔다는 원칙이다. 물론 교회가 이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교회의 원칙은 개교회의 자치권과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서 네비우스의 정책과 같이 교회를 살려 나간다면 얼마든지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과 자치권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와 실천 이라고 할 것이다. 성경은 교회라고 할 때 지역이름을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근자에 와서 "사랑의 교회"니 "산성교회"니 하는 형용사적 이름의 교회가 많이 생겨 나고 있지만 이러한 교회들도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교회들인 것은 사실이다.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특성을 갖게된다. 그렇다면 교회란 우리가 앞서 신학적으로도 살펴 보았지만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구별되어진 모임인 것이다. 이로인해 각 지역교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자율권과 자치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회를 책임질 권한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을 노회나 대회 총회등의 의결에 의하여 해결하지 않고 교회에 주신 고유한 권한과 각 사람에게 주신 신앙의 양심에 따라 처리함으로 신약의 교회원형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물론 노회나 대회 총회등이 필요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제애를 나누며 보다 큰일을 하기위한 협력의 차원에서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권한을 간섭하거나 침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직분자의 임명, 권징의 시행, 그리고 행정에 있어서 개교회의 자율을 중시 함으로 교권주의나 나쁜 교회의 정치주의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크나 큰 장점이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의 현황과 독립교회의 가능성
1)신학적인 토대가 필요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좋은 전통들을 지금까지 지녀왔다. 선교사들의 피흘림과 오랜세월 격동기속에서도 복음주의적 전통에 입각하여 여러 좋은 신학자들과 순교자들의 업적을 오래오래 간직되어야 할 소중한 교회적, 민족적 유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초창기부터 복음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이면에는 초대 한국교회에 기독교신앙을 가져온 선교사들이 대부분 복음주의적 전통에 깊숙히 뿌리박은 미국 장로교출신들 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종철의 논문에 의하면, 1983년에서 1901년까지 한국에 있던 40명의 선교사중에서 프린스톤신학교( Princetoon) 출신이 16명, 맥코이(Mccormic) 출신이 11명 이었고, 산 안셀모(San Anselmo) 출신이 4명, 그리고 뉴욕의 Union 출신이 3명, 그외 Moody 성경학교와 뉴욕의 Biblical Cominary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최초의 선교사들은 선교의 개척을 위해서 희생적 각오와 보수주의적, 복음주의적인 신학사상을 소유하면서 퍼뜨렸던 것인데 현금에 와서는 보수, 진보 양측에서 이들의 신학사상에 대해 "근본주의 일색" 이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복음과 상황은 타원의 두 중심과 같다. 전자는 불변하나 후자는 변한다. 불변성과 적응성, 복음의 씨와 그것이 뿌려질 토양, 이 둘은 사역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하는 함수 요인들이다. 복음은 상황을 도전하고, 상황은 복음을 요청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항상 시대의 요청과 상황의 요구에 대하여 신학적여과와 대답을 항상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신학적 고찰을 중지할 때 역사속에서 복음은 퇴색되고 외면 당하고 말 것이다.
교회는 항상 특수한 시대적 상황속에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작업은 신학의 봉사적 성격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신학의 존재목적이 신학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가운데 처해있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이러한 작업을 게을리 해 왔기 때문에 많은 좋은 공(功)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나온 반세기 동안에 한국의 교회성장운동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불건전한 신비운동(기도원운동과 은사운동)과 기복주의적 신앙의 양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속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은 인간소외를 느꼈고,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피안의 세계를 제시하는 세속적 기독교와 기도원운동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서 교회의 상부구조라할 수 있는 교단과 신학교는 신학적 자유주의와 이성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이렇다할 교회 성장신학을 교회에 제시해줄 여가가 없었다. 물론 교단의 필요성이나 교파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장로교적인 분위기는 한국교회를 교조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 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교단에 가입하지 아니한 모든 교회들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편협성이 너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는 우리의 신학이 너무 지엽적이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교회의 형태와 모양을 획일화 시키고 말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는 교회가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한채 지방색과 교파주의 교단의 정치로 개교회들이 정상적인 기능과 성장을 하지 못한채 90년대를 허비하고 말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1960년대 미국교회들에서도 일어났다. 딘 M,켈리는 "196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는 무엇인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큰교파의 대부분이 성장을 중지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의 극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인식 되었다.(중략)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파 가운데 10개 교파는 그 전체 교인수가 1967년에 77,666,223명이었는데, 그 이듬해에 교인수는 감소되었고 또 다음해에도 감소되었다. 이들 교파들의 대부분은 식민시대 이후로 아무런 장애 없이 성장을 계속했었다. 1960년대 후반 이전의 10년간 그들 교파들은 성장이 둔화 되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교파들은 미국인구증가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그러더니 이제 그들 교파들은 교인수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두 세기의 성장추세를 거꾸로 뒤집어 버렸다. " 그러면 종교는 더 이상 필요 없는가? 아니면 교회는 더 이상 필요치 않는가? 하고 그는 질문 하면서 그럼에도 어떤 교회들은 성장하고 있다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시대에 뒤떨어 지는 그런 쇠퇴를 조직체 회원이 감소하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다른 조직체를 괴롭히는 유사한 사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경쟁자가 일률적으로 적개심을 가진 풍토속에서 번창하고 성장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시대는 문제가 어떤 조직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있다고 하는 견해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교회들 가운데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종교적 단체가 다 쇠퇴하고 있는 거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개신교의 주된 교파들의 대부분이 감소추세를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고 존속을 위한 고투를 하고 있는 반면에, 남부침례고, 하나님의성회, 하나님의 교회, 오순절 및 성결교단, 복음주의 교회,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흑인 모슬렘교 등과 같은 종교 또는 교파들은 생동력으로 넘치고 있다. 이 밖에도 생동력으로 넘치고 있는 교파들은 심지어 큰 교파들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군소 교단들 가운데도 많이 있다고 도표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급속히 성장하는 교단들은 종교는 폐물이 아니며 교회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말해줄 뿐만 아니, 인정할 수 있는 종교에 대한 현대적 개념에 전적으로 배치한다. 이 교단들은 "비합리적이며" "관대하지"않고 "반초교파적이며" "적절하지" 않다.이거은 큰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 됴단들은 흔히 다른 교회들의 교훈, 안수, 성례, 등의 정당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이 교단들은 특수한 의식이나 특이한 식사관습을 지킨다. 또 이러한 교단 혹은 교파들은 불합리한 행동에 집착 함으로써 "인류의 어지간한 견해"를 무시한다. 그러나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비사교적인 행위에 집착하는 종교교단이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트기한 것은 지적 수준이나 위치로 보아 마땅히 합리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교회들을 선호할 것 같은 사람들 조차도 이러한 교회들에 몰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냐고 묻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이유를 딘 M. 켈리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필수적인 기능이 있다고 평가했다. 즉 종교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에게 어떤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틀림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종교의 임무는 의미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종교는 신성한 세계건설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탁해질수록 그리고 물질 문명이 발달할수록 종교가 가진 이상적인 미래제시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보다 강력한 종교를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그 증거로 재침례교도들의 활동과 교회증가. 그리고 웨슬레의 부흥운동등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있다. 앞서도 살펴 보았지만 재침례교도들은 제16세기 개신교 개혁의 좌파에서 일어난 신자들의 작은 무리였다. 그들의 지도원리는 신약성경의 초대교회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양측 모두의 많은 특징을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배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작은 비밀 집회소에서 회합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과 양심에 따라 굴하지 않고 그들의 믿음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결과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교회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웨슬레의 부흥운동 또한 도덕적 빈혈증을 앓고 있었던 영국을 각성 시키고 가난, 사악, 술취함, 불의, 부패한 사회를 변화 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성교회의 배척을 받은 감리교도들은 기성교회를 떠나려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속회"로 개인 가정에서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문맹이었다.) 그 모임에서 그들은 함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에게 의로운 권면을 했다. 회원 중의 한 사람이 속회 지도자로 지명되었는데 그의 임무는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발전을 보살피며 매주 그들 각자를 개인적으로 권면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방법이 전통적인 교회관이나 그당시의 교권주의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을 그들을 들어 쓰셨다.
그러므로 독립교회는 오늘날 교회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비젼제시와 리더쉽의 상실에 대하여 하나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교권주의 권위주의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교회들을 일깨우고 새롭게 갱신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있다고 보는 것이다.
독립교회의 장점이며 자랑이기도 한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문제가 향후 독립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것이 틀림없다. 즉 기존의, 교단이나 교파에 지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 나가고 있는 교회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교단 중심 노회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국교계의 풍토상 독립교회의 홀로 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독립교회는 앞으로 한국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많은 우려와 경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그것중의 하나는 목회자의 과도한 카리스마로 인한 폐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독립교회의 탄생 이면에는 목회자의 강력한 리더쉽과 독선에 가까운 홀로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생전에만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 하였지만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구별의식이 문제가 있다. 독립교회의 독자노선 추구 및 설립동기를 원인별로 분석해 보 때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러한 의식으로 형제교회에 대하여 배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면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보다많은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독립교회에 대한 교회사적인 정당한 평가가 계속해서 일어 나야 한다고 본다. 본 논문도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되어져 온 것이다. 그러면 독립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독립교회가 태동하게되는 역사적인 배경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교회들이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나 엇길로 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유전이나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독립교회의 신학정신은 보다 철저한 말씀중심의 사상이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립교회는 다시한 번 조명을 받아야한다고 생각된 것이다.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중의 하나는 개인구령 중심의 실천 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아들을 통하여서 온 세계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활동(Missio Dei)에서 현교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하는가를 다루는 데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관심을 깊이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독립교회들은 이러한 실천신학이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복음에 빚진자의 심정이 되어 이웃에게 그리고 또다른 사람과 나아가 바다 건너에 까지라도 죄에 빠진 사람 구하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을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경건주의 영향을 받은 독립교회들은 교회의 정치나 교권주의 몰입하기 보다도 더욱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진전한 복음전도는 개교회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회심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한 교회심기 사역은 이방인의 회심, 교회의 심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과 영광을 보임이라 하였다. 물론 때로는 로마교회나 대교단이 지향하는 교구주의도 선교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보다 성경적인 복음전파와 선교는 지역교회 즉 독립적인 교회들을 심어 자치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일이다.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과 자치권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와 실천 이라고 할 것이다. 성경은 교회라고 할 때 지역이름을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로인해 각 지역교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자율권과 자치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회를 책임질 권한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을 노회나 대회 총회등의 의결에 의하여 해결하지 않고 교회에 주신 고유한 권한과 각 사람에게 주신 신앙의 양심에 따라 처리함으로 신약의 교회원형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좋은 전통들을 지금까지 지녀왔다. 선교사들의 피흘림과 오랜세월 격동기속에서도 복음주의적 전통에 입각하여 여러 좋은 신학자들과 순교자들의 업적을 오래오래 간직되어야 할 소중한 교회적, 민족적 유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보여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도 없다 ㄱ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필요한 자기의 종들을 일켜 세워서 빗나간 교회의 흐름을 바로 잡으셨다. 그러한 측면에서 독립교회들을 나름대로 교회의순수성ㄷ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를 다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이러한 독립교회의 공과 과를 밝히는 보다 많은 논의 가 이루어 져야할 때가 되었다고 본연구자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본 논문이 일조를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닥아오는 21세기에는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는 한국교회가 되어 주님 오실 때 칭찬 받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하는 일에 보탬이 되는 연구가 되었기를 기대 해본다.
3) 신학적 근거
교회의 설립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므로 이 고백위에 자기의 교회를 세우기로 약속하므로 교회가 설립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신앙에서만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즉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받아 그를 자기의 구주로 고백하면 그곳에서는 언제든지 교회가 발생한다. 교회는 말씀의 선포 곧 복음의 선포에서 발생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고 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고 부활에 이르렀다고 선포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생겨나고 따라서 거기에 자동적으로 교회가 발생한다. 정작 교회 설립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 사역을 이루어 성령을 파송하므로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세시 그를 믿는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신앙고백이 이루어지고 성령이 파송되므로 교회가 이루어졌으니 교회는 성령이 오셔야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자이므로 그의 예수 증거에 의해서만이 사람들이 예수 믿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성령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권세와 직임을 위임받았고 그의 증거로만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키기 때문이다. 로마교회의 주장처럼 교황과 연합하므로 교회가 되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결합시키므로 교회가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교황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그를 믿는 믿음이 있으면 교회가 세워진다.
교회가 되기 위해 먼저 사람들이 불리워져야 한다. 사람들은 그냥 교회에 오도록 불리워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도록 선포하는 것이 사람들이 부름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시기 위해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도록 그의 이름으로 부르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해서는 사람들이 결코 교회를 이룰 수 없다. 이렇게 교회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부름받았기 때문에 교회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이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과 죄악에서 불러내신다. 불러내어 자기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교회로 만드신다.
