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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글 고운시

반가사유

작성자피리부는소년|작성시간26.06.06|조회수2 목록 댓글 0

 

 

 

 

 

반가사유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여자와

 

 

외항선 타고 밀항한 남자 따위 기다리지 않는 여자와

가끔은 목욕 바구니 들고 조조영화 보러 가는 여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 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주는 여자와

유행가라곤 심수봉밖에 모르는 여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여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여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 류 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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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 반가사유 

 

 

 

아주 쓸쓸한 여자와 만나서

뒷골목에 내리는 눈을 바라봐야지

옛날 영화의 제목과 먼 나라와 그때 빛나던 입술과

작은 떨림으로 길 잃던 밤들을

기억해야지

김 서린 창을 조금만 닦고

쓸쓸한 여자의 이름을 한 번 그려줘야지

저물지 않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난을 저주하는 일 따위 하지 않으리

아주 쓸쓸히 여자의 술잔에 눈송이를 띄워주고

푸른 손등을 바라보리

 

여자는 조금 야위고

나는 조금씩 흩어져야지

흰 벽에 아직 남은 체온을 기대며 뒷골목을 바라봐야지

내리는 눈과 지워진 길들과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의 검은 칼자국

아주 쓸쓸한 여자와 만나서

조금은 쓸쓸한 인생을 고백해야지

아무것도 아니고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러나 그 모든 것이어서 슬펐던 날들을

기억해야지

 

쓸쓸함 아니고선 아무 것도 가릴 것 없는

아주 쓸쓸한 여자의 눈빛을

한 번 오래도록 바라봐야지

뒷골목 몹시 서성거린 내 눈비

누군가 쓸쓸히 바라봐야지

 

- 류 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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