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이 말씀을 어떻게 여러분은 이해하고 적용하고 있어요. 내가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에 대하여 채워져서 충분하길을 바라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합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보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하나 둘이 아닐 것입니다.
왜 그렇게 내게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까? 타인을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타인이 내 보다 작게 가지고 있다면 내가 부족함을 느낄까요? 삼성 회장이 천조의 돈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나를 보면서 돈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또 무엇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까요? 일을 하는데 아이디어가 부족하여 승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럼 이 승진은 또한 타인과의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성적이 부족하여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타인과의 경쟁인 관계 속에서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면 왜 내게 부족함이 없을까요? 내게 필요 충분한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이 부족하고 필요한 것이 많았는데 하루 아침에 다 채워졌다는 것을 말할까요? 부족함이 없어질려면 이렇게 채워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부족함을 느끼지 않기 않을까요? 이것이 이세상에서 사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일 것입니다. 더 이상 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도 다르게 말씀을 들려주려고 합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계20:4)
이 말씀에서 보면 왜 내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까요?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질려고 하는 내가 목 베임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하나님이 나의 욕망을 어떻게 해서던지 채워주셔서 내가 더 이상 부족함이 없어지는 상황이 오리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를 30년쯤 다니고 나니 지금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예전보다 좀더 나은 집에서 살고 자식들도 잘 되는 것 같아요.그래서 스스로 그렇게 위로하면서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는 세상에 믿지않은 사람들도 그렇게 다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들 중에는 내보다 더 채워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이런 부분을 그렇게 해석을 하고 믿어 버리면 성경의 말씀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한 번 더 읽어 보세요. 목베임을 당한 자가 그리스도와 천년 왕국을 누리에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그가 나의 목자임을 고백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나의 욕망 덩어리인 내가 목이 떨어져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부족할 내가 없어서 그로만 만족이 있다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내가 없으면 부족할 것이 없겠지요.
내가 없어지면 내 욕망도 없고 불평할 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이렇게 목이 베이면 그와 같이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은 나를 위하여 원하거나 부족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어 왔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신앙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 왔지만 사실은 성경은 나도 그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것을 줄기창창 말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이해하고 좋아는 부분만 왜곡하여 취사선택을 하여 왔지요.
말씀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나 한 통속이 되어 그렇게 이 세상 교회들은 오랜 세월동안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 말씀을 깨닫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나 여러분은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살기를 원하면 자신이 누군지를 잘 파악하는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