교회에 대한 위의 진술들을 종합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러내어 예수의 피로 구속하여 그리스도에게 연합시킨 공동체이다. 교회는 피로 연결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결합된 공동체이다. 더욱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사람들을 자기에게 연합시키신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교회의 구성을 중보자의 설립보다 앞세우고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 창조시부터 하나님은 교회를 가지실려고 하셨기 때문에 선택교리를 교회 성립의 핵심으로 삼으나 교회 성립의 근본 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이 연합이 사람들을 서로 교제하게 하고 교회로서 존속하고 활동하게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하나님의 구원의 적용이 핵심이어서 칼빈이 가장 경탄한 요목이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번 그리스도에게 연합한 자들이 교회 밖으로 벗어나가 구원에서 탈락이 불가능하다. 이 진리가 불가항력적 은혜 혹은 은혜의 주권성으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풍성한 구원에 동참하고 성령의 주장하심을 누리며 살게 된다.
로마교회는 교황과 연합하므로 교회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지고 사람과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람과 잘 연합하여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다. 바로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교회를 하나님의 구원기관이라고 한다.
개혁신학만이 교회의 핵심진리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시작하고 그 연합으로 존재하며 교회로서 마감한다. 이 연합에 의해서 성도의 교제가 나온다. 따라서 교회를 성도들의 교제라고 종교개혁은 규정하였는데 성도의 교제가 근본이 아니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성도의 교제가 귀결한다.
그러므로 독립교회가 교파나 교단에 가입 또는 소속되지 아니하였다고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타당항 진술이 아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을 세례와 성찬으로 고백하며 계속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이라고 하는 것을 무시할 어떤 근거도 성립하지 않는다.
(2) 교회의 분류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립하면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자만이 교회가 된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중생으로 이루어진다. 중생은 영적이어서 육체적인 눈에 식별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자기의 교회를 바로 아신다. 교회에는 외식자도 있고 불신자도 있으며 비중생자도 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교회에 속해 있지만 참교회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다 하나님의 택자들이다. 이 선택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이런 교회는 비가시적인 교회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의 신앙고백과 예배, 말씀선포와 성례에서 또 교회 조직과 정치 그리고 회집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가견교회 혹은 유형교회라고 말한다.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는 서로 분리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존재한다. 무형교회가 참교회이지만 참교회는 지상의 가견교회를 떠나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선포를 신실히 행하여 가견교회가 참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지상에 존재하는 한 전투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죄악과 싸우는 공동체이다. 개인의 죄악을 대항하여 각자가 투쟁하지만 죄악과의 연대성을 갖고 쉽게 유기적으로 번지므로 교회가 죄악과 투쟁한다. 또 나아가 교회 밖의 사회의 악에 대해서도 투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교회가 자체 거룩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은 성화가 완결되지 않으므로 계속해서 악과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천상교회는 승리한 교회이다. 아직 심판이 이루어지지 안했으므로 영광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상에서 겪는 투쟁은 없고 안식하는 교회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교회라고 통상적으로 호칭하는 이 "에클레시아"는 '개교회'(Local Church)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개교회란 일정한 지역에 있는 신자들의 모임(육체적 연합체 : Physical unity)을 말한다. 성경은 항상 지상의 교회들을 개교회와 연관하여 언급하였다.
하나님은 개교회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대행기관(agent)으로서 노회, 대회, 총회와 같은 상회, 병원, 고아사업, 구제보다도 가장 최우선 순위(Priority)에 두신다고 조영엽은 말한다. 그는 말하길 개교회는 하나님의 사역의 최일선(Front Line)이며, 교역자는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사람(an important person), 즉 필수요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교회들은 참된교회 곧 우주적 교회의 모형이라는 주장이 된다.
말씀이 바로 선포되면 언제나 교회가 발생하고 교회가 존속한다. 종교개혁 때 로마교회가 교회로서 바로 지칭받기 어려운 것은 바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최소수준에서도 유지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에라고 교회가 전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은 칼빈이 말한대로 여로보암 때에 교회가 다 훼파되었지만 그래도 남은자들이 있었고 아합 때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명이 있엇던 것과 같다.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면 교회는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도 존속할 것이다. 로마교회는 사람들의 결정을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세우므로 교회가 교회되기 어려웠다. 말씀의 선포의 내용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사역을 빼고 다른 것을 말하면 곧 교회는 쇠락하게 되고 변질되어 구원기관이 될 수 없게 된다. 이 말씀의 선포 때문에 교회가 구원기관이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져야 한다고 키프리아누스가 말하였다. 이것을 로마교회는 자기들에게 적용하여 로마교회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로마교회에 교황이 있으므로 구원기관이 된 것이 아니고 교회에 복음의 선포가 있기 때문에 구원기관이 된다. 키프리아누스는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여 카톨릭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게 되었다. 교황이 있으므로 교회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말씀 곧 복음의 선포가 있기 때문에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의 선포없이는 구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교회가 교회 되는 데로 성례를 바로 집행해야 한다.
성례는 가견적인 복음이다. 귀로 듣는 복음 대신 눈으로 보는 복음이 성례이다. 성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을 우리의 몸의 기관에 접촉하게 하시는 역사이다. 성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의 몸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례는 눈으로 보는 복음이다. 이 성례를 바로 집행하면 성도들이 구원의 확신에 이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확고히 한다. 성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강화목적으로 집행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교회의 표징들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조영엽은 크게 세가지를 특성으로 든다.
첫째, 개교회는 중생한 회원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둘째, 개교회는 자치를 요구한다.
셋째, 개교회는 성장하는 회원을 요구한다.
이러한 주장을 정리해 본다면, 교회 회원의 자격은 중생한 사람들을 요구한다는 것은 교회는 한 기관이 아니라, 한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생명적 연합에 참여한 자들은 "다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고전12:13)라고 하였다. 성령세례는 중생을 가리키는 것인데 성령과 말씀으로 중생한 자들만이 신령한 영적 참 교회의 회원이 된다고 할 때에 모든 개교회의 존재요건은 그 지역(local)에서 중생(Borm again)한 자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회원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중생함을 기대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칼빈의 교회관에서 살펴보았듯이 모든 유형교회의 회원이 다 중생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가급적 중생한 자들로 구성되기를 소원할 뿐인 것이다. 지상의 교회는 유형교회(Visible Church)이다. 유형교회는 알곡과 쭉정이, 참 신자와 거짓 신자들이 다 섞여있기 마련이다.(마13:24-30) 그러므로 개교회, 즉 모든 독립교회들은 완벽할 수 없다.
카이퍼는 기록하기를 "엄격히 말해서 유형교회의 회원은 무형교회의 회원과 일치한다. 무형교회가 중생한 자들로 구성되는 이상 그들은 유형교회의 회원으로 간주한다. 성경적 표현을 사용하자면 중생한 자들만이 유형교회의 회원이다"(요일 2:19 참조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개교회 회원들은, 모두가 다 중생한 자들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급적 중생한 자들을 포함하도록 영혼구원에 전력해야 할 것은 사실이다.
셋째, 그다음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개교회의 자치권 문제이다. 신약성경은 교회정치에 있어서 개교회의 자치권을 강조한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개교회는 결국 독립교회에 가깝고, 독립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초대교회의 본질에 가깝다고 본 연구자가 주장한바 있다. 성경은 개교회 이상 어떠한 의미에서도 에클레시아라 칭하지 않았다. 포레스트의 선언처럼 "신약에 있어서 교회정치는 개교회들에만 적용하였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치리를 개교회에서 시행하도록 언급한바 있다. 개교회의 문제에 관한 한 개교회가 최고의 판결권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은 독립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한층 더 빛나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개교회 이상 더 높은 재판소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는 교회의 머리를 이 세상에서 찾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주적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개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의존한다. 그리고 그에게 충성함을 특권으로 삼는다. 교회는 세상 정부로부터 정치적 지배와 제재를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신자, 교회, 교회단체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잘못될 경우에는 합법적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로마 천주교에서처럼 교황이나 그와 같은 위치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인정해서는 개교회, 독립교회의 자치, 자율권이 세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회, 대회, 총회와 같은 상회로부터 성경원리에 어긋난 것들을 강요당한다면 단호히 배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질적성장이 양적 성장의 근원, 바탕,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질적 성장만을 강조한 나머지 양적 성장을 저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참된 질적 성장은 양적 성장을 필히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들중의
하나는 복음전도이며, 전도는 양적 성장을 필히 가져온다. 즉 전도는 교회를 부흥시킨다. 누가는 기록하되 "그들은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쉬지 아니하니라"(행5:42)고 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마28:19)에 대한 실제적실천 이었던 것이다.
개교회는 전도와 선교에 열쇠가 되어야 한다. 전도와 선교는 개교회에 크게 달려 있다. 개교회들과 행정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독립단체들이 다소 있으나 그 단체들을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 다수는 개교회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개교회의 교역자는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중요한 사람이다. 전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교역자들을 지원할 때 전도는 효과있게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하나님이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인들을 위하여 부르셨을 때 하나님은 또 하나님의 교회, 즉 안디옥교회를 부르셨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때에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회원들이었으며, 안디옥교회는 이들을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있어서 신앙적, 재정적 책임을 분담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독립교회는 영혼구령에 최대의 관심을 둔다. 사람들이 단지 교회의 일원이되고 전체 공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만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개인구원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독립교회의 중요성은 더더욱 지지되는 것이다 할 수있다.
4) 역사적 근거
(1) 키프리안의 교회관
교회는 일찍부터 교회 안팎의 이단들의 도전에 직면하여 응전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그 전통적 진리를 보수하여 왔다. 에비온파, 알로기파, 케린투스주의 등 유대주의 기독교의 도전에 직면했는가 하면, 영지주의, 그리스도 가현설 등의 혼합된 이교사상의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고, 말시온, 몬타니즘, 모나카아니즘(군주론 또는 일신론) 등의 이단에 직면하여 교회의 신앙을 변호하고 확립했다.
또한 4세기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을 부인한 아리우스설이나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성에 도전한 아폴리네리우설, 그리고 네스토리우스나 유티커스, 그리고 5세기에 이르러 펠라기우스설도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교회의 일치와 순결에 대한 관심은 이미 사도시대의 관심사였다. 사도행전 15장에는 유대주의자들의 도전이 있었고, 골로새서 2장에는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즐기는 자들의 도전이 있었고, 베드로후서 2장에는 거짓선지자들과 멸망케 할 이단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유다서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이단의 도전, 요한일서 2장에는 이미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증거하고 있다.
각설하고, 우리는 로마 감독 칼리스투스(217년 감독)와 히폴리투스와의 논쟁에서 교회의 일치와 순결에 대한 관심을 보게 된다. 이중 히폴리투스는 당시 여러 교회에서 흔히 하던 것처럼, "친족 살인, 음행, 배교" 이 세가지 죄는 용서받지 못할 죄로 취급하고, 교회가 이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말도록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교회교제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칼리스투스는 생각했다. 실제로 박해시 배교자에 대한 처리문제는 그후 키프리안(AD 250. 로마감독) 사이의 논쟁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터툴리안에서 어거스틴까지 서방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는다고 하면 키프리안을 들 수 있다. 키프리안은 칼타고에서 태어나 문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수사학 교사가 되었고 45세의 늦은 나이로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247년에는 장로로 선출되고, 248년에는 칼타고의 감독이 되고, 250년에는 데시우스 황제의 박해 때 사막으로 피신하여 편지로 교회를 지도했다. 251년 사막에서 돌아왔으나, 다시 발레리안 황제의 박해를 받아 다시 사막으로 귀향갔다가 258년에 돌아와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가 남긴 것은 「교회의 일치」(De Unitate Ecclesiae)라는 책과 81통의 서신이 있다. 그는 생시에 3대 논쟁에 참가했는데 모두 교회에 관한 문제였다. 그가 당면한 최초의 논쟁은 박해시 변절자의 처리에 관한 문제였고, 둘째는 그와 경쟁관계에 있던 노비티안 분파에 관한 문제요, 셋째는 이단자들이 베푼 세례의 타당성에 관한 문제였다. 이 세 논쟁을 거치는 동안 그의 교회관은 확립되어졌다.
키프리안은 박해시 변절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일은 적절한 규례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A. 키프리안은 박해시 변절자의 처리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회개를 거부하는 자는 용서하지 말 것.
2. 증서(certificate)를 산 자는 즉시 허용할 것.
3. 타락자는 평생 회개하고, 임종시 또는 이후 또 다른 박해시 회개를 증명 하는 자는 교회의 교제를 허용할 것.
4. 타락한 성직자는 폐위할 것 등을 제시했다.
