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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사랑방

[스크랩] 정말 먹을게 없던 그시절 밥은 엄청많이 먹었다네

작성자시장|작성시간22.01.07|조회수53 목록 댓글 1

              오른쪽이 조선말 에서 현대 에이르는 밥그릇 변천 - 역사기행 - 朝鮮時代 庶民들의 밥그릇 우리 조선시대 庶民들의 大食에 관한 이야기는 옛 文獻에도 여러곳에 많이 나와 있다. 朝鮮時代의 책인 "용재총화(慵齋叢話)"라는 책에서는 그 당시 大食習慣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 內容에서 '가난뱅이는 빚을 내어서라도 실컷 먹어대고 軍士들은 行軍時 군량짐(食糧)이 반을 차지하며 官僚들은 수시로 모여 술을 마신다' 라고 批判한 부분이 있다. 또한 朝鮮前期 勳舊波의 代表走者인 이극돈은 朝鮮百姓들의 食習慣에 관련한 上訴를 올려 '풍년이면 음식을 아끼지 않고, 中國 사람이 하루 먹을 分量을 한 번에 먹어치우니 그것이 문제로다' 라고 임금에게 간언했다. 이 이외에 壬辰倭亂때 기록된 '쇄미록'이란 책에서는 보다 具體的으로 조선 사람들의 식습관에 대해 說明이 나와있다. 쇄미록 에서는 조선의 일반적인 成人男子 는 한끼에 7홉이 넘는 양의 쌀을 먹는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現在 우리가 먹는 한공기의 5배는 되는 量의 밥이 된다. 선조들의 특출난 大食에 대한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는다데 임진왜란때 倭軍이 占居한 城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日本軍의 食糧이 얼마 남지 않은걸 判斷하고 持久戰에 들어갔다가 너무오래 버티길래 突擊을 했는데 城에서 발견한 간장종지 만한 밥그릇을 보고 이놈들이 식량을 아끼려고 간장종지 에 밥을 쳐 먹었구먼 이라고 했다. 朝鮮末 쯤에 韓國에 머문 다블뤼 주교의 이야기를 보면 더 客觀的인 시선에서 朝鮮人들의 食事量을 들여다 볼수 있다. "勞動하는 사람들의 一般的인 식사량은 1리터의 쌀밥으로 이는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다. 각자가 한 사발씩을 다 먹어치워도 充分하지 않으며 계속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2,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치운다. 우리 天主敎人들 중의 한 사람은 나이가 30세에서 45세 가량 되는데 그는 어떤 내기에서 7인분까지 먹었다. 이것은 그가 마신 막걸리 사발의 수는 計算하지 않은 것이다." "소를 잡을 일이있어 쇠고기가 마음껏 제공되면 아무도 고기로 꽉찬 접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과일을 대접할 경우, 예를 들어 큰 복숭아를 내놓을 때에 가장 절제하는 사람도 10개 정도는 먹으며, 종종 30개, 40개, 50개를 먹는다. 참외를 먹을 경우 보통 10개 정도 먹지만 때때로 20개나 30개를 먹어 치우기도 한다." "누군가를 잘 대접해야 할 때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내놓는다. 아무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말할 필요도 없이 각자는 그것을 다 먹어치운다. 쇠고기나 개고기도 큼직하게 썰어서 양껏 내놓는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고기를 먹었다고 여긴다. 특히 곱창과 생선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이다. 하지만 조선사람들이 이를 식탁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보자마자 먹어치운다. 왜냐하면 조선인들은 자제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사람들의 집에는 備蓄食糧이 없으며 손에 넣는 즉시 먹어치운다. 물론 여기에는 理由가 있다. 饌欌이나 食糧倉庫가 없으므로 飮食을 保管할 空間이 없다. 게다가 이 나라는 氣候가 매우 濕하기 때문에 飮食物이 금방 腐敗한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임금이나 영의정도 공공연히 暴飮을 한다. 술에 취하면 精神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不快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慣習이다. 그래서 許容되며 아주 高尙한 일이 된다." 가만히 생각을 한번 해보자. 필자 어릴적 6.25후 혼란과 먹거리가 태부족했던 그 시절에도 大食家는 있었다. 집에서 누님이 시집가는 혼례날 잔치를 하는데 동네 하인노릇을 하는 어떤 사람의 부인이 식사 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10리터 정도 되는 커다란 바가지에 각종 음식을 담아 먹기 시작 하는데 어린내가 보아도 사람이 다먹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 이였는데 결국 다먹어 치웠다. 왜? 그렇게 많이 먹었을까? 성인이 된후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정답은 하나... 그 사람은 하루이틀 은 굶었을 것이다. 뱃속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으니 그 엄청난 음식을 먹었을 것이며 또한 오늘 먹으면 언제 또 음식을 먹을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에 무리해서라도 많이 먹어 두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외국인이나 고관대작 富者들은 서민들이 왜 그리 음식을 많이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理解 하기가 어려웠겠지... 어떤책 에서 에스키모인(Inuit)들의 비만과 대책 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왜? 그들은 비만할까? 이누이트족(Eskimo) 은 고대로부터 사냥을 하면서 살아온 부족 그렇다보니 매일매일 사냥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한번 사냥해 실컷먹고 몇일을 견디는 생활을 祖上代代로 오랬동안 이어져왔던 습관이 있어 現代人처럼 매일 3끼 식사를 하지 않아도 견디도록 脂肪을 몸속에 저축하는 쪽으로 진화를 했다는 것... 그런데 현재 이누이트 보호구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美國政府에서 생계비를 무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빈들빈들 거리며 기름진 음식을 매일섭취 하기에. 운동부족에 비만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조선의 배곱팟던 서민들도 매일삼시세끼 먹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量이겠지만 몇일을 굶고 또 며칠을 버티기 위해서는 음식이 생겼을 때 많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음식 을 먹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그분들이 측은하고 안타깝다는 생각 마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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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원담 | 작성시간 22.01.07 원담이 어릴때도 할아버지 아버지 밥그릇은 컷지요
        원담이도 고등학교때 까지는 큰사발에 먹었여유
        요즘에 저런 그릇에 밥 퍼주면 욕 먹을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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