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呼吸(심호흡)(1)
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인생에는 몇 번인가의 전환기가 온다. 가령 20대 후반에 부친을, 30대 중반에는 모친을 연이어 여의고, 그리고 43세에 20년 가까이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등. 모두 큰 일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슬픈 것도 서글픈 것도 대부분 자신 뿐만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 그래요?" 로 끝날 일이라고 최근 들어 야치 켄지는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야박하다고 한탄할 것도 없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간에게 엄밀히 두 사람의 부모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감정도 균등하게 나눌 수는 없는 것임에 틀림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타인에게 신경써 줄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겠지.
"야치 상, 어서 쟁반에 밥 담으세욧!"
동료인 40살을 넘긴, 조금 비만경향이 있는 주부인 키타오카가 소릴 질러서,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야치는 제 정신이 들었다.
"아, 예....."
황급히 밥을 4등분된 플라스틱 쟁반의 오른쪽 위에 퍼담았다. 포테이토 샐러드, 채소절임, 썬 캐비지와 자신에게 맡겨진 반찬을 다 담고 나니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키타오카가 구운 연어와 반토막의 고로케, 미트볼을 난폭하게 올려 놓았다.
"예에~사께벤(연어 벤또의 줄임말입니다) 다 됐습니다!"
키타오카의 위세 좋은 목소리에 계산대의 이치하라가 뒤돌아보았다.
"다음은 노리(김이 든 벤또입니다)2, 그리고 튀김 3 부탁해요"
"알았엇!"
이번에는 주의받지 않게 야치는 서둘러 재안에 밥을 담고 반찬을 퍼 담았다. 사께벤, 노리 벤이라고 이름은 다르지만 딸린 반찬은 같다. 자신으로서는 힘껏 서두를 작정이었지만 그래도 키타오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듯이, 뺨에 구슬 같은 땀이 맺힌 빨간 얼굴로 작업대를 꽝꽝 긴 젓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후부터 1시간 정도 손님이 줄지어 와서, 쉴 틈도 없이 연방 쟁반에 밥을 퍼 담았다. 오후 2시를 지나 손님이 끊겼을 때에 겨우 야치는 쉬어도 좋다고 점장에게 들었다.
"오늘은......노리벤으로 부탁합니다"
밖에 나와서, 손님인 듯 주문을 하니 계산기를 맡고 있는 22세의 유부녀인 이치하라가 쿡 웃었다.
"'오늘은' 이 아니라 '오늘도'....겠죠. 야치상은 항상 노리벤이니까."
"에에, 뭐......."
이야기하고 있자니, 가게의 조리장에서부터 키타오카가 얼굴을 내밀었다.
"영양없는 것만 먹으니까, 비실비실 젓가락처럼 마른 거잖아요(원래 비유는 '젓가락' 이 아닌데 의역했습니다^^)남자는 있잖아요, 나이를 먹으면 조금 정도는 살찐 편이 관록이 있어 보여 좋아요. 어서 우리 가게 벤또 말고 영양좋은 도시락을 만들어줄 부인을 찾아 봐요"
"하지만 야치상은 우리집 아버지하고 나이는 같아도, 배는 나오지 않아서 스타일이 좋은데요-"
이치하라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온 것에 야치는 당혹감을 느꼈다.
"이치하라 상, 아버님은 얼마나 되셨는데?"
"우리 집 아버지 말에요? 44세요. 중년에 살찌고 배가 나와서, 이젠 볼품 없다구요"
연령은 한살밖에 다르지 않았다. 확실히 20세 전후에 결혼했다면 이치하라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가정이라는 것에 인연이 없었던 야치에게는 그 정도의 자식이 있는 자신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자~노리벤 다 되었어요"
키타오카가 노리벤을 카운터에 놓는다. 돈을 지불한 야치는 다 된 것을 손에 들고 도시락 가게의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공원에 들어갔다.
주말인 탓도 있어서, 공원은 평일에 비해 가족동반이 많다. 야치는 그늘의 벤치에 걸터앉아 공원 입구의 자동판매기에서 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집에 가까운 공원의 옆 도시락 가게에서 야치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3개월 전, 8월 초엽이었다. 가게 내에도 종업원의 휴게실은 있었지만 여성과 같이 쉰다고 하니 신경이 쓰이고 말아 사양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푸른 하늘 아래의 식사는 상상 이상으로 탁 트인 느낌을 들게 했다. 그 이후, 야치는 비라도 내리지 않으면, 정해 놓고 공원의 벤치에서 점심 식사를 들었다.
팔월은 더웠지만, 날이 가는 것과 함께 서서히 서늘해져 추워졌다. 11월에 들어서부터는 한낮이라도 상의를 입지 않으면 뼛속 깊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계절의 변화를 의식할 여유는 없었다. 외자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서 근무했을 무렵, 자신이 있던 부서는 타부서와 비교해보아도 한층 바빴다. 출세 코오스에서 밀려난 야치는 줄창 사무처리전문으로, 하루종일 창가의 컴퓨터의 옆을 떠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도 정시에 퇴근하는 일은 없었다.
올해 4월, 사원전원에게 '마쉘즈 팩토리의 새로운 전망에 대하여"라는 자신의 회사에 대한 조직업무,인사제도, 재무회계제도가 함께 쓰여진 메일이 사장명의로 발송되었다. 연초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의도를 모를 이상한 메일에, 혹시 정리해고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모두 의구심을 품었고,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고 야치에게도 그 차례가 돌아왔다.....
사락사락 새빨간 낙엽이 발밑에 뒹군다. 위를 올려다보니, 덮개를 씌운 듯한 적색의 틈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단지 한 장의 낙엽이라도 선명하게 색이 바뀐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조금 전에는 입구 근처의 은행나무가 아름다웠다. 그 앞에는 연못 근처의 시온(개미취)가 피어 있었다. 이전 자기 집 정원에도 피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 그리워졌다.
사치스럽군, 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금전적으로는 겉치레라도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기분은 이전보다도 만족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멍하니 주위를 둘러본 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노리벤에는 원래 들어있지 않을 튀김이 하나 넣어진 것을 보고 자연히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사락사락 머리 위에서 잎이 흔들리고, 멀리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들을 기분좋게 받아들이면서, 식사를 하고 있자니,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누구인지 깨달은 순간, 그때까지의 온화한 기분이 바람에 불리듯이 싹 사라졌다.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다.
일요일인데도 남자는 양복차림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보고 있을 동안에 오른손의 여행 가방을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안경 너머의 유리알 같은 눈.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 무표정한 채로 인사한다. 담백한 얼굴에 표정이 없으니 정말 가면과도 같았다.
"아아, 안녕하세요"
야치는 젓가락을 도시락 쟁반에 놓고, 깊숙히 머리를 숙였다. 애매하게 지나가게 놔두지 못하는 것은,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일해온 사람의 버릇이었다. 남자는 시선만을 움직여 야치의 손께를 보았다.
"식사중에 말을 걸어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길입니까?"
"네, 후쿠오카에 갔다 옵니다"
후쿠오카 지점에 무슨 용무였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곧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자신에게는 이미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침묵이 생겨난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올 기미도 없었다.
"도시락이 맛있어 보이네요"
불쑥 남자가 중얼거렸다. 가장 값이 싼 노리벤이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자신에게 들려주며,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안될 자신을 비굴하게 생각했다. 그에게 그런 의도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뻔한 겉치레 인삿말은 말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만다.
"저는 지금부터, 도시락 사서 돌아가겠습니다"
자신에게 선언하지 않아도, 어서 사러 갔으면 좋을 텐데.....라고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투덜거리는것에 앞서, 자신의 그릇 작음에 넌덜머리가 났다.
"그럼, 다음에 또."
가볍게 인사하고 걷기 시작하는 듯 하더니, 남자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을 올려다 본다. 사락사락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잎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꼿꼿한 자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야치는 어깨 힘을 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에도, 남자가 자신의 생활하는 범위에 관여해 오는 것이, 솔직히.....참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 된 회사에서 자신의 상사였던 하루노 요시히사가 야치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약 1개월째, 겨우 사람과 일에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다.
그 때는 토요일이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 1시, 마구 붐빌 시간대를 지나, 계산대의 여자애가 쉬러 가고, 그 교대로 야치가 가게를 지켰다.
비 탓으로 길을 가는 사람도 적었다. 유리 너머로, 눈앞의 도로를 스쳐 지나가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검은 그림자가 유리문 앞을 가로질렀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말을 걸었다. 남자가 수그리고 있던 얼굴을 든다. 그 사람이 누군가 인식한 순간, 야치의 뺨은 굳어졌다. 남자는 주문 카운터에 가까이 오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건강하신 듯 해서, 다행입니다"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거북해, 야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에에....하루노 과장님도 별고 없으시고....."
남자는 뭔가를 탐색하는 눈으로 한바퀴 가게 안을 둘러 본 후에, 가게에서 가장 비싼 '특제 도시락"을 사서 돌아갔다. (원문은 가부키의 중간 중간 먹을 수 있게 된 도시락을 뜻합니다)
남자가 자신이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온 것은 우연으로, 필시 두번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과 그가 반대 입장이라면, 자신은 그 정도는 눈치채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도 바램도 들어맞지 않는 것은, 다음날 손쉽게 어긋났다. 일요일도 한낮을 지나서, 하루노는 도시락을 사러 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주말이 되면 꼭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하루노는 도시락을 사러 왔다. 언제나 '특제 도시락'이었고, 야치가 계산대에 나와 있으면, 한두 마디 말을 주고 받았다.
정리해고된 부하가 일하고 있든, 아니든 주말마다 도시락을 사러 올 정도로 하루노는 '특제 도시락'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야치도 한 번 먹어 본 일은 있었지만, 가격이 비싼 만큼 다소 볼품은 있었지만, 어디에나 있는 도시락의 맛이었다.
가까이 있는 공장의 시보가 울려 퍼져, 제정신이 들었다. 이제 곧, 점심 휴식 시간이 끝난다. 야치는 남은 도시락을 서둘러 챙기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점심 휴식시간마저 하루노와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생각에 골몰해 버린 탓으로, 식후의 산보를 즐기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가게에 돌아가서, 키타오카에게 덤으로 준 튀김에 감사의 인사를 했더니, 호쾌한 성격에 떡 벌어진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운 듯이 "그런 건 신경쓰지 말아요" 라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야치상의 친구분, 또 오셨었어요. '특제 도시락' 손님"
에이프런을 풀고 있던 이치하라가 교대해서 계산대에 선 야치에게 말했다.
"그와는 공원에서 만났습니다"
"후움....그 사람, 오늘은 양복차림이었어요. 샐러리맨 느낌으로 멋있었다고요"
이치하라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 남편도 그 정도 옷에 신경을 쓰면 좋을 텐데. 이봐요, 그 사람은 야치상보다 10년 정도 연하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넌 그런 남자가 취향이야?"
키타오카가 질린 듯이 말했다.
" 그사람, 정말 멋있다고요. 남편이 없었더라면, 접근하고 싶을 타이프니깐."
젖은 양손을 에이프런으로 닦으면서, 키타오카는 양 어깨를 교대로 흔들었다.
"그런 남자는 말야, 어렵다고. 뭘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럴까요?"
이치하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붙임성도 없는 거하고, 표정이 없는 건 달라. 그 남자에게는 귀염성이 없다고"
이치하라는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으로 양 미간에 주름을 짓고, 2층의 휴게실로 올라갔다. 키타오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아는 사람인데 귀염성이 없다느니 어쩌니 떠들어서 미안해요"
야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붙임성이 없어도 괜찮고, 난 말이 많은 남자는 질색이지만, 조금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헤아려 주는 남자가 좋아요"
흠칫하여 뒤돌아보았다.
"가만히 사람 얼굴을 들여다 보고 이야기하는 주제에, 표정은 읽을 수 없으니까. 조금정도는 당신 기분을 헤아려 주면 좋을 텐데"
뭔가 말하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다. 결국 야치는 애매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深呼吸(심호흡)(2)
도대체 왜~! 제가 쪽팔리게도 제목 한자를 틀린 걸 모두 지적해 주시지 않은 것입니까
ㅠ.ㅠ.........深呼吸 이었군요. 그냥 부를 호자가 아니고... 제 무식이 천하에 다 드러난 듯한 느낌이 들어서......참.......쪽팔립니다요..이럴 거면 한자를 안 쓰는 거였어..
* 제가 미리 씬 無임을 발표하니 실망하신 분들.....^^ 이 소설은 천천히 읽어야 묘미가 있답니다. 흐흐 엄청 순진무구한 아저씨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어도 하루노상 심리가 눈에 잡힐 듯하거든요. 신종 '사랑 손님과 어머니' 랄까...그런 재미로 읽어 주세요.
이 작품은 최대한의 속도를 내어 번역할 생각입니다. WELL처럼 질질 끌 생각은 없으니까
2~3일 간격으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동생이 군대에 가서, 컴터를 되찾았걸랑요.
이거 끝내고 미스티님이 제공해 주신 'End of Youth' 도...어서 착수해야지요
소설 비보이 2002.11 연재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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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오후 5시. 밤 근무의 아르바이트생과 교대하고는, 야치는 가게의 에이프런을 풀렀다. 로커에 걸어 놓았던 코트와 지갑을 꺼낸다.
가게 뒤에 세워 놓았던 자전거의 로크를 풀고 페달을 밟기 시작하니, 바람이 몇 배 더 차게 느껴졌다.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에서 저녁식사를 사서 밖에 나오자, 주위는 완전히 엷게 어두워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뒤편의 목제 문을 열고 자전거를 안에 넣는다. 목제 문의 열쇠를 잠그고서, 현관으로 향했다. 미닫이의 열쇠구멍 상태가 나빠, 끼익끼익 난폭하게 열쇠를 돌리고 있자니, 그 소리를 들었던지 냐옹 하고 얼룩무늬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돌아왔어"
말을 거니 또 한 번 냐옹 하고 운다. 겨우 열쇠가 열려 미닫이를 열었더니 고양이가 먼저 안에 뛰어든다. 야치가 현관에서 구두를 벗고 있는 것을 복도의 맞은편에서 가만히 보고 있는다. 시선에 재촉당하듯이 야치는 먼저 부엌으로 가서,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고양이 먹이 통조림을 열었다.
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고양이를 흘깃 보고는,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준비.....라고 했댔자,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과 반찬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을 정도이지만.
조용한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모친은 예절에 엄격한 사람이어서, 식사중에는 텔레비전을 보게 해 주지 않았다. 그 버릇이 아직도 몸에 붙어 있어, 야치는 모친이 죽은 지금까지도 식사할 때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부엌의 창 유리가 흔들려, 큰 소리에 고양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국도에서 한번들어가고, 또 집 앞의 도로는 일방통행이어서 정원이 붙어 있는 이 집이 더욱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밤에는 조용했다. 바람 소리도 잘 들린다.
혼자 하는 식사를 편하다고 생각하는 시기를 지나,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적도 자주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가족을 늘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결혼을 피해 온 것만은 아니다. 단지 한 번 기회를 놓치고 나니, 좀처럼 다음으로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야치는 28세 때 한번 약혼을 했었다. 맞선을 본 여성과 교제를 시작해, 식의 날짜까지 받아놓았었지만, 결혼식 2주일 전에 일방적으로 파혼당했다.
표면에 내세운 이유는 '가치관이 달라서' 였지만, 정말은 약혼자에게 오래 사귀어 왔던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판에 그녀는 전 남자를 골랐다. 자신은 선택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상사에게도 지인에게도 초대장을 발송하고 난 뒤여서, 뒷처리가 큰일이었다.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다지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귄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연인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했었고, 아깝다고 생각할 만큼 깊은 부분까지 연결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고나서 한동안 맞선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여성을 찾아보는 일도 없었다. 그럭저럭 하고 있는 동안에, 정신이 들어 보니 40을 넘기고 있었다. 독신으로 40이 넘으니,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일, 그리고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을.
요즘 몇 년간 체력도 떨어졌다. 철야따위는 도저히 무리였고, 눈도 조금씩 희미해 졌다. 새로운 것을 기억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
감각이 쇠퇴하고, 둔해지고.....이렇게 해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가 하고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 전에, 아직 회사를 그만두기 전, 40을 넘은 동료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동료 여성은 감각이 둔해져 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게 말했다.
마흔을 넘으니, 친지도 나이를 먹는다. 죽음에 대면할 기회도 많아진다. 슬픔에 직면해도 괜찮도록, 동물로서도 서서히 둔해진다고.......최종적으로는 반드시 올 자신의 최후의 날을 향해. 그것이 정말이라면, 이제부터 미래에 있는 것은 '죽음' 이라는 것일까.
밤에 생각할 것도 아니지......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야치는 빈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봉지를 정돈했다. 거실에 가서, 좌식 탁자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지만, 소란스러울 뿐 흥미를 끌 만한 프로도 나오지 않는다. 뉴스도 "중년과 노년층의 고용문제가....."가 나오는 시점에서 채널을 바꾸었다.
다시 한번 더 일어나, 침실에서 책을 꺼내 왔다. 야치의 유일의 취미는 독서였다. 예전부터 추리소설과 미스테리를 좋아해서, 외국의 유명한 것들은 거의 다 독파하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무릎 위에 고양이가 올라 왔다. 어리광 부려 오는 것이 귀여워서, 턱을 쓰다듬어주니 가랑가랑 목을 울린다.
고양이가 야치의 집에 출입하게 된 것은 1년 정도 전부터였다. 그 때는 아기 고양이였지만, 지금은 꽤 크게 자랐다. 정원에서 울고 있어서, 변덕으로 먹이를 주었더니 매일 밤 오게 되고, 집안에 올라와 들어오기까지 되었다. 하지만 야치에게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의식이 없다. 낮에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뿐더러, 이렇게 붙임성이 좋다면 다른 곳에서도 먹이를 줄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려 오지만, 그것도 지금 한 순간의 일로, 내일은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에는 완전이라는 단어가 최고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한 것도, 완벽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것도 어느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고양이에게, 자유로운 것에 이름은 붙이지 않는다.
지금의 자신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였다.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했을 때에는 쇼크였지만, 조직을 떠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직종을 고르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일은 있다. 도시락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단순히 가깝고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었지만, 급료가 싼 것 이외에는 특별히 불만도 없다. 유일하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주말에 다니기 시작한 전 상사의 존재였다. 그만 오지 않는다면, 더욱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터였다.
하루노 요시히사는 외국의 대학원을 졸업한, 이른바 엘리트였다. 해외 생활이 길었던 때문인지, 일을 애매하게 해 놓는 것을 싫어하고, 냉철할 정도로 합리적이었다. 4년전 야치의 부서에 배속되었을 때에는 하루노는 30살 될까말까한 정도였던 것에도 관계 없이, 자신의 상사라는 입장이었다. 젊은 사원은 곧 그 나름의 근무 스타일에 익숙하게 되었지만, 자신은 좀처럼 익숙해 지지 못했다.
익숙해지지 못한 것 뿐으로, 방식에 이론은 없었고, 대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스를 정도로 강한 입장도 아니었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이었던 7월, 그에게 불려 갔던 때의 일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아침, 부서 전체의 짧은 회의를 끝내고 나서, 하루노는 데스크에 돌아가려는 야치를 불러세웠다.
무슨 이야긴지 아무런 설명이 없는 채로 소회의실에 같이 갔을 때부터, 불길한 예감은 있었다. 혹시....그 예감은 적중해, 갑자기 '해고 예고통지'를 받았다.
연하의 상사는 10년도 위인 부하에게 표정도 바꾸지 않고 "야치상에게도 여러가지 감사했습니다만, 그만두시게 되었습니다"고 고했다. 그곳에 있었던 것은 사실을 말할 뿐인 기계였고, 기계에게는 위로도 동정도 없었다.
출세 코오스에서 벗어나, 정년까지 하나의 톱니바퀴로 지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라 버려질 정도로 쓸모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현실의 충격 사이에도 커다란 격차가 있다. 사실을 눈앞에 둔 야치는 어째서 자신에게 해고 통지를 한 사람이 이 남자였을까 한스럽게 생각했다.
실력주의이니까, 연하의 상사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만은, 자신보다 연령적으로 위이고, 사교적인 언사로도 "죄송하지만........"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을 골라 주었으면 했다.
하루노는 "열 시 까지는 제자리에 돌아와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회의실을 떴다. 맥빠진 얼굴로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열시까지는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그 후, 정식으로 해고통지가 와서, 야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둔 후, 반달 정도는 멍하니 보냈지만, 퇴직금과 조금의 저축을 언제까지 먹어치울 수는 없어서, 일을 찾을까 하고 생각한 바로 그 때, 근처의 공원 옆에 있는 전국 체인의 도시락 가게에 아르바이트 모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딘가 정사원으로 고용해 주는 곳을 찾을 때까지의 연명으로 괜찮았기 때문에, 발견한 내친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신청했다. 시간대를 묻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좋았던지, 즉시 채용이 되어, 다음 날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주에 3일뿐이었지만, 지금은 월요일과 목요일을 제하고 주 5일,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하루종일 앉아 있기 일쑤였던 직업으로부터 일어서 있는 직업으로 바꾸니, 체력적인 부담은 늘었지만, 그 만큼 밤에는 불면이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전지가 끊어지듯이 순식간에 잠잘 수 있게 되었다.
때르르릉....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야치가 움직이니 고양이도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무릎에서 내려왔다. 전화는 도시락 가게 주인에게서였는데, 밤 근무의 대학생이 사고를 일으켜서 입원해, 당분간 나오지 못하게 되었으니, 대신 밤 근무를 해 줄 수 없을까 라고 말해 왔다. 솔직히, 밤은 힘들지...라고 생각했지만, 꽤 곤란한 모양이었고, 대신 서 줄 사람이 찾아질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승낙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신해도 좋다고 말했지만, 갑자기 밤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은 역시 우울했다. 밤을 온종일 일할 수 있을까 불안을 느껴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밤이라면 하루노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까지 연연해 하는 자신이 이상했다. 아니, 자신은 결코 하루노를 싫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만둬' 라고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루노 혼자의 판단은 아닐 것이고, 그는 단순한 중개자였던 것 뿐이다. 하루노가 싫은 것이 아니라, 하루노가 몰고 오는 감정이 싫다. 하루노가 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단순한 도시락 가게의 아르바이트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노가 오는 것으로, 자신은 상사가 연하이고,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해도 어쩔 수 없는, 무능력한 남자가 된다. 그것도 아직 자신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을 동안은 괜찮다.
가게 주인도, 바이트 동료들도 모두 야치가 이전,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만둔 이유가 정리해고였다는 것은 모른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굳이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빈번히 와서, 가끔 말을 거는 하루노에게 " 그 사람은 전에 일하던 때의 아는 사람이었어요?"라고 동료가 물어 온 일이 있다. 그 때 야치는 "부하였어요?" 라고 묻지 않은 일에 안도했다. "상사였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말한 후의 상대의 반응도 보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다면 괜찮을 정도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거짓말 한 것으로, 그러한 자신을 혐오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만 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프라이드가 뒤흔들리는 일은 없어진다. 자기가 무능한 인간이라고 인정한다면 훨씬 편해질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깨끗이 결론짓는 일은 아직, 할 수 없었다.
상상한 만치, 밤의 근무는 괴롭지 않았다. 24시간영업이 캐치프레이즈인 가게이지만, 밤은 낮과비교해서 손님이 꽤 적었다. 손님이 적기때문에 종업원도 소수였고, 교대로 휴식을 취할 때는 혼자 될 때도 있었다.
오전 3시, 4시라는 한밤중에도 손님은 온다. 손님층은 대체로, 10대에서 20대의 젊은 남녀였다.
소제와 다음날 아침의 재료 구입 등 할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밤중의 근무는 한가했다. 한가했지만 급료분의 일은 하려고, 조금 있는 과자가 진열되어 있는 선반을 청소한다든지, 조리장을 정돈하는 야치와는 반대로, 파트너인 대학생 니시다는 짬이 있으면, 가게 구석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쿨쿨 크게 코를 골았다.
청소도 재료 구입도 마치고. 야치도 할 일이 없어졌다. 한 시간 정도에 손님은 두 사람정도 왔지만, 연이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대응할 수 있었다. 니시다에게도 말을 걸어 보았지만, 눈을 뜨는 기색이 없고, 어딘지 모르게 술냄새가 감돌았다.
오전 4시, 계산대에 있는 접이식 의자를 내놓고 걸터앉아, 야치는 계산대의 선반으로부터 문고본을 꺼냈다. 지루해서, 손님이 올 짬짬이,시간 보내기용으로 갖고 왔었다. 가게 안은 난방이 되고 있었고, 밖에 비교해서는 따뜻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발께가 추워진다. 야치는 몇번이고 양 발을 비비듯이 제자리 걸음을 했다.
낮 중에, 이 책을 사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가끔 들리는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낮 바이트에서 같은 시프트였던 키타오카를 만났다. "야치상이잖아-"라고 큰 소리로 불러 세워, 소학생인 아이의 담임이 편애을 하니까 교활하다고 일방적으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겨우 이야기도 종반에 들어섰나 생각되었을 즈음, 키타오카는 뭔가 생각난 듯이 "아아"라고 말했다.
"당신 아는 사람말에요, 일요일인가 가게에 와서, 여기 일 그만뒀냐고 물어봤었어요."
'지인'이라고 들어,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야치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아는 사람 가운데, 도시락을 사러 오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밤 근무로 바뀌었다고 말했는데, 괜찮나요?"
"에에, 그건.....상관 없어요"
키타오카는 한시름 놨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해도 되는 건지 망설였는데. ....아, 벌써 이 시간이 되었나!"
그렇게 말하더니 키타오카는 시계를 힐끔힐끔 보면서 황급히 돌아갔다. 뒤에 남아서, 왜 하루노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을까 이상하게 생각했다. 정리해고 당한 전 부하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빈번히 오는 무신경한 그에게도, 없어지니 어디로 갔을까 생각할 정도의 관심은 있었던 것일까.
위잉 하고 자동문이 열리는 기미에 야치는 당황해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책을 든 채로 카운터에 손을 댔다.
"주문 결정하셨으면....."
말이 중간에 뚝 끊겼다.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검은 코트에 검은 스웨터 차림의 하루노였다. 하루노는 야치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곧장 카운터에 다가와 메뉴를 볼 것도 없이, "특제 도시락 하나" 라고 주문했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대답한 후에, 하루노는 카운터 옆의 긴의자에 걸터앉았다. 야치는 조리장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특제 도시락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시간 계산대를 비우는 것이 걱정이 되어 파트너인 니시다를 부르고, 흔들어도 일어날 기미도 없었다. 한가할 때라면 몰라도, 중요할 때에도 쓸모없는 남자에게 화가났다. 어떻게 할까 생각했지만, 손님은 하루노 혼자 뿐이었고, 아는 사람인만큼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안심할 수 있다. 게다가 조리장에서 가게의 입구가 보이니까, 10분 정도라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도시락을 다 만들어 계산대에 돌아가니, 하루노도 벤치에서 일어났다.
"850엔 되겠습니다"
하루노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냈다.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건네려고, 확실히 하루노 손 바닥에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카운터 위에 쏟아져 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아뇨.....라고 대답하고, 하루노는 카운터 위의 동전을 주웠다. 다 줍고, 동전을 지갑에 넣고 나서도, 남자는 카운터 앞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표정이 결핍된 얼굴이라도, 멍하니 있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루노 과장님"
남자는 제정신이 든 듯이 얼굴을 들었다.
"저는 더 이상 야치상의 상사가 아니니까, 과장이라는 직함을 붙이는 것에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잘라 말해, 숨을 삼켰다. 그리고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요"
갑자기 회사로 돌아간 듯한 감각을 느꼈다. 연하의 상사는 애매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석연치 않은 어법을 싫어해, 언제나 YES 아니면 NO 의 대답밖에 듣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침묵이 흘렀다. 야치는 자신만이 직장에 연연해 있었다는 부끄러움에 가책을 받으면서도, 거스름돈도 주었는데 이 남자는 왜 빨리 돌아가 주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 책은 재미있습니까?"
"예….?"
"야치상의 책이 아닙니까?"
카운터 위에 놓여진 채로 있는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데요……"
하루노는 콜록 하고 기침을 했다.
"이전에, 술자리에서 야치상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듣고서, 어떤 책일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야치는 기억이 없었다.
"그건, 순문학입니까?"
"에?"
"책의 내용 말입니다"
잘 들으면 알 이야기인데, 야치는 몇번이고 되묻고 마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뇨, 미스터리입니다. 전부터 좋아해서…"
하루노는 책의 표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저는 미스터리라고 불리는 장르를 읽어 본 적은 없지만, 흥미는 있습니다"
"예에…"
짧은 침묵이 생겼다. 남자는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야치는 서서히 그 존재를 견디기 힘들어졌다.
"내일은 쉬십니까?"
물어보니, 하루노는 "아뇨" 라고 대답한 후 "엄밀히 말하면 오늘이 되겠네요. 오늘은 목요일이고, 공휴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라고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야치자신은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목요일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중이신데 서두르시지 않으시니까, 휴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 뿐입니다."
"오늘도 오전 8시에 출근합니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잠자지 못해서 술을 마셨더니, 공복인것이 생각이 난 겁니다"
혀가 꼬인다...까지는 아닌 말씨가 취해 있기 때문이라고 겨우 깨달았다. 발걸음도 확실하고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었다.
"많이 마셨습니까?"
"보통보다는 많았습니다. 병을 하나 비웠으니까요"
한 병이라고 듣고 야치는 놀랐지만, 남자는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젊을 때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마셨지만, 서른 다섯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급속히 약해져, 지금은 마음이 내킬 때에 맥주 미니 캔을 하나 마실까 마시지 못할까 정도였다.
"제 말씨에, 뭔가 불명료한 점이 있습니까? "
"아뇨...."
하루노가 도시락 비닐 봉지를 손에 들었다. 돌아갈 기색에 내심 안도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맑은 남자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야치는 자세를 바로했다.
"밤 시간대로 근무를 바꾼 것은, 저 때문입니까?"
말을 얼버무리지 않는 직구(直球)에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충격이 가시고 나서, 천천히 야치는 대답했다.
"밤 아르바이트가 다쳤기 때문에, 그 대신 하는 겁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으면, 낮으로 보내 달라고 할 예정입니다"
하루노는 똑바로 야치를 응시하다가, 훗 하고 웃었다.
