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를 믿는 수행자라면
거칠고 괴로운 경계, 즉 역경을 대할 때
바로 이 두 가지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자비로운 마음이며,
또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참으로 수행자라면
그 어떤 사람이 그 어떤 욕설을 하던지
육신을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하던지
설령 죽이려고 달려든다고 할지라도
도리어 그 사람을 측은한 마음을 내고 자비심을 일으키며,
또한 그 사람에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수행자를 죽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과보를 받겠습니까?
지옥에 빠지는 과보를 받으면서까지
나의 업보를 녹여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내 앞에 일어나는 일체 모든 경계를
이렇게 돌릴 수 있어야 참으로 수행자입니다.
그래야 업을 녹이며 사는 수행자인 것입니다.
역경이 다가온다는 것은
내 업을 녹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업의 과보를 받을 때는 괴롭게 마련입니다.
괴로움을 당함으로써 악업의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괴로움의 과보를 받으면서
인과를 모르다보니 괴로움을 준 상대방을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그래서 또 다시 상대방과 욕하고 싸움으로써
또다른 업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때
그 때 그 과보를 온전히 받고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킴으로 그 자리에서 온전히 업을 녹이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업을 녹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한 치라도 남아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의업이 되어 또다른 업을 만들 것이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자리에서 업을 녹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상대방의 거친 행위에
흔들림이 없으며 평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악업의 과보를 받는 순간 녹일 수 있게 되며,
또한 상대방에게 감사하고 자비심을 일으킴으로써
상대방을 위해 기도하는 큰 복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이란 업을 자꾸 짓고 사는 사람이고,
수행자란 업을 녹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중생이란 역경에 닥쳐 그로 인해 또 다른 업을 짓는 사람이며,
수행자란 역경을 통해 업을 녹이고 복을 짓는 사람입니다.
중생에게 역경은 괴로움이지만,
수행자에게 역경은 참으로 고마운 경계가 됩니다.
마음 닦는 수행자의 마음은
이렇듯 감사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이 근본입니다.
역경이 이와 같이 감사한 경계일진데
순경과 범사(凡事)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상대를 대할 때, 경계를 대할 때
늘 감사하는 마음, 자비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일입니다.
경계를 대하는 이 두 가지 마음이
온갖 업장을 녹이는 수행자의 닦는 마음이며 밝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때
내 마음 속의 업식이 하나하나 닦이고
마음 속의 번뇌와 집착이 하나하나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텅 비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 <불교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