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

작성자고피난다(황지현)|작성시간26.06.17|조회수38 목록 댓글 0

 

여러 해 전,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우리의 워크숍에 참가한

40대 초반의 여성이 자신의 경험단을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금요일 오후, 나는 혼자서 차를 몰고 시내 외곽 쪽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주말이라 고속도라가 붐볐지만, 어서 빨리 교외로 나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고속도로 중간쯤 갔을 때 앞서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나도 차를 정지한 뒤, 백미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뒤를 따라오던 차 한 대가 전혀 정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대로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차는 전속력으로 돌진해 왔습니다. 그 차의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았으며,

곧 내 차를 강하게 들이받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차의 속도, 그리고 내 차와 앞 차의 간격을 볼 때, 나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운전대를 움켜쥐고 있는 내 손을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꽉 잡았던 건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이었고, 

그것이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고,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양손을 옆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운전대를 놔버린 것입니다.

삶에, 그리고 죽음에 순순히 나 자신을 맡겼습니다. 뒤이어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사방이 고요해지고, 나는 눈을 떴습니다. 너무나 놀랍게도 나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멀쩡했습니다.

내 앞에 있던 차는 박살이 났고, 뒤 차 역시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습니다. 

내 차는 그 중간에서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내가 몸의 긴장을 푼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근육이 긴장하면 심한 부상을 입을 확률이 훨씬 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그곳을 떠났습니다. 

단지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이상의, 더 큰 의미를 지닌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바꿀 기회를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늘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손바닥 위에 부드러운 깃털이 놓인 것처럼

평화롭게 손을 편 채로도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자신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여성 역시 한 가지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배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배움입니다.

인간 모두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어떤 존재가 있습니다.

그 존재에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진정한 나'에서 멀어져 갈 때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은 삶 속에서 배움을 얻으려 하고 그 해답을 찾습니다.

두려움과 후회와 싸우고, 의미와 사랑과 용기를 추구하며,

상처와 상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려고 시도합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나 종교, 신, 또는 그런 것들이 있다고 여기는 장소에서 해답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많은 이들이 돈과 지위, 완벽한 직업 등에서 의미를 찾으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것들에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그것들이 고통을 가져다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삶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된 길을 따르다 보면,

삶에 의미 따위는 없으며 행복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지식이나 진리의 추구, 또는 창조적인 일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불행이나 죽음 앞에서 그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의사로부터 암 판정을 받거나 시한부 인생을 서고 받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과 싸우거나 지진과 해일 같은 재난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종착점에 서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인생의 문 앞에서 있기도 합니다.

불행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서 남은 생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이 배움이 모두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을 더 의미있게 해준다는 것을 누구나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그 배움을 얻기 위해 꼭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요?

지금 이 순간 그 배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요?

 

삶이 우리에게 요가하는 이 배움들은 무엇일까요?

수십 년 동안, 죽음을 앞둔 이들과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우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배움들이 결국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또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들도 있습니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난 내 삶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즐겁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듯이,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 수업 중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