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문집 제2권 / 기(記)
가야산(伽倻山)의 소리암(蘇利菴)을 중창한 것에 대한 기문
합천(陜川)의 명산이 가야산이다. 또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向山), 지달산(只怛山)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산이 여섯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산의 훌륭한 경치가 동방에 소문이 났다.
겸사 - 지달산은 금강산의 다른 이름
옛날에 ‘소리(蘇利)’라는 대가람(大伽藍)이 있었는데,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제일(第一) 비바시불(毗婆尸佛)이 처음으로 창건하여, 신라 시대 아홉 성인(聖人)이 머물러 거처한 곳이다.
절이 창건된 것이 이미 천 수백 년이 지났고 그것이 허물어져 없어진 것이 언제였는지도 알 수 없는데, 그 절터는 분명하게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중앙에는 돌로 만든 소 세 마리가 엎드려 있다.
동쪽에는 팔공덕수(八功德水) 노대(櫨臺)가 있고
서쪽에는 봉천대(奉天臺)와 석가불(釋迦佛)이 있고
북쪽에는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과 그 외에 네 가지가 있다.
동쪽으로 20리쯤에는 3길 6자 되는 석불(石佛)이 있고
서쪽에는 수도사(修道寺)가 있고 북쪽에는 서졸사(栖卒寺)가 있는데, 모두 가람에 딸린 것이다.
절에 있는 밀기(密記)에, “당초에 천신(天神)이 사흘 동안 내려와서 도왔다.”라고 하였다. 그 영험하고 특별하기가 이와 같다.
아! 인간 세상에 있는 좋은 산과 좋은 절터가, 도적(圖籍)에 나타나 있으면서 이 절처럼 경관이 기이한 절이 얼마 되지 않는데,
무너지고 황폐해졌는데도 오래도록 복구하지 않았으니 또한 산문(山門)의 크게 유감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 인순부 윤(仁順府尹) 영가(永嘉) 상국(相國) 권총(權聰)은 왕실의 혈통을 받은 귀족으로서 벼슬이 높고 명망이 높다.
그런데도 고량진미를 먹고 비단옷을 입던 습관을 물리치고, 좋은 일을 하여 복을 심는 일에 마음을 두었다.
그리하여 개연히 새로 중창할 뜻을 지니고 재물을 많이 보시하여 비용에 충당하였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또 뒤를 따라 보시하여 일을 이루었다.
기사년(1449, 세종31) 봄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다음 해 겨울 10월에 마쳤다.
얼마간의 기둥으로 된 집을 이루었는데, 금은과 단사(丹砂)로 칠을 하여 채색이 휘황하였고 범패(梵唄)와 일상생활 용구가 모두 갖추어졌다. 이로부터 해마다 법회를 열어 승려가 구름처럼 모이니 이는 암자(庵子)의 일대 중흥이다.
권후(權侯)가 거정에게 기문을 부탁하기에 대략을 기록하여 보내며, 말하기를,
“권후는 집안이 문장 세가이니, 어찌 구구하게 부처에게 복을 바라는 자이겠는가.
이 일에 부지런한 까닭은, 위로 임금의 복을 빌고 아래로 어버이 은혜에 보답해서, 충성과 효도의 지극한 마음을 붙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어찌 뒷사람들의 큰 본보기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은 적어 둘 만하다.”
하였다.
을해년(1455, 세조1).
[주-D001] 지달산(只怛山) : 대본에는 ‘只恒山’으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0 〈경상도 합천군(陜川郡)〉에 의거하여 ‘恒’을 ‘怛’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주-D002] 비바시불(毗婆尸佛) :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칠불(過去七佛) 가운데 첫째 불(佛)이다.
[주-D003] 팔공덕수(八功德水) 노대(櫨臺) : 팔공덕수는 극락세계에 있는 8종의 공덕을 갖춘 샘물이라 한다. 8종의 공덕은, 달고[甘], 차고[冷], 부드럽고[軟], 가볍고[輕], 맑고[淸淨], 냄새가 없고[不臭], 목을 아프게 하지 않고[不損喉], 배를 아프게 하지 않는[不傷腹] 것이라 하기도 하고, 맑고[淸], 차고[冷], 향기롭고[香], 부드럽고[柔], 달고[甘], 맑고[淨], 상하지 않고[不饐], 병을 낫게 하는[除疴] 것이라 하기도 하고, 맑고[澄淨], 시원하고[淸冷], 감미롭고[甘美], 부드럽고[輕軟], 윤택하고[潤澤], 온화하고[安和], 근심을 없애고[除患], 이익을 주는[增益] 것이라 하기도 한다. 노대는 녹로(樚櫨)를 설치하여 물을 긷는 곳을 말하는 듯하다.
[주-D004] 권총(權聰) : 1413~1480.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시호는 영정(靈靖)이다.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태종의 셋째 딸 경안공주(慶安公主)이다.
[주-D005] 고량진미 : 대본에는 ‘膏梁’으로 되어 있는데, 문리로 보아 ‘梁’은 ‘粱’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사가시집보유 제3권 / 시류(詩類)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 있는 시
합천(陜川)의 징심루(澄心樓)
객지 산천의 길은 하 멀기만 하고 / 關河路綿邈
세월은 날로 하염없이 흐르누나 / 歲月日侵尋
끝없이 이어짐은 누각 오른 눈이요 / 袞袞登樓眼
유유한 것은 기둥 기댄 마음이로다 / 悠悠倚柱心
산은 돌아 푸른 봉우리가 만나고 / 山回靑嶂合
골은 빽빽해 흰 구름이 깊숙하네 / 洞密白雲深
다시 마음을 맑게 할 곳이 있으니 / 更有澄心處
돌에 부딪친 찬 시냇물 소리로다 / 寒溪觸石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