B. 그리고 분파에 대해서, 추종자는 파문할 것을 명했다.
C. 또한 AD 250년경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구제를 시행한 자비한 일면도 보여주고 있으며, 박해시 변절자나 이단자에 의해 시행된 세례는, 개종시 재세례를 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 감독의 반대를 받았고, 재세례제도는 로마제국에서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터툴리안의 제자인 키프리안은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감독 교회의 교리를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감독은 주님께서 친히 택하여 세운 사도들의 참된 후계자라고 생각하였고, 특히 마태복음 16장 18절을 기초로하여 교회는 감독들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키프리안의 감독 중심의 교회관을 대체로 아래와 같이 네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키프리안에 따르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했다. 키프리안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교회를 떠나는 자는 타인이며 속인이며 적이다. 교회를 어머니로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않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밖에 있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가 누구이든 간에 그리고 그의 사람됨이 어떠하든 간에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지 않은 자는 크리스챤이 아니다"라고 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키프리안의 견해는 교회를 떠나는 자들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엄격했다. 그는 말하기를 "감독은 교회에 있다. 교회는 감독에 있다. 감독과 함께 있지 않는 자는 교회와 함께 있지 않는 자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의 신자들이 감독에 대한 관계는 어린아이들이 그의 아버지에 대한 관계와 같고, 감독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이로써 교회와의 교제와 구원을 상실한다고 주장했다. 감독에 대한 반역은 곧 감독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반역이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교회와 감독을 떠나 분리된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것은 무효라고 선언했다. 그는 말하기를 "한 개의 세례 이상 다른 세례가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망상한다. 생명의 샘을 저버리고서라도 그들은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 주는 물의 은혜를 약속한다. 그들은 거기서 씻음받은 것이 아니라 더럽힘을 받는다. 그들의 죄가 사함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된다. 그들의 신생은 하나님을 위한 자녀로서가 아니라 마귀를 위한 자식으로 만든다. 거짓으로부터 출생했으니 진리의 약속을 받을 수 없으며 불신으로부터 태어났으니 진리의 약속을 받을 수 없으며 불신으로부터 태어났으니 그들은 믿음의 은혜를 상실한다."
이 경우, 감독으로 대표되는 일치를 주장하고 교회 이외의 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장차 중세 카톨릭교회를 위한 준비단계를 이미 키프리안의 교회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키프리안에 따르면, 감독은 사도의 계승자이며, 교회는 감독들로 말미암아 세워졌다고 하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키프리안은 말하기를,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택하여 세운 자들로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가르치신 것을 충실하고 세밀하게 전달했으며, 또 사도들도 자기들의 계승자로서 감독들을 임명하여 이들에게 교회들을 위탁하였다고 주장했다.
이 사도적 승계에 관념은 키프리안에게 있어서는 「승계의 언약」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었으며, 감독은 누구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하나님을 위하여 취임케된다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 때로부터 해가 바뀌고 계승됨에 따라 감독들의 임명과 교회의 모든 의결은 이들 감독들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했다.
이와 같이 키프리안에게 교회는 사도들의 계승자로서 감독들 위에 기초하고 있으며, 교회의 관리로 감독들 위에 딛고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했다. 키프리안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감독들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됨과 동시에 회중들을 위해 절대권을 행사하는 신적 권위를 가지는 지도자로 내세우게 되었다.
키프리안은 '교회연합은 감독의 연합'이라고 하는 사상을 체계화시켰다.
키프리안에 따르면, 개개의 감독은 전 감독단의 일부이나 개개의 감독은 추상적 의미에서 감독단의 전권을 소유한다고 주장했다. 감독들은 교회의 연합을 안전하게 수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며, 감독직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전체라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교회의 연합」을 명백히 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이 연합이 처음부터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도록 주님 자신의 권위로 주선하였다. 다른 사도들도 베드로의 신분과 정확히 동일하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도 동일한 직분과 능력을 위임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는 것을 시위하기 위하여 교회가 있기전에 시초부터 연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키프리안은 로마는 베드로가 감독 일을 보았던 교좌라는 일반적 신념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시대의 교회로 하여금 성직자의 연합이 최초로 이루어졌던 곳으로 로마교좌를 향하게 하였다. 그러나 로마를 외적인 연합의 상징으로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로마의 감독을 다른 여러 지역의 감독들보다 어떤 특별한 권위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키프리안에게 있어서 교회의 연합은 교황 중심하에 있지 않고 감독직의 결속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키프리안의 로마교좌를 중심한 감독직의 결속은 훗날 교황제도의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또한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키프리안에 따르면 감독직은 신자의 제사를 유효케한다고 하였다. 죄인들은 감독과 사제를 통해서 교회에 받아들여졌고, 그리스도의 공로는 사제의 결의를 통해서 그에게 적용된다고 보았다. 또한 어떤 사람이 교회의 소속이며 어떤 사람이 교회와 교통을 가질 수 있도록 복위될 것인가 하는 것등은 감독이 결정한다고 보았다.
키프리안에 따르면 감독은 영감받은 선지자요, 성령의 은사를 부여받은 자요, 하나님의 영감과 환상으로 인도를 받는 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키프리안의 교회관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
그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감독들이 다스리는 교회를 말하고, 이 제도적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구원이 없다고 단정해 버린 것은 잘못이다.
그의 교회관은 교회를 외적 연합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가견적 교회만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영적 불가견적 교회의 성격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감독직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교회의 역동적인 면을 무시해 버렸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도의 참된 교제를 나누는 자유롭고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이, 체제와 제도 속에 얽매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그의 감독 중심의 교회관이 중세 카톨릭교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교회관은 박해에 직면한 교회를 보호할 책임을 맡은 감독으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지만, 배교자에 대한 엄격한 면을 찾아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은 그의 생애 동안에 북아프리카 지방에 있었던 도나투스파의 분열에 대한 처리로 고심했다. 그로 하여금 교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끔 만든 것도 바로 이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에서였다. 도나투스파는 도나투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도나투스는 어거스틴보다 약1세기 전에 칼타고의 감독 지위에 있던 사람으로 그와 그 일파는 기독교의 계율에 관하여 대단히 엄격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어떤 종류의 죄를 범한 사람은 교회로부터 제거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 교회의 회원이 되어있는 교회는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죄를 범한 교사로부터 과거에 받은 세례는 무효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나투스파에 대한 교계 지도자들 사이의 신학적 입장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다. 북아프리카의 중심지 칼타고의 감독이었던 키프리안은 어거스틴이 평소에 존경하던 인물인데 도나투스파와 신학적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키프리안은 박해시 생긴 배교자 또는 이단자가 배푼 세례의 정당성과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때문에 도나투스파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교회에서 배교자와 이단자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도나투스파와 같은 교회 분열자를 더욱 위험한 사람들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 몇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하고,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데 달려 있다고 주장하고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나투스파는 「참 교회(true Church)」를 정의하기를, 이단자는 물론 박해시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배교자들을 제거해 버린 흠없는 신자들만으로 구성된 교회를 「참 교회」라고 했다. 「참 교회」는 곧 「거룩한 교회」(holy Church)라고 했다. 이러한 도나투스파의 이론에 대항하여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안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영적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며, 신자들은 이 교회 안에서 성화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거스틴의 이와 같은 생각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비록 배교자나 이단자의 교회에서 베푼 것이라해도 합법적이며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게끔 했고, 이 문제로 인한 도나투스파의 분열을 합당치 못한 것으로 주장했다.
또한 도나투스파의 흠없는 신자들만으로 구성된 「참교회」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지상교회는 가견적 교회와 불가견적 교회, 또는 택자로 구성된 영적교회와 불택자가 섞여있는 제도적 교회를 구별하여 교회의 이중 구조를 주장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하나의 유형적 가견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을 성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의 성례주의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또한 도나투스파의 완전주의적 교회관에도 반대하여, 역사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세속적 기관이며 따라서 의인과 악인이 함께 섞여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현세의 교회를 하나님의 도성과 상이한 것으로 보는 동시에(불가견적, 영적 공동체) 또한 동일한 것으로 보고(역사적, 제도적 공동체), 하나님의 구 속의 섭리가 역사의 영역에서 실현되어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도성이 역사적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거스틴에게 "역사적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의 형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으로 되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도성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세적 역사적 교회는 항상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과 이중 구조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 경우 도나투스파의 사회적 이중성이 어거스틴에게는 종말론적 긴장으로 바꾸어졌다고 하겠다.
어거스틴은 배교자나 이단자가 베푼 세례라 할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말씀대로 베푼 세례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했다.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에서 쟁점이 된 문제는 박해시 배교자 또는 이단자에 의해 베푼 성례전의 타당성과 효과에 관한 것이었다. 도나투스파에서는 박해시 배교자와 이단자들이 베푼 세례는 무효라고 주장한데 대하여, 어거스틴은 그 유효성을 인정했다.
도나투스파는 주장하기를, 세례를 비롯한 다른 성례전과 또 성직자의 목회의 타당성과 효과는 오로지 성직자 곧 성례 시행자의 신앙과 행위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어거스틴은 세례의 기원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며, 사람이 복음을 통하여 회심 하지만 세례없이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복음과 세례는 서로 병행하는 것으로써 복음의 말씀없이는 세례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같이 세례의 타당성과 효과는 그것이 복음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과 병행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받는 사람의 신앙이나 행위 여하에 좌우됨이 없이 타당하며 유효적인 의식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성례의 유효성은 그것이 시행되는 공동체에 의존하기 때문에, 분파자들 사이에서 시행된 성례는 구원을 위해 역사하지 못하고, 오직 정죄를 위해 역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세례의 반복은 믿음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박해시 배교자나 이단자가 베푼 세례라 할지라도 말씀대로 시행되었다면 세례로서 타당하다고 인정하고, 이 때문에 이들에게 재세례를 베풀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배교자나 이단자가 베푼 세례의 타당성을 그 집례의 형식과 결부하여 인정하였으나, 그 세례의 효과, 즉 사죄와 구원의 효과는 정통 카톨릭 교회에 복귀하여 연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세례는 받았지만 사랑의 유대가 없으면 그 세례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주장하여 세례받은 자의 신앙을 중요시 하였다. 어거스틴은 성례의 유효성과 타당성을 구분했다.
어거스틴은 사도의 권위를 성경과 결부시켜 이해하고, 또한 성경의 권위를 그 사도성과 결부시켜 이해했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만이 지고의 권위를 갖게 되는데 성경만이 「고정된 사도성」을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거스틴은 교회의 제문제에 있어서 해결 할 수 있는 권위의 소재를 성경에 두었다. 박해시 배교했던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 밖에서 베푼 세례의 합법성과 그 효율성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어거스틴은 지금까지 교회에서 시행되어 온 관례와 관습의 권위를 인정하고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에 따르면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비록 배교자나 이단자의 교회에서 베푼 것이라고 해도 합법적이며 타당한 것으로 인정한 당시의 관례를 그대로 인정하고, 유아 세례의 경우에도 성경의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관습으로서 그대로 인정했다.
어거스틴의 이와같은 입장은 재세례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교회 회의의 결정도 거부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215년 칼타고에 모인 회의에서 이단교파의 세례의식을 인정하는 관습을 수정하는 결정을 내렸고, 후대에 키프리안은 동일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전대의 결정에 따를 것을 결의하였는데, 어거스틴은 이 경우에 키프리안과 그 회의의 권위를 부정하고 초대교회 사도들의 관례를 지지했다. 이 때문에 어거스틴은 배교자와 정통 카톨릭교회를 떠난 이단자의 세례를 부인하고 재세례를 주장하는 키프리안이나, 교회의 분리를 선언한 도나투스파에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회의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교회 회의의 권위를 아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교회의 회의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교회의 회의나 그 결정에 최종적인 권위를 두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는 생각하기를 교회 회의와 그 결정의 합법성과 유효성을 가지는 것은 성경이므로, 성경의 증거를 탐구해서 그 결정 사항이 진리일 때 우리가 추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세계교회가 일찍부터 지켜온 관습이나 관례가 사도들의 전통에 기인하였기 때문에 권위를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고정된 사도성」을 가진 성경의 권위는 심지어 초대교부들의 저서의 권위와도 비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어거스틴의 성경관은 종교개혁시대 루터나 쯔빙글리, 칼빈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의 교회관은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에서 확립되었다. 어떤 특정교회가 참교회라고 하는 개념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영적인 것만을 강조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그의 교회관은 후일 칼빈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칼빈의 교회관은 주지하다시피 개혁파 교회의 개교회론을 정립 시키는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중세 초기의 이러한 교회관은 부분적으로 로마교회의 탄생에도 이론적인 영향을 미친감이 없지않게 있다.
(3) 로마교회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가 자기의 피로 교회를 사셨다. 그리고 자기의 생명으로 살게 하셨다. 따라서 모든 권세는 그리스도에게 있게 그가 교회를 다스리신다. 교회의 머리일 뿐아니라 교회의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다스리신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교회를 사서 자기의 교회로 세우셨다. 그가 교회의 설립자이다. 그러므로 그가 권세를 갖고 교회를 다스리신다.
