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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양자

멜란히톤의 칭의론/권호덕 교수

작성자이지명|작성시간13.04.06|조회수162 목록 댓글 0

멜란히톤 Philipp Melanchthon


본명은 Philipp Schwartzerd. (그리스어 Melanchthon은 독일어로 '검은 땅'이라는 뜻). 독일의 인문주의자․종교개혁가․신학자․교육자. 1497. 2. 15 팔츠 브레텐~1560. 4. 19 작센 비텐베르크(?)에서 출생함.

멜란히통은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0)를 썼으며 마르틴 루터의 친구로 루터의 견해를 옹호했다. 1521년 최초로 종교개혁의 원칙을 체계적으로 다룬 책 〈신학요론 Loci communes〉을 출판했다. 학문적인 역량을 평가받아 학교 설립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고, 결국에는 여러 대학교를 설립․개혁함으로써 독일 교육제도 전체를 실질적으로 재편성했다.


-초기생애와 교육

멜란히톤은 부모 바르바라 로이터와 게오르크 슈바르체르트로부터 깊은 신앙심을 물려받아 평생 그것을 간직했다. 고향 브레텐(1504년 5명이 마녀 혐의로 화형을 당한 지역)에서부터 신비종교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후에 별․꿈․귀신들에 대한 성서의 언급과 연결되어 그는 점성술과 귀신론의 확고한 신봉자가 되었다. 1508년 불과 11일 사이에 할아버지 로이터와 4년간 앓던 아버지를 모두 여의었다.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으며, 그를 가르친 사람은 유명한 히브리어 학자이자 인문주의자인 종조부 요하네스 로이힐린이었다. 그는 멜란히톤에게 라틴 및 고전문학에 대한 애정을 심어 주었다. 포르차임 라틴 학교에서 심도있는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으며, 이때 슈바르체르트라는 독일 이름과 같은 뜻의 그리스어인 멜란히톤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1509~11, 문학사학위)와 튀빙겐대학교(1512~14, 문학석사학위) 시절에는 스콜라 사상을 깊이 탐구하면서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루돌프 아그리콜라의 수사학, 영국의 철학자 오컴의 윌리엄의 유명론(唯名論), 교회 개혁가 베젤의 요하네스의 사상에 몰입했으며, 성서를 연구하고 동료 학생들과 함께 고전문학을 읽었다. 문학석사학위를 받은 뒤 고전학을 강의해 좋은 평판을 얻었고, 아울러 여러 판을 거듭한 〈초급 그리스어 Rudiments of the Greek Language〉(1518) 문법책을 비롯해 6권의 책을 펴냈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에게 칭찬받으면서 그의 이름은 영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멜란히톤은 당시 최고의 인문주의 전통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1518년 로이힐린을 통해서 비텐베르크대학교의 첫 그리스어 교수로 초청받아 부임한 지 4일 만에 '학문의 향상'이라는 연설을 통해 신학과 사회를 갱생하기 위해서 인문주의 계획을 과감하게 실행하고 고전과 그리스도교 원전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루터와 종교개혁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와 멜란히톤은 서로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주고받는 사이에 우정이 깊어갔다. 멜란히톤은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교회문에 95개조 격문을 걸어놓음으로써 시작된 새로운 종교개혁 진영에 마음을 다해 헌신했다. 1519년말에는 이미 루터의 대적 요하네스 에크에 맞서 성서의 권위를 옹호했고, 루터보다 먼저 화체설(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이나 실체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을 배척했으며,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다는 주장을 자기 신학의 중추로 삼았고, 로이힐린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끊어버렸다. 이 기간 동안 전보다 페이지 수가 적은 7권의 책을 써냈고, 비텐베르크대학교에서 신학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열정은 대단해서 하루 일과를 새벽 2시 강의로 시작했는데 6시에 600명이나 되는 학생들에게 강의하기도 했다. 카타리나 크라프에게 구혼한 끝에 결혼해 안나․필리프․게오르크․막달렌 등 4명의 자녀를 낳았다.

