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190층탑석) 세상에 나서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어느 가정 구성원들간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드는 생각입니다.
세상에 나서
부모 역할 잘 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자식 되기도 쉽지 않다
좋은 남편은 물론이거니와
좋은 아내 되기도 어렵고
훌륭한 가장이 되는 것과
또 좋은 어른 되기도 어렵다
훌륭한 스승도 마찬가지고
좋은 제자 되기도 쉽지 않고
좋은 벗 역할도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연 나는 우리 부모에게
좋은 자식이었는가 되돌아 보고
제자들에게는 좋은 스승이었나
되돌아 보게 된다.
결코 허물없는 자식이 아니었고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자식도 아니었으니
그런 나를 바라보시며 우리 부모님은
말로 표현은 다 하지 않으셨어도
걱정 또한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지금 하는 이 생각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마음 한구석이 저려 온다.
부모님께는 물론 부처님께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제자라는 사람으로
살아 온 지난 삼십삼년을 돌아 보면
부처님 전에 한량없는 부끄러움뿐이다.
하늘에도 부끄럽고
땅에도 부끄러우며
사람에도 부끄럽고
부끄럽지 않은 부분이
어디 한군데도 없으니
참으로 올바르게 사람 노릇 하기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는데
그런 착각조차 혼자만의 생각일 뿐
도무지 억지 엉터리같은 자유다.
사든지 사스인지 하는 문제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하다.
그러고 보니 곳곳마다 어렵고
하는 일마다 모두 어렵다.
난지 난지 難之 難之
'고통의 바다' 라 하신 가르침
오늘 따라 더 생각이 난다.
단종조때 계유정란의 희생자가 된
우의정 정분이라는 이의 팔괴시가 있다.
부끄러워 할 괴愧자가 여덟군데 들어 간다.
아괴재하괴재신
我愧在何愧在身
앙괴우선부괴인
仰愧于先俯愧人
차괴지중유대괴
此愧之中有大愧
충괴오군효괴친
忠愧吾君孝愧親
나의 부끄러움 어디에 있나
이 몸 있음이 곧 부끄러움 일세
우러러서는 선대 조상에 부끄럽고
내려(돌아)보면 사람들에 부끄럽네.
이런 부끄러움 가운데에
크나 큰 부끄러움 또 있으니
임금(나라)에 충성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양친께 효도 다 하지 못한 부끄러움일세.
라는 시이다.
군은 군답게
신은 신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팎이 태평하리라
하는 충담스님의 안민가 마지막 구절이
아비는 아비답게
어미는 어미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승려는 승려답게
불자는 불자답게
라는 말로
크로즈업시켜 되뇌어 본다.
각자의 본분사 서로 잘 지켜
건전한 가정들이 이루어 지기를.

공주 상왕산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