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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예조에서 사전(祀典)에 대해 건의한 내용을 승인하다

작성자겸사|작성시간26.06.10|조회수10 목록 댓글 0

태종 13년 계사(1413) 11월 4일(경진)

13-11-04[05] 예조에서 사전(祀典)에 대해 건의한 내용을 승인하다

 

예조에서 상서(上書)하여 사전(祀典)을 여러 조목 진달(陳達)하였다.

 

“1. 삼가 당(唐)나라 《예악지(禮樂志)》를 보니, 옛 선제왕(先帝王)들을 아울러 중사(中祀)에 두었고, 국조(國朝)에서도 선농(先農)ㆍ선잠(先蠶)ㆍ문선왕(文宣王)을 중사에 두었으니, 단군(檀君)ㆍ기자(箕子)ㆍ전조 태조(前朝太祖)를 마땅히 중사에 올리소서.

 

1. 종묘(宗廟)의 봉사(奉祀)는 5실(五室)에 그치는데, 이에 전조(前朝)의 주(主)가운데 제사하는 것이 8위(八位)에 이르니, 예에 합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태조 이하 7위(七位) 안에서 현종(顯宗)은 요(遼)나라의 외적을 능히 몰아내어 백성의 피해를 없앴고, 공민왕(恭愍王)은 능히 명(明)나라에 사대(事大)하여 민생(民生)을 안정시켰으므로 동방(東方)에 공이 있으니, 의리상 아울러 제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나머지 5위(位)는 혁거(革去)하여 없애도록 하소서.

 

1. 삼가 교서관(校書館) 축판식(祝板式)을 보니,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에게는 ‘국왕(國王)’이라 칭하고 전조(前朝) 태조는 ‘조선 국왕(朝鮮國王)’이라 칭하니, 의리에 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군과 기자에게는 ‘조선 국왕’이라고 칭하도록 허락하소서. 경내 산천(境內山川)은 ‘국왕’이라 칭하고 망제 북교(望祭北郊)는 ‘조선 국왕’이라 칭하니, 또한 의리에 합하지 않습니다.

북교(北郊)에도 또한 ‘국왕’이라 칭하도록 허락하소서. 마조(馬祖)의 축(祝)은 ‘조선 국왕’이라 칭하고, 선목(先牧)의 축(祝)은 ‘국왕’이라 칭하는데, 선목은 또한 경내(境內)의 신이 아니니, 마조의 예에 의하도록 허락하소서.”

 

또 상언(上言)하였다.

“사복시(司僕寺)에서 무당과 박수가 마신(馬神)에게 제사지내므로 음사(淫祀)입니다. 청컨대, 이제부터 마조(馬祖)ㆍ마보(馬步)ㆍ마사(馬社)ㆍ선목(先牧)의 신에게 제사지낼 때 사복시의 관원으로 하여금 향(香)을 받아서 제사지내게 하소서.”

 

또 아뢰었다.

“대조회(大朝會)에 전하께서 출입할 때 통찬(通贊)이 ‘국궁(鞠躬)ㆍ평신(平身)하라’고 창(唱)하는데, 금후로는 매 아일(衙日)과 모든 조회(朝會)에도 또한 이 예에 의하소서.”

임금이 아울러 그대로 따랐다.

 

 

【원전】 1 집 693 면

【분류】 외교-명(明)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

[주-D001] 전조 태조(前朝太祖) : 왕건(王建).

[주-D002] 주(主) : 임금.[

주-D003] 7위(七位) : 고려 태조(太祖)ㆍ혜종(惠宗)ㆍ성종(成宗)ㆍ현종(顯宗)ㆍ문종(文宗)ㆍ충경왕(忠敬王 元宗)ㆍ충렬왕(忠烈王)ㆍ공민왕(恭愍王)의 7왕. 정종 원년 4월에 마전현(麻田縣)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7왕은 모두 국가에 공이 있기 때문이었음.

[주-D004] 국궁(鞠躬) : 몸을 굽혀 절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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