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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서적

천로역정 해설 7장요약(김홍만 목사)

작성자라벤더|작성시간21.02.20|조회수546 목록 댓글 0

 천로역정

 

7장 변덕쟁이

 

고집쟁이는 돌아가고, 크리스챤과 변덕쟁이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원을 가고 있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크리스챤: 변덕쟁이 씨.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가게 된 것이 매우 기쁩니다. 만약 고집쟁이가 아직 보지는 못하였지만 내가 느꼈던 두려움과 압박감을 느꼈다면 그렇게 가볍게 우리를 뒤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변덕쟁이: 크리스챤 씨, 이곳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해 주시오.

 

크리스챤: 그곳의 통치자이신 주께서 이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의 내용은,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그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 모든 것을 자유롭게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변덕쟁이: 그래요. 이 모든 것을 들으니 기쁩니다. 어서 걸음을 빨리 합시다.

 

크리스챤: 나의 등 뒤에 있는 무거운 짐 때문에 빨리 걸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대화를 마치자마자 평원의 한가운데에 있는 깊은 수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수렁의 이름은 절망의 수렁이었다.

 

변덕쟁이: 크리스챤 씨, 지금 당신 어디에 있는 거요?

 

크리스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때부터 변덕쟁이는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변덕쟁이: 아니 당신이 나에게 말한 행복이 고작 이런 것이오?

 

크리스챤을 설득하기 위해 따라온 두 친구 중 고집쟁이는 집으로 되돌아갔고, 변덕쟁이라는 친구는 크리스챤의 설득으로 순례의 길을 함께 가기로 결정하였다. 본문에서의 변덕쟁이는 순례의 길을 출발하였다가 중도에 어려움을 만나서 포기하는 “일시적 믿음”의 인물이다. [마 13:20-21]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변덕쟁이의 특징을 통해서 “일시적 믿음”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변덕쟁이는 크리스챤의 천국에 대한 설명을 육신적이면서 물질적인 관점에서 이해했다.

 

변덕쟁이는 고집쟁이와 달리 크리스챤이 하는 말을 듣고 순례의 길을 같이 가기로 결정하고순례의 길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그러나 변덕쟁이의 심령은 육신적이어서 무엇을 얻고 향유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변덕쟁이는 수렁에 빠지게 되었을 때 자신이 예상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난 것임을 알고 크리스챤에게 화를 냈으며, 결국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헛된 동기와 육신적인 목적을 가지고 순례의 길을 출발하게 되면, 변덕쟁이와 같이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런데 오늘날 복음주의교회에서 “건강과 부의 복음”이 유행하고 있다. 예수를 믿으면, 건강해지고 부자가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에 어긋나는 것으로 변덕쟁이와 같은 일시적인 믿음을 양산한다.

 

청교도 선교사인 존 엘리엇은 1640년 중반부터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건강과 부의 복음과 같은 가르침을 가장 경계하였다. 이러한 거짓 복음으로 확보한 많은 수의 교인들은 환난의 세월을 만나게 되면 예수님과 교회를 등질 사람들로서 진정한 성도가 아니다.

 

2. 변덕쟁이는 천국과 영생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기뻐하였지만, 이 기쁨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이해하고 기뻐한 것이다.

 

즉, 자신의 느낌에 의지해서 즐거워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영적 감정이다. 잘못된 종교적 감정들은 헛된 열심을 만들어 낸다. 마치 변덕쟁이가 크리스찬에게 순례의 길을 빨리 가자고 재촉한 것과 같다.

변덕쟁이와 같은 자들은 자신의 상상과 느낌을 근거로 해서 어느 정도 종교적인 의무에 열심을 내기도 하는데, 이로 인하여 겉으로는 매우 믿음이 있어 보이고, 진정한 회심자보다 더욱 은혜로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상상과 느낌과 상반되는 일을 당하게 되면 종교적 행위를 멈춘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너고 나서 크게 찬송을 불렀지만, 수르 광야에서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서는 쓴 물을 만나게 되자 원망하였다. 여호와께서 베푸신 기적들을 통해 흥분하고, 장차 그들에게 행복한 일들만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상상과는 반대되는 일이 발생하자 곧 원망한 것이다.(출 15:11-24;시 106:12-14) 따라서 일시적인 믿음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영적 감정들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의지해서 순례의 길을 간다면, 결국 중도에 포기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동원하여 사람들의 느낌에 호소하는 예배들이 개발되었다. 그러한 예배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떠나게 한다. 시각적 효과와 음향 효과들로 마치 영적인 체험을 한 것과 같은 느낌과 감정을 만들어 내고, 은혜 받은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런 느낌과 감정들은 뿌리가 없는 것으로서 환난이나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결국 종교적 행위를 포기하게 한다.

