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교단, 교파사

천주교의 변천사/고재봉

작성자이지명|작성시간12.12.21|조회수57 목록 댓글 0

천주교의 변천사

 

기독교와 그리스도교(예수교)는 같으며 기독교의 3대 교파는 개신교, 천주교, 동방정교회입니다.

기독교(그리스도교, 예수교)는 천주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만 개신교(프로테스탄트, Protestant)을 기독교라 부릅니다.

 

세계사에 근거하여 천주교의 변천사를 분석하여 보면 천주교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기 33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복음이 세상에 전파될 때부터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서기 313년부터 개신교가 탄생할 때까지 수많은 참된 기독교 교인들이 순교의 제단에 피를 흘렀습니다.

 

서기 33년 십자가 사건 이후 로마황제들은 수없이 많은 교인들을 죽었으나, 기독교는 죽지 않고 더욱 번창하였습니다.

 

5현제 시대 (서기96 ~180년)을 거치면서 로마제국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점차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군인 황제시대(서기 235년~285년)에는 정치적 혼란기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정치적인 암투로 인해 국방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경제도 어려워져 로마제국은 망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쓰러져가는 로마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하였던 황제가 디오클레디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황제였습니다. 쓰러져가는 거대한 로마제국은 잠시나마 두 황제로 말미암아 활력과 안정을 찾는 듯 하였습니다.

 

여태까지 명목상 이어왔던 공화정을 포기하고 황제 일인 숭배사상을 강요하며 국가권력을 더욱 강화시키려고 마지막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거주이전을 통제하고 직업과 신분의 변동을 금지하고 그것의 세습을 규정했으며 제국의 통합을 보다 확고히 하고자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교활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하게 하고 정치적 야심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를 부려서 아무리 탄압하여도 끝없이 번지는 기독교를 인정하고 껴안았던 것입니다. 

 

즉, 기독교를 인정한 것은 로마제국을 살리고자 하였던 ‘정치적 쇼’였던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특히 수도 로마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정권과 결탁하는 성직자와 교인들이 생겨났고 로마교회는 점차 타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기 392년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여지나 2년 후인 주후 395년에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하였습니다.

 

동,서로 로마가 분열되자 가파르게 또 다른 한축의 역사의 대하가 밀려오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북방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입니다.

 

게르만 민족은 군사력이 허약한 서로마제국를 집중적으로 침범하였고, 서기 476년에는 게르만 민족의 장군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서기 445년에 야심가인 레오 로마주교는 스스로 베드로의 후계자라며 자기가 지상에 전 그리스도인들의 ‘교황’, 그리고 ‘아버지’,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터무니 없는 주장은 정치적인 혼란기를 틈타 이루었던 모략이었습니다.

레오 로마주교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논쟁이 되었고 이 논쟁은 주후 590년 까지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지만 통일된 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각지에서 반달족, 서고트족, 앵글로족,  동고트족, 프랑크족 등의 부족으로 흩어져 성장하였습니다.

 

여러 게르만 부족들 중 프랑크족은 두드러지게 성장하여 프랑크 왕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프랑크 왕국에 메로빙 왕조의 창시자인 클로비스(481~511)는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교회와 손을 잡았습니다.

클로비스 왕은 로마교회를 이용하려고 했으며, 로마교회는 세속의 권력을 이용하려고 하였던 것 입니다.

정권과 결탁한 성직자들은 자신의 정치적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이교도의 종교예식과 교리와 관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서기 451년 칼케톤 공회에서 마리아 숭배를 새로운 교리로 추가하였으며,

서기 529년에는 수도원 제도를 만들었고,

서기 593년에는 성경에도 있지도 않은 연옥교리를 창안하였으며,

서기 600년경에는 모든 종교 행사의 공식언어가 라틴어로 되었으며.

그레고리 대제(590~604년) 때는 행위에 의한 구원, 연옥과 미사(천주교의 사제가 드리는 제사)를 교리에 추가하였습니다.

 

서기 726년에 레오 3세 황제의 성상파괴령이 발단되어 로마교황과 비자틴 제국이에 결별하였습니다.

 

서기 612년 마호메트가 이슬람을 창시하였으며 점차로 이슬람세력이 강하게 성장 발전하여 비잔틴제국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기 732년 투르 프와티에 전투로 마르텔왕이 이슬람에게 승리하자 로마교황은 이들과 손을 잡게 됩니다.

