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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6.7 십자가의 도

작성자happy-23|작성시간26.06.06|조회수3 목록 댓글 0

202667 1933, 온맘다해, 250, 499, 461, 1623, 914, 9000, 1, 9004, 9012

* 묵도 – 82

* 찬송 – 439장(구496)

* 말씀 – 고린도전서 1장 18~25절(신약263)

* 제목 – 십자가의 도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아멘.

 

우리는 주변에서 십자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그 뜻과 의미에 별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외면해서는 더욱 안 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 십자가에 우리 주님이 달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십자가는 원래 로마인들이 죄인들을 사형시킬 때 사용하는 사형 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그 십자가에 우리 주님이 달리지 않으셨다면 십자가는 그저 혐오의 대상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 우리 주님이 달리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죄가 없으신 몸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더 이상 혐오의 대상도, 분노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면 십자가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1. 하나님의 능력(18).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로 인해 영원한 멸망과 영원한 구원이 대립되며, 결정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영원히 멸망할 자들은 십자가가 미련하게 여겨질 것이나 영원한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멸망할 자들은 주님을 구원자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를 그저 로마의 사형 틀로만 여길 것이고, 그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실패자요 어리석은 자요, 죄인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그 어떠한 영향도 받을 수 없을 것이나, 구원받는 자들은 십자가에 우리 주님이 달리셨고, 그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기 때문에 십자가만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죄 사함의 능력이요, 우리를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실 수 있는 구원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그 은혜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은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 예수님이 매달리셨다는 사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즉 믿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조차도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역경과 환난이 오더라도 너무 쉽게 원망 불평하고, 때로는 신앙을 포기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확증해 주셨다고 말하고 있는데,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듯이 그 결과는 사망이므로 죄의 삯으로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주님이 친히 그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이 사실을 우리 주님은 너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라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혹 생각해 보았는가? 십자가의 형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십자가형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누구든지 십자가형 선고를 받게 되면 먼저 형을 집행하기 전에 수없이 채찍으로 맞게 되는데, 그 채찍 끝은 동물 뼈와 쇠 조각 같은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는 때린다기보다 뜯어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채찍을 가한 후에 거반 죽게 된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자에게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를 지우는데, 그 나무의 무게 또한 어마 어마 하다. 그러니 똑바로 걸을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가며 넘어지기를 반복하는데 그러할 때마다 로마 병사는 그러한 자에게 수없이 또 매질을 한다. 그렇게 간신히 형장에 도착한 그를 십자가에 매다는데,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양 손목과 발목에 대못을 박은 후 끈으로 묶어 죽을 때까지 매달아 놓는다. 그러면 십자가에 달린 자의 팔은, 밑으로 쏠리는 몸의 무게로 인하여 어깨는 탈골되고, 장기들은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없으며, 수많은 피를 흘리기 때문에 여러 차례 쇼크를 겪으며 서서히 죽어 간다. 그리고 그렇게 죽을 때까지 1천 번 정도의 기절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 아들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그렇게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으며, 주님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사실을 깨달은 사도바울은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우리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요, 구원의 능력이라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끝까지 십자가를 붙잡고 승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두 번째,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2. 전도의 근거(19~21).

오늘 본문 말씀에 사도바울은 세상에는 선비나 변론가라 말하는 사람들처럼 아무리 나름대로 지혜롭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자들의 지혜는 헛된 것이며 그러한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미련하다 여기는 십자가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전도의 도구요, 근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도 자신에 대하여 소개하기를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

고 말했고,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고 고백했던 것처럼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지혜와 지식, 능력을 자랑하며, 의지하며 살았던 자이었으나 그가 십자가와 주님을 알게 된 후에는 고백하기를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라고 말했으며,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 말하였다. 사도바울이 이와 같이 말한 이유는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세상 것, 즉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가졌던 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은커녕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세상 것을 자랑하거나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증거 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3. 하나님의 부르심(22~24).

하나님은 지금도 그 백성들을, 그 자녀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으며,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고 말씀하신바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십자가를 그 백성들을 부르시는 도구로 사용하셨는데, 그 부르심에 응한 자들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 백성들을 부르고 계셨는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는

(65:12)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내가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고 말씀하셨으며,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기를

(7: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듯이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그 백성들을 부르고, 찾고 계신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받을 백성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으며, 부르심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응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처럼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보다, 십자가의 사랑보다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말씀을 살펴보자!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사람이 잔치를 준비하고 종들을 보내어 미리 초청장을 보낸 사람들을 잔치 자리에 오라고 하였는데, 그들은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비유의 말씀이나 어떠한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 즉 믿는 자들조차도 그렇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그 결과 어떻게 될까?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기자는 같은 맥락으로 기록한 글에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라고 더 강력하게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결코 외면하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그 부르심에 응하여야 한다. 그러할 때 예비 된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4. 하나님의 섭리(2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온전히 믿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즉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며, 자신이 강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지혜와 자신의 힘만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지혜와 힘만 의지하는 자들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며, 십자가는 세상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말했듯이 미련한 자들, 멸망할 자들은 십자가가 주는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미련한 자들, 멸망할 자들처럼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십자가에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는지를 깨닫고 그에 감사하며, 또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십자가에 어떤 섭리가 숨겨져 있었는가? 바로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십자가에는 미련한 자들은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숨겨져 있으며,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영혼을 전도할 수 있는 전도의 근거가 숨겨져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부르시는 부르심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섭리가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구원의 반열에 선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며, 우리도 사도바울처럼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증거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복을 항상 받아 누리는 우리 열방하이교회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29 1623(보혈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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