"알겠습니다.....그럼 실례합니다"
남자가 돌아가고 나서, 겨우 어깨 힘이 빠졌다. 의자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전에서부터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의 리듬이 맞지 않는 남자라고는 몰랐다.
이쪽의 견제(牽制)를, 상대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것을 신경쓰고 있었다는 것도.
그럴 것이면, 일부러 관여해 들어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루노의 의도는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그만두게 한 것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빈번히 상태를 보러 온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언동과 외견보다는 정이 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정이 깊은 것과 배려는 또 다른 이야기로, 야치 입장으로서는, 마음 정도만 받고, 내버려 두어 준다면 가장 고마울 노릇이었지만.
....헤어질 때의 웃는 얼굴에, 가면과 같은 얼굴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슬쩍 엿보였다. 웃을 때 만큼은, 꽤 인간다운 얼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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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呼吸(심호흡)(3)
소설 비보이 2002.11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하늘 번역
보시면 알겠지만 목하 작업 중입니다....하루노상, 속 다 보여요........히히힛
책 빌려달라는 걸로 접근하다니.....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래도 아저씨들 아기자기하게 노는게 참 재미있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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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오전3시, 한밤중에 하루노는 가게에 왔다. 그 때는 먼저 있던 손님이 있어서, 도시락이 다 될 때까지조금 기다리게 되었다.
어제 근무중에 엄청나게 자던 대학생 니시다에게 야치는 아침이 된 다음, 주의를 주었다. 근무 전에는 과음하지 말도록. 엄격하게 말할 작정은 아니었지만,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했고, 당연히 사과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니시다는 불쾌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 태도에 야치 쪽이 놀랐다. 대학교 3학년이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20살을 넘었을 것이었다. 그의 태도는 아무래도 성인이 된 남자의 태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늘은 주의를 준 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니시다는 술을 마시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근무태도는 지극히 불량해, 짬만 있으면 의자에 앉고, 야간의 휴식시간은 30분이었지만, 1시간 가까이 휴게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루노의 특제 도시락을 만들 때도, 빠른 사람이라면 5분이면 끝날 일을 질질 15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다 되었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작업 카운터에 놓여진 도시락을 받아 포장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제, 야치상이 읽고 있던 미스테리 소설을 샀습니다."
갑작스런 이야기에 거스름돈을 건네주면서 야치는 당혹했다.
"읽어 보았지만, 솔직히 별로 재미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제, 야치도 같은 책을 다 읽었지만, 속도감이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하루노의 책에 대한 감상은 마치 자신에 대한 평가와 같이 생각이 되어, 쓴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책에는 사람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흘려 버릴까 라고 생각했지만, 하루노는 그 화제에서 벗어나 주지 않았다.
"미스테리 중에서는 어느 책이 재미있습니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어서, 딱 집어 어느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래도, 추천하고 싶은 것을 가르쳐 주세요"
쳐다보는 눈은, '가르쳐줘' 라고 자신을 협박하는 것 같았다. 미스테리에 흥미가 있다면 일부러 자신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직접 서점에 가든가, 인터넷을 사용하면 얼마라도 검색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여기서 한다는 것은 껄끄러웠다.
"읽기 시작하는 것으로는....스탠더드한 것으로 에릭 오거스터의 화이트 로즈 시리즈가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뒤에서 부자연할 만큼 큰 소리로, "야치상" 이라고 이름을 불렸다. 뒤돌아 본다.
"근무중 잡담은 삼가해 주시겠습니까?"
땡땡이 치는 버릇이 있는 니시다에게, 하필이면 하루노 눈앞에서 주의당하고 말아, 쑥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라고 작은 소리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밤 근무의 책임인 일도 그 대부분을 야치가 끝내고 있는것에도 상관하지 않고 이런 태도다. 명백히, 전날의 보복이었다.
니시다는 시치미를 떼는 얼굴로 카운터 밖에 나가더니, 어지럽혀 있지도 않은 과자의 진열 선반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공공연하게 어필하듯이.
"근무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하루노는 야치에게 사과한 후,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건가 라고 생각했더니, 과자 선반 쪽으로 걸어간다. 하루노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니시다는 뒤로 물러섰다.
선반에서하루노는 껌을 하나 꺼내더니, 옆에 비켜서 있는 니시다를 정면으로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뵈었었군요"
하루노의 말에, 니시다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네에........?"
"하지만, 저를 기억하지 못해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어제 당신은, 구석 의자에서 시끄럽게 코를 골면서 엄청 기분좋게 자고 있었으니까요"
비꼬는 말투에 니시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하루노는 굳어진 남자의 발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게다가 당신은 밖에 나오지 않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신발과 청바지는 다른 사람에게 불결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음식을 취급하는 가게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야치도 이전부터 신경쓰이던 것이었다. 니시다는 언제나 색이 바래고 구멍이 난 청바지에 조금 더러워진 신발을 신고 있다. 청바지는 헌옷이지만 값비싼 상품인 모양이어서, 가격을 묻고는 놀랐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더러워지고 구멍이 뚫린 옷을 '멋' 이라고 하는 감각이 야치에게는 없어서, 니시다의 옷차림은 역전의 부랑자 일보 직전이었다.
"너, 너한테는 관계없잖아!"
더듬듯이 내뱉는 남자를 하루노는 비웃었다.
"확실히 저에게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객의 의견으로서 해석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복장이 이 가게가 목적하는 바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 뿐으로, 당신이 근무 장소 이외의 다른 집단에서 입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즉, TPO를 분간해 주신다면 괜찮습니다"
빠른 말씨로 쉴새없이 말해, 니시다는 박력에 눌린 듯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뭔가 반론은?"
회의 때의 하루노의 상투구였다.
"제가 말한 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까?이상하군요. 의무교육을 마쳤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통렬한 비아냥에 니시다가 뻘개진 얼굴로 양 손을 부르쥐고, 어깨를 움츠렸다.
"시끄러워! 당신!"
분노를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 거리는 남자 앞에서도, 하루노는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워, 는 뭡니까?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으로, 제 말에 대한 대답은 되지 않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운터에서 나온야치는 일촉즉발, 팽팽한 공기가 떠도는 두 사람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었다.
"니시다상,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우선 연하의 남자에게 사과하고, 하루노를 돌아보았다.
"도시락도 식으니까, 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루노는 아직 뭔가 더 말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야치의 말에 마지못해 돌아갈 기미를 보였다. 그러면서 야치의 어깨 너머로, 니시다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의 주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 정도의 사려는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일순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니시다가 야치를 밀어붙이고, 하루노에게 달려들었다. 밀려서 자세가 흐트러지면서도 야치는 등 뒤에서 니시다를 꼼짝 못하게 세게 죄었다.
"그만 둬!"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니시다는 고집을 부려, 움켜잡은 하루노의 상의를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야치도 그렇게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싸우려는 젊은 남자를 혼자서 막을 수는 없었다.
니시다가 날뛰어, 그 주먹이 몇 번이고 야치의 머리와 어깨를 직격했다.
"그만 두지 못해!"
거칠어진 야치의 목소리에, 니시다는 제정신이 든 듯이 얌전해졌다.
"다른 사람을 패는 따위는 당치도 않아.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고객이라고. 경솔한 행위를 했다가는 너도 그 나름대로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 거얏!"
니시다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납득했다고 생각한 야치는, 망연한 얼굴을 한 하루노에게 돌아가라는 뜻으로, 밖으로 눈짓을 했다.
하루노는 말없이, 발길을 돌려 문에 손을 대었다. 니시다가 고개를 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앗! 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다시 하루노에게 달려 들어 멱살을 잡았다.
기습을 받은 하루노도 무저항은 아니었다. 난폭한 오른팔을 잡고, 높이 비틀어 올린다. 니시다가 "아팟!" 이라고 팔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오른 발을 걷어찼다. 균형을 잃은 남자는 그곳에서 나자빠졌다. 보기만 해도 무참했다.
"그만두지 못해....."
뒹군 니시다의 팔을 잡고 일으키니, 질리지도 않는지 남자는 다시 하루노에게 가려고 해서, 야치는 두 사람 사이에 몸을 들이밀었다.
"비켯! 빌어먹을 영감탱이!"
피할 수 없었다. 귀와 가까운 옆 얼굴을 니시다에게 몹시 맞아, 커다란 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렸다. 그와 동시에 발치가 휘청거려, 야치는 등뒤로부터 과자의 진열대에 들이박고 말았다. 선반 속 내용물이 엄청나게 흐트려졌다. 참상에 니시다의 움직임도 딱 멈추었다.
"괜찮아요?"
하루노가 달려왔다. 엄청 등을 얻어맞아, 얼굴을 찌푸리면서일어난 야치는 곧 이상한 변화를 깨달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주 안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감이 멀다. 아연한 야치의 표정을 눈치챘는지, 하루노가 왼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듣기 어려웠다.
시험삼아, 야치는 왼쪽 귀를 막았다. 침묵은, 밤인 탓도, 거북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왼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날, 일이 끝나고 나서 야치는 병원에 갔다. 니시다도 확실히 사과해 왔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라고 신경써서 태연한 척을 했지만 내심 ' 이대로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으로 참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니, 왼쪽 고막이 터져 있다고 했다. 니시다에게 귀를 맞아, 뚜껑을 덮고 있는 듯한 상태에서 압력이 가해져, 얇은 고막이 터진 것이다.
고막이 터졌다고 하더라도, 바늘만큼의 작은 구멍이 생긴 것,전체가 터진 것 등 여러가지가 있는 모양이었지만, 야치의 경우는 크게 터진 케이스였다.
고막은 재생하니까, 원래처럼 들리게 됩니다...라고 듣고는 한시름 놓았다. 다만 구멍이 커서, 나을 때까지 반년 가까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온 때는 오후 2시로, 돌아옴과 동시에 자고 싶어졌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우선 조금 눕자 라고 생각했을 때, 전화가 울렸다.
누구에게도 전화가 올 일은 없을 터였다. 혹시 니시다일까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하루노였기 때문이다.
"하루노입니다. 주무시고 계셨던 것은 아닙니까?"
하루노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은 또렷또렷한 말투는 아니었다.
"아뇨....괜찮습니다"
"가게에선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그를 도발했기 때문에, 야치상을 다치게 하고 말아서......"
확실히 계기는 두 사람의 싸움이었지만, 원인을 따지자면, 자신이 니시다에게 근무태도를 주의를 준 것이기 때문에, 하루노에게 잘못은 없었다.
"하루노 과장님 탓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긴장감을 떠올린 채로, 서두르듯이 하루노가 말했다.
"그래서.....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귀는....."
조금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조금 잘 안들리기는 해도, 조만간 나을 것 같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어투에서 한시름 놓은 듯한 기색이 스며 나왔다. 당사자도 아닌데, 걱정시켰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까지 거시게 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괜찮으니까요....."
그는 근무중일 터였다. 오래 거는 전화는 폐가 될 것 같아 어서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편에서 걸어온 것인 이상, 이쪽에서 "그럼,또" 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꺼내어, 야치는 수화기를 손에 든 채로 당황했다.
"사례 따위, 신경쓰지 말아 주십시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하루노 과장님의 탓이 아니기도 하고, 귀도 그렇게 심각한 것은 정말 아니니까요. 그 성의만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필사적으로 사양해도 " 이대로라면 제가 편하지 않습니다" 라고 상대편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밀어부치는 데 강한 하루노에게 꼼짝 못하게 될 것 같아, 야치는 실례임을 알면서도 "정말로 성의만으로도 괜찮으니까요. 전화 감사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자기 말만 하듯이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루노와 이야기를 한 것으로 잠이 확 달아나 버린 야치는 머리도 감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하기 위해 귀마개를 하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귀도 심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쉴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또 한밤중에 일을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 두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했다.
그때부터 외출할 1시간 전까지 잤지만, 누구에게도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밤 11시에 눈을 떠서 준비를 하고 밖에 나간다. 밖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자전거를 타니 손이 곱아들어,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의 위화감을 강하게 느꼈다.
가게에 가니, 드물게 주인이 와 있었다. 왜일까 라고 생각하고 물으니, 대학생 니시다가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그 대신이라고 말했다.
가게의 에이프런을 걸치면서, 30대 중반의 가게 주인은 "요즘 젊은 녀석들은......" 하고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책임감이 없단 말야. 싫으니까 그만두겠어, 로 끝난다니까. 거기에다 "급료는 일급으로라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온다구. 뻔뻔스럽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치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어제 마지막에 니시다는 사과했다. 일부러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야치는 화내지 않았고, 화낼 기분도 아니었다. 하지만 주위의 민폐를 생각하지도 않고 갑자기 그만두고, 다치게 한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묻지도 않은 것에서 니시다의 사람 됨됨이가 나타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 야치 상"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야치는, 이름을 불린 것을 깨닫지 못했다. 게다가 왼쪽부터여서 운이 없었다.
"야치 상, 들리는 거얏!"
짜증난 목소리에 제정신이 들어, 당황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왼쪽 귀 상태가 나빠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가게 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친 거야?"
어제 가게 안에서, 니시다에게 맞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구르다가 부딪치고 말아서....."
가게 주인은 흐응.....하고 중얼거리고 "뭐, 조심해" 라고 야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날은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야치에게 신경이 쓰였던지, 계산대를 맡긴 것은 주인이 휴식할 때 뿐이었다.
밤이 밝아, 오전 7시에 야치는 낮 아르바이트와 교대했다. 에이프런을 벗고, 뒷문으로 밖에 나가서, 종업원 전용의 자전거 주차장에 놓아 두었던 자전거의 체인을 풀었다.핸들도 안장도 얼음같이 차갑다. 이제 슬슬 장갑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길에서 큰길로 나왔다.
가게 앞에 검은 롱 코트의 샐러리맨이 보였다. 상대편과 이쪽이 거의 동시에 서로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하루노가 가까이 오는 듯해서, 야치는 자전거를 멈추었다.
"안녕하세요."
하얀 숨을 내뿜으면서, 하루노는 야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제, 도중에 전화를 끊는 짓을 한 거북함을 생각해 냈다.
"귀는 괜찮습니까?"
"에에, 아프지도 않고, 들리지 않는 것 뿐이니까요. 오른 쪽은 괜찮으니까, 생활에 지장도 없고. 걱정 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루노는 뭐라 말하기 힘들다는,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손에 든 종이 봉투를 야치에게 내밀었다.
"사례라고 말하긴 뭣합니다만....."
야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받을 마음은 없었다.
"그런, 신경쓰지 말아 주세요. 저도 마음이 불편하니까"
야치도 사양했지만, 하루노도 물러서지 않았다. 길 한가운데에서, 받으라거니, 받지 않겠다거니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하루노가 "받아 주지 않으신다면, 직장에 늦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봉투를 야치에게 떠맡겼다.
반사적으로 받아버리고 말아, 돌려주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하루노가 받지 않는다. 하루노는 시계를 보더니 야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역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쫓아가기까지 해서 돌려주는 것도, 오히려 실례가 될 듯했다. 결국 받을 것이라면,서툴게 사양하지 말고 쉽게 받아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집에 돌아와서, 야치는 봉투를 열었다.연 순간,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캔에 들어 있는 커피 원두 세트였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휴식시간 때마다 자주 커피를 마셨었다. 하지만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일부러 자신이 사와서 마시지는 않게 되었다.
좋은 향기를 맡고 있자니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원두는 볶아져 있으니까, 드립퍼와 필터가 있다면 마실 수있다. 이전에 집안에서 봤던 적이 있던 것 같아, 부엌 속을 뒤지니, 찬장 서랍 속에서 누렇게 된 커피 필터와 드립퍼가 함께 놓여져 있었다.
인스턴트와는 달리 손이 더 가지만, 그만큼 완성된 커피는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맛있었다. 머그컵을 손에 든 채로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모친이 있을 때에는 손질되어 있던 정원도, 지금은 잡초가 자라 무성하고, 나무들의 잎도 떨어져 한산했다.
가까운 곳의 풀숲이 흔들리고,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툇마루에 앉은 야치의 발에 몸을 비벼대고, 무릎 위에 올라온다.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야치는 하루노의 일을 생각했다. 그런 소란이 있은 후에는 더이상 가게에 오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끝이 나는걸까....라고 생각하면서 겨울의 말라비틀어진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밤 근무로 바꾸고 나서부터, 주말의 쉬는 날이 많아진 야치는, 차가운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거실에서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오전 중에 가가운 서점에 나가 시리즈물의 추리소설을 5권 샀다.
1 편째를 다 읽고 나서, 만족감과 비가내리는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할 때에 전화가 울렸다. 그저께, 숙부의 상태가 나쁘다고 종형제에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혹시 하고 당황해서 전화를 받았다.
"하루노입니다"
이름을 고하는 상대의목소리에 다른의미로 긴장했다.
"아아, 잘 계셨습니까. 전번에는 감사했습니다."
사례로 커피를 받은 것은 그저께의 일이었다. 그 때부터 감사의 말 한마디도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아뇨....그때부터 귀 상태는 어떻습니까?"
걱정해 오는 것일까 생각하니, 기쁘다고 조금 생각한 반면, 이상했다. 함께 일하고 있을 때에는, 그다지 정이 있는 타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 변화는 없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처음엔 들리지 않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것에도 익숙해져서요..."
"그렇습니까....."
짧은 침묵 동안 생각했다. 신경써 주는 것은, 배려라기 보다도, 역시 죄악감의 반영인 것일까 하고. 그렇게 생각한 것에 야치의 마음도 놀랄 정도로 슥 차가워 졌다.
"귀 일이라면 신경써주지 말아 주세요. 정말, 하루노 과장님이 신경쓰실 일은 아니니까요......"
"이전에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루노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잘 들렸다. 전화 너머인데도 명확했다.
"저는 더 이상 야치 상의 상사가 아니니까, 과장이라는 직함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더불어 필요 이상으로 경어를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수화기를 손에 든 채로, 야치는 자신이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렇군요."
쓴웃음을 짓는 자신이 비굴한것에 넌덜머리를 내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일 도리가 없었다.
"이전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아서...."
침묵으로, 또 미묘한 틈이 생겼다.
"찾아보았습니다만, 야치상은 고막이 터진 것입니까?"
"아, 네"
"고막이 재생할 때까지, 3개월에서 반년이 걸린다고 하는군요. 그 사이, 불편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형편이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저에게 알려 주세요."
쓸데없는 걱정을 시킬 것 같아 야치는 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하루노는 '이렇지는 않을까' 고 추측한 것이겠지.
"정말 괜찮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만약 귀가 잘 안들리는 것으로 귀찮은 일이 생겨도, 틀림없이 전화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겉치레 말을 곧이 듣는 나이도 아니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신이 뭔가 이야기를 하는 쪽이 나을까 라고 생각하는 한편, 하루노가 전화를 끊지 않을까 하고 은밀히 빌었다.
"책을 읽었습니다"
불쑥 전화기의 상대편이 말했다.
"에릭 오거스터의 화이트 로즈 시리즈 말입니다."
자신이 추천한 사정도 있고 하니, 감상을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땠습니까?"
"그건 재미있었습니다. 도중에 어느 정도의 복선은 읽을 수 있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 속도가 붙어서, 끝까지 한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책에는 난색을 표한 남자가, 재미있다고 말한 것에 우선 안심했다.
" 그 시리즈는 차례차례 사건이 일어나니까, 읽을 때에 질리지 않습니다. 확실히, 하루노.....상의 말처럼 복선은 읽을 수 있지만, 독자에게 그것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 것도 작가의 솜씨인 것 같습니다."
"솜씨....라고요?"
야치는 어깨를 움츠렸다.
"미스테리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니까...알아내는 즐거움도 확실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화의 건너편에서 잠잠해진 남자는, 잠시 후에 "조예가 깊네요" 라고 중얼거렸다.
"야치상은 이 장르의 책을 많이 읽으시는 모양입니다"
"독서가 유일의 취미이니까요"
"전에도 말했었지만, 저는 야치상이 책을 읽는다고 들었을 때, 멋대로 순문학일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미스테리에다가, 외국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문득, 야치는 하루노가 자신에게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내키면, 순문학도 읽습니다. 단지....일본 순문학이라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스테리를 많이 읽게 됩니다. 외국작가가 좋은 것도, 스케일이 크고 그것에 쓰여 있는 것은 외국의 생활로, 자신의 생활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은 비일상을 의미합니까?"
"독서는 제 마음 속에서는 커다란 오락입니다. 현실을 생각나게 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도 되지 않는 세계관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다고 할까요....."
"지금 생활에, 뭔가 불만이 있습니까?"
스트레이트한 질문에, 대답이 궁했다. 육체적인 일, 금전적인 일, 장래에의 막연한 불안을 말한다면 끝이 없었다.
"아주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건 독서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것이 좋은 것은 예전부터였으니까요"
그렇습니까...라고 하루노가 대답을 한 후에 몇 번째인가의 침묵이 찾아왔다. 야치는 가만히 전화기의 푸시 폰의 문자를 바라보았다. 애매함이 없는 확실한 어투는 힘들다...지치게 된다.
"화이트로즈의 시리즈는 대부분 다 읽었지만, 2권만은 아무리 해도 찾지 못해 읽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라고 흘려버려도 되었지만, 그것도 묘하게 흥이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목은 아십니까?"
"'절름발이 남자' 하고 '쌍둥이의 기억' 입니다"
"그것이라면 저희 집에 있습니다.....빌려 드릴까요?"
"괜찮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빌려준다고 말했지만, 어떻게 해서 건네줄까 생각하고 있자니, "지금부터 야치상은 외출하실 일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아뇨....."
"빌리러 가도 괜찮겠습니까?"
"엣, 집까지 오시는 겁니까?"
"빨리 읽고 싶어서요. 폐가 된다면 다음번에 빌리겠습니다만."
민폐 여부를 떠나, 그렇게 물어보니 "안돼" 라고 말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저희 집은 아십니까? 큰 길에서 들어간 곳에 있어서, 찾기 힘든데요...."
"아는 사람이 도우야마에서 살고 있어서, 큰길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서, 다시 전화 드릴테니, 길을 가르쳐 주세요."
"아, 네"
"그럼 나중에 다시 걸겠습니다"
전화는 끊어졌다. 야치는 평온할 터였던 일요일 오후가 소란스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루노가 야치 집에 찾아 온 것은, 전화를 하고 나서 1시간 정도 걸려서였다. 초인종 소리에 야치는 당황해서 샌들을 꿰어차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목제 문 건너에서, 검은 스웨터에 짙은 색의 청바지, 그 위에 베이지 색의 코트를 입은 하루노가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
"갑자기 와서, 죄송합니다."
"아뇨....어서 들어오세요"
야치는 하루노를 집의 부지 안으로 맞아들였다. 정원에 한 걸음 들여 놓았을 때부터, 하루노는 이쪽이 무안해질 정도로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하루노가 오기 전, 야치는 많이 생각했다. 본심을 말한다면, 현관 앞에서 책을 건네고, 그 대로 돌아가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하루노는 책을 빌리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온 것이고, 게다가 타이밍도 나쁘게 오늘은 비마저 내리고 있다. 집에 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더러워서.....죄송합니다"
집에 들이고 나서, 거실에 안내했다.
"자, 앉으세요"
좌식 탁자 앞을 가리켰다. 하루노는 손에 든 작은 종이 봉투를 야치에게 건네었다.
"이걸 받으세요"
"아, 아뇨.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사양했지만 억지로 들여밀어져, 야치는 '감사합니다' 고 말하고 나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봉투 입구로부터 갈색의 과일 같은 것이 보였다. 밤인가 라고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더 둥근 껍질이 조금 갈라져 있었다.
"이건 뭡니까?"
"라이치(중국 남부에서 나는 과일이라네요. 양귀비와 관련이 있는.....^^)입니다. 좋아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겁니까?"
"껍질을 벗기면요"
하아...라고 중얼거리고, 야치는 봉투 안의 갈색 과일을굴려 보았다.
"취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좋아해서요. 야치상은 드신 적이 없습니까?"
"에에...아, 어서, 앉으세요"
거실에 하루노를 남기고 야치는 부엌에 들어갔다. 물을 끓이고 커피를 준비한다. 이 전에 타인을 집에 들인 것이 언제 적 일이었던가 생각하는 동안, 주전자의 물이 넘쳐 흘러, 서둘러 가스를 껐다. 라이치를 접시에 담았지만, 껍질을 벗겨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라도 괜찮을까 알수가 없어서, 결국 커피와 라이치를 담은 접시와 과도를 쟁반에 담아, 거실로 돌아갔다.
커피를 내놓으니, 하루노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틈을 두지않고, 손을 뻗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 휴우 한숨을 쉰다. 컵을 양손으로 감싼 모양에, 밖은 그렇게 추웠던 것일까 생각했다.
"그 커피, 하루노상에게 받은 것입니다. .....맛있더군요"
"자주 가는 커피점의 오리지널 브렌드인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이야기가 끊어져, 좌식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말이 없었다. 야치는 "저기, 이거 드세요" 라고 벌써 이름도 까먹은 갈색 과일을 권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손을 댈 기미는 없다.
자신이 먹지 않으면, 먹기 힘든 걸까... 라고 생각해서 야치는 한 개를 집었다. 손에는 집었지만, 어떻게 공략하면 될까 알수가 없다. 껍질이 딱딱한 것이 불안을 부채질했다.
"그렇게 신기합니까?"
야치는 고개를 들었다.
"시기가 되면 과일 가게에도 자주 나와 있고, 슈퍼마켓에도 볼 수 있는데요."
"아, 아뇨. 저기....과도로 껍질을 깨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나이프 따위는 필요 없어요. 껍질은 손으로 깰 수 있습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는 요령으로 하면요"
들은 대로 해 보니, 재미있게도, 쩍 껍질이 벗겨졌다. 안에서 나온 것은 하얀 포도와 같은 과실. 쭈뼛쭈뼛 입에 머금었다. 포도보다도 탄력이 있는 과실은, 꽉 깨물으니, 설탕물 같이 달았다.
"어때요?"
야치가 다 먹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노가 물어 왔다.
"달콤하네요"
"단 것은 싫어하십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이건 세탁용 풀 냄새가 나네요"
하루노가 슥 미간에 주름을 모았다.
" 세탁용 풀......이라고요?"
"아, 그건...나쁜의미가 아니고, 옛날 있었잖아요. 이렇게, 봉투에 넣은 세탁용 풀이. 제 어머니는 자주 사용하셨는데...."
"전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연한 얼굴로 단언당해, 야치는 애매하게 웃었다.
" 이젠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꽤 옛날 이야기니까"
먹은 감상을 그대로 입에 담은 것뿐이없지만, 하루노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쓸데없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거북함을 넘겨버리며, 야치는 하나 더먹은 후에 일어났다.
"책을 갖고 오겠습니다"
거실에서 복도에 나간것 뿐으로 한 시름 놓았다. 같이 있으면 묘하게 긴장한다. 침실로 하고 있는 6죠의 방에 들어가 서가에서 화이트 로즈 시리즈를 찾았다. 곧 찾았지만, 서가의 책을 정돈해 본다든지, 배열 상태를 바꿔 본다든지 하면서 미적미적 하고 있을 새, 역시 너무 기다리게 한 건가 하고 생각해 거실로 돌아왔다.
앉아 있는 하루노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고양이를 키우고 계시는군요"라고 들었다.
"고양이?"
보니까, 하루노 무릎 위에서 얼룩무늬 고양이가 둥글게 움츠리고 있었다. 전부터 사람을 잘 따랐지만, 질릴 정도로 경계가 없다. 벽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고양이가 저녁 식사를 조르러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랐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노는 것을 빨리 집어치운 것일지도 몰랐다.
" 꽤 무겁지요? 쫓아버려도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쭐거려서 언제까지고 올라앉아 있으니까요"
하루노는 고양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어색한 손놀림은, 그다지 동물에 접하는 것이 익숙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이름은 뭐라고 합니까?"
"짓지 않았습니다, 라고 해도......제가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요"
하루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고양이는 마치 자신의 집 처럼, 당당히 들어오던데요?"
"아침저녁에 먹이를 주니까요"
"먹이를 주고, 집 안에 있게 해도 키우는 것이 아닌 겁니까?"
새삼 듣고 보니 그것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키우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제 집은 별장인 모양입니다"
이상한 말을 할 작정은 아니었지만, 하루노는 뿜어 내듯이 웃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깨를 떨면서 웃는다. 무릎위의 고양이가 놀라서, 뛰어 내렸다.
언제나 무표정하고, 웃고 있는 기색이 있어도 입가 뿐. 그런 식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몹시 웃는 것은 처음이어서, 야치는 솔직히 놀랐다.
그후 곧 하루노는 책을 한 손에 들고 빗속에 돌아갔다.
야치는 거실의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딱딱한 껍질의 잔해를 치우면서, 언제나와 똑같을 것이었던 일요일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深呼吸(심호흡)(4)
2002.11 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창 위 제목이 가슴 시리게 하는군요. 대구 지하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전 하루노상이 공이라고 믿습니다~!(주장)
아마도 이번 이야기에서 공이냐 수냐 전말은 밝혀질 것 같지만.....흐흐
(참고로 공이라고 믿는 분도 수라고 믿는 분도 만족하실 듯)
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선 하루노상이 공인 것 같은데요.
우선 카리스마가......야치 상보단 하루노상이...--;;
아뭏든 이번에 하루노상이 긴장할 만도 합니다. 다된밥에 재뿌린다는 말이 들어맞는 이야기.
앞으로 2~3회로 심호흡은 끝납니다. 한번에 빨리 그리고 많이 연재하니 이렇게 신속하게 끝나는군요. 다음엔 잠깐 단편은 접어놓고 윤리제로 비열수와 집착연하공의 이야기, 게이한텐 절대로 어린애 과외시키면 안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달콤한 생활'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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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을 하는 것은 다음 아르바이트를 찾을 때까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니시다까지 그만둬 버려, 다른 보충도 없이 야치는 질질 야간전문의 아르바이트가 되어 갔다. 쉬는 것도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로 패턴이 고정되어, 점장은 처음에 말했던 것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 했다.
낮 동안 충분히 자서, 몸 전체에 리듬을 만들어 놓는다면, 밤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일의 내용으로 봐서는, 손님이 적은 만큼 밤 쪽이 편했다.
밤 생활의 리듬과 같을 정도로 야치의 속에서 매일의 패턴이 된 것은 일요일의 하루노와의 만남이었다.