교회를 다스림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신다.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말씀의 봉사자를 세우셨다. 말씀을 선포하면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간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통치는 물리적인 세력의 행사가 아니라 신령한 은혜의 통치이다. 말씀의 선포로 사람들이 교회에 가입하고 또 거룩한 백성으로 자라간다. 이 일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통치는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교황이 믿음의 도리와 바른 윤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거기에 근거하고 있다. 교황의 통치에 순종해야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순종하므로 구원에 이르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가 되고 교회를 구성한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구현하기 위해 세워졌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의 직임을 지닌다. 이 말씀 선포로 사람들의 생명과 사망이 결정된다. 이것이 교회가 갖는 생명과 음부의 권세를 가졌다는 말씀의 뜻이다.
장로는 교회의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 세워졌다. 선포된 말씀대로 성도들이 살도록 하기 위해 심방하고 권면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치리는 성도들이 말씀대로 바로 살도록 권고하고 지도하는 것이지 권세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집사는 교회의 재산관리와 구제를 위해 세워졌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제하는 일을 쉬면 안되고 힘써 행하여 사회정의가 교회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이 모든 직분자들은 다 봉사자이고 권력행사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다. 교회는 권력기관이 아니고 구원기관이므로 봉사하는 것이고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매인다.
교회의 통치는 그리스도가 그의 말씀으로 행사하신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다 이 그리스도 통치를 위해서 세워졌고 다른 독자적인 권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례는 말씀과 분리해서 시행하면 죽은 성례가 되어서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다. 성례는 귀로 듣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므로 말씀과 함께 집행될 때에만이 성례가 본래의 직임을 다한다.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나 성례는 그 자체로는 완전한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느지를 선포하고서 그 구원의 확인을 위해서 성례가 집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립내용을 잘 밝혀야 한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성례를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 누구든지 성례를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합당하게 말씀의 봉사자로 세워진 사역자가 집행해야 한다. 또 임종석에서나 병원 혹은 개인집에서 시행할 것이 아니고 언약백성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시행해야 한다.
개혁교회는 로마교회와 루터교회와 달리 권징을 교회됨의 지표로 삼는다. 말씀의 선포로 거의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권징을 교회 성립의 필수적인 구성요건으로 보지 않지만 권징이 필요하다. 권장을 하지 못하면 교리와 교회의 거룩을 지킬수가 없다.
권징은 우선 윤리적인 면에서 시작하므로 윤리만을 그 전 대상으로 알기 쉬우나 윤리의 영역에서 권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리도 바로 지킬 수 없다. 권징은 교회가 전투교회로서 지상에서 죄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시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아직 완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릇된 가르침과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 행동을 고치는 교회의 자체 정화행위이다. 권징은 권면과 수찬정지와 출교로 구성된다. 권징은 교리를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교리가 교회의 생명이다. 말씀의 선포가 기본 교리에서 벗어나면 이단이 되거나 자유주의가 되어 기독교이기를 그치게 된다. 이단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중 일부를 합리적인 해석을 한 것이고 자유주의는 모든 교리를 다 합리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이단은 어느 일부분에서 합리적인 해석을 하기 때문에 쉽게 식별해내지만 자유주의는 모든 교리를 다 합리적인 해석을 하였으므로 쉽게 식별하여 권징을 잘못하게 된다. 특히 학적 방식으로 신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므로 쉽게 넘어가고 오히려 거기에로 물들게 된다. 교회가 자기 믿음에 대한 권징이 없이는 교회로 남기가 불가능하다.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면 이 가르침을 교정하거나 버리도록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출교해야 한다.
교회의 권징은 자체 정화작업이다. 성찬의 거룩을 지키지 않으면 교회가 거룩해질 수가 없다. 교회의 거룩은 성찬의 거룩에 성립한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일반 불신자들과 같은 삶을 살면 그 교회는 교회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죄악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좇아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고하고 가르친다.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수찬정지를 집행하여 교회앞에 고쳐야 할 사람임을 분명히 한다. 그래도 전혀 고치지 않고 일반 불신자들과 동일한 삶을 계속하면 그를 출교하여 교회 밖으로 내여 보낸다.
루터교회는 권징을 하지 않으므로 교리와 거룩을 바로 지킬 수가 없다. 그들은 사랑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각자의 자유에 내어 맡긴다. 그리하여 교회가 거룩을 유지할 수 없고 교리를 바로 지킬 수 없어서 다 퇴락하게 되었다. 로마교회도 권징을 하지 않는다. 로마교회는 듣는 교회와 가르치는 교회로 나누고 가르치는 교회에 거룩성을 귀속한다. 가르치는 교회가 대표적인 교회이다. 듣는 교회인 평신도들은 가접적으로 교회이고 간접적으로 교회의 특성에 동참한다. 따라서 교회가 권징을 하지 않으므로 교회가 도덕적으로 말할 수 없이 타락하여도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제들의 윤리생활에 대해서도 아무런 규제가 없으므로 신불신간에 아무런 차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권징이 교회를 발생시키고 구성하는 요소는 아니지만 교회가 교회로 남으려면 권징이 교회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성화가 완결되지 안했으므로 교회는 언제나 권징을 행하여 교회의 거룩을 지켜야 교회가 교회로 남아 거룩한 구원기관이 될 수 있다.
특히 재침례교의 성장은 괄목할만 한 것이었다. 재침례교도들은 제16세기 개신교 개혁의 좌파에서 일어난 신자들의 작은 무리였다. 그 명칭은 "다시 세례받은 자들" 이라는 의미로서 그들의 대적들이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 당시 다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였다 그들의 지도원리는 신약성경의 초대교회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양측 모두의 많은 특징을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배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작은 비밀 집회소에서 회합을 가졌다.
그들의 유일한 권위는 신자들의 회중에 의해 이해된 바의 복음에 있었다. 신자들의 회중은 이론만으로가 아니라 행암으로 그 회중에 전적으로 가담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종교에 대한 정자로서의 권력의 정당성을 배격했으며, 지방관리는 신앙의 문제에 대해 권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그러한 주장은 정말로 혁명적인 교훈이었다. 그 당시 권력에 대해 그렇게 반항적 태도를 가르치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박해, 유형, 사형 등이 달랐다. 오늘날에도 이런 예는 있다.
진정한 재침례교에 대한 그의 정의는 여기에서 인정되었다. 그 명칭은 구라파의 급진적 종교단체들에게 광범위하게 붙여졌다. 거기에는 격렬한 혁명론자들이 포함되었고 프랑크(Franck)와 슈벤크펠드(Schwenkfeld)와 같은 도덕률 폐기론의 "개인주의적 영적 해석자들"이 포함되었다. 리텔(Littell)은 그 용어를 이 극단들 사이의 훈련된 단체들에 국한시켰다; 즉 스위스 형제단(Swiss Brethren), 후터파 교도들(Hutterites), 남부독일형제단, 네덜란드 메노파 교도들에 국한시켰다. 재침례교도드리 신앙과 연관되지 않는 사항에 관해서는 지방관리에게 순복했지만, 그들은 종를 그들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충돌하는 교회가 적지 않았다. 지방관리가 종교 문제에 관해 강제 행사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재침례교도들은 그런 행정관이 될 수 없었고, 그런 행정관의 신하(군인들)도 될 수 없었으며, 봉신이 되는데 필요한 선서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자세는 평화주의의 자세라기보다 무저항의 자세였다; 불법적인 악에 대해, 그리고 합법적이면서도 강제적인 행정관의 권력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폭력적 박해를 반대한 것처럼 폭력적 혁명도 반대했다. 그들은 그들의 최종적 해답으로서 오직 순교를 제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순교를 당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들은 콘스탄틴 치하에 있었던 것과 같은 교회와 국가 사이에 밀접한 결합을 전적으로 배격했다. 그들은 그러한 결합이 교회로 하여금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의지하도록 하는 타락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들은 온갖 허영, 겉치레, 형식주의, 그리고 교직 계급제도의 관료를 배격했다. 그 대신 그들은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생활 양식을 따랐으며, 그들이 소유한 것을 서로 나누었다. 그들은 후터교 공동체의 "공동 사용"에 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유아세례를 배격했다; 왜냐하면 유아세례는 복음에서 명령된 훈련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기쁨으로 받아드리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드리기 위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책으로 인해 교회는 진정한 세례를 받지 않는 이도교들로 채워졌고, 따라서 교회는 신약성경적 의미에서의 교회가 아니었다. 그들이 주장한 진실한 교회는 신자의 세례가 유일한 출입구이고, 형제들의 상호 권면이 유일한 벽이며, 파문이 유일한 회초리인 그런 교회이다.
파문은 재침례교 활동의 "영적 질서"에 해당하는 것이다. 교회의 규칙을 위반하는 교인은 동료 교우들과의 모든 개인적 접촉이 끊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접촉도 포함된다. 그는 따돌림을 당한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거나 그의 참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게 음식과 의복과 거처는 주어지지만(궁핍한 비그리스도인에게도 이것들은 주어진다.) 그 단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거부된다. 그 단체의 존경이 그에게 가장 큰 의미를 갖고 있는데 말이다. 오직 죄를 깊이 뉘우치는 복종에 의해서만이 그는 용서를 받을 수 있으며, 정회원권으로 다시 복권될 수 있다.
이러한 제재는 너무 심하게 들리기도하고, 또는 충격이 심히 괴로운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제재 없이는 진정한 교회의 규율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그 제재는 결코 독단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교회 표준은 교인이 원하는 마음을 가진 성인으로서 철저한 준비를 한 후에 세례를 받았을 때 그 교인에게 알려진다. 새 표준이나 옛 표준들의 수정은 전체 회중에 의해 정해지며 교인이면 누구든 모든 발언권을 동등하게 갖는다.
민주주의 국가나 교회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재침례교 안에서 진정한 참여의 민주주의 형태가 구체화되었다. 비교적 합리성을 갖는 가운데 교인들은 인도함을 받기 위해 토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다. 의견의 일치가 달성되었을 때만(다수투표가 아니라 전체적 합의를 말한다.) 성령님께서 그 회중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신 것이로 생각한다.
의견의 일치가 달성된 후에는, 그회중이 새로운 의견의 일치에 이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파문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그 의견이 일치된 사항에서 이탈하지 못한다. 이러한 제재는 회중에 의해 분노나 보복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슬픔으로 시행된다. 그 제재는 그 단체가 위반한 교인에게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반한 사람이 그의 위반으로 인해 스스로 그 단체를 떠나는 의미의 제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위반한 교인이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 단체가 그들 가운데 그 교인이 여전히 있는 것으로 가장할 수 없다. 그 단체에 소속하고 있든지 소속하고 있지 않든지 둘중의 하나이다. 소속하고 있다면 그는 표준들을 지켜야 한다. 만일 그 표준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그때부터 그 단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재침례교도들은 훌륭한 신분을 갖고 있는 교인들이 서로서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즉 그들은 길을 잃기 시작하는 ㄱ인을 보면 그를 충고하여 올바른 길을 걷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만일 어떤 교인이 병석에 있거나 궁핍에 처해 있다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그를 돌봐주고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오늘날까지도 Amish(엄격한 초대 재침례교의 형태를 갖고 있음) 가운데는 복지혜택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없고, 흉악한 범죄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는 삶이 없으며,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헤결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보살펴 준다.
더욱이 그 회중의 모든 교인이 의견 일치를 찾는데 참여하기 때문에 모든 교인은 그 회중의 생활이 기초를 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교인은 그 회중의 복지를 위해 충분한 몫의 헌금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후터교도들만은 모든 물품을 공동으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렇게하고 있다. 만일 어떤 교인이 자신의 몫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 교인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재침례교도들은 주의 만찬에 대해 아주 철저하다. 어떤 사람이 자격이 없는데 그 만찬에 참여 한다면 그 사람에게 해가 올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 사람이 벌을 받게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회중 전체가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들은 불신자와 신자가 함께 참여하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분리되지 않고 "영적 질서"가 시행되지 않은 가운데 모두 성만찬식에 참여하는 그런 기성 교회의 성만찬식에 거부했다. 그들은 가능한한 불신자들(재침례교도가 아닌 사람들)ㅘ의 밀접한 관계를 피하려고 힘썼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더불어 일을함께 하며 선한 이웃이 되기를 힘쓰기는 했지만 친교나 공동체나 결혼관계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모든 거주자가 출생 후 곧 받은 세례에 의해 교회에 받아들여지게되는 당시의 지역교회들과는 달리 재침례교도들은 끈기있는 선교사들이었다. 개혁자들은 오직 사도들만이 온 세계에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재침례교도들은 "선교의 사명을 모든 교인들에게 결부시킨 첫 번째 교도들에 속하는 교도들 이었다." 그들은 친구들이 많은 고향에서, 그리고 지역을 잘 아는 그 고향에서 때를 기다리며 있을 수 있는데도, 마치 생명의 위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새 영토에 들어가기를 주장했으며,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영의를 가졌다. 그들은 믿음을 위해 고난을 받을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 그렇게 했고, 그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스위스의 몇몇 주 에서는 그들의 재산이 몰수당했고, 그들을 추적하여 붙잡거나 혹은 영토 밖으로 쫓아 내기 위해 수많은 특수경찰이 임명되었다. 다시 세례를 준다는 죄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재판이나 심문을 받지 않고 물에 빠트려 죽임을 당하는 극형에 처해졌다. 그 밖에도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으며, 혹은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사람들은 누구나 자주 폭력에 의한 죽음을 당했다.