루터의 권유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로마서)에 대해 강의했고, 1521년 최초로 종교개혁 원칙을 체계적으로 다룬 책 〈신학요론〉을 펴냈다. 이 책의 주요 주제는 죄․율법․은총 등이었고 그밖에 자유의지․맹세․소망․고백 등 여러 가지 교리들을 다루었다. 그는 성서에 근거해 죄가 외적인 행위 이상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죄는 사람의 이성을 넘어서 의지와 정서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사람은 선행을 하기로 결심한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인정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원죄는 타고나는 성향으로, 모든 사람의 행위를 더럽히는 무질서한 자기집착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죄는 용서받으며, 그 경우 사람의 행위는 비록 완전하지 않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응답이라고 했다. 〈신학요론〉은 발행 첫해(1521)에 3판까지 나왔고, 1525년까지 18판이 발행되었으며, 독일어 번역이 나왔고 1558년 최종판에는 많은 증보와 수정을 가했다. 루터는 〈신학요론〉이 성서의 정경에 포함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공언했다. 후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는 그 책을 필독서로 정했고,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그 책을 다 외워 신학에 대해 토론을 할 정도가 되었다.

1521년 그는 루터 지지자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소르본대학교가 루터의 104개 진술을 단죄한 것에 대해 '파리 신학자들의 사나운 포고령에 반대하며'라는 글로 예리하게 답변했다. 같은 해에 나온 〈그리스도의 수난과 적그리스도〉에서는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의 목판화를 이용해 교황의 생활 방식이 그리스도와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멜란히톤이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강의록 출판을 주저하자 루터는 원고를 몰래 가져다가 1521년 "당신의 이 주석들을 발행하는 사람은 나(루터)이며, 이제 당신(멜란히톤)에게로 돌려드립니다"라는 서문을 써서 출판했다. 1523년 루터는 멜란히톤의 〈요한의 복음서〉 주석을 똑같은 방법으로 출판했다. 1521년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멜란히톤은 비텐베르크 종교개혁파의 지도자였다. 개혁파를 위한 임시 평화안을 마련한 제1차 슈파이어 의회(1526)가 끝난 뒤 멜란히톤은 개혁신앙을 받아들인 제국의 영주들을 방문하고, 교회 헌장을 작성할 28명의 대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그래서 1528년 교회 헌장 대표들을 위한 교훈서인 〈방문자들을 위한 지침서 Unterricht der Visitatoren〉를 출판했다. 이 책은 종교개혁 교리진술과 초급학교 교육개요를 담고 있는데, 작센에서는 이 내용을 법률로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공립학교를 설립했다. 독일 전역에서 멜란히톤의 교육계획을 모방했으며, 56개가 넘는 도시들이 그에게 학교 설립을 위한 자문을 구했다. 그의 직접적인 도움과, 그가 쓴 교과서, 그가 양성해낸 교사들을 통해서 결국 독일의 모든 교육제도는 재구성되었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예나․마르부르크 등의 대학교 설립을 도왔으며, 그라이프스발트․비텐베르크․쾰른․튀빙겐․라이프치히․하이델베르크․로스토크․프랑크푸르트 등의 대학교를 개혁했다. 이러한 노력 때문에 그는 '독일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멜란히톤은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던 로마 가톨릭에 대해서 양심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항의(protest:이 말에서 protestant라는 용어가 생김)가 제기된 제2차 슈파이어 의회(1529)에 참석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의회(1530)에서 그는 종교개혁파의 주요대표였으며, 이후에 작성된 모든 프로테스탄트 신조에 영향을 끼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초안을 작성했다. 이 고백에서 그는 가능하면 가톨릭 측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종교개혁의 입장을 강력하게 진술했다. 이 고백문서 채택을 둘러싸고 협상을 벌이는 동안 그는 타협을 하는 듯했으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대한 변호 Apology of the Confession of Augsburg〉(1531)에 나타난 열정으로 보아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이 변호서와 고백서는 즉시 루터교의 공식적인 상징(권위있는 신앙진술서)이 되었으며, 아울러 1536~37년의 슈말칼덴 조항에 부록으로 붙은 멜란히톤의 또하나의 논문 〈교황권에 대한 부언 Appendix on the Papacy〉도 루터교의 상징이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신적 권리에 의거한 교황수위설을 역사적․신학적으로 반박했으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평화를 위한 인간적 권리로서 교황의 사법권을 인정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의회가 끝난 뒤 종교개혁 논쟁을 타협으로 해결하려 했으며, 로마 가톨릭 지지자들도 온건하고 접근하기 쉬운 멜란히톤을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상대하기에 가장 적절한 인물로 보았다. 그는 로마 가톨릭 신앙과 결탁했다는 비난을 수없이 받았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와 성서의 권위를 확고하게 주장했다.