하루노에게서부터는 1주일에 2번 정도 전화가 온다. 전화의 내용은 귀의 상태를 묻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책의 이야기였다. 하루노는 일요일 오후, 꼭 야치의 집으로 찾아왔다. 빌려간 책을 돌려주고, 또 새 책을 빌리기 위해. 그리고 2~3권의 책을 가지고 돌아가, 전화로 감상을 이야기해 온다. 처음엔 빌려온 책을 주저도 없이 솔직히 "전 재미없었어요" 라고 들으니,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몇 번이고 계속되니 천천히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니, 가끔 나오는 "재미있었습니다" 란 말에 쾌감을 느껴, 다음도 그렇게 듣고 싶어서 책을 고르는 데 정성을 쏟았다.
일 관계를 떠나, 이편이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루노와의 교제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겨우 야치는 연하의 전 상사라는 직함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하루노라는 남자를 볼 때에, 아무래도 '상사' 라든가 '유능' 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딘지 먼 느낌이었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야치는 하루노를 연하로 까다롭지만, 솔직하고 재미있는 남자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20년간 회사에 근무해, 겉치레 말은 상식이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온 야치는, 그것들을 일절 배제한 스트레이트한 말투에 상처받는 일도 많이 있다. 하지만 거꾸로, 어투에만 익숙해 지면,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다른 사람이 오니까 야치는 방을 부지런히 치우게 되었다. 그것 정도도 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라면 아무래도 빼먹기 일쑤였다.
황폐해진 정원도, 마음이 내키면 조금씩 손질하게 되었다. 그것도 하루노에게 "이 집은 정원이 있어서 좋네요. 전 어렸을 때부터 맨션에서 살아서...." 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부러워한다고 생각하니 아무 생각없이 보아오던 정원에도 애정이 솟아, 완전히 황폐해져 버린 채로 두기에는 부끄러워졌다.
하루노는 야치의 집을 방문할 때, 언제나 뭔가 선물을 들고 왔다. 그것은 책을 빌리는 데 대한 하루노 나름의 신경 씀인 듯해, 처음에는 사양하던 야치도 지금은 무엇을 갖고 올까 기대하게 되었다. 추운 날이 계속되고 나서부터는 화과자가 많아지고 있다.
1월도 끝날 무렵의 일요일, 야치는 한낮 가까이까지 자고 나서, 일어났다. 가볍게 청소하고 나서 점심밥을 먹는다. 천천히 있다 보니, 슬슬 하루노가 올 시간이 되어, 고다츠가 있는 거실에 석유 스토브를 넣고 방을 덥혔다.
오후 2시가 되어도 하루노는 나타나지 않아, 오후 3시가 지나 오늘은 오지 않는 걸까 생각하고 있자니, 현관 앞에서부터 "실례합니다" 고 하루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들어오세요."
"우선 이걸"
넘겨 받은 봉지는 평상시보다 무게가 있었다. 구두를 벗고 있는 남자에게 "밖은 춥지요?" 라고 물어보니 "춥습니다"라고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 와도 여기는 따뜻해"
거실에 들어온 하루노는 코트를 벗으면서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현관은 어두워서 잘 몰랐지만, 불 아래에서 보니, 몹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눈도 붉다.
"피곤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물으니, 하루노는 쓴 웃음을 지었다.
"별로 잠을 자지 못해서......"
"무리해서 오시지 않아도, 집에서 쉬시는 편이 좋았을 텐데요."
예상 밖으로 강한 시선이 이쪽을 본다.
"여기에 오고 싶었으니까 온 겁니다. 야치상도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오고 싶었다고 하는 것도 진심이겠고, 자신이 언제나의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밝히니, 쑥스럽다. 신경쓴 자신의 말이 겉치레로 생각된다.
냐옹 하고 우는 소리와 함께 장지문을 긁는 소리가 났다. 막 앉은 참이었는데도 하루노는 서둘러 일어나, 문을 열었다.
추웠기 때문에, 마치 집고양이처럼 밖에 나가지 않게 된 얼룩 고양이가, 하루노에게 기대어 부벼온다. 하루노는 기쁜 듯이 고양이를 안아 올려, 안은 채로 고다츠 안에 발을 집어 넣었다. 언제나 입고 있는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검은 스웨터가 고양이 털 투성이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고 쓰다듬었다.
고양이와 놀기 시작한 하루노를남기고 야치는 일어섰다. 부엌에 가서, 언제나처러 물을 끓인다. 오늘의 선물은 양갱이었다. 속을 뒤집으니 제조원이 '오사카'라고 되어 있다. 출장갔다 온 것일지도 몰랐다.
양갱과 커피를 쟁반에 담아 거실에 돌아오니, 하루노는 다다미 위에 누워, 등을 둥글게 하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양이까지 하루노의 가슴 언저리에서 둥글게 말고 있었다.
지금까지 집에 왔었어도, 결코 단정치 못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남자였기 때문에 더욱, 긴장감이 풀어진 모습은 의외였다. 자는 얼굴은 생각외로 어리고, 그 얼굴만 본다면 수십인의 부하를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부리는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피곤했을 거라고 신경을 써서, 말을 걸지 않았다. 야치는 천천히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몇 권인가의 책을 갖고 와서는, 좌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혼자서 푹 자게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떴을 때, 혼자라면 하루노가 외로워할 것 같았다. 자신이라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야치는 방을 나가지 않았다.
하루노가 잠들고 말아서, 상황적으로는 혼자서 보내는 오후와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였는데도, 이상하게도 외롭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루노가 눈을 떴을 때는 저녁 6시를 넘겨서였다. 자고 있는 것에 질려서 어슬렁어슬렁 집안을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먹이가 먹고 싶다고 울기 시작한 소리에 일어났다.
깨었을 때의 그의 동요하는 모습은, 보고 있어도 이상했다. 부스럭 부스럭 한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튀어오르듯이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둘러보았다. 안경을 벗고 눈을 세게 문지르다가, 손목시계를 보고 더욱 놀랐다.
"제가 자고 있었습니까......아니, 자고 있었군요. 다른 사람 집에서.. 죄송합니다."
아뇨, 라고 야치는 웃었다. 그러니 하루노의 얼굴은 쑥쓰러운 듯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 앞에서 낮잠 따위는 잔 적이 없었는데..."
"피곤하셨나보네요"
언제까지고 잤던 것을 말했더니, 하루노는 더욱 거북하게 느끼는 듯해서, 야치는 화제를 바꾸었다.
"이제 꽤 늦었으니까..."
"그럼,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황급히 얼어서는 남자가 오해한 것은 일목요연하여, 야치 쪽이 당혹했다.
"저기,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루노가 지그시 야치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입니까?"
확실한 인품에 호감을 가진 반면, 명확한대답을 요구하는 것에 당혹한다. 확실히 말하는 것보다, 살펴 주었으면 하는 인간관계에서 보낸 야치에게 있어서는, 하루노와의 대화는 심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배가 고프니까, 혹시 하루노상도 마찬가지라면 같이 저녁을 먹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만"
표정이 없는 하루노의 얼굴이.....요즘은 익숙해진 탓인지 약간 정도 그 변화를 눈치 채게 되었지만....기쁜 듯이 웃음을 떠올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좋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무얼 먹을지 정한 것은 좋았지만, 밖에 나갈까 시켜 먹을까 야치가 망설이고 있자니, 하루노가 "밖에 나가는 건 추우니까, 시켜먹는 것이 낫겠습니다" 고 확실히 주장했다.
근처의 가게에서 라면을 두 사람 분 주문하고, 거실에 돌아왔다. 집에서 주문 따위는 거의 10년 만이었다. 하루노는 눈을 뜬 다음부터도, 고다츠의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인상은 없었기 때문에, 이상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집에 왔었어도, 한 시간도 오래 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오래 같이 있었던 것은 처음일런지도 몰랐다.
"저의 집은 맨션에 널판지였기 때문에, 고다츠에서 생활한 적이 없었습니다"
"헤에..."
야치는 고다츠의 위에 팔꿈치를 댔다.
"빨리 양친이 이혼하고, 저는 어머니에게서 자랐지만, 그녀는 이른바 캐리어 우먼의 선두여서, 여성복 디자이너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청 바빠, 자식에게 마음 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 다 제쳐놓고서라도 일이 최고라는 건, 어린애 마음에도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생활 스타일을 전부 서양식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야치는 "네에..."하고 맞장구를 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해외 대학으로 갔지만, 생활하는데 있어서는, 언어 이외의 생활습관으로 곤란한 적은 없었습니다.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어머니가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자기 주장이 강한 Yes No 가 확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생긴 친구가 사귀기 쉬웠을 정도입니다. 28살에 일본에 돌아왔습니다만, 그 때는 일본인이 애매한 것에 꽤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애매한 일본인의 대표인 듯한 느낌이 들어, 야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다미에서 생활은 하는 것은 일어선다, 앉는다는 동작으로 필요 이상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합리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경원하고 있었지만, 야치상의 집에 실례하고 보니, 새삼 일본가옥의 장점을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어쨌든, 집을 칭찬하는 결론으로 다다른 듯했다.
"저는 양식이나 일본식이라는것에 그다지 연연한 일은 없군요. 여기는 태어나서 자란 집이기도 하고"
문득, 하루노가 눈을 내리깔았다.
"저는 한 장소에서 오래 살아 본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해서, 곧 싫증내고 말아서, 3년 정도 간격을 두고 이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가 내가 돌아갈 곳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에 망설입니다. 저는 확실히 여기라고 말하고 돌아갈 장소가 있는 야치상을 부럽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사는 것을 당연시해 온 야치는 하루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일에 관해서는 완벽한 남자도 어딘가 마음을 쉴 장소를 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지금도, 3년 마다 집을 바꿉니다. 이사했다고 연락이 올 때마다 또인가 하고 넌덜머리를 냅니다."
"....아버님과는 연락하고 있습니까?"
하루노가 고개를 갸웃했다.
"헤어진 아버지 말입니까? 뭐....만나 본 일도 없기 때문에. 이혼의 원인이 아버지의 바람기였기 때문에 모친에게 "그 형편없는 녀석" 이라고 들으면서 자란 탓인지, 부친이 그립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주문한 라면을 거실에 들여 놓자, 하루노가 조금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먹고 있자니, 좋은 냄새에 끌려 왔는지 고양이가 거실로 왔다. 하루노에게 자꾸 몸을 비벼대며, 더 달라는 듯이 운다.
처음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지만, 나중에는 라면 속에 있는 것을 꺼내더니, 손바닥에 얹고 고양이에게 주었다. 고양이에게 손으로 먹이를 준다는 그런 사소한 것에도 기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식사 후에 하루노는 야치의 장서를 보여 달라고 말해 왔다.
"언제나 방 속에서부터 책이 나오니까, 그게 신기했답니다"
그렇게 듣고, 보여줘서 곤란할 것도 없지 않을까 생각해, 침실로 쓰고 있는 6죠의 방에 데리고 갔다. 책이 꽉차있는 서가를 하루노는 흥미깊게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편 책은 오래되었지만,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몇번이고 다시 읽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왼쪽 귀에 욱신 하고 통증이 느껴졌다. 눈썹을 찡그리고, 반사적으로 왼쪽귀를 눌렀다.
"귀가 아픕니까?"
눈이 날카로운 남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 가끔요. 그래도 대단한 것은 아니니까..."
그때까지의 온화한 공기가 일변해서, 하루노는 무서운 얼굴로 야치를 노려보듯이 보았다.
"언제부터 아팠습니까?"
" 아프다고 할까....조금 화농해 있는 듯한 것 같고...."
하루노의 표정이 더욱 무서워졌다.
"병원에는 갔습니까?"
"에에, 뭐. 자기관리가 조금 부족한 건지, 몇 번인가 염증이 나 버려서..."
고개를 숙이고, 곰곰 생각하는 표정을 보인 후에, 하루노는 고개를 들었다.
"실례입니다만, 야치상이 다니고 있는 병원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렇게 물으니, 대답에 궁했다.
"뭐, 상냥한 선생님이신데요..."
"상냥하다, 만으로 낫지는 않잖아요"
엄격한 목소리로 꾸짖어, 야치는 단번에 전의 직장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연락해서 물어 보겠습니다."
"아, 그래도..."
"좀더 나은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습니까?"
대답하지 못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하루노가 '실례합니다' 고 방을 나간 후,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돌아온 하루노는 "내일도 낮에는 쉬시는 거죠" 라고 야치에게 확인을 받았다.
"아는 사람의 지인입니다만, 믿을 수 있는 의사인 것 같습니다. 밤에는 일이 있을 테니까, 오전 중에 예약을 넣어 주었습니다. 아침에 처음으로 진료받을 수 있게 손을 써 주었다고 하니까, 시간에 늦지 않게 갔다 와 주세요."
건네받은 메모에 기입되어 있는 것은 역의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종합병원이었다. 평판이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긴 것으로도 유명했다. 연줄이 없었다면, 아무래도 아침 처음으로 진료받을 수는 없었겠지.
하루노가 자신을 생각해서, 손을 써준 것은 알았지만, 야치는 순순히 고맙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제멋대로 해서, 기분을 상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저도 이 일에 관해서는 물러 설 수 없습니다. 다친 것에는 조금이나마 저도 관여되어 있으니까요. 참견할 정도의 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하루노상은 관계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잖습니까"
조금 고집을 부려, 야치는 저항했다.
"저는 당신이 걱정입니다. 다치게 하고 말았다는 부담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빨리 나아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귀가 부자유한 생활은 저는 상상되지 않지만, 그것이 불편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만약 야치상이 제 심정을 헤아려 준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나아서 저를 안심시켜 주세요"
곧장 감정을 부딪쳐 와서, 야치는 숨막힘 조차 느꼈다.
"...알겠습니다. 말씀을 고맙게 받아들여서, 내일 진료를 받겠습니다."
아직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응어리를 눌러 버리고, 대답하니, 하루노는 안심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 후 곧, 하루노는 돌아갔다. 혼자가 되니, '아이고 살았다' 고 내심 생각한 반면, 방이 갑자기 휑하니 넓어진 것처럼 느꼈다. 시켜 먹은 접시를 닦으면서, 이번엔 하루노가 책을 빌려 가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빌려 가진 않았지만, 웬지 다음 주도 하루노는 집에 놀러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엄청나게 추웠다. 야치는 꽤 전에 샀던, 몹시 무거운 울 코트를 입고, 자전거로 병원에 갔다. 진료전이었는데도 소문대로, 병원의 대합실은 많이 붐비고 있었다.
진료가 시작되니, 처음 번에 이름을 불렸다. 야치를 진료해 준 사람은 자신보다도 나이가 젊은 30 전후의 남자의사였지만, 말하는 태도가 정중해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
결국 염증이 나 있어 고막의 재생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우선 염증을 낫게 하기 위해, 귀 속을 소독하고 항생물질의 물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귀에 절대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머리를 감을 때는 특별히 주의하라고 다짐을 받았다.
진찰도 끝나 야치가 진찰실을 나오려고 하는 순간, 입구에 있던 커텐이 열렸다. 백의를 입은 키가 큰 남자가 안에 들어온다. 연령은 30대 중반 전후, 하루노와 같을 정도로 보였다.
"왔어?"
진찰한 의사가 힐끗 야치에게 눈짓을 보낸다. 그 시선을 따라, 남자가 야치를 보았다. 과장될 정도로 놀란 표정을 보인 후에 남자는 싱긋 웃고는 야치에게 오른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사카구치라고 합니다. 하루노랑 아는 사이시라고요..."
"신세를 졌습니다. 무리한 것을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아뇨,하고 붙임성있게 말하는 남자는 무표정한 하루노와는 대조적이었다. 진찰실을 나온 후에도 사카구치는 야치의 옆에 따라왔다. 그리고 인적이 끊긴 곳에서 갑자기 " 그 녀석은 리버서블이니까 즐겁지요" 라고 말을 걸어 왔다.
(* 리버서블(reversible)....업계(?) 용어로 공수 둘다 가능....이란 뜻이겠지요..^^)
야치는 발을 멈추었다. 남자가 갑자기 허물없는 말투로 말을 걸어오는 것에도 위화감이 있었고, 리버서블이라는 의미도 알 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 성격적인 특징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어떤 것도 예상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 일에 어두워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만, 리버서블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거북할 정도로 가만히 야치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성격말입니까? 제가 본 하루노상은 무척이나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미간에 주름을 잡은채로, 뒷 머리를 긁적거리고는, 사카구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물은 것은 단순한 흥미일 뿐이니까. 덧붙여 또 하나만..."
사카구치는 야치의 귓가에, 조그만 소리로 "어느 쪽이 아래야?" 라고 속삭였다. 버릇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직하게 대답했다.
"같이 일할 때에는, 그가 저의 상사였습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그런 상하 관계는 아닙니다"
짧은 침묵 후에, 사카구치는 당황한 듯이 "내가 여러가지 물어봤다는 건 녀석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남기고 헤어졌다.
병원에서 돌아오니, 낮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온 순간의 타이밍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해 하루노라가 생각해서,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하루노입니다. 라고 이름을 말한 후에, 얼른 "병원에는 갔다 오셨습니까?" 라고 물어왔다.
"갔다 왔습니다. 물약도 받았고, 조금 상태를 지켜 보자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라고 말한 후, 하루노는 침묵했다. 근무중인데, 어서 전화를 끊는 쪽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것만은 이야기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루노상이 말한, 병원의 지인이라는 분이, 사카구치 상이십니까?"
"엣!"
의아한 목소리였다.
"일부러 말을 걸러 와 주셨습니다. 만약 만날 일이 있으면, 감사하다고 해 주세요"
하루노는 "에에, 뭐" 라고 흑백이 확실한 남자 치고는 또렷치 못한 대답을 했다.
"사카구치하고는 달리 뭔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부자연스러운 대화가 뇌리에 스친다. 숨길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들은 다음엔 고자질하는 듯한 일은 할 수 없었다.
"별로 아무것도"
"그렇습니까.."
문득, 신경쓰인 일을 생각해 냈다. 사카구치의 대화와 관련이 있다고 알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일부러 " 전연 관계는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이라고 서두를 두었다.
"하루노상은 리버서블이라는 단어를 알고계십니까?"
전화의 상대편이 침묵한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뭔가 특징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가 보군요"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하루노의 목소리가 노해 있었다. 게다가 출처까지 힐문당해, 야치는 당황했다.
"저기, 텔레비전에서..."
"사카구치가 말한 거지요? 그런 게 틀림없어. 그 녀석은 또 어떤 못된 말을 야치상에게 불어 넣었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도 알수 있는 분노의 오오라에 뭐라고 변명하면 좋을까 알수가 없었다.
"대단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카구치상도 리버서블이라고 말한 것에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뚝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거는 쪽이 좋을까 어떨까 망설였지만, 근무중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일이 끊났을 때를 계산해서 휴대전화나 자택에 전화를 하려고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야치는 하루노의 전화번호를 어느 쪽도 몰랐다......한 번도 건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근무할 때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상사의 자택과 휴대번호 정도는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책상 근무였던 야치는 좀처럼 사용할 일도 없어, 퇴사를 계기로 해약했다. 정기적인 수입이 두절되니, 조금이라도 돈을 쓰는 것을 억제하고 싶었고, 집에 있는 전화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원명부를 찾으면 걸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꽤나 하루노에게 의존한 관계였다고, 지금에서야 야치는 인식하게 되었다.
전화를 하려고 생각하고, 번호를 찾았다. 찾았지만, 결국 그날 밤에는 걸지 않았다. 분노에 맞설 마음 가짐이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밤 일이니까 눈을 붙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루노의 태도가 마음에 걸려,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결국 한 시간도 자지 못한 채로 일하러 나갔다.
오전 4시를 넘겨, 점점 졸린 것이 피크에 달해와서, 조금이나마 눈을 뜨고 있으려고 야치는 계산대 주위의 청소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면 자고 싶은 것은 어떻든지 참을 수 있다.
가게 문이 열리는 기미에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하며 서둘러 계산대에 돌아간 야치는 들어온 손님을 보고 "앗!"소리를 질렀다. 어제 낮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하루노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하지만 서 있을 뿐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야치는 다시 카운터 밖에 나와, 하루노 앞에 섰다.
"밤중에 와서 죄송합니다"
하루노는 작게 사과하고, 조리장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무엇을 신경쓰고 있는 걸까 야치가 깨달을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전에 일하던 대학생은 그만두었어요. 그러니까......조금 정도는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안심한 표정을 보이고는, 하루노는 "잠깐만 밖에 나갈 수 있습니까?" 고 물어 왔다. 가게 안이라면 괜찮지만, 밖에 나가게 되면 근무지를 벗어나게 된다.
"밖은 춥잖아요"
은연중에 안이 좋다고 말해 보았지만, 하루노는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얘길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밖에 나가고 싶어했다. 야치는 조리장에 있는 가게 주인에게 "5분 정도 휴식해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한 다음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밖은 볼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눈도 내리고 있었지만, 쌓일 정도는 아닌지 까만 아스팔트에 차례차례 스며들어간다.
"고민하는 것은 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묻겠습니다.사카구치가 야치상에게 무얼 말했는지, 전부 가르쳐 주십시오"
딱딱한 어투였다. 사카구치의 이야기를 하루노가 신경질적일 정도로 마음에 걸려 하고 있는 것, 화를 내고 있는 것을 야치도 알았다. 알고 있지만, 그렇게 신경 쓰일 것일까 라는 의문도 있다.
사카구치는 대화의 내용을 하루노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벌써 말한 것은 알려 지고 말았다. 일방적이라고 해도, 약속은 약속이라고 생각한 반면, 이런 밤중에 자신에게 온 하루노의 불안이 신경쓰였다.
"하루노상이 리버서블이라고 사카구치상은 말했습니다. 그리고....어느 쪽이 아래냐고도 물었나. 이제 같이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와 하루노상의 상하 관계는 없는 것 같지만...."
정직히 이야기했다. 하루노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아랫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있었다.
"그것뿐입니다. 하루노상이 고민하실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로"
달랠 참으로 그렇게 말하니, 하루노가 엷게 웃었다.
"야치상, 정말 당신은 눈치 채지 못했습니까?"
"눈치 채다뇨....?"
야치의 반문에 하루노는 자학 기미로 웃으며 "아뇨, 됐습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화가 끊기고 마니, 추위가 더욱 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저기....소개해 주신 의사 선생님말입니다만...정말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약도 받았고, 틀림없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가서 다행입니다."
하루노는 고개를 숙인채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대답이 없으니까.....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
"야치 상은......."
훌쩍 하루노가 얼굴을 들었다.
"왜 지금까지 독신이십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전연 상관이 없다. 야치는 하루노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것을 묻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전에, 혼약한 여성이 있었지만, 결혼식 직전에 파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을 아직도 잊지 못하셨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조금은 폼이 날지도 모르지. 야치는 웃었다.
"이젠 그녀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혼자 있는 것은, 우연히 그런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뿐이고,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지금부터는?"
"지금부터?"
"지금부터 미래에는...."
지금부터 미래...라고 반추하면서, 야치는 한숨을 쉬었다.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중년이라도 좋다는 여성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야치는 웃었지만, 하루노는 예의 정도라도 웃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혼자서 웃고 있는 자신이 엄청 얼빠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도 없습니까?"
똑바로 응시하면서 묻는다.
"그렇네요..."
왜 자신만이 질문을 당하는 걸까 생각하면서 거꾸로 되물었다.
" 하루노상은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놀란 듯이 크게 떠진 눈이 스윽 가늘어지더니 노려보는 것처럼 야치를 보았다.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지만....왜 자신을 노려보지 않으면 안될까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사귀고 계시겠네요"
"아뇨.......제가 일방적으로 호의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루노의 성격으로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곧 자신의 감정을 밝힐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유부녀를 짝사랑한다든지, 불륜이라는, 상대에게 고백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상상한다.
"마음이 통하면 좋겠네요"
그것이 인륜에 반한다고 해도, 좋아하는 감정은 죄가 아니다. 설령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에게 하루노의 마음이 통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책임한....."
내뱉는 듯한 차가운 말에 야치의 몸이 떨렸다.
"말뿐이라면, 사람은 뭐라도 말할 수 있군요. 아니면, 야치상은 제 짝사랑이 잘 되가도록 협력해 주겠다,라고도 하시는 겁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요"
하루노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이상한지 웃기만 하다가,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실이 끊어지듯이 그 웃음은 사라졌다.
야치는 하루노가 보통과 다르고, 어딘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알았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몰랐고, 자신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도 판별할 수 없었다.
"야치상, 이제 돌아와 주지 않을래?"
가게 문이 열리고, 점장이 불렀다. 정신이 들고 보니 20분 가까이 밖에 나와 있었다. 하루노를 이 상태로 놔 두는 것은 걱정이었지만, 일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가게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서....죄송합니다."
하루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일요일에 집에 오시는 거지요? 그 때라도...."
"이유도 없는데, 가도 됩니까?"
야치는 고개를 갸웃했다.
"책을 빌리는 걸 잊어버려서, 돌려준다는 구실이 없어져 버렸어."
중얼거리는 하루노에게 야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유가 없어도, 놀러 와 주세요. 저의 집에 오는 것이 책을 빌리기 위한 것 뿐이라는 것도 서운하니까요"
노려본다가, 화내다가, 험한 표정뿐만이 교대로 나타나던 얼굴이 갑자기 부드러워져서, 뺨이 조금 긴장이 풀어졌다.
"그래요..."
헤어질 때에 가볍게 인사하는 하루노는 "또 일요일에" 라고 남기고 돌아갔다. 일요일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것에 대해 야치는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深呼吸(심호흡((5)
2002.11 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이제 1회 정도 남았습니다.
최후까지 많이 사랑해 주시길...............^^;;
호빵님께서 올려 주신 삽화의 광고 문구는
"조용한 일상 속에 당신이 일으킨 작은 파도-" 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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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형제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금요일 밤, 야치가 야근 일에 나가기 전이었다. 하루노에게서 온 전화인가 생각하고 받았더니, 종형제였고, 첫 말의 목소리 톤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랜 병환이던 숙부가, 결국 조금 전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장례식은 내일 모레, 오전 10시부터라는 것이었다. 숙부의 집은 후쿠오카에 있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전날 집을 나오지 않는다면,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야치는 다음날, 밤의 일을 끝내고 3시간 정도 선잠을 잔 다음 하룻밤 묵을 준비와 상복을 넣은 가방을 손에 들고 비행기를 탔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숙부는 관록이 있는 남자였지만, 관 속에서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여위어 홀쭉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생전 숙부의 얼굴을 본 마지막이 자신의 모친의 장례식이었다고 생각하니, 웬지 얄궂은 기분이었다. 다음날 장례식에는 많은 참례자가 있었다.숙부가 그 지방에서 목재의 도매상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일 관계의 사람이 많았다. 부친에게 형제는 없었고, 모친도 형제는 죽은 숙부 한 사람이었다. 야치의 친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숙부의 자식들인 종형제 남매만이 남은 것이 된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 만약 자신이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경우, 누가 자리를 도맡아 관리해 줄 것인가 생각했더니, 그 사람은 아무래도 종형제일 것 같아 서글프면서도 미안해서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최후까지 타인을 귀찮게 하지 않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이 없으니 부탁할 사람은 핏줄인 친척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출관하고, 화장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밖의 일본식 정원을 거닐고 있자니, 종형제가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야치보다 한 살 연하였지만, 머리털이 엷은 탓인지 꽤 늙어 보였다.
"켄지상은, 아직 혼자지?"
야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어제부터 오늘에 걸쳐서 오래된 지인과 얼굴을 맞댈 때마다 같은 것을 몇 번이고 물어왔다.
"좋아하는 여자도 없어?"
"응....뭐"
종형제는 "으음.." 하고 신음하더니, 팔짱을 꼈다.
"케이코도 말야, 아직 혼자라고. 이제 곧 40살인데 말야"
"....케이코짱도 벌써 그렇게 됬나"
어렸을 때에는 종형제와 그의 누이, 케이코와 야치 3사람이서 자주 놀았다. 고교에 올라갈 나이가 되어서부터는 시골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어 소원해져서, 야치의 양친이 죽고 나서부터 만나지 않았었다. 어제 볼 때에는 나이치고는 젊어서, 이제 곧 40살이라고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그 녀석, 일생 혼자일 것 같아서 걱정이야. 지금부터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고령출산이고. 뭐....애는 할 수 없다고 쳐도, 앞에도 혼자라면 외로울 거야. 지금은 아직 건강하니까 괜찮아도 몸이 약해지니까 말야."
"확실히 그렇네...."
자신과 대조해 보면서, 절실히 맞장구를 치고 있자니, "이런 자리이지만 말야.." 라고 말을 꺼냈다.
"케이코,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렇게 나와 놀랐다. 일순 농담인가 생각했지만, 종형제는 진지했다.
"그 녀석도 상경하니까, 만날려고 한다면 만날 수 있잖아. 아니, 나는 전부터 켄지상에게 케이코는 어떨까 생각했다고. 그 녀석은 조금 성미가 세긴 하지만, 마음씨는 나쁘지 않으니까. 켄지상도 상냥하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야치는 웃으면서 넘겨버리려 했다.
"난 좋다고 해도, 케이코짱은 어떤지. 아직 활기있게 현역에서 일하고 있잖아. 일이 사는 보람인 사람이라면, 결혼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몰라"
"아냐, 이 전에 돌아왔을 때, 결혼하고 싶다고 확실히 말했었어."
종자매하고 결혼, 따위는 야치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렸을 때의 이미지가 강해서, 아무래도 여성이라기 보다는 누이라는 눈으로 보게 된다.
"그래도 말야....."
"혹시, 케이코 싫어?"
"그럴 리는 없..."
"뭐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말야, 케이코는 아무래도 손뗄 수 없는 일이 있는 듯해서, 오늘 중으로 한 번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아. 켄지상도 돌아가는 거지? 같은 방향이니까, 뭣하면, 이쪽에서 같이 돌아가는 표,준비해 줄까."
결국, 돌아가는 것의 준비는 종형제에게 부탁했다. 오후 3시, 유골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 야치는 케이코와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조금 시간이 나서, 케이코와 함께 상점을 돌았다. 돌아다니고 있을 동안, 맛있을 듯한 떡 과자를 발견했다. 나오기 전 예상외로 허둥거려 하루노에게 전화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휴대 전화도 갖고 있지 않았고, 전화번호를 메모해 둔 종이도 잃어버려서, 결국 연락하지 않은 채로 되었다.
