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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이야기방

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작성자피리부는소년|작성시간26.06.08|조회수4 목록 댓글 0

 

 

 

 

 

 

 

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거린다. 생전의 매창이 자주 찾았던 서림공원에서 내려와 부안 교육청 사거리를 조금 비켜선 곳, 매창뜸*으로 향한다. 매창이 잠들어 있는 매창뜸은 인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매창공원이다. 웬만해서는 무덤을 곁에 두기 꺼릴 법도 한데 동네 사람들은 마당 같은 이곳엔 거리낌 없이 많은 사람이 오간다.

 

황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여성 시인으로 알려진 매창은 부안 출신 기생으로 기류 문학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녀는 부안현의 아전인 아버지 이탕종의 딸로 태어났다. 계해년에 태어났다 하여 '계생(癸生)', ' 계랑'이라 불릴 정도의 보잘 것 없는 신분이었던 그녀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다. 이후 계랑은 '매창(梅窓)'이라는 호를 직접 지어 평생 사용한다. 매화의 향기를 뜻하는 '매향'이나, 이른 봄에 핀다는 '설중매'처럼 그 의미가 직접 드러난 기녀들의 흔한 이름이 아닌 '매화가 피는 창'이라는 은근한 이름에서 이미 그녀의 남다른 시적 감각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그녀 사후 '개암사'에서 목판본을 제작 발간한 《매창집》은 그녀를 아낀 아전들과 주위 사람들이 외우던 절창 57편**을 모아 만들었다. 피붙이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기생의 시집을 사후 58년 뒤 고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부안사람들이 얼마나 매창의 시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여사행(女四行)이라하여 부덕(婦德), 부언(婦言), 부용(婦容), 부공(婦公)만 닦으면 족하다 했으니, 퇴계 또한 《규중요람》에서 “여자는 역대 국호와 조상의 이름을 아는 것으로 족”하며 문필은 더더욱 여자가 취할 바가 아님을 언급한다. 기녀 신분이라고는 하나 이 같은 유교적 분별이 엄격했던 조선에서 여인으로, 더욱이 시인으로 살아가기는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서른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시인 매창은 시와 노래에 능하고 거문고 실력이 뛰어나 그 재주가 다른 지역까지 소문이 났다. 그 소문이 불렀을까, 기생이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이미 유명한 문인이었던 유희경이 부안에 와 매창을 만나게 된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더 간절했던 그 사랑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그녀가 아끼던 거문고와 함께 잠들어 있는 묘 근처에는 유난히 매화나무가 많다. 비켜 가는 소로를 따라 세워진 시비들이 비에 젖어 그녀의 안타까운 생을 더욱 애처롭게 전하는 것 같다.

 

흔히 쓰는 말 중에 ‘문향’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읽는 이의 정서까지 향기롭게 하는 방향 (芳香)을 뜻한다. 그녀를 ‘이화우’로 기억하게 하는 그 깊은 향기는 한 사람을 향한 슬픈 연가다. 때문에 매창을 생각하면 애절한 사랑이 떠오르고, 그 이야기 건너편에는 촌은(村隱) 유희경이 있다. 매창이란 이름을 스쳐 들은 이들도 매창과 유희경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 이유는 전해 오는 매창의 시 가운데 유희경을 향한 시가 유독 많은 까닭이다.

 

유희경도 그녀를 향한 마음이 애틋하여 훗날 자신의 문집에서 단 한 번도 그녀를 기녀 이름인 '매창'으로 부르지 않고 '계랑'으로 부르며 고희가 넘도록 매창을 사모하는 심정을 시로 남긴다. 이처럼 유희경이 계랑을 진정 정인(情人)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으니, 매창의 생과 시에서 유희경이라는 인물은 중요한 중심재인 듯하다. 또한 저 세상의 매창에게 유희경의 그리움은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촌은 유희경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매창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한 시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세월을 거슬러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절창이 발길을 붙잡는 것은 그녀의 안타까운 사랑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벽을 넘어선 애절한 연시가 빗소리에 젖는다.

