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김교태|작성시간26.06.05|조회수15 목록 댓글 0

 

나신 지 얼마 안 돼

명성황후의 비명을 들으셨던 내 할아버지는

상투 올릴 무렵 먹고 살길이 막막해

 

일천 오백 척()이 넘는

산마루 축축한 샘물가에

손바닥만 한 논을 일구셨단다.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에 부치는 그곳에

알량하게 벼 몇 포기 심어놓고

네발짐승처럼 들락거리셨단다.

 

늦가을 이삭을 거둘 때면

너무 찬 논물에 쭉정이가 반()

그 반 중에 얼마는 산새가 세금처럼 걷어가고

남는 것은 겨우 두어 됫박!

 

고향 집 뒤 천보산을 바라보면

기슭에서 마루까지

그 옛날 가난한 젊은 할아버지가 오르셨을 흐릿한 산길!

 

힘겨웠던 이승의 밑바닥을 기며 사시던

내 할아버지가 벗어놓은

기다란 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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