일요일에 이야기를 하자고 약속했는데,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형태가 된 것이 쭉 마음에 걸렸다. 최소한의 사례이기도 하고,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야치는 작은 과자 한 상자를 하나 샀다. 케이코가 "회사에 선물하는 거야?" 라고 물어봐서, "아는 사람한테" 라고 대답했다.
비행기의 안은 최종편이기도 해서 혼잡했다. 야치는 케이코의 수하물을 자신의 것과 함께 위에 있는 선반에 놓았다.
"이럴 땐, 남자여서 좋네"
좌석벨트를 매면서, 케이코는 중얼거렸다. 공항에서 화장실을 갔다온 후에 한데 묶어 올린 머리를 내린 케이코는 감귤계의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걷고 있을 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좌석에 앉아 있자니 달라붙어 오는 듯한 달콤한 냄새가 강해져서 메스꺼워질 것 같았다.
"향수 냄새, 지독하지요? 미안해요"
자각은 있는지, 케이코는 사과했다.
"돌아가면 곧 클라이언트하고 만나요. 본심을 알고 있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 융통할수 있겠지만, 내가 따온 신규에다 거액 주문이니까 달리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책임자를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기도 하고요. ....첫 대면부터 향수냄새 지독하게 풍기면서 갔다간 실례이기도 하고 불쾌하게 여길 거야"
한숨을 쉰 후에 의자에 푹 눌러앉는다.외견은 30대 전반처럼 젊었지만, 눈가는 움푹 패어, 지친 듯이 보였다.
"일이 큰일인 것 같네"
뭐 그렇지....하고 케이코는 말했다.
"할수 없지요. 약소하지만 우선, 사무실의 사장이니까"
"이럴 때 정도는 더 푹 쉬고 싶잖아"
괜찮아, 고 케이코는 웃었다.
"바쁜 편이 잊을 수 있으니까. 집에 있으면 여러가지, 아버님 일이 생각나 버리고 오빠 부부가 신경 쓰니까.하지만 정신없이 바쁜 게 없어지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올 것 같아."
지쳤어.....그렇게 말하고는 케이코는 눈을 감았다. 그 때부터 조용해져서 자고 있는 걸까 생각하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천천히 눈을 떴다.
"돌아올 때, 오빠가 이상한 말 했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뭘, 하고 되물으니, "나랑 켄지상 결혼 이야기" 라고 한숨을 쉬었다.
"아, 하지만 난 켄지상 아주 싫은 것도 아니에요."
야치의 마음 속에서 가장 강한 케이코의 기억은 소학교일 때의 것이었다. 예전 누이와 같은 존재였던 여성......과거릉 알고 있는 만큼, "아주 싫은 것도 아니다"라고 들어도 마음은 복잡했다.
"우리 나이라면 사귀기 시작한다는 건, 아무래도 결혼이 전제가 되지"
그렇네, 하고 케이코는 맞장구를 쳤다. 말해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에 담기에는 웬지 주저가 있었다.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난 올해 4월에 일을 그만뒀어. 내가 스스로 퇴사한 게 아니라, 정리해고였지. 그때부터 계속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어"
케이코는 놀란 얼굴을 했다.
"40을 넘어서, 아르바이트는 어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걸 대체로 만족하고 있어. 하지만 세상 일반적으로 말하면, 누군가를 책임질 만한 입장은 못된다고 할지도 몰라."
옆이 잠시 침묵했다.
"켄지상이 전에 하던 일은 외국 자본계 기업이니까 확실히 매력적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인생의 동반자이고, 직함은 아니니까요"
그녀는 야치를 돌아보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어떤 일을 하더래도, 그 사람이 좋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종신고용 시대도 아니기도 하고."
케이코가 가만히 야치를 바라보았다.
"켄지상은 지금 일에 만족하고 있어요?"
물어와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발견했다. 좋은가 싫은가 그것보다도 우선 생계가 머리에 떠올랐었다.
피곤했던지 그때부터 케이코는 조금 잠을 잤다. 야치는 지금의 아르바이트와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역에서 헤어질 대, 케이코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핸드폰이니까 언제 걸어도좋아요. 라고 말해 주었지만, 야치는 자기쪽으로부터는 걸지 못할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후 9시를 넘기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없는지, 고양이가 어둠에서부터 몸을 비벼오는 일도 없었다.
상복의 웃옷만을 옷걸이에 걸고나서, 거실에 멍하니 있었다. 익숙해졌을 터인 혼자만의 방이,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야치는 침실에 들어가서 그 전에 조사해 두었던 하루노의 전화번호를 메모한 종이를 꺼냈다. 처음엔 집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아서, 휴대전화에 걸었다. 좀처럼 받지 않고 ,부재중 전화로 넘어가지도 않아, 끊을까 생각한 그 때 상대가 받는 기미가 났다.
"네, 여보세요..."
전화의 목소리는 보통 전화로 듣는 하루노의 목소리보다도 무척 낮은 느낌이었다.
"하루노상입니까?"
"당신은 누군데?"
"야치입니다. 하루노상에게 걸려고 했습니다만, 혹시 잘못 건 겁니까?"
전화의 상대편에서 아아..라고 혼자서 납득한 듯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이건 확실히 녀석 전화죠. 그 녀석 지금, 샤워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하루노는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했다. 자신 이외에도, 하루노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을 턱이 없었지만, 혼자서 남겨진 듯한 쓸쓸함을 느꼈다.
"그랬습니까. 그럼......조금 있다 다시 걸겠습니다."
"그것도 좀 곤란한데....."
남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볼일이 있어서, 녀석은 전화받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전언이라면 전해 두겠습니다만"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것도 무리인 듯 싶었다.
"그럼....오늘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전해 주세요"
"그거면 됩니까?"
"또 다른 날에 전화 할테니까요....."
전화의 건너편에서 "사카구치! 남의 전활 멋대로 사용하지 맛!" 이라고 하루노의 호통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이고 울려서 시끄러웠다고" 라는 중얼거림 뒤에 "죄송합니다. 하루노입니다" 라고 친구를 상대할 때와는 다른 꽤 점잔빼는 목소리가 들렸다.
" 밤늦게, 바쁘신 중에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야치입니다"
"엣, 야.....야치상......."
순간 하루노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어디십니까?"
"집에서 거는 겁니다. 오늘은...."
"한번, 끊겠습니다. 곧 이쪽에서 다시 걸겠습니다"
야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는 끊어졌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는 채로, 수화기를 놓았다. 그 후로 5분정도 후에, 약속 대로 하루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도중에 끊어서 죄송합니다."
하루노의 등뒤에서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집 밖에 나온 듯 싶었다.
"아뇨, 이쪽이야말로 바쁘신 때 죄송합니다"
"별로 바쁘진 않는데요"
"친구분...사카구치 상이, 지금부터 용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하루노가 침묵해서, 그 침묵이 야치는 무서웠다. 사카구치에 관한 것에 하루노는 민감해서,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노가 화내는 일을 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용무는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집에 돌아가는 길입니다"
자신 때문에 신경을 써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 부분을 깊게 묻지는 않았다.
"오늘은 약속했었는데, 집에 없어서 미안했습니다"
"아뇨...."
"숙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이 있었기 때문에 후쿠오카에 있는 어머니쪽 실가에 돌아갔었습니다"
"참 큰일이셨군요.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는 하루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갈 때에 하루노상에게 전화하려고 했지만, 나가는 것에 허둥대다 보니 잊어버렸어요. 죄송합니다"
"그런,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용건은 이것으로 끝났지만, 야치는 전화를 끊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사례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선물을 사 와서 드리고 싶은데, ...다음 주에는 저의 집에 오실 수 있습니까?"
".....지금 가면 안될까요?"
야치는 놀랐다.
"지금.....?"
"귀찮습니까?"
"아뇨....상관없지만, 선물이라고 해도 대단한 것도 아니고, 오래가는 거니까, 2,3 주간은 괜찮아요"
짧은 침묵 뒤에, 하루노는 "고양이도 보고 싶고" 라고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지금, 어느 '본집' 에 있는지 알수 없었지만, 없다고 말할 수 없어 "그럼 오세요.." 라고 야치는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다음 1시간도 되지 않아 하루노는 나타났다. 현관 앞에서 언제나의 일요일처럼 선물을 건넨다. 밤인데 어디서 샀을까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지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낮에 하루노는 한번 집에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의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알아챈 건지, 고양이도 하루노가 오기 조금 전에 돌아와서, 현관의 목제 문을 긁고 있었다.
선물을 하루노는 기쁜 듯이 받아 주었다. 그 표정만으로, 야치는 만족했다. 집에 온 때부터 기분이 좋았던 하루노가 문득 무언가를 경계로 말수가 줄어들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야치의 이야기에 대한 대답도 단어가 많아졌다.
" 주제넘은 질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하루노가 날카로운 눈으로 야치를 보았다.
" 계속.........어느분과 같이 계셨습니까?"
"잘 아시네요"
순순히 감탄하는 야치에게 하루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종자매, 그러니까 돌아가신 숙부의 딸이 이쪽에 살아서, 장례식이 끝난 후에 후쿠오카에서 같이 돌아왔습니다"
하루노는 아아....라고 중얼거리곤,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향수 냄새가 나서...."
"그렇습니까? 하루노상은 코가 민감하군요."
".....어머니가, 예전부터 향수를 자주 발랐습니다. 저는 그런 향수의 종류는 남자건 여자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햐루노에게는 결벽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밖을 돌아다니다 온 고양이를 태연히 쓰다듬고 어르니까, 실제는 어떤지 잘 알수가 없었다.
"여기는, 고양이와 오래된 나무의 향기가 납니다"
야치는 그다지, 그런 것을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 고양이와 놀고, 커피를 마시다가, 전철이 끊기기 전에 하루노는 돌아갔다. 이번엔 책을 빌려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 주에도 와도 됩니까? 라고 물어오는 남자에게 야치는 "물론" 이라고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다시 혼자가 되니, 웬지 외로운 듯한 기분이 되었지만, 장례식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었다.
혼자였어도, 고양이가 있다면 비교적 괜찮았었다.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좋은 기분을 알게 되니, 외로움의 정도가 다름을 깨달았다. 누군가와 관계하면 관계할 수록 외로움이 늘어난다는 건, 사람은 번거로운 존재라고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생각하면서, 야치는 복도쪽의 샷시를 열었다.
마음 속까지 차가운, 밤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새삼 집 안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예전과 다름없는, 자신이 자라난 집의 향기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2주일 정도지나고 나서, 갑자기 케이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야치가 후쿠오카의 종형제 집에서 잊어버리고 온 부의에 대한 답례품이 도착해서 건네주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일요일과 월요일이 휴일로, 토요일은 밤이면 괜찮다고 말하니 일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마침 그 주는 하루노도 출장이 있어 못 온다고 했기 때문에 타이밍도 좋았다. 만날장소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사이, 케이코가 야치의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백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이에요. 한 번도 분향해드리지 못했으니까"
라고 말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여성이 집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야치는 전날부터 정성껏 집의 청소를 하고, 정원의 풀을 뽑는 등, 자신이 봐도 깔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돈했다.
일요일에, 두 번 정도 왔던 적이 있으니까 혼자서도 괜찮다고 했지만 역을 나온 때부터 길을 몰랐던 듯 전화를 걸어와 맞으러 갔다. 집에 도착해, 옛날 그대로의 목제 울타리로 지어진 나무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케이코는
"전엔 좀더 큰 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층집이었네"고 중얼거렸다.
집 안으로 맞아들여, 거실로 안내한다. 케이코는 처음, 불단에 있는 야치의 양친의 위패에 합장했다. 그리고 나서 고다츠의 앞에 앉은 케이코에게 야치는 지난 주에 하루노에게서 받은 고급 백설탕 과자와 커피를 대접했다. 여자라면 단 건 무조건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과자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 이 집, 지은 지 얼마 정도 되었어? 30년 정도?"
"아니, 더 오래 되었을 거야. 아직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에 샀다고 들었으니까"
케이코는 한숨을 쉬었다.
"오래된 집인데, 기둥이라든가는 괜찮은가보네."
"하지만 이제 꽤 상태가 나빠졌다고"
야치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지을 생각은 없어?"
다시 짓는다고 말한 것에 놀라, 자신이 그 가능성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오래되었다고해도 아직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웬지 자신은 이 집과 함께 최후까지 살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래된 집은 멋지지만, 지진이라든가 화재가 있을 경우엔 목조 가옥은 무서워."
응..뭐 그렇지... 야치가 애매하게 맞장구를 치니 케이코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 생각해 봤는데, 만약 야치상도그럴 생각이 있다면, 가끔 만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결혼을 전제로 해서....란 서두가 들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난 아르바이트야"
"그래도, 쭉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작정은 아니겠죠."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보지않았다고, 말할려고 해도 말할 수 없었다.
"급료가 싸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면 그쪽으로 가는 거야. 나는 돈하고는 관계없이,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좋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도, 야치의 속에는 그 정도로 큰 비젼은 없다. 기업에서 일하고 있을 때 조차도, 주어진 일을 매일매일 묵묵히 해내는 것 뿐으로, 그 이상의 일도, 그 이상의 것도 바라지 않았다. 똑같은 능력으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던 동료가 차례차례 승진하는 가운데, 뒤에 남아서야 겨우, 자신의 요령없음을 깨달는 마당이었다.
"나는....케이코짱이 생각하는 정도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아니야. 우선 매일매일 밥벌이를 하면 좋은 거지, 일하는 것에는 그 정도 밖에 필요로 하지 않아. "
케이코가 복잡한 표정으로 야치를 보았다.
"그렇네. 젊을 때는 여러가지 꿈을 꾸지만, 나이를 먹으면 싫어도 한계가 보이게 되지. 그래도, 향상심이 있어야 인생이 아닐까?"
그녀가 토해 내는 정론이 천천히 자신을 졸라 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켄지상은, 이제부터 미래의 자신에 대해, 뭔가 바라고 있는 것이 없어?"
그렇게 물어서,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주어진 것은 보인다.하지만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케이코를 보았다. 자신 이외의 인간은 , 좀더 인생에 대해 탐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고, 퍼뜩 생각했다. 몇 살이 되더라도,바램이나, 희망이라는 종류의 것은 쉽게 생겨나는 것일까.
".....이제 슬슬, 돌아갈까"
케이코가 일어나, 야치는 그 뒤에 따라갔다. 전송할 셈이었지만, 복도의 중간에서 케이코는 갑자기 주저앉았다.
"왜 그래?"
얼굴을 든 케이코는,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조금....배가 아파요. 하지만 괜찮아. 전부터 위경련이 자주 일어나서....가만히 있으면 곧 괜찮아질 거야."
야치는 어쩔 줄 모르는 채로, 케이코의 옆에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낫는다고 말했지만, 어렴풋이 어두운 복도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고 있는 사이에 케이코의 안색은 창백해져 갔다.
"아파.....아..."
이를 꽉 악문채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넘쳐 흐른다. 보고 있는 야치 쪽이 참을 수 없어서 "괜찮으니까.." 라고 말하는 그녀를 뿌리치고, 구급차를 불렀다. 달려온 구급대원이"어디 단골병원은 있습니까?" 라고 물어서, 그것이 그녀의 단골 병원을 물은 것임에도 상관없이, 정신이 없었던 야치는 그만 자신이 진료받았던 역 앞의 종합 병원의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한참 있으니, 케이코의 위가 아픈 것도꽤 나아졌다. 원인은 조사해 보지 않아도 불명확한 것이었으나, 조심할 겸 가까운 시일 내에 한 번 소화기계의 검사를 하는 쪽이 낫다고 했다.
연령과 외관으로 봐서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야치는 몇 번이고 케이코의 남편으로 오인받아, 간호사가 바뀔 때마다 "남편분" 이라고 불렸다.
외래의 침대에서 링겔을 맞고,3시간 정도 누워 있으니 증상도 완전히 가라앉았다. 입원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다. 걸을 수는 있었지만, 아직 케이코의 걸음걸이가 미덥지 못해, 야치는 어깨를 안듯이 하고 걸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병원 앞의 택시 승강장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뒤 택시 하차구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젊은 남자가, 날듯이 달려온 택시 도어를 꽝 닫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한 순간, 야치는 무심코 말을 걸었다.
"하루노 상?"
튀쳐 나갈 듯한 기세였던 남자가 멈춰 서더니,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나는 듯이 달려 왔다.
"괜.....괜찮습니까?"
당황한 듯한 하루노의 혀는 잘 돌지 않았다.
"사카구치가 야치상이 구급차를 타고 왔다고 해서, 그래서....공항에서 그대로 왔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같이 있던 그녀의 상태가 안 좋아서..."
그제서야 겨우 하루노는 야치의 옆에 있는 케이코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했다.
"저기, 안 타요?"
뒤의 노부인이 소리를 질러온다. 정신이 들고 보니 택시는 자신들이 탈 순서가 오고 말았다. 걱정해서 달려 와 준 하루노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 줄을 벗어나면, 또 긴 뱀처럼 늘어서 있는 줄의 맨 끝에 붙는 것이 된다. 아직 제 상태가 아닌, 상태가 나쁜 그녀를 자신 편의대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바래다 주지 않으면 안되서요....실례합니다. 일부러 달려와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또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
아연해 있는 남자를 남기고, 야치는 택시를 탔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에도내버리고 와 버린 꼴이 된 하루노에게 미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케이코를 맨션까지 데려다주고, 그때부터 집에 돌아오니 오후 11시를 넘어 있었다. 돌아와서, 달라붙어 오는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하루노에게 전화를 했다. 집은 받지 않아, 휴대전화에 걸었다. 한참동안 울린 후에 겨우, 하루노가 받았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뇨....."
대답은 기분 나쁜 듯이, 짧았다.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별로...사카구치에게 속은 저도 잘못한 거니까요."
"속았다고요?"
"그 녀석이, 자못 당신이 크게 다쳐서 입원한 것처럼 저에게 전화했었습니다. 짓궂은 녀석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질이 나쁜 장난을 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이번엔 장난이었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다친다면 달려와 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매우 마음 든든했다.
"저는.....저를 걱정해 주는 하루노상의 마음이 기쁘답니다."
정직한 남자를 보고 배워, 자신도 정직하게 기분을 말해 보았다. 그러나 하루노는야치의 성의에 코웃음쳤다.
"옆에 있던 여성은 누구입니까?"
야치를 찝찝한 기분이 들게 만든 채로, 하루노는 물어 왔다.
".....종자매입니다. 저의 집에 있을 대 상태가 나빠져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종자매라면, 결혼할 수 있군요. 그녀는 야치상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루노의 예리함에, 야치는 무심코, 하려던 말을 삼켜 버렸다.
"그녀가 야치상을 보는 눈은 여자의 눈이었으니까요. 사카구치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당신도 그녀에게 아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확실히 그녀와 지금부터 사귈까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다. 그런 일에 관해서 도대체 왜 그가 공격적인 어조로 꾸짖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야치상의 집에는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제가 가면,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거니까요."
방해라기보다는 마치, 자신이 그녀와 사이 좋아지는 것을 하루노가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하루노가 화내는 것은 자신이 추측할 수 없는 부분에서다. 사춘기 애도 아닌데, 왜 그런 정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사양하지 마시고 놀러 와 주세요. 저도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는 하루노상 밖에 없으니까...."
" 그렇게 말하시니 대답입니다만...."
하루노는 잘라 말했다.
"저는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게 고한 동시에, 전화는 끊어졌다. 야치는 아연해서, 한참동안 손에 든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을 수도 없었다.
深呼吸(심호흡)(完)
2002.11 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하늘 번역
후후.....잠깐 외도를 했다가 여러분들의 짱돌을 맞아 멍들었습니다......ㅜ.ㅜ
그래서 얼른 얼른 완결편을 냅니다.번역자의 개인적인 감상은 맨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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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서, 만나러 갔다. 야치의 집에서 일으킨 것과 같은 복통은 없는 것 같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검사를 받아 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몇 번인가 식사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했다. 성격적으로는 결혼해도 그렇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야치는 결혼을 전제로 사귈 수 없다고 고했다.
야치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거리적인 것이었고, 말이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요구해 오는 것은 질이 다르다. 야치는 그녀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녀가 요구해 오는 것과 같은, 서로를 정신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상대에 자신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향상할 수 있을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자신이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안고 위로해 주는, 그런 정도의 것이었다.
사귈 수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더니, 케이코는 "그렇게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아도" 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치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녀도 어렴풋이 어딘가 맞지 않는 부분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듯, 그런 부분을 넘어서서까지 야치와 사귀려고는 하지 않았다.
봄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8개월을 지났을 무렵, 도시락 가게의 점장이 야치에게 정사원이 되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다. 정사원이 된다면, 복리후생도 확실하고, 보너스도 나온다. 바라지도 않던 청이었지만, 천천히 생각하게 해 달라고 야치는 대답을 보류했다. 정사원이 된다면, 지금까지와 같이 마음 내키는 대로 느긋하게 할 수는 없다. 그 나름대로의 책임도 무겁게 짓눌러 온다.
그 날, 야치는 야근을 마치고 자전거로 집에 돌아갔다. 대신할 사람이 올 때까지...라고 듣고 계속해서 벌써 5개월 정도, 통 대신할 사람은 오지 않은 채로 밤낮이 바뀐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안개가 끼인 듯한 머리로, 길 모퉁이를 돈다. 집 앞까지 수 미터 남은 지점에서야 비로소, 나무 문 앞에 사람이 서 있는것을 깨달았다.
야치가 자전거를 멈추자, 나무 문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보는 것도 거의 2개월 만으로, 전화로 이야기한 이래였다. 두번 다시 집에 오지 않겠다고 한 말대로, 그 때부터, 일요일이 되어도 하루노는 놀러 오지도 않았고, 직장에 방문하지도 않았다.
자전거의 핸들을 쥔 손이 떨리는 것이 이상했다. 연하의 남자를 무섭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렇게 친근하게 굴며 따르고, 마치 고양이처럼 집에 들어온 주제에, 갑자기 '친구도 아니다' 라고 잘라 말한다. 그 때의 충격을 생각해 내는 것 만으로, 마음이 괴로워진다. 배신이라든가 책략이라면 좀 더 알기 쉽다. 그것과 또 다른 부분이니까, 상처입어도 야치는 화 낼 수도 없었다.
"빌려간 책을 돌려 드립니다"
내밀어진 봉투를 받았다.
"싼 거니까, 버려 주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야치가 나름대로 힘껏 비꼰 말은, 노려보는 듯한 시선과 함께, 두 배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버릴 수가 없어서."
침묵하는 순간, 야치는 고개를 수그렸다. 하루노를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녀와 만나지 않게 된 것보다 일요일에 까다로운 남자가 방문해 오지 않게 된 쪽이 더 서운했다. 하지만 그 서운한 감정도 결국은 친구로도 생각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로 없어져 버렸다.
"지금 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회사를 바꿀 예정이고, 런던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바꾸고, 갑자기 해외로 부임하게 되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보통 대우가 아니고, 전 회사에 있었던 것과 같이 헤드 헌팅당한 것이 틀림 없었다.
"반년 예정입니다만, 희망한다면 더 오래 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딘지, 먼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했다. 회사에 있을 무렵, 야치는 한번도 해외 부임의 후보에 오른 적도 없었다.
" 그러니까, 야치상과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만나지 않았다. 해외에 가든, 일본에 있든 '만나지 않는다' 라면, 어디에 있든지 똑같았다.
"정확히 1년전, 저는 전무에게서 경영 개선의 일환으로 인원삭감에 대해 상담을 받았습니다. 저의 부서에서 삭감 후보에 오른 사람은, 야치상을 포함해서 네 사람이었고, 저는 근무태도, 실적등을 고려한 끝에 야치상이 적당하다고 전무에게 보고했습니다."
야치는 놀란 나머지 입을 반쯤 벌리고 다물 수가 없었다.
"미혼, 독신인 것도 확실히 고려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근무 태도였습니다. 근면한 것은 미덕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실히 일을 소화한다는 것뿐으로는 로보트라도 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요구하는 것은,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인형이 아니라, 조금 실적이 나쁘더라도 향상심을 가진 인간입니다. 회사를 살리는 것도,죽이는것도 결국은 인간이니까요. 이제부터 성장하려고 하는 회사에, 당신은 부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에서 오래 산 사람 답게, 하루노는 필요없는 것은 잘라 내버렸고, 그리고 자신은 멋지게 잘려 버려진 인간이었다.
"도대체 왜 새삼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있는 '배려' 도 당신에게는 없는 겁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배려입니까?"
정확하게 가슴을 꿰뚫렸다.
"자기분석이 되지 않는 인간에게는, 성장은 없습니다."
말이 마치 채찍과도 같았다. 말로써 양뺨을 동시에 손바닥으로 맞는 것처럼 당하면서, 생각한다. '무능'하다고 버려진 남자에게 왜 하루노는 접근해 온 것일까..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주말에 도시락을 사러 오던 모습을 생각해 냈다.
"그만두게 한 죄악감 때문에, 제 모습을 보러 온 겁니까?"
"저는 당신을 그만두게 한 것에 죄악감 따위는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일을 공정한 판단으로 행했을 뿐입니다."
사람은 충격이 크면, 조그만 정도의 아픔에는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정도 해 주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지금 와서는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야치상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것은, 단순한 저의 호의에서부터였습니다."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무능'의 낙인을 찍어놓고 나서 '호의'라고 말해도, 믿을 수 없었다. 하루노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야치의 눈을 보았다.
"저는 당신에게 연애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연인이 되고 싶었고, 그 나이까지 독신이라면 게이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이에 곧 성벽이 노말인 것을 알았습니다. 야치상이 회사를 나간 걸로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포기할 수 없어서, 도시락가게까지 얼굴을 보러 간 겁니다."
하루노가 자신의 양 손을 꽉 쥐었다.
"가능성이 없으니까, 어서 빨리 포기하고 다른 상대를 찾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놀란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을 야치는 처음 체험했다. 충격의 파도에 감정이 통째로 휩쓸려 흘러간 것처럼, 머릿 속은 하얗게 되었다.
동성애나 게이라는 말은 알고 있었어도, 그것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을 알아도, 리얼리티가 없었다.
겨우 생각할 힘이 돌아오자, 이번엔 의문부호가 머리 속을 교차했다. 왜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백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같은 입으로 자신이 그만두게 했다고 고백한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자신을 잘랐는지 알 수 없었을 텐데....
그리고 문득 야치는 깨달았다. 정직하게, 숨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루노라는 남자가 아닐까 하고.
"저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고, 친구라면 몰라도 하루노상이....성적인 흥미를 가질 대상은 아니라고생각하는 데요...."
"나야말로 당신에게 묻고 싶어"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왜 내가, 그렇게 타입도 아닌 야치상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었는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어."
좋아하게 된 사람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고, 사랑을 받게 된 쪽도 이유가 알 수 없다고 한다. 옆에서 본다면 필시 희극일 거라고 생각했다.
".....2년 정도 전에, 일을 마치고 나서 모두 마시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붙임성이 있었어도 마른 고양이가 있었는데, 야치상은 일부러 가까운 노점에서 달걀 부침을 사 와서 고양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두, 동정해서 먹이를 주지 않는 쪽이 낫다고 말했습니다.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먹이를 주는 것은 일시의 자기 만족이라고. 하지만 당신은 만약 자신이 고양이였다면, 동정이라도 배가 부르는 쪽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을 기대해서, 받지 못한다고 낙심하는 것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야말로 사람의 에고라고. 기대를 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하루노가 똑바로 야치를 응시했다.
"저는, 그런 사고방식이 가능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것이, 마음을 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말에 감동하다니, 술기운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을 소중히 간직한 남자에게도 놀랐다.
이 남자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 걸까 알고 싶어졌다. 이런 알맹이도 없는, 말라빠진 나이만 먹은 남자가 어떤 식으로 보이는 걸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노는 후 하고 숨을 쉬더니, 표정을 휙 바꾸었다.
"'별장'의 고양이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양이....."
"얼룩무늬 고양이 말입니다. 런던에 데리고 가려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건..제 고양이도 아니고..."
"알고 있습니다. 들고양이겠지요. 하지만 야치상이 귀여워하던 거니까, 일단 양해를 구해놓자고 생각했습니다."
고양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자신에게 남은 미련일까 생각했다. 그렇게 무능이라고 듣고, 덤으로 좋아한다고까지 들어서, 머리 속은 아직 혼란해 있었다. 그래도, 야치는 이 남자를 싫어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달았다.
"고양이를 데리고 가지 말아 주세요."
야치의 말에, 하루노의 표정이 모래를 끼얹은 듯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버려도 좋다고 하신 책을 주세요."
"싫습니다."
하루노가 눈을 치뜨고 야치를 노려보았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긴장된 공기가 감돌았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말. 돌이킬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에 담았다.
"만약 고양이가 보고 싶어진다면, 저의 집에 와 주세요. ....책은 드릴 수는 없지만 빌려 줄 수 있으니까, 빌리러 와 주세요."
하루노는 안경 속의 눈동자를 크게 뜬 채로, 가만히 야치를 응시했다.
".......전 쭉 이곳에 있을 테니까."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하루노는 고개를 숙였다. 숙이고서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길게 침묵한 후에, 작은 목소리로 "런던에서 돌아온 다음엔..." 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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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인생에는 몇 번인가의 전환기가 온다. 가령 20대 후반에 부친을, 30대 중반에는 모친을 연이어 여의고, 그리고 43세에 20년 가까이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등. 모두 큰 일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슬픈 것도 서글픈 것도 대부분 자신 뿐만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아, 그래요?" 로 끝날 일이라고 최근 들어 야치 켄지는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야박하다고 한탄할 것도 없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간에게 엄밀히 두 사람의 부모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 감정도 균등하게 나눌 수는 없는 것임에 틀림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타인에게 신경써 줄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겠지.
"야치 상, 어서 쟁반에 밥 담으세욧!"
동료인 40살을 넘긴, 조금 비만경향이 있는 주부인 키타오카가 소릴 질러서,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야치는 제 정신이 들었다.
"아, 예....."
황급히 밥을 4등분된 플라스틱 쟁반의 오른쪽 위에 퍼담았다. 포테이토 샐러드, 채소절임, 썬 캐비지와 자신에게 맡겨진 반찬을 다 담고 나니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키타오카가 구운 연어와 반토막의 고로케, 미트볼을 난폭하게 올려 놓았다.