-후기 생애

루터가 죽은 다음해, 즉 뮐베르크 전투(1547)로 프로테스탄트 진영이 큰 타격을 입은 듯했던 상황에서 아우크스부르크 가협정이라는 잠정적인 조약으로 프로테스탄트 진영과 로마 가톨릭 진영을 연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멜란히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가 근본 교리로 인정되기 전에는 가협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뒤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훼손하지 않는 원칙들은 유익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해 선행할 필요성을 인정했으나, 선행으로 얻어지는 의라는 옛 개념을 따르지는 않았다. 7가지 성사를 인정했지만 그 자체로는 구원의 효력을 지니지 않는 단순한 의식으로서만 인정했다. 가신조 협정 때 보인 유화적인 태도 때문에 멜란히톤은 동료 프로테스탄트 신도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말년에는 프로테스탄트 내에서 벌인 논쟁과 로마 가톨릭 측의 반대자들과 가진 무익한 회담으로 여념이 없었다. 1560년 사망해 비텐베르크에 있는 루터의 묘 곁에 묻혔다.


-교리 사상

문학적인 역량, 명석한 사고, 우아한 문체 때문에 수많은 회의에서 종교개혁 대변인 및 프로테스탄트 대표자가 되었다. 성찬, 회심에서의 인간의 역할, 선행의 역할에 관한 루터의 입장을 점차 수정했지만 루터와 완전히 갈라선 적은 없었다.

1530년까지 성찬에 대해 루터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이전인 1529년부터 루터와 달라지기 시작해 154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제10항은 칼뱅의 성찬 견해와 비슷했다. 그는 또한 회심에서 인간의 역할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 처음에는 루터의 핵심사상인 은총교리를 따라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듯했으며, 숙명론에 가까운 아우구스티누스의 불가항력적인 은총교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주석 Commentary on Colossians〉(1527)에는 예정설에 대한 반대가 함축되어 있었고, 1532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주석 Commentary on Romans〉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놓고 벌이는 인간의 투쟁을 이야기했다. 〈신학요론〉 1535년 판에서는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선물로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견해는 〈영혼에 관하여 De Anima〉(1540)에서 명확하게 밝혔다. "하느님이 인도하지만 하느님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인도한다."

멜란히톤은 윤리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갈수록 선행을 신앙의 필연적인 열매로 강조했다. 루터는 믿음 자체를 성화(聖化)의 원칙으로 삼았으나 그는 율법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었다. 1528년 〈방문자들을 위한 지침서〉에서는 회개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해 율법의 경고를 전하라고 목사들에게 권고하자 율법 반대론자 요하네스 아그리콜라에게 반박을 받았다. 1535년판 〈신학요론〉에서는 선행이 영생을 얻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선행이 신앙인의 근본이라고 주장했다. 공공질서를 중시해 더욱 율법과 도덕적 이상을 강조하게 되었으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믿음에서 선행이 나오기 때문에 선행은 믿음의 '필수적인' 외적 표현이라는 종교개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C. L. Manschreck 글)

-참고문헌

Corpus Reformatorum, 28 vol. : P. Melanchthon, K. G. Bretschneider․E. Bindseil (eds.), 1834-60

아우구스불그 신앙고백서 : 멜란히톤, 지원용 역, 컨콜디아사, 1965

네 사람의 개혁자 : 쿠르트 알란드, 이기문 역, 컨콜디아사, 1982

Philip Melanchthon:Reformer Without Honor : M. Rogress, 1969

Die Melanchthonforschung im Wandel der Jahrhunderte, 2 vol. : W. Hammer, 1967-68

Melanchthon:The Quiet Reformer : C. L. Manschreck, 1958







멜란히톤의 이신칭의에 대하여


참고서적: 멜란히톤(이승구역), Loci Communes신학총론(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1. 인간


멜란히톤의 경우 인간은 타락전 인간과 타락후 인간을 뚜렷이 구별된다. 그는 먼저 원시상태의 인간을 자연적인 삶의 상태에 대해 말한 다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차원에서 인간 문제를 다룬다.

-타락 이전의 인간

⑴ 인간은 음식과 물을 소화시킬 수 있고, 그로써 그의 물리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⑵ 인간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만지는 소위 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뇌속에 세 가지 내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구별하고, 유사성을 찾고 기억할 수 있다.

⑶ 인간은 그의 영혼의 능력으로 이해를 하고 지식을 가지고, 그의 외적인 지체들을 통제할 수 있다.

