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 본문은 4절 말씀과 연결된다. 자기 심령의 문제나 인간관계의 문제만큼 쉽게 기쁨을 빼앗아 가는 요인은 없다는 점에서 이 두 명령은 직접 연결되고 있다. 기쁨의 문제에 관심을 쏟았던 바울은 기쁨을 빼앗아가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다루는데, 이 또한 그 요인 중에 하나이다. 자기 심령의 상태에 주의하되 특히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주의해야만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명령과 같이 이 명령도 우리가 보여 주지 못하면 주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이다. 관용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 주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주를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듯이,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 주고 베푸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할 특징이다.
관용이 없으면 주 안에서 진정으로 기뻐할 수 없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기가 더 어렵겠는가?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기가 더 어렵겠는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4절에서 사도가 권하는 것은 일종의 상태인데, 5절은 그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진리를 놓치지 않고 붙잡는 쪽보다 진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쪽이 훨씬 더 어렵다는 말에 여러분도 동의할 것이다. 5절은 적용에 해당되는 명령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은 나를 표출하는 일이지만, 관용을 보이는 것은 나를 억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표출하는 것보다 억제하기가 항상 더 어려운 법이다. 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 4절이 5절보다 쉬운 것은, 4절은 주님을 바라보라고 명령하는 반면 5절은 주님처럼 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5절은 여러 면에서 기독교 복음 중에서도 가장 높은 차원의 요구를 하고 있다. 실제로 환난 중에 기뻐하는 일보다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알게 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사도가 예외 없이 늘 하는 방식대로 여기서도 단순히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교리를 함께 설명한다. 그는 단순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것은 강력한 교리로서, 이 교리를 주신 것에 정말 감사를 드린다. 이 교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깨달아야 이 명령을 이행할 수 있다. 이것이 사도의 특징이다. 무엇을 요구할 때 반드시 그 요구에 응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 주며, 거기 올라갈 수 있는 힘의 원천도 알려 준다. 신약성경의 그냥 어떤 삶을 살라고 명령하는데 있지 않고, 항상 교리를 기본적이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으로서 함께 가르친다.
- 바울이 말하는 관용이 무엇인가?
1. 소극적인 의미
① 바울이 말하는 관용은 동물적으로 타고난 좋은 본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심리나 기질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② 그가 말하는 관용은 매사에 분명치 못하고 유약하며 안이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앞서 “주 안에서 굳게 서라”라고 권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범사에 관용을 베푸는 자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주 안에서 굳게 서 있는 자이다. 타협하는 자가 아니다. ‘내가 뭐 특별하다고 남한테 까다롭게 굴겠어?’라고 생각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주 안에서 굳게 서 있는 자이다. 적절치 못하고 잘못된 의미에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는 것(고전9:22 참조), ‘절대평화주의’를 추구하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 타협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다. 그보다 더 사도의 위엄 있고 고매한 성품과 동떨어진 모습은 없다.
2. 적극적인 의미
① 관용에는 자신과 자신의 심령을 통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관용이 있는 사람은 자기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며, 중요한 것은 굳세게 지키되 그렇지 않은 것은 합리적으로 처리할 줄 아는 능력이다. 관용이 있는 사람은 자기 권리를 끝까지 주장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교회와 다른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주님을 위해 마땅히 누릴 권리까지 양보하는 것이다. 심령이 영향을 받을 정도로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집착하면 안 된다. 관용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② 관용은 쉽게 속상해 하지 않는 상태, 즉 너그러운 상태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자, 너희는 다 교회의 지체이니 자기 심령과 마음과 자아를 잘 다스려서 쉽게 불쾌해 하거나 속상해 하지 말라”라고 사도는 말한다. 쉽게 속상해 하지 않는 것은 크고도 놀랍고 고상한 그리스도인의 성품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스토아주의의 무심함이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를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겠다. 관용은 본질상 적극적인 특질이다. 관용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 속에 있어서 어떤 공격도 잘 소화해 내며 그로 인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쉽게 속상해 하지 않고 인내하며 견디고 오래 참는다는 뜻이다.
③ 관용은 적극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첫째, 기꺼이 자기 권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둘째, 거슬리고 힘든 사람을 대할 때 일종의 완충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셋째,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해 주며 감당하기 힘든 거친 행동이라도 무마해 주고자 변명해 주고자 애쓰는 것이다. ‘지금 저 사람 형편이 어렵잖아, 워낙 힘든 기질을 타고나서 그래’라고 생각해 주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채워 주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용이라는 말에 담긴 핵심적인 의미이다.