"예에~사께벤(연어 벤또의 줄임말입니다) 다 됐습니다!"
키타오카의 위세 좋은 목소리에 계산대의 이치하라가 뒤돌아보았다.
"다음은 노리(김이 든 벤또입니다)2, 그리고 튀김 3 부탁해요"
"알았엇!"
이번에는 주의받지 않게 야치는 서둘러 재안에 밥을 담고 반찬을 퍼 담았다. 사께벤, 노리 벤이라고 이름은 다르지만 딸린 반찬은 같다. 자신으로서는 힘껏 서두를 작정이었지만 그래도 키타오카는 마음에 들지 않는듯이, 뺨에 구슬 같은 땀이 맺힌 빨간 얼굴로 작업대를 꽝꽝 긴 젓가락으로 두드렸다.
그 후부터 1시간 정도 손님이 줄지어 와서, 쉴 틈도 없이 연방 쟁반에 밥을 퍼 담았다. 오후 2시를 지나 손님이 끊겼을 때에 겨우 야치는 쉬어도 좋다고 점장에게 들었다.
"오늘은......노리벤으로 부탁합니다"
밖에 나와서, 손님인 듯 주문을 하니 계산기를 맡고 있는 22세의 유부녀인 이치하라가 쿡 웃었다.
"'오늘은' 이 아니라 '오늘도'....겠죠. 야치상은 항상 노리벤이니까."
"에에, 뭐......."
이야기하고 있자니, 가게의 조리장에서부터 키타오카가 얼굴을 내밀었다.
"영양없는 것만 먹으니까, 비실비실 젓가락처럼 마른 거잖아요(원래 비유는 '젓가락' 이 아닌데 의역했습니다^^)남자는 있잖아요, 나이를 먹으면 조금 정도는 살찐 편이 관록이 있어 보여 좋아요. 어서 우리 가게 벤또 말고 영양좋은 도시락을 만들어줄 부인을 찾아 봐요"
"하지만 야치상은 우리집 아버지하고 나이는 같아도, 배는 나오지 않아서 스타일이 좋은데요-"
이치하라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온 것에 야치는 당혹감을 느꼈다.
"이치하라 상, 아버님은 얼마나 되셨는데?"
"우리 집 아버지 말에요? 44세요. 중년에 살찌고 배가 나와서, 이젠 볼품 없다구요"
연령은 한살밖에 다르지 않았다. 확실히 20세 전후에 결혼했다면 이치하라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가정이라는 것에 인연이 없었던 야치에게는 그 정도의 자식이 있는 자신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자~노리벤 다 되었어요"
키타오카가 노리벤을 카운터에 놓는다. 돈을 지불한 야치는 다 된 것을 손에 들고 도시락 가게의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공원에 들어갔다.
주말인 탓도 있어서, 공원은 평일에 비해 가족동반이 많다. 야치는 그늘의 벤치에 걸터앉아 공원 입구의 자동판매기에서 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집에 가까운 공원의 옆 도시락 가게에서 야치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3개월 전, 8월 초엽이었다. 가게 내에도 종업원의 휴게실은 있었지만 여성과 같이 쉰다고 하니 신경이 쓰이고 말아 사양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푸른 하늘 아래의 식사는 상상 이상으로 탁 트인 느낌을 들게 했다. 그 이후, 야치는 비라도 내리지 않으면, 정해 놓고 공원의 벤치에서 점심 식사를 들었다.
팔월은 더웠지만, 날이 가는 것과 함께 서서히 서늘해져 추워졌다. 11월에 들어서부터는 한낮이라도 상의를 입지 않으면 뼛속 깊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계절의 변화를 의식할 여유는 없었다. 외자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서 근무했을 무렵, 자신이 있던 부서는 타부서와 비교해보아도 한층 바빴다. 출세 코오스에서 밀려난 야치는 줄창 사무처리전문으로, 하루종일 창가의 컴퓨터의 옆을 떠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도 정시에 퇴근하는 일은 없었다.
올해 4월, 사원전원에게 '마쉘즈 팩토리의 새로운 전망에 대하여"라는 자신의 회사에 대한 조직업무,인사제도, 재무회계제도가 함께 쓰여진 메일이 사장명의로 발송되었다. 연초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의도를 모를 이상한 메일에, 혹시 정리해고가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모두 의구심을 품었고,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고 야치에게도 그 차례가 돌아왔다.....
사락사락 새빨간 낙엽이 발밑에 뒹군다. 위를 올려다보니, 덮개를 씌운 듯한 적색의 틈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단지 한 장의 낙엽이라도 선명하게 색이 바뀐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조금 전에는 입구 근처의 은행나무가 아름다웠다. 그 앞에는 연못 근처의 시온(개미취)가 피어 있었다. 이전 자기 집 정원에도 피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 그리워졌다.
사치스럽군, 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금전적으로는 겉치레라도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기분은 이전보다도 만족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멍하니 주위를 둘러본 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노리벤에는 원래 들어있지 않을 튀김이 하나 넣어진 것을 보고 자연히 입가에 웃음을 띄었다.
사락사락 머리 위에서 잎이 흔들리고, 멀리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들을 기분좋게 받아들이면서, 식사를 하고 있자니, 땅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누구인지 깨달은 순간, 그때까지의 온화한 기분이 바람에 불리듯이 싹 사라졌다. 필요 이상으로 긴장한다.
일요일인데도 남자는 양복차림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보고 있을 동안에 오른손의 여행 가방을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안경 너머의 유리알 같은 눈.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 무표정한 채로 인사한다. 담백한 얼굴에 표정이 없으니 정말 가면과도 같았다.
"아아, 안녕하세요"
야치는 젓가락을 도시락 쟁반에 놓고, 깊숙히 머리를 숙였다. 애매하게 지나가게 놔두지 못하는 것은,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일해온 사람의 버릇이었다. 남자는 시선만을 움직여 야치의 손께를 보았다.
"식사중에 말을 걸어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길입니까?"
"네, 후쿠오카에 갔다 옵니다"
후쿠오카 지점에 무슨 용무였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곧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자신에게는 이미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침묵이 생겨난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올 기미도 없었다.
"도시락이 맛있어 보이네요"
불쑥 남자가 중얼거렸다. 가장 값이 싼 노리벤이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자신에게 들려주며,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안될 자신을 비굴하게 생각했다. 그에게 그런 의도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뻔한 겉치레 인삿말은 말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만다.
"저는 지금부터, 도시락 사서 돌아가겠습니다"
자신에게 선언하지 않아도, 어서 사러 갔으면 좋을 텐데.....라고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투덜거리는것에 앞서, 자신의 그릇 작음에 넌덜머리가 났다.
"그럼, 다음에 또."
가볍게 인사하고 걷기 시작하는 듯 하더니, 남자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을 올려다 본다. 사락사락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잎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꼿꼿한 자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야치는 어깨 힘을 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에도, 남자가 자신의 생활하는 범위에 관여해 오는 것이, 솔직히.....참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 된 회사에서 자신의 상사였던 하루노 요시히사가 야치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약 1개월째, 겨우 사람과 일에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다.
그 때는 토요일이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 1시, 마구 붐빌 시간대를 지나, 계산대의 여자애가 쉬러 가고, 그 교대로 야치가 가게를 지켰다.
비 탓으로 길을 가는 사람도 적었다. 유리 너머로, 눈앞의 도로를 스쳐 지나가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검은 그림자가 유리문 앞을 가로질렀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말을 걸었다. 남자가 수그리고 있던 얼굴을 든다. 그 사람이 누군가 인식한 순간, 야치의 뺨은 굳어졌다. 남자는 주문 카운터에 가까이 오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 건강하신 듯 해서, 다행입니다"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거북해, 야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에에....하루노 과장님도 별고 없으시고....."
남자는 뭔가를 탐색하는 눈으로 한바퀴 가게 안을 둘러 본 후에, 가게에서 가장 비싼 '특제 도시락"을 사서 돌아갔다. (원문은 가부키의 중간 중간 먹을 수 있게 된 도시락을 뜻합니다)
남자가 자신이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온 것은 우연으로, 필시 두번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과 그가 반대 입장이라면, 자신은 그 정도는 눈치채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도 바램도 들어맞지 않는 것은, 다음날 손쉽게 어긋났다. 일요일도 한낮을 지나서, 하루노는 도시락을 사러 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주말이 되면 꼭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하루노는 도시락을 사러 왔다. 언제나 '특제 도시락'이었고, 야치가 계산대에 나와 있으면, 한두 마디 말을 주고 받았다.
정리해고된 부하가 일하고 있든, 아니든 주말마다 도시락을 사러 올 정도로 하루노는 '특제 도시락'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야치도 한 번 먹어 본 일은 있었지만, 가격이 비싼 만큼 다소 볼품은 있었지만, 어디에나 있는 도시락의 맛이었다.
가까이 있는 공장의 시보가 울려 퍼져, 제정신이 들었다. 이제 곧, 점심 휴식 시간이 끝난다. 야치는 남은 도시락을 서둘러 챙기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점심 휴식시간마저 하루노와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생각에 골몰해 버린 탓으로, 식후의 산보를 즐기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가게에 돌아가서, 키타오카에게 덤으로 준 튀김에 감사의 인사를 했더니, 호쾌한 성격에 떡 벌어진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운 듯이 "그런 건 신경쓰지 말아요" 라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야치상의 친구분, 또 오셨었어요. '특제 도시락' 손님"
에이프런을 풀고 있던 이치하라가 교대해서 계산대에 선 야치에게 말했다.
"그와는 공원에서 만났습니다"
"후움....그 사람, 오늘은 양복차림이었어요. 샐러리맨 느낌으로 멋있었다고요"
이치하라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 남편도 그 정도 옷에 신경을 쓰면 좋을 텐데. 이봐요, 그 사람은 야치상보다 10년 정도 연하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넌 그런 남자가 취향이야?"
키타오카가 질린 듯이 말했다.
" 그사람, 정말 멋있다고요. 남편이 없었더라면, 접근하고 싶을 타이프니깐."
젖은 양손을 에이프런으로 닦으면서, 키타오카는 양 어깨를 교대로 흔들었다.
"그런 남자는 말야, 어렵다고. 뭘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럴까요?"
이치하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붙임성도 없는 거하고, 표정이 없는 건 달라. 그 남자에게는 귀염성이 없다고"
이치하라는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으로 양 미간에 주름을 짓고, 2층의 휴게실로 올라갔다. 키타오카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아는 사람인데 귀염성이 없다느니 어쩌니 떠들어서 미안해요"
야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붙임성이 없어도 괜찮고, 난 말이 많은 남자는 질색이지만, 조금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헤아려 주는 남자가 좋아요"
흠칫하여 뒤돌아보았다.
"가만히 사람 얼굴을 들여다 보고 이야기하는 주제에, 표정은 읽을 수 없으니까. 조금정도는 당신 기분을 헤아려 주면 좋을 텐데"
뭔가 말하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다. 결국 야치는 애매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深呼吸(심호흡)(2)
도대체 왜~! 제가 쪽팔리게도 제목 한자를 틀린 걸 모두 지적해 주시지 않은 것입니까
ㅠ.ㅠ.........深呼吸 이었군요. 그냥 부를 호자가 아니고... 제 무식이 천하에 다 드러난 듯한 느낌이 들어서......참.......쪽팔립니다요..이럴 거면 한자를 안 쓰는 거였어..
* 제가 미리 씬 無임을 발표하니 실망하신 분들.....^^ 이 소설은 천천히 읽어야 묘미가 있답니다. 흐흐 엄청 순진무구한 아저씨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어도 하루노상 심리가 눈에 잡힐 듯하거든요. 신종 '사랑 손님과 어머니' 랄까...그런 재미로 읽어 주세요.
이 작품은 최대한의 속도를 내어 번역할 생각입니다. WELL처럼 질질 끌 생각은 없으니까
2~3일 간격으로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동생이 군대에 가서, 컴터를 되찾았걸랑요.
이거 끝내고 미스티님이 제공해 주신 'End of Youth' 도...어서 착수해야지요
소설 비보이 2002.11 연재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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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오후 5시. 밤 근무의 아르바이트생과 교대하고는, 야치는 가게의 에이프런을 풀렀다. 로커에 걸어 놓았던 코트와 지갑을 꺼낸다.
가게 뒤에 세워 놓았던 자전거의 로크를 풀고 페달을 밟기 시작하니, 바람이 몇 배 더 차게 느껴졌다.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에서 저녁식사를 사서 밖에 나오자, 주위는 완전히 엷게 어두워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뒤편의 목제 문을 열고 자전거를 안에 넣는다. 목제 문의 열쇠를 잠그고서, 현관으로 향했다. 미닫이의 열쇠구멍 상태가 나빠, 끼익끼익 난폭하게 열쇠를 돌리고 있자니, 그 소리를 들었던지 냐옹 하고 얼룩무늬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돌아왔어"
말을 거니 또 한 번 냐옹 하고 운다. 겨우 열쇠가 열려 미닫이를 열었더니 고양이가 먼저 안에 뛰어든다. 야치가 현관에서 구두를 벗고 있는 것을 복도의 맞은편에서 가만히 보고 있는다. 시선에 재촉당하듯이 야치는 먼저 부엌으로 가서,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고양이 먹이 통조림을 열었다.
무심히 먹이를 먹고 있는 고양이를 흘깃 보고는,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준비.....라고 했댔자,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과 반찬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을 정도이지만.
조용한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모친은 예절에 엄격한 사람이어서, 식사중에는 텔레비전을 보게 해 주지 않았다. 그 버릇이 아직도 몸에 붙어 있어, 야치는 모친이 죽은 지금까지도 식사할 때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부엌의 창 유리가 흔들려, 큰 소리에 고양이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국도에서 한번들어가고, 또 집 앞의 도로는 일방통행이어서 정원이 붙어 있는 이 집이 더욱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밤에는 조용했다. 바람 소리도 잘 들린다.
혼자 하는 식사를 편하다고 생각하는 시기를 지나,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적도 자주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가족을 늘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결혼을 피해 온 것만은 아니다. 단지 한 번 기회를 놓치고 나니, 좀처럼 다음으로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야치는 28세 때 한번 약혼을 했었다. 맞선을 본 여성과 교제를 시작해, 식의 날짜까지 받아놓았었지만, 결혼식 2주일 전에 일방적으로 파혼당했다.
표면에 내세운 이유는 '가치관이 달라서' 였지만, 정말은 약혼자에게 오래 사귀어 왔던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판에 그녀는 전 남자를 골랐다. 자신은 선택에서 미끄러진 것이다.
상사에게도 지인에게도 초대장을 발송하고 난 뒤여서, 뒷처리가 큰일이었다.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다지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귄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연인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 못했었고, 아깝다고 생각할 만큼 깊은 부분까지 연결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고나서 한동안 맞선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여성을 찾아보는 일도 없었다. 그럭저럭 하고 있는 동안에, 정신이 들어 보니 40을 넘기고 있었다. 독신으로 40이 넘으니,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일, 그리고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을.
요즘 몇 년간 체력도 떨어졌다. 철야따위는 도저히 무리였고, 눈도 조금씩 희미해 졌다. 새로운 것을 기억하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
감각이 쇠퇴하고, 둔해지고.....이렇게 해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가 하고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 전에, 아직 회사를 그만두기 전, 40을 넘은 동료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동료 여성은 감각이 둔해져 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게 말했다.
마흔을 넘으니, 친지도 나이를 먹는다. 죽음에 대면할 기회도 많아진다. 슬픔에 직면해도 괜찮도록, 동물로서도 서서히 둔해진다고.......최종적으로는 반드시 올 자신의 최후의 날을 향해. 그것이 정말이라면, 이제부터 미래에 있는 것은 '죽음' 이라는 것일까.
밤에 생각할 것도 아니지......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야치는 빈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봉지를 정돈했다. 거실에 가서, 좌식 탁자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지만, 소란스러울 뿐 흥미를 끌 만한 프로도 나오지 않는다. 뉴스도 "중년과 노년층의 고용문제가....."가 나오는 시점에서 채널을 바꾸었다.
다시 한번 더 일어나, 침실에서 책을 꺼내 왔다. 야치의 유일의 취미는 독서였다. 예전부터 추리소설과 미스테리를 좋아해서, 외국의 유명한 것들은 거의 다 독파하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무릎 위에 고양이가 올라 왔다. 어리광 부려 오는 것이 귀여워서, 턱을 쓰다듬어주니 가랑가랑 목을 울린다.
고양이가 야치의 집에 출입하게 된 것은 1년 정도 전부터였다. 그 때는 아기 고양이였지만, 지금은 꽤 크게 자랐다. 정원에서 울고 있어서, 변덕으로 먹이를 주었더니 매일 밤 오게 되고, 집안에 올라와 들어오기까지 되었다. 하지만 야치에게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의식이 없다. 낮에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뿐더러, 이렇게 붙임성이 좋다면 다른 곳에서도 먹이를 줄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려 오지만, 그것도 지금 한 순간의 일로, 내일은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에는 완전이라는 단어가 최고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한 것도, 완벽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것도 어느 하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고양이에게, 자유로운 것에 이름은 붙이지 않는다.
지금의 자신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였다.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했을 때에는 쇼크였지만, 조직을 떠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직종을 고르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일은 있다. 도시락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단순히 가깝고 자격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었지만, 급료가 싼 것 이외에는 특별히 불만도 없다. 유일하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주말에 다니기 시작한 전 상사의 존재였다. 그만 오지 않는다면, 더욱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터였다.
하루노 요시히사는 외국의 대학원을 졸업한, 이른바 엘리트였다. 해외 생활이 길었던 때문인지, 일을 애매하게 해 놓는 것을 싫어하고, 냉철할 정도로 합리적이었다. 4년전 야치의 부서에 배속되었을 때에는 하루노는 30살 될까말까한 정도였던 것에도 관계 없이, 자신의 상사라는 입장이었다. 젊은 사원은 곧 그 나름의 근무 스타일에 익숙하게 되었지만, 자신은 좀처럼 익숙해 지지 못했다.
익숙해지지 못한 것 뿐으로, 방식에 이론은 없었고, 대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스를 정도로 강한 입장도 아니었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이었던 7월, 그에게 불려 갔던 때의 일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아침, 부서 전체의 짧은 회의를 끝내고 나서, 하루노는 데스크에 돌아가려는 야치를 불러세웠다.
무슨 이야긴지 아무런 설명이 없는 채로 소회의실에 같이 갔을 때부터, 불길한 예감은 있었다. 혹시....그 예감은 적중해, 갑자기 '해고 예고통지'를 받았다.
연하의 상사는 10년도 위인 부하에게 표정도 바꾸지 않고 "야치상에게도 여러가지 감사했습니다만, 그만두시게 되었습니다"고 고했다. 그곳에 있었던 것은 사실을 말할 뿐인 기계였고, 기계에게는 위로도 동정도 없었다.
출세 코오스에서 벗어나, 정년까지 하나의 톱니바퀴로 지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라 버려질 정도로 쓸모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현실의 충격 사이에도 커다란 격차가 있다. 사실을 눈앞에 둔 야치는 어째서 자신에게 해고 통지를 한 사람이 이 남자였을까 한스럽게 생각했다.
실력주의이니까, 연하의 상사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만은, 자신보다 연령적으로 위이고, 사교적인 언사로도 "죄송하지만........"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을 골라 주었으면 했다.
하루노는 "열 시 까지는 제자리에 돌아와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회의실을 떴다. 맥빠진 얼굴로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열시까지는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그 후, 정식으로 해고통지가 와서, 야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둔 후, 반달 정도는 멍하니 보냈지만, 퇴직금과 조금의 저축을 언제까지 먹어치울 수는 없어서, 일을 찾을까 하고 생각한 바로 그 때, 근처의 공원 옆에 있는 전국 체인의 도시락 가게에 아르바이트 모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딘가 정사원으로 고용해 주는 곳을 찾을 때까지의 연명으로 괜찮았기 때문에, 발견한 내친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신청했다. 시간대를 묻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좋았던지, 즉시 채용이 되어, 다음 날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주에 3일뿐이었지만, 지금은 월요일과 목요일을 제하고 주 5일,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하루종일 앉아 있기 일쑤였던 직업으로부터 일어서 있는 직업으로 바꾸니, 체력적인 부담은 늘었지만, 그 만큼 밤에는 불면이었던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전지가 끊어지듯이 순식간에 잠잘 수 있게 되었다.
때르르릉....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야치가 움직이니 고양이도 내키지 않는 동작으로 무릎에서 내려왔다. 전화는 도시락 가게 주인에게서였는데, 밤 근무의 대학생이 사고를 일으켜서 입원해, 당분간 나오지 못하게 되었으니, 대신 밤 근무를 해 줄 수 없을까 라고 말해 왔다. 솔직히, 밤은 힘들지...라고 생각했지만, 꽤 곤란한 모양이었고, 대신 서 줄 사람이 찾아질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승낙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신해도 좋다고 말했지만, 갑자기 밤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은 역시 우울했다. 밤을 온종일 일할 수 있을까 불안을 느껴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밤이라면 하루노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까지 연연해 하는 자신이 이상했다. 아니, 자신은 결코 하루노를 싫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만둬' 라고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루노 혼자의 판단은 아닐 것이고, 그는 단순한 중개자였던 것 뿐이다. 하루노가 싫은 것이 아니라, 하루노가 몰고 오는 감정이 싫다. 하루노가 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단순한 도시락 가게의 아르바이트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노가 오는 것으로, 자신은 상사가 연하이고,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해도 어쩔 수 없는, 무능력한 남자가 된다. 그것도 아직 자신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을 동안은 괜찮다.
가게 주인도, 바이트 동료들도 모두 야치가 이전,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만둔 이유가 정리해고였다는 것은 모른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굳이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빈번히 와서, 가끔 말을 거는 하루노에게 " 그 사람은 전에 일하던 때의 아는 사람이었어요?"라고 동료가 물어 온 일이 있다. 그 때 야치는 "부하였어요?" 라고 묻지 않은 일에 안도했다. "상사였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말한 후의 상대의 반응도 보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다면 괜찮을 정도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거짓말 한 것으로, 그러한 자신을 혐오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만 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프라이드가 뒤흔들리는 일은 없어진다. 자기가 무능한 인간이라고 인정한다면 훨씬 편해질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깨끗이 결론짓는 일은 아직, 할 수 없었다.
상상한 만치, 밤의 근무는 괴롭지 않았다. 24시간영업이 캐치프레이즈인 가게이지만, 밤은 낮과비교해서 손님이 꽤 적었다. 손님이 적기때문에 종업원도 소수였고, 교대로 휴식을 취할 때는 혼자 될 때도 있었다.
오전 3시, 4시라는 한밤중에도 손님은 온다. 손님층은 대체로, 10대에서 20대의 젊은 남녀였다.
소제와 다음날 아침의 재료 구입 등 할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밤중의 근무는 한가했다. 한가했지만 급료분의 일은 하려고, 조금 있는 과자가 진열되어 있는 선반을 청소한다든지, 조리장을 정돈하는 야치와는 반대로, 파트너인 대학생 니시다는 짬이 있으면, 가게 구석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쿨쿨 크게 코를 골았다.
청소도 재료 구입도 마치고. 야치도 할 일이 없어졌다. 한 시간 정도에 손님은 두 사람정도 왔지만, 연이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대응할 수 있었다. 니시다에게도 말을 걸어 보았지만, 눈을 뜨는 기색이 없고, 어딘지 모르게 술냄새가 감돌았다.
오전 4시, 계산대에 있는 접이식 의자를 내놓고 걸터앉아, 야치는 계산대의 선반으로부터 문고본을 꺼냈다. 지루해서, 손님이 올 짬짬이,시간 보내기용으로 갖고 왔었다. 가게 안은 난방이 되고 있었고, 밖에 비교해서는 따뜻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발께가 추워진다. 야치는 몇번이고 양 발을 비비듯이 제자리 걸음을 했다.
낮 중에, 이 책을 사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가끔 들리는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낮 바이트에서 같은 시프트였던 키타오카를 만났다. "야치상이잖아-"라고 큰 소리로 불러 세워, 소학생인 아이의 담임이 편애을 하니까 교활하다고 일방적으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겨우 이야기도 종반에 들어섰나 생각되었을 즈음, 키타오카는 뭔가 생각난 듯이 "아아"라고 말했다.
"당신 아는 사람말에요, 일요일인가 가게에 와서, 여기 일 그만뒀냐고 물어봤었어요."
'지인'이라고 들어,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야치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아는 사람 가운데, 도시락을 사러 오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밤 근무로 바뀌었다고 말했는데, 괜찮나요?"
"에에, 그건.....상관 없어요"
키타오카는 한시름 놨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해도 되는 건지 망설였는데. ....아, 벌써 이 시간이 되었나!"
그렇게 말하더니 키타오카는 시계를 힐끔힐끔 보면서 황급히 돌아갔다. 뒤에 남아서, 왜 하루노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을까 이상하게 생각했다. 정리해고 당한 전 부하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빈번히 오는 무신경한 그에게도, 없어지니 어디로 갔을까 생각할 정도의 관심은 있었던 것일까.
위잉 하고 자동문이 열리는 기미에 야치는 당황해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책을 든 채로 카운터에 손을 댔다.
"주문 결정하셨으면....."
말이 중간에 뚝 끊겼다. 가게에 들어온 사람은, 검은 코트에 검은 스웨터 차림의 하루노였다. 하루노는 야치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곧장 카운터에 다가와 메뉴를 볼 것도 없이, "특제 도시락 하나" 라고 주문했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대답한 후에, 하루노는 카운터 옆의 긴의자에 걸터앉았다. 야치는 조리장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특제 도시락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시간 계산대를 비우는 것이 걱정이 되어 파트너인 니시다를 부르고, 흔들어도 일어날 기미도 없었다. 한가할 때라면 몰라도, 중요할 때에도 쓸모없는 남자에게 화가났다. 어떻게 할까 생각했지만, 손님은 하루노 혼자 뿐이었고, 아는 사람인만큼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안심할 수 있다. 게다가 조리장에서 가게의 입구가 보이니까, 10분 정도라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다.
도시락을 다 만들어 계산대에 돌아가니, 하루노도 벤치에서 일어났다.
"850엔 되겠습니다"
하루노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냈다.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건네려고, 확실히 하루노 손 바닥에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카운터 위에 쏟아져 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아뇨.....라고 대답하고, 하루노는 카운터 위의 동전을 주웠다. 다 줍고, 동전을 지갑에 넣고 나서도, 남자는 카운터 앞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표정이 결핍된 얼굴이라도, 멍하니 있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루노 과장님"
남자는 제정신이 든 듯이 얼굴을 들었다.
"저는 더 이상 야치상의 상사가 아니니까, 과장이라는 직함을 붙이는 것에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잘라 말해, 숨을 삼켰다. 그리고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요"
갑자기 회사로 돌아간 듯한 감각을 느꼈다. 연하의 상사는 애매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석연치 않은 어법을 싫어해, 언제나 YES 아니면 NO 의 대답밖에 듣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침묵이 흘렀다. 야치는 자신만이 직장에 연연해 있었다는 부끄러움에 가책을 받으면서도, 거스름돈도 주었는데 이 남자는 왜 빨리 돌아가 주지 않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 책은 재미있습니까?"
"예….?"
"야치상의 책이 아닙니까?"
카운터 위에 놓여진 채로 있는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데요……"
하루노는 콜록 하고 기침을 했다.
"이전에, 술자리에서 야치상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듣고서, 어떤 책일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야치는 기억이 없었다.
"그건, 순문학입니까?"
"에?"
"책의 내용 말입니다"
잘 들으면 알 이야기인데, 야치는 몇번이고 되묻고 마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뇨, 미스터리입니다. 전부터 좋아해서…"
하루노는 책의 표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저는 미스터리라고 불리는 장르를 읽어 본 적은 없지만, 흥미는 있습니다"
"예에…"
짧은 침묵이 생겼다. 남자는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야치는 서서히 그 존재를 견디기 힘들어졌다.
"내일은 쉬십니까?"
물어보니, 하루노는 "아뇨" 라고 대답한 후 "엄밀히 말하면 오늘이 되겠네요. 오늘은 목요일이고, 공휴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라고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야치자신은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목요일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밤중이신데 서두르시지 않으시니까, 휴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 뿐입니다."
"오늘도 오전 8시에 출근합니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잠자지 못해서 술을 마셨더니, 공복인것이 생각이 난 겁니다"
혀가 꼬인다...까지는 아닌 말씨가 취해 있기 때문이라고 겨우 깨달았다. 발걸음도 확실하고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었다.
"많이 마셨습니까?"
"보통보다는 많았습니다. 병을 하나 비웠으니까요"
한 병이라고 듣고 야치는 놀랐지만, 남자는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젊을 때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마셨지만, 서른 다섯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급속히 약해져, 지금은 마음이 내킬 때에 맥주 미니 캔을 하나 마실까 마시지 못할까 정도였다.
"제 말씨에, 뭔가 불명료한 점이 있습니까? "
"아뇨...."
하루노가 도시락 비닐 봉지를 손에 들었다. 돌아갈 기색에 내심 안도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맑은 남자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야치는 자세를 바로했다.
"밤 시간대로 근무를 바꾼 것은, 저 때문입니까?"
말을 얼버무리지 않는 직구(直球)에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충격이 가시고 나서, 천천히 야치는 대답했다.
"밤 아르바이트가 다쳤기 때문에, 그 대신 하는 겁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으면, 낮으로 보내 달라고 할 예정입니다"
하루노는 똑바로 야치를 응시하다가, 훗 하고 웃었다.
"알겠습니다.....그럼 실례합니다"
남자가 돌아가고 나서, 겨우 어깨 힘이 빠졌다. 의자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전에서부터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의 리듬이 맞지 않는 남자라고는 몰랐다.
이쪽의 견제(牽制)를, 상대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것을 신경쓰고 있었다는 것도.
그럴 것이면, 일부러 관여해 들어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루노의 의도는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그만두게 한 것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빈번히 상태를 보러 온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언동과 외견보다는 정이 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정이 깊은 것과 배려는 또 다른 이야기로, 야치 입장으로서는, 마음 정도만 받고, 내버려 두어 준다면 가장 고마울 노릇이었지만.