재침례교는 어디에서나 박해를 받았지만 구라파로 건너가 남부 독일의 거의 전지역에 퍼졌고 그 운동은 계속해서 성장하며 전파되었다. 유형받은 사람들에 의해, 또는 여행자들이나 선교사들에 의해, 재침례교는 가장 맹렬한 위협을 무시했고, 가장 악의에 찬 박해에서 살아 남았다. 그 박해는 교회나 국가가 힘을 결합해 가해오는 박해였다.
재침례교는 많은 후손들 중에서 각각 충성의 도를 따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침례교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서양 문명 속에서 현재 널리 받아들여진 많은 중요한 요소들은 재침례교도들에게 그 공헌을 돌릴 수 있다. 그 가운데는 종교적 사항에 대한 세상의 탄압 베제, 교회와 국가의 분리, 일반적 공동교육, 한 공동체 내부의자치 등이 있다. 우리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을 받아드리는데 성공할 것이다. 그런 요소들 가운데는 비폭력, 검소함, 상호보조, 세상으로부터 자유케 된 삶 등이 있다. 물론 이러한 재침례교도들의 발흥은 너무 과격하여 그당시나 지금에도 긍정 부정적인 논릐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교회들의 잘못된 경향과 세속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 그 당시의 교회들에 경각심을 주고 새로운 기독교 갱신운동으로 나아갔던 점에 있어서는 오늘날 우리 독립교회들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6) 웨슬레의 부흥운동
18세기에 영국은 도덕적 빈혈증을 앓고 있었다. 가난, 사악, 술취함, 불의, 부패는 어디에나 있었다. 교회는 텅텅 비었고 감옥은 가득찼다. 1750년에 영국에서 소비된 술은 1천 1백만 갤론이 넘었다. 이러한 상황은 윌리암 호가드가 진 골목과 그밖에 다른 그림에서 그린 것들과 흡사했다.
영국국교는 그 나라 안에 1만 1천이 넘는 성직론을 갖고 있었는데 ( 국가 세입에서 성직자의 봉급을 지급하는 그런 성직 자리) 그 가운데 6천은 그 교구 근처에도 가지 않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구를 박봉을 받는 목사보들에게 빌려주고 자신들은 런던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거나 혹은 대륙에서 살았다.
빵 한덩어리 훔쳤다고 교수형에 처하고 소매치기의 손을 자르는 그런 비인간적 처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늘어났다. 고아와 기아로 허덕이는 극빈자들은 교구 위원들의 책임이었지만 그 위원들에 책인에 대한 성의가 어떠했는지 1750∼1755년 사이의 런던의 교구 기록부에 의하면 많은 "구빈원"에서 입원한지 1년 이내에 모든 어린이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렇게 침울한 환경 속에서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사역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영국 국교의 성직자였지만, 이들의 "감동적" 이고도 "열렬한" 설교 때문에 이들에게는 대부분의 교회의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거리모퉁이나 야외에서, 또는 감옥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여하간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없었다.)
옥외에서의 이들의 집회는 종종 난폭한 삶들에 의해 해산되었다. 난폭한 사람들은 설교자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고, 군중 속으로 소를 몰기도 했다. 두 형제의 생명이 종종 폭도들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때로는 기성교회의 성난 성직자들이 폭도들을 선동했다. 그들 성직자들은 그들 자신의 교구에 웨슬레 형제가 나타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웨슬레 형제는 그 시대의 출판물에 의해 비난을 받았고, 만화를 통해 조롱을 받았으며, 다른 성직자들에게는 불신암을 받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두 형제의 설교를 듣기 위해 떼를 지어 모여 들었고 두 형제가 설립한 감리회의 회원이 되었다.
요한 웨슬레는 작은 키에 몸도 약했지만 탄갱에서 나온 수천명의 광부들에게 자주 설교했다. 광산에서 12시간, 혹은 그 이상의 작업을 한 광부들은 지쳐있었지만 요한 웨슬레는 그들이 비록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설교했다. 마침내 석탄먼지가 묻은 그들의 양 볼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기성교회의 배척을 받은 감리교도들은 기성교회를 떠나려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속회"로 개인 가정에서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문맹이었다.) 그 모임에서 그들은 함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에겍 의로운 권면을 했다. 회원 중의 한 사람이 속회 지도자로 지명되었는데 그의 임무는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발전을 보살피며 매주 그들 각자를 개인적으로 권면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절망에 처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열성적이고 의미있는 조직체 속에서 뭉쳐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조직체는 그들의 삶의 행동을 보살펴 주었고 그들이 시험이나 고통을 당할 때 길을 인도해 주었다.
요한 웨슬레는 그의 추종자들을 보살피기 위해 전국 어디나 다 찾아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비상한 노력을 했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여행을 했으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설교를 했고, 말을 타고, 혹은 마차 안에서 글을 쓰기도하고 읽기도 했으며, 속회 지도자들의 책임하에 있는 영혼들의 상태에 대한 속회 지도자들의 기록을 검사했다. 웨슬레에게는 수많은 그의 추종자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을 돕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속회로 된 하나의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들을 위해서 평신도 설교자들을 세웠다.
처음에는 그들 평신도들이 그들의 인도를 받을 사람들에 비해 별로 낫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그 땅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진실한 도덕적 영적 인도자가 되었다. 그들은 많은 분야에 있어서 웨슬레의 친밀한 감독에 힙입었으며 온갖 제목(진단적인 충고를 포함하여)관한 교육 서적에 힘입었다. 웨슬레는 영국 전체를 여행하는 동안 그들을 위해 그 서적들을 저술했는데 옛 주물 공장에 세워진 인쇄소에서 그 서적들을 인쇄했다. 이러한 열성적 지도아래 웨슬레 형제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정직과 검약과 근면과 열심으로 인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술꾼과 좀도둑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건실하게 되었고 그들의 속회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일꾼이 되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의 불신자 이웃들은 저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그들에게 종종 맡겼다. 이웃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보다 감리교도들을 더 신임했다. 조만간네 그들은 자존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절망의 압박이 사라지자 그들은 삶의 새 의미와 목적을 발견했던 것이다.
독립교회 역시 웨슬리의 부흥운동처럼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교회가 영적 도덕적으로 힘을 잃어버리고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간다면 함께 휩쓸려 갈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조직에서 빠져나와 교회의 순수서을 지키기 위해홀로 서기를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독립교회 역시 대세에 함께 떠내려가기 보다는 그 물결을 거슬러 가는 길을 택하여 여러 가지 핍박과 고난을 당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현대교회의 여러가지 문제와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 특히 몰트만의 교회관을 통하여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교회에 대한 도전을 살펴 보았다. 또한 이러한 도전들을 염두해 두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교부들의 교회관을 통하여 또한 칼빈의 교회관을 통하여 개혁파 교회관을 정립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칼빈의 제자 베자에 따르면 「개혁파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라고 했다. 과연 오늘 나에게는 개혁할 부분이 없는지, 개혁은 바로 나에게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처하여, 앞으로 수년 후면 21세기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개혁파 교회관을 확립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고백을 했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결정한 니케아-콘스탄노플 신조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AD 381)는 교회에 대해 4가지 중요한 것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의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하나의 교회를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외면적 제도적 통일이 아닌, 내면적 영적 특성을 지닌다.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거룩한 교회를 고백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중보적인 의로움의 효능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세상에 나타나야 한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성도들의 교통이다. 거룩을 위해 힘써야 한다. 거룩의 속성을 포기한 교회는 배교한 교회로 불리워질 수밖에 없다.
보편적 교회를 고백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어느 한 단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완전한 보편교회는 택자들의 총수에 해당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 의해서만 식별되는 불가견 교회이다. 그러나 이 불가견교회도 지상의 가견교회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으며, 가견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아시고, 자기 백성을 지도하고 계신다.
끝으로 우리는 사도적 교회를 고백한다. 사도적 교회라고 해서, 로마교회에서 주장하듯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표자로, 로마교좌를 대표하는 제1대 교황이라고 하는 로마교회의 주장을 합리화할 수 없다. 우리는 사도들의 권세가 사도 이후에 계승된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 찾지 못한다. 우리가 사도적 교회라고 하는 것은 바로 사도적 말씀의 전통, 사도적 교리의 전통에 선 교회를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남기신 말씀과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성경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도적 말씀의 전통에 선 교회를 고백한다. 오직 성경만이 교회를 지도하고 현대교회의 표준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개혁파 교회, 정통 칼빈주의 교회의 바른 고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적 교회의 지상적 형태인 개교회, 어차피 독립적인 교회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교회들은 하나의 교회, 거룩한교회, 보편적교회, 사도적교회라는 의식만 가지고 있다면 어느 누구로부터도 종교적, 관습적 편견이나 행정적인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독립교회는 성경적으로 보나 신학적으로 보나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아도 타당한 것이며, 성경에서도 어떤 특정한 교회의 형태를 주장한 곳도 없지만 역사적으로도 지상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안에서 각사람에게 주신 양심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교회의 형태와 운영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 성장의 이면에는 세속사회의 급속한 산업화와 물질 물량주의의 사조와 함께 외적 양적 성장에만 집중한 나머지 내면적이고도 영적인 면을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진 부정적인면 또한 심각하다 아니할 수 없다.
교회의 대형화 일변주의, 저급한 신비주의, 세속적 기복신앙, 여기에 교파분제에다 가당치않은 교권주의까지 가세하여 그야말로 한국교회는 도리킬수 없는 벼랑길을 내리닫고 있는 듯한 위기감 마저 들게 하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어떻게하든 교인수를 늘려 대형교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목회자들의 연민스런 집념과 이를 목회성공으로 인정하는 교계풍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교회 성장이라하는 것은 교인수가 늘고 헌금액이 늘고 교회사업의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이루워졌다고 할 수 없다. 교회성장에는 성도의 수가 증가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성도의 영적성장이 이루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성장의 참된 의미를 선각하여 이를 위해 힘써온 몇몇 교회가 있다. 소위 독립교회가 그것이다. 이를 한국의 독립교회들은 한결같이 기성교단에서 추구하는 양적 성장주의를 혐오하며 소수 질적 성장을 위해 교단을 탈퇴 혹은 새로 설립하여 목회자 자신의 신앙의 양심을 따라 소신껏 목회를 하고자 함이 그 근본 이유로 삼고 있다. 본 연구는 저들 독립교외들의 외적성장이 아닌 또 다른 성장인 교회 영적성장을 위한 노력들 중에서 신앙운동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를 조사함으로써 교회의 존재 의의를 알아보았고 조사했다. 이들 교회의 설립배경 및 예배의 형식, 또는 그들의 교회관등도 결코 간과 될 수 없고 중요한 것들이라서 계속하여 조사연구가 있어야 될 것이다.
조사방법에 있어 수많은 독립교회를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어 그 모델로 세교회를 들었다. 이 교회들은 대동교회(서울 중곡동 Tel.469-7167) 성약교회(서울 동자동 Tel.754-8319) 아현교회(서울 아현동)인데 이 교회들은 독립교회로써 추구하는 신앙노선이 정확하고 그 특징들이 선명했다. 대동교회는 신앙과 신학의 일치를 통해 견고한 신앙을 구축할 수 있었고 신학을 강조하고, 성약교회는 독립 개신교회로서 개혁주의 신앙의 전통을 고수 하려하고, 아현교회는 김현봉목사의 뜨거운 헌신과 모범이 이후 많은 독립교회들을 탄생시키게 된 계기가 된 점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상기 세 교회의 설립 의의에는 공통된 점이 있다. 즉 교단교회는 교단이라는 대집단적 조직속에서 참된 교회로서의 그 빛을 잃고 정치적 사회적 단체활동 기구로 전락 했거나 파벌과 교권쟁탈과 제사장적 신성한 직분을 세속적 야심의 권세직으로 바꿔 놓았으며 대교회 지향적 수단과 방법은 온갖 부정과 타락을 가져오게 되자 이에 극도의 회의감 속에서 교단이라는 절대 구조를 이탈하여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회복해 보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독립시 문제가 되는 것은 독립된 개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토대가 확실하고 선명해야 한다. 그 자체가 불분명하고 독립의 목적의식이 희미하면 이단으로 빠져서 본래의 취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기존 교회의 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독립시에 선명한 신학적, 신앙적 지표가 확립되어 교단 교회를 향해 그 모순을 지적하고 그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 사교화 내지는 이단의 길을 걸어 배교하는 교회의 모습을 낳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위 세 교회는 적어도 이러한 점에서는 그 독립의 목적의식이 비교적 분명했다 볼 수 있다.
