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핵심 진리] 신앙 생활의 세 단계

작성자초록 등불|작성시간25.01.13|조회수83 목록 댓글 1

   

 [핵심 진리] 신앙생활의 세 단계

 

배경음악을 들으시며 읽어 보세요

 

우리의 신앙생활을 여러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저의 경험 속에서 나눈 세 가지의 신앙생활을 나누어 봅니다.


첫째. 성령의 불세례를 받지 않고 믿는 신앙생활의 단계입니다.


성경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왔을 때에, 그곳의 제자들을 만나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니, 그들이 성령은 듣지도 못하였다 말하며, 요한의 세례 곧 물세례만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성령의 불세례를 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도 타고난 천품 등이 좋을 때는, 나름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지만, 성령의 불세례를 통한 진정한 영적인 거듭남의 체험이 없기에, 신앙생활은 관념적인 단계에 머물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을 잘 알지 못하고, 삶의 어려움을 만나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일반적으로 말씀대로 잘 살아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계에 머무는 신앙이라면, 예수님께서 부활승천 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반드시 성령세례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참된 신앙인이나 증인이나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 수 없으니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세례를 사모하며 반드시 경험하여야 합니다.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둘째. 성령의 불세례를 경험한 후의 신앙생활입니다.


성령의 불세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참된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요한의 세례가 아닌,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불 세례, 성령 세례를 경험해야 합니다.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이것에 관해 좋은 간증이 생각납니다. 어떤 목사님이 신학교에서 배우기를,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성령이 내주하시는데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라 믿고 불세례를 주장하는 분들과 신앙적 다툼을 하며, 오랜 세월 사역자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설교를 듣고, 성경을 살피다가 예수님을 믿을 때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외에, 성령의 불세례를 통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고, 낮이나 밤이나 성령의 불세례를 사모하다가, 놀라운 영적인 경험과 함께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그분의 신앙이나 사역이나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리석어서 성령을 받지 못한 에베소 교인과 같이 오랫동안 머물렀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불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알지도 못했다’하는 에베소 제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성령의 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하였습니다. 그 수가 열 두이라 함은 하나님의 열두 지파 곧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의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받을 수 있음을 은유합니다.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이러한 성령의 불세례를 경험하면 대부분 경험하는 것이 방언의 은사입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의 한 외적인 증거가 방언이 됩니다. 그리고 방언의 은사를 통한 유익이 너무도 많기에, 방언의 은사를 받아야, 영적 여정의 둘 째 단계에 들어섭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지 않으면, 무엇보다 충분한 기도를 드릴 수 없으며, 통역 등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나, 무엇이나 어렵기에, 반드시 방언의 은사를 받아야만 둘째 단계의 신앙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방언의 은사는 사모하면 누구나 줍니다. 받지 못함을 정말 간절히 사모하는 시간을 갖지 않아서입니다.


이 불의 세례를 받은 후에 대부분 불의 역동적인 영성에 머뭅니다. 그래서 기도나 설교나 전도나 무엇이나 적극적이고 역동적입니다. 그러한 역동성이 개인과 교회의 부흥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많이 경험하는 것이 은사입니다. 방언, 예언, 신유, 축사 등의 성경에 기록된 은사들을 주로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 불의 역동적인 시기도,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의 시간인 3여년의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뜨거운 신앙생활이 잘 견지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경건 생활에 힘쓰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함이 잘 견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영적 내적 목마름을 경험하는데, 신앙생활의 삭막함을 다시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배려입니다.


매양 성령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이끌면 우리 스스로는 강해지지 않기에, 우리 스스로 경건 생활에 힘쓰며 싸워야 하는 시기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아무리 경건 생활에 힘써도, 처음 성령의 불세례를 받은 3여년처럼 강권적인 불의 역사는 견지되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의 성장을 위하여 주도적인 자리에서 돕는 자리로 역할을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성령을 좇아 행하려고 할 때 보혜사로써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본래 성령님을 보혜사로 표현하는데, 그 뜻은 원래 그리스어로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고 하며, 이는 '돕는 자', '위로자', '변호사' 등을 의미합니다.