....헤어질 때의 웃는 얼굴에, 가면과 같은 얼굴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슬쩍 엿보였다. 웃을 때 만큼은, 꽤 인간다운 얼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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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呼吸(심호흡)(3)
소설 비보이 2002.11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하늘 번역
보시면 알겠지만 목하 작업 중입니다....하루노상, 속 다 보여요........히히힛
책 빌려달라는 걸로 접근하다니.....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래도 아저씨들 아기자기하게 노는게 참 재미있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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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오전3시, 한밤중에 하루노는 가게에 왔다. 그 때는 먼저 있던 손님이 있어서, 도시락이 다 될 때까지조금 기다리게 되었다.
어제 근무중에 엄청나게 자던 대학생 니시다에게 야치는 아침이 된 다음, 주의를 주었다. 근무 전에는 과음하지 말도록. 엄격하게 말할 작정은 아니었지만,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했고, 당연히 사과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니시다는 불쾌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 태도에 야치 쪽이 놀랐다. 대학교 3학년이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20살을 넘었을 것이었다. 그의 태도는 아무래도 성인이 된 남자의 태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늘은 주의를 준 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니시다는 술을 마시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근무태도는 지극히 불량해, 짬만 있으면 의자에 앉고, 야간의 휴식시간은 30분이었지만, 1시간 가까이 휴게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루노의 특제 도시락을 만들 때도, 빠른 사람이라면 5분이면 끝날 일을 질질 15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다 되었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작업 카운터에 놓여진 도시락을 받아 포장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제, 야치상이 읽고 있던 미스테리 소설을 샀습니다."
갑작스런 이야기에 거스름돈을 건네주면서 야치는 당혹했다.
"읽어 보았지만, 솔직히 별로 재미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제, 야치도 같은 책을 다 읽었지만, 속도감이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하루노의 책에 대한 감상은 마치 자신에 대한 평가와 같이 생각이 되어, 쓴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책에는 사람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흘려 버릴까 라고 생각했지만, 하루노는 그 화제에서 벗어나 주지 않았다.
"미스테리 중에서는 어느 책이 재미있습니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어서, 딱 집어 어느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래도, 추천하고 싶은 것을 가르쳐 주세요"
쳐다보는 눈은, '가르쳐줘' 라고 자신을 협박하는 것 같았다. 미스테리에 흥미가 있다면 일부러 자신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직접 서점에 가든가, 인터넷을 사용하면 얼마라도 검색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여기서 한다는 것은 껄끄러웠다.
"읽기 시작하는 것으로는....스탠더드한 것으로 에릭 오거스터의 화이트 로즈 시리즈가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뒤에서 부자연할 만큼 큰 소리로, "야치상" 이라고 이름을 불렸다. 뒤돌아 본다.
"근무중 잡담은 삼가해 주시겠습니까?"
땡땡이 치는 버릇이 있는 니시다에게, 하필이면 하루노 눈앞에서 주의당하고 말아, 쑥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라고 작은 소리로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밤 근무의 책임인 일도 그 대부분을 야치가 끝내고 있는것에도 상관하지 않고 이런 태도다. 명백히, 전날의 보복이었다.
니시다는 시치미를 떼는 얼굴로 카운터 밖에 나가더니, 어지럽혀 있지도 않은 과자의 진열 선반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공공연하게 어필하듯이.
"근무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하루노는 야치에게 사과한 후,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건가 라고 생각했더니, 과자 선반 쪽으로 걸어간다. 하루노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니시다는 뒤로 물러섰다.
선반에서하루노는 껌을 하나 꺼내더니, 옆에 비켜서 있는 니시다를 정면으로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뵈었었군요"
하루노의 말에, 니시다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네에........?"
"하지만, 저를 기억하지 못해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어제 당신은, 구석 의자에서 시끄럽게 코를 골면서 엄청 기분좋게 자고 있었으니까요"
비꼬는 말투에 니시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하루노는 굳어진 남자의 발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게다가 당신은 밖에 나오지 않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신발과 청바지는 다른 사람에게 불결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음식을 취급하는 가게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야치도 이전부터 신경쓰이던 것이었다. 니시다는 언제나 색이 바래고 구멍이 난 청바지에 조금 더러워진 신발을 신고 있다. 청바지는 헌옷이지만 값비싼 상품인 모양이어서, 가격을 묻고는 놀랐다. 아무리 비싸더라도, 더러워지고 구멍이 뚫린 옷을 '멋' 이라고 하는 감각이 야치에게는 없어서, 니시다의 옷차림은 역전의 부랑자 일보 직전이었다.
"너, 너한테는 관계없잖아!"
더듬듯이 내뱉는 남자를 하루노는 비웃었다.
"확실히 저에게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객의 의견으로서 해석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복장이 이 가게가 목적하는 바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 뿐으로, 당신이 근무 장소 이외의 다른 집단에서 입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즉, TPO를 분간해 주신다면 괜찮습니다"
빠른 말씨로 쉴새없이 말해, 니시다는 박력에 눌린 듯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뭔가 반론은?"
회의 때의 하루노의 상투구였다.
"제가 말한 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까?이상하군요. 의무교육을 마쳤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통렬한 비아냥에 니시다가 뻘개진 얼굴로 양 손을 부르쥐고, 어깨를 움츠렸다.
"시끄러워! 당신!"
분노를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 거리는 남자 앞에서도, 하루노는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워, 는 뭡니까?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으로, 제 말에 대한 대답은 되지 않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운터에서 나온야치는 일촉즉발, 팽팽한 공기가 떠도는 두 사람 사이에 억지로 끼어들었다.
"니시다상,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우선 연하의 남자에게 사과하고, 하루노를 돌아보았다.
"도시락도 식으니까, 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루노는 아직 뭔가 더 말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야치의 말에 마지못해 돌아갈 기미를 보였다. 그러면서 야치의 어깨 너머로, 니시다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의 주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 정도의 사려는 가져 주었으면 합니다"
일순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니시다가 야치를 밀어붙이고, 하루노에게 달려들었다. 밀려서 자세가 흐트러지면서도 야치는 등 뒤에서 니시다를 꼼짝 못하게 세게 죄었다.
"그만 둬!"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니시다는 고집을 부려, 움켜잡은 하루노의 상의를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야치도 그렇게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싸우려는 젊은 남자를 혼자서 막을 수는 없었다.
니시다가 날뛰어, 그 주먹이 몇 번이고 야치의 머리와 어깨를 직격했다.
"그만 두지 못해!"
거칠어진 야치의 목소리에, 니시다는 제정신이 든 듯이 얌전해졌다.
"다른 사람을 패는 따위는 당치도 않아. 그게 아니더라도, 그는 고객이라고. 경솔한 행위를 했다가는 너도 그 나름대로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 거얏!"
니시다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납득했다고 생각한 야치는, 망연한 얼굴을 한 하루노에게 돌아가라는 뜻으로, 밖으로 눈짓을 했다.
하루노는 말없이, 발길을 돌려 문에 손을 대었다. 니시다가 고개를 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앗! 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다시 하루노에게 달려 들어 멱살을 잡았다.
기습을 받은 하루노도 무저항은 아니었다. 난폭한 오른팔을 잡고, 높이 비틀어 올린다. 니시다가 "아팟!" 이라고 팔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오른 발을 걷어찼다. 균형을 잃은 남자는 그곳에서 나자빠졌다. 보기만 해도 무참했다.
"그만두지 못해....."
뒹군 니시다의 팔을 잡고 일으키니, 질리지도 않는지 남자는 다시 하루노에게 가려고 해서, 야치는 두 사람 사이에 몸을 들이밀었다.
"비켯! 빌어먹을 영감탱이!"
피할 수 없었다. 귀와 가까운 옆 얼굴을 니시다에게 몹시 맞아, 커다란 소리가 머리 속에서 울렸다. 그와 동시에 발치가 휘청거려, 야치는 등뒤로부터 과자의 진열대에 들이박고 말았다. 선반 속 내용물이 엄청나게 흐트려졌다. 참상에 니시다의 움직임도 딱 멈추었다.
"괜찮아요?"
하루노가 달려왔다. 엄청 등을 얻어맞아, 얼굴을 찌푸리면서일어난 야치는 곧 이상한 변화를 깨달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주 안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감이 멀다. 아연한 야치의 표정을 눈치챘는지, 하루노가 왼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가까운데도, 듣기 어려웠다.
시험삼아, 야치는 왼쪽 귀를 막았다. 침묵은, 밤인 탓도, 거북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왼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날, 일이 끝나고 나서 야치는 병원에 갔다. 니시다도 확실히 사과해 왔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라고 신경써서 태연한 척을 했지만 내심 ' 이대로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으로 참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니, 왼쪽 고막이 터져 있다고 했다. 니시다에게 귀를 맞아, 뚜껑을 덮고 있는 듯한 상태에서 압력이 가해져, 얇은 고막이 터진 것이다.
고막이 터졌다고 하더라도, 바늘만큼의 작은 구멍이 생긴 것,전체가 터진 것 등 여러가지가 있는 모양이었지만, 야치의 경우는 크게 터진 케이스였다.
고막은 재생하니까, 원래처럼 들리게 됩니다...라고 듣고는 한시름 놓았다. 다만 구멍이 커서, 나을 때까지 반년 가까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온 때는 오후 2시로, 돌아옴과 동시에 자고 싶어졌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산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우선 조금 눕자 라고 생각했을 때, 전화가 울렸다.
누구에게도 전화가 올 일은 없을 터였다. 혹시 니시다일까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하루노였기 때문이다.
"하루노입니다. 주무시고 계셨던 것은 아닙니까?"
하루노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은 또렷또렷한 말투는 아니었다.
"아뇨....괜찮습니다"
"가게에선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그를 도발했기 때문에, 야치상을 다치게 하고 말아서......"
확실히 계기는 두 사람의 싸움이었지만, 원인을 따지자면, 자신이 니시다에게 근무태도를 주의를 준 것이기 때문에, 하루노에게 잘못은 없었다.
"하루노 과장님 탓이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긴장감을 떠올린 채로, 서두르듯이 하루노가 말했다.
"그래서.....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귀는....."
조금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조금 잘 안들리기는 해도, 조만간 나을 것 같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어투에서 한시름 놓은 듯한 기색이 스며 나왔다. 당사자도 아닌데, 걱정시켰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까지 거시게 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괜찮으니까요....."
그는 근무중일 터였다. 오래 거는 전화는 폐가 될 것 같아 어서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편에서 걸어온 것인 이상, 이쪽에서 "그럼,또" 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뭔가 사례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꺼내어, 야치는 수화기를 손에 든 채로 당황했다.
"사례 따위, 신경쓰지 말아 주십시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하루노 과장님의 탓이 아니기도 하고, 귀도 그렇게 심각한 것은 정말 아니니까요. 그 성의만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필사적으로 사양해도 " 이대로라면 제가 편하지 않습니다" 라고 상대편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밀어부치는 데 강한 하루노에게 꼼짝 못하게 될 것 같아, 야치는 실례임을 알면서도 "정말로 성의만으로도 괜찮으니까요. 전화 감사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자기 말만 하듯이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루노와 이야기를 한 것으로 잠이 확 달아나 버린 야치는 머리도 감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하기 위해 귀마개를 하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귀도 심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쉴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또 한밤중에 일을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 두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했다.
그때부터 외출할 1시간 전까지 잤지만, 누구에게도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밤 11시에 눈을 떠서 준비를 하고 밖에 나간다. 밖은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다. 자전거를 타니 손이 곱아들어,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의 위화감을 강하게 느꼈다.
가게에 가니, 드물게 주인이 와 있었다. 왜일까 라고 생각하고 물으니, 대학생 니시다가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그 대신이라고 말했다.
가게의 에이프런을 걸치면서, 30대 중반의 가게 주인은 "요즘 젊은 녀석들은......" 하고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책임감이 없단 말야. 싫으니까 그만두겠어, 로 끝난다니까. 거기에다 "급료는 일급으로라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온다구. 뻔뻔스럽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치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어제 마지막에 니시다는 사과했다. 일부러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야치는 화내지 않았고, 화낼 기분도 아니었다. 하지만 주위의 민폐를 생각하지도 않고 갑자기 그만두고, 다치게 한 상대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묻지도 않은 것에서 니시다의 사람 됨됨이가 나타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 야치 상"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야치는, 이름을 불린 것을 깨닫지 못했다. 게다가 왼쪽부터여서 운이 없었다.
"야치 상, 들리는 거얏!"
짜증난 목소리에 제정신이 들어, 당황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왼쪽 귀 상태가 나빠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가게 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친 거야?"
어제 가게 안에서, 니시다에게 맞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구르다가 부딪치고 말아서....."
가게 주인은 흐응.....하고 중얼거리고 "뭐, 조심해" 라고 야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날은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야치에게 신경이 쓰였던지, 계산대를 맡긴 것은 주인이 휴식할 때 뿐이었다.
밤이 밝아, 오전 7시에 야치는 낮 아르바이트와 교대했다. 에이프런을 벗고, 뒷문으로 밖에 나가서, 종업원 전용의 자전거 주차장에 놓아 두었던 자전거의 체인을 풀었다.핸들도 안장도 얼음같이 차갑다. 이제 슬슬 장갑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길에서 큰길로 나왔다.
가게 앞에 검은 롱 코트의 샐러리맨이 보였다. 상대편과 이쪽이 거의 동시에 서로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하루노가 가까이 오는 듯해서, 야치는 자전거를 멈추었다.
"안녕하세요."
하얀 숨을 내뿜으면서, 하루노는 야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제, 도중에 전화를 끊는 짓을 한 거북함을 생각해 냈다.
"귀는 괜찮습니까?"
"에에, 아프지도 않고, 들리지 않는 것 뿐이니까요. 오른 쪽은 괜찮으니까, 생활에 지장도 없고. 걱정 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루노는 뭐라 말하기 힘들다는,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손에 든 종이 봉투를 야치에게 내밀었다.
"사례라고 말하긴 뭣합니다만....."
야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받을 마음은 없었다.
"그런, 신경쓰지 말아 주세요. 저도 마음이 불편하니까"
야치도 사양했지만, 하루노도 물러서지 않았다. 길 한가운데에서, 받으라거니, 받지 않겠다거니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하루노가 "받아 주지 않으신다면, 직장에 늦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봉투를 야치에게 떠맡겼다.
반사적으로 받아버리고 말아, 돌려주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하루노가 받지 않는다. 하루노는 시계를 보더니 야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역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쫓아가기까지 해서 돌려주는 것도, 오히려 실례가 될 듯했다. 결국 받을 것이라면,서툴게 사양하지 말고 쉽게 받아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집에 돌아와서, 야치는 봉투를 열었다.연 순간,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캔에 들어 있는 커피 원두 세트였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휴식시간 때마다 자주 커피를 마셨었다. 하지만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일부러 자신이 사와서 마시지는 않게 되었다.
좋은 향기를 맡고 있자니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원두는 볶아져 있으니까, 드립퍼와 필터가 있다면 마실 수있다. 이전에 집안에서 봤던 적이 있던 것 같아, 부엌 속을 뒤지니, 찬장 서랍 속에서 누렇게 된 커피 필터와 드립퍼가 함께 놓여져 있었다.
인스턴트와는 달리 손이 더 가지만, 그만큼 완성된 커피는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맛있었다. 머그컵을 손에 든 채로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모친이 있을 때에는 손질되어 있던 정원도, 지금은 잡초가 자라 무성하고, 나무들의 잎도 떨어져 한산했다.
가까운 곳의 풀숲이 흔들리고,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툇마루에 앉은 야치의 발에 몸을 비벼대고, 무릎 위에 올라온다.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야치는 하루노의 일을 생각했다. 그런 소란이 있은 후에는 더이상 가게에 오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끝이 나는걸까....라고 생각하면서 겨울의 말라비틀어진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밤 근무로 바꾸고 나서부터, 주말의 쉬는 날이 많아진 야치는, 차가운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거실에서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오전 중에 가가운 서점에 나가 시리즈물의 추리소설을 5권 샀다.
1 편째를 다 읽고 나서, 만족감과 비가내리는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할 때에 전화가 울렸다. 그저께, 숙부의 상태가 나쁘다고 종형제에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혹시 하고 당황해서 전화를 받았다.
"하루노입니다"
이름을 고하는 상대의목소리에 다른의미로 긴장했다.
"아아, 잘 계셨습니까. 전번에는 감사했습니다."
사례로 커피를 받은 것은 그저께의 일이었다. 그 때부터 감사의 말 한마디도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지금에 와서야 깨달았다.
"아뇨....그때부터 귀 상태는 어떻습니까?"
걱정해 오는 것일까 생각하니, 기쁘다고 조금 생각한 반면, 이상했다. 함께 일하고 있을 때에는, 그다지 정이 있는 타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 변화는 없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처음엔 들리지 않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것에도 익숙해져서요..."
"그렇습니까....."
짧은 침묵 동안 생각했다. 신경써 주는 것은, 배려라기 보다도, 역시 죄악감의 반영인 것일까 하고. 그렇게 생각한 것에 야치의 마음도 놀랄 정도로 슥 차가워 졌다.
"귀 일이라면 신경써주지 말아 주세요. 정말, 하루노 과장님이 신경쓰실 일은 아니니까요......"
"이전에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루노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잘 들렸다. 전화 너머인데도 명확했다.
"저는 더 이상 야치 상의 상사가 아니니까, 과장이라는 직함을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더불어 필요 이상으로 경어를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수화기를 손에 든 채로, 야치는 자신이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렇군요."
쓴웃음을 짓는 자신이 비굴한것에 넌덜머리를 내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일 도리가 없었다.
"이전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아서...."
침묵으로, 또 미묘한 틈이 생겼다.
"찾아보았습니다만, 야치상은 고막이 터진 것입니까?"
"아, 네"
"고막이 재생할 때까지, 3개월에서 반년이 걸린다고 하는군요. 그 사이, 불편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형편이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저에게 알려 주세요."
쓸데없는 걱정을 시킬 것 같아 야치는 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하루노는 '이렇지는 않을까' 고 추측한 것이겠지.
"정말 괜찮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만약 귀가 잘 안들리는 것으로 귀찮은 일이 생겨도, 틀림없이 전화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겉치레 말을 곧이 듣는 나이도 아니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신이 뭔가 이야기를 하는 쪽이 나을까 라고 생각하는 한편, 하루노가 전화를 끊지 않을까 하고 은밀히 빌었다.
"책을 읽었습니다"
불쑥 전화기의 상대편이 말했다.
"에릭 오거스터의 화이트 로즈 시리즈 말입니다."
자신이 추천한 사정도 있고 하니, 감상을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땠습니까?"
"그건 재미있었습니다. 도중에 어느 정도의 복선은 읽을 수 있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 속도가 붙어서, 끝까지 한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책에는 난색을 표한 남자가, 재미있다고 말한 것에 우선 안심했다.
" 그 시리즈는 차례차례 사건이 일어나니까, 읽을 때에 질리지 않습니다. 확실히, 하루노.....상의 말처럼 복선은 읽을 수 있지만, 독자에게 그것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 것도 작가의 솜씨인 것 같습니다."
"솜씨....라고요?"
야치는 어깨를 움츠렸다.
"미스테리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니까...알아내는 즐거움도 확실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화의 건너편에서 잠잠해진 남자는, 잠시 후에 "조예가 깊네요" 라고 중얼거렸다.
"야치상은 이 장르의 책을 많이 읽으시는 모양입니다"
"독서가 유일의 취미이니까요"
"전에도 말했었지만, 저는 야치상이 책을 읽는다고 들었을 때, 멋대로 순문학일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미스테리에다가, 외국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문득, 야치는 하루노가 자신에게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내키면, 순문학도 읽습니다. 단지....일본 순문학이라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스테리를 많이 읽게 됩니다. 외국작가가 좋은 것도, 스케일이 크고 그것에 쓰여 있는 것은 외국의 생활로, 자신의 생활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은 비일상을 의미합니까?"
"독서는 제 마음 속에서는 커다란 오락입니다. 현실을 생각나게 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도 되지 않는 세계관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면 좋다고 할까요....."
"지금 생활에, 뭔가 불만이 있습니까?"
스트레이트한 질문에, 대답이 궁했다. 육체적인 일, 금전적인 일, 장래에의 막연한 불안을 말한다면 끝이 없었다.
"아주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건 독서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것이 좋은 것은 예전부터였으니까요"
그렇습니까...라고 하루노가 대답을 한 후에 몇 번째인가의 침묵이 찾아왔다. 야치는 가만히 전화기의 푸시 폰의 문자를 바라보았다. 애매함이 없는 확실한 어투는 힘들다...지치게 된다.
"화이트로즈의 시리즈는 대부분 다 읽었지만, 2권만은 아무리 해도 찾지 못해 읽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라고 흘려버려도 되었지만, 그것도 묘하게 흥이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목은 아십니까?"
"'절름발이 남자' 하고 '쌍둥이의 기억' 입니다"
"그것이라면 저희 집에 있습니다.....빌려 드릴까요?"
"괜찮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빌려준다고 말했지만, 어떻게 해서 건네줄까 생각하고 있자니, "지금부터 야치상은 외출하실 일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아뇨....."
"빌리러 가도 괜찮겠습니까?"
"엣, 집까지 오시는 겁니까?"
"빨리 읽고 싶어서요. 폐가 된다면 다음번에 빌리겠습니다만."
민폐 여부를 떠나, 그렇게 물어보니 "안돼" 라고 말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저희 집은 아십니까? 큰 길에서 들어간 곳에 있어서, 찾기 힘든데요...."
"아는 사람이 도우야마에서 살고 있어서, 큰길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서, 다시 전화 드릴테니, 길을 가르쳐 주세요."
"아, 네"
"그럼 나중에 다시 걸겠습니다"
전화는 끊어졌다. 야치는 평온할 터였던 일요일 오후가 소란스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루노가 야치 집에 찾아 온 것은, 전화를 하고 나서 1시간 정도 걸려서였다. 초인종 소리에 야치는 당황해서 샌들을 꿰어차고,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목제 문 건너에서, 검은 스웨터에 짙은 색의 청바지, 그 위에 베이지 색의 코트를 입은 하루노가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
"갑자기 와서, 죄송합니다."
"아뇨....어서 들어오세요"
야치는 하루노를 집의 부지 안으로 맞아들였다. 정원에 한 걸음 들여 놓았을 때부터, 하루노는 이쪽이 무안해질 정도로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하루노가 오기 전, 야치는 많이 생각했다. 본심을 말한다면, 현관 앞에서 책을 건네고, 그 대로 돌아가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하루노는 책을 빌리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온 것이고, 게다가 타이밍도 나쁘게 오늘은 비마저 내리고 있다. 집에 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더러워서.....죄송합니다"
집에 들이고 나서, 거실에 안내했다.
"자, 앉으세요"
좌식 탁자 앞을 가리켰다. 하루노는 손에 든 작은 종이 봉투를 야치에게 건네었다.
"이걸 받으세요"
"아, 아뇨.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사양했지만 억지로 들여밀어져, 야치는 '감사합니다' 고 말하고 나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봉투 입구로부터 갈색의 과일 같은 것이 보였다. 밤인가 라고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더 둥근 껍질이 조금 갈라져 있었다.
"이건 뭡니까?"
"라이치(중국 남부에서 나는 과일이라네요. 양귀비와 관련이 있는.....^^)입니다. 좋아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겁니까?"
"껍질을 벗기면요"
하아...라고 중얼거리고, 야치는 봉투 안의 갈색 과일을굴려 보았다.
"취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좋아해서요. 야치상은 드신 적이 없습니까?"
"에에...아, 어서, 앉으세요"
거실에 하루노를 남기고 야치는 부엌에 들어갔다. 물을 끓이고 커피를 준비한다. 이 전에 타인을 집에 들인 것이 언제 적 일이었던가 생각하는 동안, 주전자의 물이 넘쳐 흘러, 서둘러 가스를 껐다. 라이치를 접시에 담았지만, 껍질을 벗겨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라도 괜찮을까 알수가 없어서, 결국 커피와 라이치를 담은 접시와 과도를 쟁반에 담아, 거실로 돌아갔다.
커피를 내놓으니, 하루노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틈을 두지않고, 손을 뻗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나서, 휴우 한숨을 쉰다. 컵을 양손으로 감싼 모양에, 밖은 그렇게 추웠던 것일까 생각했다.
"그 커피, 하루노상에게 받은 것입니다. .....맛있더군요"
"자주 가는 커피점의 오리지널 브렌드인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이야기가 끊어져, 좌식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말이 없었다. 야치는 "저기, 이거 드세요" 라고 벌써 이름도 까먹은 갈색 과일을 권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손을 댈 기미는 없다.
자신이 먹지 않으면, 먹기 힘든 걸까... 라고 생각해서 야치는 한 개를 집었다. 손에는 집었지만, 어떻게 공략하면 될까 알수가 없다. 껍질이 딱딱한 것이 불안을 부채질했다.
"그렇게 신기합니까?"
야치는 고개를 들었다.
"시기가 되면 과일 가게에도 자주 나와 있고, 슈퍼마켓에도 볼 수 있는데요."
"아, 아뇨. 저기....과도로 껍질을 깨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나이프 따위는 필요 없어요. 껍질은 손으로 깰 수 있습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는 요령으로 하면요"
들은 대로 해 보니, 재미있게도, 쩍 껍질이 벗겨졌다. 안에서 나온 것은 하얀 포도와 같은 과실. 쭈뼛쭈뼛 입에 머금었다. 포도보다도 탄력이 있는 과실은, 꽉 깨물으니, 설탕물 같이 달았다.
"어때요?"
야치가 다 먹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노가 물어 왔다.
"달콤하네요"
"단 것은 싫어하십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이건 세탁용 풀 냄새가 나네요"
하루노가 슥 미간에 주름을 모았다.
" 세탁용 풀......이라고요?"
"아, 그건...나쁜의미가 아니고, 옛날 있었잖아요. 이렇게, 봉투에 넣은 세탁용 풀이. 제 어머니는 자주 사용하셨는데...."
"전 본 적이 없습니다"
무연한 얼굴로 단언당해, 야치는 애매하게 웃었다.
" 이젠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꽤 옛날 이야기니까"
먹은 감상을 그대로 입에 담은 것뿐이없지만, 하루노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쓸데없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거북함을 넘겨버리며, 야치는 하나 더먹은 후에 일어났다.
"책을 갖고 오겠습니다"
거실에서 복도에 나간것 뿐으로 한 시름 놓았다. 같이 있으면 묘하게 긴장한다. 침실로 하고 있는 6죠의 방에 들어가 서가에서 화이트 로즈 시리즈를 찾았다. 곧 찾았지만, 서가의 책을 정돈해 본다든지, 배열 상태를 바꿔 본다든지 하면서 미적미적 하고 있을 새, 역시 너무 기다리게 한 건가 하고 생각해 거실로 돌아왔다.
앉아 있는 하루노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고양이를 키우고 계시는군요"라고 들었다.
"고양이?"
보니까, 하루노 무릎 위에서 얼룩무늬 고양이가 둥글게 움츠리고 있었다. 전부터 사람을 잘 따랐지만, 질릴 정도로 경계가 없다. 벽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고양이가 저녁 식사를 조르러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빨랐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노는 것을 빨리 집어치운 것일지도 몰랐다.
" 꽤 무겁지요? 쫓아버려도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쭐거려서 언제까지고 올라앉아 있으니까요"
하루노는 고양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어색한 손놀림은, 그다지 동물에 접하는 것이 익숙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이름은 뭐라고 합니까?"
"짓지 않았습니다, 라고 해도......제가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요"
하루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고양이는 마치 자신의 집 처럼, 당당히 들어오던데요?"
"아침저녁에 먹이를 주니까요"
"먹이를 주고, 집 안에 있게 해도 키우는 것이 아닌 겁니까?"
새삼 듣고 보니 그것도 이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키우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제 집은 별장인 모양입니다"
이상한 말을 할 작정은 아니었지만, 하루노는 뿜어 내듯이 웃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깨를 떨면서 웃는다. 무릎위의 고양이가 놀라서, 뛰어 내렸다.
언제나 무표정하고, 웃고 있는 기색이 있어도 입가 뿐. 그런 식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몹시 웃는 것은 처음이어서, 야치는 솔직히 놀랐다.
그후 곧 하루노는 책을 한 손에 들고 빗속에 돌아갔다.
야치는 거실의 테이블 위에 남아 있는 딱딱한 껍질의 잔해를 치우면서, 언제나와 똑같을 것이었던 일요일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深呼吸(심호흡)(4)
2002.11 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창 위 제목이 가슴 시리게 하는군요. 대구 지하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전 하루노상이 공이라고 믿습니다~!(주장)
아마도 이번 이야기에서 공이냐 수냐 전말은 밝혀질 것 같지만.....흐흐
(참고로 공이라고 믿는 분도 수라고 믿는 분도 만족하실 듯)
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선 하루노상이 공인 것 같은데요.
우선 카리스마가......야치 상보단 하루노상이...--;;
아뭏든 이번에 하루노상이 긴장할 만도 합니다. 다된밥에 재뿌린다는 말이 들어맞는 이야기.
앞으로 2~3회로 심호흡은 끝납니다. 한번에 빨리 그리고 많이 연재하니 이렇게 신속하게 끝나는군요. 다음엔 잠깐 단편은 접어놓고 윤리제로 비열수와 집착연하공의 이야기, 게이한텐 절대로 어린애 과외시키면 안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달콤한 생활'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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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을 하는 것은 다음 아르바이트를 찾을 때까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니시다까지 그만둬 버려, 다른 보충도 없이 야치는 질질 야간전문의 아르바이트가 되어 갔다. 쉬는 것도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로 패턴이 고정되어, 점장은 처음에 말했던 것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 했다.
낮 동안 충분히 자서, 몸 전체에 리듬을 만들어 놓는다면, 밤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일의 내용으로 봐서는, 손님이 적은 만큼 밤 쪽이 편했다.
밤 생활의 리듬과 같을 정도로 야치의 속에서 매일의 패턴이 된 것은 일요일의 하루노와의 만남이었다.
하루노에게서부터는 1주일에 2번 정도 전화가 온다. 전화의 내용은 귀의 상태를 묻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책의 이야기였다. 하루노는 일요일 오후, 꼭 야치의 집으로 찾아왔다. 빌려간 책을 돌려주고, 또 새 책을 빌리기 위해. 그리고 2~3권의 책을 가지고 돌아가, 전화로 감상을 이야기해 온다. 처음엔 빌려온 책을 주저도 없이 솔직히 "전 재미없었어요" 라고 들으니,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몇 번이고 계속되니 천천히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니, 가끔 나오는 "재미있었습니다" 란 말에 쾌감을 느껴, 다음도 그렇게 듣고 싶어서 책을 고르는 데 정성을 쏟았다.
