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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이야기방

반지

작성자피리부는소년|작성시간26.06.07|조회수2 목록 댓글 0

 

 

 

 

 

 

 

반지 

 

 

 

 

 

 

 

 

 

커피를 내리는 남자의 손가락이 빛난다. 아니, 오른손 검지를 덮은 커다란 은색 반지가 번득인다. 도대체 저 투탕카멘 마스크 문양 반지는 어디서 파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커피잔을 잡은 왼손 엄지에도 치우천왕 같은 도깨비 얼굴을 그린 사각 반지를 끼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이라 커플링은 아닐 터이고 남들이 흔히 끼는 약손가락도 아니므로 결혼반지는 더더욱 아니겠다. 노련한 핸들링으로 라테아트를 완성하는 손길 따라 민망함도 잊은 채 내 눈길도 함께 흘러간다.

 

“만들었어요.”

 

마음을 읽었을까. 남자가 커피잔을 건네면서 잠시 두 손을 치켜들어 보여준다. 요즈음은 장신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공방이 유행이라고 한다. 자신만의 개성에 맞게 자유로운 문양으로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나만의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이다. 전문 세공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반지 제작이 가능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뜬금없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다. 바리스타 그 젊은 남자처럼 빛나는 반지를 끼고 있으면 시들부들한 나의 생도 싱싱 생기가 돌 것만 같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법. 동네마다 반지 공방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연인과 부부와 동료와 친구들이 저마다의 문양으로 만든 기념 반지를 끼고 손을 포갠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내친김에 전화 예약을 하고 작업장을 찾았다. 평일이라 실내는 조용하고 온갖 소도구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나는 편편한 실버 링에다 수필가답게 에세이라는 영문 이니셜을 새기기로 했다. 그러면 수필에 대한 긍지와 창작에 대한 마음가짐이 단단해질 것만 같았다. 어느새 손가락 길이만 한 얇은 막대기 하나가 내 앞에 놓여졌다. 주재료인 실버 막대인데 이것을 한 시간여 다듬으면 반지가 될 것이다. 좀 더 긴 것을 선택하면 팔찌가 만들어질 터이고 더 넓은 것을 두드리면 목걸이 펜던트도 가능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비단 이 작은 금속만 그러할까. 자식 되기․친구 되기․어른 되기․주인 되기․손님 되기․연인 되기․부모 되기․선생 되기․작가 되기․후배 되기․선배 되기, 그리하여 점점 인간이 되어 가기…. 내 삶도 새로운 ‘되기’의 연속 과정이었지만 제대로 완성되지 못하고 늘 형태만 일그러졌다. 이 막대도 망치질과 사포질을 하고 불을 가하여 마침내 반지 되기에 이를 터인데, 어쩌면 비틀고 구부린 완성품보다 지금의 미끈한 재료가 가장 완벽한 은의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은 막대에 힘을 주니 약간 휘어진다. 이제 영문 펀치에서 단어 ‘ESSAY’를 순서대로 골라 도장 각인을 할 차례다. 이니셜 펀치를 바(bar) 위에 올리고 망치로 두세 번 때려서 글자를 새겨야 한다. 그런데 기계 작업이 아니므로 간격과 높이를 맞추기 어렵고 의도대로 찍히지 않으니 쉽지만은 않겠다. 우선 연습 판에 몇 번 탕탕 두들겨보아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시작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첫머리 글자부터 비뚤배뚤 튀어 오른다. 어찌하겠는가, 핸드메이드의 매력에 의미를 둘 수밖에.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도 어긋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당신이 틀렸다고 우긴 것도 모두 틀렸던가. 나도 틀릴 수 있고 당신도 맞을 수 있는데 그것을 깨닫는 데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이니셜도 새겼으니 둥글게 말아서 이음새를 붙여준다. 은가루를 녹여 틈을 메우고 토치로 용접한다. 파란 불꽃에서 점차 붉은 열꽃을 뿜어내니 끝과 끝이 만나 고리를 이루었다. 뜨거워도 조금만 참으면 연결되는 것. 세상일이 그럴진대 불꽃이 일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과욕을 부려서 시커멓게 그을리기도 했었다. 접합한 상처는 울퉁불퉁해도 사포로 다듬으면 매끈해질 수 있는 법. 천천히 순리대로 따르면 다 해결되었다.

 

손가락 사이즈를 재고 기다란 쇠봉의 11포인트에 줄을 긋는다. 한 짝만 끼는 것이 반지(半指)며 쌍으로 끼는 것을 가락지라 했던가. 반지의 원형이 둥근 이유는 테두리 밖으로 마음이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었는데. 나의 옛 반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쇠봉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나무망치로 두들겨주니 표시한 눈금까지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수평을 맞추고 모서리를 깎고 광택을 내는 일이 남았다. 자잘한 기스와 작은 균열과 거슬거슬한 겉면까지 사포질 몇 번에 반드르르해졌다. 뭐든지 깎고 다듬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뼈를 깎는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눈파는 사이에 상처가 나고 출혈도 생긴다. 그래도 애벌레의 환골탈태처럼 고통 뒤의 환희경도 있지 않은가.

 

인간은 언제부터 반지를 꼈을까. 그동안 수많은 고분과 유골단지와 박물관을 통해서 동서양의 옛 반지들을 보아왔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만인 앞에서 자신의 반지를 후계자에게 끼워줌으로써 권력의 승계를 상징했고, 중세의 종교 반지나 로마의 인장 반지도 실용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반지에 독을 넣어 암살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 고분에서도 문양이 없는 소환(小環)과 금은 반지, 유리구슬 반지, 격자무늬 반지, 옥반지 등이 껴묻거리로 출토되었다. 그러한 왕족의 반지와 양반가의 호박이나 백옥 반지와 심지어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마법의 절대 반지라 할지라도 과연 내가 만들고 있는 나만의 반지와 견줄 수 있을까.

 

아, 캐나다의 철근 반지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캐나다 퀘벡의 세인트 로렌스강 다리 붕괴 사고 때 많은 작업자의 희생이 있었다. 이후 토목기술자들은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무너진 구조물에서 뽑아낸 강철로 반지를 만들어 끼게 되었다. 그 의식은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엄청난 피해를 상기하며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라는 무언의 충고였다. 쇠반지가 엔지니어의 소명의식을 새기듯이 내가 만드는 은반지 역시 에세이스트라는 작가정신을 받들도록 할 것이다.

 

드디어 내 반지의 광택 작업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세척을 한 뒤 물기를 닦고 밋밋하던 손가락에 채워본다. 반짝! 은색 등불 하나, 온몸을 밝힌다.

 

 

- 김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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