 

 

 

梨花雨 (이화우

 

梨花雨(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秋風落葉(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하얀 배꽃처럼 제 몸을 부리는 것들은 늘 여운을 있게 한다. 아름다운 봄날이라서 더 아팠을 이별과 오동잎 지는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스산한 가을밤, 그 봄에서 가을까지의 그리움은 천 리에 닿았으리라. 천 리 먼 곳의 임을 향한 애절함이 뚝뚝 떨어지는 시구를 읊조린다.

 

그 사모의 정이 얼마나 깊었으면 머리가 희어지고 손가락에 반지가 헐거워졌을까. 두 사람은 이별한 지 15년 만에 재회했으나 긴 기다림을 위로하기에는 너무 짧은 만남으로 끝난다. 그러나 유희경은 매창의 첫사랑이자 그녀가 가슴 깊이 사랑했던 남자임은 분명하다.

 

생이별로 사위어 가는 매창에게 교산 허균은 삼각관계를 떠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벗으로 다가오는데, 매창과 10년 이상 시와 참선을 나누며 친구처럼 우정을 이어 간다. 허균이 매창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지은 다음의 시 <哀桂娘(애계랑)>을 보면 알 수 있다.

 

哀桂娘 (애계랑)

 

妙句堪摛錦(묘구감금금)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淸歌解駐雲(청가해주운) 맑은 노래는 머문 구름 풀어 헤치네

偸桃來下界(투도래하계)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竊藥去人群(절약거인군)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燈暗芙蓉帳(등암부용장)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香殘翡翠裙(향잔비취군) 비취색 치마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明年小挑發(명년소도발)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誰過薜擣僨(수과벽도분)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으리

 

‘복숭아꽃 철이면 누가 계랑의 무덤을 찾아갈 것인지’, 애절한 심정을 펼쳐놓은 이 시는 허균이 매창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헌정한 시다. 당대(唐代)의 시성 두보, 백거이 등과 시를 주고받은 절창 ‘설도’에 매창을 비유한 허균은 어찌 보면 그녀를 가장 아끼는 인물이었으리라.

 

이렇듯 매창을 가인(歌人)으로 알아본 허균과의 인연은 허균이 충청도·전라도 세미(稅米)를 거둬들이는 해운판관으로 왔을 때 시작된다. 관기와의 만남이었지만, 허균의 《상소부부고》에 실린 <조관기행>편을 보면 매창을 예인으로 대하는 허균의 진심 어린 우정을 알 수 있다. 매창

 

이 잠들어 있는 쪽을 향한 허균의 시비에 서둘러 찾아온 가을이 애잔하다. 가까이 할 수 없어 더 간절하고 지극했을 유희경에 대한 매창의 사랑을 떠올리며 걷는다. 문득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를 물은 소설 속 주인공 ‘시몽’의 대사가 떠오른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등장하는 시몽이 현시적이며 욕망의 대상이었다면 매창의 사랑은 그녀 가슴에 향기로 피어 지금까지 이화우로 흩날리는 사랑이지 싶다.

 

매창, 그녀의 사랑은 또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리움이거나 영원해서 아픈 그런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의 향기가 비처럼 가슴을 적시는 오늘, 어느 한적한 주막에라도 들러 탁자 맞은편에 젓가락 정갈히 놓고, 나 유희경 되어 가슴 속 그녀에게 막걸리 한잔 따르리라.

​ - 배귀선 -

 

 

 

*매창뜸 :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1610년 매창 사후 그를 기리기 위해 인근 주민들이 매창의 자호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철창 57편 : 원래는 58편이 부안 개암사에서 간행되었다. 그러나 그중 <유공비> 시 한 수는 허균의 관객이었던

                       이원형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김민성,《매창전집》, 고글, 2002년,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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