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보니 도화뜬 맑은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남명이 61세 되던 해에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영원히 은둔하고자 찾아들었던 지리산 자락. 그 아래에다 산천재를 짓고 기거하면서 읊었던 시조이다. 지금의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자리를 잡고 평생의 이상이었던 태평성대의 꿈을 끝내는 펴 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던 한맺힌 울분을 삭이려 시천천과 덕천강가에서 애써 자위하며 내뱉었던 통한의 외침이다. 시대가 달라진 요즈음도 인생 60 이면 적은 나이라 할 수는 없는데 하물며 당시에 있어서 60이면 싫던 좋던 세상사 모든 것을 접고 조용히 천명을 기다려야 하는 죽음의 나이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남명에게 있어서 산천재는 한평생을 마감하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무덤터나 마찬가지였다. 시대의 영웅이 되고도 남을 지혜와 학식을 갖춘 처사께서 죽음을 눈 앞에 둔 심정이 어떠했을까? 삶을 마감하고 정리하는 시기에 무릉은 왜 찾았던 것일까 불과 수년 전에 남명이 좋아서 산천재까지 따라 들어가 부근에 자리를 잡고 남명의 생전 흔적들을 샅샅이 찾아다니며 그 숨결과 함께 수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이 몸 역시도 영원히 은둔하기 위해 찾아들었던 곳이 지리산 자락이었지만 소인배의 그릇이 한계가 있었던지 호구책에 못 견뎌 그만 스스로 물러나고 말았는데 그래도 남명의 흉내라도 잠시 내어 보았음을 위로하며 지금도 힘겨울 때마다 가슴아린 추억으로 눈물 적시며 떠올리곤 한다. 옛 어른들 말씀이 꽃이 예뻐 보이고 아이가 좋아지면 늙었다는 증거라고 하셨는데 요즘 들어 그 말씀이 참으로 맞다고 공감하게 되니 아마도 이 몸 또한 늙어가는게 분명한가 보다.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앞으로 머리를 두는 겐가. 젊을 때는 꿈을 먹고 살지만 늙어지면 추억을 먹고 산다하니 이제 미래보다 과거가 훨씬 많아져 버린 인생의 시점에서 당연히 꿈보다 추억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게다. 그 많고 많은 지나온 세월 속에 남겨진 추억들이 떠올려질 때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만족 보다는 아쉬움이 많고 보람 보다는 회한의 정이 더 많을 것이기에 삶에 대한 미련은 더욱 커지고 그리하여 아름답고 즐거운 것을 더욱 찾게 만드니 꽃과 아이에 이어 이상향 무릉도원까지 찾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어렴풋이나마 덕천강가에서 무릉도원 시조를 읊조려야 했던 남명의 한맺힌 심정을 손끝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기야 한맺힌 삶을 살아야 했던 위대한 인물일수록 가슴 속 통한을 토로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어찌 남명 혼자 뿐이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이라면 누구나 품었던 가슴 미어지는 한이었으리라. 그리하여 수많은 무릉도원의 이상향이 만들어지고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흔히 말하는 천국이나 극락같은 이상향을 현실세계에 만들어 낸 것이 무릉도원이다. 성서의 에덴동산을 기원으로 조선상고시대에 있었던 부도지의 마고성, 토마스 모어의 소설에 나오는 유토피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 피터팬의 네버랜드, 황금도시 엘도라도 등 인간들이 꿈꾸며 만들어 낸 이상향들이 신화와 소설과 전설 속에 수없이 많이도 남아 있다. 그렇구나 나이가 들수록 꿈보다 추억이 많아질수록 삶에 대한 아쉬움이 이런 이상향을 꿈꾸는 것으로 보상되어지는 것은 아닌지. 요즘 들어 티비에 나오는 자연인의 생활이 자꾸만 부러워진다. 예전부터 늙그막이면 전원생활을 하리라 꿈꾸며 살아왔는데 세상천지 바늘하나 꽂을 땅조차 없는 위인이 전원은 무슨 전원이겠는가? 호사는 그만두고 목구멍에 풀칠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만천하에 감사해야 할 것을...... 항거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울분을 가누지 못해 생각하다 떠 올린 것이 도연명의 귀거래사요 도화원기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상향이 무릉도원이다. 남명 또한 산천재에서 도화원기를 떠올리고는 산천재가 무릉도원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은 아닐런지. 오늘도 나는 남명을 따라 흉내라도 내어 보기 위해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떠 올리며 적어본다. 桃花源記 / 도화원기
도연명(陶淵明, 365~427) / 중국 東晉 송나라
晋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진나라 태원 시대 무릉 고을에 고기잡이를 직업으로 삼은 이가 있었는데,
綠溪行 忘路之遠近/ 연계행 망로지원근 어느 날 개울을 따라 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 버렸다.
