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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계룡산(鷄龍山)의 가섭암(迦葉菴)을 중신한 것에 대한 기문

작성자겸사|작성시간26.06.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사가문집 제2권 / 기(記)

계룡산(鷄龍山)의 가섭암(迦葉菴)을 중신한 것에 대한 기문

 

지금 판교종사(判敎宗事)인 순선당(順善堂) 운수(雲叟)는 선림(禪林)의 영수이시다.

내가 그 명성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으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올해 여름에 비로소 흥덕사(興德寺)에서 만나 뵈었는데, 스님이 나를 예우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 나는 스님을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루는 스님이 ‘가섭암(迦葉菴)을 중창(重創)한 것에 대한 기문’을 나에게 써 달라고 부탁하며 말씀하기를,

“중천축(中天竺) 북쪽에 대지(大地)의 굴대가 있으니, ‘곤륜(崑崙)’이라 합니다.

곤륜의 한 산맥이 동북쪽으로 바다에 이르러 우뚝 솟아 거대한 산악이 된 것이 ‘장백산(長白山)’입니다.

장백산의 한 줄기가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내려와 계림(鷄林)에 이르러 원적산(圓寂山)이 되었고, 원적산으로부터 서쪽으로 꺾어 웅진(熊津)을 만나 응축되어 큰 산을 이룬 것이 ‘계룡산(鷄龍山)’이니, 계룡산은 신라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선도산(仙桃山)’라 불렀고 다음에 ‘서연산(西鳶山)’이라 하다가 최후로 이 이름을 얻은 것인데, 

꿈틀대는 듯한 기운이 서려 있어서 자못 신비롭습니다.

산꼭대기에 샘이 나는데 늘 금빛이 뛰는 것을 볼 수 있고, 아래에는 용담(龍潭)이 있는데 검푸른 빛이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산의 북쪽에는 육왕탑(育王塔)을 안치하였고, 산의 남쪽은 지기(地氣)가 왕성하여 왕도(王都)의 기운이 있습니다.

기타 이름난 암자와 큰 사찰들이 모두 산의 빼어난 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남쪽 등성이를 곧장 내려오면 옛 암자가 하나 있고 그 암자 아래에 가섭암이 있습니다.

부서져 버려둔 지가 수백 년이 지났는데, 집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 늙은이가 일찍이 약을 캐러 나갔다가 그곳에 이르러, 바위틈에서 졸졸 샘이 솟는 것을 보고 손으로 움켜 마셔 보았더니

물의 맛과 향이 참으로 좋았고 또한 풍경도 맑고 그윽하여 좋았는데, 오래도록 보수하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두세 명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중수할 방법을 계획하였는데, 사재(私財)를 기울이고 시주받은 것을 아울러 비용을 마련하여 공인(工人)을 모으고 재목을 준비하였습니다.

 

정통 병인년(1446, 세종28)에 착공하여 다음 해 정묘년(1447)년에 완공하였습니다.

또 비해당(匪懈堂)이 보배로 보관하고 있던 ‘석가여래설산수도상(釋迦如來雪山修道相)’을 얻어 당주(堂主)로 삼고,

이어 관청에 암자 세(稅)를 내어 그 부역을 면제받아, 길이 산문(山門)이 편안히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삼았습니다.

 

이로부터 해마다 승려를 모아 결하(結夏)하는데, 이 늙은이 또한 장차 여기서 늙어 여기서 죽으려 합니다.

산에 사는 나의 즐거움은 반드시 나를 아는 사람이라야 알 것입니다. 그대가 한말씀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내가 젊어서부터 산수를 매우 좋아하여, 이름난 산수에 대해서는 매양 유람하며 구경하려는 뜻이 있었다.

올해 여름에 공주(公州)에서 유성(儒城)으로 가는데 길이 계룡산 아래를 지나게 되어, 멀리서 기이한 절경을 바라보았다.

당시에는 갈 길이 바빠 바위와 덩굴을 부여잡고 산꼭대기에 올라 가슴속을 시원히 씻어 버리지 못하였다. 참으로 아쉬웠다.

이제 스님의 요청으로 산중에 이름을 걸 수 있게 되었으니, 또한 행운이다. 이런 까닭으로 즐거이 스님의 명에 따라 써서 돌려보낸다.

임신년(1452, 단종 즉위년) 가을.

 

[주-D001] 중천축(中天竺) : 고대 인도를 천축국이라 하여 동, 서, 남, 북, 중으로 나누어 불렀는데, 그중의 하나이다.

[주-D002] 거대한 산악 : 대본에는 ‘臣岳’으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臣’은 ‘巨’가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D003] 계룡산은 …… 것인데 :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오악(五嶽)은 신라 때에 제사를 올리던 대표적인 다섯 개의 산, 즉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 팔공산을 말한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상도 경주부〉에 의하면, 토함산을 동악(東嶽)으로, 금강산을 북악으로, 선도산(仙桃山)을 서악으로, 함월산(含月山)을 남악으로 한다고 하고, 선도산을 서술산(西述山), 서형산(西兄山), 서연산(西鳶山)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하였다.

 

[주-D004] 간담을 서늘하게 : 대본에는 ‘可𢢔’으로 되어 있으나 문리로 보아 ‘𢢔’은 ‘愕’이 타당할 듯하여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D005] 육왕탑(育王塔) : 육왕은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 왕을 말한다. 아소카 왕이 불교에 귀의한 뒤에 8만 4천 개의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에 바위가 탑처럼 솟아 있는 것을 두고 아소카 왕이 만들어 땅속에 묻어 두었던 탑이 솟아난 것이라 한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주-D006] 비해당(匪懈堂) :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호이다.

[주-D007] 결하(結夏) : 하안거(夏安居)를 시작하는 것을 말하는데, 결제(結制)라고도 한다. 하안거의 ‘안거’는 범어의 ‘비오는 시기’라는 뜻이다. 하안거는 인도의 승려들이 우기(雨期)에 해당하는 석 달 동안 밖에서 수행하기가 어렵고 또 빗속에서 초목과 벌레들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외출을 삼가고 일정한 곳에 머물며 수행과 참선을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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