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의 정수(김재성) - 제11장 하이퍼 칼빈주의 (발췌)

작성자한아름|작성시간12.08.28|조회수179 목록 댓글 0

개혁신학의 정수- 제11장 하이퍼 칼빈주의|설교자 스터디
손용환 | 조회 93 | 2009.03.02. 08:55 http://cafe.daum.net/CPI2002/aFf/59 
 
 개혁신학의 정수

제 11장 하이퍼 칼빈주의 


손용환


‘하이퍼(Hyper)’라는 말은 ‘과도한’, ‘극렬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순수한 칼빈주의 전체를 매도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하이퍼 칼빈주의(Hyper-Calvinism)’을 따르는 사람은 칼빈주의자들 가운데서도 1%도 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초기 하이퍼 칼빈주의자들

        ‘하이퍼 칼빈주의’는 ‘하이 칼빈주의 or 높은 칼빈주의(High Calvinism)’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생겨났다. ‘높은 칼빈주의(High Calvinism)’은 16세기 후반부터 발전하였는데 베자와 퍼킨스 등 초기 칼빈주의자들의 어떤 교리에서는 칼빈보다 좀더 강하게 주장하였다고 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하이퍼 칼빈주의’와 ‘높은 칼빈주의’는 타락 전 선택설을 지지한다. 그러나 베자와 퍼킨스를 ‘하이퍼 칼빈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다.

        ‘하이퍼 칼빈주의’는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벌어진 ‘신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의 논쟁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신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과도한 대응에서 ‘하이퍼(과도한) 칼빈주의’가 태동하게 되었다.


초기 신율법주의 반대자들

*아이작 차운시-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고 신앙의 길을 제시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요셉 허세이(Joseph Hussey)-회중교회 목사로서 대중들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전달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존 스케프(John Skepp)-「하나님의 능력(Divinie Energy)」란 책에서 “성령의 특별한 사역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 길의  ‘하이퍼 칼빈주의’

        ‘하이퍼 칼빈주의자’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침례교 목사였던 존 길(John Gill, 1697-1771)이다. ‘하이퍼 칼빈주의’를 간단히 줄려서 ‘길이즘’(Gillism)이라고 할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8세기의 칼빈주의자들 가운데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제외하고 필적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학문적으로도 뛰어나고 감화력이 있는 걸출한 목회자였다. 특히 「실제적이고 교리적인 신학의 총체」는 오늘날에도 칼빈주의적인 침례교회의 지침이 되고 있다.


「흙으로 빚어진 그릇」

        존 스티븐스(John Stevens)는 19세기 ‘하이퍼 칼빈주의자’였으나 반율법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반율법주의자’ 갓스비 집안의 목회자들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특히 존 스티븐스는 그리스도의 아들 됨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출생하기 직전까지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들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침례교 하이퍼들

        영국에서 발생한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기저에는 반율법주의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이퍼 칼빈주의들은 앤드류 풀러와 윌리엄 캐리가 주도하는 세계 선교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며 목소리를 모았다. 이 운동은 19세기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미국 하이퍼 칼빈주의’ 그룹이 태동하는 동기가 되었다.


‘원시적 침례교도들’

        미국 켄터키에서 선교 반대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극단적인 침례교 칼빈주의자들을 이름하여 ‘원시적인 침례교도들(Primitive Baptists)’이라 부르는데 1827년 미국에서 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거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자유롭게 제시하는 것과 외국에 가서 선교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필연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일단의 극렬한 침례교도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선택된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직접 회개와 중생론이라 한다. 칼빈주의 정통신학은 간접적인 회개와 중생론, 즉 하나님은 말씀의 전파, 복음을 듣게 하는 수단을 사용하셔서 사람의 심령을 중생하게 하신다.

        ‘타락 전 선택설’의 곡해자로 알려진 다니엘 파커의 영향을 받은 다른 침례교도들은 ‘성령의 두 씨앗’이라는 이론을 통해 선택된 사람들 몸속에는 생물학적으로 선택의 ‘씨앗’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는 차츰 꽃이 피어나듯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대로 유기된 자들은 이미 몸 속에 저주의 씨앗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주장이다. 이들 ‘원시적 침례교도’을 ‘딱딱한 침례교파’(Hardshell Baptists)라고 부른다. 이들은 교회의 교육마저 거부했다.


아더 핑크

        아더 핑크는 침례교 목사였지만 반율법주의자는 아니었으며, 하이퍼 칼빈주의자로서 유명한 저술가로 명성이 높았다. 목회 초기에는 ‘알미니안주의적인 세대주의자’였으나, 칼빈주의적 세대주의자로 입장을 선회하며, 최종적으로는 세대주의를 완전히 벗어버렸다.



훅스마와 일반 은총 논쟁

        침례교인이 아닌 개혁주의 본류에서 나온 하이퍼 칼빈주의는 1920년대 미국에서 발생하였다. ‘하이퍼 칼빈주의’논쟁은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 시에 소재한 칼빈 대학교와 칼빈 신학대학원 등이 속해 있는 네달란드계 기독교 개혁교회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 때 논쟁의 핵심은 ‘일반 은총론’이었다.

