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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와 칼럼

[스크랩] 육체의 일들

작성자abigail|작성시간13.04.09|조회수314 목록 댓글 0

육체의 일들

 

갈라디아서 5:16-21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 나의 옛사람이 내 마음의 보좌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성경은 이를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대신 사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17절을 보면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그 마음 속에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다투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17절).

성령의 소욕은 신앙 양심으로 역사합니다. 즉, 육체를 따르려 할 때 신앙적인 양심이 가책을 받습니다. 한편 성령을 따르면 말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은혜와 사랑과 감사와 평강을 맛봅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양심의 가책만 있고, 신앙으로 인한 가책이 없다면 그는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 양심의 가책이란 ‘이렇게 행동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할텐데’라는 의식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18절)고 확신을 줍니다.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 사로잡힌 바가 되면 사랑과 거룩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면서 나는 육체를 따르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온전하게 율법을 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뜻은 나의 옛사람으로 율법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헛된 시도에서 벗어나 성령 안에서 진정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한 동기 가운데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뜻입니다. 즉, 억지로가 아니라 참 맘으로 율법의 요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각과 삶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가 성령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육체의 소욕을 따르고 있는지 삶의 열매를 뚜렷하게 제시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자신을 분별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즉, 삶 속에 육체의 일을 보이면 이는 성령을 따름이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따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육체의 일은 헷갈리지 않고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일에 대해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육체의 일에 대해 하나하나 점검하기 전에 먼저 21절을 검토하였으면 합니다.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의미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인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에 들어갔다가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방금 17절에서 거듭난 신자들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갈등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신자들은 때때로 육체의 소욕에 져서 육체의 일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육체의 일’은 거듭난 자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21절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거듭난 신자라도 만일 육체의 소욕대로 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일까요? 거듭난 후에도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소위 알미니언 주의가 맞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알미니언이 맞다고 하면 문제는 이런 육체의 일이 단 한번 나타나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10번까지는 되고 그 이상은 안 되는 것인지 그러한 빈도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또한 육체의 일들 중에 어떤 것은 허용되고 어떤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등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나아가 알미니언 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런 육체의 일’이 그들에게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기에 ‘나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장담할 자가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여집니다.

 

알미니언 주의자들은 참으로 분쟁, 시기, 분냄, 호색, 더러운 것, 분열 등의 더러운 죄악들이 전혀 없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마음으로라도 그러한 더러움에 다가가본 적은 없는지, 과연 이곳에 언급된 육의 일이 거듭난 후에 평생 한번도 없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아무튼 우리는 21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본문에서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아는 자로서 참된 회개와 믿음은 변화된 삶으로 나타남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이 말하려는 요지는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육체의 열매가 날 수 밖에 없지만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성령을 따라 살면 육체의 일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사도 요한 역시 같은 결론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6-10).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즉,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더욱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살면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에 의해 반드시 우리의 죄성이 제거되고 거룩한 의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권면이요 결론인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하는 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죄악을 죄라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언제나 육체의 일만 나타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죄악된 삶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한 자들입니다. 이에 원어에서 ‘행한다’는 현재 분사로서 육체의 소욕에 장악된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죄악된 삶의 스타일을 합리화한 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기회만 닿으면 육의 일을 맺는 자가 있다면 그는 가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는 성령이 없는 자로서 회개의 열매가 없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유다 사도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17-19).

 

또한 본문에서 중요한 사실은 육체의 일을 제거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행할 것인지 아니면 성령을 따라 행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일 복음을 믿고 성령을 따라 행하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그 사람의 삶을 통해 나타나면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인간이 흉내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나타날 때 맺히는 열매입니다. 