저도 그랬거니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머무는 영적인 여정이 이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앞에서 나눈 것처럼, 방언의 은사가 중요하기에, 방언에 관하여 많이 나눕니다. 그렇게 방언의 은사는 경험적으로 그리고 영적인 여정에서 참으로 중요함이 알아지기 때문에 많이 나누어지고 회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도 성령의 강권적인 시간을 지나고, 삶의 큰 어려움이나, 또한 나태함이나 부득함이나 기도 시간 등을 갖지 못하면, 다시금 내적 영적 메마름과 삭막함,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지지지 않음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은사와 능력 등을 경험하였어도, 그러므로 불세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과는 다르지만, 그러한 외적인 은사 능력은 내적인 깊은 열림과는 다소 달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어려움과 무게를 만나면, 마음의 곤고함을 경험합니다.


이는 아직 내적 깊은 세계가 열리지 않아 그 마음이 아직 겉사람의 혼의식에 머물기에 그러합니다. 제가 살펴본바 이 단계와 여정에 머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셋째. 영성 발현을 경험한 후의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에서 거의 회자되지도 않고 그러므로 잘 경험되어지지 않는 영역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험과 소견으로 볼 때 이 영역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영성 발현’이라는 것은 저의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인데, 하나님의 이끄심 안에서 타고난 천성이 변하듯 사람의 성정이 변화됩니다. 성정은 곧 말이기에 말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러한 변화가 나타남은 지금까지는 육의 겉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살아왔으나, 어느 시점에서 영의 속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그 성정을 드러냅니다. 이 성정이 드러나면, 엘리야와 엘리사의 대화가 일반 사람의 정어린 혼적인 많은 말과 같지 아니함 같이, 성정 곧 말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왕하2: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성경을 보면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를 건널 때, 인간이 실존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 앞에서, 가장 간절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렇게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며 매달리던 야곱은, 내면의 혼적인 죽음과 더불어 새 영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성경에서 보듯이 이름은 그 사람의 속성을 나타내는데 그의 속성이 바뀌었기에 새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창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그런데 저도 그랬거니와 이러한 ‘영성 발현’은, 야곱처럼 생의 크고 깊은 시련의 시간에 대게 나타납니다.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거닐며 그 속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가운데, 영의 새 사람이 깨어나며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영적인 여정은, 생의 깊고 큰 시련 등의 시간을 거닐며, 나타나는데, 저의 경험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무조건인 은혜나, 아니면 스스로 지금의 신앙 상태에서 머물지 말고, 불의 역동적인 영성의 생활과 더불어 깊은 묵상과 기도의 내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많은 시간 안에서 열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외적인 은사 능력도 좋지만, 내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영성의 본질의 시간, 우리 기독교에는 그러한 개념이 약한데, 깊은 수양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시간을 가지고 또 가지는 인내 가운데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세 번째 단계에서의 특징은 많겠지만, 몇 가지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영의 드러남으로 본성의 변화, 말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늘 혼의 요란한 생각 속에 머무는 삶이었다면, 영의 고요함에 머무는 시간들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본성의 변화를 경험하므로 다시 메마르고 삭막한 시간으로 돌아가도 이전과는 다른 성정으로 대부분 살아집니다. 불의 역동성의 세계 안에서의 회귀는 거의 옛사람으로 돌아감 같은데, 이 세 번째 여정을 건너면 옛사람으로의 회귀가 잘 되지 않는 비가역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2. 영이 드러남을 경험하면, 아마 의식의 열림, 영의 열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열림을 경험하면, 혼의 사망의 생각과 영의 생명의 생각이 선연히 구분되어지고, 눈에 혼의 하늘과 영의 하늘이 구별되어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전에는 늘 마음을 수고롭게 하던 많은 생각, 우리는 대게 이 상태의 마음에서 살아가는데, 점점 혼의 생각을 그치고, 영의 고요함 가운데 머무는데 익숙해져 갑니다. 마음만 일깨우면 곧 생명의 영의 상태로 들어가는데 익숙해지고 머무는데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림을 경험하면, 은사와 능력과는 또 다른, 영의 본래의 능력, 그리고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을 경험함 같이, 영적인 세계와 영적인 존재들의 경험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삼백년간 동행한 에녹이 영의 신비로운 하늘을 경험함 같이, 그러한 경험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은사 능력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다가오는 영적 신비로움입니다.


