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로와 은혜 / R.C. 스프롤
공로와 은혜의 문제는 로마 가톨릭 신학과 개신교 사이의 역사적 논쟁의 핵심이다. 종교 개혁의 주요 선언 중 하나는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 앞에 자신의 공로를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의지할 뿐이다.
공로는 얻을 수 있는 것 혹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공의는 공로가 합당한 곳에 주어지기를 요구한다. 공로는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공로받을 만한 곳에 공로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불법이 행해진 것이다.
로마 가톨릭 신학은 공로를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먼저 “적정 공로”(適正功勞, condign mrit)가 있다. 이것은 상을 받을 만한 공로를 말한다. 또 “재량공로”(載量功勞, (congruous merit)라는 것이 있다. 이는 적정공로보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상주시기에 “적합한 또는 조화되는” 공로이다. 재량공로는 고해성사와 결부되어 선행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의 공로는 “여분의 공로”(supererogatory merit)이다. 이것은 의무의 요구를 초월하고 넘어서는 것이다. 이 공로는 성도가 얻을 수 있는 공로 이상의 것이다. 이러한 공로는 공로의 보고에 저장되어서 교회가 연옥에서 하늘나라로 가는 데 부족한 분량의 공로를 채우는 데 쓰인다고 믿는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우리가 가진 공로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밖에 없음을 선언하면서 이러한 세 가지 종류의 공로를 모두 부정하고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스도의 공로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은혜는 우리의 공로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행동이며 섭리이다. 은혜는 우리의 영혼 속에 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은혜 속에서 자라간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은혜의 분량에 따라 자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셔서 우리를 향해 또는 우리에게 자비로운 도움을 주시는 성령의 은혜 안에서 자라간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은혜의 수단은 말씀, 성례, 기도, 교제, 그리고 교회의 양육이다.
[참조 성구] 요15:1-8, 롬4:1-8, 롬5:1-5, 고후5:17-19, 엡2:8-9, 딛3:4-7
<요약>
1. 우리의 구원은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즉 “오직 은혜로” 얻는다.
2.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수밖에 없도록 만들 만한 우리 자신의 공로가 없다.
3. 로마 가톨릭 신학은 적정공로, 재량 공로, 여분의 공로를 구별한다. 개신교는 이 세 가지를 모두 부정한다.
4.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선물이며 자비이다.
‘ 기독교 핵심 진리 102가지‘(R.C. 스프롤)에서 발췌(233-23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