일 관계를 떠나, 이편이 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루노와의 교제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겨우 야치는 연하의 전 상사라는 직함을 신경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하루노라는 남자를 볼 때에, 아무래도 '상사' 라든가 '유능' 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딘지 먼 느낌이었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야치는 하루노를 연하로 까다롭지만, 솔직하고 재미있는 남자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20년간 회사에 근무해, 겉치레 말은 상식이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온 야치는, 그것들을 일절 배제한 스트레이트한 말투에 상처받는 일도 많이 있다. 하지만 거꾸로, 어투에만 익숙해 지면,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다른 사람이 오니까 야치는 방을 부지런히 치우게 되었다. 그것 정도도 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혼자라면 아무래도 빼먹기 일쑤였다.
황폐해진 정원도, 마음이 내키면 조금씩 손질하게 되었다. 그것도 하루노에게 "이 집은 정원이 있어서 좋네요. 전 어렸을 때부터 맨션에서 살아서...." 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부러워한다고 생각하니 아무 생각없이 보아오던 정원에도 애정이 솟아, 완전히 황폐해져 버린 채로 두기에는 부끄러워졌다.
하루노는 야치의 집을 방문할 때, 언제나 뭔가 선물을 들고 왔다. 그것은 책을 빌리는 데 대한 하루노 나름의 신경 씀인 듯해, 처음에는 사양하던 야치도 지금은 무엇을 갖고 올까 기대하게 되었다. 추운 날이 계속되고 나서부터는 화과자가 많아지고 있다.
1월도 끝날 무렵의 일요일, 야치는 한낮 가까이까지 자고 나서, 일어났다. 가볍게 청소하고 나서 점심밥을 먹는다. 천천히 있다 보니, 슬슬 하루노가 올 시간이 되어, 고다츠가 있는 거실에 석유 스토브를 넣고 방을 덥혔다.
오후 2시가 되어도 하루노는 나타나지 않아, 오후 3시가 지나 오늘은 오지 않는 걸까 생각하고 있자니, 현관 앞에서부터 "실례합니다" 고 하루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들어오세요."
"우선 이걸"
넘겨 받은 봉지는 평상시보다 무게가 있었다. 구두를 벗고 있는 남자에게 "밖은 춥지요?" 라고 물어보니 "춥습니다"라고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 와도 여기는 따뜻해"
거실에 들어온 하루노는 코트를 벗으면서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현관은 어두워서 잘 몰랐지만, 불 아래에서 보니, 몹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눈도 붉다.
"피곤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물으니, 하루노는 쓴 웃음을 지었다.
"별로 잠을 자지 못해서......"
"무리해서 오시지 않아도, 집에서 쉬시는 편이 좋았을 텐데요."
예상 밖으로 강한 시선이 이쪽을 본다.
"여기에 오고 싶었으니까 온 겁니다. 야치상도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오고 싶었다고 하는 것도 진심이겠고, 자신이 언제나의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밝히니, 쑥스럽다. 신경쓴 자신의 말이 겉치레로 생각된다.
냐옹 하고 우는 소리와 함께 장지문을 긁는 소리가 났다. 막 앉은 참이었는데도 하루노는 서둘러 일어나, 문을 열었다.
추웠기 때문에, 마치 집고양이처럼 밖에 나가지 않게 된 얼룩 고양이가, 하루노에게 기대어 부벼온다. 하루노는 기쁜 듯이 고양이를 안아 올려, 안은 채로 고다츠 안에 발을 집어 넣었다. 언제나 입고 있는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검은 스웨터가 고양이 털 투성이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고 쓰다듬었다.
고양이와 놀기 시작한 하루노를남기고 야치는 일어섰다. 부엌에 가서, 언제나처러 물을 끓인다. 오늘의 선물은 양갱이었다. 속을 뒤집으니 제조원이 '오사카'라고 되어 있다. 출장갔다 온 것일지도 몰랐다.
양갱과 커피를 쟁반에 담아 거실에 돌아오니, 하루노는 다다미 위에 누워, 등을 둥글게 하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양이까지 하루노의 가슴 언저리에서 둥글게 말고 있었다.
지금까지 집에 왔었어도, 결코 단정치 못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남자였기 때문에 더욱, 긴장감이 풀어진 모습은 의외였다. 자는 얼굴은 생각외로 어리고, 그 얼굴만 본다면 수십인의 부하를 수족처럼 자유자재로 부리는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피곤했을 거라고 신경을 써서, 말을 걸지 않았다. 야치는 천천히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몇 권인가의 책을 갖고 와서는, 좌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혼자서 푹 자게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떴을 때, 혼자라면 하루노가 외로워할 것 같았다. 자신이라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야치는 방을 나가지 않았다.
하루노가 잠들고 말아서, 상황적으로는 혼자서 보내는 오후와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였는데도, 이상하게도 외롭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루노가 눈을 떴을 때는 저녁 6시를 넘겨서였다. 자고 있는 것에 질려서 어슬렁어슬렁 집안을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먹이가 먹고 싶다고 울기 시작한 소리에 일어났다.
깨었을 때의 그의 동요하는 모습은, 보고 있어도 이상했다. 부스럭 부스럭 한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튀어오르듯이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둘러보았다. 안경을 벗고 눈을 세게 문지르다가, 손목시계를 보고 더욱 놀랐다.
"제가 자고 있었습니까......아니, 자고 있었군요. 다른 사람 집에서.. 죄송합니다."
아뇨, 라고 야치는 웃었다. 그러니 하루노의 얼굴은 쑥쓰러운 듯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 앞에서 낮잠 따위는 잔 적이 없었는데..."
"피곤하셨나보네요"
언제까지고 잤던 것을 말했더니, 하루노는 더욱 거북하게 느끼는 듯해서, 야치는 화제를 바꾸었다.
"이제 꽤 늦었으니까..."
"그럼,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황급히 얼어서는 남자가 오해한 것은 일목요연하여, 야치 쪽이 당혹했다.
"저기,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루노가 지그시 야치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입니까?"
확실한 인품에 호감을 가진 반면, 명확한대답을 요구하는 것에 당혹한다. 확실히 말하는 것보다, 살펴 주었으면 하는 인간관계에서 보낸 야치에게 있어서는, 하루노와의 대화는 심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배가 고프니까, 혹시 하루노상도 마찬가지라면 같이 저녁을 먹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만"
표정이 없는 하루노의 얼굴이.....요즘은 익숙해진 탓인지 약간 정도 그 변화를 눈치 채게 되었지만....기쁜 듯이 웃음을 떠올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좋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무얼 먹을지 정한 것은 좋았지만, 밖에 나갈까 시켜 먹을까 야치가 망설이고 있자니, 하루노가 "밖에 나가는 건 추우니까, 시켜먹는 것이 낫겠습니다" 고 확실히 주장했다.
근처의 가게에서 라면을 두 사람 분 주문하고, 거실에 돌아왔다. 집에서 주문 따위는 거의 10년 만이었다. 하루노는 눈을 뜬 다음부터도, 고다츠의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인상은 없었기 때문에, 이상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집에 왔었어도, 한 시간도 오래 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오래 같이 있었던 것은 처음일런지도 몰랐다.
"저의 집은 맨션에 널판지였기 때문에, 고다츠에서 생활한 적이 없었습니다"
"헤에..."
야치는 고다츠의 위에 팔꿈치를 댔다.
"빨리 양친이 이혼하고, 저는 어머니에게서 자랐지만, 그녀는 이른바 캐리어 우먼의 선두여서, 여성복 디자이너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청 바빠, 자식에게 마음 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 다 제쳐놓고서라도 일이 최고라는 건, 어린애 마음에도 굉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생활 스타일을 전부 서양식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야치는 "네에..."하고 맞장구를 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해외 대학으로 갔지만, 생활하는데 있어서는, 언어 이외의 생활습관으로 곤란한 적은 없었습니다.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어머니가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자기 주장이 강한 Yes No 가 확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생긴 친구가 사귀기 쉬웠을 정도입니다. 28살에 일본에 돌아왔습니다만, 그 때는 일본인이 애매한 것에 꽤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애매한 일본인의 대표인 듯한 느낌이 들어, 야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다다미에서 생활은 하는 것은 일어선다, 앉는다는 동작으로 필요 이상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합리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경원하고 있었지만, 야치상의 집에 실례하고 보니, 새삼 일본가옥의 장점을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어쨌든, 집을 칭찬하는 결론으로 다다른 듯했다.
"저는 양식이나 일본식이라는것에 그다지 연연한 일은 없군요. 여기는 태어나서 자란 집이기도 하고"
문득, 하루노가 눈을 내리깔았다.
"저는 한 장소에서 오래 살아 본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싫어해서, 곧 싫증내고 말아서, 3년 정도 간격을 두고 이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가 내가 돌아갈 곳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에 망설입니다. 저는 확실히 여기라고 말하고 돌아갈 장소가 있는 야치상을 부럽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사는 것을 당연시해 온 야치는 하루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일에 관해서는 완벽한 남자도 어딘가 마음을 쉴 장소를 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지금도, 3년 마다 집을 바꿉니다. 이사했다고 연락이 올 때마다 또인가 하고 넌덜머리를 냅니다."
"....아버님과는 연락하고 있습니까?"
하루노가 고개를 갸웃했다.
"헤어진 아버지 말입니까? 뭐....만나 본 일도 없기 때문에. 이혼의 원인이 아버지의 바람기였기 때문에 모친에게 "그 형편없는 녀석" 이라고 들으면서 자란 탓인지, 부친이 그립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주문한 라면을 거실에 들여 놓자, 하루노가 조금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먹고 있자니, 좋은 냄새에 끌려 왔는지 고양이가 거실로 왔다. 하루노에게 자꾸 몸을 비벼대며, 더 달라는 듯이 운다.
처음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지만, 나중에는 라면 속에 있는 것을 꺼내더니, 손바닥에 얹고 고양이에게 주었다. 고양이에게 손으로 먹이를 준다는 그런 사소한 것에도 기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식사 후에 하루노는 야치의 장서를 보여 달라고 말해 왔다.
"언제나 방 속에서부터 책이 나오니까, 그게 신기했답니다"
그렇게 듣고, 보여줘서 곤란할 것도 없지 않을까 생각해, 침실로 쓰고 있는 6죠의 방에 데리고 갔다. 책이 꽉차있는 서가를 하루노는 흥미깊게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편 책은 오래되었지만,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몇번이고 다시 읽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왼쪽 귀에 욱신 하고 통증이 느껴졌다. 눈썹을 찡그리고, 반사적으로 왼쪽귀를 눌렀다.
"귀가 아픕니까?"
눈이 날카로운 남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 가끔요. 그래도 대단한 것은 아니니까..."
그때까지의 온화한 공기가 일변해서, 하루노는 무서운 얼굴로 야치를 노려보듯이 보았다.
"언제부터 아팠습니까?"
" 아프다고 할까....조금 화농해 있는 듯한 것 같고...."
하루노의 표정이 더욱 무서워졌다.
"병원에는 갔습니까?"
"에에, 뭐. 자기관리가 조금 부족한 건지, 몇 번인가 염증이 나 버려서..."
고개를 숙이고, 곰곰 생각하는 표정을 보인 후에, 하루노는 고개를 들었다.
"실례입니다만, 야치상이 다니고 있는 병원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렇게 물으니, 대답에 궁했다.
"뭐, 상냥한 선생님이신데요..."
"상냥하다, 만으로 낫지는 않잖아요"
엄격한 목소리로 꾸짖어, 야치는 단번에 전의 직장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연락해서 물어 보겠습니다."
"아, 그래도..."
"좀더 나은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습니까?"
대답하지 못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하루노가 '실례합니다' 고 방을 나간 후,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돌아온 하루노는 "내일도 낮에는 쉬시는 거죠" 라고 야치에게 확인을 받았다.
"아는 사람의 지인입니다만, 믿을 수 있는 의사인 것 같습니다. 밤에는 일이 있을 테니까, 오전 중에 예약을 넣어 주었습니다. 아침에 처음으로 진료받을 수 있게 손을 써 주었다고 하니까, 시간에 늦지 않게 갔다 와 주세요."
건네받은 메모에 기입되어 있는 것은 역의 가까이에 있는 커다란 종합병원이었다. 평판이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긴 것으로도 유명했다. 연줄이 없었다면, 아무래도 아침 처음으로 진료받을 수는 없었겠지.
하루노가 자신을 생각해서, 손을 써준 것은 알았지만, 야치는 순순히 고맙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제멋대로 해서, 기분을 상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저도 이 일에 관해서는 물러 설 수 없습니다. 다친 것에는 조금이나마 저도 관여되어 있으니까요. 참견할 정도의 권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하루노상은 관계없다고 몇 번이고 말했잖습니까"
조금 고집을 부려, 야치는 저항했다.
"저는 당신이 걱정입니다. 다치게 하고 말았다는 부담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빨리 나아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귀가 부자유한 생활은 저는 상상되지 않지만, 그것이 불편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만약 야치상이 제 심정을 헤아려 준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나아서 저를 안심시켜 주세요"
곧장 감정을 부딪쳐 와서, 야치는 숨막힘 조차 느꼈다.
"...알겠습니다. 말씀을 고맙게 받아들여서, 내일 진료를 받겠습니다."
아직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응어리를 눌러 버리고, 대답하니, 하루노는 안심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 후 곧, 하루노는 돌아갔다. 혼자가 되니, '아이고 살았다' 고 내심 생각한 반면, 방이 갑자기 휑하니 넓어진 것처럼 느꼈다. 시켜 먹은 접시를 닦으면서, 이번엔 하루노가 책을 빌려 가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빌려 가진 않았지만, 웬지 다음 주도 하루노는 집에 놀러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엄청나게 추웠다. 야치는 꽤 전에 샀던, 몹시 무거운 울 코트를 입고, 자전거로 병원에 갔다. 진료전이었는데도 소문대로, 병원의 대합실은 많이 붐비고 있었다.
진료가 시작되니, 처음 번에 이름을 불렸다. 야치를 진료해 준 사람은 자신보다도 나이가 젊은 30 전후의 남자의사였지만, 말하는 태도가 정중해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
결국 염증이 나 있어 고막의 재생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우선 염증을 낫게 하기 위해, 귀 속을 소독하고 항생물질의 물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귀에 절대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머리를 감을 때는 특별히 주의하라고 다짐을 받았다.
진찰도 끝나 야치가 진찰실을 나오려고 하는 순간, 입구에 있던 커텐이 열렸다. 백의를 입은 키가 큰 남자가 안에 들어온다. 연령은 30대 중반 전후, 하루노와 같을 정도로 보였다.
"왔어?"
진찰한 의사가 힐끗 야치에게 눈짓을 보낸다. 그 시선을 따라, 남자가 야치를 보았다. 과장될 정도로 놀란 표정을 보인 후에 남자는 싱긋 웃고는 야치에게 오른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사카구치라고 합니다. 하루노랑 아는 사이시라고요..."
"신세를 졌습니다. 무리한 것을 부탁해서 죄송합니다"
아뇨,하고 붙임성있게 말하는 남자는 무표정한 하루노와는 대조적이었다. 진찰실을 나온 후에도 사카구치는 야치의 옆에 따라왔다. 그리고 인적이 끊긴 곳에서 갑자기 " 그 녀석은 리버서블이니까 즐겁지요" 라고 말을 걸어 왔다.
(* 리버서블(reversible)....업계(?) 용어로 공수 둘다 가능....이란 뜻이겠지요..^^)
야치는 발을 멈추었다. 남자가 갑자기 허물없는 말투로 말을 걸어오는 것에도 위화감이 있었고, 리버서블이라는 의미도 알 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뭔가 성격적인 특징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어떤 것도 예상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 일에 어두워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만, 리버서블이라는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거북할 정도로 가만히 야치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성격말입니까? 제가 본 하루노상은 무척이나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미간에 주름을 잡은채로, 뒷 머리를 긁적거리고는, 사카구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물은 것은 단순한 흥미일 뿐이니까. 덧붙여 또 하나만..."
사카구치는 야치의 귓가에, 조그만 소리로 "어느 쪽이 아래야?" 라고 속삭였다. 버릇이 없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직하게 대답했다.
"같이 일할 때에는, 그가 저의 상사였습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그런 상하 관계는 아닙니다"
짧은 침묵 후에, 사카구치는 당황한 듯이 "내가 여러가지 물어봤다는 건 녀석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남기고 헤어졌다.
병원에서 돌아오니, 낮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온 순간의 타이밍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해 하루노라가 생각해서,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하루노입니다. 라고 이름을 말한 후에, 얼른 "병원에는 갔다 오셨습니까?" 라고 물어왔다.
"갔다 왔습니다. 물약도 받았고, 조금 상태를 지켜 보자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라고 말한 후, 하루노는 침묵했다. 근무중인데, 어서 전화를 끊는 쪽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것만은 이야기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루노상이 말한, 병원의 지인이라는 분이, 사카구치 상이십니까?"
"엣!"
의아한 목소리였다.
"일부러 말을 걸러 와 주셨습니다. 만약 만날 일이 있으면, 감사하다고 해 주세요"
하루노는 "에에, 뭐" 라고 흑백이 확실한 남자 치고는 또렷치 못한 대답을 했다.
"사카구치하고는 달리 뭔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부자연스러운 대화가 뇌리에 스친다. 숨길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들은 다음엔 고자질하는 듯한 일은 할 수 없었다.
"별로 아무것도"
"그렇습니까.."
문득, 신경쓰인 일을 생각해 냈다. 사카구치의 대화와 관련이 있다고 알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일부러 " 전연 관계는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이라고 서두를 두었다.
"하루노상은 리버서블이라는 단어를 알고계십니까?"
전화의 상대편이 침묵한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뭔가 특징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가 보군요"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하루노의 목소리가 노해 있었다. 게다가 출처까지 힐문당해, 야치는 당황했다.
"저기, 텔레비전에서..."
"사카구치가 말한 거지요? 그런 게 틀림없어. 그 녀석은 또 어떤 못된 말을 야치상에게 불어 넣었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도 알수 있는 분노의 오오라에 뭐라고 변명하면 좋을까 알수가 없었다.
"대단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카구치상도 리버서블이라고 말한 것에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뚝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거는 쪽이 좋을까 어떨까 망설였지만, 근무중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일이 끊났을 때를 계산해서 휴대전화나 자택에 전화를 하려고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야치는 하루노의 전화번호를 어느 쪽도 몰랐다......한 번도 건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근무할 때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상사의 자택과 휴대번호 정도는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책상 근무였던 야치는 좀처럼 사용할 일도 없어, 퇴사를 계기로 해약했다. 정기적인 수입이 두절되니, 조금이라도 돈을 쓰는 것을 억제하고 싶었고, 집에 있는 전화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원명부를 찾으면 걸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꽤나 하루노에게 의존한 관계였다고, 지금에서야 야치는 인식하게 되었다.
전화를 하려고 생각하고, 번호를 찾았다. 찾았지만, 결국 그날 밤에는 걸지 않았다. 분노에 맞설 마음 가짐이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밤 일이니까 눈을 붙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루노의 태도가 마음에 걸려,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결국 한 시간도 자지 못한 채로 일하러 나갔다.
오전 4시를 넘겨, 점점 졸린 것이 피크에 달해와서, 조금이나마 눈을 뜨고 있으려고 야치는 계산대 주위의 청소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면 자고 싶은 것은 어떻든지 참을 수 있다.
가게 문이 열리는 기미에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하며 서둘러 계산대에 돌아간 야치는 들어온 손님을 보고 "앗!"소리를 질렀다. 어제 낮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하루노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하지만 서 있을 뿐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야치는 다시 카운터 밖에 나와, 하루노 앞에 섰다.
"밤중에 와서 죄송합니다"
하루노는 작게 사과하고, 조리장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무엇을 신경쓰고 있는 걸까 야치가 깨달을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전에 일하던 대학생은 그만두었어요. 그러니까......조금 정도는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안심한 표정을 보이고는, 하루노는 "잠깐만 밖에 나갈 수 있습니까?" 고 물어 왔다. 가게 안이라면 괜찮지만, 밖에 나가게 되면 근무지를 벗어나게 된다.
"밖은 춥잖아요"
은연중에 안이 좋다고 말해 보았지만, 하루노는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얘길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라고 밖에 나가고 싶어했다. 야치는 조리장에 있는 가게 주인에게 "5분 정도 휴식해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한 다음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밖은 볼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눈도 내리고 있었지만, 쌓일 정도는 아닌지 까만 아스팔트에 차례차례 스며들어간다.
"고민하는 것은 제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묻겠습니다.사카구치가 야치상에게 무얼 말했는지, 전부 가르쳐 주십시오"
딱딱한 어투였다. 사카구치의 이야기를 하루노가 신경질적일 정도로 마음에 걸려 하고 있는 것, 화를 내고 있는 것을 야치도 알았다. 알고 있지만, 그렇게 신경 쓰일 것일까 라는 의문도 있다.
사카구치는 대화의 내용을 하루노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벌써 말한 것은 알려 지고 말았다. 일방적이라고 해도, 약속은 약속이라고 생각한 반면, 이런 밤중에 자신에게 온 하루노의 불안이 신경쓰였다.
"하루노상이 리버서블이라고 사카구치상은 말했습니다. 그리고....어느 쪽이 아래냐고도 물었나. 이제 같이 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와 하루노상의 상하 관계는 없는 것 같지만...."
정직히 이야기했다. 하루노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아랫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있었다.
"그것뿐입니다. 하루노상이 고민하실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로"
달랠 참으로 그렇게 말하니, 하루노가 엷게 웃었다.
"야치상, 정말 당신은 눈치 채지 못했습니까?"
"눈치 채다뇨....?"
야치의 반문에 하루노는 자학 기미로 웃으며 "아뇨, 됐습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화가 끊기고 마니, 추위가 더욱 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진다.
"저기....소개해 주신 의사 선생님말입니다만...정말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약도 받았고, 틀림없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가서 다행입니다."
하루노는 고개를 숙인채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대답이 없으니까.....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
"야치 상은......."
훌쩍 하루노가 얼굴을 들었다.
"왜 지금까지 독신이십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전연 상관이 없다. 야치는 하루노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것을 묻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전에, 혼약한 여성이 있었지만, 결혼식 직전에 파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을 아직도 잊지 못하셨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조금은 폼이 날지도 모르지. 야치는 웃었다.
"이젠 그녀의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혼자 있는 것은, 우연히 그런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뿐이고,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지금부터는?"
"지금부터?"
"지금부터 미래에는...."
지금부터 미래...라고 반추하면서, 야치는 한숨을 쉬었다.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중년이라도 좋다는 여성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야치는 웃었지만, 하루노는 예의 정도라도 웃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혼자서 웃고 있는 자신이 엄청 얼빠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도 없습니까?"
똑바로 응시하면서 묻는다.
"그렇네요..."
왜 자신만이 질문을 당하는 걸까 생각하면서 거꾸로 되물었다.
" 하루노상은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놀란 듯이 크게 떠진 눈이 스윽 가늘어지더니 노려보는 것처럼 야치를 보았다.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지만....왜 자신을 노려보지 않으면 안될까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사귀고 계시겠네요"
"아뇨.......제가 일방적으로 호의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루노의 성격으로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곧 자신의 감정을 밝힐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은.......유부녀를 짝사랑한다든지, 불륜이라는, 상대에게 고백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상상한다.
"마음이 통하면 좋겠네요"
그것이 인륜에 반한다고 해도, 좋아하는 감정은 죄가 아니다. 설령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에게 하루노의 마음이 통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책임한....."
내뱉는 듯한 차가운 말에 야치의 몸이 떨렸다.
"말뿐이라면, 사람은 뭐라도 말할 수 있군요. 아니면, 야치상은 제 짝사랑이 잘 되가도록 협력해 주겠다,라고도 하시는 겁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요"
하루노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이상한지 웃기만 하다가,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실이 끊어지듯이 그 웃음은 사라졌다.
야치는 하루노가 보통과 다르고, 어딘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알았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몰랐고, 자신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도 판별할 수 없었다.
"야치상, 이제 돌아와 주지 않을래?"
가게 문이 열리고, 점장이 불렀다. 정신이 들고 보니 20분 가까이 밖에 나와 있었다. 하루노를 이 상태로 놔 두는 것은 걱정이었지만, 일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가게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서....죄송합니다."
하루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일요일에 집에 오시는 거지요? 그 때라도...."
"이유도 없는데, 가도 됩니까?"
야치는 고개를 갸웃했다.
"책을 빌리는 걸 잊어버려서, 돌려준다는 구실이 없어져 버렸어."
중얼거리는 하루노에게 야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유가 없어도, 놀러 와 주세요. 저의 집에 오는 것이 책을 빌리기 위한 것 뿐이라는 것도 서운하니까요"
노려본다가, 화내다가, 험한 표정뿐만이 교대로 나타나던 얼굴이 갑자기 부드러워져서, 뺨이 조금 긴장이 풀어졌다.
"그래요..."
헤어질 때에 가볍게 인사하는 하루노는 "또 일요일에" 라고 남기고 돌아갔다. 일요일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것에 대해 야치는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深呼吸(심호흡((5)
2002.11 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 하늘 번역
이제 1회 정도 남았습니다.
최후까지 많이 사랑해 주시길...............^^;;
호빵님께서 올려 주신 삽화의 광고 문구는
"조용한 일상 속에 당신이 일으킨 작은 파도-" 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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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형제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금요일 밤, 야치가 야근 일에 나가기 전이었다. 하루노에게서 온 전화인가 생각하고 받았더니, 종형제였고, 첫 말의 목소리 톤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랜 병환이던 숙부가, 결국 조금 전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장례식은 내일 모레, 오전 10시부터라는 것이었다. 숙부의 집은 후쿠오카에 있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전날 집을 나오지 않는다면,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야치는 다음날, 밤의 일을 끝내고 3시간 정도 선잠을 잔 다음 하룻밤 묵을 준비와 상복을 넣은 가방을 손에 들고 비행기를 탔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숙부는 관록이 있는 남자였지만, 관 속에서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은 여위어 홀쭉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생전 숙부의 얼굴을 본 마지막이 자신의 모친의 장례식이었다고 생각하니, 웬지 얄궂은 기분이었다. 다음날 장례식에는 많은 참례자가 있었다.숙부가 그 지방에서 목재의 도매상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일 관계의 사람이 많았다. 부친에게 형제는 없었고, 모친도 형제는 죽은 숙부 한 사람이었다. 야치의 친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숙부의 자식들인 종형제 남매만이 남은 것이 된다.
장례식을 하는 동안, 만약 자신이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경우, 누가 자리를 도맡아 관리해 줄 것인가 생각했더니, 그 사람은 아무래도 종형제일 것 같아 서글프면서도 미안해서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최후까지 타인을 귀찮게 하지 않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이 없으니 부탁할 사람은 핏줄인 친척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출관하고, 화장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밖의 일본식 정원을 거닐고 있자니, 종형제가 말을 걸어 왔다. 그는 야치보다 한 살 연하였지만, 머리털이 엷은 탓인지 꽤 늙어 보였다.
"켄지상은, 아직 혼자지?"
야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어제부터 오늘에 걸쳐서 오래된 지인과 얼굴을 맞댈 때마다 같은 것을 몇 번이고 물어왔다.
"좋아하는 여자도 없어?"
"응....뭐"
종형제는 "으음.." 하고 신음하더니, 팔짱을 꼈다.
"케이코도 말야, 아직 혼자라고. 이제 곧 40살인데 말야"
"....케이코짱도 벌써 그렇게 됬나"
어렸을 때에는 종형제와 그의 누이, 케이코와 야치 3사람이서 자주 놀았다. 고교에 올라갈 나이가 되어서부터는 시골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어 소원해져서, 야치의 양친이 죽고 나서부터 만나지 않았었다. 어제 볼 때에는 나이치고는 젊어서, 이제 곧 40살이라고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그 녀석, 일생 혼자일 것 같아서 걱정이야. 지금부터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고령출산이고. 뭐....애는 할 수 없다고 쳐도, 앞에도 혼자라면 외로울 거야. 지금은 아직 건강하니까 괜찮아도 몸이 약해지니까 말야."
"확실히 그렇네...."
자신과 대조해 보면서, 절실히 맞장구를 치고 있자니, "이런 자리이지만 말야.." 라고 말을 꺼냈다.
"케이코,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렇게 나와 놀랐다. 일순 농담인가 생각했지만, 종형제는 진지했다.
"그 녀석도 상경하니까, 만날려고 한다면 만날 수 있잖아. 아니, 나는 전부터 켄지상에게 케이코는 어떨까 생각했다고. 그 녀석은 조금 성미가 세긴 하지만, 마음씨는 나쁘지 않으니까. 켄지상도 상냥하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야치는 웃으면서 넘겨버리려 했다.
"난 좋다고 해도, 케이코짱은 어떤지. 아직 활기있게 현역에서 일하고 있잖아. 일이 사는 보람인 사람이라면, 결혼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몰라"
"아냐, 이 전에 돌아왔을 때, 결혼하고 싶다고 확실히 말했었어."
종자매하고 결혼, 따위는 야치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렸을 때의 이미지가 강해서, 아무래도 여성이라기 보다는 누이라는 눈으로 보게 된다.
"그래도 말야....."
"혹시, 케이코 싫어?"
"그럴 리는 없..."
"뭐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말야, 케이코는 아무래도 손뗄 수 없는 일이 있는 듯해서, 오늘 중으로 한 번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아. 켄지상도 돌아가는 거지? 같은 방향이니까, 뭣하면, 이쪽에서 같이 돌아가는 표,준비해 줄까."
결국, 돌아가는 것의 준비는 종형제에게 부탁했다. 오후 3시, 유골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 야치는 케이코와 함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조금 시간이 나서, 케이코와 함께 상점을 돌았다. 돌아다니고 있을 동안, 맛있을 듯한 떡 과자를 발견했다. 나오기 전 예상외로 허둥거려 하루노에게 전화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휴대 전화도 갖고 있지 않았고, 전화번호를 메모해 둔 종이도 잃어버려서, 결국 연락하지 않은 채로 되었다.