3. 영의 열림 속에서 깨달음이 깊어집니다. 가령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서 극적으로 치료함을 받은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마음은 생사의 깨달음 가운데서 달라집니다. 나아가 가령 죽음을 경험하고 그 후의 하늘과 생명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난 사람은 전혀 다른 깨달음 가운데서 살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로 다녀온 후, 몸 안과 밖을 동일시함과 같이, 자신이 영적으로 경험한 깊이만큼 깨달음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의식과 영이 열리면 또한 지혜의 빛이 점점 밝아져서 깨달음이 깊어집니다.


4. 안식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 자 하는 것은 ‘안식’입니다. 그리고 안식은 곧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궁극적인 안식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겠지만, 히브리서 성경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면, 안식할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저의 부족한 경험을 살피면, 하나님이 긴긴 여정 넘어 조금씩 안식의 시간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히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히4:8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히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제가 영의 하늘을 경험하며, 오직 그 시간 안에서 완전한 자유의 호흡을 처음 경험하였다고 한 것처럼, 우리는 늘 억눌린 호흡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이 수고로움에 눌리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생명인데, 하늘이 열린 만큼 그렇게 하늘의 생명이나 안식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안식의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편에서 보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채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는 마음을 점점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을 주는 듯도 하고, 내가 안식을 알아가는 듯도 하는 시간을 마주하며 안식을 누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직접 영적인 여정 가운데 그러한 시간을 마주하며 안식의 시간은 알아가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수없이 부르짖는 기도의 여정과 죽음과 같은 시련의 과정을 넘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안식의 시간을 스스로 느끼며 경험으로 알아가지 않으면, ‘안식’이라는 이름하에 영적으로 게을러지고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안식은 영적인 게으름이 아니요, 하나님 안에 점점 깊이 머물며, 그 안에서 누리는 마음의 쉼과 생명입니다.


이 안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가령 영적 생활의 근간인 기도에 대한 이해와 행함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제가 하나님과 천사들과 말없이 말을 나눈다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교통이나 기도나 이러한 것들이 점점 다른 개념과 이해 그리고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것들은 안식의 시간을 마주하며 스스로 알아 가시면 싶습니다.


제가 영적인 가르침에 현교(顯敎)와 밀교(密敎)가 있다고 한 것처럼, 세 번째 영적인 여정은 밀교의 가르침에 가깝습니다. 현교는 말고 가르칠 수 있으나, 밀교는 말은 가이드만 될 뿐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묵묵히 걷고 또 걸으며 하나씩 더 깊이 경험하고 이해해 가는 우리들이면 좋겠습니다.


이 세 번째 영적인 여정을 거닐더라도, 혼으로 삶이나 신앙생활이나 수고로움을 느끼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영의 드러남 곧 영성의 발현 때문에, 삭막하고 곤고한 시간이 찾아와도, 이전처럼 혼 안에서 무질서한 말과 행동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름 영의 세계를 실제로 알았기에, 그리고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의 빛 가운데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을 조금씩 누리게 됨을 통하여,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조금은 땅의 수고로움과 무게를 영 안에서 잘 견디게 됩니다.


그렇게 성령의 불 세례를 알지 못하던 물 세계의 시기, 그리고 불 세계를 받은 시기, 나아가 영의 하늘이 열리는 시기로 나아가면서, 혼으로 느끼는 삶의 수고로움은 같으나, 점점 참된 영의 세계를 알아가며 영 안에서 누리는 생명이나 쉼은 점점 깊어집니다.


우리 모두 점점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며, 하늘의 생명과 빛과 쉼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누리는 복된 삶이길 기도해 봅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여정에 작은 도움이 되는 글이길 기도해 봅니다. 하늘 평화 나눕니다. 샬롬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소식공지 / 사랑감사 / 책 안내 / 초록 숲 / 미가엘찬송 방언기도 (클릭!)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초록 등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13 [인사] 한 주간도 주님 안에서 강건 평안하세요. 하늘 평강 나눕니다. 샬롬 ♧ (글이 다소깁니다. 몇 번 읽어 보시며 잘 새겨보세요)

    - "슬퍼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기도하여라.." 지체님들을 위하여 기도하니 이러한 말씀들을 주시네요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아멘 (나라 위해 기도 애국해요. 나라 없이 교회도 우리도 없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