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 홀봉도화림 협안수백보 그러다 문득 복숭아 숲을 만나게 되었는데 강 양쪽 언덕을 끼고 수 백보에 걸쳐 있었다.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 중무잡수 방초선미 락영빈분 숲에는 잡목이 전혀 없고 향기로운 풀들은 싱싱하고 아름다우며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고 있었다.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 어인심이지 부전행 욕궁기림 어부는 매우 기이하게 여기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 숲의 끝까지 가게 되었는데,
林盡水源 便得一山 / 림진수원 편득일산 숲은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끝이 나고 문득 산이 하나 가로막고 있었다.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捨船 從口入 / 산유소구 방불약유광 편사선 종구입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고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는데 어부는 배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初極狹 纔通人 / 초극협 재통인 입구는 너무 좁아 겨우 사람 하나 통과할 정도였지만,
復行數十步 豁然開朗 / 부행수십보 활연개랑 다시 수십 보를 걸어가니 갑자기 앞이 확 트이며 넓어지더니 환하게 밝아졌다.
土地平曠 屋舍儼然 / 토지평광 옥사엄연 땅은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은 가지런하게 지어져 있었고,
有良田美池桑竹之屬 / 유량전미지상죽지속 기름진 밭과 아름다운 연못, 그리고 뽕나무와 대나무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었다.
阡陌交通 雞犬相聞 / 천맥교통 계견상문 밭에 난 길은 사방으로 통해 있었으며,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 悉如外人 / 기중왕래종작 남녀의저 실여외인 그 가운데를 오가며 농사를 짓는데 남여의 옷차림이 모두 바깥세상 사람과 같았다.
黃髮垂髫 並怡然自樂 / 황발수초 병이연자락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기쁘게 웃으며 즐거워하였다.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 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어부를 보자 이내 크게 놀라며 어떻게 들어왔는지 물었다.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雞作食 / 구답지 편요환가 설주살계작사 대답을 해 주자 곧 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을 차리고 닭을 잡아 음식을 내어왔다.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 / 촌중문유차인 함래문신 마을에 이러한 사람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찾아와서 궁금해 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自云 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 / 자운 선세피진시란 솔처자읍인래차절경 마을 사람들은 옛날 선조들이 진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처자와 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에 왔는데,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 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이후로 다시 밖에 나가지 않아 바깥세상 사람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問今是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 / 문금시하세 내불지유한 무논위진 그러면서 지금이 어느 시대냐고 물었는데, 진나라 이후 한나라를 거쳐 위진시대에 이른 것도 알지 못했다.
此人爲具言所聞 皆歎惋 / 차인일일위구언소문 개탄완 이 사람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을 자세히 말해주니 모두들 놀라워하며 한탄 하였다.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 여인각부연지기가 개출주사 나머지 사람들도 교대로 돌아가며 그를 집으로 초대해 술과 밥을 대접하였다.
停數日 辭去 / 정수일 사거 그렇게 며칠을 머문 후 작별하고 떠나가려는데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 차중인어운 불족위외인도야 마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기를 바깥세상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 / 기출 득기선 편부향로 처처지지 밖으로 나온 어부는 배를 찾아 타고 돌아오면서 길을 따라 지나는 곳마다 표시를 해 두었다.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 급군하 예태수 설여차 어부는 군청으로 찾아가서 태수를 만나 뵙고는 겪은 일에 대해 모두 이야기 하였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 / 태수즉견인수기왕 심향소지 수미불복득로 태수는 곧 사람을 시켜 어부를 따라가도록 하였는데, 표시해 둔대로 찾아 갔지만 끝내 길을 잃고 말았다.
南陽劉子驥 高尙士也 / 남양유자기 고상사야 문지 남양 땅에 유자기라는 고상한 선비가 있었는데,
聞之 欣然規往 未果尋病終 / 문지 흔연규왕 미과심병종 이 이야기를 듣고는 기뻐하며 찾아가려 했지만, 찾지 못하고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後遂無問津者 / 후수무문진자 그 이후로는 길을 묻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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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한이정(韓 頤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4.10 지금도 님의 농장과 텃밭이 가장 부럽습니다. 세상시름 모두 잊고 땅이나 파면서 살고 싶은데. 두산님은 좋으시겠어요. 언젠가 농장에서 고기 한번 구워먹자 했는데 전주에서 막걸리 먹던 일도 벌써 까마득한 추억이 되었네요. 그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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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한이정(韓 頤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4.12 감사합니다. 님에게도 밝고 희망찬 미래가 열리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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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곳간 작성시간 18.04.13 마음이 벌써 무릉도원이시니 어딘가에 있을 그곳, 이제 그 길을 물어 보심은 어떠하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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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한이정(韓 頤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04.13 한많은 삶이 끝나는 것이 곧 무릉을 만난것이겠지요. 그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으니 그저 반가울 따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