 

따라서 거듭난 자들은 반드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거듭나지 않는 자들과 똑같은 육체의 일들이 나타날 것이며 그러할 때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은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육체의 일이 지속될 경우 그의 회개와 거듭남이 진짜였는지 의심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범죄 가운데 있을 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의심스럽고 자신의 구원에 대해 계속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힘써 복음의 능력을 발휘합시다. 그래야 스스로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맛보면서 자신의 삶을 통해 성령의 열매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에 자신이 하나님 나라 자녀이며 백성인 사실을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성경은 그 은혜와 사랑에 근거하여 제 멋대로 죄를 짓고 죄를 합리화하는 자가 있다면 그의 회개와 거듭남이 가짜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기에 다시 죄에게 종노릇한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일이 내 삶에 나타나면 당장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회개하고 성령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간절함으로 주께 매어달려야 할 것입니다.

 

한편, 주의 보혈로 인하여 거듭난 자들이 육체의 일을 고집할 때 하나님은 이 땅에서 무서운 징계를 가하여 돌아오게 하십니다. 따라서 육체의 일을 고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단히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아픔과 비참과 실패와 궁핍은 마치 지옥처럼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은 죄악의 상태에서 나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징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히 12:4-7)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0-13).

 

그러므로 육체의 일 가운데 지속적으로 거하는데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육체의 일에 거할 때 반드시 혹독한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당장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체의 일을 버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일에 대해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이제 간단하게 육체의 일들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1) 음행:

2) 더러운 것:

3) 호색: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이 세 가지는 성적인 죄악입니다. 특히 음행의 원어는 ‘포르네이아’로서 지금 이 시대의 모든 ‘포르노’와 관련합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의 부패성은 무엇보다 먼저 성적인 죄악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더럽힙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과 6장 13-20절을 참조하면 성적인 죄악은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 즉, 성적인 음행은 주님의 성전된 거룩한 몸을 더럽히는 행위로서 자기 자신에게 영적으로 큰 손해를 끼치는 죄악입니다. 특히 믿지 않는 이성과의 성적인 연합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드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6-17).

 

"다른 죄들은 대항하여 싸움으로 이길 수 있지만 성적인 죄악은 피함으로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요셉이 성적인 죄를 이긴 방법도 무조건 그 분위기에서 피하는 것이었습니다(창 39:1-18). 그러므로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고 권하였습니다.

 

죄악의 많은 종류 중에 가장 매력있는 죄악이 성적인 죄악입니다. 생명을 던지며 순교할 수 있는 자라도 종종 외모의 미(美)에 속아서 미혹에 넘어가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성적인 죄악은 마치 독사(毒蛇)의 입에서 나오는 독과 같으며 마치 알프스산의 아름다운 잔디 언덕과 같습니다. 알프스 산을 가면 아름다운 잔디가 있는데 그 잔디의 아름다움 때문에 가까이 가다보면 땅이 꺼지면서 구덩이로 떨어져 죽는 일이 많습니다. 이처럼 음행은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음행자를 가리켜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잠 7:22-23)고 하였고, 그런 죄를 범하게 하는 집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 7:27)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음행"(포르네이아)은 특수한 범행(犯行)으로서의 결혼에서 벗어난 모든 성적인 행위의 죄악이고, "더러운 것"(아카싸라이아)은 생각과 말이 일반적으로 음란한 것을 의미하며, 호색은 돈과 시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 늘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행습을 의미합니다.

 

4) 우상 숭배:

5) 주술:

 

우상 숭배와 주술은 종교적인 죄악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거나 사탄을 하나님으로 알거나, 혹은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어 자신 및 다른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육안(肉眼)으로 보면 믿겠다는 것은 우상 숭배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그림이나 조각상이나 상징으로 나타내는 것도 인간이 제 멋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써 참람하고 교만한 우상 숭배 행위입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은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12절에서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하였습니다(참조, 시 18:11;골 1:15).

 

성경은 우리 눈으로 보지 않고 믿는 신앙을 고상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감각 세계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장려할 일이 못됩니다. 나아가 감각주의는 신앙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인간의 감각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육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성령 체험이라 하여 몸을 뒹구는 행위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인간의 체험에 가두는 우상 숭배와 다름 없습니다.