 

3. 변덕쟁이가 순례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은 성경을 읽고,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순례의 길을 출발하였다.

크리스챤은 등 뒤에 죄 짐을 지고 있어 빨리 걸을 수도 없었을 반면,

 

변덕쟁이의 등 뒤에는 죄 짐이 없었다. 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아직 각성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무가치한 죄인이라는 사실과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죄의 질책이 그 영혼에게 없었기 때문에 구원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용서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갈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고향인 멸망의 도시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천성의 도성으로 향하다 어려움을 만나자 쉽게 그 길을 포기하고, 다시 멸망의 도시를 향해 되돌아갔다.

 

 교회 역사 속에서 이러한 성령의 죄의 질책을 생략하고, 인간의 의지를 동원하여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하는 가르침이 1820년대 후반부터 찰스 피니에 의해서 유행하였다. 그래서 찰스 피니는 자신의 사역을 인하여 회심자가 많이 나왔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여전히 과거의 죄 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한 찰스 피니의 신학은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가 되어서 계속 유행하고 있다.

 

 

4. 변덕쟁이는 순례의 길을 따라 나서기 이전에, 그 길을 가게 되면 치러야 할 희생에 대한 비용 계산을 전혀 하지 않았다.

 

변덕쟁이는 이기적인 목적만 앞섰으며,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있을 많은 환난에(행 14:22)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해 받을 고난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누가복음 14:27-32에서 망대의 건축 비유와 전쟁의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기 앞서서 치러야 할 비용에 대해서 계산하고, 비용을 치를 준비가 되었을 때 따라오라고 말한다. 변덕쟁이같이 비용에 대한 계산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순례의 길을 출발하면 결국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도에서 이러한 제자도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 버려할 것과 희생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말하게 되면, 듣는 자에게 부담이 생겨 예수를 안 믿게 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죄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는 전도법도 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5)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싫어할 것을 생각하여 생략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희생을 거부하고 쉽게 믿으려는 풍조가 교회에 만연하고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경우와 어려움이 있게 되면 중도에 믿음을 포기하는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5. 교회에 출석하다가 시험을 만나 넘어지고 교회를 떠난 자들이 교회를 더욱 비난한다. 바로 그 심령이 강퍅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난은 스스로가 일시적 믿음, 혹은 임시적 믿음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셈이다.

 

변덕쟁이는 순례의 길을 포기하고 멸망의 도시로 돌아갔다. 멸망의 도시로 돌아갔을 때, 고향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사소한 어려움 때문에 즉각적으로 모험을 포기하고 돌아온 것은 비겁한 행위라고 비웃었다. 변덕쟁이는 이러한 비난에 잠시 주춤하였으나. 더욱 강퍅해져서 크리스챤을 몹시 비난하고 조롱하였다. 이러한 변덕쟁이의 모습은 순례의 길을 쉽게 생각하고 나섰다가 포기하는 자에게서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교회에 출석하다가 시험을 만나 넘어지고 교회를 떠난 자들이 교회를 더욱 비난한다. 바로 그 심령이 강퍅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난은 스스로가 일시적 믿음, 혹은 임시적 믿음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셈이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기적으로 해석하거나, 일시적 감정에 이입되어 순례의 길에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변덕쟁이의 일시적 믿음의 현상을 보면서, 나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깨달은 채 순례의 길을 출발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기적으로 해석하거나, 일시적 감정에 이입되어 순례의 길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성령의 질책의 역사로 영혼이 깨어져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여 순례의 길을 출발했는지 점검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치러야 할 비용들, 즉 자기부정, 자기 십자가에 대한 계산을 했는지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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