특히 김현봉목사와 아현교회의 건립은 그의 헌신과 뜨거운 구령의 열정으로 인하여 한국교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이다. 김현봉목사는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체험한 직후 하나님 나라건설을 먼저 해야 할 것으로 믿어 사회운동가에서 신학생으로 변모하게 된다. 러시아 영내의 한국인들이 조직한 '노회'의 추천을 받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하여 1928년 제 23회로 졸업하게 되었는데 졸업과 동시 서울로 오게 되었다. 이때 공덕(리) 교회를 맡아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남대문교회 당회장 오순영목사가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다. 그는 아들, 딸 낳지 않기로 하고 당시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이었던 28세의 처녀 박천선과 결혼하였다. 결혼직후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당시 공덕교회에 홍장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집사일을 보고 있었다. 이들이 성수주일을 하지 않는등 멋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여러번 권면하였으나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사임하고 새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가 아현교회인 것이다. 아현동 37번지, 공동묘지터에 빈민촌이 세워졌는데 그곳에서부터 개척케 된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께서 교회에 내주 하시므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신다. 따라서 노회, 대회, 총회같은 상회들이 개교회를 지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개교회를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오, 교회마다 개교회의 독립성, 자치권, 보호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조영엽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대동교회나 성약교회, 아현교회는 이러한 원리에 충실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교회의 독립성을 너무 추구한 나머지 타교회나 교단들과의 관계는 소원한 것이 아니었을까?
구제와 선교 같은 하나님의 일들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을 같이하는 타교회들과의 상호협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인하여 핍박을 받을때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엄습하였는데,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여러 교회에 구호를 요청하였다. "여러 해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행 24:17),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 15:25-26),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갈 2:10) 이에 호응하여 온 교회들이 자원하여 구제에 적극 참여하였다. 여러 교회의 위원들이 구호품과 구제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서 사도들에게 맡겼으며, 사도들은 성령님의 지도하에 구호를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안디옥교회가 할례 문제로 쟁론이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15:1)고 하였다. 안디옥교회는 대표들을 선정하여 예루살렘 공회에 파송하여 문제해결책을 요청하였고, 이에 응하여 예루살렘 공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교회에 파송하여 일을 수습하였다.
교회의 예배들도 대동교회나 성약교회는 개신교 교회들의 예배의식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형식이나 제도보다는 내용과 본질에 더 치중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중에 특히 김현봉목사는 마음을 다하여 예배를 드릴 것을 권면했다. 주일학교 예배는 7시 30분(오전)이었는데 일년내내 변함이 없었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정성드려 주일 지키며 예수 믿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장년주일학교는 9시에 시작하여 10시 15분까지 성경을 차례대로 강해해 나갔다. 주일 낮 예배는 10시 30분 부터 11시 30분까지 드렸다. 오후예배는 오후 2시부터 1시간 드렸다. 그리고 저녁예배는 없었다. 예배는 기도를 시작하고 찬송한 후에, 성경을 봉독하고 설교를 하였다. 그 사이에 간간이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설교를 마친후 축복기도로 예배를 끝냈다. 온교인이 온종일 안식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조사한 것은 제시한 독립교회의 신앙 노선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이 세 교회는 각 교회 나름대로 추구하는 신앙의 노선이 문서로써 제시하고 있는데 대동교회는 설립자인 김석준 목사의 강의인 "기독자의 바른 자세"로 나타나 있고 성약교회는 역시 설립자인 김홍전 목사의 저서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하여 그 방향을 언급하고 있고, 새길교회는 그 교회 고유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여 스스로 그 노선을 밝히고 있다.
a. 대동교회
이 개념은 현존 세상에서는 자녀로 구별되난 무궁 세계에 가서는 딸은 없고 전부 아들 뿐이다.(엡1:5). 그 세계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세계가 아니고 오직 누리는 세게이기 때문에 아들 딸이란 구별이 없고, 또 그 세계는 육체가 아니고 영체이기 때문에 아들 딸이란 구별이 없이 다 하나님의 아들 자격을 가지고 자권으로 행세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자녀한 말은 세상에서 신체를 가지고 있을 기간만 사용되는 것이요, 그 세계에 가서는 다 동등한 자권(子權)으로 행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자권으로만 만족한 세계요 누리는 세계이다.
이 말은 택함받아 구속입은 성도가 사선에서 끝나거나 혹은 목석으로 변하거나 금수로 화할 것도 아니고 영원불멸의 존재임을 나는 확신 해야한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정, 사랑, 마음을 두지말고 언젠가는 주님이 부르실 때 이것과 이별한다는 것을 알고 살되 영세주의, 초절주의가 되서는 안된다.
이 뜻은 언제 떠날지 예고 없다는 말이며, 영원에 비교하면 빨리 떠난다는 말이다. 즉 영과 육이 다 떠난다는 말이다.
롬5:3)
현세는 현실 세상이며, 여기는 우리로 영원히 누리라고 주신 곳이 아니기 때문에 현세에서 선한 싸움 다 싸우면서 영적 실력을 양성해야 된다. 현세 아니면 우리는 영적 실력 양성은 못한다.
성도의 영존처는 무궁 세계라는 믿음이 확실해야 한다. 이 삶의 목적이 분명치 않으면 성도의 신앙은 자기 위주의 신앙으로 이기화 된다.
이 땅에서 영적 실력을 기른 그대로 무궁 세계를 주리기 때문에 환경이 교차되는 현세에서 영적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해야한다.
3. 독립교회의 정치와 행정
개교회의 회원들은 치리할 권징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개교회로 하여금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악한 사람은 교회에서 출교하라고 명령(고전5:13) 하였기 때문이다. 교회의 순수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교회는 권징권을 사용하여야 한다. 권징은 교회의 임무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칼빈도 교회의 표지의 요소중의 하나로 권징을 이야기한 것이다. 독립교회 또한 권징을 시행한다. 아니 오히려 기존의 교회들이 성경적인 권징을 시행치 않는데 대한 반발로서 세워진 교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예로 들고 있는 세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독립교회들이 권징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므로 공동체적 책임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계1:9)가 우리가 속해있는 교단에 의하여 증거되는 증거와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상호간 물심양면으로 서로 협조하고, 교리적인 문제들을 규정짓고, 이단을 경고,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예루살렘 공회에서는 개교회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개교회들이 성경 원리대로 시행하도록 지도하였다. 금일 다수의 교파들은 정치적 교권이 너무 강하여 중요시해야 할 신앙적, 교리적 문제들은 소홀히하고 개교회 정치와 행정에만 너무 깊이 간섭하는데 이것은 성경원리에 어긋난다. 어떤 의미에서도 교권 침해는 정당화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개교회 중심이면서 상하, 또는 좌우협력, 유대강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각 교회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따른 제도를 갖게 된다. 교회의 독특한 제도를 찾아보기는 어렵고 일반적인 교회제도와 다를 바 없다.
교회 전체 운영을 위해 임사부를 두고 산하에 재정부, 조직부, 교육부, 전도부, 건축부, 수리부, 관리부, 수양관(기도원), 출판부, 봉사부, 구제부, 섭외부, 찬양부, 성가지도, 반주 등을 두어 평신도가 각 부에 부(차)장을 맡아 교회를 주신 은사대로 섬기게 한다. 그리고 교육부에는 청년부(대학부 포함), 중.고등부, 유.초등부를 두고 각 부서에 부장과 교사, 부교사를 임명하고 각 부 후원회를 조직하여 교육비를 자체 충당하도록 한다. 여기서 교사는 1명이며 전도사와 같은 일을 하되 학부생에서는 전도사를 세우지 않는다. 부교사는 보통 교회의 교사의 역할을 한다. 여전도회는 40세 이하를 에스더라 칭하고, 40세 이상을 마리아라 칭하여 이원화 하고 있다.
b. 성약교회
월중 1회의 정기 공동의회를 소집해야 한다. 부정기 공동의회는 운영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수시로 소집될 수 있으며 운영위원 과반수나 등록교인 1/3이상의 요청에 의해서도 소집될 수 있다.
아현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와 행정에 대한 자료는 없다 단지 그의 가르침의 단편들을 정리 해볼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추측 할 수있다.
칠에 대해서는 "교인이 잘못 하더라도 그 교인의 정도와 형편, 처지, 교회의 상황을 보아서 가르칠 것이고 만약, 벌을 잘못하년 악감정만 나게 해서 손해만 본다.그대로 두면 스스로 해는 볼지라도 이것저것 생각해서 그대로 두는 것이 법이다. 자신이 되어야 성경으 ㄹ써먹고, 이 말씀이 (성도들 자신으로 하여금) 포용성, 관용성, 그리고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하나님의 성품과 같아진다" 이것은 교회가 권징을 시행은 하되 신자의 신앙정도에 따라서 또 가능하면 말씀을 가르쳐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자는 것임을 알 수있다. 또 장로에 대해서는 "장로는 교회를 쥐고 펴고하는 짓을 하면 장로의 자격이 없다. 장로가 교회의 주인도 아니며 목사도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장로는 주인이요, 목사는 품팔이 꾼이 되어있는 것이다. 목사가 장로를 책망하면 책망은 받지않고 목사를 쫒아내는 것이 다반사이다. 교인 몇 명에 장로 한명을 세우는 것은 성경에 없다. 숫자와 조직의 일부는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조직에 지우쳐서 자격이 없는 자도 장로를 세우니 이 사람이 목사를 가르치고 쫓아내고 하는 것이다. 장로는 목사를 주관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장로가 되지 아니하였으면 오히려 범죄치 않을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목사가 교인만 못한 자가 있을 때에는 불가불 교인의 대표와 장로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장로는 목사의 조력자이다.그런데. 권세를 부리고 주인 노릇하며 일꾼 내쫒고하는 것은 벌 받을 일이다. 장로가 장로의 일을 못하면 교회의 분재의 원인이 되고, 장로 때문에 목사가 교회일을 못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설교에서 볼 때 아현교회는 장로교회는 아니지만 장로제도를 두고 있으며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특히 공동의회에 의한 교회운영과 정치를 하였음을 볼 수있다.
위에 제시한 교회들은 모두 기존적으로 내려오는 장로교회제도와 헌법을 토대로 교회 행정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약교회의 경우는 평신도가 주축이된 교회의 모습을 찾고져 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운영지침을 마련한듯 하다. 각 교회들이 대교회의 조직중심, 제도중심의 교회보다는 성경을 올바로 배우려는 자세가 기초적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제도와 행정면에서 부실한 면도 없지 않다. 그리고 각 교회의 예산 편성 집행보다는 결산 위주의 집행을 했고 헌금 상황을 잘 파악 못하여 구체적으로 각 부별 행사별 %를 조사하지 못했으나 헌금의 60%이상을 구제헌금으로 지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통점은 제도보다 성경의 진실된 가르침과 배움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평안교회의 경우는 김현봉 목사가 늘 가르치기를"교회에서 큰 자가 천국에서도 큰 자이다. 남을 위해 일하고 남을 위하는 자가 큰자이다. 자기 일 하고 또 힘이 있으니 남을 위해 일해주는 것이다. 이이가 큰자이다. 자립심을 길러야 한다. 이왕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공부 할 형편이 되지 않을 시는 자기가 고학으로 하는 것이다. " 그러면서도 늘 구제를 강조하였다. "빌어 먹을 수 있는 자를 도와 주는 것은 결코 그를 도와 주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자력을 못 길러 주는 것이고 이런 자가 많을 때는 국가가 가난해진다. 그러나 조금 도와 주어 그의 장래에 유익을 줄 수 있다면 힘껏 도와 주는 것이다. 구제는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해를 끼치 것이 된다." 고 했다. 물론 아현교회의 김현봉 목사는 다른 교회행정은 교회의 직원들에게 위임 했지만 교회의 재정 만큼은 그가 직접 괸리 하면서 전권을 가지고 주로 교회의 구제를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아현 교회 안에서는 전혀 불평이 없었으나 바깥에서는 독재라며 빈정 되기도 했다.
