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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장애인 후원 이어온 임채홍 대왕철강 회장

작성자원효|작성시간10.12.18|조회수207 목록 댓글 2
15년 장애인 후원 이어온 임채홍 대왕철강 회장
장애인의 평생 가족된 백발의 키다리 아저씨
2010.12.14 19:18 입력화성=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발행호수 : 1076 호 / 발행일 : 2010년 12월 15일

아동보호시설 등 13곳 정기보시
10년 간 매월 100여만원 후원해
가문 소유 사찰도 조계종에 기탁

 

 

▲국내 철강업계에서 1위로 꼽히는 유통회사 대왕철강 임채홍 회장은 부처님을 닮는 방편으로 보시를 택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임채홍(65) 대왕철강 회장이 잠자리에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곤한 잠에 빠져있는 아내를 뒤로 하고 거실로 나섰다. 밤 사이 차갑게 식은 공기가 정신을 일깨웠다. 몸가짐을 가다듬고 TV 앞에 좌복을 펼쳤다. 5시가 되자 불교TV ‘아침예불’이 시작됐다. 고요한 거실을 울리는 청명한 목탁소리에 맞춰,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좌복에 몸을 낮췄다. 임 회장은 벌써 13년 째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예불은 삼배를 시작으로 천수경 독송까지 45분 간 이어졌다. 어느새 창문 너머로 어슴푸레 빛나는 아침 여명이 스며들었다. 그는 여전히 좌복에 엎드린 채다. 예불 후에는 절과 참선이 이어졌다. 한배 한배 정성껏 절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평생 부처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묻어났다. 그에게 있어 이 순간은 가장 환희심이 넘치는 시간이다. 온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따를 것을 발원하며,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업을 참회하는 하루 가운데 소중한 시간인 까닭이다.


임회장이 오랜 세월 변함 없이 실천해 온 부처님 가르침이 또 한가지 있다. 바로 ‘보시’다. 국내 철강업계에서 1위로 손꼽히는 유통회사인 대왕철강을 이끌고 있기에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임 회장은 여느 불자들처럼 치열한 수행을 하지도, 시시때때로 사찰을 찾아 법문을 듣거나 경전을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부처님을 닮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보시’를 택했다.


임 회장의 보시는 1995년 언론을 통해 장애인생활시설 소쩍새마을의 처참한 상황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승가원 자비복지타운의 전신 소쩍새마을은 당시 정신지체장애인들을 미끼로 거액의 후원금을 모아 도망간 가짜 스님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됐었다. 보호와 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장애인들이 차가운 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천막에서 새우잠을 청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강한 연민이 일었다. 그렇게 승가원과 인연을 맺었고, 나눔과 보시로 조금이나마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그는 15년간 매달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승가원에 후원금을 보냈고, 최근에는 승가원 평생후원가족이 됐다. 임 회장은 “사실 이전에도 보육원과 장애인 단체 등에 후원금을 전해오기는 했지만 승가원과의 인연으로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특히 승가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과는 오랜 세월 승가원소식지를 통해 인연을 이어오다 보니 다 내 아이들 같이 느껴질 정도”라며 인자한 웃음을 전했다.


그가 매달 후원하는 곳은 승가원 뿐만이 아니다. 아동보호시설, 장애인시설과 단체, 무료공양소 등 무려 13곳에 달한다. 모두 10년 이상 장기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0년간 매달 100만원이 넘는 정기후원금을 보시한 셈이다.


그가 ‘기부대왕’에 신심깊은 불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처할머니가 창건해 대대로 물려내려오는 사찰까지 기부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흔치않다. 그는 5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명의로 변경된 공주 보광원을 “한국 불교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조계종에 기부했다.

 

사무실에 목판 반야심경 비치
13년째 아침마다 108배 참회
“금융위기 극복, 부처님 가피”
  


지금은 마곡사 말사로 등록된 보광원(주지 법운 스님)은 여전히 임 회장의 본찰로, 그는 매달 초이튿날이면 꼭 가족들과 함께 내려가 불공을 드린다. 보광원은 어린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법당을 찾아 부처님께 서툰 삼배를 올렸던 기억부터 대학생시절 사찰 요사채에 머물며 공부했던 기억까지 불교와 얽힌 수많은 인연과 기억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또 평생의 추억이 가득한 소중한 공간을 선뜻 내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는 “명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나는 여전히 보광원 신도이며 조계종 소속 사찰로 등록되면서 오히려 불심으로 보광원을 창건한 할머니의 뜻이 더욱 길게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고보면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꾸준히 후원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혹자는 돈을 많이 버니 그 정도 금액 쯤 보시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임 회장은 1997년 IMF로 인해 회사가 존폐위기에 놓였을 때도, 꼭 10년 후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또다시 위기를 맞았을 때도, 변함없이 후원금을 전했다.


임 회장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내가 후원하고 있는 시설과 그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을 함께 떠올리고, 다시금 굳은 의지를 되새긴다”며 “거듭 닥친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어쩌면 거기에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1997년 IMF로 인한 경영위기였다. 당시 철강업계를 이끌던 한보철강이 부도로 무너지면서 한보철강의 물건을 받아 유통하던 대왕철강 역시 존폐가 위태로운 정도의 상황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한보철강과 거래하던 유통회사 9곳 가운데 대왕철강을 비롯해 단 두 곳만이 살아남았다.


불심이 강했던 임 회장의 어머니는 그가 괴로워할 때면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 하더라도 굳건한 의지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는 강한 발원이 있으면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다”고 어깨를 다독였다. 그 역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부처님 전에 몸을 낮추고 꼭 이겨낼 것이라 의지를 다졌다. 결국 대왕철강은 힘겨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사태로 전국의 철강회사들이 무너져 내릴 때에도 임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예불과 기도로 마음을 다잡았다. 덕분에 대왕철강은 또 한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철강업계를 대표하는 회사로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임 회장은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라고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 불심에서 기반한 올곧은 경영마인드와 굳은 의지가 위기의 순간순간 그를 지탱해주는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바쁜 일과 중에도 틈틈이 사무실에 놓인 반야심경 목판을 보며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다는 임 회장. 미소띤 그의 얼굴에 맑은 기운이 가득한 이유는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겠다는 발원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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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본각장 | 작성시간 10.12.18 트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작성자笑來 | 작성시간 10.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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