 

한편 주술의 죄악은 예언과 관련한 범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예언은 순종과 거룩을 의도합니다. 반면에 주술은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또는 악령에게서 나오는 예언을 말합니다. 주술은 점을 보거나 미래를 알려고 하는 죄악으로써 이 세상의 형통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예언은 언제나 우리의 죄악을 지적하여 회개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는 성령의 조명 외에는 다른 예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술수의 범죄는 인간이 공교히 만든 거짓 예언 및 마귀의 역사로서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입니다. 아무튼 주술의 죄는 점쟁이 및 무당 등과 관련된 죄악입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점을 쳐주는 행위는 성령의 이름으로 주술 죄를 짓는 것이니 가장 참람한 죄악 중에 하나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예언들, 즉 거룩함과 무관한 예언은 주술의 죄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삶은 십자가의 능력에 의해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술의 죄악은 십자가의 능력을 잃게 하고 결국에는 자기를 드러내며 하나님께 욕을 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6) 원수 맺는 것:

7) 분쟁:

8) 시기:

9) 분냄:

10) 당 짓는 것:

11) 분열함:

12) 이단:

13) 투기: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 이 여덟 가지 죄악은 불화(不和)의 죄악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깨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와 사랑을 무너뜨리는 죄악입니다. "원수를 맺는 것"은 상대방의 죄를 용서하지 않음에서 기인합니다. 신자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원수된 우리를 용서하고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앙심을 품는 것은 육체의 일입니다.

 

우리에게 해를 가한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징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4, 48).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4, 17, 19, 21).

 

용서하지 못하고 원수를 맺는 자는 상대편의 악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더 많은 악을 만들어 놓게 됩니다. 우리는 용서를 통해 원수 맺는 육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분쟁’은 다툼을 말합니다. 눈을 부릅뜨고 위협하며 독한 말로 욕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자존심 때문에 사소한 일로 다투는 것은 철저하게 교만에서 나온 육체의 일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신념에 빠져서 자신의 해석만이 옳다고 하며 다투는 자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자들입니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4-6).

야고보서 3장을 보면 입에서 지옥의 말을 하며 다투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다툼을 좋아하는 사나운 자들은 육체의 일을 날마다 그대로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시기"는 남이 나보다 인기가 좋아지거나 잘 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울 왕이 있습니다. 시기에 빠진 사람은 아주 옹졸하며 뒤에서 작당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남이 나보다 우수할 때에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나보다 우수한 자에게서 배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다툼은 공동체를 허무는 가장 주된 범인들입니다.

 

"분냄"은 미련한 자의 특징입니다. 분냄은 혈기를 의미합니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잠 12:26)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 7:9).

사람이 선한 일을 많이 쌓았다고 할지라도 "분노" 때문에 그 귀한 수고를 한방에 무너뜨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노를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세우지 못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

 

"당 짓는것"은 자기들의 이권이나 우월을 위해 단결하여 공평과 진리를 대항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혈통이나 출신 배경, 학벌, 권력 등으로 하나되는 것은 당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도 당 짓는 것입니다. 심지어 훌륭한 영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당을 짓는 것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와 진리 안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추구해야 합니다.  

 

“분열함”이란 말은 각 개인이 주관하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이어야 하는데, 분열하는 육체의 일을 나타내는 자들은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분열함의 가장 큰 동기는 내부에서 자기 세력을 만들려고 할 때 나타납니다. 즉, 분열은 그리스도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드러내고자 할 때 나타납니다. 이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두 가지를 조심시켰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29-30).

