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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세상사는 수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작성자바른세상|작성시간22.02.22|조회수107 목록 댓글 2

명절 연휴가 뒤에 있으면 좋은 점이 있다. 명절 전 가벼운 가족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도 이번 설 연휴도 뒤쪽에 명절이 있어 좋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지역이 우리나라의 서쪽이고 내 숙소에서 1박을 하면, 편하게 1박 2일 정도의 간단한 서해안 지역 여행을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은 동쪽이라 평소에 서쪽으로 가는 것이 여의치 않았는데 서쪽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 이런 면에서는 아주 좋은 것 같다.

 

더군다나 지난 추석과 이번 설 연휴 사이에 태안반도와 보령을 잊는 우리나라 최대의 해저터널이 개통을 했다. 무료기도 하거니와 서해안의 일몰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우리가 사는 동쪽에서는 거리가 있어 서쪽으로 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 군산이나 보령, 태안반도를 가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연휴가 있으면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니 우리나라 곳곳을 좀 더 잘 볼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는 이 즐거움이 상당하다. 솔직히 해저터널이 별것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안다. 높은 산 중간을 지나는 터널이나 지나는 동안은 비슷한 풍경을 제공할 것이다. 그래도 해저터널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상당히 클 것 같다. 우리 공주들도 기대를 하겠지만 솔직히 내가 더 기대된다. ‘바다 아래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설레기는 한다.

 

그리고 익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서해안은 일몰이 참 아름다웠다. 거기다가 수려한 곡선을 지닌 해안선은 내 마음을 좀 더 흥분되게 했다. 동해안이 주는 바다와는 확실히 달랐다.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것만 같은 멋진 풍경을 제공했다. 서해안이 좀 낯설어서 더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그럴수도 있지만 누가 봐도 일몰과 어우러진 해안선은 아주 아름다워 내 서툰 글솜씨로 형언하는 것이 부끄러울 것 같다. 그냥 그 광경을 질투하며 건조하게 한마디를 한다면 “매우 멋진 풍경이다” 정도가 어울릴 듯하다. 해안선을 따라 주황색을 예쁘게 드리운 일몰은 동해안이 줄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모든 사진이 역광이지만 인물보다 경치가 주는 멋짐이 폭발을 해서 눈이 즐겁다. 이번만큼은 일몰의 수려한 경관을 위해 우리 공주들이 미모를 양보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광과 어우러진 인물사진도 그 나름의 좋은 점이 보였고 또 다른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듯했다.

 

이제 여행의 백미인 음식이 남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공주들에게 풍경은 그저 좋은 풍경일 뿐이다. 그리고 지나고 물어보면 참 빨리도 그 광경을 잊고 있다. 그러나 머릿속 저 깊은 곳에서는 좋은 경험과 기억으로 작용하고 다음에 갔을 때는 그 시절을 잘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만족한다. 같이 다니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여행이 너무 무거워질 것만 같다.

 

사실 해저터널을 지나가는 것 이외에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아서 최종 목적지나 먹거리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첫날의 양식집만 미리 고려한 맛집이다. 그 곳에서 이전에 먹어본 에그 베네딕트 정도를 공주들에게 꼭 먹게 해 주고 싶었다. 이 음식이 별다른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익은 계란 반숙을 자르는 순간 아래로 흐르며 음식을 덥는 노른자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건 음식을 눈으로 먹는 듯 한 느낌을 준다. 나도 그랬고 우리 공주들도 그럴 것이다. 자르는 그 순간은 흥분에 차서 아주 즐거워 했다. 맛보다 눈이 즐거운 요리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듯하다.

 

