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배움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아무도 당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당신만의 여행입니다.
삶의 이 여행에서 우리가 맞붙어 싸워야 할 것은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지만,
결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들이 아닙니다.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는 사람은 결혼을 여러 번 하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번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돈에 대한 배움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전혀 갖지 못할 수도 있고, 또는 지나치게 많이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죽음이라는 종착점에서 바라본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발견해 나갈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고립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사랑이 커지는지, 관계가 어떻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배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환상과 행복의 실체를 배우고,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알아나갈 것입니다.
또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자신이 이미 갖고 있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큰 상실감에 빠졌을 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간직하고,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밖에서 행복을 찾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그 대신 이미 갖고 있는 것에서 삶의 의미와 진정한 부를 발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삶의 풍요로움으로부터 그들을 차단하고 있던 벽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직장이나 가족에 대한 좋은 소식, 월급 인상이나 휴가를 기다리면서 내일을 살지 않습니다.
'오늘'의 모든 풍요로움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수업과 같습니다.
그 수업들에서 우리는 사랑, 행복, 관계와 관련된 단순한 진리들을 배웁니다.
오늘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삶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흐르는 단순한 진리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에 대해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런 사랑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대부분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두려움, 불안, 기대 심리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지구라는 행성 위를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우리들 각자는 외롭고, 무기력하고, 부끄러운 존재들입니다.
때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합니다.
조건이 가장 나쁠 때, 오히려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꺠닫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배움을 얻는 주체는 누구인가?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인가? 아마도 이것이 첫번째 질문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집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경험 자체인가, 경험하는 자인가?
나는 이 육체인가, 아니면 나의 잘못들인가?
내가 앓고 있는 병이 곧 나인가? 나는 내가 자란 과정의 결과물인가?
나는 변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변화한 후에도 여전히 나인가?
아니면 돌에 박힌 화석처럼 변화할 수 없는가?
당신은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결점이 있겠지만 그것들이 당신은 아닙니다.
병에 걸렸을 수도 있지만 그 병이 당신은 아닙니다.
재산이 많을 수도 있지만 당신으 은행 잔고가 당신은 아닙니다.
당신은 결코 이력서, 배경, 성적, 실수, 육체, 역할, 직함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 안에서 정의 내릴 수 없는 불변의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없어지거나 나이, 질병,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 안에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지금까지 지니고 살아왔으며 죽을 때도 함께할 진정한 모습이 존재합니다.
놀랍게도 당신은 변함없이 당신인 것입니다.
병과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신이 아닌 것들을 모두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실수, 잘못, 질병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전에는 그것들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는 오직 '그 사람'만이 보일 뿐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더 진실해지고, 정직해지고, 더 진정한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그렇다면 삶의 시작과 끝에서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일 수 있는 것일까?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단순한 진리가 드러나는 것일까?
그런 상황이 아니면 결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그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궁극적인 배움입니다.
누군가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이미 조각상이 대리석 안에 있다고 상상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어 원래 존재하던 것을 꺼내 주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완벽한 조각상이
누군가가 자신을 꺼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안에 있는 위대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위대함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가장 뛰어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렸을 뿐입니다.
불행히도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현실에서 쓰고 있어야 하는 가면과 역할들에 가려져 있기가 쉽습니다.
부모, 회사원, 공동체의 리더, 아웃사이더, 모범생, 반항아, 아픈 부모를 돌보는 착한 아이등의 역할은
우리의 자아를 파묻는 바윗돌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그런 역할이 강요되기도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돼라.', '여자답게 행동해라.', ' 회사에서 승진하려면 유능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떄로는 그 역할이 멋있어 보이거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 주거나,
이익이 되기 때문에, 또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자진해서 그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습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가 그 결과에 상처받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좋았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결혼하기 전에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었지만,
결혼한 뒤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떠맡으려고 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남편과 아내가 어떠해야 하는지 기준을 세우게 되었고, 그것에 맞춰 행동하려 한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스스로 어떤 배우자가 되고 싶은가를 찾는 대신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난 삼촌 노릇은 훌륭하게 해냈는데, 아빠 노릇을 하려니 정말 힘이 들어."
삼촌이었을 때는 아이들과 마음으로 교류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자, 자신이 맡아야 할 특정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역할이 그가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인생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