3. 사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보자.
그는 어떤 일에도 격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야 한다. 행복할 때에도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야 한다. 자기가 즐겁다고 해서 관용을 잃는 것이야말로 현대세계의 가장 뚜렷하고 안타까운 특징이 아닌가? 너무 좋으면 자제심을 잃고 정신도 잃어버린다. 기쁠 때도 자제해야 하고 슬플 때는 더더욱 자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기쁨을 알고 슬픔과 비통함도 알지만 그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문제는 하늘에 닿을 듯 기뻐하거나 절망의 구렁텅이로 뚝 떨어져 버릴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항상 균형감과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자제해야 한다.
덧붙일 말은, 그리스도인은 활기찬 사람들이다. 침울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제력과 스토아주의의 자제력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스토아주의자는 그저 상황을 감내할 뿐이지만, 그리스도인의 관용에는 활기가 있다. 그래서 세상이 보여주는 자제력은 놀랍기는 한데 냉랭하다. 바울이 말하는 자제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제할 때에도 행복해 하며, 기뻐할 때에도 관용을 보인다.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고후10:1) 바울이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두 이 관용을 나타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 성격이 다 제각각인데 그럴 수 있느냐, 이것은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냐? 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대답은 가능하다, 라는 것이다. 최고의 예는 주님이시다. 사도 베드로는 이 점을 아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이 없으시며 욕을 당하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1-23)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죄가 있어 매를 맞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8-20)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관용을 나타내야 하는가? 그 답은 실천을 통해,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나타내라.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나타내야 한다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해야겠다. 또한 삶의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관용을 나타내야 한다. 믿음을 위해 싸우고 주 안에 굳게 서 있으면서 관용을 나타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진리를 대변하되 관용으로 대변하라는 것이다.
자기 심령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따지고 드는 냉혹한 율법주의를 피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문제와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은 문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법적으로 부당한 대우까지 감수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위해 싸우지 않고 진리를 위해 싸운다는 점을 항상 분명히 드러내라는 것이다. 때로는 거룩한 열심, 의로운 분노와 거칠게 비판하고 판단하는 마음을 구별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관용을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 우리는 어떻게 관용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가? 어디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것이 바울이 알려 주는 바, 세상과 세상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점점 더 끊을 수 있는 방법이다.
① 그리스도인은 삶을 온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항상 모든 상황을 주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가 주신 구원에 비추어서 바라본다. 주께서 가까이 오고 계신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이 곧 오신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관용을 베풀 수 있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이 순례자와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사실, 오늘 있다가 내일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면, 관용을 베풀 준비가 거의 다 된 것이나 다름없다. 영원을 생각한다면 60년, 70년, 80년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② 이 말씀은 우리가 아닌 주님이 심판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쉽게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나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많은 문제가 절로 해결된다. 남을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남을 정죄하고 싶을 때 여러분도 심판받는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라.
더 나아가 우리가 마땅히 복수하거나 처벌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직접 갚으려 들면 안 된다. 모든 인간이 주님 앞에 설 것이고, 주님이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이 말씀을 믿는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를 불쌍히 여길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관용을 베풀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 모른다. 무언가 끔찍한 상황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르고, 밤낮으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땅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으며 견디고 있든지, 주께서 가까이 오고 계신다. 여러분에게 놀랍게 보상해 주기 위해 주께서 준비하고 계신다.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면, 여러분이 참으로 주께 속한 자들이라면, 확실하게 보상을 받을 것이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할 영광스러운 기쁨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곧 오실 것을 바라보라.
- 성경은 주님처럼 하라고 권한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 1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시느니라”(약 5:7-9)
다른 말을 더 할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심리학이 아니다. 범사에 관용을 나타내라. “주께서 가까우니라” 이 맥락에서 모든 삶을 바라보라. 여러분이 아닌 주님이 심판자시라는 것을 안다면, 그 모든 죄와 악에 대해 원수를 갚으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이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과 영원토록 그의 영광스러운 임재 안에 거하면서 그 앞에 있는 기쁨에 동참할 것에 대해 깊이 상고하라. 그렇게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자기바퀴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