가끔이지만 여행을 하며 뭘 먹을지 정하지 않고 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음식점이 많고 어디를 가더라도 유명한 곳이 많다. 이번에도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곳의 새우튀김이 맛있었다. “맛있는 녀석들”에 나온 집인데 새우튀김 그 자체도 맛있지만 즐겨보던 그 프로그램에 나온 집이라서 더 맛있는 것 같았다. 통마리로 튀긴 것을 먹었는데 씹을 때마다 새우의 껍질이 그대로 느껴졌고 그 자체로 아주 다른 식감을 제공했다. 평소 새우를 먹을 때 새우껍질을 벗기는 것이 귀찮았는데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적당히 벗겨 먹어도 될 것만 같았다. 우리 공주들도 먹는 것을 약간 힘들어 하면서도 튀김이 주는 그 고소함에 빠져 먹기 힘든 것을 잊은 것만 같았다. 먹는 즐거움이 귀찮음을 무난히 이기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우리 공주들도 껍질째 먹은 그 경험을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맛이 있게 먹었고 그래서 떠나기전 우린 10마리를 더 사서 그 곳을 떠났다. 가게 주인은 우리가 사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다시왔고 그래서 우리를 금새 알아봤다. 약간 머쓱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주인도 우리도 즐거웠다. 누군 팔아서 좋고, 누군 그 음식에서 맛있는 즐거움을 얻어서 좋다. 오늘은 맛있는 음식이 이런 즐거움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조개구이다. 평소 우리는 이걸 별로 먹어본 적이 없다. 이전에 동남아 여행이나 다른 곳에서도 먹기는 했지만, 오늘은 무한리필집이라서 배를 충분히 비우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내심 기대가 컷다. 흥분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우리 공주들도 비슷한 것 같았다. 조개구이로 한끼를 먹는 상상을 하니 왠지 즐거웠다. 그리고 생각만으로도 아주 맛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몰을 보며 이런 곳에서 조개를 멋지게 굽는 것은 아빠로서 큰 자부심이 된다. 난 그 자부심을 뽐내기 위해 오늘 분발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것이라 초반에는 어색할 것이다. 하지만 난 뭐든지 금방 잘 배운다. 눈썰미가 있는 편이라서 손으로 하는 것을 금방 배운다. 예상대로 처음은 굽는 방법도 어색하고 굽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 갈 수가 없다. 배가 고프고 맛이는 것이니 먹는 것은 빠르고 굽는 것은 느리다. 이럴경우 보통 처음 먹기 시작할 때 아내와 나의 양보심이 폭발한다. 공주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냥 젓가락질 하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늦어진다. 그런데 이럴 때는 천천히 먹는 것도 즐겁다. 그래도 나는 굽는다고 정신이 없어 천천히 먹지만 아내는 빨리 먹을 수 있지만 천천히 먹는다. 아마 그게 굽는 나보다 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 이젠 익숙해져서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것 같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들도 아마 비슷하게 하셨을 것이다. 맛있는 것을 당신들께서 먹지 않는 즐거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시며 사셨을 것이다. 나도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으니 사람이 사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참 비슷하다.

 

난 정말 열심히 구운 것 같다. 구운 것이 맛있어 보이면 내 젓가락은 그 조개를 빨리 집어서 내 입으로 보내지 않고 어김없이 공주들에게 번갈아 가면서 나눠준다. 맛있어 보이지 않는 것은 어김없이 내 입으로 향하고 있다. 대각선에 앉은 아내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맛없는 그 조개가 더 맛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맛없는 것이 맛있어지는 마법이다. 이건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 같다. 그리고 평생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가장 고맙고도 고귀한 감정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우리 공주들에게 늘 감사하다. 아빠를 아빠로 느끼게 해 준 그 고마움이다.

 

맛있는 조개를 구워서 공주들에게 먼저 주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공주들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부부가 느끼는 그 감정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맛있는 것을 먼저 주는 고마운 감정 이상의 고마운 감정을 모를 것이다. 배가 부른 민채가 열심히 굽고 있는 내게 한마디를 했다.

 

“아빠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아”

 

난 이 한마디면 된다. 공주들에게 하는 일은 원래 보상을 생각하고 하는 일이 아니지만 내 작은 노력의 과실은 이 한마디로 모두 받은 것이다. 석화를 구우며 속의 뜨거운 물이 흘러 손에 화상을 입어도 괜찮다. 맛있는 것을 덜 먹어도 괜찮다. 그저 같이 먹고 즐거울 수 있으니 된 것이다. 그거면 충분히 만족한다. 오늘의 이 느낌은 예전 시인이 말한 고통이 기쁨으로 승화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기쁨이 기쁨으로 승화한 느낌이다. 부모라는 자리는 평생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사는 고귀한 자리인 것 같다. 민채의 이 말이 귀에 자꾸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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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바른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2.23 당연한 일이지만
    늘 모자란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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