 

“이단”이란 말은 다른 교훈을 채택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참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진리와 표준에서 위배되는 교훈을 채택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사에서 또는 정상적인 교단에서 ‘이단’으로 판정된 집단이나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이단입니다. 이때 이단에 대한 최종 결정은 성경이어야 하며 또한 성경에 충실한 바른 교회여야 합니다. 특히 이단은 왜곡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가만히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7-18).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다”(갈 2:4).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이단’을 대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참교회가 고백한 성경적 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순종할 때 영적인 분별력이 생깁니다.   

 

“투기”는 교만과 우월의식에서 나오는 죄악된 행동입니다. 투기에 의해 명품 전쟁이 일어나며, 과소비주의가 나타납니다. 아파트가 누가 더 큰가? 어느 동네에 살 것인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투기하는 자들은 늘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모든 면에서 지기 않아야 하는 죄성입니다. 투기하는 자는 심술이 심하고 상대방의 좋은 것을 빼앗으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더 나아가 어떻게든 상대방을 무너뜨려 내가 상대방보다 더 높은 자리나 더 좋은 물건을 취해야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투기는 잘난 척 및 자랑하려는 죄성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14) 술취함:

15) 방탕함:

16) 그와 같은 것들

 

“술취함”은 성경이 금합니다. 술을 약으로 사용함이 허락되지만 그것을 빙자하여 술 취함을 합리화한다면 이 또한 속이는 범죄입니다. 술취함을 사회 풍습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놔두면 언젠가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술취함이 왜 죄악입니까? 술에 취하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과 진리를 분별하는 일에 어리석어지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하면 일반적으로 숨겨진 죄성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신자가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진리를 다 준행하지 못하는데, 술에 취하면서 어떻게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술에 취하면 그 동안 절제되던 죄성이 그대로 들어나기 때문에 혈기가 있던 사람은 잘 참고 있다가 술 먹고 혈기를 부리며, 음란하던 사람은 깨어 있을 때는 음행으로 가지 않는데, 술을 먹게 되면 창녀를 찾는 일들이 종종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미워하던 사람을 술김에 살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술취함은 인간으로 하여금 짐승처럼 만들어 버리고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합니다. 방화, 살인, 그리고 온갖 퇴폐스러운 일들은 술취함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방탕함”은 무절제한 향락주의를 말합니다. 쾌락을 위해 시간 및 자원을 낭비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썩을 것에 온 마음을 드리는 것이 방탕입니다. 인터넷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게임 중독 등, 절제를 잃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마음과 자원을 붓는 것이 방탕입니다. 그저 아무런 인생의 목적없이 먹고 마시며 인생을 탕진하는 것이 방탕입니다. 그러므로 방탕은 삶의 목적을 잃은 자들이 썩어질 것에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오직 거룩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향락에 빠진 자는 결코 참된 신자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외 “그와 같은 일들”이 있는데 우리는 어떤 행동이 성령의 충만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육체의 소욕에서 온 것인지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위선이나 거짓 선지자의 말 등은 고차원적인 육체의 일로서 아주 간교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진실한 충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질서와 평강과 인내가 진실한 신앙에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질서와 어지러움과 광란 등은 육체의 일에 속한 ‘그와 같은 일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마다 자라난 배경이 다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난 죄성, 즉 육체의 일이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현저한 육체의 일들에 대해 점검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살폈을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육체의 일을 그냥 두어서는 비참한 인생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육체의 일, 즉 흠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됩니다. 육체의 일이 하나만 지속되더라도 롯이나 삼손과 같은 부끄러운 인생이 될 것이며 그로 인하여 많은 저주와 비참이 발생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육체의 일을 회개하고 성령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바울이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2-13).

 

베드로의 권면입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2-3, 7).

 

더욱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기”(딤전 4:5)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 지속적으로 바울의 기도를 따라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옵소서”(엡 3:16).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하소서”(고후 4:14).

 

오늘 우리가 다룬 본문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 5:16-18).

 

자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현재의 육체의 일들 가운데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 안에서의 참된 자유와 거룩과 평강과 행복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남은 여생이 더욱 주 하나님께 영광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 스데반 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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