⑷ 인간은 그의 마음과 의지에 외식이 없이 참된 갈망을 가질 수 있다.

⑸ 인간은 그의 외적인 지체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일 수 있고, 손, 발, 혀, 눈, 등을 고정시키거나 움직일 수 있다(146f.).

이런 내용은 자연인으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지니었음과 죄로 인해 약회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의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멜란히톤에게 있어서 특이는 한 것은 하나님 형상에 대한 특별한 이해였다. 하나님 형상으로서 인간은 오성과 이해력으로 구비되었고 신지식과 율법에 대한 지식을 지니었으며 악과 덕을 구별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147). 즉 타락 이전의 인간은, 멜란히톤에 의하며, 영적인 능력을 지님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은  모든 악한 열망들에서 벗어나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게 창조된 것이다. 그의 의지는 자유로워서,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로 선택할 수 있고, 그의 마음과 외적인 지체들은 그 어떤 방해없이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147).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멜란히톤이 타락전 인간에게 성령의 사역이 있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타락 이전에는 성령께서 사람의 의지와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불타는 사랑과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하셨고 따라서 사람의 모든 성향과 윤리가 제대로 되었는데………”(180). 타락전 인간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더 구체적인 예를 보자: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 안에 지혜의 놀라운 빛을 일으키셔서,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며, 수를 세고, 하나님을 알며, 수를 세고, 질서를 지우며, 덕과 악을 알며, 그들의 마음과 지체가 순수하며 정돈되어 있고, 이해 가운데서 빛에 순종하며,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또 다른 덕들로 빛나게 하신다. 이런 상태에서는 의지가 자유롭고, 손상되어 있지 않으며, 병이나 죽음이 없는 것이다”(177).

이런 하나님 형상의 상태는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본성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덕을 끊임없이 주실 것이며, 우리를 즐기시고 기뻐하시며,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며, 사랑하고, 그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177).


이와는 달리 타락한 인간은, 멜란히톤에 의하면, 영적인 모든 능력도 거두어 가셨고 자연적인 능력도 아주 약화되었다고 한다(147). 이해력도, 선과 악을 구별하는 힘도, 율법을 인식하는 힘도 약화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이런 인간은 성령과 기타 여러 덕들을 상실한 것으로 본다(179). 멜란히톤은 이것을 그치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황폐한 전쟁터와 같이 묘사했다. “비참한 인간의 마음은 황폐하고, 버려진, 오래되고 낡아지는 집과 같이 덩그라니 서 있어서, 하나님이 더 이상 그 안에 사시지 않고, 을씨년스런 바람만 부는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즉 온갖 갈등하는 경향과 욕망이 인간의 마음을 무절제한 사랑, 증오, 시기, 자만의 다양한 죄로 몰아가는 것이다. 또한 악마들이 그들의 독을 널리 풀고 있는 것이다.”(148).

무엇보다 타락후 인간은, 멜란히톤에 의하면, 성령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영적인 상태는 중한 병에 걸린 것과 같은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성령이 떠나시므로 사람의 의지와 마음 가운데 거짓된 불길과 악성 종양이 자라게 되었고, 잘못된 사랑과 분노, 두려움과 불안이 마음을 괴롭히게 된 것이다.”(180)

멜란히톤은 타락후 인간을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은 강도를 해석하면서 설명했다. 물론 그의 설명은 약간은 알리고리컬하지만 타락후 인간 문제를 잘 정리한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이 삶은 아담과 하와를 나타낸다. 즉 그들은 예루살렘, 즉 평화롭고 아주 만족스러우며, 의로우며 불멸적 상태에서 여리고 즉 순간적 생각과 정욕을 향해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리고는 그 물리작인 면에서의 항상성이 없음을 뜻하는 달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아담과 하와는 예기치 않게 강도들, 즉 악하고 표독스럽고 살인적인 하나님의 원수인 악마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셨던 의를 박탈당하여, 타락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은 그들 안에 거하실 수 없으며, 그 영혼이 이전과 같이 하나님을 아는 놀라운 빛을 지니지 않게 된 것이다. 그들의 의지와 마음은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타오르지 않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더 이상 기뻐하지 않게, 또한 이전의 기쁨과 사랑을 다시 불러 일으킬 수도 없으며, 이제는 연약해지고 혼동에 빠졌고, 모든 인류가 생명과 영원한 복락을 상실한 것이다.”(179f.).