Ⅶ.독립교회의 가능성
독립교회의 장점이며 자랑이기도 한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문제가 향후 독립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것이 틀림없다. 즉 기존의, 교단이나 교파에 지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 나가고 있는 교회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교단 중심 노회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국교계의 풍토상 독립교회의 홀로 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정영엽은말하길
"우주적 교회는 모든 세대에 구속함을 받은 모든 참된 성도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개교회들은 우주적, 무형적, 신령한 교회들을 반영하는 참된 유형적인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증거되며, 성례가 바로 시행되며, 권징이 바로 시행되어야 한다. 신자들이 개교회에 가입하지 않아도 우주적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가? 오늘날 교회들의 큰 문제들 중 하나는 개교회 중심, 교파 중심이 강하여 전 세계에 편만에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우주적 교회의 성질에 관하여 망각하고 개교회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개교회 중심은 교회를 물량주의로 하락시키며, 세속화시키며, 심지어는 동일한 신앙을 교백하는 교회들, 신자들과의 신령한 연합도 저해시키며, 개교회로서 수행할 수 없도록 하는 중요 요인들이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수의 교회들이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타락되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 방파제로서의 교회가 아니다. 상당수의 신자들은 무지중의 신조와 신앙고백이 변질되고 신앙적 관계를 끊어야 한다. (계 18:4)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 힘쓰는 보수 근본주의 교회로 옮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독립교회는 이러한 경향이 너무 강하여 오리려 교회의 연합을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몇 몇 교회들은 이러한 경향이 강하여 독자노선을 강하게 추구하여 오히려 그리스도의 교회의 연합을 해칠 수도 있음을 우리는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교회가 타락할 때 진실된 많은 신도들 중에는 그 여파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도 등한시 또는 경시, 심지어 부인하는 경향이 발생된다. 따라서 개교회의 일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우주적 교회의 회원이 아닌 사람들, 즉 불신자들은 개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은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지상의 유형적 교회는 실제상 가라지와 쭉정이도 들어있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 대하여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교회 내에 위선자들을 포함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위선자들, 불신앙자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상관이 없는 자들이요, 교회의 회원들이 아닌 이상 개교회 회원들인 신자들에게 신앙상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교회를 보호해야 하며, 위선자들, 불신앙자들이 교회에 침입해 오면 추방해야 할 것이다.(마 18:15-18; 고전 5:1-13) 그러므로 독립교회들은 개교회의 독립성을 강조는 하되 신앙상 교리상 별 차이가 없는 다른 교단 또는 형제교회들에 대한 연합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섬세하게 모색해야 한다.
독립교회는 앞으로 한국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많은 우려와 경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그것중의 하나는 목회자의 과도한 카리스마로 인한 폐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독립교회의 탄생 이면에는 목회자의 강력한 리더쉽과 독선에 가까운 홀로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생전에만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교회들은 대개가 기존의 교단들이 지나친 교파주의로 개교회를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교권주의와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파행적으로 운영되는것에 반대하여 교단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홀로서가 한 경우가 많다. 개력교회의 신앙지표인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와 권징을 무시 혹은 왜곡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자신들이 속하여 있던 교단을 탈퇴하여 독자적 행정체계를 잦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독립된 행정과 신앙관을 가지고 창립한 교회등이다. 이러한 독립교회의 발생이유는 그 당시로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지만 시대가 지나고 그러한 요인들이 상당히 제거된 뒤에도 과거의 전통에만 묶여 있게 되는데 이는 목회자의 영향력이 너무 많이 교회에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설립자 혹은 목회자 개인의 신앙이 성도들의 신앙을 극단적으로 폐쇄시켜 사교화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독립교회의 실제적인 출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세화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독립교회들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서 지적한 목회자의 지나친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의 보완이 필요하다. 이에 대하여 엄두섭은 "김현봉목사의정신이 특별했기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목사들도 많았고 김목사는 젊은 목사들이나 청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온갖 정력을 다 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 중 다수가 자기 고집대로 하고, 김목사 정신을 바로 안 배우고, 바로 안 따르니 김목사는 실망속에 그런 기도를 한 것이라 본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기우는 김목사의 사후에 사실로 나타났다. 아현교회도 그의 사후에 분열 되었고,결국 네조각으로 갈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정적인 결과는 엄두섭의 말처럼 김현봉 목사를 지나치게 흉내내는 목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설교할 때마다 목이 깔깔하여 가래 배앝듯 '캑캑'하여 밥알 하나 정도의 가래를 곁에 준비해 둔 신문지 자른 종이에 닦는 습관이 있었다. 그를 따르던 젊은 이중 어떤 분은 신통하게도 설교하다간 꼭 김현봉 목사식으로 '캑캑하여 종이에 닦는 습관이 있는 이도 있었다. 또 어떤 목사는 말하는 것, 동작, 손가락 놀리는 것, 밥숟갈 놀리는 것까지 신통하게도 김현봉 목사를 닮은 이들이 있었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독립교회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단점들이다. 또 김현봉 목사의 제자라기 보다는 동지의 한 사람이었던 부산의 백목사도 생전에는 독립교회로서 부산 경남지방에서 크게 성공한 목회를 하였으나 그의 사후에는 역시 네 개의 교회로 갈라지는 아픔으 ㄹ겪었는데, 그 일차적인 원인은 백목사의 카리스마를 벗지못한 일부 교회의 수구 세력들이 새로운 목사를 모시기 보다는 생전의 비디오 녹화 테입으로 예배를 대치 하였기 때문이다.
3)지나친 구별의식
앞서도 잠시 언급 하였지만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구별의식이 문제가 있다. 독립교회의 독자노선 추구 및 설립동기를 원인별로 분석해 보 때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러한 의식으로 형제교회에 대하여 배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면 고쳐야 할 것이다. 독립교회의 발생 이면에는 교단적 잘못된 결정사항 (신사참배 결의 혹은 불신법정 고소문제)등의 자체의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죄를 범치 않기위하여 결별 혹은 독립한 것으로 신앙적 차이로 인한 이유와 기존교회의 이기주의, 대형화, 물질주의로 흐르는 부패된 현상을 개혁하여 교회 본래의 사명인 사회속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자는 교회 윤리적인 견해차이의 이유 그리고 인위적 압력의 수단화가 되고있는 거대교단조직의 경직성을 탈피하여 독자적 소신 행정을 펴기위한 교회행정상의 이유. 기타 양보할 수 없는 신학적 견해차이의 이유.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들이 흔히 이단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기존의 고정된 교회개념을 갖고 관찰하는데서 오는 오류일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우리나라 독립교회 설립당시의 출발은 적어도 절대적 하나님 중심의 신앙 목표하에 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교회행정 신학적으로 정로를 걷고바 시작된 용기있는 개혁운동 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바리새 주의가 될 수있고 교회주의가 더욱 심화되거나 교회의, 통일성을 해치고 중구난방으로 흩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절대주의의 일면으로만 흐르다가 정통신학을 간과하여 이단적 요소를 배태시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독립교회의 지나친 우월의식을 타파하지 않는한 지난 시대에는 긍정적이었던 장점이 오늘날 에는 오히려 단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여 새롭게 일신할 수 있는 과감한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그 변화는 우리들의 삶의 전 영역에 미치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자는 아니나 세상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We a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밖에서 따로 떨어져 살 수 없다. 세상의 변화는 교회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변화는 신앙의 방법과 세계관과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목회자는 변치 않는 성경의 복음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 증거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가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바로 읽지 못한다면 시대의 낙오자가 되거나, 그 시대에 풍속에 빠져서 무력한 종교 지도자로 전략하기 쉽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시대의 징조를 바로 알아 깨어 있어서 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자위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시대적 변화에 대안없이 자폭할지도 모른다.
이 연구는 다가오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복음을 붙들고 고뇌하는 목회자를 위한 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러한 연구들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1세기를 몇 년 앞으로 내다보면서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 대비한 목회전략이 시급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회전략 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있는데 새시대에 필요한 새부대를 준비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독립교회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김현봉목사는 일찍이 시대를 예견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자기가 된 것이 하나님 은혜로 된 것이지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된 것이 아니다. 교회의 성직을 가지고 명예, 영광을 취하여 자라하는 것은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해서 독립교회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 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는 신앙양심을 똑바로 쓸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양심 깨어지면 마음 깨어 진다"라고ㅠ 하면서 신앙양심대로 중생한 영혼의 인도대로 살 것을 늘 강조하였다.그러기 위해서 "참고 견디고, 인내심을 길러라"고 하였다. 중생한 개인의 신앙양심이 교단이나 교파의 정치보다 위에 있다는 원리가 이로써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성경보다 유전을 주님의 가르침보다 전통을 더 따르는 것은 신앙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로서 이는 우리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립교회가 걸어간 신앙양심을 길을 인정하고 우리들 자신들을 돌아보는 거울을 삼아야 하는 것이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미래의 세계와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는 워낙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많기에 역사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는지 단적으로 결론 짓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대안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에 이바지 하므로 미래의 연구는 불완전하다고 해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처럼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과학기술적인 변화가 가속화되고,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고 있는 시대의 변화에 추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국가나 민족은 세계사의 흐름에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립교회는 보다 다양하고 다변화될 다음 세기에 교회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또한 교권주의 교파의 틀 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신자들 개개인의 신앙양심과 개교회의 독립적 자치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립교회의 장점중의 하나인 절대적인 말씀중심의 신앙과 양심중심의 신앙을 보다 더 발전 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경이적인 성장으로 많은 구미교회들의 부러움을 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따른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교회의 성장에 비해서 사회적인 신인도 너무나 낮은 것이다. 빛이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들이 그 반대로 지방색과 교파주의 교단주의 또한 세속정치와의 야합으로 얼룩져 왔기 때문이다. 100여개가 넘는 장로교단이 그렇고 난립되어진 신학교가 그렇다. 교회론의 성경적 정립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프로그램 중심의 목회관도 그렇다. '꿩 잡는게 매' 라는 식으로 극단적 실용주의가 교회에 가득하여져서 비성경적인 교회성장의 신학이 교회를 흐려 놓고 있다.
교회는 항상 특수한 시대적 상황속에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작업은 신학의 봉사적 성격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신학의 존재목적이 신학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가운데 처해있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말씀은 제쳐두고 한국인의 심성속에 있는 샤머니즘적 기복주의를 발동시켜 신비주의를 양산했다는 것이요, 둘째는 지성우월주의와 신인협동적 알미니만적 양태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독립교회가 태동하게되는 역사적인 배경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교회들이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나 엇길로 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유전이나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독립교회의 신학정신은 보다 철저한 말씀중심의 사상이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립교회는 다시한 번 조명을 받아야한다고 생각된 것이다.
이성적이고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목회적 경향들이 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는데 서울 여의도의 S교회가 이런 유형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 "믿음"이라는 용어가 잘못 이해 되어진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오직 믿음"을 "오직 신념"으로 잘못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적극적 사고방식"이지 믿음은 아닌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믿되 기록되어진 말씀안에서 해야한다. 그러나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 호소하여 양심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이는 자칫 율법적인 열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유형에 속한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작적 OO일 새벽기도회" "총동원전도주일"등등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에 호소하기 보다는 인간의 가능성과 의지에 호소하는 경향이 짙은 신학이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며, 주변의 것보다는 내부의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측면에서 오래전부터 칼빈주의와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더욱 본질을 추구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이를 더욱 계승 하여야 한다.
한국교회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취약점은 신학이 너무 개인 구원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대사회 프로그램이 전무하다는데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실천신학의 부재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교회는 항상 상화에 대답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또 교회는 말씀과 성령, 그리고 신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신을 갱신한 다음 역사속에서 세상을 갱신해야 할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장되어온 "세상을 교회로 이끌려는 운동이 아니라, 교회를 세상속에서 이끌려는 세속화운동의 양극단에서 모이는 교회(come strycture)가 전제되고 나서, 흩어지는 교회(go strycture)를 말할 수 있고, 교회가 세상과 구별된 후 그리고 세상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는 사회단체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대한 봉사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에 말없이 빛으로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행위의 실천없는 말만 풍성하게 했던 것이 우리교회의 현실이다. 교회성장신학은 교회자체내의 프로그램 뿐 아니라 이처럼 세상을 섬기는 운동과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의 개인양심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독립교회의 신앙운동은 주목받아 마땅 할 것이다. 그리고 김현봉 목사의 가르침처럼 일심정력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더욱 필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3)개인구령의 관심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중의 하나는 개인구령 중심의 실천 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아들을 통하여서 온 세계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활동(Missio Dei)에서 현교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하는가를 다루는 데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관심을 깊이 가진다는 것이다. R. Bohren 같은이는 실천신학 방법론은 교회 우선적인 선교활동에서 탈피하여 보다 넓은 컨텍스트인 하나님나라 혹은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지에 헌신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실천신학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기존의 실천신학 연구에 또 다른 차원을 부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Johann Gerhard는 신학의 목표와 목적은 단순히 '그노시스'가 아니라 '프락시스'라고 말했다. 복음의 능력은 개인구원에만 머물고 마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속한 교회와 사회속에서 실천신학은 세상안에 있는 교회의 생활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천신학이 수세기동안 조직신학과 최근에는 성경신학의 그늘에 가려서 신학계에서 그리 각광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에 말씀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점에서 다른 신학 분야보다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본다면 독립교회들은 이러한 실천신학이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복음에 빚진자의 심정이 되어 이웃에게 그리고 또다른 사람과 나아가 바다 건너에 까지라도 죄에 빠진 사람 구하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을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복음전도 위임과 개인영혼과 구원의 중심사상이 전도신학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개인 영혼구원사상은 경건주의가 물려준 보수교회의 정신적 유산이다. 경견주의 지도자 스페너(Pillip Jacob Spenner)는 어거스트 헬만 프랭크(August Herman Franke)는 스페너의 저서「경건의 욕망」(Pia Desideria)에서 주장하기를 참 경건의 실천, 즉 신자들의 작은모임, 성경연구 그리고 기도와 힘쓰는 일 등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개인영혼의 회심만이 선교의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개인영혼 구원주의 오늘날도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상인데 거기에 전혀 옳은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부다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선교실천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심령에 대한 위로의 사역, 죄, 마귀, 죽음의 위협 아래 있는 자에 대한 접촉과 관심등은 결코 우리가 등하시 할수 없는 사역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사람의 실천을 도외시 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건주의 영향을 받은 독립교회들은 교회의 정치나 교권주의 몰입하기 보다도 더욱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진전한 복음전도는 개교회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회심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한 교회심기 사역은 개신교나 카톨릭이나 매한가지이다. 카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Summa Theolngica」에서 선교의 목적은 다양한 문화나 사회에서 구원과 선을 위한 기구로서 봉사할 중앙 집권적, 군주적, 그리고 성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교회를 심는 것이라 하였다. 선교에서는 기스벨투스(Gisbeatus)가 그의 책인데,이는 이방인의 회심, 교회의 심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과 영광을 보임이라 하였다. 물론 때로는 로마교회나 대교단이 지향하는 교구주의도 선교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보다 성경적인 복음전파와 선교는 지역교회 즉 독립적인 교회들을 심어 자치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일이다.