 

751년 찰스 마르텔 아들인 피핀은 로마교황과 정치적 제휴를 맺어 카롤링 왕조를 창시하였고, 이때부터 로마교황은 세상권력에 탐닉하며 빠져들었고, 교리는 더욱 이단적으로 변질되었고, 교회들은 세속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7차 에큐메니칼 공회에서 성상숭배(우상숭배)가 시작되었고,

 

서기 787년에 죽은 성도와 순교자들에 대한 기도가 공인되었습니다.

 

대주교인 아고바르트(778년~840)는 유태인 박해를 시작하였고,

 

서기 848년 미욱스 공회부터 대대적으로 유태인을 탄압하였습니다.

 

서기 890년에 처음으로 성요셉 숭배가 나타났고,

 

서기 995년 교황 요한 15세에 의해 죽은 성도들을 성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서기 998년 사순절기간에 성도들이 금욕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공포되었으며,

 

서기 1010년~1012년 수도사인 라울글라버가 유태인 대학살을 주창하였습니다.

 

서기 1054년에 그리스 정교와 분리되었고,

 

서기 1074년에 교황 그레고리 7세는 느닷없이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을 명령하였습니다.

 

1096년 우르반 2세가 처음으로 십자군전쟁을 시작하였으며, 이 전쟁 와중에 합법적으로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였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1291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전쟁으로 인하여 교황권위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서기 1123년 교황 칼릭스 투스 2세는 공식적으로 성직자에게 독신 생활을 부과 하였습니다.

 

서기 1130년 교황 이노센트 2세는 교황권에 대항하는 비순응자들을 처단하기에 이르렀고,

 

1184년에 카톨릭 교황 루시우스 (Lucius) 3세는 이단자에 대한 칙서를 내렸는데, 후에 종교 재판에 채택된 주요 법체계의 많은 부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주요 법체계 중 하나는 이단자를 은닉하거나 지원한 사람은 누구나 이단자와 동일한 처벌을 받도록 한 것인데, 회개하지 않은 이단자는 세속 법정에 넘겨주고, "되돌아간" 이단자는 더욱 가혹한 처벌(재산 몰수를 포함한)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 종교재판은 수세기 동안 이단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화형한 인간의 상상력을 깨는 가장 무섭고 잔인하였던 제도입니다.

 

서기 1190년 교황 클레먼트 3세가 면죄부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서기 1213년 이단(기독교를 포함한 타 종교)에 대한 사형법과 함께 종교 재판소를 창설하였습니다.

 

서기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회에서 화체설을 정식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서기 1226년 성체숭배가 이루어집니다.

 

서기 1229년 교황그레고리 9세는 성경읽기 금지를 선포하고 성경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전통을 더해야 한다는 황당한 이론을 펼칩니다.

 

서기 1303년 교황 보니파스8세는 정치적 수위권을 주장합니다.

 

서기 1387~1417년 교황이 분열되었는데, 우르반 4세 클레멘트7세와 알렉산더 5세가 그들입니다.

 

서기 1439년 플로렌스 공회에서 유게니우스 4세에 의해 연옥교리가 공포됩니다.

 

서기 1508년 교황율리우스 2세가 염주를 만들었습니다. 전형적으로 이교도적인 것입니다.

 

서기 1545년에 인간의 전통과 성경의 권위를 동등하게 만들었습니다.

 

서기 1545년에 트리엔트 종교회의에서 "칭의"를 부정합니다.

 

서기 1517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도사이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인 마틴 루터가 34세의 나이로 비텐베르그에 있는 성곽교회(Castle Church) 문에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써서 게시하였고, 이 사건은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항의문 내용은 면죄부를 파는 모순된 카톨릭의 처사를 시정하고 성경 말씀에 합당한 참되고 순수한 교회를 만들고자하는 것이였으나 교황청에서는 루터의 진의를 묵살하고 탄압으로 응수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루터의 항의는 순수한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로마 교황청의 경제적 수탈에 반발하는 독일 국민의 감정과 결부되고, 교회의 막대한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영주와 기사들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지게 됨으로써 국민적 종교운동으로 진행되었고 개신교가 탄생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한 서기 313년부터 개신교가 탄생할 때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제단에 피를 흘렀습니다.

 

천주교는 개신교가 탄생하기 이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면죄부 판매'와 '성경읽기 금지' 을 제외하곤 거의 모두가 같으며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3대 교파중에서 하나의 교파인 천주교을 좀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 되었길 바랍니다.


http://cafe.daum.net/wccr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