이런 인간은 율법을 지킬 힘이 없다. 또 내면적인 순종도 할 수 없다. 이는 타락한 인간에게는 성령이 떠나셨기 때문이다(154). 나아가 인간의 영적인 도덕적인 힘이 약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마음은 원하지만 그 쪽으로 행할 수 없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유를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방해를 받는 것이다. 즉 자유의지를 중립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153).


2. 원죄와 죄


멜란히톤은 요일 3:4에 근거하여 우선 죄를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한다(136). 또는 하나님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과 이 신적인 질서를 깨는 것은 그 어느 것이든지 잘못된 것이고 그것이 죄라고 한다(136f.).

멜란히톤은 하나님 형상의 개념과 관련하여 원죄를 “이 놀라운 하나님 형상에 대한 잔혹한 파괴”로 이해했다(177).

멜란히톤은 원칙적으로 안셈의 원죄 정의를 받아 들인다. “원죄는 원의의 상실 혹은 손상이다”(peccatum originale est defectus justitiae originalis). 즉 원죄는 아담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과 빛과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으로 충만하였던 때, 우리의 본성에 그 어떤 악한 성향도 없었던 때, 그 창조 때 우리에게 부여되었던 원의, 원래의 거룩성의 상실, 또는 손상이라는 것이다(183).

멜란히톤은 원죄를 아담의 첫 범죄와 더불어 그 후손에게 미친 형향문제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그가 시 51:5을 설명할 때나 엡 2:3을 설명할 때 그런 성향이 나타난다. 멜란히톤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요,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는 구절을 설명할 때 디윗이 “나는 복중에서 잉태되고 형성되었다. 나의 육체와 전체 존재 안에 큰 불순함과 죄가 있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186).

또 엡 2:3 “그 때에는 우리가 ……… 다른 이들과 같이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를 해석할 때는 ‘하나님의 싫어하심을 아래에 태어날 그런 정도의 비참함 가운데 태어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라고 하여 인간이 어떤 상태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186f.). 그리고 롬 7-8장과 연관해서는 그 후손들이 “타고난 불결함”으로 태어났음을 지적한다(187).

-자범죄

멜란히톤은 자범죄를 원죄로 인해 생긴 인간의 연약성과 우리의 악한 의지가 원천이 되어 범한 모든 죄를 의미한다(191). 흥미로운 것은  멜란히톤이 악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 마귀의 영향으로 범하는/ 죄도 여기에 연관시킨다는 점이다. “마귀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반역하도록 독을 뿌린다. 그들은 모든 전략과 방법을 사용하여 가련한 인류와 싸우며, 그들을 우상숭배와 거짓된 교리와 살인과 전쟁과 무서운 부도덕성과 무질서의 초래와 땅의 황폐와 어린 아이 살해와 선한 치리를 파괴하는 것과 바른 신적 교훈을 파괴하는 것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불쾌하게 하는 행동으로 몰아가는 것이다.”(191).


3. 믿음


멜란히톤은 여러 가지 종류의 믿음이 있음을 전제하고 참된 믿음을 정의한다. 우선 참된 믿음은, 멜란히톤에 의하면, “은혜의 약속을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심정 깊은 곳으로부터 구주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드님 때문에 은혜롭게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받아주시며, 우리를 영원한 복락의 상속자들로 만들어 주신다는 신뢰”이다(Loci Commnes 한역, 303). 다른 시각으로 정의한다면 믿음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긍휼하심을 바라보는 소망을 의미한다.1)

그러면 이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멜란히톤은 성령께서 외적인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심으로 믿음이 생긴다고 한다(304).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가 믿음이 발생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동원된다고 한다는 점이다. “즉 외적인 말씀: 우리 안에서의 이 말씀에 대한 성찰; 그리고 외적인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며, 영원하신 아버지를 나타내시고, 우리 마음에 위로를 말하며 하나님 안에서의 사랑과 기쁨을 낳으시는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모두 함께 있는 것이다”(304).

멜란히톤의 경우도 믿음은 인간의 산물이 아니고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꼭 필요한 수단인 것이다. “믿음이란 그것으로 우리가 주 그리스도를 보며, 그것으로 그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고 우리 것으로 만드는 수단인 것이다”(304).