맥가브란 박사를 중심으로 교회성장신학은 수용성이 강하게 보이는 지역에 교회를 심음으로 더 많은 전도효과를 거둘수 있는 것으로 결론지어지는데, 수용성의 원칙과 숫자를 통한 정확한 통계만이 교회성장의 정도를 측정할수 있다고 했다. 이때 교육사업이나 사회사업, 교회의 현실 참여나 역사 참여는 2차적인 것으로, 아니면 교회성장을 위한 봉사정도에 둔다는 원칙이다. 물론 교회가 이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교회의 원칙은 개교회의 자치권과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서 네비우스의 정책과 같이 교회를 살려 나간다면 얼마든지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과 자치권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와 실천 이라고 할 것이다. 성경은 교회라고 할 때 지역이름을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근자에 와서 "사랑의 교회"니 "산성교회"니 하는 형용사적 이름의 교회가 많이 생겨 나고 있지만 이러한 교회들도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교회들인 것은 사실이다.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특성을 갖게된다. 그렇다면 교회란 우리가 앞서 신학적으로도 살펴 보았지만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구별되어진 모임인 것이다. 이로인해 각 지역교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자율권과 자치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회를 책임질 권한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을 노회나 대회 총회등의 의결에 의하여 해결하지 않고 교회에 주신 고유한 권한과 각 사람에게 주신 신앙의 양심에 따라 처리함으로 신약의 교회원형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물론 노회나 대회 총회등이 필요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제애를 나누며 보다 큰일을 하기위한 협력의 차원에서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권한을 간섭하거나 침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직분자의 임명, 권징의 시행, 그리고 행정에 있어서 개교회의 자율을 중시 함으로 교권주의나 나쁜 교회의 정치주의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크나 큰 장점이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의 현황과 독립교회의 가능성
1)신학적인 토대가 필요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좋은 전통들을 지금까지 지녀왔다. 선교사들의 피흘림과 오랜세월 격동기속에서도 복음주의적 전통에 입각하여 여러 좋은 신학자들과 순교자들의 업적을 오래오래 간직되어야 할 소중한 교회적, 민족적 유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초창기부터 복음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이면에는 초대 한국교회에 기독교신앙을 가져온 선교사들이 대부분 복음주의적 전통에 깊숙히 뿌리박은 미국 장로교출신들 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종철의 논문에 의하면, 1983년에서 1901년까지 한국에 있던 40명의 선교사중에서 프린스톤신학교( Princetoon) 출신이 16명, 맥코이(Mccormic) 출신이 11명 이었고, 산 안셀모(San Anselmo) 출신이 4명, 그리고 뉴욕의 Union 출신이 3명, 그외 Moody 성경학교와 뉴욕의 Biblical Cominary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최초의 선교사들은 선교의 개척을 위해서 희생적 각오와 보수주의적, 복음주의적인 신학사상을 소유하면서 퍼뜨렸던 것인데 현금에 와서는 보수, 진보 양측에서 이들의 신학사상에 대해 "근본주의 일색" 이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복음과 상황은 타원의 두 중심과 같다. 전자는 불변하나 후자는 변한다. 불변성과 적응성, 복음의 씨와 그것이 뿌려질 토양, 이 둘은 사역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하는 함수 요인들이다. 복음은 상황을 도전하고, 상황은 복음을 요청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항상 시대의 요청과 상황의 요구에 대하여 신학적여과와 대답을 항상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신학적 고찰을 중지할 때 역사속에서 복음은 퇴색되고 외면 당하고 말 것이다.
교회는 항상 특수한 시대적 상황속에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작업은 신학의 봉사적 성격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신학의 존재목적이 신학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가운데 처해있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이러한 작업을 게을리 해 왔기 때문에 많은 좋은 공(功)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나온 반세기 동안에 한국의 교회성장운동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불건전한 신비운동(기도원운동과 은사운동)과 기복주의적 신앙의 양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속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은 인간소외를 느꼈고,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피안의 세계를 제시하는 세속적 기독교와 기도원운동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서 교회의 상부구조라할 수 있는 교단과 신학교는 신학적 자유주의와 이성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이렇다할 교회 성장신학을 교회에 제시해줄 여가가 없었다. 물론 교단의 필요성이나 교파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장로교적인 분위기는 한국교회를 교조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 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교단에 가입하지 아니한 모든 교회들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편협성이 너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는 우리의 신학이 너무 지엽적이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교회의 형태와 모양을 획일화 시키고 말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는 교회가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한채 지방색과 교파주의 교단의 정치로 개교회들이 정상적인 기능과 성장을 하지 못한채 90년대를 허비하고 말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1960년대 미국교회들에서도 일어났다. 딘 M,켈리는 "196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는 무엇인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큰교파의 대부분이 성장을 중지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의 극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인식 되었다.(중략)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파 가운데 10개 교파는 그 전체 교인수가 1967년에 77,666,223명이었는데, 그 이듬해에 교인수는 감소되었고 또 다음해에도 감소되었다. 이들 교파들의 대부분은 식민시대 이후로 아무런 장애 없이 성장을 계속했었다. 1960년대 후반 이전의 10년간 그들 교파들은 성장이 둔화 되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교파들은 미국인구증가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그러더니 이제 그들 교파들은 교인수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두 세기의 성장추세를 거꾸로 뒤집어 버렸다. " 그러면 종교는 더 이상 필요 없는가? 아니면 교회는 더 이상 필요치 않는가? 하고 그는 질문 하면서 그럼에도 어떤 교회들은 성장하고 있다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시대에 뒤떨어 지는 그런 쇠퇴를 조직체 회원이 감소하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다른 조직체를 괴롭히는 유사한 사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경쟁자가 일률적으로 적개심을 가진 풍토속에서 번창하고 성장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시대는 문제가 어떤 조직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있다고 하는 견해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교회들 가운데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종교적 단체가 다 쇠퇴하고 있는 거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개신교의 주된 교파들의 대부분이 감소추세를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고 존속을 위한 고투를 하고 있는 반면에, 남부침례고, 하나님의성회, 하나님의 교회, 오순절 및 성결교단, 복음주의 교회,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흑인 모슬렘교 등과 같은 종교 또는 교파들은 생동력으로 넘치고 있다. 이 밖에도 생동력으로 넘치고 있는 교파들은 심지어 큰 교파들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군소 교단들 가운데도 많이 있다고 도표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급속히 성장하는 교단들은 종교는 폐물이 아니며 교회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말해줄 뿐만 아니, 인정할 수 있는 종교에 대한 현대적 개념에 전적으로 배치한다. 이 교단들은 "비합리적이며" "관대하지"않고 "반초교파적이며" "적절하지" 않다.이거은 큰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 교단들은 흔히 다른 교회들의 교훈, 안수, 성례, 등의 정당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이 교단들은 특수한 의식이나 특이한 식사관습을 지킨다. 또 이러한 교단 혹은 교파들은 불합리한 행동에 집착 함으로써 "인류의 어지간한 견해"를 무시한다. 그러나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비사교적인 행위에 집착하는 종교교단이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트기한 것은 지적 수준이나 위치로 보아 마땅히 합리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교회들을 선호할 것 같은 사람들 조차도 이러한 교회들에 몰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냐고 묻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이유를 딘 M. 켈리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필수적인 기능이 있다고 평가했다. 즉 종교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에게 어떤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틀림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종교의 임무는 의미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종교는 신성한 세계건설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탁해질수록 그리고 물질 문명이 발달할수록 종교가 가진 이상적인 미래제시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보다 강력한 종교를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그 증거로 재침례교도들의 활동과 교회증가. 그리고 웨슬레의 부흥운동등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있다. 앞서도 살펴 보았지만 재침례교도들은 제16세기 개신교 개혁의 좌파에서 일어난 신자들의 작은 무리였다. 그들의 지도원리는 신약성경의 초대교회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양측 모두의 많은 특징을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배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작은 비밀 집회소에서 회합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과 양심에 따라 굴하지 않고 그들의 믿음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결과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교회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웨슬레의 부흥운동 또한 도덕적 빈혈증을 앓고 있었던 영국을 각성 시키고 가난, 사악, 술취함, 불의, 부패한 사회를 변화 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성교회의 배척을 받은 감리교도들은 기성교회를 떠나려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속회"로 개인 가정에서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문맹이었다.) 그 모임에서 그들은 함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에게 의로운 권면을 했다. 회원 중의 한 사람이 속회 지도자로 지명되었는데 그의 임무는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발전을 보살피며 매주 그들 각자를 개인적으로 권면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방법이 전통적인 교회관이나 그당시의 교권주의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을 그들을 들어 쓰셨다.
그러므로 독립교회는 오늘날 교회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비젼제시와 리더쉽의 상실에 대하여 하나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교권주의 권위주의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교회들을 일깨우고 새롭게 갱신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있다고 보는 것이다.
독립교회의 장점이며 자랑이기도 한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문제가 향후 독립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것이 틀림없다. 즉 기존의, 교단이나 교파에 지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 나가고 있는 교회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교단 중심 노회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국교계의 풍토상 독립교회의 홀로 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독립교회는 앞으로 한국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많은 우려와 경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그것중의 하나는 목회자의 과도한 카리스마로 인한 폐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독립교회의 탄생 이면에는 목회자의 강력한 리더쉽과 독선에 가까운 홀로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생전에만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잠시 언급 하였지만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구별의식이 문제가 있다. 독립교회의 독자노선 추구 및 설립동기를 원인별로 분석해 보 때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러한 의식으로 형제교회에 대하여 배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면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보다많은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독립교회에 대한 교회사적인 정당한 평가가 계속해서 일어 나야 한다고 본다. 본 논문도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되어져 온 것이다. 그러면 독립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독립교회가 태동하게되는 역사적인 배경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교회들이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나 엇길로 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유전이나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독립교회의 신학정신은 보다 철저한 말씀중심의 사상이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립교회는 다시한 번 조명을 받아야한다고 생각된 것이다.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중의 하나는 개인구령 중심의 실천 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아들을 통하여서 온 세계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활동(Missio Dei)에서 현교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하는가를 다루는 데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관심을 깊이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독립교회들은 이러한 실천신학이 관심을 갖기 이전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복음에 빚진자의 심정이 되어 이웃에게 그리고 또다른 사람과 나아가 바다 건너에 까지라도 죄에 빠진 사람 구하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을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경건주의 영향을 받은 독립교회들은 교회의 정치나 교권주의 몰입하기 보다도 더욱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진전한 복음전도는 개교회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회심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한 교회심기 사역은 이방인의 회심, 교회의 심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과 영광을 보임이라 하였다. 물론 때로는 로마교회나 대교단이 지향하는 교구주의도 선교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보다 성경적인 복음전파와 선교는 지역교회 즉 독립적인 교회들을 심어 자치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일이다.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과 자치권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와 실천 이라고 할 것이다. 성경은 교회라고 할 때 지역이름을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로인해 각 지역교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자율권과 자치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회를 책임질 권한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을 노회나 대회 총회등의 의결에 의하여 해결하지 않고 교회에 주신 고유한 권한과 각 사람에게 주신 신앙의 양심에 따라 처리함으로 신약의 교회원형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좋은 전통들을 지금까지 지녀왔다. 선교사들의 피흘림과 오랜세월 격동기속에서도 복음주의적 전통에 입각하여 여러 좋은 신학자들과 순교자들의 업적을 오래오래 간직되어야 할 소중한 교회적, 민족적 유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보여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도 없다 ㄱ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필요한 자기의 종들을 일켜 세워서 빗나간 교회의 흐름을 바로 잡으셨다. 그러한 측면에서 독립교회들은 나름대로 교회의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를 다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이러한 독립교회의 공과 과를 밝히는 보다 많은 논의 가 이루어 져야할 때가 되었다고 본 연구자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본 논문이 일조를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닥아오는 21세기에는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는 한국교회가 되어 주님 오실 때 칭찬 받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하는 일에 보탬이 되는 연구가 되었기를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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