일요일에 이야기를 하자고 약속했는데,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한 형태가 된 것이 쭉 마음에 걸렸다. 최소한의 사례이기도 하고,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야치는 작은 과자 한 상자를 하나 샀다. 케이코가 "회사에 선물하는 거야?" 라고 물어봐서, "아는 사람한테" 라고 대답했다.
비행기의 안은 최종편이기도 해서 혼잡했다. 야치는 케이코의 수하물을 자신의 것과 함께 위에 있는 선반에 놓았다.
"이럴 땐, 남자여서 좋네"
좌석벨트를 매면서, 케이코는 중얼거렸다. 공항에서 화장실을 갔다온 후에 한데 묶어 올린 머리를 내린 케이코는 감귤계의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걷고 있을 때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좌석에 앉아 있자니 달라붙어 오는 듯한 달콤한 냄새가 강해져서 메스꺼워질 것 같았다.
"향수 냄새, 지독하지요? 미안해요"
자각은 있는지, 케이코는 사과했다.
"돌아가면 곧 클라이언트하고 만나요. 본심을 알고 있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 융통할수 있겠지만, 내가 따온 신규에다 거액 주문이니까 달리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책임자를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기도 하고요. ....첫 대면부터 향수냄새 지독하게 풍기면서 갔다간 실례이기도 하고 불쾌하게 여길 거야"
한숨을 쉰 후에 의자에 푹 눌러앉는다.외견은 30대 전반처럼 젊었지만, 눈가는 움푹 패어, 지친 듯이 보였다.
"일이 큰일인 것 같네"
뭐 그렇지....하고 케이코는 말했다.
"할수 없지요. 약소하지만 우선, 사무실의 사장이니까"
"이럴 때 정도는 더 푹 쉬고 싶잖아"
괜찮아, 고 케이코는 웃었다.
"바쁜 편이 잊을 수 있으니까. 집에 있으면 여러가지, 아버님 일이 생각나 버리고 오빠 부부가 신경 쓰니까.하지만 정신없이 바쁜 게 없어지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올 것 같아."
지쳤어.....그렇게 말하고는 케이코는 눈을 감았다. 그 때부터 조용해져서 자고 있는 걸까 생각하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천천히 눈을 떴다.
"돌아올 때, 오빠가 이상한 말 했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뭘, 하고 되물으니, "나랑 켄지상 결혼 이야기" 라고 한숨을 쉬었다.
"아, 하지만 난 켄지상 아주 싫은 것도 아니에요."
야치의 마음 속에서 가장 강한 케이코의 기억은 소학교일 때의 것이었다. 예전 누이와 같은 존재였던 여성......과거릉 알고 있는 만큼, "아주 싫은 것도 아니다"라고 들어도 마음은 복잡했다.
"우리 나이라면 사귀기 시작한다는 건, 아무래도 결혼이 전제가 되지"
그렇네, 하고 케이코는 맞장구를 쳤다. 말해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에 담기에는 웬지 주저가 있었다.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난 올해 4월에 일을 그만뒀어. 내가 스스로 퇴사한 게 아니라, 정리해고였지. 그때부터 계속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어"
케이코는 놀란 얼굴을 했다.
"40을 넘어서, 아르바이트는 어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걸 대체로 만족하고 있어. 하지만 세상 일반적으로 말하면, 누군가를 책임질 만한 입장은 못된다고 할지도 몰라."
옆이 잠시 침묵했다.
"켄지상이 전에 하던 일은 외국 자본계 기업이니까 확실히 매력적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인생의 동반자이고, 직함은 아니니까요"
그녀는 야치를 돌아보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어떤 일을 하더래도, 그 사람이 좋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종신고용 시대도 아니기도 하고."
케이코가 가만히 야치를 바라보았다.
"켄지상은 지금 일에 만족하고 있어요?"
물어와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발견했다. 좋은가 싫은가 그것보다도 우선 생계가 머리에 떠올랐었다.
피곤했던지 그때부터 케이코는 조금 잠을 잤다. 야치는 지금의 아르바이트와 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역에서 헤어질 대, 케이코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핸드폰이니까 언제 걸어도좋아요. 라고 말해 주었지만, 야치는 자기쪽으로부터는 걸지 못할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후 9시를 넘기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없는지, 고양이가 어둠에서부터 몸을 비벼오는 일도 없었다.
상복의 웃옷만을 옷걸이에 걸고나서, 거실에 멍하니 있었다. 익숙해졌을 터인 혼자만의 방이,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야치는 침실에 들어가서 그 전에 조사해 두었던 하루노의 전화번호를 메모한 종이를 꺼냈다. 처음엔 집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아서, 휴대전화에 걸었다. 좀처럼 받지 않고 ,부재중 전화로 넘어가지도 않아, 끊을까 생각한 그 때 상대가 받는 기미가 났다.
"네, 여보세요..."
전화의 목소리는 보통 전화로 듣는 하루노의 목소리보다도 무척 낮은 느낌이었다.
"하루노상입니까?"
"당신은 누군데?"
"야치입니다. 하루노상에게 걸려고 했습니다만, 혹시 잘못 건 겁니까?"
전화의 상대편에서 아아..라고 혼자서 납득한 듯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이건 확실히 녀석 전화죠. 그 녀석 지금, 샤워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하루노는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했다. 자신 이외에도, 하루노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을 턱이 없었지만, 혼자서 남겨진 듯한 쓸쓸함을 느꼈다.
"그랬습니까. 그럼......조금 있다 다시 걸겠습니다."
"그것도 좀 곤란한데....."
남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볼일이 있어서, 녀석은 전화받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전언이라면 전해 두겠습니다만"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것도 무리인 듯 싶었다.
"그럼....오늘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전해 주세요"
"그거면 됩니까?"
"또 다른 날에 전화 할테니까요....."
전화의 건너편에서 "사카구치! 남의 전활 멋대로 사용하지 맛!" 이라고 하루노의 호통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이고 울려서 시끄러웠다고" 라는 중얼거림 뒤에 "죄송합니다. 하루노입니다" 라고 친구를 상대할 때와는 다른 꽤 점잔빼는 목소리가 들렸다.
" 밤늦게, 바쁘신 중에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야치입니다"
"엣, 야.....야치상......."
순간 하루노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어디십니까?"
"집에서 거는 겁니다. 오늘은...."
"한번, 끊겠습니다. 곧 이쪽에서 다시 걸겠습니다"
야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는 끊어졌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는 채로, 수화기를 놓았다. 그 후로 5분정도 후에, 약속 대로 하루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도중에 끊어서 죄송합니다."
하루노의 등뒤에서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집 밖에 나온 듯 싶었다.
"아뇨, 이쪽이야말로 바쁘신 때 죄송합니다"
"별로 바쁘진 않는데요"
"친구분...사카구치 상이, 지금부터 용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하루노가 침묵해서, 그 침묵이 야치는 무서웠다. 사카구치에 관한 것에 하루노는 민감해서,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노가 화내는 일을 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용무는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집에 돌아가는 길입니다"
자신 때문에 신경을 써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 부분을 깊게 묻지는 않았다.
"오늘은 약속했었는데, 집에 없어서 미안했습니다"
"아뇨...."
"숙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이 있었기 때문에 후쿠오카에 있는 어머니쪽 실가에 돌아갔었습니다"
"참 큰일이셨군요.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는 하루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갈 때에 하루노상에게 전화하려고 했지만, 나가는 것에 허둥대다 보니 잊어버렸어요. 죄송합니다"
"그런,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용건은 이것으로 끝났지만, 야치는 전화를 끊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사례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선물을 사 와서 드리고 싶은데, ...다음 주에는 저의 집에 오실 수 있습니까?"
".....지금 가면 안될까요?"
야치는 놀랐다.
"지금.....?"
"귀찮습니까?"
"아뇨....상관없지만, 선물이라고 해도 대단한 것도 아니고, 오래가는 거니까, 2,3 주간은 괜찮아요"
짧은 침묵 뒤에, 하루노는 "고양이도 보고 싶고" 라고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지금, 어느 '본집' 에 있는지 알수 없었지만, 없다고 말할 수 없어 "그럼 오세요.." 라고 야치는 대답했다.
....전화를 끊은 다음 1시간도 되지 않아 하루노는 나타났다. 현관 앞에서 언제나의 일요일처럼 선물을 건넨다. 밤인데 어디서 샀을까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지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낮에 하루노는 한번 집에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의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알아챈 건지, 고양이도 하루노가 오기 조금 전에 돌아와서, 현관의 목제 문을 긁고 있었다.
선물을 하루노는 기쁜 듯이 받아 주었다. 그 표정만으로, 야치는 만족했다. 집에 온 때부터 기분이 좋았던 하루노가 문득 무언가를 경계로 말수가 줄어들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야치의 이야기에 대한 대답도 단어가 많아졌다.
" 주제넘은 질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하루노가 날카로운 눈으로 야치를 보았다.
" 계속.........어느분과 같이 계셨습니까?"
"잘 아시네요"
순순히 감탄하는 야치에게 하루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종자매, 그러니까 돌아가신 숙부의 딸이 이쪽에 살아서, 장례식이 끝난 후에 후쿠오카에서 같이 돌아왔습니다"
하루노는 아아....라고 중얼거리곤,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향수 냄새가 나서...."
"그렇습니까? 하루노상은 코가 민감하군요."
".....어머니가, 예전부터 향수를 자주 발랐습니다. 저는 그런 향수의 종류는 남자건 여자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햐루노에게는 결벽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밖을 돌아다니다 온 고양이를 태연히 쓰다듬고 어르니까, 실제는 어떤지 잘 알수가 없었다.
"여기는, 고양이와 오래된 나무의 향기가 납니다"
야치는 그다지, 그런 것을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 고양이와 놀고, 커피를 마시다가, 전철이 끊기기 전에 하루노는 돌아갔다. 이번엔 책을 빌려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 주에도 와도 됩니까? 라고 물어오는 남자에게 야치는 "물론" 이라고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다시 혼자가 되니, 웬지 외로운 듯한 기분이 되었지만, 장례식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었다.
혼자였어도, 고양이가 있다면 비교적 괜찮았었다.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좋은 기분을 알게 되니, 외로움의 정도가 다름을 깨달았다. 누군가와 관계하면 관계할 수록 외로움이 늘어난다는 건, 사람은 번거로운 존재라고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생각하면서, 야치는 복도쪽의 샷시를 열었다.
마음 속까지 차가운, 밤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새삼 집 안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예전과 다름없는, 자신이 자라난 집의 향기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2주일 정도지나고 나서, 갑자기 케이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야치가 후쿠오카의 종형제 집에서 잊어버리고 온 부의에 대한 답례품이 도착해서 건네주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일요일과 월요일이 휴일로, 토요일은 밤이면 괜찮다고 말하니 일요일에 만나자고 했다. 마침 그 주는 하루노도 출장이 있어 못 온다고 했기 때문에 타이밍도 좋았다. 만날장소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사이, 케이코가 야치의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백모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이에요. 한 번도 분향해드리지 못했으니까"
라고 말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여성이 집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야치는 전날부터 정성껏 집의 청소를 하고, 정원의 풀을 뽑는 등, 자신이 봐도 깔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돈했다.
일요일에, 두 번 정도 왔던 적이 있으니까 혼자서도 괜찮다고 했지만 역을 나온 때부터 길을 몰랐던 듯 전화를 걸어와 맞으러 갔다. 집에 도착해, 옛날 그대로의 목제 울타리로 지어진 나무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케이코는
"전엔 좀더 큰 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층집이었네"고 중얼거렸다.
집 안으로 맞아들여, 거실로 안내한다. 케이코는 처음, 불단에 있는 야치의 양친의 위패에 합장했다. 그리고 나서 고다츠의 앞에 앉은 케이코에게 야치는 지난 주에 하루노에게서 받은 고급 백설탕 과자와 커피를 대접했다. 여자라면 단 건 무조건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과자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 이 집, 지은 지 얼마 정도 되었어? 30년 정도?"
"아니, 더 오래 되었을 거야. 아직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에 샀다고 들었으니까"
케이코는 한숨을 쉬었다.
"오래된 집인데, 기둥이라든가는 괜찮은가보네."
"하지만 이제 꽤 상태가 나빠졌다고"
야치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지을 생각은 없어?"
다시 짓는다고 말한 것에 놀라, 자신이 그 가능성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오래되었다고해도 아직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웬지 자신은 이 집과 함께 최후까지 살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래된 집은 멋지지만, 지진이라든가 화재가 있을 경우엔 목조 가옥은 무서워."
응..뭐 그렇지... 야치가 애매하게 맞장구를 치니 케이코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 생각해 봤는데, 만약 야치상도그럴 생각이 있다면, 가끔 만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결혼을 전제로 해서....란 서두가 들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난 아르바이트야"
"그래도, 쭉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작정은 아니겠죠."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보지않았다고, 말할려고 해도 말할 수 없었다.
"급료가 싸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다면 그쪽으로 가는 거야. 나는 돈하고는 관계없이,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좋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도, 야치의 속에는 그 정도로 큰 비젼은 없다. 기업에서 일하고 있을 때 조차도, 주어진 일을 매일매일 묵묵히 해내는 것 뿐으로, 그 이상의 일도, 그 이상의 것도 바라지 않았다. 똑같은 능력으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던 동료가 차례차례 승진하는 가운데, 뒤에 남아서야 겨우, 자신의 요령없음을 깨달는 마당이었다.
"나는....케이코짱이 생각하는 정도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아니야. 우선 매일매일 밥벌이를 하면 좋은 거지, 일하는 것에는 그 정도 밖에 필요로 하지 않아. "
케이코가 복잡한 표정으로 야치를 보았다.
"그렇네. 젊을 때는 여러가지 꿈을 꾸지만, 나이를 먹으면 싫어도 한계가 보이게 되지. 그래도, 향상심이 있어야 인생이 아닐까?"
그녀가 토해 내는 정론이 천천히 자신을 졸라 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켄지상은, 이제부터 미래의 자신에 대해, 뭔가 바라고 있는 것이 없어?"
그렇게 물어서,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주어진 것은 보인다.하지만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케이코를 보았다. 자신 이외의 인간은 , 좀더 인생에 대해 탐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고, 퍼뜩 생각했다. 몇 살이 되더라도,바램이나, 희망이라는 종류의 것은 쉽게 생겨나는 것일까.
".....이제 슬슬, 돌아갈까"
케이코가 일어나, 야치는 그 뒤에 따라갔다. 전송할 셈이었지만, 복도의 중간에서 케이코는 갑자기 주저앉았다.
"왜 그래?"
얼굴을 든 케이코는,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조금....배가 아파요. 하지만 괜찮아. 전부터 위경련이 자주 일어나서....가만히 있으면 곧 괜찮아질 거야."
야치는 어쩔 줄 모르는 채로, 케이코의 옆에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낫는다고 말했지만, 어렴풋이 어두운 복도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고 있는 사이에 케이코의 안색은 창백해져 갔다.
"아파.....아..."
이를 꽉 악문채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넘쳐 흐른다. 보고 있는 야치 쪽이 참을 수 없어서 "괜찮으니까.." 라고 말하는 그녀를 뿌리치고, 구급차를 불렀다. 달려온 구급대원이"어디 단골병원은 있습니까?" 라고 물어서, 그것이 그녀의 단골 병원을 물은 것임에도 상관없이, 정신이 없었던 야치는 그만 자신이 진료받았던 역 앞의 종합 병원의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한참 있으니, 케이코의 위가 아픈 것도꽤 나아졌다. 원인은 조사해 보지 않아도 불명확한 것이었으나, 조심할 겸 가까운 시일 내에 한 번 소화기계의 검사를 하는 쪽이 낫다고 했다.
연령과 외관으로 봐서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야치는 몇 번이고 케이코의 남편으로 오인받아, 간호사가 바뀔 때마다 "남편분" 이라고 불렸다.
외래의 침대에서 링겔을 맞고,3시간 정도 누워 있으니 증상도 완전히 가라앉았다. 입원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가가 나왔다. 걸을 수는 있었지만, 아직 케이코의 걸음걸이가 미덥지 못해, 야치는 어깨를 안듯이 하고 걸었다.
완전히 어두워진 병원 앞의 택시 승강장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뒤 택시 하차구에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젊은 남자가, 날듯이 달려온 택시 도어를 꽝 닫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한 순간, 야치는 무심코 말을 걸었다.
"하루노 상?"
튀쳐 나갈 듯한 기세였던 남자가 멈춰 서더니,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나는 듯이 달려 왔다.
"괜.....괜찮습니까?"
당황한 듯한 하루노의 혀는 잘 돌지 않았다.
"사카구치가 야치상이 구급차를 타고 왔다고 해서, 그래서....공항에서 그대로 왔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같이 있던 그녀의 상태가 안 좋아서..."
그제서야 겨우 하루노는 야치의 옆에 있는 케이코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했다.
"저기, 안 타요?"
뒤의 노부인이 소리를 질러온다. 정신이 들고 보니 택시는 자신들이 탈 순서가 오고 말았다. 걱정해서 달려 와 준 하루노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 줄을 벗어나면, 또 긴 뱀처럼 늘어서 있는 줄의 맨 끝에 붙는 것이 된다. 아직 제 상태가 아닌, 상태가 나쁜 그녀를 자신 편의대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를 바래다 주지 않으면 안되서요....실례합니다. 일부러 달려와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또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
아연해 있는 남자를 남기고, 야치는 택시를 탔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에도내버리고 와 버린 꼴이 된 하루노에게 미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케이코를 맨션까지 데려다주고, 그때부터 집에 돌아오니 오후 11시를 넘어 있었다. 돌아와서, 달라붙어 오는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 전에, 하루노에게 전화를 했다. 집은 받지 않아, 휴대전화에 걸었다. 한참동안 울린 후에 겨우, 하루노가 받았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뇨....."
대답은 기분 나쁜 듯이, 짧았다.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별로...사카구치에게 속은 저도 잘못한 거니까요."
"속았다고요?"
"그 녀석이, 자못 당신이 크게 다쳐서 입원한 것처럼 저에게 전화했었습니다. 짓궂은 녀석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질이 나쁜 장난을 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이번엔 장난이었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다친다면 달려와 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매우 마음 든든했다.
"저는.....저를 걱정해 주는 하루노상의 마음이 기쁘답니다."
정직한 남자를 보고 배워, 자신도 정직하게 기분을 말해 보았다. 그러나 하루노는야치의 성의에 코웃음쳤다.
"옆에 있던 여성은 누구입니까?"
야치를 찝찝한 기분이 들게 만든 채로, 하루노는 물어 왔다.
".....종자매입니다. 저의 집에 있을 대 상태가 나빠져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종자매라면, 결혼할 수 있군요. 그녀는 야치상에게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루노의 예리함에, 야치는 무심코, 하려던 말을 삼켜 버렸다.
"그녀가 야치상을 보는 눈은 여자의 눈이었으니까요. 사카구치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당신도 그녀에게 아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확실히 그녀와 지금부터 사귈까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다. 그런 일에 관해서 도대체 왜 그가 공격적인 어조로 꾸짖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야치상의 집에는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제가 가면,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거니까요."
방해라기보다는 마치, 자신이 그녀와 사이 좋아지는 것을 하루노가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하루노가 화내는 것은 자신이 추측할 수 없는 부분에서다. 사춘기 애도 아닌데, 왜 그런 정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사양하지 마시고 놀러 와 주세요. 저도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는 하루노상 밖에 없으니까...."
" 그렇게 말하시니 대답입니다만...."
하루노는 잘라 말했다.
"저는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게 고한 동시에, 전화는 끊어졌다. 야치는 아연해서, 한참동안 손에 든 수화기를 제자리에 놓을 수도 없었다.
深呼吸(심호흡)(完)
2002.11 소설 비보이
코노하라 나리세 작
푸른하늘 번역
후후.....잠깐 외도를 했다가 여러분들의 짱돌을 맞아 멍들었습니다......ㅜ.ㅜ
그래서 얼른 얼른 완결편을 냅니다.번역자의 개인적인 감상은 맨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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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서, 만나러 갔다. 야치의 집에서 일으킨 것과 같은 복통은 없는 것 같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검사를 받아 보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몇 번인가 식사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했다. 성격적으로는 결혼해도 그렇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야치는 결혼을 전제로 사귈 수 없다고 고했다.
야치가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거리적인 것이었고, 말이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요구해 오는 것은 질이 다르다. 야치는 그녀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녀가 요구해 오는 것과 같은, 서로를 정신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상대에 자신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향상할 수 있을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자신이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안고 위로해 주는, 그런 정도의 것이었다.
사귈 수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더니, 케이코는 "그렇게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아도" 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치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녀도 어렴풋이 어딘가 맞지 않는 부분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듯, 그런 부분을 넘어서서까지 야치와 사귀려고는 하지 않았다.
봄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8개월을 지났을 무렵, 도시락 가게의 점장이 야치에게 정사원이 되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다. 정사원이 된다면, 복리후생도 확실하고, 보너스도 나온다. 바라지도 않던 청이었지만, 천천히 생각하게 해 달라고 야치는 대답을 보류했다. 정사원이 된다면, 지금까지와 같이 마음 내키는 대로 느긋하게 할 수는 없다. 그 나름대로의 책임도 무겁게 짓눌러 온다.
그 날, 야치는 야근을 마치고 자전거로 집에 돌아갔다. 대신할 사람이 올 때까지...라고 듣고 계속해서 벌써 5개월 정도, 통 대신할 사람은 오지 않은 채로 밤낮이 바뀐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안개가 끼인 듯한 머리로, 길 모퉁이를 돈다. 집 앞까지 수 미터 남은 지점에서야 비로소, 나무 문 앞에 사람이 서 있는것을 깨달았다.
야치가 자전거를 멈추자, 나무 문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보는 것도 거의 2개월 만으로, 전화로 이야기한 이래였다. 두번 다시 집에 오지 않겠다고 한 말대로, 그 때부터, 일요일이 되어도 하루노는 놀러 오지도 않았고, 직장에 방문하지도 않았다.
자전거의 핸들을 쥔 손이 떨리는 것이 이상했다. 연하의 남자를 무섭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렇게 친근하게 굴며 따르고, 마치 고양이처럼 집에 들어온 주제에, 갑자기 '친구도 아니다' 라고 잘라 말한다. 그 때의 충격을 생각해 내는 것 만으로, 마음이 괴로워진다. 배신이라든가 책략이라면 좀 더 알기 쉽다. 그것과 또 다른 부분이니까, 상처입어도 야치는 화 낼 수도 없었다.
"빌려간 책을 돌려 드립니다"
내밀어진 봉투를 받았다.
"싼 거니까, 버려 주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야치가 나름대로 힘껏 비꼰 말은, 노려보는 듯한 시선과 함께, 두 배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버릴 수가 없어서."
침묵하는 순간, 야치는 고개를 수그렸다. 하루노를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녀와 만나지 않게 된 것보다 일요일에 까다로운 남자가 방문해 오지 않게 된 쪽이 더 서운했다. 하지만 그 서운한 감정도 결국은 친구로도 생각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로 없어져 버렸다.
"지금 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회사를 바꿀 예정이고, 런던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바꾸고, 갑자기 해외로 부임하게 되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보통 대우가 아니고, 전 회사에 있었던 것과 같이 헤드 헌팅당한 것이 틀림 없었다.
"반년 예정입니다만, 희망한다면 더 오래 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어딘지, 먼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했다. 회사에 있을 무렵, 야치는 한번도 해외 부임의 후보에 오른 적도 없었다.
" 그러니까, 야치상과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만나지 않았다. 해외에 가든, 일본에 있든 '만나지 않는다' 라면, 어디에 있든지 똑같았다.
"정확히 1년전, 저는 전무에게서 경영 개선의 일환으로 인원삭감에 대해 상담을 받았습니다. 저의 부서에서 삭감 후보에 오른 사람은, 야치상을 포함해서 네 사람이었고, 저는 근무태도, 실적등을 고려한 끝에 야치상이 적당하다고 전무에게 보고했습니다."
야치는 놀란 나머지 입을 반쯤 벌리고 다물 수가 없었다.
"미혼, 독신인 것도 확실히 고려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근무 태도였습니다. 근면한 것은 미덕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실히 일을 소화한다는 것뿐으로는 로보트라도 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요구하는 것은,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인형이 아니라, 조금 실적이 나쁘더라도 향상심을 가진 인간입니다. 회사를 살리는 것도,죽이는것도 결국은 인간이니까요. 이제부터 성장하려고 하는 회사에, 당신은 부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에서 오래 산 사람 답게, 하루노는 필요없는 것은 잘라 내버렸고, 그리고 자신은 멋지게 잘려 버려진 인간이었다.
"도대체 왜 새삼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있는 '배려' 도 당신에게는 없는 겁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배려입니까?"
정확하게 가슴을 꿰뚫렸다.
"자기분석이 되지 않는 인간에게는, 성장은 없습니다."
말이 마치 채찍과도 같았다. 말로써 양뺨을 동시에 손바닥으로 맞는 것처럼 당하면서, 생각한다. '무능'하다고 버려진 남자에게 왜 하루노는 접근해 온 것일까..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주말에 도시락을 사러 오던 모습을 생각해 냈다.
"그만두게 한 죄악감 때문에, 제 모습을 보러 온 겁니까?"
"저는 당신을 그만두게 한 것에 죄악감 따위는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일을 공정한 판단으로 행했을 뿐입니다."
사람은 충격이 크면, 조그만 정도의 아픔에는 움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정도 해 주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지금 와서는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야치상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것은, 단순한 저의 호의에서부터였습니다."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무능'의 낙인을 찍어놓고 나서 '호의'라고 말해도, 믿을 수 없었다. 하루노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야치의 눈을 보았다.
"저는 당신에게 연애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연인이 되고 싶었고, 그 나이까지 독신이라면 게이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이에 곧 성벽이 노말인 것을 알았습니다. 야치상이 회사를 나간 걸로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포기할 수 없어서, 도시락가게까지 얼굴을 보러 간 겁니다."
하루노가 자신의 양 손을 꽉 쥐었다.
"가능성이 없으니까, 어서 빨리 포기하고 다른 상대를 찾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놀란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을 야치는 처음 체험했다. 충격의 파도에 감정이 통째로 휩쓸려 흘러간 것처럼, 머릿 속은 하얗게 되었다.
동성애나 게이라는 말은 알고 있었어도, 그것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을 알아도, 리얼리티가 없었다.
겨우 생각할 힘이 돌아오자, 이번엔 의문부호가 머리 속을 교차했다. 왜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백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같은 입으로 자신이 그만두게 했다고 고백한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자신을 잘랐는지 알 수 없었을 텐데....
그리고 문득 야치는 깨달았다. 정직하게, 숨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루노라는 남자가 아닐까 하고.
"저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고, 친구라면 몰라도 하루노상이....성적인 흥미를 가질 대상은 아니라고생각하는 데요...."
"나야말로 당신에게 묻고 싶어"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왜 내가, 그렇게 타입도 아닌 야치상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었는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어."
좋아하게 된 사람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고, 사랑을 받게 된 쪽도 이유가 알 수 없다고 한다. 옆에서 본다면 필시 희극일 거라고 생각했다.
".....2년 정도 전에, 일을 마치고 나서 모두 마시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붙임성이 있었어도 마른 고양이가 있었는데, 야치상은 일부러 가까운 노점에서 달걀 부침을 사 와서 고양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두, 동정해서 먹이를 주지 않는 쪽이 낫다고 말했습니다.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먹이를 주는 것은 일시의 자기 만족이라고. 하지만 당신은 만약 자신이 고양이였다면, 동정이라도 배가 부르는 쪽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을 기대해서, 받지 못한다고 낙심하는 것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야말로 사람의 에고라고. 기대를 하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하루노가 똑바로 야치를 응시했다.
"저는, 그런 사고방식이 가능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것이, 마음을 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말에 감동하다니, 술기운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을 소중히 간직한 남자에게도 놀랐다.
이 남자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 걸까 알고 싶어졌다. 이런 알맹이도 없는, 말라빠진 나이만 먹은 남자가 어떤 식으로 보이는 걸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노는 후 하고 숨을 쉬더니, 표정을 휙 바꾸었다.
"'별장'의 고양이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양이....."
"얼룩무늬 고양이 말입니다. 런던에 데리고 가려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건..제 고양이도 아니고..."
"알고 있습니다. 들고양이겠지요. 하지만 야치상이 귀여워하던 거니까, 일단 양해를 구해놓자고 생각했습니다."
고양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자신에게 남은 미련일까 생각했다. 그렇게 무능이라고 듣고, 덤으로 좋아한다고까지 들어서, 머리 속은 아직 혼란해 있었다. 그래도, 야치는 이 남자를 싫어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달았다.
"고양이를 데리고 가지 말아 주세요."
야치의 말에, 하루노의 표정이 모래를 끼얹은 듯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버려도 좋다고 하신 책을 주세요."
"싫습니다."
하루노가 눈을 치뜨고 야치를 노려보았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긴장된 공기가 감돌았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말. 돌이킬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에 담았다.
"만약 고양이가 보고 싶어진다면, 저의 집에 와 주세요. ....책은 드릴 수는 없지만 빌려 줄 수 있으니까, 빌리러 와 주세요."
하루노는 안경 속의 눈동자를 크게 뜬 채로, 가만히 야치를 응시했다.
".......전 쭉 이곳에 있을 테니까."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하루노는 고개를 숙였다. 숙이고서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길게 침묵한 후에, 작은 목소리로 "런던에서 돌아온 다음엔..." 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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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하늘호수 작성시간 10.01.13 귀여운 아저씨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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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tobu 작성시간 10.03.05 이소설 너무 좋은데요? 하루노에게도 드디어...돌아갈수잇는 집이 생겻고...
야치상에겐....드디어 뒤늦게 봄이오려나봐~요....ㅋㅋㅋ
이런 '변변찮은'일상에 묻어잇는 로맨스.....너무 좋아요!!!! 잘봣어요.
지금껏 코노하라 센세 소설인건 알앗지만...어찌된일인지 못봣는데..
감사해요~ -
작성자아콘 작성시간 10.03.27 하아~ 정말 좋으네요 ,, 잔잔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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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냥 작성시간 11.04.09 헉. 너무 좋아요. 우왕...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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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잠만보선 작성시간 21.05.06 정발된 책에 야치가 영국에 여행간 얘기가 있고 구글링하면 하루노가 다시 일본에 돌아온 외전 번역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