4. 칭의


멜란히톤은 성경의 칭의를 말하기 전에 먼저 눈이 어두워진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 낸 칭의에 대해 언급한다(291). 이를테면 출산을 위한 특별할 희생제사에서 비롯된 ‘유노를 위한 제의’, 聖者의 공로를 믿는 것(291), 그리고 재세례파나 열광주의자들의 칭의. 이들은 어떤 내적인 조명이나 입신 때문에 칭의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했다(292).

멜란히톤은 외적인 도덕을 지켜 얻은 세상적인 의로움은 결국 외식자만 만들어 낼 뿐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펠라기안주의자들과 교황주의자들 그리고 수도사들을 비판한다(294f.).

특별히 멜란히톤은 법에 따라 살면 되는 세속적인 의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완전한 의에 대해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일치하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308). 멜란히톤에 의하면 이 ‘완전한 의’는 하나님 자신이 구원받은 자들 안에 계심을 의미한다(308). 또 그는 이 완전한 의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님을 지적한다. 다음과 같은 멜랄히톤의 말은 이 사실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고 말하듯이 말이다(고전 15:28; 12:6; 골 3:11). 이는 하나님 자신이 구원받은 자들 안에 계시며, 그들을 자신과 같이 만드셔서 그들이 죄없이 온전히 순결하게 하시리라는 의미이다. 사도 바울은 갈 5:5에서 이 온전한 칭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리”(308). 이 참된 의가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부활까지의 온전한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의이고, 우리를 위한 공로가 된다고 말한다”(309).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멜란히톤이 forensic 칭의 곧 선언적 의를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멜란히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의란 받아드림 곧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이시는 받아드림이다.2) 그리고 칭의함을 받는다는 것은 “의로운 것으로 또는 받아드린 것으로 여겨지거나 선언되는 것”3)을 의미한다. 멜란히톤은 자기의 칭의 개념을 정리하듯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태어난 그대로 본질적으로 의인이 아니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확실하다는 것을 굳게 믿을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일어나는 轉嫁를 통해 된 의인이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은 외부의 공로 곧 무엇인가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소망을 통해 화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한다”4)

그러면 칭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질까? 멜란히톤은 우리를 구원하는 칭의를 화해론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제사를 통해 우리를 위한 공로 있는 은혜가 되셨는데, 그 은혜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죄용서,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받아주심과 영원한 칭의과 복됨이다. 그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296). 멜란히톤은 바로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성령을 주셨다는 것을 강조한다(296).

멜란히톤이 말하는 칭의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얻으셔서 우리에게 내려주시고, 우리 안에 만들어주신 모든 하나님의 선물, 즉 죄 용서와 하나님께서 은혜스럽게 받아주심, 의의 전가, 우리 안에서의 신생, 곧 그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복음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성령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지금 영원한 복락의 상속자들이 되게 하시며, 현세가 지나면 영원한 복락을 주시는 신생 등을 말하는 것이다”(297). 이때 인간 편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300).

다시 말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며, 요한 일서에서 ‘아들을 가진 자는 생명을 가졌나니’(요일 5:12)라고 말하듯이, 우리 안에 영원한 의가 시작되게 하시는 것이다. 아들을 가진다는 것은 믿음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받으시는 것이다. 그 아들은 이 위로를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령을 주신다. 그 성령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기쁨을 불러일으시시는 것이다”


















위의 사실을 도식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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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나님

  ◐◐◐◐


  ↓↓↓↓

   죄용서, 칭의,

  ↓↓↓↓


☆☆☆☆☆☆

☆▣▣▣▣☆ →→   ☆☆☆☆

☆▣▣▣▣☆ ←←   ☆☆☆☆

☆▣인간▣☆ ←←   ☆예수☆ 예수께서 얻어 놓으신 것은 내게로 옴.

☆▣▣▣▣☆ →→   ☆☆☆☆ 그리스도의 의가 내게 轉嫁됨

☆☆☆☆☆☆ 믿음

예수로 옷입음

  상속자       

   성령,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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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은 이 과정에서 인간의 믿음을 매우 강조한다(300f.). 


-성화

멜란히톤의 경우 칭의와 성화는 분명히 구별된다(311).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갱신이 뒤따르게 되는데, 이를 그는 성화라 부른다”(311).

멜란히톤에 의하면 칭의와 더불어 성령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역시이어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과 같은 것을 만드시는 것이다(310).



멜란히톤의 경우 remissio peccatorum, iustificatio 또는 reconciliatio는 그리스도 사역의 직접적인 작용이다.5)

 

출처 ; http://cafe.daum.net/herman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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