        ‘기독교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는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앙을 계승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조직신학을 충신하게 따르고 있다. 이에 동의 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축출되어 ‘개신교 개혁교회(Protestant Reformed Church)’라는 교단과 ‘개신교 개혁 신학교’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이 그룹에 속한 일부 학자들은 훅스마와 자신들의 견해는 존 길 등이 속한 ‘하이퍼 칼빈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복음 제시’에 반대하는 다른 하이퍼 칼빈주의자들과 공통점이 많다. 또한 일반 은총의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칼빈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훅스마와 개신교 개혁교회에서는 일반 은총이라는 모든 개념을 완전히 부정한다. 훅스마의 논리는 ‘타락 전 선택설’의 왜곡된 형태의 극단적 모습이다.

        훅스마는 두 가지 필수적인 원리를 도출한다. 첫째, 선택된 자들은 켤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 않다. 둘째, 택함 받지 못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지 못한다. 칼반주의 정통 신학자들은 훅스마의 이런 양립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랑을 입는다고 말한다.(엡2:3, 시145:9, 마5:43-48등) 



하이퍼들의 오해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견해를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정통신학을 가진 사람마저 극단주의자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존 라이스(John R. Rice)와 노만 가이슬러(Noman Geisler)는 ‘돌트 신경’의 다섯 가지 요점을 신봉하는 사람까지도 하이퍼 칼빈주의자로 규정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모든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반율법주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칭의는 믿음을 갖기 이전에 주어지며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복음만 믿을 뿐이지 율법과는 상관 없다고 주장한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자유로운 복음 제시에 있어서 ‘자유’라는 단어를 알미니안들이 주장했던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자유’라는 개념과 동일시하여 거부한다. 그러나 1700년 이전의 모든 칼빈주의자들은 자유로운 복음 제시를 인정하고 실천하였다. 1700년 이전에는 데이비스와 허세이를 제외하고는 복음의 일반적인 제시를 거부하는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선포(to preach)’와 ‘제시(offer)’가 별개의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에게 선포는 가능하지만 제시는 인정하지 않는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역사적 칼빈주의자들의 논쟁점을 살펴보자. 다음은 존 머레이가 지적한 사항들이다.

①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복음과 관련하여 ‘제시한다’라는 말이 성경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킹 제임스 역본에만 근거하였다. 다른 영어 성경 특히 NASB의 고전 9:18에는 바울 사도의 복음 전파에 대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②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이 제시가 아닌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not offer, but give). 그러나 일반적인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의 제시를 통해서 주신다(God gives through the offer of the Gospel)’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주시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갖도록 하시며,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말씀을 듣도록 하신다(롬10:17).

③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제시’는 보편적으로 제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여 거부하며, 그리스도의 제한적 속죄를 손상시킨다고 하여 반대한다. 그러나 복음의 제시가 보편속죄설로 이어지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④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자유로운 복음 제시가 보편구원론에 귀결된다고 하여 거부한다. 즉 하나님의 은총이 보편적이라는 함축을 띠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리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참된 개혁신학은 선택교리와 복음의 균형을 유지한다.



‘신앙 의무’의 문제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신앙 의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18세기 중반에 ‘근대 질문’이라고 불리던 논쟁이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얻는 믿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가?”에 대한 토론에서 주류 칼빈주의자들은 “예”,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아니오”라고 거부하였다.

 첫째,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신앙의 의무’라는 개념이 마치 죄인들에게 믿을 수 있는 능력을 함축하고 있다고 하여 거부한다. 의무라는 말은 능력을 소유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개혁신학의 바른 입장은 인간의 무능력 교리를 주장하며 동시에 인간의 의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은 여전히 율법에 대한 의무를 벗어나지 못하며, 지킬 의무가 있다. 복음을 들었을 때도 동일하며 복음을 듣고 믿지 않았을 때 추가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둘째, 믿음은 선물이다. 따라서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믿음이란 모든 사람의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믿음은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선물과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다룬다.

 셋째, 구원은 무조건적이다.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믿음이란 단지 축복이지 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통 칼빈주의자들은 믿음이란 의무이며 동시에 축복이라고 한다. 이는 행위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조건이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맺는 말: 수퍼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충고

        하이퍼 칼빈주의는 알미니안주의자들에게 지나치게 대응하다가 신학의 강조점이 다른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대부분의 하이퍼들은 알미니안을 진정한 기독교 신자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갓스비는 웨슬레가 구원받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은 복음적인 알미니안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인정하고, 연약한 교리를 가진 형제들이라고 생각한다.

        상당수의 젊은 칼빈주의자들은 은총 교리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더 나은 칼빈주의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즉 하이퍼 칼빈주의라는 단어를 수퍼 칼빈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는 청교도가 스스로 높은 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했던 경고를 무시하였다.

        우리시대에도 일반적인 칼빈주의자들도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의 정신과 연관을 맺고 있다. 문자적으로는 하이퍼 칼빈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복음을 제시하는 것에 있어서 무관심한 자세는 하이퍼 칼빈주의적인 태도이다. 근본적으로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은 교리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첨부파일 하이퍼 칼빈주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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